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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zyjam 첫 번째 금빛

2007.01.26 22:5901.26

어둡지만 상당히 넓은 방이라는 것은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감각은 피부와 공기의 흐름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방을 둘러보는 일 따위에 신경을 쓰느라 눈을 돌릴 수는 없었다.
지금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불 위에 매달린 목이 긴 플라스크. 플라스크 안에서는 탁한 액체가 죽은 생선의 비늘 같은 둔한 빛을 이따금씩 번뜩이며 느릿하고 게으르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누군가 손을 뻗어왔다. 손은 플라스크 안에 붉은 가루 약간을 신중하게 쏟아 부었다. 오오. 축복 받을 마지막 시료. 붉은 가루가 녹아 섞임에 따라 끓고 있던 탁한 액은 노랑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노랑이 아니다. 저것은 신의 축복에 따라 막 피어오르는 태양의 첫 빛이다. 저것은 바다 위에 길게 늘어진 옷자락을 거두어 가는 태양의 마지막 손놀림이다. 저 찬란한 금빛!
이제는 황금의 액이 잘게 반짝이며 끓고있는 플라스크 너머로 그가 나직이 웃고 있다. 비밀의 주인 사비르, 위대한 현자 사비르가.
라페 이그니스는 식은땀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수습하고는 재빠르게 날짜를 헤아렸다.
  "그래, 오늘로 꼭 일곱 번째의 꿈이다."
모든 연금술사의 꿈은 황금. 스스로의 손으로 황금을 만들어 그 첫 변화를 확인하는 권리를 누리는 것. 위대한 현자 사비르가 해내었듯이 물질 변성의 원리를 깨우쳐 최고 정점에 이른 기술로 부와 명성을 차지하는 것.
라페의 꿈 역시 다른 연금술사와 마찬가지로 그러했다. 처음 연금술사의 제자로 들어갔던 날부터 그는 내내 자신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첫 금빛을 꿈꾸었다. 실제의 금은 만져보지도 못한 채 꿈만 꾸어온 것이 17년. 그렇게 오랫동안 연금술에만 매달려왔다. 처음 자신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순수한 금을 보기 위하여. 그리고 지금에 와서, 위대한 현자가 변성 실험을 직접 해 보이는 꿈을 일곱 번이나 꾸었다. 이것이야말로 계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라페는 뛰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낡고 초라한 침상이 삐걱거리는 긴 신음소리를 흘리자 잠들어있던 아내가 깨어나 무어라 투덜거렸다.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안되었다. 초에 불을 붙인 라페는 문이 떨어져나간 이름뿐인 옷장에서 자신의 옷가지들을 바닥으로 집어 내던지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에요, 아직 이렇게 어두운데."
  "며칠간 집을 비워야겠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묻던 아내는 반쯤 몸을 일으키고 라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라페는 아주 오랜만에 활짝 웃는 얼굴이 되어 아내를 돌아보았다.
  "현자 사비르의 성지에 가볼 거야. 거기서 며칠 기도를 해야겠어."
아내의 얼굴이 금세 차갑게 굳었다.
  "마음대로 해요. 아예 다시는 안 돌아오면 더 좋겠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도로 자리에 누워버리는 아내를 향해 라페는 주먹을 치켜올렸다가는 이내 슬그머니 주먹을 거두었다. 아내는 아들이 태어나고 나서부터 내내 그가 연금술에 매달려 있는 것을 비난해왔다. 그런 그녀에게 늘 손찌검을 하곤 하던 라페였지만, 오늘같이 신성한 계시를 받은 날까지 주먹을 휘두를 수는 없었다. 라페는 다시 등을 돌리고 옷가지를 꾸리기 시작했다.


비밀의 주인 사비르, 위대한 현자 사비르는 최초로 황금을 만들어낸 연금술사였다. 수은을, 납을, 구리를 금으로 변화시켜낸 사람이었다. 황금 변성에 관하여 그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는 온 대륙 연금술사들에게 숭배의 대상이었다. 특히나 이 나라에서는 그것이 더더욱 심했다. 라페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연금술사와 화학자가 가장 많은 나라라는 이유 이외에도, 이 곳은 사비르의 모국이기도 한 것이다.
현자 사비르의 성지는 그의 무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성지가 있는 산은 라페가 살고있는 도시로부터 꼬박 열흘 정도를 걸어야했다. 실험이 잘 되지 않거나, 계시를 받은 연금술사들은 종종 사비르의 성지로 와서 연금술의 쌍둥이 신 셀레무스와 테네르에게 기도를 드리고 영감을 얻곤 했다.
십여년도 전에 성지에서 계시를 얻어 황금의 제조법을 깨우친 한 연금술사는 사비르의 무덤 바로 앞에 하얀 대리석으로 연금술의 기념탑을 세웠다. 나무가 제대로 자라기 힘든 돌산 중턱에 있는 탓에 연금술의 기념탑은 산 어귀에서도 뚜렷이 보였다. 수많은 참배자들이 오르내리는 동안에 만들어진 산길을 허덕이며 걸어 올라가다가 어느새 기념탑 중앙에 새겨진 연금술의 상징인 꼬리를 입에 문 뱀이 확연히 보이기 시작하면 이곳을 찾는 연금술사들은 감동의 눈물을 쏟기 마련이었다. 라페 역시 돌부리에 몇 번이나 발이 걸리면서도 내내 기념탑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산을 올랐다.
반짝이는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념탑과는 달리 무덤 옆에 서 있는 기도자들의 숙소는 허름한 움막에 지나지 않아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숙소에 들어가 짐을 내려놓고 기도를 올린 라페는 숙소를 둘러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내 손으로 황금을 만들어 부를 손에 넣게 되거든 감사의 대가로 이 숙소를 보다 좋은 곳으로 고쳐놓자. 이 곳을 찾는 많은 자들이 나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한밤중에 잠에서 깬 라페는 얼굴을 찌푸렸다. 옆자리에서 자던 노인이 팔을 내저으며 잠꼬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언가 꿈을 꾸었던 것 같은데. 설마 사비르의 영혼이 나에게 꿈속으로부터 계시를 내리고 있던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고 한다면 이 늙은이를 가만두지 않을 테다. 라페는 아무 것도 모른 채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노인을 향해 위협하듯 주먹을 들어 보이고는 숙소 밖으로 나왔다.
봄이라고는 해도 산의 밤은 꽤 추웠다. 라페는 어깨를 움츠리고는 돌로 만들어진 사비르의 무덤을 향해 걸어갔다. 밤을 새워 계시를 구걸하는 자들이 지금도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연금술의 신과 현자 사비르의 영혼에게 기도하고 있었다. 라페는 슬그머니 웃었다.
  '너희들은 이제서야 계시를 내려달라고 하는 것이냐. 나는 이미 사비르께서 변성을 시연하는 꿈을 꾸었다. 위대한 현자 사비르께서는 나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라페는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그믐밤이었다. 옅은 구름이 끼어 있는 밤하늘에는 구름들 사이로 간간이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전에도 이렇게 앞날에 대한 기대감에 가득한 마음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 그게 벌써 17년이나…
라페가 처음 자신의 황금을 꿈꾸게 된 것은 열 다섯 살에 처음 연금술사의 조수로 들어갔을 때 부터였다. 둔한 빛의 금속이 불꽃을 사로잡아놓은 듯한 녹인 금으로 변화하는 그 신비로운 광경은 잔심부름이나 하고 있던 라페의 마음마저도 온통 사로잡았다. 처음 황금으로의 변성을 본 라페는 잠을 이루기가 힘들었었다. 덧창을 열고 올려다 본 밤하늘에서 빛나던 별들은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천천히 녹아들어 온 밤하늘을 찬란한 금으로 바꾸어 놓았었다.
그렇게나 꿈꾸던 황금 변성의 방법. 이번에는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확신이 있다. 라페는 열 다섯 살의 그가 그러했듯이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 채 소년처럼 두근거리는 가슴을 꾹 눌렀다.


사비르의 무덤을 돌보고 있는 사람은 금방이라도 죽어 쓰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늙어버린 노인이었다. '성지의 노인'이라는 제법 그럴싸해 보이는 호칭으로 불리는 이 노인은 연금술에 인생을 다 바쳤지만 성공하지 못한 자라는 이야기가 연금술사들 사이에 믿어지고 있었다. 노인은 어린 벙어리 소년 하나와 함께 잔돈푼을 받고 기도자들에게 허술한 식사를 준비해주는 일도 하고 있었다. 성지의 노인은 실패한 연금술사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다. 연금술사들은 그를 볼 때마다 불편한 기색을 하며 얼굴을 돌리곤 했다. 모두의 생각은 똑같았다. 나만큼은 저렇게 되지 않을 테다. 적어도 나만큼은.
죽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묽은 국물이 담겨있는 나무 그릇을 받아든 라페가 얼굴을 찌푸린 이유는 성지의 노인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늘까지 사흘 동안의 매일 밤, 옆자리에서 자고 있는 늙은이가 잠꼬대와 함께 뻗어오는 팔다리로 라페의 잠을 방해해온 탓이었다. 수면부족 때문에 생긴 두통에 미간을 구기며 묽은 죽을 훌훌 마시고 있으니 누군가 그의 어깨에 부딪쳤다. 돌아보니 바로 두통의 원인이었다. 다행히 죽을 옷에 쏟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작은 키지만 나이에 비해 다부진 체격을 가진 노인은 하얗고 곱슬거리는 수염 속에서 얼굴에 온통 주름을 만들며 빙그레 웃었다.
  "허, 이제 보니 숙소 옆자리의 이웃이 아닌가. 이거 미안하게 되었네."
옆자리의 노인은 다른 연금술사 두 명과 무언가 토론을 하며 라페를 스쳐 걸어갔다. 빌어먹을 늙은이. 깨어있을 때나 자고 있을 때나 하는 짓이 똑같구먼.
토론에 한창 열을 올리며 지나간 세 명의 연금술사는 라페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들은 모두 좋은 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에서도 근심과 가난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성공한 연금술사라면 사비르의 성지에 오래 머무르는 법이 없다. 현자 사비르의 성지는 아직 성공을 손에 넣지 못한 자들을 위한 공간인 것이다. 아마도 저 세 명은 연금술에 실패하며 평생을 허비해도 상관없을 정도의 재산을 가진 자들일 것이다. 마치 스승처럼. 라페는 나무 그릇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라페의 스승은 황금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아낸 '성공한 연금술사' 였다. 그러나 스승은 황금의 변성에는 별 가치를 두고 있지 않았다. 스승은 부모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았고, 그 재산은 회계사가 알아서 착실하게 불려놓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황금의 변성법은 연금술사로서의 명성을 유지시켜주는 것 이외에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스승은 여러 물질의 다른 변성법에 오히려 더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기적인 놈."
라페는 이를 악문 채 중얼거렸다. 그에게 있어 스승에 대한 회상은 불쾌감 그 자체였다. 그러나 한번 시작한 회상은 짧은 순간에 그 시절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했다. 딱딱한 나무 바닥에서 떨며 잠들던 밤. 스승만이 즐거워하던 여러 변성 실험을 하기 위해 끼니를 걸러가며 실험실에서 일을 해야 했던 나날들. 실험이 실패하자 술에 취해 가장 어린 조수인 라페를 두들겨 패던 스승의 모습. 스승은 끝내 라페가 실험실의 불을 꺼뜨렸다는 이유로 한푼도 주지 않고 매질을 해서 내쫓았다. 라페는 소리내지 않고 목안으로 웃었다. 불을 꺼뜨렸다는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때 그는 아무도 없는 실험실에서 스승의 연구노트를 몰래 훔쳐보다가 운 나쁘게 들켰던 것이었다. 기대와 달리 노트에 금의 변성법은 적혀있지 않았다.
  "욕심 많은 녀석 같으니. 그렇게나 부려먹고는."
처음 제자로 들어갔을 때, 스승은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었다. 네가 열심히만 하면 나의 비법을 하나하나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너 역시 한 사람 몫의 버젓한 연금술사가 되는 것이다. 스승은 처음부터 제자들에게 자신의 비법을 알려줄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라페는 흘끗 좋은 옷차림의 세 연금술사 쪽을 바라보았다. 세 연금술사는 아직도 목소리를 높여가며 열띤 토론 중이었다. 그들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라페는 죽그릇을 다시금 집어들었다. 처음부터 미지근했던 죽은 이제 차갑게 식어 불쾌한 맛을 입안 가득히 들어차게 했다. 아무래도 좋았다. 저들보다 먼저 황금변성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면. 라페는 마치 싸움을 하듯 차가운 죽을 억지로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현자 사비르는 이 곳으로 나를 불렀다. 분명히 그 꿈은 그런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 곳에 와서는 어떠한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일까. 라페는 슬슬 초조해지고 있었다. 그런 그의 감정을 부추기기라도 하듯 옆자리의 노인은 매일 밤 좋지 않은 잠버릇으로 수면을 방해했다. 희미한 꿈의 영상도 노인이 휘두르는 팔다리에 먼지처럼 부서지곤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잠을 깨버린 라페는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두운 숙소 안을 둘러보았다. 쭉 깔려있는 지저분한 잠자리들에는 빈자리가 제법 눈에 뜨였다. 짐이 옆에 있는 것을 보니 빈자리의 주인들은 아마도 밤새 기도를 드리는 자들인 모양이었다. 역시 잠버릇이 좋지 않는 노인을 피해 옮길만한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라페는 겉옷을 걸치고는 숙소를 빠져나왔다. 사비르의 무덤은 철야 기도자들의 촛불들이 내뿜는 어슴푸레한 빛에 감싸여 있었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구나."
무심히 중얼거리고는 스스로 한 말에 깜짝 놀랐다. 일주일. 그 동안 그는 현자 사비르의 영혼으로부터 어떠한 계시도 어떠한 꿈도 받지 못했다. 등뒤로부터 불안이 차가운 손을 뻗어 라페를 붙잡았다. 라페는 몸을 떨었다. 이내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 탓이 아니다. 꿈으로 계시를 받기 시작했으니 사비르는 역시 꿈으로 깨우침을 줄 것이다. 그 늙은이 때문이다. 그가 늘 나를 잠에서 깨우고 나의 꿈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어느새 라페는 사비르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어차피 자리로 돌아가 봤자 그놈의 부자 늙은이에게 잠을 방해받을 뿐이다. 라페는 피곤한 눈을 문지르고는 기도를 시작했다.
변성은 모든 존재들의 내부에 존재한다. 유충은 나비가 될 꿈을 꾸며, 작은 도토리는 커다란 나무가 될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모든 금속은 가장 완벽한 금속인 황금이 되고자 하는 꿈을 그 내부에 지니고 있다. 연금술사의 일은 금속이 황금이 되기 쉽도록 환경을 제공해주는 일이다. 나의 방법은 무엇이 틀려있던 걸까. 어디가 잘못되어 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 어깨에 손을 얹는 것을 느끼고 라페는 눈을 떴다. 아직 흐릿한 눈으로 돌아본 곳에는 그의 어린 아들이 서 있었다. 제대로 먹이지 못해 깡마르고 얼굴빛이 좋지 못한 아이. 어린 나이인데도 얼굴에는 벌써 근심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아이. 라페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려다가 멈추었다. 다시 보자 눈앞의 소년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성지의 벙어리 소년이었다.
벙어리 소년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들어 숙소를 가리켰다. 기도를 드리다가 그대로 깜빡 잠이 들은 라페를 깨운 모양이었다. 벙어리 소년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전했다는 듯 숙소 반대편에 있는 작고 낡은 천막을 향해 걸어갔다. 라페는 소년이 성지의 노인과 함께 기거하는 천막 안으로 모습을 감출 때까지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들의 모습이 자꾸만 머리 속에 떠올랐다.
8년 전, 아들이 태어났을 때도 여전히 그는 연금술에 빠져있었다. 가난한 살림과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을 걱정하는 아내의 옆에서 라페는 금을 만들어내기만 하면 자신들의 생활이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를 이야기했다. 실험은 곧 성공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아이도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다.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집, 훌륭한 선생에게서 받는 교육. 그때 아내에게 자신 있게 말했던 이야기들 중 그 어느것 하나도 아들에게 아직 해주지 못했다.


라페의 연금술사다운 자유로운 사고는 어느새 아들이 네 살 되던 해의 기억을 불러내고 있었다. 아내는 그때 크게 앓았었다. 겨우 회복되기는 했지만 생활에 무능력한 남편 대신 돈을 벌러 나갈 정도의 기운은 되찾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런데도 그날 아내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날품팔이를 나가야 했다. 집에 먹을 것이 완전히 떨어졌던 날이었다. 아내는 반쯤 울고 반쯤 화를 내면서 다리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라페 역시 그녀가 쏟아 붓고 간 말에 화를 내며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날 기대하던 변성의 첫 단계가 이루어졌어야 할 수은은 시치미를 떼고 그에게 조소를 보내고 있었다. 라페는 플라스크를 벽에 집어던지고는 유리가 부서져 바닥으로 쏟아지는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신을 저주하고 누구에게 향하는 것인지 모를 욕설을 내뱉고 결국은 엎드려 흐느끼고 말았다.
한참을 훌쩍이다가 고개를 들자, 연구실 문에 몸을 반쯤 숨긴 채 그를 바라보고 있는 어린 아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불쌍한 녀석. 저 불쌍한 녀석. 라페는 아들을 향해 팔을 벌렸다. 자신의 팔 안에 가련한 아들의 몸을 안으면 기운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들은 비슬비슬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아들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굳어있었다. 라페는 당황했다. 아들이 괴물이라도 본 표정으로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무서웠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다시 양팔을 벌리며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아들은, 등을 돌려, 달아나 버렸다.
연구실을 달려나와 아들을 쫓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활짝 열려진 현관문뿐이었다. 라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도 몹시 지쳐있었다. 조급함은 공포가 되어 그를 짓누르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아들을 위해, 아내를 위해, 황금이 가져올 영광과 부가 간절했다.


새벽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새벽 산의 냉기가 정상으로부터 흘러 내려와 차가운 옷자락으로 라페의 몸을 쓸었다. 어깨가 움츠러들고 몸이 떨렸다. 아들과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아들에게 친근한 말 한마디 건네기가 무서웠다. 손을 내밀면 아들이 다시 그때처럼 겁에 질린 표정이 되어 달아날까 봐 몹시 두려웠다. 그럴수록 떠오르는 것은 황금, 플라스크 안에 갇혀 요동치는 불꽃같은 금빛이었다. 황금을 손에 넣으면 아들과도 다시 친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황금 변성의 비법을 알아내어야 한다. 아내와 아들을 좋은 옷으로 감싸주고,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집, 화려한 침대에 재워주고 나면 그들에게 지금까지의 일들을 사과할 용기가 날지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황금은 힘, 그 자체의 다른 모습이니까.
스스로에게 한참을 중얼거렸지만 한기는 몸에서 떠날 줄 몰랐다. 새벽의 찬 공기 탓인지, 그의 몸 내부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끔찍한 한기가.


사비르의 성지에 온지 보름째 된 날이었다. 라페는 그날도 자신의 잠을 방해할 노인을 피해 반대쪽으로 한껏 몸을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문득, 어둠 속에서 눈이 떠졌다.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한밤중에 아무런 꿈도 꾸지 않은 채 누구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는데 잠에서 깨어나 맑은 정신으로 눈을 뜬다는 것이 늘 있는 일처럼 여겨졌다. 몸을 돌리자 숙소의 어두움 속에서 옆에 앉아있는 누군가의 윤곽이 눈에 뜨였다.
라페는 몸을 일으켰다. 옆에 앉아있는 그림자는 그를 향해 손짓을 했다. 아니, 어둠 속에서 손짓 따위가 눈에 보일 리 없었다. 그러나 라페는 그의 손짓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밖으로 걸어나온 후에야 그림자의 정체가 옆자리 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인은 아무 말 없이 한동안 걸었다. 라페가 뒤를 따라올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 노인의 뒷모습 전체에서 풍겨져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노인이 몸을 돌려 라페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자네 이름은 라페 이그니스지? 자네의 꿈, 자네의 생각. 삶에 대해 자네가 느끼고 있는 것들은 모두 잘 보았네."
라페는 미간을 찌푸렸다. 한번도 말한 적 없는 이름을 노인이 알고 있다는 점이나, 그의 수수께끼 같은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보름이 가까운 달을 등지고 선 노인의 얼굴이 너무나 밝게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노인의 둥근 얼굴이나 하얀 곱슬머리와 수염, 얼굴에 가득한 잔주름, 웃음을 띄운 눈까지 분명하게 보였다. 마치 노인의 몸 전체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처럼.
  "당신은… 어르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어르신이라. 그리 대단한 자는 아닐세. 나는 페츄어스라는 이름을 가진 자일 따름이네."
페츄어스. 그 이름은 라페도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쌍둥이 연금술의 신 셀레무스와 테네르의 종복들 중의 한 존재. 어이없는 장난이라고 치부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곳은 연금술사들의 성지였고, 노인의 몸에서 나오는 빛은 어떻게 보아도 진짜처럼 보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무릎을 꿇고 깨우침을 내려달라고 빌어야 하나? 페츄어스는 그의 갈등을 가로막듯이 말을 이었다.
  "자네의 꿈을 보기 위해서였지만, 꿈을 빼앗는 방법에 있어서 나의 장난이 좀 심했지. 매일 잠을 못 자고 피곤했을 텐데 잘 참았네."
그의 웃음 섞인 말에 라페는 얼굴을 붉혔다. 페츄어스에 의해 잠에서 깨워질 때마다 그에게 빈주먹을 휘둘러대었던 일이 떠올라서였다.
  "자네는 아직도 현자 사비르의 계시만을 원하는가?"
라페는 멍하니 페츄어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곧 그는 고개를 세게 저었다.
  "아니오. 누구의 계시여도 좋습니다. 황금의 변성법을 알기만 한다면. 17년 동안이나 꿈꾸어온 황금 변성의 첫 순간, 그 첫 번째 금빛을 볼 수만 있다면."
  "그런가…"
페츄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연금술사들은 아직도 사비르의 변성 만을 원한다네. 그러나, 사비르는 기실 인간일 따름이었단 말야. 그는 이미 죽었네. 몸은 썩어 흙으로 돌아갔고 영혼은 신들에게로 돌아갔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단 말일세."
  "사비르의… 현자 사비르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황금 변성의 시연을 해 보이는 꿈이…"
라페는 입을 벌린 채로 말을 멈추었다. 사비르의 꿈. 그것은 그렇게 믿었기 때문이었다. 사비르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 사비르의 얼굴을 알고 있을 리가 없다. 꿈속의 존재가 사비르인가? 페츄어스는 잔잔히 웃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꿈속의 연금술사는 페츄어스의 모습과 겹쳐지고 있었다.
  "연금술은 본디 신의 기술일세. 세계는 커다란 신의 플라스크이지. 연금술사들은 그것을 본떠 자신들의 작은 플라스크를 만들고 신들의 기술을 흉내내고 있을 뿐인거야. 사비르가 깨우친 것은 그중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 그가 살아있다 하더라도 인간이 인간에게 생각과 지식을 전하는 방법들로 그 작은 지식이나마 온전히 전달될 리가 없고."
흰 수염의 노인은 땅에 떨어져 있는 짧은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들었다.
  "신의 플라스크 안에서도 늘 변성이 일어나네. 인간들의 것 안에서 일어나는 일보다는 매우 거대하고, 더욱 근본적인 일이기는 하지. 인간 역시 변성의 한 대상일세. 이제,"
페츄어스는 라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네가 그 변성의 대상으로 선택된 것일세."
노인의 손에 들린 나뭇가지가 땅에 기호와 공식을 그려 넣었다. 나뭇가지는 페츄어스가 손을 움직이는대로 돌 위를 스쳐가며 희미한 빛을 내는 선을 그려내고 있었다.
  "…황금의 비법!"
라페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터져나왔다. 자신의 수많은 실험에 근접한, 그러나 틀렸던 부분이 어떤 곳인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공식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공식을 머리 속에 기억하는데 열중해있던 라페가 기쁨에 찬 얼굴로 페츄어스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겠군요. 이 공식만 있으면 나는…"
  "확신하지 말게. 같은 방식으로 실험해도 변성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는 종종 있기 마련일세. 그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변성에 성공할 수 있겠는가?"
  "해낼 수 있습니다. 나는 이 순간을 17년간이나 기다려왔습니다. 자그마치 17년이나!"
감동으로 떨리는 라페의 말이 끝나자마자 페츄어스는 나뭇가지를 던져버렸다. 그러자 땅에서 빛을 내고 있던 공식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페츄어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노인은 미간에 주름을 몇 개 만든 채로 고개를 저었다.
  "집착하지 말라. 라페 이그니스여. 내면을 바꾸어야 외부도 바꿀수 있는 법이니."
웃음기가 전혀 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던 페츄어스는 플라스크 안에서 시료가 녹아들 듯 달빛에 녹아들어, 이윽고 사라져버렸다. 라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달을 향해 양팔을 높이 들고 연금술의 쌍둥이 신에게 감사와 기원의 기도를 시작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길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곧 아이들은 참새 떼처럼 뽀르르 달아나 버렸다. 마을에서 그는 미치광이로 소문이 나 있었다. 아내와 아이는 팽개친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을 매일 끓이고 있는 사람. 창백한 얼굴을 한 채 하늘을 멀거니 올려다보다가 꺽꺽 울어버리는 사람. 그것이 마을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라페의 모습이었다.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곧 이 마을을 뜰 것이다. 온 거리에 습하고 퀴퀴한 가난의 냄새가 가득한 이 마을 따위는 이제 끝이다. 라페는 코웃음을 치고는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결혼하고 나서 내내 살아오던 집이 보이기 시작하자 라페는 얼굴을 찌푸렸다. 집은 완전히 삭아 무너져가고 있었다. 이런 집에서 잘도 살아왔군. 괜찮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곧 떠날 수 있어.
손에 든 꾸러미가 기분 좋게 흔들렸다. 여비에서 마지막 남은 잔돈으로 산 것이었다. 아들은 이 과자를 좋아했었다. 지금도 이걸 좋아할까. 문손잡이를 잡으려는 라페의 귀에 들린 것은 아들이 비명처럼 내지르는 소리였다.
  "아버지는 미쳤어!"
곧 이어 문 안쪽으로부터 아내의 꾸지람소리가 들리고 아들이 빼액 울기 시작했다. 라페는 손잡이에 어색하게 한 손을 댄 채로 굳어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잖아. 아버지는 미쳤다고!"
아들은 울음 섞인 소리로 계속 외치고 있었다. 라페의 손에서 꾸러미가 떨어졌다. 난데없이 한기가 느껴졌다. 햇볕이 이렇게나 내리쬐고 있는데도. 바람은 조금도 불고 있지 않은데도. 라페는 굳은 얼굴을 한 채로 문을 잡아뜯듯이 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아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뼛속으로부터 한기가 계속 밖으로 퍼져나오고 있었다. 몸이 벌벌 떨릴 정도였다.
라페는 아들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아들은 재빠르게 그에게서 멀어졌다. 아들의 눈에 떠올라 있는 감정은 예전에 보았던 그 두려움이 아니었다. 증오.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아들은 이미 그를 깊이 미워하고 있었다.
  "개자식! 어디든 나가서 죽어버려!"
아들의 입에서 터져나온 저주가 인지될 때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말의 의미가 머리 속에 명확한 의미를 갖게되자 라페는 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좁은 집안에서 달아날 곳이 많을 리가 없었다. 아들은 결국 실험실로 몰리고 말았다. 라페는 아들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걷어찼다. 그의 팔에 아내가 매달렸다. 라페, 이러지 말아요! 당신 아들인데, 제발! 라페는 거추장스럽게 팔에 매달린 것을 뿌리쳤다. 벽을 향해 떠밀었다. 다시 그의 주먹과 발길이 아들에게 떨어졌다. 아들의 비명. 비명. 비명. 비명소리는 어느 순간 끊겼다.


어느새 집안이 온통 어두워져 있었다. 얼마나 이렇게 앉아있었던 것일까. 라페는 네발로 기어 책상이 있을 위치로 다가갔다. 무언가 그의 손바닥을 찔렀다. 겨우 찾아낸 초에 불을 붙이고 나자 손을 찌른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었다. 플라스크가 산산조각이 나 바닥에 널려있었다. 그제야 자신의 온 몸도 온통 유리조각과 피로 범벅이 되어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라페는 깨어진 플라스크의 가장 큰 조각을 집어들었다.
  "이것으로 아주 오랫동안 많은 실험을 해왔었는데. 이제 겨우 진짜 비법을 알아냈는데, 깨어져버렸군. 깨어져버렸어… 새 것을 사야겠어. 지금은 이미 어둡고… 너무… 추우니까, 그래, 내일 날이 밝으면… 빨리 도구들을 사서… 황금을, 내 꿈을… 내 첫 번째 금빛을…"
지독한 한기. 현자 사비르의 성지에서 새벽에 느꼈던 그 끔찍한 한기가 몸을 휘감고 있었다. 너무 추워서 더 이상은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라페는 몸을 한껏 웅크린 채로 달빛 아래서 희미한 빛을 발하던 황금 변성의 공식을 떠올렸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천천히 번졌다. 웅성대는 소리와 함께 등을 든 몇 명의 사람들이 연구실을 들여다볼 때까지 그는 그렇게 웅크리고 앉아 미소짓고 있었다.


처형은 새벽 일찍 이루어지도록 정해졌다. 가정을 등지고 자신의 일에만 매달려 가산을 탕진하고 결국 처자식을 모두 죽인 라페는 어느새 사람들의 입에서 미쳐버린 살인자로 불리고 있었다. 최대한 조용하게, 사람들이 소동을 피우지 않도록 하려고 새벽에 처형을 준비한 영주의 생각과는 달리 상당한 수의 구경꾼들이 형이 집행될 광장에 모여있었다. 허름한 손수레에 실려 나온 라페의 눈은 납처럼 흐렸다. 그는 자신이 어떠한 입장에 처해 있는지 전혀 모르는 듯 했다. 한 여자가 혀를 차고는 동행에게 속삭였다.
  "어머나, 미치광이 살인자라니 정말 무섭군. 아내와 아이를 죽일 사람으로는 안 보이는데 말야."
라페의 얼굴을 노리고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퍼석 하고 깨져나간 상한 계란이 고약한 냄새를 풍겨내기 시작했다. 곧 얼굴을 찌푸리는 병사들과는 달리 라페의 표정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처음 던져진 상한 계란을 신호로 돌들이 라페를 향해 날아갔다. 처음에는 방관하던 병사들은 동료 중 하나가 겨냥이 빗나간 돌에 맞자 구경꾼들을 거칠게 제지하기 시작했다. 겨우 구경꾼들이 잠잠해진 틈을 타서 라페는 형 집행장소로 옮겨질 수 있었다.
라페의 처형이 이루어질 광장의 중앙은 뻥하니 사람들의 원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사람들이 주위에 이렇게나 많은데도 처형의 대상은 고립되어있는 존재였다. 매서운 표정을 한 사람들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한 병사의 손이 라페의 목을 움켜잡아 돌 위로 밀어붙였다. 웅성임이 차츰 사그라들었다.
차가운 돌 위에 턱을 길게 빼고 엎드린 라페의 흐릿한 눈에 순간 빛이 돌아왔다. 사람들의 벽을 넘어, 그 뒤의 지붕들을 넘어, 하늘이 금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라페의 눈이 다시금 흐려졌다. 이번에는 눈물 때문이었다. 태양이 온 하늘에 뿌린 금빛은 살인자의 눈물마저도 찬란한 금빛으로 물들였다.
  "첫 번째 금빛. 저 금빛…."
라페의 떨리는 목소리는 채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목 안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 그의 말을 끊기게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도끼가 그의 목으로 떨어졌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변성에 성공할 수 있겠는가?



                                                        -fin.
mi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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