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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 단편 바람 부는 날

2007.06.30 13:5306.30

readingfantasy.pe.kr
원작 : 억수씨(www.uksoo.com)



아직은 그렇게 덥지 않은 초여름의 어느 날. 사람들이 간간히 왔다갔다 하는 번화가의 까페, 늘 앉던 자리에 송이와 나는 앉았다.
아직은 특별할 것 없는 까페의 풍경을, 신기하다는 듯한 송이의 목소리가 발랄하게 깨뜨린다.
“4년 동안 어떻게 사귀니?”
영준이와 만난 지 4년이 되어가는 기념일이 가까워오면서 많이 들었던 질문이기에, 이젠 오히려 지겹기까지 했다. 아이스 모카에 꽂아넣은 빨대에 입술을 가져가며 건조하게 대꾸한다.
“학교 다니고, 밥 먹다보니… 4년 만인가?”
송이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조금 가까이 들이민다.
“아직도 그렇게 좋아?”
커피를 빨아올려 목구멍으로 넘기려는 순간, 송이의 질문이 목젖에 가볍게 걸린다. 대수로울 것 없는 물음이었지만 낯설었다. 단순한 호기심일까. 나도 모르게 망설이는 동안 대답은 약간 어색할 정도로 늦게 튀어나왔다.
“………응. 좋아.”
망설임의 원인. 내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는 사실.
나, 끌리는 사람이 있다.
무지하게, 매우, very much.
나의 망설임을 또 한 번 자각하는 순간, 나는 하얗게 바래고, 주위는 어두워진다.
새하얗게 채색된 내 자신만이 어두워진 세상 속에서 민망할 정도로 밝게 드러나는 듯한 느낌.
누군가 내 마음 속 비밀을 알아챌 것 같은 착각.
말 그대로 그 것은 내 착각에 불과했고, 덜렁거리는 송이도 다소 늦게 나온 내 대답에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 투였다. 생글생글 밝은 표정으로 감탄하듯이 말을 잇는다.
“정말 장난 아니다. 4년이라니… 그래도 너희 정말 잘 어울려. 영준이도, 너도. 진짜. 너희 둘 다 1학년 때 과에서 킹카, 퀸카였잖아?”
킹카, 퀸카? 어쩐지 케케묵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비로소 밝아진 현실이 내 가슴께에 묵직하게 다가오는 기분이다.
“그랬나?”
“헤헤, 이젠 뭐 냄새나는 올드 커플일 뿐이지만.“
혀를 귀엽게 빼물며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거리는 송이. 언제봐도 고양이 같은, 앙큼하고 발랄한 내 친구. 덕분에 나도 조금은 천연덕스럽게 검지손가락으로 송이를 찌르듯 놀리며 대꾸해줄 수 있었다.
“하! 그러는 댁도 늙어가셩~!”
그래, 누구든 알아선 좋을 것 없는 일이다. 그냥 나만 알고 있으면 돼. 아무도 몰라. 이 떨림, 이 두근거림.
그 때, 남자 특유의 굵으면서도 맑은 목소리가 내 귀를 가볍게 흔든다.
“송이 안뇽.”
“오- 영쭌! 왔어?”
군대까지 다녀온 어엿한 대한민국 남자라고 하기엔 너무도 맑고 고운 생김새. 소년 같은 눈망울과 해사한 미소가 태양처럼 예쁘게 빛난다. “밥 먹었어?” 송이에게 물으며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 움직임만으로도, 부드럽게 녹아내린 그림자가 사방에 흔적을 남길 것만 같다.  
4년간 영준이를 만났다. 영준이는 따뜻한 웃음이 있고, 그 웃음으로 항상 나를 바라봐주었다. 4년 동안 매일 같이 나를 아껴주었다.
영준이는, 정말, 소중하다.
송이가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투정부리듯이 영준이를 향해 똑같은 질문을 조금 바꾸어 던진다.
“너희, 목요일에 4주년이지?”
계집애, 뭘 자꾸 저렇게 확인하려고 드는 것일까.
의자에 뒤통수를 기대고 느른하게 앉은 영준이가 뺨에 홍조를 피우며 벌쭉 웃어보인다.
“앙.”
“으~ 부럽다, 부러워~”
송이가 한 손에 턱을 괸 채 약간 진절머리난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4년이라는 시간은,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단지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다소 지겹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걸까? 확실히 송이의 태도는 우리가 함께 했던 4년의 시간을 부러워한다기보다는 “정말 4년을 같이 보냈어? 지겹지 않든?” 하고 확인하는 것 같아서 나는 다소 기분이 묘해졌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내 곁에서, 어린아이처럼 미소를 띤 채 “부럽쥐~ 부럽쥐~” 만 연발하고 있는, 나의, 영준이. 한숨.
그 때 턱을 괸 채로 주위를 향해 눈망울을 비잉 돌리던 송이가 다소 높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쟤, 교 아냐?”
교? 머리 한구석이 망치에 얻어맞은 듯 어지럽다. 그가 왜 여기에.
영준이도 눈을 둥그렇게 뜬 채 한 마디 거든다. “어, 진짜다.”
야자수처럼 사방으로 거만하게 뻗친 레게 머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교의 반항적이고 날카로운 이목구비를 채 눈에 담기도 전에, 온 몸의 신경이 교에게로 집중된다. 오감이 교를 향해 몰려들면서, 그를 검게 물들인다.
교 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쟤 휴학했다고 하지 않았나?”
영준이의 목소리가 귓바퀴를 돌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대신 미친 듯이 고동치는 심장을 느낀다.난 교에게 끌리고 있다. 4년이 무색할만큼.
“볼일이라도 있으신갑지~ 바람둥이 자식!”
코웃음치는 듯한 송이의 마지막 한 마디가 나를 잠깐 일깨웠다. 그 순간 또 한 번 하얗게 바래어져버린 스스로가 느껴졌다. 하얀 나, 그리고 검게 물든 교. 그 외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간간히, 영준이와 송이가 주고 받는 목소리만 의미 없는 산울림처럼 내 시야를 어지럽게 맴돌았다.
“풋, 송이, 너. 쟤 좋아하잖아.”
“뭐, 뭐래! 자자, 다들 기념일 선물은 샀어?”
“펫, 말돌리시긴.”
두 사람이 뭐라고 하건 말건, 내 심장은 격렬하게 마음을 향해 속삭인다.
만나고 싶어. 정말.
영준이에게는 느낄 수 없는 위험한 매력. 아름답게 꽃핀 선인장 같은 남자.
영준아. 미안.

* * *
내 맘대로 불러낸 약속. 시간 맞춰 올 것이란 생각은 물론 안 했지만, 교는 꽤 많이 늦었다.
“미안, 늦었지?”
씨익 웃어보이는 교. 영준이의 부드럽고 안온한 미소와는 종류부터가 다르다. 날카롭고 시원한, 한 줄기 바람 같은 웃음.
“아, 아니, 나도 지…….”
채 말을 끝맺지 못했다. 교의 키가 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영준이에게서 느끼지 못했던 남성성이 시커멓게 눈 앞을 물들이는 느낌. 그 앞에서 나는 또다시 순백의 여자가 된다.
“근데 무슨 일로 불러냈냐?”
껄렁한 태도로 묻는 교. 그조차도 매혹적이다.
미리 준비해두었던 이유 덕택에,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 속에서도 이번엔 비교적 수월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남자 악세사리를 사려는데, 내가 잘 몰라서…….”
영준이를 팔았다.
교가 고개를 갸웃한다.
“음, 근데 좀 뜬금없다.”
아무려면 좋아.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마치 데이트를 하듯이, 교의 성큼하니 크고 마른 몸에 내 몸을 기대고 거리를 걷는다. 다를 것 없는 거리, 다를 것 없는 일상이 교 때문에 새롭게 느껴진다. 피부에 닿는 공기가 한 알 한 알 생동감 있게, 짜릿하게 느껴진다.
달라, 모든 것이.
교, 너 때문에.
“……버린 거야?”
생각에 잠겨 미처 못 들었다.
“…어, 어?” 바보 같아 보이지 않길. 제발.
“벌써 사버린 거냐고. 겨우 한 군데에서…….”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이며 불퉁대는 교. 그랬다. 사실 영준이 선물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팔아먹기 좋은 핑계였을 뿐이니까. 뭘 샀는지도 모르게, 포장된 선물을 아무렇게나 손가방 안에 쑤셔박는다. “으, 응. 이거 맘에 들어.” 교의 눈이 흥미와 호기심으로 반짝이며 내 손길을 좇는 것이 느껴졌다. 변명처럼 들릴까.
더 민망해지기 전에, 얼른 준비했던 대사를 내놓는다.
“너, 시간 있니? 밥 먹고 영화 보자. 고마워서 말야.”
교가 입술을 비틀며 웃는다.
“나 한 일도 없는데? 뭐 할 일도 없지만, 쏘~ 는 거지?”
당연히 얻어먹겠다는 의도가 담긴 억양조차 밉지 않다. 이 것도 교야, 하는 생각에 또다시 가슴이 통탕거린다. 겨우 한 마디, 아무렇지도 않게 “바보.” 한 마디를 던져주곤 아무 음식점이나 들어갔다. 붉어진 얼굴, 들키지 않았어야 할텐데.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식 돈까스 체인점. 수북하게 담은, 돈까스의 기름기 도는 냄새에 교가 빙글거리며 내뱉는, 특유의 껄렁한 “요요요요욜~” 따위의 감탄사 앞에서―

까맣게 잊는다.
영준이도.
내일이 그와의 4주년이라는 것도.

교다.
교와 함께 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익숙한 어둠.
검게 물든 교 전체가 나를 감싸안는 듯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영화관이었다.
“뭐 볼래?”
교의 물음에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본다. 어떤 영화를 봐야할까.
“이거 보자.”
“아, 눈물젖은 고양이?”
뭐 이런 걸 보자고 하냐는 듯, 교의 말투가 심드렁하다. 그렇지만, 난간에 매달려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영화 포스터 속의 고양이가 마치 교에게 매달려 있는 내 모습 같아서, 어쩐지 그 영활 보고 싶었다. 영화 취향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교는 벌써부터 스낵 코너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팝콘 먹을래?” 지갑을 열며 묻자 교가 비틀린 웃음을 지어보인다. “아니, 나쵸.” 나쵸를 사서 손에 쥐어주자 교의 입가가 조금 더 벙긋이 벌어진다. 어딘지 모르게 영준이를 연상시키는 것 같아서 약간 기분이 묘했다.
상영관 안으로 들어서자 정말로 어둠이 내 눈 앞을 물들인다.
익숙하다. 교와 같은 색깔이니까.
하지만 정신이 없다. 토할 것 같이 울렁거리는 기분. 나도 모르게 의자에 앉자마자 교의 어깨에 기대어버렸다. 교는 내가 어깨에 기대건 말건 상관없이 아삭거리며 나쵸를 씹고 있다. 그의 입 안에 부스러지는 과자 파편 소리를 따라 내 심장이 엉클어지듯 쥐어짜이고, 제멋대로 일그러지며 뛰고 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뺨으로 교의 어깨를 느끼며, 나도 모르게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아무렇게나 되어버려도 괜찮을 것 같다― 고 뺨으로 우물거리는 소리가, 그의 어깨에 전해졌을까.
들리진 않았을 것 같다. 단지 내 마음 속에만. 그렇게.

* * *

“하하, 재밌었다.”
교가 낄낄거리면서 저만치 앞서갔다. 입에 사탕처럼 문 담배에 불도 안 붙인 채 하얀 꽁무니를 까불댄다. 교와 닿는 건, 교와 가까운 건 뭐든지 움직이게 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나도 조금 더 움직였다. 교와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교의 등뒤에 서서, 그의 옷자락에 손을 뻗는다.잡는다.
팔뚝 부분을 잡힌 교가 생뚱맞다는 듯이 몸을 살짝 비틀어 돌렸다.
나도 모르게 낮게, 그러나 내 딴에는 제법 단호하게 말했다.
“술 사줘.”
한참 나를 내려다보던 교가 눈가에 주름을 잡으며 피식댄다. 주머니를 뒤지더니, 뚜껑을 뜯은 자일리톨 껌을 꺼내서 눈 앞에 흔들어보인다.
“나 껌밖에 없지 말입니다.”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부터 나온다. 교가 빙글대면서 묻는다.
“씹을래?”
껌을 씹으면서 맥주와 과자 몇 봉지를 샀다. 어둠에 젖기 시작하는 공원 풍경에 몸을 맡겨놓고, 벤치에 앉아 술을 마신다. 밤바람이 알코올에 달아오른 살갗에 스쳤다.
반쯤 마신 맥주캔을 양손으로 어루만지며, 교가 나를 돌아보았다.
“너네 기념일 덕에 내가 호강한다, 야.”
영준이와의 기념일이란 말 때문일까, 아니면 교와 함께 마시는 술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비웃듯이 날카롭게 대꾸했다.
“하! 4년이라니. 징그럽다. 하하.”
“뭐, 그래도 좋지. 서로 선물도 주고 받구 말야. 왠지 부러운데?”
맥주 몇 모금을 넘긴 교가 다시 말을 잇는다.
“근데 말야… 너 나 좋아하냐?”
그 순간, 가로등 불빛이 우리 주위를 밝힌다.

어느 틈에 이토록 어두워져 있었을까.
새삼 밤바람이 차갑게 느껴져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차가운 침묵.

가로등 불빛 아래서 너무나 명확히 우리가 드러난다.
하얗게 바랜 나,
검게 물든 교.

“응.”
침묵을 깬 건 나였다.
“무지 많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교가 비죽이 웃는다. 손톱처럼 열린 입 안에 장난기를 한가득 베어물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달아올라, 뜨거운 숨을 섞어 입을 열었다.
“…스……해줘.”
침을 삼키는 바람에 앞글자가 잘려 묘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교는 잘 알아들었다. 손에 든 맥주 캔을 내려놓고 천천히 나에게로 다가온다. 가로등 불빛이 덩어리째 뭉쳐 내게로 다가오는 기분, 세상이 좁아진다.
검고 하얀 손이 서로를 붙잡는다.

우리들은, 키스했다.
자일리톨 맛.

빛과 어둠이 서로 뒤섞이는 기분.
아무 것도 감각할 수 없었다.
단지 부드러운 교의 혀와 그 맛만이 내 온 몸으로 스며드는 기분.
그러나 곧 여운을 남기며 멀어진다.
교의 혀와 내 혀 사이로, 가늘고 길게 이어진 맑은 침이

달 았 다.


“후우… 안 되겠다.”
교의 한 마디에 잊혀졌던 세상이 돌아왔다. 뒤죽박죽된 채로.
그러나 곧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손 혼자 허공을 붙잡고 있었다.
교의 검은 손은 간 곳이 없다.
아니, 검게 물든 교 자체가 간 곳이 없다.
대신 껄렁하게 생긴 낯선 남자애 하나가 삐죽삐죽 레게 머리를 한 채 나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약간 붉게 달아오른 얼굴. 그 것이 교임을 알아채기에 약간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 혼란과 상관없이, 교는 혼자 지껄였다.
“네가 이렇게 덤비는데도 안 되겠단 말야. …너 송이랑 친하지?”
아연해진다. 이 순간 송이가 나오는 이유가 뭘까.
교가 피식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로 속삭였다.
“나 송이랑 사귀어. 아깝지만서도. 이런건 까딱하면 귀찮아지거든.”
말을 마친 교는 여유 있게 가버렸다. 나는 그를 붙잡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너무 낯설어서. 내가 알던 교가 아니었다. 검게 물든, 아무 것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인 교가 아니었다.
섬세하게 자른 아스파라거스 같은 삐침머리에, 붉게 물든 뺨을 하고, 초우커에 수수한 면티를 입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히피 같은 남자. 교면서도, 교가 아니다. 낯설었다.
어디로 시선을 돌려야 할지 몰라 눈을 내리깔았다. 두 개의 껌이 빠져나간 자일리톨 봉지가 눈에 들어온다.
문득 자기 전에, 이 껌을 씹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단데…… 라고 홀로 중얼거리며.

적막했다.
혼자 남았어.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교가 내려놓은 빈 맥주 캔이 찌그러진 채 바람이 미는대로 땡그랑 땡그랑 아스팔트에 몸을 굴렸다.
교의 흔적이 남았던 입술을 살짝 엄지손가락 끝으로 살짝 쓸어본다. 끈적하고,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입술. 그 끝에서 나도 모르게 가볍게 웃음이 터졌다.
정말 아무렇게나 되어버린 내 스스로에 대한 비웃음일까?
다리를 쭈욱 뻗은 채 팔을 등 뒤로 돌리고 하늘을 향해 크게 웃는다. 시원하게.
웃음 끝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난다.

나, 정말 교를 좋아한 걸까?
영준이는 사랑하고 있는 걸까?
정말 아무 것도 모르게 되어버렸다.
알 수 없는 허탈감.

송이랑 사귄다구? 내가 웃겼겠다. 아하하. 진짜. 내가 웃겼겠다.

……괜찮아. 난 정말 오랫동안 마음껏 해보고 싶었는지 몰라.
그냥 상관없이. 무엇이든.

기집애. 응큼하긴. 말도 없이.

* * *

날씨가 맑았고, 작은 종이백 하나를 건네주는 영준이의 인사는 그보다 더 밝았다.
“자~ 4주년 축하드려요. 이건 선물.”
괜찮아보일까.
“영준아아아아~ 헤헤헤헷.”
“……에엑?! 머, 머리 잘랐어?!”
“응. 모닝컷 할인.”
“치이~ 안 잘라도 이쁜데.”
영준이가 입술을 삐죽거린다. 그러면서도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이, 여자가 머리를 자르면 심경의 변화가 있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모양이다. 사실은 그냥 자르고 싶었을 뿐인데.
정말 모르겠다. 나 같은 사람. 혹은 나 같은 사랑.
그냥, 오늘은, 세상이 하얗다.
영준이의 하얀 티셔츠가 무척이나 어울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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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에게 억수씨, 라는 분의 만화를 소개받았습니다.

단편 만화 바람부는 날에 완전히 꽂혀서,
나도 모르게 글로 옮겨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허락은 받았지만,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간결하고 명확한 만화에 비해, 제 글은 지지부진하군요.

날이 더워요. 모두들 몸 건강하세요.

* 원작 만화를 보시고 싶은 분들을 위한 링크는..할 줄 모릅니다. ㅡㅡ;;
www.uksoo.com으로 가셔서, 원고들 - 기타만화 에 가시면 있어요.
홈페이지가 깔끔해서 찾기 쉬우실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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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니 군 님은 현재 강원도 강릉에서 군복무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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