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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유이립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지은 죄는,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만들어진 지옥에 기록된다.

이곳은 내 말과 내 행동과 내 생각으로 만들어진 지옥이다.

나는 끊임없이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한다.

 

내 기록은 수억 번이나 반복했다.

 

안녕하세요! 절하러 왔어요. 귀신 년아!” “좆나 후 달리네. 야 무섭다!” “좆까!”

줄 거 있으면 빨리 내놔!” “시집보내 준대 매! 여자 내놔!” “저는 섹스하고 싶어요!”

여기 와서 남 자는데 뭔 깽판이야!” “니는?” “죄송해요!”

낄낄 손님 왔으니까 빨리 손님 받어!” “야이. 씨발년아. 그러니까...“

어쩌구 저쩌구 소문이 사실입니까?” “대답이 없어?”

잘못 했으니 왕에게 버림받았지!” “. 꼭 돌까지 던져야 겠냐? 그럼 내가 일 빠따!”

나 다음 너는?” “예의 있게 인사부터 합시다!” “나는 싹싹 빌 거야.”

다 같이 해! 모두 절합시다!” “좆나 이쁜 년하고 떡치고 결혼하고 싶어요!”

저는 아니 예요!” “이 새끼 구라치고 있어!” “! 마음이 예뻐야 얼굴도 이쁘지!”

차 끊겼겠네. 아 좆같네. 고작 이 쇼 하려고 왔어?”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콱 고만 해라! 친구끼리 의리!” “쪽 줄 필요가 뭐 있냐?”

쇼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야!” “의리!”

 

내가 지은 죄의 마지막이었다.

나 혼자가 아닌 다섯 명이 다 같이 죄를 지었다. 그런데 이 지옥에는 왜 네 명밖에 없는가? 그리고 우리 다섯 중 지옥에 오지 않은 한 명은 누구인가?

내 죄가 수억 번 반복되는 동안 왜 인지 알고 싶었다. 왜 우리만 지옥에 붙박였을까?

다시 죄의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민석호의 이야기로 우리의 죄가 시작됐다.

 

야 니들 이 이야기 알아? 후궁괴담?”

 

대학가 허름한 주점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신동규. 강익준. 송재용. 민석호.

이 때 들은 이야기를 잊을 리가 없다. 이중 셋은 나와 함께 지옥에 같이 묶여 있다.

지난 수억 번 동안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

 

주르륵다들 아무 말 없이 잔에 술을 따랐다.

술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쏟아냈기에 더 할 말이 없었다.

잠깐의 재미를 위해 어떤 거짓말을 해도 다 믿어줄 기세였다.

 

옛날에 조선 시대 때, 왕에게 버림받은 후궁이 있었어. 후궁이 뭔지는 알지? 그 후궁이 버림받은 후 정재에 휘말려 죽었어. 그 후 묘지를 세웠는데...”

그 후궁 이름이 뭔데?”

 

아는 체, 있는 척하기 좋아하는 익준은 술 취해도 아는 척을 놓치지 않았다.

민석호가 후궁의 이름을 댔다.

 

! 알지. 내가 말이야...”

 

강익준은 지루한 지식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 후궁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드라마만 대 여섯 편 만들어져서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잠깐만! 내 썰 좀 들어! 그래서 원통하게 죽은 후궁의 무덤에 무서운 괴담이 생겼는데...”

원통하기는 깨뿔! 너 우리 중학생 때 드라마 안 봤냐? 뒤질 만 하니까 뒤졌지!”

 

강익준은 아는 체로 짓누르려 했지만, 민석호는 끈질기게 말했다.

 

어떤 괴담이냐 하면...야밤에 여자들이 후궁무덤 앞에서 절하고, 춤추고, 무덤에서 뒤돌아 돌을 던지면, 기를 넣어준대. 그러면 남자들이 줄줄 붙어서 시집 잘 간다고.”

“....”

 

남자 다섯이 술을 마시는 자리였다.

남자 다섯이 이야기에 혹할 만한 메리트가 없었다.

 

그런데 그 무덤이 무서운 이유가 있어. 무당들이 말하길 무덤 위에서 화려한 한복을 입고 춤추는 예쁜 여자가 있는데, 늘 입이 찢어져라 환하게 웃고 있대. 무당들은 그 여자가 후궁일 거라 말해. 너희들 어떤 귀신이 제일 무서운 줄 알아?”

“...”

 

이야기가 점점 무서워지고 있었다.

여기요?’ 다른 손님이 계산을 위해 목소리를 키웠다.

우리는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에 집중했다.

민석호는 잠시 침묵했다.

 

뭐야? 빨리 말해?!”

 

조바심이 난 송재용이 짜증을 부렸다.

 

춤추는 귀신과 웃는 귀신. 그런데 후궁 귀신은 둘 다 하고 있어.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귀신이야.”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왜 춤추는 귀신과 웃는 귀신이 제일 무서워?”

잘 생각해봐. 자신이 죽은 걸 알면 얼마나 슬퍼? 그런데 춤추고 웃고 있잖아. 잘 생각해봐.”

“....”

 

춤추고 웃는 이유. 생각할수록 이야기는 더 깊어졌다.

모두들 자기 생각에 압도당해 입을 열지 못했다.

하지만 아는 척 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반발했다.

 

구라 까지마. 새끼야!”

 

강익준이 -’ 술잔으로 나무 테이블을 때렸다.

 

진짜야! 후궁 무덤이 바로 이 근처야.”

 

민석호의 입에서 나온 주소는 낯선 곳이 아니었다.

 

그 일대는 점집이 없대. 하도 후궁의 원기가 세다보니 무당들이 질겁하며 도망친다고 들었어. 심지어 새마저도 없어. 그 일대 하늘에는 새도 안 날아 다닌다고...”

 

우리 동네에서 문화재가 모여 있는 낡고 늙은 외곽이었다.

학창시절 근방 박물관에 가서 와르르-’ 떠들다 온 기억이 떠올랐다.

만약 그 시절 정말 그 일대에 점집이 없고, 새가 날아다니지 않는다는 걸 유심히 봤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건데...

강익준은 바로 근처라는 걸 알자 집요한 표정으로 변했다.

 

가서 까볼까? 너 그럴 깡 있어?”

가는데 무슨 깡이 필요해?”

가서 절하고, 춤추고 돌 던질 수 있냐고?”

“...그걸 내가 왜 해?”

여자만 시집보내지 말고, 우리도 장가 보내달라고 하면 돼지. 구라면 니 좆 되는 거고. 잘 되면 우리 장가가는 거야.”

 

강익준이 무서운 이야기의 맨얼굴을 확인해보자고 선동했다.

 

어어..깡 쎄네.”

 

민석호는 꺾인 말투였지만, 눈빛은 아니었다.

강익준이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줘서 고마운 눈치였다.

술자리가 심심하니까 극적인 이벤트를 연 것이었다.

끼익-’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신동규가 술로 부풀어 오른 배를 두드렸다.

 

. 가자!”

집에 가면 뭐하냐? 좋아!”

 

송재용이 찬성했다.

 

귀신님이 얼마나 이쁜지 봅시다!”

 

나도 찬성했다.

우리는 분명 같은 말을 했다.

청춘은 너무 파괴적이어서 스스로를 죽이는 방향으로 향한다.

괴담이 사실인가? 맞으면 맞는 거고, 아니면 말고.

단순한 확인을 위해 우리는 무덤으로 향했다.

 

웅웅-’ 묵직한 엔진 음과 함께 버스가 왔다.

막차 버스로 남들은 집으로 돌아갈 때, 우리는 무덤으로 향했다.

왠지 모를 흥분으로 시시덕거렸다.

 

. 교양 수업 때 미숙이 엉덩이 봤냐? 죽이지 않냐?”

그럼 죽이지.”

그럼 죽여야 하지 않냐?”

 

낄낄우리는 남들이 듣거나 말거나 음담패설을 주고받으며 흥분을 공유했다.

우리는 분명 같은 생각을 했다.

이런 미친 짓을 하는 게 흥분 된다 고.

 

시내 외곽.

정류장에서 내리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었다.

 

가자!”

 

늘 게을렀던 신동규가 웬 일로 앞장섰다.

. .’ 발걸음 소리가 힘찼다.

머리 감는 걸 귀찮아해서 지저분했던 신동규가 웬 일로 반짝반짝 윤이 나 있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확인하러 가는 모험이 기운을 불어넣은 걸로 보였다.

 

새끼.”

 

강익준은 자신보다 나서는 걸 비꼬았다.

 

으이씨 춥다!”

 

송재용은 별 영양가 없는 혼잣말은 던졌다.

모두가 추운 걸 알았지만 센 척하려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혼잣말을 신호로 모두가 한 마디씩 보탰다.

 

정말 춥다.”

짜증나. 그러게 오늘은 파카 입을 걸.”

삼한사온은 무슨 매일 추워.”

 

박물관으로 올라가는 포장길을 밟았다.

지직.’ 운동화와 바닥 돌의 마찰 소리가 났다.

 

뭐야?! 쫄렸네.”

 

민석호는 마찰 소리에 놀라 괜히 짜증을 부렸다.

모두가 가자고 하는데, 혼자 어색한 분위기였다.

자신이 선동했다고 정말 이루어진 게 놀란 눈치였다.

사람들이 마술을 진짜로 믿고, 마술사를 초인적인 존재라 여기면 어떤 일이 생길까?

민석호는 자신의 말을 굳게 믿고 앞장서는 우리를 부담스러워 했다.

 

!”

 

강익준은 민석호 들으라는 듯이 혀를 찼다.

나와 다른 친구들은 강익준과 민석호의 기 싸움을 보고 낄낄웃었다.

송재용과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변명할 거리가 있었다.

주도한 놈들이 저 놈들 이예요. 우린 그냥 대세에 휩쓸렸을 뿐 이예요.

그러나 용기를 냈기에...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하나가 되는데 집중했기에 변명하고 용서받을 순간을 넘어 버렸다. 송재용이 물었다.

 

멀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가벼운 투였다.

내가 턱짓으로 도입부를 가리켰다.

 

저어기~”

 

아담한 돌담이 문화재 지역을 경계 짓고 있었다.

 

으싸!”

 

신동규가 갑자기 몸에 힘을 넣었다.

돌담에 트여진 입구가 아닌 돌담을 훌쩍 뛰어 넘었다.

 

이이이얍!”

 

쓸데없이 큰 기합이었다.

강익준이 우리의 시선을 의식하며 돌담을 뛰어넘었다.

 

. 뭐 하러 넘어가? 저기 입구가 있는데?”

 

송재용이 애 같은 목소리로 투정 부렸다.

 

못하냐?”

 

신동규가 도발하듯이 말했다.

여기 도착한 이 후로 패기가 흘러넘치다 못해 싸울 태도였다.

송재용과 민석호, 내가 차례로 돌담을 뛰어넘었다.

하지 마.’ 내 손바닥이 돌담에 힘을 줄 때 미세한 소리를 들었다.

 

“...야 무슨 소리 못 들었어?”

“....”

 

모두가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나도 곧 왜인지 깨달았다.

싸늘한 한기가 목 뒤로 스며들어 발목까지 싸아악- 관통했다.

세찬 바람이 우리를 스쳐갔기에 전부 움츠러들었다.

 

춥다!”

 

민석호가 까칠하게 말했다.

자기 말에 자신이 끌려 온 걸 후회하는 투였다.

말투로 보아 어떻게든 돌아갈 구실을 찾는 것 같기도 했다.

송재용이 말했다.

 

우와. 정말 새가 없어.”

 

괴담대로 이루어진 걸 봤음에도 긴장하지 않았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순진한 감탄이었다.

 

“....”

 

모두가 밤하늘을 쳐다봤다.

짙은 구름 사이로 달빛이 살짝 빛을 내보였다.

어떤 곳이든 새가 보일 리 없는 날씨였지만, 우리는 특이한 장소와 특이한 상황에 젖어 버렸다.

 

재밌네?”

 

송재용의 태도는 가벼웠다.

괴담을 확인하러 왔음에도 진지하지 않았다.

마치 괴담을 모험하는 우리를 구경하는 태도였다.

 

“....”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봤다.

정말 새가 없다면 괴담은 진짜이다. 계속 가야 하나?

남자 다섯이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각각의 얼굴을 들여다볼수록 가슴 속에서 강렬한 불이 솟아올랐다.

남자는 절대 약한 소리를 할 수 없다.

특히 친구들 앞에서는...

 

우린 사나이다! 남자다! 가자!”

 

누가 외쳤는지 모르지만, 이 말을 기점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

우리는 전진했다. 고개를 돌리자 시내 방향이 보였다.

자정이어서 그런지 간판조명이 많이 켜있지 않았다.

조명과 조명사이 어둠 속에 혹시나 점집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한 곳이라도 있었다면, 에이 뭐야? 점집 있네. 뻥이네. 결말 다 아는 영화 볼 때처럼 마음이 편했을 터였다.

사나이다! 라고 말했지만, 무서웠다.

누군가 이게 뭔 병신 같은 짓이야! 돌아가자! 라고 말해주길 빌었다.

 

문화재 구역으로 들어서자 잔디 사이로 반듯한 타일로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는 오래된 비석과 복원된 한옥 집. 설명 표지판을 헤치며 걸었다.

송재용이 말했다.

 

마치 무덤 같아.”

 

나만 같은 생각을 한 게 아니었다.

비석과 설명 표지판들이 묘비처럼 느껴졌다.

 

무덤이잖아.”

 

민석호가 까칠하게 툭 말했다.

멀리 떨어진 곳에 자그마한 동산 크기로 봉분들이 솟아 있었다.

꼭 그 후궁의 무덤만은 아니었다.

조선 왕가에 연관된 다양한 이들의 무덤들이었다.

표지판 약도에 그 후궁의 무덤이 표시돼 있었다.

 

“....”

 

우리가 무엇을 마주할지 직접 보게 되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스릴을 느끼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다볼 때처럼 무서우면서도 뛰어내리고 싶은 불가사의한 충동이 느껴졌다.

청춘은 너무 무모해서 꽃피우지도 않았는데, 극적으로 지는 비극을 꿈꾼다.

 

거기 누구여?”

 

모두가 흠칫 놀랐다.

묘비 같은 표지판 뒤에서 할머니가 나타났다.

핼쑥한 얼굴은 창백해서 푸른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 눈빛이 말로 설명할 수 없었는데, 당장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불길한 눈빛이었다.

 

어딜 가는 거여?”

“....”

 

왜 이 시간에 이 곳에 왔는가?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었다.

. .’ 타일 강하게 밟는 소리와 함께 신동규가 걸어 나갔다.

 

“....”

 

신동규는 할머니 말을 무시하고 갈 길로 향했다.

오늘 정말 무엇에 씌웠는지. 모험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도취됐는지.

게으르고 만사를 귀찮아하던 신동규가 적극적으로 앞장서자 우리는 졸졸 따라갔다.

속으로는 친구의 패기 넘치는 모습에 감탄했다.

 

멋있다~”

 

송재용이 가볍게 휙 던졌다.

 

~”

 

민석호는 상황에 불만이면서도 친구의 특별한 모습에는 감탄했다.

 

“....”

 

척하기 좋아하는 강익준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걸고넘어지지 않는 게 오히려 찬사처럼 느껴졌다.

포장길은 인공적으로 조성된 작은 숲을 관통했다.

우리는 가지런히 줄지어 자란 나무 사이를 걸어갔다.

 

학생들이야? 오 밤에 뭐해? 돌아가?”

 

갑자기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산악관리원 야광조끼가 신분을 나타냈다.

조끼는 너덜너덜하고, 손에 든 견광봉은 깨져 전구 빛이 새어나왔다.

학생들이 무모하게 쳐들 올 만한 어설픈 문화재 관리였다.

 

저어기가 우리 집이예요!”

 

신동규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던졌다.

게으르던 신동규를 무엇이 이토록 부지런하게 만들었을까?

녀석은 이 괴이한 짓거리에서 자신을 불태울 의미를 찾아낸 걸로 보였다.

녀석이 나와 같은 지옥에 있는지, 이곳에 오지 않은 한 명인지 알 수 없다.

지옥에서 수억 번 반복하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말을 걸 수 없다.

무덤에 못 박혀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과거를 수억 번 반복할 뿐이었다.

만약에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있다하더라도 스스로의 죄가 민망하여 얼굴을 마주 볼 용기가 없다. 만약 있다면 묻고 싶다. 너는 그때 왜 그리 당당했어?

너는 그때 왜 웃었어? 되물으면, 난 할 말이 없었다.

 

대박!”

 

낄낄신동규의 대답에 모두가 웃었다.

무례한 모습을 패기로 착각하여 도취됐다. 친구의 색다른 면모가 자랑스러웠다.

말과 행동과 생각에 동의했기에, 공범들끼리는 할 말이 없었다.

 

학생들! 돌아가! 혼나!”

 

우리는 할아버지를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그리고 도착했다.

타일 길이 끝나는 곳에 잔디가 깔려 있었다.

그간 오는 길에 잔디가 있는 곳도 있었지만, 이곳의 잔디는 달랐다.

눕혀져 있지 않았다. 한 가닥, 한 가닥 꼿꼿이 서 있었다.

이는 아무도 밟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괴담과 달리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 잔디 위에 봉분이 오뚝 서 있었다.

 

“...애들아. 소리 들어봐.”

 

송재용이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 !’ 스타카토처럼 짧게 끊어지는 새소리가 들렸다.

마치 단말마처럼 들렸다.

 

...새 없대매.”

 

강익준이 민석호에게 시비조로 말했다.

 

“...구라인가 보지.”

그치. 뭣도 아닌데 나댔지.”

 

강익준이 깔아뭉갰으나 민석호는 대응을 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 강익준의 험한 말이 패기가 아닌 공포에서 온다는 걸 알았다.

! !’ 단말마 같은 새 소리는 들렸으나, 어디서도 새는 보이지 않았다.

1. 3. 5분이 지나도록 우리 중 아무도 저쪽 잔디에 발을 딛지 않았다.

! !’ 새소리에 패기가 넘쳤던 신동규마저 본래 게으른 모습으로 돌아갔다.

 

“....”

 

송재용만은 우리의 분위기와 상관없다는 듯이 굴었다.

양손을 겨드랑이에 끼고 혼자 중얼중얼하거나 타일 끝을 툭툭 찼다.

 

안 들어가?”

 

어린 애 같이 조르는 말투였다.

 

“....”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강익준의 표정이 음흉하게 변했다.

 

니가 해봐.”

 

아이들처럼 위험한 장난을 떠미는 유치한 말투였다.

송재용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저쪽 잔디로 발을 들이밀었다.

이때, ‘하지 마.’ 또 그 목소리가 들렸다. 송재용은 내밀었던 발을 후다닥 뺐다.

나만 들은 게 아니었다.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돌아봤다. 얼굴에 쓰여 있었다.

너도 들었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우리는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애들아. 이 목소리 아까 그 할머니 아냐?”

 

송재용이 입을 연 순간, 갑자기 위윙-’ 바람이 밀려왔다.

짙은 그림자가 하늘에서 툭 떨어졌다. 드리워진 게 아니었다.

누군가 하늘에서 던지듯 갑자기 내리 깔렸다.

 

하지 마.”

 

우리 모두가 똑똑히 들었다.

바람결에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휘이잉-’ 바람은 점점 거세져 옷깃을 벌렸다.

공포로 곤두선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렸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뒤로 잡아당기는 힘이 느껴졌다.

 

이거 바람이지? 바람이지?”

 

송재용이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뭉쳐!”

 

누군가 외쳤다. 우리는 우르르 한데 뭉쳐 서로를 감싸 안았다.

휘위윙윙-’ 바람은 더욱 거세져 대지의 모든 걸 뒤흔들었다.

 

살려주세요!”

 

누군가 외쳤다.

 

닥쳐!”

 

휘위잉잉-’ 세찬 바람 속에서 누군가 악을 썼다.


돌아가자!”

 

드디어 정상적인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청춘은 너무나 충동적이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도 반발하지 않을 수 없다.

 

씨발! 꽉 잡아! 질 수 없다! 가자! 가자! 우린 사나이다! 남자다!”

 

누군가 외쳤다.

 

“....”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 우린 남자야! 지금 돌아가면 겁쟁이야!”

 

남자 다섯이 서로를 껴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으샤!”

 

누군가 기합을 넣었다. 모두가 한 발 옆으로 빼어 옆으로 옮겼다.

 

으샤!”

 

다른 발이 따라 옆으로 옮겨졌다. 이제 몇 발자국만 가면 저쪽 세상이었다.

 

! ! ! ! ! !”

 

비명 같은 새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엄마~”

 

송재용이 울기 시작했다.

 

야야. 가자. 내가 잘못했어. 모두 돌아가자.”

 

민석호도 벌벌 떨며 말했다.

 

개소리마! 귀신년에게 질 수 없어! 우린 할 수 있어!”

 

강익준이 악을 썼다. 우리 다섯이 휘위윙윙-’ 바람 소리에 찢길 것 같았다.

신동규는 발에 힘을 주고 우리를 이끌었다. 강익준이 신동규를 격려했다.

 

우린! 할 수 있어! 우린! 할 수 있어!”

안 돼!”

 

민석호는 반발하며 발에 힘을 주고 버텼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생각이 일치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내 발은 다가갔나? 버텼나?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신동규는 동기부여 강의에나 나올듯한 구호를 외쳤다.

발에 힘을 주고 우리를 리드했다. 대체 이 녀석은 이 모험에서 무엇을 봤을까?

왜 이리 열성인가? 왜 삶을 불태워 위험으로 달려드는 걸까?

한 발, 두발, 세발, 드디어 우리 발들이 잔디에 닿았다.

민석호는 끝까지 닿지 않으려 힘을 주고 버텼다.

송재용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결정하지 못했다.

 

에에에에...”

 

결국에는 뭉개진 말소리를 내며 어쩡쩡하게 잔디에 발을 넣었다.

우리가 이쪽으로 넘어온 순간,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FM 99.5 라디오 방송입니다.”

 

라디오 방송 소리였다.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한 소리에 한 순간 모든 게 사라졌다. 바람이 잦아들고, 그림자는 걷어졌다. 새 소리도 사라졌다.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남자 다섯이 서로를 껴안은 게 민망할 정도로 아무 일이 없었다.

 

오늘 날씨를 알려드립니다. 날이 추워져 해가 짧아졌는데요. 새벽 7시부터는...”

야 뭐야?”

뭐야?”

뭐야?”

뭐냐고?”

왜 따라해?”

 

남자 다섯이 제각기 한 마디씩 던졌다. 민망하게 서로를 껴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당장에 손을 털었다.

그때 생각했다. ! 우리가 스스로에게 쫄아서 과잉반응 했구나.

그러나 할머니 목소리와 새 소리는 분명 진짜였다. 하지만 아무도 따지지 않았다.

 

아하하하하하!”

 

남자 다섯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웃음이 할머니 목소리와 새 소리, 바람을 따지기보다 한 순간의 해프닝으로 만들어 버렸다. 강익준이 민석호에게 삿대질했다.

 

쫄았어!”

인정! 인정!”

 

민석호는 순순히 인정했다. 표정이 맑고 개운했다. 친구들이 화해했다.

지직-’ 어디서 라디오 잡음이 들렸다. 나는 아직도 끝나지 않음을 느꼈다.

 

“...라디오 소리는 뭐지?”

 

송재용이 주머니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꺼냈다.

 

내꺼야. 나 라디오 듣거든. 이어폰 눌려서 켜졌네.”

아하하하!”

 

갑작스런 반전에 모두가 웃어버렸다.

얼빠진 친구와 얼빠진 반전. 방금 전의 공포를 정말 아무 일도 아니게 만들었다.

내가 느끼던 혹시나 라는 긴장도 한 순간에 소멸했다.

 

아하하하!”

 

우리의 웃음은 임계치를 넘어섰다. 미친 듯이 웃고 또 웃었다.

방금 전 겪은 공포를 털어내려는 아우성이었다.

웃음으로 우리가 보고 겪은 모든 공포현상을 합리화했다.

우리가 너무 쫄아서 자연현상에 과잉반응 했다 라고.

별 것 아닌 현상으로 치부하려 연기했다.

우린 환청을 들었어. 바람은 우연이야.

새 소리가 울린 건 괴담이 가짜라는 증거잖아?

우린 평생 잊혀 지지 않을 술안주 거리 추억을 만들어 냈어.

그리고 청춘은 누가 자멸적인 행동을 가장 위험하게 했느냐? 로 영웅을 기린다.

 

! 신동규! 너 멋있었어.”

 

칭찬에 인색한 강익준이 신동규를 인정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생각이 다시 일치했다.

신동규는 뿌듯한 표정이었다.

 

우리가 용기의 관문을 넘었다!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어!”

 

만화대사처럼 오버했다. 정확히 소년만화 같은 대사였다.

유치하고 오그라드는 말이었지만, 묘하게 진지했다.

이 녀석 단순히 우리와 함께 이런 체험을 하고 싶었던 걸까?

우리를 그토록 믿은 건가? 친구라고? 아쉽게도 우리 중 네 명은 지옥에 있다.

단 한 명만 지옥을 피해갔다.

 

그럼. 그럼.”

짜식 멋있는 말 하네.”

 

남자들이 한 마디씩 보탰다.

우리는 할 수 있어! 유치하지만 단순한 말이 우리의 심금을 울렸다.

우린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이 솟아났다.

 

가자!”

 

누군가 외쳤고, 모두가 봉분을 향해 달렸다.

두두두-’ 마치 야생마들처럼 우르르 달렸다. 우린 이겼다. 해냈다.

거칠 게 없었다. 할머니의 목소리와 새 소리. 달리면서 한 순간 눈치를 봤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범한 밤의 풍경이어서 권태로울 지경이었다.

우리는 파괴충동에 휩싸여 지루한 풍경을 깨부수려 소란을 피웠다.

 

달려라!”

가자!”

우리가 간다!”

 

우르르-’ 아무도 없는 잔디밭을 축구장마냥 힘껏 가로질렀다.

용기를 끌어내어 씩씩댔다. ‘타다다닥봉분 앞에 멈춰 섰다.

봉분 앞에 묘비석이, 주위에는 묘표석이 서 있었다.

 

뭐야? 아무 것도 아니잖아?”

 

송재용이 툭 말했다.

내가 봐도 그냥 평범한 묘지였다. 봉분 뒤에 돌로 된 곡장을 두르고 묘표석을 세운 것만 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묘지였다.

 

“...뭐야 이거 뭐라는 거야?”

 

신동규가 묘비에 적힌 한자를 가리 켰다.

 

“....”

 

혹시 아는 척하는 강익준이 대답할까 기대했지만 조용했다.

송재용이 의외의 지성을 발휘했다.

 

유명조선국 옥산부대빈장씨지묘

~”

 

모두가 감탄했다. 강익준이 끼어들었다.

 

그래서 뭔 뜻이냐고?”

몰라. 조선시대 장씨 묘라는 뜻 아닌가?”

 

송재용이 애처럼 가볍게 대답했다.

드라마로 수도 없이 만들어졌던 그 후궁이 맞았다.

 

“...후유.”

 

강익준이 한숨인지, 신음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냈다.

나도 그 후궁이 얼마나 악독한 인물인 줄은 알지만, 막상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뭘 더 해야 하는가? 우물쭈물 했다. 어색했다.

 

이것보자고 여기 온 거야?!”

 

신동규가 일갈했다. 싸가지 없게 말했지만,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청춘을 실망시키면 누구도 브레이크를 걸 수 없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냐 는 문제는 아니었지만, 우리를 실망시킨 자체가 괴담이 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신동규가 씩씩대는 패기로 짜증을 부렸다.

 

뭐냐고~”

 

대답할 리 없었다.

 

뭐냐고요?!”

 

승리로 인한 히스테릭한 광기에 휩싸였다.

누가 신동규를 막을 수 있겠는가? 신동규가 거침없이 호쾌하게 질렀다.

 

안녕하세요! 절하러 왔어요. 귀신 년아!”

 

영웅이 앞장서자 우리 모두 광기를 따랐다.

폭언으로 혼돈을 끌어내어 한 데 뒤섞였다.

 

좆나 후 달리네. 야 무섭다!” “좆까!” “줄 거 있으면 빨리 내놔!”

시집보내 준대 매! 여자 내놔!” “저는 섹스하고 싶어요!”

여기 와서 남 자는데 뭔 깽판이야!” “니는?” “죄송해요!”

낄낄 손님 왔으니까 빨리 손님 받어!” “야이. 씨발 년아. 그러니까...“

어쩌구 저쩌구 소문이 사실입니까?” “대답이 없어?”

잘못 했으니 왕에게 버림받았지!” “. 꼭 돌까지 던져야 겠냐? 그럼 내가 일 빠따!”

나 다음 너는?” “예의 있게 인사부터 합시다!” “나는 싹싹 빌 거야.”

다 같이 해! 모두 절합시다!” “좆나 이쁜 년하고 떡치고 결혼하고 싶어요!”

저는 아니 예요!” “이 새끼 구라치고 있어!” “! 마음이 예뻐야 얼굴도 이쁘지!”

차 끊겼겠네. 아 좆같네. 고작 이 쇼 하려고 왔어?”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콱 고만 해라! 친구끼리 의리!” “쪽 줄 필요가 뭐 있냐?”

쇼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야!” “의리!”

 

배설하는 듯 한 충동으로 입을 놀렸다. 우리의 말이 죄가 됐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승리에 눈이 멀어버린 우린 패자에게 관대하지 못했다.

신동규가 넙죽 절을 했다. 강익준도, 민석호도 나도 따라서 절을 했다.

송재용이 춤을 췄다. 애 같은 태도 때문에, 그간 뭘 해도 어색했는데 이번에도 어색했다.

 

낄낄

 

먼저 한 친구가 바보 같아지자 다 같이 춤추는 건 자연스레 포기했다.

-’ 신동규가 뒤돌아 돌을 던졌다. 민석호는 물수제비 하듯이 돌을 던졌다.

송재용이 돌을 던졌지만, 튕겨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가 튕긴 돌을 발끝으로 쳐냈다. 강익준이 송재용의 뭘 해도 어설픈 태도를 하고 비웃었다.

연극적으로 쇼하는 분위기를 풍기며, 절을 하고, 춤을 추고, 뒤돌아 돌을 던졌다.

진지함 없이 죽은 자를 모욕하는 행위였다. 우리의 행동도 죄가 됐다.

낄낄우리의 연극에 웃음을 터뜨렸다.

 

미숙이 년. 곧 죽여야 하는데...”

따먹게 해달라고 빌까?”

결혼 아니고 그것 만 따로 들어줄 수는 없나?”

 

죄 많은 생각도 공유했다.

우리가 가진 모든 더럽고 사악한 말과 행동과 생각을 거침없이 배설했다.

우리의 모든 죄가 봉분에 쏟아졌다.

 

우리는 모두 한 달 뒤에 사고를 당해 죽었다.

 

끼이익-’ 교통사고로 죽었다.

!’ 가스폭발사고로 죽었다.

아아악!’ 추락사고로 죽었다.

첨벙!’ 물에 빠져 익사했다.

우리는 죽은 후 우리가 죄 지은 이 자리에 붙박였다. ...

 

다 같이 이곳에서 죄를 지었다.

그때 그렇게 알았지만 단 한 명은 아니었다.

단 한 명은 살아있기에 이 지옥에 끌려오지 않았다.

왜일까? 그리고 누구일까?

 

다시 한 번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이루어진 지옥이 반복된다.

 

민석호의 이야기로 또 우리의 죄가 시작됐다.

야 니들 이 이야기 알아? 후궁괴담?”

야밤에 후궁무덤에 절하고, 춤추고, 돌을 던지면 남자가 붙는다는 전설이 반복됐다.

주르륵다들 아무 말 없이 잔에 술을 따랐다.

계속 술을 마셔야 했다.

술로 귀 막아버리고 평소와 같이 청춘을 무의미하게 보내야 했다.

 

여기요?’ 다른 손님이 계산을 위해 목소리를 키웠다.

구라 까지마. 새끼야!”

강익준이 -’ 술잔으로 나무 테이블을 때렸다.

학창시절 근방 박물관에 가서 와르르-’ 떠들다 온 기억이 떠올랐다.

그냥 기억을 넘겨서는 안 됐다. 신중히 또 신중히 되새긴 다음...

가지 말았어야 했다.

끼익-’ 의자 끄는 소리가 났다.

. 가자!”

모두가 말로 죄를 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웅웅-’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 교양 수업 때 미숙이 엉덩이 봤냐? 죽이지 않냐?”

그럼 죽이지.”

그럼 죽여야 하지 않냐?”

낄낄웃는다. 생각으로 지은 죄를 공유했다.

. .’ 신동규가 힘찬 발걸음 소리로 앞장섰다.

모두가 행동으로 뒤따랐다.

지직.’ 운동화가 진입로 바닥을 밟아 마찰 소리를 냈다.

이곳에서 멈췄으면 수많은 죄에도 징벌 받지 않았다.

낄낄그러나 정신 못 차리고 자멸하는 데 열중했다.

하지 마.’ 내 손바닥이 돌담에 힘을 줄 때 미세한 소리를 들었다.

그럼에도 기를 쓰고 죄를 지으려 향했다.

어딜 가는 거여?” 할머니가 가로 막았다.

우리를 구해줄 구세주였다.

. .’ 신동규가 할머니 말을 무시하고 걸어갔다.

우린 구원받을 자격을 스스로 내던졌다.

저어기가 우리 집이예요!” 신동규가 할아버지를 농담으로 깔아뭉갰다.

대박!”...‘낄낄우리는 친구의 무례함을 자랑으로 여겼다.

한 번 더 구원받을 기회는 오지만, 우리는 패기에 눈이 멀어 있었다.

이제와 되새기니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는 그림자가 없었다.

 

! !’ 그곳에 도착하자 단말마 같은 새소리가 들렸다.

!..!’..‘!..!’..‘!..!’..‘! !’..‘! !’

새 소리가 비명으로 우리를 막아섰다.

하지 마.’ 그 할머니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애들아. 이 목소리 아까 그 할머니 아냐?”

마지막 경고였다. 이때 돌아가야 했다.

휘위윙윙-’ 오지 말라는 경고를 도전하라는 계시로 받아들였다.

휘위잉잉-’..‘휘위잉잉-’..‘휘위잉잉-’..‘휘위잉잉-’..‘휘위잉잉-’

우리를 살리려는 경고에도 죽고자 기를 썼다.

씨발! 꽉 잡아! 질 수 없다! 가자! 가자! 우린 사나이다! 남자다!”

! 우린 남자야! 지금 돌아가면 겁쟁이야!”

괴담보다 겁쟁이를 더 두려워한 결과는...

우리의 죄가 끝없이 반복되는 지옥이었다.

우리는 반복되는 죄 속에서 매순간 용감하게 됐다.

휘위잉잉-’..‘휘위잉잉-’..‘휘위잉잉-’..‘휘위잉잉-’..‘휘위잉잉-’

우린! 할 수 있어! 우린! 할 수 있어!”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남자 다섯이 용기를 끌어 모아 구원을 거부했다.

용기를 끌어내어 고인을 모독하고자 열망했다.

뜬금없이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FM 99.5 라디오 방송입니다.” 우리가 지옥에 도착했다는 신호였다.

아하하하하하!” 지옥에 온 줄도 모르고 웃었다.

두두두-’ 야생마처럼 잔디밭을 내달려 봉분으로 향했다.

영원히 지옥에 못 박히고자 서둘렀다.

타다다닥봉분 앞에 멈춰 섰다.

유명조선국 옥산부대빈장씨지묘

몰라. 조선시대 장씨 묘라는 뜻 아닌가?”

악독하기로 유명한 이름을 듣고서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뭐냐고~”..“뭐냐고요?!” 한 순간을 못 참고 죄부터 짓고 말았다.

배설하는 쾌감으로 줄줄이 죄를 뱉어냈다.

 

안녕하세요! 절하러 왔어요. 귀신 년아!” “좆나 후 달리네. 야 무섭다!” “좆까!”

줄 거 있으면 빨리 내놔!” “시집보내 준대 매! 여자 내놔!” “저는 섹스하고 싶어요!”

여기 와서 남 자는데 뭔 깽판이야!” “니는?” “죄송해요!”

낄낄 손님 왔으니까 빨리 손님 받어!” “야이. 씨발년아. 그러니까...“

어쩌구 저쩌구 소문이 사실입니까?” “대답이 없어?”

잘못 했으니 왕에게 버림받았지!” “. 꼭 돌까지 던져야 겠냐? 그럼 내가 일 빠따!”

나 다음 너는?” “예의 있게 인사부터 합시다!” “나는 싹싹 빌 거야.”

다 같이 해! 모두 절합시다!” “좆나 이쁜 년하고 떡치고 결혼하고 싶어요!”

저는 아니 예요!” “이 새끼 구라치고 있어!” “! 마음이 예뻐야 얼굴도 이쁘지!”

차 끊겼겠네. 아 좆같네. 고작 이 쇼 하려고 왔어?”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콱 고만 해라! 친구끼리 의리!” “쪽 줄 필요가 뭐 있냐?”

쇼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야!” “의리!”

 

낄낄악마같이 웃고 춤추었다.

-’ 돌을 던졌다. ‘-’ 또 돌을 던졌다. ‘발로 찬다. ‘비웃었다.

고인을 모욕하는데 온 전력을 쏟았다.

 

미숙이 년. 곧 죽여야 하는데...”

따먹게 해달라고 빌까?”

결혼 아니고 그것 만 따로 들어줄 수는 없나?”

 

낄낄웃는다. 웃는다. 계속 웃는다.

우리가 이겼다. 우리는 승자다. 그렇게 믿었다.

 

끼이익-’ 교통사고로 죽었다.

!’ 가스폭발사고로 죽었다.

아아악!’ 추락사고로 죽었다.

첨벙!’ 물에 빠져 익사했다.

 

우리는 죽어서 우리가 죄를 지었던 곳에 영원히 붙박였다.

 

야 니들 이 이야기 알아? 후궁괴담?”

 

수억 번 반복되는 지옥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온다.

다시 교통사고로 죽고, 가스폭발로 죽고, 추락사고로 죽고, 익사하려 처음부터 시작된다.

 

지옥이 반복되는 동안 끊임없이 생각한다.

왜 다섯이 아니고 넷인가?

 

이 지옥의 대지는 까맣고, 하늘은 새빨갛게 붉었다.

봉분은 까만 대지와 새빨간 하늘 사이를 경계 짓고 있었다.

여인이 앉아 있었다. 괴담과는 달리 춤추지 않고 있었다.

 

무덤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우리 네 명.

영원히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지은 장소에 붙박여 버렸다.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지은 죄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려준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벌을 받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지 않는다.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우리가 지은 죄를 제외한 어떠한 말과 행동과 생각을 공유할 수 없다.

그래서 지옥에 오지 않은 단 한 명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원망? 지난 수억 번 해봤다.

그러나 원망이 닿지 않으면 자신을 파먹기 시작한다.

용서받기에는 너무 늦었다.

나는 단지 왜 다섯이 아닌 네 명만 있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오지 않은 한 명은 누구인가?

 

“...왜 입니까? 누구 입니까?”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하지만 봉분 위에 있는 여인은 돌아보지 않는다.

우우우-’ 지옥에서는 울음소리가 바람처럼 불어온다.

여인이 입은 화려한 한복이 울음소리에 휘날린다.

 

야 니들 이 이야기 알아? 후궁괴담?”

 

다시 지옥은 반복된다.

 

안녕하세요! 절하러 왔어요. 귀신 년아!” “좆나 후 달리네. 야 무섭다!” “좆까!”

줄 거 있으면 빨리 내놔!” “시집보내 준대 매! 여자 내놔!” “저는 섹스하고 싶어요!”

여기 와서 남 자는데 뭔 깽판이야!” “니는?” “죄송해요!”

낄낄 손님 왔으니까 빨리 손님 받어!” “야이. 씨발년아. 그러니까...“

어쩌구 저쩌구 소문이 사실입니까?” “대답이 없어?”

잘못 했으니 왕에게 버림받았지!” “. 꼭 돌까지 던져야 겠냐? 그럼 내가 일 빠따!”

나 다음 너는?” “예의 있게 인사부터 합시다!” “나는 싹싹 빌 거야.”

다 같이 해! 모두 절합시다!” “좆나 이쁜 년하고 떡치고 결혼하고 싶어요!”

저는 아니 예요!” “이 새끼 구라치고 있어!” “! 마음이 예뻐야 얼굴도 이쁘지!”

차 끊겼겠네. 아 좆같네. 고작 이 쇼 하려고 왔어?”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콱 고만 해라! 친구끼리 의리!” “쪽 줄 필요가 뭐 있냐?”

쇼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야!” “의리!”

 

또 한 번 끝난다.

 

우리 네 명은 같은 죄를 지었기에 같은 사람이다.

같은 지점에서 고개를 든다. 내린다. 후회한다.

무감각하다. 원망한다. 우리의 죄에 우리가 길들여졌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생각이 우리의 지옥과 일치했다.

그런데 일치하지 않은 단 한 명은 이유가 뭐지?

 

야 니들 이 이야기 알아? 후궁괴담?”

 

다시 지옥이 반복된다.

우리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면 왜 한 명은 오지 않았지?

단 한 사람만 같은 말과 행동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말도 행동도 생각도 똑같아 보인다. 우린 친구니까 당연하다.

그리고 다시 수백 번 반복된다.

 

야 니들 이 이야기 알아? 후궁괴담?”

 

다시 수천 번,

 

야 니들 이 이야기 알아? 후궁괴담?”

 

다시 수만 번,

 

쇼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야!”“의리!”

 

이제야 알았다.

지옥이 수억 번 반복되는 동안 여기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했다.

그럼에도 이 지옥에 같이 있지 않다면 진짜 친구가 아니었다.

말과 행동과 생각이 일치한 친구가 아니었다.

친구라 믿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아니다.

 

“안녕하세요! 절하러 왔어요. 귀신 년아!” 좆나 후 달리네. 야 무섭다!” “좆까!” “줄 거 있으면 빨리 내놔! “시집보내 준대 매! 여자 내놔!” 저는 섹스하고 싶어요!

 

친구가 아니라고 믿자 이제야 말이 다르게 들린다.

다 같이 말한 게 아니었다. 한 명이 다르게 말했는데 다 같이 들렸다고 착각했다.

 

“여기 와서 남 자는데 뭔 깽판이야!” “니는?죄송해요!”

낄낄 손님 왔으니까 빨리 손님 받어! 야이. 씨발년아. 그러니까...

어쩌구 저쩌구 소문이 사실입니까?대답이 없어?

잘못 했으니 왕에게 버림받았지!야. 꼭 돌까지 던져야 겠냐? 그럼 내가 일 빠따!

 

다시 수천으로 반복된다.

 

“나 다음 너는?” “예의 있게 인사부터 합시다!” “나는 싹싹 빌 거야.”

“다 같이 해! 모두 절합시다!” “좆나 이쁜 년하고 떡치고 결혼하고 싶어요!”

저는 아니 예요!이 새끼 구라치고 있어! “야! 마음이 예뻐야 얼굴도 이쁘지!”

“차 끊겼겠네. 아 좆같네. 고작 이 쇼 하려고 왔어?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콱 고만 해라! 친구끼리 의리!”쪽 줄 필요가 뭐 있냐?”

“쇼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야! 의리!”

 

동시에 똑같이 말하고, 행동했고, 생각했다 고 믿었다.

다 같이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했다고 믿었기에 다 같이 들었다.

다르게 했다고 생각하면 다르게 들린다. 광기 속에서 배설하는 충동으로 내뱉었다.

승리했다고 믿고 무덤 앞에서 무자비하게 내뱉은 폭언들이 혼란하게 뒤섞였다.

 

억겁의 시간동안 다시 처음부터 반복된다.

 

야 니들 이 이야기 알아? 후궁괴담?”

 

다시 수십 번, 수백 번, 천 번을 넘고서야 알게 된다.

 

“안녕하세요! 절하러 왔어요. 귀신 년아!” 좆나 후 달리네. 야 무섭다!” “좆까!” “줄 거 있으면 빨리 내놔! “시집보내 준대 매! 여자 내놔!” 저는 섹스하고 싶어요!

“여기 와서 남 자는데 뭔 깽판이야!” “니는?죄송해요!”

낄낄 손님 왔으니까 빨리 손님 받어! 야이. 씨발년아. 그러니까...

어쩌구 저쩌구 소문이 사실입니까?대답이 없어?

잘못 했으니 왕에게 버림받았지!야. 꼭 돌까지 던져야 겠냐? 그럼 내가 일 빠따!

“나 다음 너는?” “예의 있게 인사부터 합시다!” “나는 싹싹 빌 거야.”

“다 같이 해! 모두 절합시다!” “좆나 이쁜 년하고 떡치고 결혼하고 싶어요!”

저는 아니 예요!이 새끼 구라치고 있어! “야! 마음이 예뻐야 얼굴도 이쁘지!”

“차 끊겼겠네. 아 좆같네. 고작 이 쇼 하려고 왔어?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콱 고만 해라! 친구끼리 의리!”쪽 줄 필요가 뭐 있냐?”

“쇼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야! 의리!”

 

한 목소리만 또렷하게 들린다. 달랐다. 친구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절하러 왔어요. 귀신 년아!” “좆나 후 달리네. 야 무섭다!” 좆까!” 줄 거 있으면 빨리 내놔!” “시집보내 준대 매! 여자 내놔!” 저는 섹스하고 싶어요!” “여기 와서 남 자는데 뭔 깽판이야!” “니는?” 죄송해요!

낄낄 손님 왔으니까 빨리 손님 받어!” “야이. 씨발년아. 그러니까...어쩌구 저쩌구 소문이 사실입니까?” “대답이 없어?” 잘못 했으니 왕에게 버림받았지!” “. 꼭 돌까지 던져야 겠냐? 그럼 내가 일 빠따!” “나 다음 너는?” “예의 있게 인사부터 합시다!” 나는 싹싹 빌 거야. 다 같이 해! 모두 절합시다!” “좆나 이쁜 년하고 떡치고 결혼하고 싶어요!”

저는 아니 예요! 이 새끼 구라치고 있어!” “! 마음이 예뻐야 얼굴도 이쁘지!” “차 끊겼겠네. 아 좆같네. 고작 이 쇼 하려고 왔어?”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콱 고만 해라! 친구끼리 의리!” “쪽 줄 필요가 뭐 있냐?”

쇼는 우리가 만들어 가는 거야!” “의리!”

 

우리 모두가 같은 말을 하는데 다른 한 명은 강익준의 목소리였다.

 

“저는 죄송해요! 그러니까 잘못 했으니 나는 싹싹 빌 거야. 저는 아니 예요!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말이 달랐다.

 

-’우리 모두가 돌을 던질 때, 강익준은 돌을 던지지 않았다.

뭐든지 어설픈 송재용을 비웃었다. 고 생각했는데...

송재용만 비웃는 게 아니었다. 우리 모두를 비웃던 것이었다.

 

행동이 달랐다.

 

“...뭐야 이거 뭐라는 거야?”

 

신동규가 묘비에 적힌 한자를 가리 켰을 때.

 

“....”

 

혹시 아는 척하는 강익준이 대답할까 기대했지만 조용했던 이유가 있었다,

 

“...후유.”

 

그때 강익준은 한숨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바로 후회였다.

장희빈. 그 악독하기로 유명했던 후궁의 이름을 직접 보고서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가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같은 죄를 지을 때, 혼자 살고자 했다.

이 지옥에 왜 네 명만 있을까? 지옥에 오지 않은 한 명은 누구일까?

드디어 의문이 풀렸다.

 

구라 까지마. 새끼야!”

가서 까볼까? 너 그럴 깡 있어?”

가서 절하고, 춤추고 돌 던질 수 있냐고?”

 

강익준. 네가 여기 오자고 했으면서...

너 때문에 모두가 여기 있는데 너는 혼자 용서 받았다.

 

붉은 하늘이 열린다. 상이 맺히기 시작했다. 어떤 병실이 보였다.

침상에 어떤 여자가 누워 있다. 그때 보다 나이 먹은 강익준이 서 있다.

 

여보. 수고했어. 우리 아이 정말 잘 기르자.”

 

벌써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구나. 잘 살고 있다.

내가 입을 열어 간절한 마음으로 말했다.

 

저요. 저도 저기 가고 싶어요.”

 

이제야 봉분 위에 앉아 있는 여인이 나를 돌아본다.

봉분과 거리가 있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게 얼굴이 확실히 예쁘다.

넌 혼자 살고자 했지. 혼자 잘 살고 있네.

 

저 녀석의 아이 곁에 평생 붙어 다니고 싶어요.”

 

지옥에서도 다 풀지 못한 이 원한을 네 자식에게 안겨줄게.

내 말과 생각과 행동에 원기가 차올랐다.

 

여인의 얼굴이 보인다.

웃고 있었다.

 

“....”

 

대답은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이 소릴 듣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를 지옥에 붙잡아 두었다.

내가 원귀가 되니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여인이 일어나 춤추기 시작했다.

왜 이제야 말하니? 춤을 추고 싶었는데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게 느껴졌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송구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무서운 이야기의 맨얼굴은 웃고 있었다.

우우우-’ 지옥에서는 울음소리가 바람처럼 불어온다.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얼굴은 진정으로 관대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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