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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도은 입맞춤 퍼레이드

2022.11.01 00:0011.01

입맞춤 퍼레이드

박도은

 

지금부터 나의 남자친구를 소개해볼까 한다. 이름은 김태훈, 나랑 스물 아홉 동갑내기이다. 우리는 어느 봄날 한 독서모임에서 만났다. 우리 이야기의 시작은 약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만난 그 날, 태훈과 나는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열리는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일곱 명 정도 되는 모임이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을 가지고 와서 책을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안녕하세요, 스물 아홉 살 김태훈입니다.”

긴장한 상태로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하며 회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는 태훈의 첫인상은 꽤나 귀여웠다. 금방 퇴근하고 온 듯 말쑥한 감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태훈의 뒤를 이어 내가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름은 강은정이구요. 나이는 태훈님이랑 같은 스물 아홉 살입니다.”

태훈은 내가 인사말을 끝내자 외마디 추임새를 넣고서는 우리가 동갑이라며 좋아했다. 나도 태훈에게 맞장구를 치며 반가워했다. 그 자리에서 동갑은 우리뿐이었기 때문이다. 내 다음 차례 회원들의 소개까지 모두 끝난 후, 우리는 각자가 읽는 책을 꺼내들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가져온 책은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라는 시집이었다.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하는 사랑이 얼마나 열정적이고 순수할 수 있는지 시를 통해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언젠가는 해보고 싶었다. 시집을 회원들에게 이야기하며 사랑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자기소개 때와 마찬가지로 태훈의 바로 뒤가 나의 순서였다. 나는 시집을 가방에서 꺼내들고 다른 회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시간을 기다렸다. 어떤 말을 할까 고민하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뭉게뭉게 피어올리고 있었다.

어느새 나의 바로 앞, 태훈의 차례가 다가왔다. 태훈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마른 헛기침을 큼큼 하며 책 한권을 표지가 보이게 들었다. 

“엄청 감성적인 분이신가보네요.”
“저 시집 좋아요. 태훈님 이야기 빨리 들어보고 싶어요.”

회원들은 태훈이 들고 있는 책을 보고는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기대에 가득 부푼 말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책의 제목을 보고 태훈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태훈의 책은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옆자리에서 내가 대화시간을 기다리며 손에 꼭 쥐고 있던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었다.

“누구나 한번쯤 사랑에 아파볼 수 있잖아요. 저도 그런 기억이 있거든요. 아직도 그 따뜻한 사랑의 추억 속에 살기도 해요. 그 기억이 저의 마음에 깊게 뿌리내려 어떤 특징을 만들어내기도 하구요.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면 저의 첫사랑에 대한 잔상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되게 많이 사랑했던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집이었습니다.”

태훈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면서도 꽤나 사연 있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듯 회원들도 태훈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듯했다. 시집에 대한 회원들과의 단란한 대화가 조금 길게 이어졌다. 독서모임을 몇 번 더 해서 조금 더 친해지면 언젠가 다시 사랑이라는 주제가 나왔을 때 저마다 꽤 멋진 스토리가 있는 사랑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알찼던 태훈의 시간이 끝난 후 나의 차례가 되었다. 나는 태훈의 것과 표지 디자인은 달랐지만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을 사람들에게 보이게 꺼내들었다. 사람들은 바로 앞 순서인 태훈과 같은 책이라며 신기해했다. 둘이 짜고 왔냐고 놀리는 사람도 있었다. 태훈은 소탈하게 웃으며 박수를 치더니 이내 눈을 반짝이며 나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내용이 겹쳐 별로 할 이야기가 없을 줄 알았는데 입을 열자 나만의 생각을 꽤나 많이 말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내 마음에 깊숙이 상처를 새길 만한 사랑을 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시로부터 용기를 내서 사랑에 임하라는 응원을 받은 기분이었기에 나는 내 방식대로 태훈과는 조금 달리 느낀 바를 전달했다.

사랑에 대한 추억이나 정의는 저마다 다른 것 같다. 같은 시집을 보고서도 다른 생각을 떠올렸으니 말이다. 태훈은 시를 통해 열렬히 사랑했던 지난 사랑을 떠올렸고 나는 앞으로 만날 낯설고 새로운 사람을 떠올렸다. 시를 지었던 작가는 시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태훈과 나의 생각 중 정답은 있었을까. 같은 책을 읽고서도 다르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독서모임의 하나의 묘미라고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모임을 마치고 카페를 나왔다. 밤공기가 시원해서 크게 들이마시고 싶었다. 실내에 오래 있고나면 언제나 이렇게 바깥바람을 쐬고 싶어진다. 다른 회원들이 인사하며 떠나는 와중에 까페 앞에 그대로 서서 까만 하늘에 뜬 달을 새삼스레 예쁘다고 느끼며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옆을 보니 같은 시집을 들고 왔던 태훈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태훈은 돌아본 나를 향해 싱긋 미소짓더니 배에 한 손을 올리고서는 말했다.

“배고픈데 어디서 맛있는 거 먹고 가지 않을래요?”

나는 태훈의 제안을 고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태훈과는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다.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건 꽤나 유대감을 준다. 감상까지 같았다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나는 태훈의 감상에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래서 태훈이라는 사람에 대한 거리감이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는 나란히 뚜벅뚜벅 걸어가 근처 분식집에 들어가서 김밥과 떡볶이를 먹었다. 그리고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소소하지만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날을 시작으로 독서모임이 끝난 후 태훈이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을 하고 내가 수락을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느 순간이 되자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모임 후의 둘만의 시간을 당연시하게 되었다. 우리는 만나면 가지고 온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첫 날의 시집 사건 이후로는 같은 책을 들고 오는 경우는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읽지 않은 새로운 책을 태훈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태훈은 어떤 것을 볼 때 감상을 깊게 하고 그것을 예쁘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사랑에 상처를 받아봤다고는 하지만 삶에 있어 긍정적이고 어떤 것을 사랑하는 것에 열심히 임했으며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았다. 재치 있지만 계산적이지는 않았다. 나는 맑은 햇살 같은 태훈의 마음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독서모임이 없는 날이었지만 태훈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함께 보고 싶은 영화가 있다며 시간을 내 달라고 했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라는 영화였다. 십 수년 된 영화였지만 특별한 계기로 재상영을 한다고 했다. 나는 어릴 때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본 기억이 있었다. 뚜렷하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감명 깊게 본 영화에는 틀림없었다. 나는 태훈과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 회사를 나섰다.

태훈은 그 날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무엇을 떠올리며 봤던 것일까. 죽은 뒤 바람이 되어서라도 사랑하는 사람 곁에 있다는 설정이 그의 마음의 어떤 것을 건드렸던 것 같다. 태훈은 그런 절절한 사랑을 원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바람이라도 좋으니 곁에 머물렀으면 하는 사랑이 있었던 걸까. 태훈은 깨끗한 밝음 속에서도 왠지 모를 그늘이 있는, 더 알아가야 할 사람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자 태훈은 언제 울었냐는 듯 해사한 미소를 보이며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그렇게 손을 잡고 봄꽃이 잔뜩 핀 거리를 걸었다. 걸으면서 태훈은 내게 정식으로 만나보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이미 태훈이 많이 좋아졌기에 나의 대답은 하나였다. 나는 그 날 태훈에게서 처음으로 입맞춤을 받았다. 태훈과는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고 싶었다.

태훈과의 연애는 순탄하게 흘러갔다. 성격이 잘 맞았고 대화도 잘 통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많이 좋아했다. 그런데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내게 단 한 가지 의문이 생겨났다. ‘태훈은 왜 그렇게 입맞춤을 좋아하는가.’ 였다. 이 의문처럼 태훈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바로 시시때때로 입맞춤하는 것이다. 키스가 아니었다. 뽀뽀, 말 그대로 입술만 부딪히는 입맞춤이었다. 태훈은 나와 입을 맞출 때면 언제나 입술을 오므려서 꾹 붙였다가 끝날 때 크게 벌렸다. 그러면서 엄청 뿌듯하고 개운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꼬마 아이가 엄마에게 뽀뽀를 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태훈을 좋아했기에 이런 입맞춤조차 싫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태훈과의 입맞춤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세 가지 장소가 있다. 첫 번째 장소는 놀이공원이다. 태훈과 나는 놀이공원의 기구들을 타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날을 잡고 방문한 우리는 시시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다 탔다. 그 와중에도 태훈은 틈만 나면 입맞춤을 했다. 나랑 입술이 맞닿아 있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 자이로드롭 꼭대기에서 입맞춤을 하고 싶었다는데 안전바에 몸이 묶여 그럴 수 없었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저녁이 되어 우리는 관람차에 탔다. 눈앞에 펼쳐진 야경이 예뻤다. 둘만 있어서 또 입맞춤을 하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태훈은 별 움직임 없이 바깥 야경만 물끄러미 봤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예쁘지?”하고 물었다. 나는 미소를 지은 채 끄덕였다. 태훈은 마치 그리워하는 어떤 것을 기억하는 마냥 아련한 눈빛으로 가까워진 하늘을 바라봤다. 나는 개구쟁이처럼 내게 입맞춤을 하는 태훈이 보고 싶어져 태훈의 맞은편자리에서 옆자리로 옮겼다. 태훈은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이마에 살짝 입술을 댔다. 그 순간에 나는 태훈의 눈 속에서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슬픔을 처음 봤던 것 같다. 나는 내 입술을 태훈의 입술에 가져다대고 얕게 입맞춤해주었다. 태훈은 나의 행동에 놀란듯했지만 다시 미소를 입가에 머금고는 짧은 입맞춤을 계속 해 주었다. 하다보니 장난처럼 입술이 아니라 온 얼굴에 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태훈은 역시 입맞춤을 좋아했다.

두 번째 장소는 베이킹 원데이 클래스였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케이크를 만드는 수업이었다. 태훈은 모두가 여자인 클래스에서 혼자 길쭉하게 서서 열심히 케이크를 만들었다. 우리가 만드는 케이크는 딸기가 잔뜩 든 생크림 케이크였다. 선생님이 딸기를 너무 많이 넣으면 케이크가 무너질 수 있으니 적당히 넣으라고 했는데도 태훈은 심혈을 기울이며 딸기를 많이 넣고 있었다. 그래서 두껍고 뚱뚱한 케이크가 만들어졌다. 그러자 보람된 기쁨을 나누고자 함이었는지 태훈은 사람들이 보는 와중에도 내 얼굴을 잡고 쪽 하고 입맞춤을 해버렸다. 사실 태훈은 케이크를 만드는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와중에도 내게 몇 번 입맞춤을 했다. 마스크 위로 하는 입맞춤은 로맨틱하다고는 볼 수 있겠으나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같은 클래스를 듣는 아주머니들 앞에서 대놓고 입맞춤을 하는 것이 미안하고 민망하기도 했다. 태훈은 왜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입맞춤 하는 것을 좋아할까.

세 번째 장소는 스냅사진을 찍는 장소였다. 여기서 우리는 입맞춤하는 사진만 잔뜩 찍은 것 같다. 태훈은 사진을 찍는 내내 나를 놓지 않고 뽀뽀세례를 했다. 이 날은 태훈이 정말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입맞춤을 하고 입을 시원하게 떼면서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 웃기기도 하고 그렇게 좋나 싶어서 귀엽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내내 입맞춤만 한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조금 문제가 있다고 봤다. 태훈은 나를 좋아하는 것일까 입맞춤을 좋아하는 것일까.

점점 나는 태훈의 뽀뽀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주변에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이야기를 꺼낸 곳은 친구들과의 모임이었다. 저마다 만나는 남자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모두 불만을 토로하고는 있었지만 대체로 행복해보였다. 그렇게 이야기 차례가 돌아 턱을 괴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차례가 되었다.

“은정아, 너 왜 그렇게 표정이 안 좋아? 남자친구랑 사이 나빠졌어?”
“아니, 그건 아니고. 남자친구가 좀 이상한 점이 있어서.”
“뭔데?”

이상한 점이라는 이야기에 친구들은 눈을 번뜩이며 내게 집중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털어놓기를 망설이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

“남자친구가 뽀뽀하는 것을 너무 좋아해.”
“그게 이상한거야?”
“아무 장소에서나 누가 보든 말든 막 해.”
“너무 사랑하면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키스를 잘 안 하고 입맞춤만 해. 중요한 순간에도 그래.”
“그건 좀 이상하다.”

나는 친구들에게 태훈과의 입맞춤 에피소드를 생각나는대로 모조리 이야기했다.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따금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한마디씩 했다. “뭔가 이상한데?”

나는 어떻게 하면 내 불편한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털어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친구들의 이상해하는 표정을 보고 있으니 기분은 더 가라앉았다. 태훈은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그냥 입맞춤을 좋아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게 되는 것인데 말이다.

“은정아, 네 남자친구 이상해. 헤어져.”
“맞아. 왜 뽀뽀만 그렇게 해대는거래? 물어봐.”
“물어보고 헤어져.”

친구들은 의견을 모은 것 같았다. 헤어지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나는 태훈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입맞춤을 좋아한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헤어지라니. 친구들이 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의 고민은 아무런 해소도 되지 않은 채 친구들과의 모임이 끝났다. 다른 고민해소 창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평소라면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을 곳으로 갔다. 타로 점을 보는 곳이었다.

“우리 여성분이 여기는 어떻게 오셨나?”
“남자친구가 입맞춤을 너무 좋아해요.”
“그게 왜 문제가 되지?”
“좀 과하게 좋아해서요.”
“자 그럼 타로를 보자.”

점술사는 타로카드를 테이블에 깔았다. 그리고 카드를 몇 장 집어냈다. 나는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타로카드를 펴니 알록달록했다. 해석은 할 줄 몰랐지만 카드 한 장은 눈에 확 들어왔다. ‘DEATH’ 카드였다. 점술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헤어져. 둘이 만나서 좋을 것이 없어.”
“저희는 사이가 정말 좋은데요?”

사이가 좋다거나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해도 점술사는 단호했다. 우리가 만나는 것이 탐탁지 않다는 것이다. 역시나 나는 태훈과 헤어질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마음만 무거워진 채로 타로집을 나왔다. 
집에 돌아가니 엄마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엄마의 등 뒤로 가서 엄마를 안았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엄마는 일하는데 왜 그러느냐며 핀잔을 줬다. 나는 잔뜩 찌푸려진 마음을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엄마는 폭 안고 있는 내 손을 만지작거리며 되물었다.

“태훈이가 너한테 입맞춤을 많이 하는게 너는 싫으니?”

나는 깜짝 놀라 몸을 떼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냐 엄마. 나는 태훈이가 하는 입맞춤도 좋아.”
“그럼 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거야?”
“평범이랑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는 별 고민을 다 한다면서 웃었다. 

“평범하면 더 행복한거야? 그것보다 평범이라는게 모호하잖아. 네가 좋고 태훈이도 좋고 주변에 피해만 안주면 되는거 아닐까? 네가 안 행복하면 태훈이한테 말을 해봐. 태훈이도 거기에 대해 어떤 답을 주겠지. 엄마라면 아빠가 입맞춤을 많이 해주면 마냥 좋을 것 같은데 은정이는 그게 고민이라니 우리도 참 다르다.”

엄마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태훈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니 나의 의문점에 대해 태훈에게 물어보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태훈이 내게 입맞춤을 많이 한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입맞춤도 태훈의 개성 같은 것이라 생각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태훈을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왜 입맞춤을 그렇게 좋아하는지는 알고 싶었다. 이것이 내 결론이었다.

태훈과의 데이트 날, 나는 굳은 마음을 먹고 태훈을 만났다. 태훈은 나의 호기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페에 나와 마주보고 앉아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태훈아, 나 궁금한 거 있어.”
“뭔데?”
“우리 입맞춤에 대한 거야.”

나의 비장한 표정이 귀엽다는 듯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여 나를 바라보는 태훈은 어디한번 말해보라는 듯 눈을 깜빡였다.

“태훈이 너는 왜 그렇게 입맞춤을 좋아해?”

태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의외의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았다.

“연애할 때 이런 질문 받은 적 없었어?”
“응. 아무도 안 물어보던데. 네가 처음이야.”

이런 질문이 태훈에게 처음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태훈의 입맞춤은 분명 특이하긴 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안 물어보고 그냥 나를 떠났지. 물어봐줬으면 이유를 말했을텐데.”

태훈은 고개를 숙인 채로 커피를 빨대로 휘휘 저었다. 섭섭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라도 했다는 듯이 말이다. 언젠가 봤던 얼굴의 그늘이 다시 드리워진 것 같았다. 나는 태훈의 밝음이 작아지는 것은 정말 싫었다. 그래서 말을 다시 건넸다.

“태훈아, 나는 네가 입맞춤하는 것도 좋아. 하지만 왜 입맞춤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유가 있다면 알고 싶어.”

태훈은 생각이 많아 보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눈을 깊게 몇 번 깜빡였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그러는거야. 내 첫사랑 우리 엄마… 많이 그리워.”


꼬마 태훈이 큰 창문 밖으로 시선이 빼앗겨 유리창에 딱 붙어있었다. 그 옆 침대에는 태훈의 엄마가 등을 기대고 앉아 얇은 책을 펴 조용히 읽고 있었다. 태훈은 볼을 유리창에 붙여 밖을 뚫어지게 관찰하고는 엄마에게로 돌아오기 위해 엄마의 침대로 올라왔다. 

“엄마, 바깥 날씨가 정말 좋아. 집 앞 공원에 사람들이 잔뜩 나와서 햇살을 즐기고 있어.”

태훈의 엄마는 읽던 책을 덮고는 태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태훈이도 나가고 싶어?”
“응! 나 비눗방울 불고 싶어. 비눗방울 너무 예쁘잖아.”
“태훈아 그럼 지금 옷 입어. 엄마랑 나가자.”
“정말? 신난다!”

태훈은 엄마에게 다가가 엄마의 입술에 귀여운 뽀뽀를 했다. 그러자 엄마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태훈의 양 볼을 잡고 얼굴 곳곳에 장난스럽게 입맞춤을 하기 시작했다. 태훈은 웃으면서도 몸부림을 쳐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태훈을 안은 엄마의 양 팔의 힘을 이겨내는 것은 어린 태훈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태훈은 벗어나는 것을 포기하고는 자신 또한 엄마에게 뽀뽀세례를 하기 시작했다. 태훈이 시원하게 뽀뽀를 쪽 하고 할 때마다 태훈의 엄마는 “아유, 우리 똥강아지, 예뻐.” 라고 말하며 태훈을 귀여워해줬다. 태훈은 이런 엄마와의 시간을 항상 소중하게 생각했다.

비눗방울을 들고 집 앞 공원으로 나간 태훈과 엄마는 공원 전체를 감싸는 맑은 햇살 아래에서 푸른 풀과 다채로운 꽃이 우거진 길을 힘껏 달렸다. 오색 빛을 머금은 투명한 비눗방울을 불면 비눗방울 속으로 두 사람의 풍경이 담겼다. 태훈이 만면에 익살스러운 웃음이 가득한 채로 작은 비눗방울 도구를 엄마에게 내밀며 말했다.

“엄마도 비눗방울 불어봐!”

그러자 엄마는 태훈과 눈을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고서는 난처하다는 듯 눈썹을 아래로 내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태훈아, 엄마는 숨을 쉬는 게 다른 사람보다 조금 힘들어서 예쁜 비눗방울을 만드는 태훈이를 보기만 해야할 것 같아. 그래도 태훈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너무 행복해서 다른 것은 바라지 않게 돼.”

태훈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던 엄마는 태훈의 볼에 작게 입맞춤을 해주었다. 비눗방울이 태훈과 엄마의 주위에서 동그란 모양을 한 채로 머물다가 바람의 움직임에 맞춰 천천히 떠올라갔다. 태훈은 예쁜 비눗방울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 것이 아쉬워 새로운 비눗방울을 불고 또 불었다. 비눗방울로 바라본 태훈의 세상에서는 엄마가 항상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엄마는 비눗방울을 불던 날이 지나고 머지않아 건강의 문제로 인해 침대에서 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코와 입에는 항상 호흡기를 끼고 있어야 했다. 태훈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의 침대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태훈은 엄마의 품에 안기려고 하며 독서를 방해했다. 그러면 엄마는 책을 내려놓고 태훈을 꼭 안아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엄마, 뽀뽀해줘.”

종종 태훈은 이렇게 말하고는 했다. 시원시원한 엄마의 입맞춤이 그리웠던 것이다. 입술을 맞댈 수 없는 엄마는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는 “지금의 엄마를 봐.” 라고 말하며 태훈을 달랬다. 대신 가리키던 검지손가락을 옮겨 자신의 뺨을 콕콕 찌르고는 미소를 지으며 태훈을 바라봤다. 그러면 태훈은 엄마의 얼굴을 꼭 잡고 뺨에 입술을 꾹 눌렀다 뗐다. 그럴 때면 엄마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태훈은 딱따구리처럼 입맞춤을 계속 하면서 엄마가 활짝 웃는 모습을 마음 가득히 담아갔다. 엄마가 끝내 약해진 몸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서 눈을 감던 날까지 태훈은 계속 그렇게 했다. 엄마에게 전한 마지막 입맞춤은 이별을 감내하려고 노력하던 뜨거운 눈물과 함께였다. 

입맞춤은 태훈에게 엄마의 사랑을 떠올리게 하고 자신의 사랑을 상대에게 전하는 따뜻한 행위였다. 그러나 엄마와의 이별 이후 태훈은 입맞춤을 할 곳이 없었다. 혹여나 연인이 생겨 자신도 모르게 입맞춤을 자주 하게 되면 상대는 말없이 태훈을 떠났다. 다른 이유가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태훈 또한 자신의 입맞춤 버릇 때문에 연인이 곁을 떠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애틋함이 너무 커 입맞춤하는 버릇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은정을 만나고 은정이 아무 말 없이 태훈의 입맞춤을 받아주고 진심으로 좋아해줄 때 태훈은 그제서야 자신을 떠난 엄마를 떠올리지 않고 상대를 사랑하며 입맞춤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태훈은 엄마를 사랑하던 그 때 자신의 모습처럼 온 마음 가득히 은정을 사랑하고 싶었다.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그래서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 입맞춤으로 넘쳐흐를 것 같은 사랑의 마음을 전했다.


“세상에… 미안해, 태훈아.”

나는 태훈이 털어놓은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해져 눈물을 글썽이지 않을 수 없었다. 태훈을 오해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이 미안했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미리 물어봤으면 고민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정아, 너는 이런 내가 이해돼?”
“사랑에 대한 기억은 저마다 다르잖아. 태훈이 네가 절실히 했던 사랑이 지금의 너를 만든거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널 이해할 수 있어.”

태훈은 입술에 얕은 미소를 머금은 채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는 작은 웃음을 터뜨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우는거야?”
“조금만 이러고 있을게.”

마주보고 앉은 채로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이던 태훈은 과연 무엇을 생각했기에 두 뺨에 흘러나올만큼 차오르는 눈물을 만났던 것일까. 자신의 사연을 들어주는 상대가 있어서 기뻤던 것일까, 아니면 영원히 이해받지 못할 것 같은 부분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격한 것일까. 나는 태훈을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온 마음 바쳐 사랑했던 첫사랑을 사랑에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보내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했던 그였다. 보내지 못한 사랑에 얼마나 오랜 시간을 가슴앓이하며 지내왔을 것인가. 아파도 소중해서 떨쳐낼 수 없는 사랑이 있음을 태훈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나는 무거운 사랑을 안고 살아가는 태훈을 나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있었다.

“은정아, 너를 만나서 이제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카페를 나서 손을 잡고 걷다가 나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태훈이 문득 이야기했다. 나는 태훈을 만나서 이미 행복했다. 그래서 태훈의 얼굴을 덥썩 잡았다.

“태훈아,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자는 말이야. 알겠지?”

일상적이지 않지만 태훈에게 내가 먼저 입맞춤을 했다. 태훈이 잘하는 시원한 입맞춤이었다. 둔탁하게 쪽 하고 입술이 붙었다가 떨어질 때 이름 모를 쾌감을 느꼈다. 마음까지 뻥 뚫리는 것 같았다. 태훈은 그대로 얼굴을 맞댄 채로 씨익 웃더니 조용하게 한마디 말을 건네고는 우리가 잘 하지 않았던 것을 했다.

 
“사랑해.”

키스였다.

태훈의 입맞춤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고 나서도 우리는 변함없이 계속 만났고, 지금은 어느새 만난 지 2년 정도가 되었다. 우리는 잘 다투는 일도 없이 서로를 배려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비행기 너무 오랜만에 타서 어색해.”
“나도. 근데 설레지 않아?”

우리는 기념일을 맞아 제주도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행은 언제나 사람을 즐겁게 만든다. 태훈과 나는 여행명소와 맛집을 잔뜩 찾아두고서 제주도로 떠났다. 가장 기대가 되는 곳은 유채꽃 농원이웠다. 사진이 예쁘게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스냅 사진을 찍을 계획인데 이번에도 입맞춤하는 사진만 찍게 될까봐 걱정은 됐다. 태훈은 여전히 입맞춤을 좋아하고 우리의 사진 속 태훈의 입술은 언제나 쉴 틈이 없다. 집에서 사진을 모아놓고 보며 우리의 시그니처 포즈에 그만 크게 웃음이 터져 눈물을 찔끔 흘렸던 적도 있다.
유채꽃 농원에 도착해 사진사를 만났다. 그대로 찍으면 될 줄 알았는데 사진사가 옷을 갈아입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챙겨온 옷이 없는데요?”
“우리가 알아서 다 빌려줘요. 입기만 하면 돼요.”

사진사는 나와 태훈을 농원에 있는 가게 안으로 밀어 넣었다. 들어가니 의상을 담당하는 직원이 옷을 건넸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태훈을 바라보려고 돌아봤더니 말도 없이 이미 탈의실로 들어간 뒤였다. 나는 별 수 없이 직원이 준 흰색 미니 드레스를 입었다. 태훈은 나보다는 편한 차림이었지만 역시 턱시도 비스무레한 옷을 입고 나왔다. 

“태훈아, 이거 다 네가 예약한거야?”
“응.”
“진짜?”

화들짝 놀라 어깨를 찰싹찰싹 치는데 태훈은 아프지도 않은지 가만히 있었다. 태훈을 더 심문해야 하는데 사진사가 우리를 불렀다. 태훈은 검지손가락을 들어 쉿 하고 입술 중앙에 대더니 내 손을 잡아 카메라 앞으로 이끌었다.

유채꽃은 만개해서 땅에 노란 파도가 이는 듯했다. 우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올 수 있는 촬영장소에 섰다. 사진사가 “시작하세요!” 라고 외쳤다.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가만히 있는데 갑자기 주변에서 환호와 박수소리가 들렸다. 옆을 돌아보니 태훈이 장미가 가득 피어있는 꽃다발을 들고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는 내게 웃음 가득한 맑은 얼굴을 보여줬다.

“은정아, 뽀뽀 마음껏 하게 해 줘서 고마워. 넌 단 한번도 상처주지 않은 내 유일한 사랑이야.”
“결혼하자는 이야기야?”
“나랑 결혼해줄래?”

나는 꽃을 받고는 태훈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끄덕이며 태훈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포근하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보면서 박수를 치던 사진사는 다시 카메라 앞에 서서 우리를 향해 외쳤다.

“이제 진짜 사진 찍어야하니까 포즈 취해봐요.”

나와 태훈은 피어오르는 기쁨을 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이제는 말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떤 포즈가 우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지 이미 우리가 만난 시간동안 몇 번이고 확인했던 것이다. 나는 마주보고서 태훈에게 말했다.

“우리 연애는 입맞춤 퍼레이드라고 해도 될 법해.”

태훈은 그 말에 한쪽 눈썹을 들어올리더니 다시 입을 크게 벌려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싫어?”

나는 태훈의 두 손을 잡은 채 내 입술을 태훈의 입술에 가져다대면서 대답했다.

“아니, 좋아.”

노랗고 파랗고 눈이 부시게 환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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