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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엄고아 별의 기억

2022.06.01 00:0006.01

별의 기억

강엄고아

 

현관문을 열고 전실로 들어간다. 현관문이 닫히자 전실에선 ‘우웅’으로 시작해서 ‘윙-’하는 시원한 소리가 나며 정화기가 작동한다. 나는 정화 작업이 끝날 때까지 서서 기다린다. 집안으로 통하는 투명한 중문을 통해 아내가 웅가리 엘드를 안고 거실을 가로질러 다가오는 모습이 보인다. 잠깐의 정화 작업이 끝나고 중문이 열린다. 내가 거실로 들어서자 아내가 한 팔로 가볍게 안아주며 퇴근한 나를 맞이한다. 동시에 아내의 품에 안겨 있던 엘드는 나를 향해 팔을 뻗는다. 나도 한 팔은 아내를 가볍게 안아 주고 다른 팔로 엘드를 받아 안는다. 서너 살 정도 되는 아이만 한 엘드는 꽤 묵직하다. 아내는 엘드를 나에게 맡긴 채 부엌으로 간다. 나는 아내에게 건강을 생각해서 무거운 애완동물을 안고 다니는 것 좀 그만두라고 한마디 하려다 그냥 욕실로 향한다.

 

“정화기 소음이 점점 커지고 있어요.”

나는 식사를 하며 아내에게 말한다.

“소음이 약간 커지긴 했지만 일부러 고칠 정도는 아닌 거 같아요. 어차피 이 집에서 살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굳이 고치느라 돈 들이고,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나는 정화기의 소음이 커지면서 기능도 떨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어 말했지만, 아내는 곧 정화기 따윈 필요 없는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므로 쓸모없어질 것에 공들이고 싶지 않아 한다. 그보다는 키우던 웅가리를 맡아 줄 사람을 구하는 게 아내에게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나는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든다.

몇 년 전 이 별에 와서 처음 알았다. 아내의 폐가 약하다는 걸. 아내나 아내의 가족들조차도 알지 못했던 일이다. 이 별의 대기 구성 물질과 우리 별의 대기 구성 물질은 약간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호흡에 큰 지장은 없다. 물론 그 약간의 차이 때문에 장기간 이곳의 대기에 노출됐을 경우 폐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극소수였으므로 정부에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공공건물에 공기정화장치를 의무화할 것을 법제화했다. 폐가 약한 사람들은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외출 시에는 공기 정화 기능이 있는 마스크를 착용할 것을 권고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극소수에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처음 이 별에 왔을 때 아내는 공기가 좀 답답하다고 했었다. 나도 아내도 적응하면 곧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 별에 온 지 한 달쯤 되어 아내가 호흡곤란을 일으켰고, 아내가 입원한 며칠 사이 나는 부랴부랴 집에 공기 정화시설을 갖춘 전실을 마련했다.

그게 13년 전이다. 오래된 공기정화기의 기능이 떨어져 아내의 몸에 이상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하는 내 마음을 아내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엘드를 키우겠다는 사람이 오늘도 없어요.”

역시나 아내의 머릿속은 웅가리 생각으로 꽉 차있다. 이 별의 토착동물인 웅가리는 다른 종에 비해 유난히 손가락의 활용도가 높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동물을 ‘웅가리’라고 명명했다. 웅가리는 손가락이라는 뜻을 가진 고대어이다. 우리 집에서 애완용으로 키우고 있는 웅가리인 엘드도 손가락을 잘 쓴다. 엘드의 손가락 사용은 회사 연구실에서 키우는 웅가리들에 비하면 천재적이라 할 만하다. 사람보다 한 개 적고 크기도 앙증맞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이 별을 처음 발견한 탐사팀은 국제연합의 원칙대로 먼저 문명을 가진 생명체를 찾았다. 그러나 문명의 흔적은 있었지만 그걸 만들고 영위할 지능을 가진 생명체는 발견하지 못했다. 지능이 높아 보이는 동물들을 몇 종(種) 포획해 여러 가지 연구를 해 보았다. 그들 중 가장 지능이 높은 종은 웅가리였다. 하지만 웅가리도 문명의 주인이 될 만한 지능은 갖고 있지 않았다. 나도 이 별에 와서 많은 웅가리들을 관찰하고 해부해 보면서 얻은 결론은 웅가리의 엄지손가락에 붙어있는 엄지맞섬근(opponens pollicis muscle : 엄지손가락과 다른 손가락들과의 맞섬을 일으키는 작용을 하는 근육)이 지금과 조금만 달랐어도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문명을 발달시킬 수 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내가 이 별에 온 지 3년쯤 되었을 때 화석이 하나 발견되었다. 뼈만 남아있던 그 화석에 근육 추적 장치를 연결해 보니 손가락 근육이 웅가리보다 더 섬세하게 발달해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화석의 주인공이 살아서 지금까지 후손이 이어져 왔다면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문명을 이루었을지도 몰랐다.

그들은 어디로 간 걸까?

아무튼 지금 이 별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동물은 웅가리다. 연구실의 웅가리들은 케이지 하나에 한 마리씩 넣어놓는데, 케이지는 서로 소통할 수 없도록 벽이 막혀있다. 이 별에 연구실이 세워진 초창기 기록을 보면 사방이 철창으로 된 케이지를 다닥다닥 붙여 놓았었다. 처음 철창 안에 들어간 녀석들은 두려움과 경계심으로 옆 칸의 다른 웅가리와 닿기라도 할까 봐 케이지 한 가운데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그러던 녀석들이 시간이 지나고 환경에 익숙해지자 철창 사이로 팔을 뻗어 옆 칸의 웅가리에게 상처를 입히기 시작했다. 먹이 때문인가 싶어 먹이를 늘여 주었지만 살만 더 찔 뿐, 서로에 대한 공격성은 줄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공격성 강한 개체와 순한 개체가 반반이라는 것이었다. 연구실에선 공격적인 개체들을 안락사 시키고 순한 녀석들만 연구용으로 키웠다. 그러다 차츰 웅가리에 대한 연구가 발전해 지금은 성질 사나운 녀석이 발견되어도 안락사가 아닌 뇌 시술로 간단히 해결한다. 뇌 시술은 지능이 약간 떨어진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순한 성격으로 만드는 데는 탁월한 효과가 있다. 어차피 연구용 웅가리는 지능이 좋을 필요도 없다.

초창기엔 연구용 웅가리를 확보하기 위해 야생의 것들을 잡아 순한 것만 선별했으나 10년쯤 지나자 연구실에서 번식시킨 개체가 전체의 반에 이르렀다. 시간이 더 지나 내가 이 별에 부임했던 13년 전엔 힘들여 야생에서 잡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오히려 연구실에서 태어난 웅가리가 너무 많아 일부를 도태시켜야 할 형편이 되었다. 그렇게 도태될 뻔한 녀석들 중 하나가 우리 엘드다.

고향에서 키우던 애완동물은 이곳으로 데리고 올 수 없었다. 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 국제연합이 행성간 동물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애완용으로 키우던 외래 동물이 의도적이거나 실수로 야생화 되어 그 지역 생태계를 교란시킨 경우가 여러 나라의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생태계 보존의 의미도 있고, 다른 행성의 동물에게서 어떤 알려지지 않은 병원균이 묻어와 퍼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도 행성간 동물 이동은 금지되어야 한다. 다만 연구 목적으로 허가된 동물은 철저한 관리를 한다는 조건 하에 예외로 규정된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내는 고향 별에서 여러 종의 애완동물들을 키웠다. 나야 아내가 좋아하면 그만이므로 집안에 애완동물 몇 마리 뛰어다니는 것쯤은 상관 없다. 그러나 행성간 동물 이동 금지법 때문에 고향에서 키우던 애완동물들을 모두 자식들에게 맡기고 우리 부부만 단출하게 와야 했다. 이 별에서 한동안 적적하게 지내던 우리는 내가 일하는 연구소에서 안락사 당할 뻔한 엘드를 데려오면서 활기를 찾았다. 웅가리는 높은 지능 덕분에 훈련도 잘 되고 제가 예쁨 받는 법을 금세 터득한다. 연구소에서 태어난 웅가리의 용도를 애완용으로 변경하고, 연구소 밖으로 반출하기 위한 몇 가지 조치만 하면 누구나 웅가리를 애완용으로 키울 수 있다. 엘드도 그 몇 가지 조치인 중성화 수술과 공격성을 줄이는 뇌 시술, 유전자 등록과 위치추적기 삽입, 세균 번식을 막기 위한 모근 제거 등을 하고 데려왔다. 어떤 사람들은 웅가리를 취향에 맞게 성형하기도 하지만 우리 부부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최고라는 생각에 그런 수술은 하지 않았다. 엘드는 그렇게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와 몇 년을 함께 했다. 새끼 땐 이 별의 동물에 대한 수의학 수준이 지금보다 낮아 잔병치례도 많았고 죽을 고비도 두세 번 넘겼지만 엘드는 잘 이겨주었다. 그리고 폐 질환 때문에 집에서만 일하게 된 아내에게 엘드는 유일한 말벗이 되었다. 물론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지만…….

우리 부부는 퇴직하고 나서도 이 별에 정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폐가 이 별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 순간, 퇴직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엘드가 늙어 죽을 때까지 만이라도 더 머물자던 아내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의사의 권고에 엘드를 키워줄 사람을 찾고 떠나기로 했다. 내 퇴직일은 가까워 오는데 엘드를 맡길 곳을 찾는 일은 전혀 진척이 없다. 덕분에 아내의 머릿속에서 나는 점점 더 엘드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신세다.

아내는 한숨을 쉰다. 나는 걱정하는 아내에게 별 도움도 안 되는 말을 해 준다.

“엘드의 나이 때문에 키우려는 사람이 없는지도 몰라요.”

엘드는 우리 별의 공전주기로 따지면 12살이 넘었다. 이 별의 공전주기로 계산하면 약 31살 쯤 되는 것 같다.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나이보다는 뉴스에 흉흉한 기사가 자꾸 나와서 사람들이 웅가리를 더 기피하는 거 같아요.”

아내가 상심 가득한 얼굴로 말한다.

“흉흉한 기사라니요?”

나는 오늘 정신없이 바빠 뉴스 하나 열어 볼 틈도 없었다.

“웅가리가 주인을 공격하는 기사요.”

그런 기사라면 몇 달 전부터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오늘 뭔가 새로운 기사가 났나 보다. 나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의문 가득한 눈빛을 아내에게 보냈다.

“오늘 아침엔 늦잠 자던 주인을 애완용 웅가리가 공격하고 도망쳤대요. 부엌에서 쓰는 레이저커터로 주인 눈을 찔렀대요.”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다. 웅가리가 지능이 다른 종에 비해 높긴 하지만 레이저커터를 조작할 줄이야……. 아마 그 녀석은 평소 주인이 요리하는 모습을 유심히 봐온 듯하다. 우리 엘드도 가정에서 다양한 사물과 상황에 노출된 채 자라서 그런지 연구실에서 케이지에 갇혀 자란 웅가리들에 비하면 상당히 똑똑한 편이다. 그래도 뇌에 시술을 한 덕에 전혀 공격성을 띠진 않는다. 그런데 그 녀석은 어쩌다 주인을 공격한 걸까?

“정말 끔찍하죠. 그 기사 나고부터 웅가리를 애완동물류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웅가리를 애완동물류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사람들’ 그들은 야생동물을 야생으로 돌려보내자는 동물권 옹호론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환경운동가나 박애주의자는 더욱 아니다. 그저 웅가리의 높은 지능에 뭔지 모를 두려움을 갖고 있어서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지 않는 것뿐이다. 다른 야생동물에 대해선 애완동물로 삼건 말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게 그 증거다. 엘드에게 썩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며 식사를 마친 우리는 각자 취미생활을 하며 저녁 시간을 보내고 침대에 눕는다. 내 취미는 엘드와 놀아주기이다. 엘드는 연구실에서 늘 뇌를 긴장시키고 관찰해야 하는 대상으로서의 웅가리가 아니라 내 심신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피로회복제 역할을 하는 웅가리이다. 하지만 오늘은 연구실에서보다 더 바짝 정신을 차리고 엘드를 관찰하며 놀아주었다. 더 피곤해졌다.

침대에 누워 TV를 켠 아내는 웅가리 관련 뉴스를 섭렵한다. 나는 옆에서 뉴스를 보다가 깜빡깜빡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웅가리 관련 뉴스에 웬 유적이람?”

그러다 아내의 혼잣말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버린다. 뉴스에선 폐허가 된 유적들을 보여주며 어떤 용도로 이용했다는 설명도 하나하나 덧붙인다. 지금은 사라진 이 별의 원주민들은 무선 통신을 이용할 만큼 문명이 발달했고, 우리만큼이나 다양한 삶을 살았다는 게 보인다. 뉴스의 후반부에 어느 연구팀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냈다는 자막과 함께 연구팀의 수장이 인터뷰를 한다. 아내의 혼잣말에 잠이 깨 얼결에 뉴스를 시청하던 나는 자막대로 충격에 빠진다. 옆에 있던 아내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이 별을 떠났거나 멸종했다고 알려진 문명의 주인은 다름 아닌 웅가리라는 연구 결과다. 뉴스에선 그런 연구 결과를 뒷받침할 증거들이 속속 제시된다. 정말인 것 같다. 주거 용도의 건물로 추측되는 유적은 내부가 웅가리 성체가 활동하기 좋은 크기이다. 우리가 발견했던 희미해진 그림들 속 원주민의 모습은 웅가리와 비슷하지만 확연히 달랐는데, 그것이 오랜 세월 웅가리가 야생 생활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결과라며 진화의 과정도 설명한다. 도대체 웅가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그들은 찬란한 문명을 버리고 숲에 들어가 야생동물이 된 걸까?

침대 위, 우리 부부의 발치에 누워 잠든 엘드를 바라본다. 매일 우리에게 먹을 것을 달라 애원하고, 손톱만 한 간식 하나에도 기뻐 팔딱팔딱 뛰고, 우리의 눈치를 살펴 놀아줄 타이밍을 정확히 맞추는 저 동물이 문명인의 후손이라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당장 일어나 방을 따로 마련해 주고, 교육을 시키고, 사람처럼 대해야 할 것만 같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엘드가 우리에게 사람의 말로 또박또박 인사하는 게 아닐까?

나와 한 침대 위에 있는 엘드가 멀게 느껴진다.

 

이 연구 결과는 큰 파란을 일으킨다. 찬란한 문명을 누리던 지성체에서 언어마저도 잃어버린 야생동물로 전락한 웅가리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웅가리의 숨어있던 지능이 되살아나 다시 이 별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 사람들을 공격할 거라는 근거 없는 공포에 쌓인 사람들도 있다. 동정이든 공포든 웅가리를 키우기가 꺼림직하다는 이유로 애완용으로 키우던 웅가리를 연구소에 다시 반납하는 이들도 많았다. 모든 애완동물은 유전자정보를 등록하고, 위치추적 장치를 삽입하기 때문에 함부로 유기할 수 없다. 그렇다고 키울 수 없게 되거나 키우기 싫어진 애완동물을 처분할 곳 마저도 없으면, 사람들이 사고사로 위장해 죽이거나 학대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입양한 곳에 반납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 웅가리는 우리 연구소를 통해서만 입양이 가능하다. 그래서 연구소는 갑자기 늘어난 웅가리들로 사육장이 포화상태가 될 지경이다. 웅가리를 계속 키워도 안전할지를 묻는 문의도 쇄도해 업무에 지장이 생긴다.

요리용 레이저커터로 주인의 눈을 찌르고 도망쳤다던 웅가리가 잡히고 그 행적이 드러나자 이젠 대부분의 사람들이 웅가리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힌다. 집 주변의 방범용 카메라 영상을 분석한 결과 코코링이라는 이름의 그 웅가리는 사건이 일어나기 한 달쯤 전부터 야생 웅가리와 교류가 있었다. 주인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야생 웅가리와 코코링이 서로 마주 보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는데, 같은 종끼리 뭔가 끌리는 게 있나 보다 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했다. 사고 당일 코코링은 집을 벗어나 곧바로 그 야생 웅가리를 만나 숲으로 들어갔다. 숲엔 카메라가 없기 때문에 위치추적 장치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 후 하루 동안 코코링의 위치추적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위치추적 장치가 다시 작동하자 비로소 경찰은 코코링을 잡을 수 있었다. 경찰은 코코링을 잡을 당시 여러 마리의 야생 웅가리가 함께 있었다고 했다. 코코링을 보호하려는 웅가리들의 저항이 거세 포획 과정에서 상당수를 죽일 수밖에 없었고, 도망친 웅가리들은 숲으로 깊이 들어갔는데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다. 곧바로 경찰들이 스캐너를 동원해 그 일대를 뒤졌지만 한 마리도 스캐너에 잡히지 않았다. 또한 경찰들은 야생 웅가리들이 서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이러한 보도가 나가자 사람들의 공포감은 극에 달한다.

‘연구실에서 나고 자란 웅가리를 꾀어낼 만큼 영악하고, 스캐너도 잡지 못할 만큼 잘 숨고, 레이저커터를 조작할 만큼 지능이 높다’라는 사실에 근거한 공포는 그래도 이해할 만하다. 웅가리가 깊은 땅속에 대단위 군락을 이루고 살 것이라는 추측부터 머지않은 미래에 첨단무기로 무장한 웅가리 대군이 공격해올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상상까지 사람들의 이성을 좀먹고 커가는 공포는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기 시작한다.

결국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군 장비가 동원된 대대적인 수색이 시작된다. 경찰이 들고 다니는 개인용 스캐너와는 비교도 안 되는 군용 장비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깊이 땅을 파고 들어가 살고 있는 웅가리들의 집단을 몇 개 찾아낸다. 찾아낸 야생 웅가리들을 모두 잡아 임시로 급하게 마련된 사육시설에 넣는다. 군 수색대는 웅가리의 서식지에서 이상한 것들을 발견했다.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문명의 흔적이다. 그것을 분석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동원된다. 웅가리를 비롯한 이 별의 생물을 연구하는 나도 젊은 연구원들과 함께 참여한다.

 


 

“그래서요?”

저녁식사를 마친 아내는 내 옆에 앉아 질문을 퍼붓는다. 지난 며칠 동안 여러 분야의 연구원들이 모여 실시했던 웅가리에 관한 연구들은 현재 상황에서 대단히 민감한 부분이라 아내에게 조차도 말해 줄 수 있는 게 한정적이다. 나는 최대한 선을 지키며 아내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웅가리가 살던 굴은 인공으로 만든 것인데 땅속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두껍고 견고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어요. 개인용 스캐너가 감지 못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요. 크기도 사람이 들어가도 될 만큼 넓고 높았고요. 여러 가지 용도의 실(室)들이 있고, 전자장치도 많았어요. 나야 그쪽 분야는 잘 모르지만, 그 장치들을 살펴본 전문가는 폐쇄된 공간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설비를 컨트롤 하는 장치와 외부의 침입을 막는 방어 장비도 있고, 무기로 보이는 것들도 많다고 했어요. 결론은 방공호 같은 게 아닐까 한답니다.”

“방공호요? 큰 전쟁이 있었나요?”

아내는 눈을 반짝인다. 아내의 호기심에 나는 밤새 시달릴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한다. 그때 발밑에서 놀던 엘드가 아내의 다리를 끌어안는다. 안아달라는 표현이다. 아내는 엘드를 품에 안는다. 엘드는 아내의 품에서 곧 잠이 든다.

“당신은 웅가리가 두렵지 않아요? 그 무거운 엘드를 여전히 사랑스럽게 안아주는군요.”

제발 아내가 그 무거운 녀석을 그만 안아줬으면 좋겠다. 폐도 약한데 관절까지 약해지면 큰일이다.

“나도 길에서 웅가리를 만나면 무서울 거 같아요. 나갈 일이 없어서 다행이지만요. 하지만 우리 엘드는 다른 웅가리와는 다르잖아요. 12년 넘게 키웠지만 지금껏 사람을 적대시한 적 없었어요. 훈련도 잘돼 있고, 무엇보다도 연구소에서 나온 이후로 한 번도 다른 웅가리를 본 적이 없어요.”

엘드에 대한 아내의 사랑과 신뢰는 무한하다. 나는 잠든 엘드를 보며 뭔지 모를 패배감을 느낀다.

“지금껏 방공호의 기계장치들을 사용한 건가요?”

아내는 다시 야생 웅가리 이야기로 돌아온다.

“아니요. 그 장치들은 사용 안 한 지 너무 오래돼서 이젠 작동하는지조차 의문스러웠어요. 쌓인 먼지가 수천 년은 묵은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도 웅가리가 왜 저렇게 퇴화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계장치들을 연구소로 가져갔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아내는 조바심을 드러내며 계속 캐묻지만

“그건 모르죠. 우리 연구소도 아니고……. 우리도 타 연구소 결과를 알려면 공식 발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내 대답에 아내는 적잖이 실망한 눈치다. 나는 더 이상 새로운 정보가 없다며 아내를 달래 오늘을 마감한다.

 


 

며칠 후, 아내의 생일 저녁에 친한 후배 부부를 초대한다. 나도 아내도 좋아하는 이 젊은 부부에게는 이제 겨우 기어 다니는 아기가 있다. 우리는 오랜만에 아기를 안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했지만 오늘은 수면캡슐에 재워놓고 왔단다.

후배 부부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들에게 이 별의 아름다운 자연은 크나큰 선물이다. 휴가 땐 멀리, 주말엔 가까이, 틈만 나면 이 별의 자연을 만끽하러 밖으로 나간다. 죽기 전까지 이 별의 모든 곳을 구석구석 돌아다닐 계획이란다. 반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아내는 모니터로만 보던 자연에 대해 직접 본 사람으로부터 이야기 듣기를 좋아한다. 그게 오늘 이 부부를 초대한 가장 큰 이유다. 이야기꽃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아내가 묻는다.

“그 집 웅가리는 잘 있죠?”

그러자 후배 부부는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실은……, 우리 해랑이 연구실로 보냈어요.”

나는 후배가 해랑이를 연구실에 데려왔을 때부터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아내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무척 놀란 얼굴이다.

“며칠 전에 해랑이가 아기를 공격했어요.”

“세상에나!”

놀란 아내에게 후배의 아내가 부연 설명을 한다.

“물론 우리 아기가 해랑이를 괴롭히긴 했지만, 아기가 뭘 알겠어요? 그저 놀자는 의미로 건드린 게 해랑이 입장에서는 괴롭힘을 당한 게 된 거죠. 그래도 해랑이가 화가 나서 아기를 때리는 걸 보니까 정이 뚝 떨어지고 무서웠어요. 그렇잖아도 요즘엔 웅가리에 대한 무서운 기사들이 자꾸 쏟아져 나오는데…….”

웅가리가 원래는 우리와 같은 수준의 지능을 가진 생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웅가리 기피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웅가리가 언제 갑자기 돌변해서 사람을 공격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가 자기방어를 위해 아기를 때리는 해랑이를 보고 현실의 공포로 바뀌는 것도 당연하다. 이 부부가 아기를 데리고 오지 않은 까닭이 아마도 우리 엘드 때문인 것 같다. 저 녀석 때문에 오랜만에 아기를 안아 본다는 기대가 무참히 무너졌다. 아내는 무의식적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엘드를 쳐다본다.

엘드의 장난감은 아기들의 지능 발달을 위해 만든 놀이기구로 모양이나 숫자 등 제시된 문제를 맞히면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형식이다. 머리를 쓰고 고민하는 게 재미있는지 저 장난감을 갖고 놀 땐 일하고 있는 아내에게 놀아달라며 방해하는 일이 없다. 엘드가 이 별의 나이로 열 살쯤 되었을 때 저 장난감을 처음 접하고 며칠 만에 첫 번째 단계를 통과했다. 그 후로 서른 살이 넘도록 엘드는 수많은 다음 단계들을 넘어섰다. 그럴 때마다 우리 부부는 엘드가 천재라며 좋아했다. 어제 엘드는 또 하나의 다음 단계를 통과했다. 노년기에 접어든 엘드가 6살 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이 어젠 기쁘지 않았다.

아내를 따라 모두가 무심결에 엘드를 지켜보느라 집안엔 잠시 침묵이 맴돈다. 그 침묵이 어색했는지 후배가 짐짓 밝은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그런데요, 제 아내가 재밌는 걸 알아냈어요.”

우리 부부도 호기심어린 눈을 하고 밝은 목소리로 그게 뭐냐고 묻는다. 후배의 아내는 언어학자다.

“웅가리들이 언어로 서로 대화한다는 사실은 이제 놀랍지도 않죠? 이미 알고 계신 거니까.”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언어학회에선 이 별에 온 초창기부터 원주민들이 남긴 책을 연구해왔어요. 지금껏 알아낸 바로는 이 별도 우리 고향별처럼 지역마다 다양한 언어와 그에 따른 다양한 글자가 있다는 거예요. 언어 체계도 다르고 발음도 모르는 글자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끈질기게 연구해서 참 많은 것들을 알아냈죠. 그동안 알아낸 것들을 토대로 웅가리들의 서식처에서 찾은 기록물들을 해석해 봤거든요.”

후배의 말대로 재미있을 것 같다. 방공호로 들어간 웅가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낸 것 같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옛날 이 별에 큰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에 사용된 무기는 이 별의 모든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위력을 지녔던 것 같다. 전쟁을 피해 방공호로 들어올 수 있었던 웅가리는 전체 개체 수에 비하면 극소수에 불과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별이 회생할 때까지, 살아남은 웅가리들은 방공호 안에서 몇 대에 걸쳐 끈질기게 연명했다. 방공호 안의 삶은 처절했다. 한정된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죽였고, 나중에는 잡아먹기 위해 죽였다. 병이 생겨도 치료할 의사는 물론 의약품도 없었다. 새로 태어난 새끼들은 소수만 살아남았고, 살아남은 개체들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약한 개체들은 지옥 같은 방공호를 벗어나고 싶어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강한 개체들이 문을 열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이었다. 강한 개체들은 방공호 바깥에 있는 ‘어떤’ 것을 몹시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 ‘어떤’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 부분은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어쨌든 강한 개체들은 방공호 문을 열면 모두가 죽는다고 믿었다.

언어학자들이 알아낸 건 여기까지이다. 이후의 기록은 없다. 아마도 이후로는 기록할 능력이 있는 웅가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내가 갔던 방공호 외에도 이 별 곳곳에서 발견된 방공호가 꽤 많다. 그중에는 야생 웅가리의 서식처로 사용되고 있는 곳도 있지만 빈 곳도 있다. 어떤 곳은 숨어있는 문을 겨우 찾아 힘들게 열고 들어갔지만 웅가리의 오래된 뼈만 잔뜩 나오기도 했다.

 


 

다음날, 언어학회에서 공식 발표를 한다. 어제 우리 부부가 이미 들었던 내용이다. 또 그다음 날엔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야생 웅가리가 몇 마리 발견된다. 비록 몇 개의 글자뿐이지만 띄엄띄엄이라도 읽는 웅가리의 발견 덕에 이 별에 대한 연구에 가속도가 붙는다. 언어학회에서 임시 사육장에 있던 야생 웅가리 다섯 마리를 반출해 갔다. 웅가리의 말을 배워 대화를 시도해 볼 계획이다. 사람과는 발음기관의 구조가 달라 웅가리의 언어를 우리가 구사할 수는 없지만 기계로 소리를 만들어낼 수는 있다.

웅가리가 서로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의 놀라움은 호기심과 두려움이 반씩 섞여 있었다.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웅가리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에도 사람들의 반응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이다. 무엇이 두려운 걸까? 이미 야생동물로 퇴화한 웅가리에게 사람과 같은 수준의 지능이 남아있을까 봐? 그동안 사람을 동물로 취급해왔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어느 날 갑자기 웅가리가 우리를 왜 짐승 취급했냐며 복수라도 할까 봐 겁이 나나? 그런 일이 일이나면 웅가리로 온갖 실험을 해온 우리 연구원들이 제일 먼저 죽겠군.

사람들의 근거 없는 불안감 때문에 우리 연구소는 임시 사육장을 더 늘린다. 연구소로 반납한 웅가리들을 수용하기 위해서다. 이제 가정에서 키우는 애완용 웅가리는 우리 엘드를 비롯해 여덟 마리만 남았다. 웅가리 입양을 신청했던 사람들은 전원 신청을 취소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웅가리 때문에 연구소는 정부에 지원금까지 신청했다. 정부에선 처음에 난색을 표했다가 관리하기 힘든 웅가리를 자연에 방사하겠다는 연구소장의 협박 어린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지원금을 지급했다. 연구소에서 돈이 없어서 웅가리를 방사했다고 하면 공포에 잠식당한 사람들이 정부청사 앞에서 폭동을 일으키겠지. 사색이 되어 우왕좌왕할 정치인들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온다.

정치인들에 대한 무익한 상상은 다 마신 찻잔과 함께 내려놓고, 우리 연구소에서 시행한 웅가리 뇌 시술에 문제가 있었는지 살펴보기 위해 주인의 눈을 찌르고 도망친 코코링에 대한 자료를 찾아본다. 생물학적 부모의 성향, 포육실 기록, 분양 후 정기 검진 기록 어디에서도 특이점은 없다. 분양받은 코코링 주인에 대해서도 찾아본다. 입양자 성격 검사 결과를 보니 쾌활하고 온순한 성격이다. 주인의 성격에도 문제는 없다. 그렇다면 정말 시술의 문제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 한쪽이 무거워진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코코링 관련 기사들을 쭉 훑어본다. 그러다 코코링이 살던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 기사를 찾았다. 다른 자극적인 기사들에 밀려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기사다.

마을 사람들은 코코링의 주인이 코코링을 많이 사랑했다고 한다. 어딜 가든 코코링을 대동했다. 코코링을 예쁘게 만들려고 한 달이 멀다하고 새로운 성형을 시켰다. 장난기가 많아서 코코링을 곧잘 놀래주었다. 놀란 코코링이 주먹으로 주인을 때리기도 했는데 이미 주먹이 말랑말랑하게 성형되어있어서 하나도 아프진 않았단다.

코코링이 주인을 공격한 이유를 찾은 것 같다. 주인은 코코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했다. 코코링은 주인의 사랑을 괴롭힘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후배의 아기가 놀자는 의미로 한 행동을 해랑이가 괴롭힘으로 받아들이고 공격한 것처럼…….

이기적인 사랑이었다. 그 사람은 코코링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다.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이 별은 엉망진창이었던 거 같아요.”

후배가 내게 향긋한 차를 건네며 말한다. 나는 무슨 뜻인지 묻는다.

“언어학회에서 과학 관련 서적들을 분석했는데요, 환경오염이 심해서 더 이상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없을 지경이었대요. 웅가리가 한 짓이죠. 덕분에 생태계도 파괴되고, 기후도 비정상적으로 변하고, 전에 없던 질병도 생겼대요. 제일 큰 문제는 식량난이었어요. 자연이 그렇게 망가졌으니 당연한 결과겠죠? 그래서 전쟁도 터진 거고……. 웅가리들이 오랜 세월 방공호에 숨어 지냈기 때문에 자연이 회복할 수 있었던 거예요. 어제 아내한테 그 얘길 들으니까 해랑이를 반납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확 들더라고요.”

해랑이는 그 시절의 웅가리와는 전혀 다른 퇴화한 종이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과학자인 후배조차도 지금의 해랑이를 그 옛날의 웅가리와 동일시하고 있다. 그게 시대조류이다. 아기엄마인 아내의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거겠지. 후배는 웅가리에게 공포심까지는 아니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많이 갖게 된 것 같다.

“우리도 하마터면 자멸할 뻔했지만 그 위기를 잘 이겨냈잖아요. 게다가 이젠 식민별을 찾으면서 번성하고 있고……. 웅가리는 그 위기를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고 국가적 이기심을 앞세웠던 거예요. 그런 놈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별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어요.”

후배는 웅가리를 비난한다. 그 점은 나도 후배의 말에 동의한다. 더불어 엘드가 점점 아내와 함께 있을 자격이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애초부터 엘드는 집에 혼자 있을 아내가 외로울까 봐 데리고 온 애완동물이다. 어린 새끼 때부터 늙은 지금까지는 아내를 위해 제 역할을 잘 해냈다. 그러나 이젠 노인이 된 아내의 관절을 힘들게 하고,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아내를 걱정하게 만드는 유해 동물이 되어가고 있다. 가장 내 기분을 상하게 하는 건 그 녀석 걱정 때문에 아내의 머릿속에서 내 자리가 점점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라도 빨리 엘드를 아내에게서 떼어놓고 싶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여전히 엘드를 안은 채 나를 맞이한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찡그려졌다. 아내는 엘드를 맡아 키워줄 사람을 찾는 일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웅가리를 키우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내의 실망한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그만둔다.

“새 주인을 찾으면 새 주인이 산책도 시켜줄 수 있을 텐데요.”

아내가 늘 아쉬워하던 부분이다. 밖에 나갈 수 없는 아내 때문에 엘드는 한 번도 산책해 본 적이 없다. 나는 퇴근 후엔 피곤해서 산책 같은 건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 나도 노인이다. 쉬는 날 시키면 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자주 산책시킬 자신이 없으면 아예 산책이 뭔지 모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끔 하는 산책으로 만족 못 한 엘드가 매일 아내에게 나가자고 조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내는 엘드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위험을 무릅쓰고 나갈 게 뻔했다. 공기 정화 기능이 있는 마스크 따위 믿을 수 없다. 이 집 밖의 공기는 단 한 숨도 아내의 폐에 들어가선 안 된다.

“엘드는 산책이 뭔지 몰라서 굳이 산책시키지 않아도 섭섭해하지 않아요. 그 부분은 걱정 말아요.”

아내의 미안한 감정을 덜어 주려고 한 말이었는데, 아내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애처로운 눈으로 품 안의 엘드만 바라볼 뿐이다.

“엘드와 헤어지기 전까지만 내가 산책을 시켜 볼까요? 우리가 떠나는 날까지 계속 산책시킨다 해도 그 정도로 내 폐가 망가지기야 하겠어요?”

“절대 안 돼요.”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놀란 아내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나도 놀라 아내의 눈을 피했다.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그만……. 하지만 당신의 건강이 조금이라도 더 나빠지면 난 견딜 수 없이 힘들 거예요. 그러니까 밖에 나간다는 말은 다신 하지 말아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걱정하는지 잘 알잖아요.”

아내는 돌아서며 들릴 듯 말 듯하게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엘드를 안고 침실로 향했다. 아내의 어깨 너머로 눈만 빼꼼 내민 엘드가 멀어지고 있다. 저놈을 당장 연구실로 데려가 사육장에 처넣고 싶은 마음을 힘겹게 내리눌렀다.

엘드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아내의 죄책감도 사라지지 않을까?

 


 

며칠 후, 내 연구 보고서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어느 정부 인사를 만난다. 내가 시를 쓴 것도 아닌데 감명이라고? 그 정부 인사로부터 은밀한 의뢰를 받는다. 생물학자로서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의뢰지만 내가 가장 적임자다. 내가 한 연구를 이용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나는 곧 이 별을 떠날 것이기 때문에 적임자가 된 거다. 나는 이 별을 곧 떠날 예정이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수락할 수밖에 없다. 아니, 아내를 위해서라도 수락해야 한다. 나는 수락에 앞서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정부는 내 조건을 수락하고, 나는 정부의 의뢰를 수락한다.

 


 

“사육장에 있는 웅가리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점심시간에 후배에게 묻는다.

“소장님도 아직 계획이 없으신 거 같죠?”

“계속 데리고 있자니 정부에서 받는 지원금이 너무 빠듯하고, 방사하면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

“사람들은 더 수색해서 야생 웅가리를 하나도 남김없이 찾아 가두라고 난린데요?”

“차라리 확 다 죽일까?”

“에이, 그건 좀 잔인하지 않아요? 옛날처럼 몇 마리 안락사시키는 수준도 아니고 수천 마리를…….”

“그러면 자네는 계속 사육장에서 키우길 바라나?”

“제 개인적인 생각을 물으시는 거라면 키우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웅가리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실험용으로 쓰기엔 번식 주기가 너무 길고, 애완용으로 키우기도 꺼림직하고, 식량자원은 더더욱 못 되죠. 옛날에 사람이었던 존재를 누가 먹겠어요?”

“그러면 죽여야겠군.”

“그렇다고 수천 마리를 죽이는 건 너무 잔인하고요, 차라리 전부 중성화시키거나 암수를 격리해서 번식을 막는 건 어떨까 싶어요. 그대로 살다가 자연사하면 후대가 끊겨서 웅가리는 멸종인 거죠.”

“멸종할 때까지 사육장에 들어가는 비용은?”

“아! 그게 문제겠네요. 사육장에 들어온 후에 태어난 개체도 있으니까 그 녀석들이 평균 수명만큼만 산다고 쳐도 16년……. 와아, 16년이면 이 별이 40번을 공전해야 하네! 앞으로 16년간 소장님이 어떻게든 정부 지원금을 받아내셔야지요.”

후배는 농담조로 이야기하며 웃는다. 나는 같이 웃어준다. 그러나 진정으로 웃을 수는 없다. 후배가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선 지원금 따윈 생각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비밀리에 의뢰한 연구를 마친 후 나는 퇴직했다. 우리 부부는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시작한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엘드 문제만 빼고……. 그동안 애완용 웅가리를 연구소에 반납한 사람들이 더 생겨서 이젠 가정에서 웅가리를 키우는 집은 단 두 집뿐이다. 하나는 엘드고 다른 하나는 늙어서 거동이 불편하다고 들었다. 그 주인은 키우던 웅가리의 마지막을 지켜주고 싶어 한다. 나는 엘드를 연구소로 보내자고 아내를 설득한다. 아내도 더 이상 새 주인을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래도 이 별을 떠나기 전까지는 데리고 있겠다는 의지다.

엘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TV가 켜지며 뉴스 속보가 나온다. 언어학회에서 데려갔던 글자를 아는 웅가리 다섯 마리가 탈출했다. 사육 로봇이 먹이를 주려고 케이지의 문을 열자마자 한 마리가 로봇을 공격하고 다른 케이지들을 열었다. 그것들은 미리 계획을 짜놓은 것처럼 경비 로봇을 유인하고 출입구의 보안을 해제했다. 감시 카메라에 찍인 웅가리들의 탈출 장면이 고스란히 TV에 비춰진다. 웅가리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지능적으로 움직였다. 속보 후, 각 분야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인터뷰를 한다. 그들이 우려하는 건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웅가리를 이용해 이 사회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이미 우리의 기술로 웅가리의 지능을 그만큼 증폭 시킬 수 있다고 말한 전문가는 우리 연구소 소장이다. 내가 예전에 제출한 연구 보고서의 내용을 읊은 것이다. 내가 만났던 정부 인사가 깊은 감명을 받은 그 보고서.

이 뉴스가 나간 후 거리에 사람들이 없어진다. 불안과 공포에 떨며 아무도 집 밖으로 나가려하지 않는다. 문을 나서는 순간 탈출한 웅가리가 공격해 올 거라고 믿는다. 공포는 사람에게서 이성(理性)을 격리시킨다. 상상을 실제와 혼동한다.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도 웅가리가 숲으로 도망쳤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냉정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여론은 정부에 대단히 비판적이다. 어서 군대를 동원해 탈출한 웅가리를 잡으라고 아우성이다. 공포는 분노로 바뀌고, 숲을 다 태워서라도 웅가리를 없애야 한다는 극단주의자까지 하나, 둘 생겨난다.

그러나 정부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웅가리의 탈출은 이미 벌어진 사고이므로 이 사고를 이용해 아직 포획되지 않고 숲속 어딘가에 숨어있을 웅가리를 모두 잡아들인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탈출한 웅가리들이 숲속에 숨어있는 웅가리와 조우할 때까지 며칠만 참으라고 국민을 달랜다. 웅가리 탈출 사건이 발생한 지 5일이 지나자 준비하고 있던 군대가 숲속으로 진입한다. 웅가리의 몸 안에 미리 삽입해 놓았던 위치추적기 덕분에 웅가리는 군대가 출동한 지 반나절 만에 잡힌다. 정부의 계획대로 탈출한 웅가리들과 함께 있던 야생 웅가리가 꽤 잡혀 온다. 여론은 정부에 호의적으로 바뀐다.

 


 

아내와 함께 엘드를 데리고 연구소에 간다. 연구소 밖에 있는 애완 웅가리는 모두 반납하라는 정부의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연구소 밖에 있는 웅가리는 겨우 두 마리였지만 정부는 대변인이 나서서 정부 명령을 발표하는 쇼까지 벌였다. 뉴스를 통해 정부 대변인 발표를 본 아내는 이 별을 떠나는 날까지 엘드를 데리고 있겠다는 고집을 꺾을 수 밖에 없었다. 아내가 연구소까지 따라오겠다는 고집은 꺾을 수가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연구원이 아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입구에서 간단한 서류만 작성할 수 있다. 걱정하는 아내를 위해 일부러 후배를 불렀다. 엘드는 안면이 있는 후배에게 쉽게 안긴다. 후배는 엘드를 데리고 들어간다. 무슨 일인 줄도 모르고 태연하게 연구소로 들어가는 엘드를 바라보던 아내는 결국 뒤돌아 눈물을 흘린다. 아내를 달래가며 차에 오른다. 차가 출발하기 전에 얼른 공기 정화부터 한다. 잠깐이지만 외기에 노출된 아내의 폐가 걱정스럽다.

“그러게 나 혼자 온다고 했잖아요.”

아내는 흐느낌으로 대답할 뿐이다. 차가 출발한다. 아내는 눈물을 닦으며 밖을 바라본다.

“저기가 그 사육장인가요?”

아내가 푹 젖은 목소리로 묻는다. 넓은 연구소 마당 끄트머리, 정문 가까운 곳에 자리한 가건물을 보고 있다.

“저긴 야생 웅가리만 있어요. 엘드는 연구동 안에 있는 깨끗한 사육장에서 돌볼 거예요.”

아내는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본다. 우려와 달리 연구동을 뒤돌아보지는 않는다. 그런 아내가 고맙다.

 


 

며칠 후, 우리는 고향으로 향하는 우주선에 오른다. 승객이 모두 탑승한 후에도 우주선은 출발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아내는 수면 캡슐에 누워 잠이 들기 전까지 또 웅가리에 대한 뉴스를 찾아본다.

“어머나!”

아내가 놀라며 옆에 누워있는 내 손을 잡는다. 나는 아내가 보고 있던 화면을 바라본다. 사육장에 있는 야생 웅가리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쓰러지고 있다는 뉴스다. 우리가 모르는 전염병이 돌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엘드 어떡해요?”

아내가 불안한 얼굴로 나를 본다.

“엘드는 연구동에서 나올 일이 없어요. 임시 사육장 관리는 안에 있는 로봇이 하기 때문에 병균이 밖으로 나올 일도 없고요. 엘드가 잘 있나 봅시다.”

나는 후배와 화상통화를 한다. 후배는 화면 가득 엘드를 보여준다. 아내는 엘드를 보자마자 눈물을 왈칵 쏟는다. 엘드는 화면에 보이는 우리를 만져보려고 손을 내민다.

“엘드, 미안해.”

아내가 울며 말한다. 감정이 북받쳐 대성통곡이라도 할 기세다. 나는 얼른 아내의 몸에 연결된 수면 유도장치를 작동시킨다. 아내가 잠드는 데엔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 아내가 잠이 들자 후배는 엘드를 다른 연구원에게 맡기고 홀로 화면에 들어온다.

“사육장 상황은 어떤가?”

“고약해요. 도대체 무슨 병인지, 멀쩡하던 녀석도 한번 쓰러지면 죽는 데 이틀도 안 걸려요. 탈출했다 잡혀 온 녀석들은 이미 한 놈도 남지 않았어요. 소독을 해도 소용이 없고……. 오늘 오전에만 벌써 50마리 넘게 치운 거 같아요.”

“사체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나?”

“사육장 내 방 하나를 비우고 사체들만 쌓아놓고 있어요. 그게 사람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니까 함부로 건물 밖으로 꺼낼 수가 없잖아요.”

“내 생각엔 사람에겐 아무 영향이 없을 것 같네만…….”

“그래도 모르니까 조심해야죠.”

나는 말없이 미소만 살짝 지어 준다. 후배가 무언가를 보냈다.

“이게 뭔가?”

“언어학회에서 녹음한 건데요, 웅가리가 이 별을 이렇게 불렀대요. 사람의 구강 구조로는 어떻게 흉내 내볼 엄두가 안 나네요. 한번 들어나 보시라고 녹음 파일을 보내드린 거예요. 주무시기 전에 우울한 얘기만 들으셨잖아요. 이거 듣고 잊으세요.”

나는 후배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이제 우리가 살아서 만날 일은 없겠지. 아마 우리가 고향에 도착할 때쯤이면 후배는 아니, 후배의 아기는 손주를 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쯤엔 이 우주에 웅가리의 흔적은 기록으로만 남아있을 것이다.

나의 마지막 연구 결과물은 제대로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내 요구를 잘 들어주었다. 군대의 출동을 며칠 미루고, 서둘러 웅가리 반납 명령을 발표하는 성의를 보여준 정부에 감사하는 마음을 보낸다. 덕분에 하루라도 빨리 엘드를 아내에게서 떼어 놓을 수 있었다. 정부가 국민의 원성을 사가면서까지 군대의 출동을 늦춘 며칠은 전염성을 높이기 위한 시간었다. 군대가 잡지 못한 웅가리가 아직도 숲속에 많이 있을 것이다. 수만 마리 쯤? 그러나 그것들도 전염병을 피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바다 건너에 있는 더 많은 웅가리를 박멸할 해결책도 넘겼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극악하게 웅가리를 없애려는 이유는, 이미 퇴화한 웅가리 따위가 두려워서가 아니다. 웅가리 사육에 필요한 지원금을 아끼려는 속셈은 아주 소소한 이유고, 대의는 웅가리를 이용할지도 모를 미래의 악인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려는 거다. 웅가리는 과거 이 별의 주인이었을 때도 이 별을 망가뜨리는 만행을 저질렀고, 미래에도 누군가에게 이용당해 이 별을 망가뜨릴 수 있다. 이 별에서 웅가리는 해충이고 병균이다. 나는 이런 생각들로 내가 한 행위의 당위성을 늘여간다. 이 음모가 알려진다 해도 국민들은 나나 정부를 향해 손가락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언어학회를 탈출하는 웅가리들을 보고 공포의 끝자락까지 경험했으니까.

나는 옆에 잠들어 있는 아내를 본다. 눈가에 허옇게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보인다. 닦아주려고 손을 들었다가 멈춘다. 그러다 깨기라도 하면? 물론 수면 유도장치가 아내의 뇌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다. 하지만 나는 아내에 관해서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조심하려 한다. 허공에 머물고 있는 손을 옆으로 옮겨 후배가 보내 준 파일을 열어 본다. 녹음 파일이라더니 막상 열린 건 영상이다. 영상 안에는 후배가 책상 앞에 앉아있고, 엘드가 책상 위에서 스피커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스피커에서는 웅가리의 웅얼거림이 들린다. 역시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소리다. 웅가리는 이 별을 이렇게 불렀다고? 후배가 여러 번 반복해서 들려준다. 그러자 엘드가 그 말을 따라한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웅가리의 말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엘드가 이 말을 따라한다고? 다른 웅가리의 입 모양을 본 것도 아니고, 그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어쩌면 엘드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지능이 높을지도 모른다. 하루라도 빨리 아내에게서 엘드를 떼어놓은 내 결정은 옳았다는 확신이 든다. 영상을 끈 후 잠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나는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글씨를 써 본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글씨로는 비슷하게 써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자, 저 글자 써 보다가 가장 비슷한 것으로 결정한다.

지구

음! 그나마 제일 비슷한 것 같다.

이제 내 수면 유도장치를 작동시킨다. 언어학회에 보낸 웅가리 사료에 뇌를 활성화시켜 지능을 끌어올리는 약과 함께 전염성 강한 바이러스를 섞었던 끔찍한 기억이 기나긴 수면 속에 녹아 사라지길 바라면서…….

 

 

 

<작가의말>

웅가리.jpg

웅가리는 손가락이라는 뜻의 힌디어입니다.

구글 번역기엔 발음이 ungalee라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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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예술적인 도시의 거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 2022.02.28
세뇨르 신(神)이 머무는 바다1 2022.02.10
갈원경 DollTherapy 2022.02.01
아이 깨진 그릇2 2022.01.31
곽재식 영애4 202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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