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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동네에서 온 중력 조절자

심너울

 

1

내가 에들레다를 처음 만난 곳은 마산 댓거리의 후미진 골목이었다. 몇 달 전만 해도, 어떤 극적인 만남을 바랄 만한 곳이 아니었다. 내가 굳이 그런 곳을 쏘다닐 이유도 없었고. 댓거리는 2000년이 도래한 이후 지금까지 80년 넘게 쇠락하기만 한 잿빛 거리였으니까. 그런데 최근 마산 앞바다의 콜랏빛 바닷물 아래에 잠들어 있던 에너지 데카헤드론이 발굴된 이래 전국에서 온갖 어중이떠중이들이 몰려든 것이었다.

프로미넌스의 말단 현장직인 나는 마산 댓거리의 골목을 돌아다니며 에너지 데카헤드론의 파편을 찾고 있었다. 간단한 측정기 하나를 들고 골목을 돌아다니는 내 뒤로 목소리가 들렸다.

“마, 거기서 뭐 하노?”

내가 고개를 돌리자 세 명의 덩치들이 팔짱을 낀 채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게 말을 건 사람은 중앙에 있는 남자였는데, 야구선수를 하면 어울릴 듯한 떡 벌어진 몸집이었다. 나는 몸을 돌리고 어깨를 으쓱하면서 측정기를 그들 셋에게로 향했다. 측정기의 디스플레이에 좋지 않은 숫자가 떠올랐다. 나는 순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바로 표정을 바로잡았다.

“아, 하하. 별거 아닙니다. 방사능 오염 측정을 하고 있었어요. 왜, 저번에 자유무역지대 앞쪽에서 나온 것 때문에, 아시잖습니까? 시에서 나와서.”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데카헤드론이 방출하는 에너지는 분명히 방사능에 가까운 것이었으니. 하지만 그 덩치들은 내 변명이 그렇게 맘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들은 점점 내쪽으로 다가왔다. 중앙에 있는 남자의 몸에서 조금씩 빛이 새어나왔다. 그 후광은 결코 신성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공격성의 상징이다. 능력을 사용할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어떤 문디가 양복을 입고 오염 조사를 하러 다니노? 니 프로미난스제? 여기서 우리 데카헤드론 들고 서울로 가지갈라고 하는 거 아이가?”

마산에 오면서 이러한 위험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에너지 데카헤드론이 발견되는 곳은 어디에나 불필요하게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이윽고 그들의 얼굴을 분명히 식별할 수 있을만큼 가까워졌다. 가장자리의 두 남자에게서도 조금씩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나는 셋의 파장을 주시했다. 중앙의 남자는 B-급 정도의 순수한 역장 투사 능력(역장맨이라고 칭하겠다), 가장자리의 하나는 C+급의 분쇄 능력(분쇄맨), 또 하나는 C-급의 전이력(물론, 전이맨).

절대적인 능력은 약하지만 파훼하기 힘든 조합이었다. 나는 다급히 전략적인 자세를 취했다.

“지, 지금 뭐하세요?! 필요한 거 있으면 다 드릴게요!”

“니도 알지 않나?”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프로미넌스에게 긴급 구조 신호를 보냈다. 10분을 버텨야 했다. 나는 뒤로 천천히 물러서다가 무언가에 걸려 뒤로 넘어갔다.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발 쪽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무형의 역장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세 덩치가 낄낄대며 웃었다. 그들의 주의가 허물어진 동안 나는 역장맨의 정신에 접속했다. 0.79초의 찰나 동안, 나는 그의 정신에 묶여 있는 능력의 본질을 확인하고 취했다. 머릿속으로 새로운 깨달음이 밀려들어왔다. 몇십 분 뒤에 헛되이 사라질, 결코 영원할 수 없는 앎.

나는 튕겨나듯 일어나면서 두 팔을 앞쪽으로 흩뿌렸다. 무형의 힘이 내 앞을 둘러싸면서 앞쪽의 세 사람을 뒤로 밀어냈다. 자, 넘어져라! 하지만 그들은 그저 휘청일 뿐이었다.

“뭐고! 니도 역장이가!”

내 능력은 그런 무식하고 수준 낮은 것이 아니라… 젠장, 하여튼 힘이 부족했다! 본부에 있을 때 역장을 좀더 연습했어야 하는데. 나는 자리에 죽치고 앉아 내 능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설명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나는 앞에 커다란 덩어리를 만든 다음 뒤로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대단히 전략적인 선언을 내뱉으면서.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뒤에서 커다란 붕괴음이 들려왔다. 분쇄맨이 내가 기껏 깔아 놓은 역장을 순식간에 박살내는 소리였다. 역장 한 개가 부서질 때마다 내 마음 속에 만들어 놓은 연결이 하나씩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유지하는게 쉬워보이지 않았다. 나는 역장을 띄엄띄엄 설치하면서 골목길을 죽자사자 달렸다. 내가 대로로 나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마! 프로미넌스 따까리 새끼야!”

“절로 몰아라, 절로!”

괴성이 들려왔다. 프로미넌스의 주구인 나를 비난하는 목소리였다. 그 중에는 대단히 중대한 오해가 섞인 이야기도 많았다. 왜 프로미넌스를 이렇게 싫어하는 거야? 그렇게 나쁜 회사는 아닌데! 하지만 난 회사 변호사가 아니라 그냥 말단 직원일 뿐인걸.

3분쯤 달린 뒤에, 나는 멈춰섰다. 내가 신체 훈련을 열심히 안 해서가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 남자들의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따돌린 건가? 나는 멍청히 막힌 벽을 바라보면서 숨을 바로잡았다.

그때 내 앞에 허공에서 보라색 안개가 사람의 모습으로 화하더니 나를 덮쳤다.

“으악!”

전이맨이었다. 그는 내 두 팔을 잡아채더니 무릎을 꿇렸다. 다른 두 놈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내게 걸어왔다. 내게 힘을 빌려준 역장맨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 잠깐만요. 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저, 저는 그냥 프로미넌스 비정규직인데, 저한테 왜 이러세요.”

“니가 데카헤드론 가져가서 이제야 살아날라고 하는 마산 경기 다시 죽일라고 하는 거 아니가?”

역장맨이 준엄하게 선언을 하는 동안 옆에 있던 분쇄맨이 어디서 구해온 콘크리트로 차력 쇼를 보여주었다. 그의 손 위에 있던 콘크리트 덩어리가 새하얀 빛과 굉음을 발하더니 철저히 조각나는 것이었다. 분쇄맨이 자신의 능력 사용에 있어 창의적인 윤리 기준을 들이댄다면 내 머리도 정확히 똑같은 꼴이 될 수 있었다.

“아, 하하, 그, 그런 게 아니라요, 저, 저는… 사, 살려주세요!”

너무 무서워서 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긴급 구조대가 올거라는 희망도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계속 말했다.

“살려주세요! 흑흑, 저는 그냥 프로미넌스 말단이구요. 저는 그냥 취업이 잘 안돼서 어쩔 수 없이 취업한거거든요. 보시다시피 제 능력도 한계가 있구요…”

그때 갑자기 가슴이 덜컹 하고 내려앉았다. 아니, 방금 전에 전이맨한테 붙잡혔을 때라든가 분쇄맨이 차력 쇼를 보여줄 때도 가슴은 내려앉았지만, 이것은 좀 다른 느낌이었다. 뭐랄까, 심리적인 덜컹과 물리적인 덜컹의 차이? 내 팔을 잡고 있던 전이맨의 힘도 느껴지지 않았고, 온 몸이 좀더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위쪽에서 무언가 나를 강하게 당기는 힘을 받았다가, 다시 천천히 몸에 힘이 빠졌다. 혹시, 설마, 나 죽은 건가?

나는 눈을 천천히 떴다. 가슴이 또 덜컹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나는 하늘에 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장맨과 분쇄맨과 전이맨 모두가 나와 같은 꼴이었다. 그들은 신기한 자세를 취하면서 공중에 멈춰 있었다. 아이작 뉴턴이 관짝을 박차고 튀어나올 광경이었다… 잠깐, 뉴턴?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 아래서 스스로의 힘으로 빛나는 사람이 우리 넷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척 봐도 최소 B+급의, A0급까지 나올 수도 있는 파장… 나는 바람에 휘날리는 그의 달 먼지 색깔을 띈 회색 머리카락과, 지나치게 가느다랗고 길어 사람의 것 같지가 않은 손가락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입을 열더니 말했다.

“자기 능력 가지고 남을 괴롭히면 안되겠지?”

억양이 탈색된 목소리. 그는 월인이었다. 그리고 이 능력은 달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중력 조절 능력이 틀림없었다. 이렇게 강력한 중력 조절자는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의 정신에 비집고 들어가려는 시도를 해 보았지만 곧바로 속절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능력만큼 그의 의지는 강인했다. 내가 능력을 잠시 빌려오거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 이상.

그는 하늘 위에서 완전히 음악에 몰두한 지휘자처럼 손끝을 휘둘렀다. 그의 우아한 지휘에 따라 나를 쫓던 양아치 셋은 커다란 비명을 지르면서 댓거리 골목의 머나먼 편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나는 천천히 중력을 얻으며 지상으로 사뿐히 내려왔다. 나는 하늘에서 나를 따라 월인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 월인이 발하던 찬연한 광채는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나는 친근한 중력에 감사하며 주저앉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월인을 바라다보았다. 월인은 차가운 무표정을 띈 채, 방금 전의 그 억양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몸은 괜찮아?”

“아, 네…”

“여기가 갑자기 능력이 발현된 사람들이 많아서 위험해. 저 쪽으로 나가면 바로 대로니까, 안전한 데로 들어가. 알았지?”

“사,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그렇게 말하고서 월인은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사뿐한 걸음으로 골목 속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의 뒤에 대고 물었다.

“저, 이,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혹 자경단이시면 정해둔 히어로 네임 같은 게 있나요?”

“에들레다.”

“네?”

“나는 에들레다야.”

그렇게 말하고서 에들레다는 사라졌다. 프로미넌스의 긴급 구조대는 12분 뒤에야 도착했다. B+급 전이능력자가 있었는데 대체 왜 이토록 늦었는지는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여튼, 나는 전이능력자와 함께 프로미넌스가 전세를 내 놓은 호텔로 순간이동했다. 지친 몸을 욕조에 뉘이면서 나는 계속 읊조렸다.

에들레다, 에들레다. 나와 유전자부터 다른 달의 이방인들, 그들의 이름은 아름다웠다.

 

2

6년 전부터 지구와 달의 각지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에너지 데카헤드론은 그 영향에 오래 노출된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능력을 주었다. 이 에너지 데카헤드론의 출몰은 그야말로 뜬금 없었다. 이미 수천년 간 파 먹은 암염 광산의 입구에 어느날 떡하니 빛나는 다면체가 놓여있다든지, 석굴암 중앙에 에너지 데카헤드론이 나타나 방사능 수치가 폭증한다든지,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데이터 케이블 중간에 나타나 며칠 동안 인터넷을 마비시킨다든지.

에너지 데카헤드론의 갑작스러운 출몰은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기괴한 다면체를 어떤 신적인 존재가 놓고 갔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에너지 데카헤드론은 원래 그 장소에 오래 전부터 존재했고, 인류가 어떤 자격을 얻게 되어 드디어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게 된 거라고 말했다.

실용적인 이야기로 넘어가자. 가장 중요한 것은, 에너지 데카헤드론에 노출된 사람들 중 약 15%가 물리법칙을 뒤트는 불가해한 능력을 얻었다는 것이다.

이제 개인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A-급 능력자 하나가 맨몸으로도 능력 없는 군인들 천 명에 맞먹는 물리력을 가진다. 그래서 세상은 나아졌는가? 아니, 안그래도 난장판이던 세상은 에너지 데카헤드론의 출몰 이후 불타는 쓰레기통 비슷한 꼴이 되어버렸다. 데카헤드론은 노출된 사람에게 무작위의 능력을 무작위의 강도로 주었다. 탁월한 윤리의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강한 힘을 얻는 것이 아니었다.

달에서는 21세기 이래 최대의 전쟁이 일어났고, 공공 치안과 테러 방지 같은 개념은 구세계의 농담 같은 개념으로 변모했으며,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성 때문에 다우 지수는 1980년대의 수치로 회귀했다. 위태로운 문명의 지지대 위에서 개인들은 줄타기를 하며 살았다.

그리고 프로미넌스는 위태로운 문명의 지지대를 지키고자 분투하는 회사다. 우리는 에너지 데카헤드론이 준 힘에 다시 고삐를 채울 것이다. 선사시대의 인간이 들판의 야수들을 길들이고 현대의 인간들이 핵분열의 에너지를 통제하는 것처럼.

그런 거창한 사명 때문에, 나는 그 고생을 한 다음 날 아침부터 이종예 팀장과 단독으로 대면해야 했다.

“월인, 중력 조절자, B+급이라.”

“B+급도 가장 보수적인 추정치입니다. 중력 조절 능력은 B+급 이상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추정하긴 했지만… 파장 자체는 A0급이었고요. 감정적으로 극한에 다다른 상황이면 능력도 따라서 강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에들레다라는 사람은 대단히 침착해 보였어요. A-급이나 그 이상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자경단 놀음이나 하고 있으면 아쉽지. 세계를 위해 훨씬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힘인데. 월인이라는 것이 좀 아쉬울 뿐이지. 충성심 있는 지구인이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지구인이 충성심이 있다니 조금 우스웠다. 이전에 상급 한국인 분쇄능력자가 독도를 쪼개놓은 건 기억하지 못하나 봐?

“네. 마산에서의 최대 대어가 될 것 같아요. 이름도 말했으니 정부에 요청해서 개인정보를 얻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건 불가능해.”

“네?”

“한국의 월인은 지난 전쟁 이후로 기본적으로 전부 불법 체류자들이야. 전이 능력 따위를 이용해 한국에 기어들어온 거지. 주민등록이 있는 월인은 없어. 애초에 우리가 그들을 거주하게 두지도 않고.”

“아, 그래서 요즘 월인들을 볼 수가 없었던 거군요. 저는 전쟁 이후로 사람들 시선도 있고 해서 안 오는 줄 알았죠.”

“프로미넌스에서 일하면서 그런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이종예는 입꼬리를 한 쪽만 올리고 웃었다.

“결국 발품을 파는 수 밖에 없어. 이봐, 유성우 씨. 당신한테 그 에들레다라는 월인을 찾는 일을 맡길게. 그 정도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숨길 수가 없으니 아주 쉬운 일일 거야. 왜, 골목에서 데카헤드론 파편 찾아다니는 거 너무 귀찮잖아? 안그래도 이번에 C급 세 명한테 죽을 뻔 했다며? B+급이 그래도 되는 거야?”

“B급도 한 명 있었습니다.”

“마이너스 아냐?”

“아니, 팀장님, 조합이 너무 효율적이었어요. 저는 저 잡으러 보낸 킬 팀인줄 알았다니까요. 그리고 제 능력이 전투용은 아니잖습니까?”

“조합이 효율적이긴 무슨. 흔해빠진 동네 양아치들이지.”

“에너지 데카헤드론의 영향에 직접 노출된 양아치들이라는 건 분명히 해 주세요.”

이종예는 기지개를 펴면서 의자를 한 바퀴 빙글 돌렸다.

“어쨌든 그 에들레다라는 월인을 찾아. 최상급 장비를 줄테니. 기회라고 생각해. 데카헤드론 파편을 모으고 다니는 짓거리보다 훨씬 쉬운 일이면서도 성과가 눈에 띄거든. 양아치들에 잡혀서 목숨을 위협받을 일도 없고. 프로미넌스에 대한 봉사의 대가를 받으라고.”

“그 월인한테 영입 제안을 하시려는 거군요?”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모로 좋은 기회였다. 월급을 더 받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거고. 나는 나를 구해 준, 달에서 온 사람을 한 번쯤 더 만나보고 싶었다. 같이 일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

새로운 장비는 곧바로 받을 수 있었다. 이전에 내가 들고 다니던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측정기와는 차원이 다른, 손목시계처럼 차고 다닐 수 있는 물건이었다. 데카헤드론 조각이 들어가 있어서, 능력이 내는 특이한 파장의 방사선을 아주 높은 민감도로 찾아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프로미넌스에서 7년 동안 구르면서 이런 장비를 실제로 써볼 수 있으리라고는 꿈도 못 꿨다.

 

3

에들레다를 찾아 협조를 구하라는 임무를 받은 지도 이 주가 지났다. 이제 에너지 데카헤드론이 갑자기 나타난 후로는 두 달이 지났고, 프로미넌스가 마산에 사람을 보낸 후로는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마산은 더 위험하고 외부인에 폐쇄적인 곳으로 변했다. 고통스럽지만, 이 미친 에너지 조각으로 밥 벌어 먹고 살다 보면 흔한 일이었다.

에너지 데카헤드론의 배치는 자연과학보다는 사회과학의 연구 주제였다. 데카헤드론은 경제적 중심과 거리가 있는 도시에서만 갑작스레 발견되었다. 서울, 런던, 뉴욕, 베이징 같은 커다란 도시에서 어느 날 데카헤드론이 떡하니 등장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데카헤드론은 중심지가 된 적이 없거나, 아니면 한때 번영하던 곳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빠른 속도로 쇠락해버린 동네나, 꽤 인구가 있지만 잘 관리되지 않는 슬럼에서 발견되었다.

마산은 두 번째 범주에 속했다. 첫 번째와 세 번째는 각각 달 뒷면의 헤르미온느와 말포이 정도가 있겠고. 현대의 신화에서 그 이름을 따온 동네 사람들이 진짜 마법을 얻다니 신기하지 않나?

사족이었다. 하여튼, 30만 명의 마산 시민들 중 약 5만 명이 능력을 얻었다. 마산역에 있던 <가고파> 시비가 박살이 났고, 철도가 뒤틀렸다. 오랫동안 텅 비어 있던 자유무역지대에서는 능력자들이 서로 맞부딪히며 무시무시한 파장을 방출했다. 능력 없는 사람들은 집 안에 틀어박혀서 공권력이 한시바삐 질서를 가져다주기를 기다렸다. 능력자들이 날뛰는 와중에 공권력이 뭘 할 수 있었을 리 없었고, 우리 프로미넌스가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상황은 잘 흘러가지 않았다. 마산 사람들은 프로미넌스와 관련된 것만 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그들은 서울에서 온 우리가 그들의 힘을 가져가리라고 믿었다. 물론 우리는 결코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는다. 에너지 데카헤드론을 서울 같은 인구 과밀 지역에 가져가는 것은 미친 짓이다. 서울에 사는 이천만 명 중 20%가 능력을 얻는 순간, 그 즉시 한강은 피로 물들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야 아무래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마산 사람들은 근현대사 속에서 경공업과 무역을 통해 꽤 잘 나가던 이 바닷가 동네가 창원에 흡수되고, 경제적으로 쇠락하는 것을 봐온 사람들이었다. 에너지 데카헤드론은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였다. 당연히 외부인들을 배척할 수 밖에 없었다. 외부인을 배척하는 정도면 다행이었고, 약탈경제가 시장경제를 대체할 수 있는지 실험적인 연구를 진행해보고자 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에들레다가 숨어서 지내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누가 봐도 뻔히 알 수 있는 월인이었고, 이종예가 말한 대로 정부에 등록되지 않은 불법체류자였다. 비록 어중이떠중이들이 옷깃도 못 스칠 정도의 힘을 지녔지만 약탈자 중에 A급 능력자가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에들레다는 내 예상과 완전히 정반대로 행동했다.

임무를 받고 일주일 동안 소득 없는 탐색을 진행하다가, 나는 마산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는 여기저기 피가 물든 지저분한 복장을 입은 채로 엎드려 있었다. 마산이 무법천지가 된 이후로 텅텅 빈 거리에 숨이 넘어간 사람을 발견하는 건 흔한 일이었고, 나는 적당히 프로미넌스 치안유지팀에 그 사실을 알리고 다시 업무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남자 옆으로 가니 팔에 낀 측정 장비가 강하게 울리는 것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다가가자 측정 장비의 진동이 더욱 강력해졌다.  그런데 다가가 보니 무언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를 뒤집으려고 시도했다가, 이상할 정도로 무겁게 느껴져서 낑낑댔다. 기합소리를 넣고 그를 뒤집었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는 눈을 뜬 채로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어, 너!”

나는 즉시 그를 알아보았다. 에들레다를 만난 날에 보았던 그 분쇄맨이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입을 뻐끔거리더니 간신히 목소리를 짜냈다.

“사, 사, 살려주소.”

그의 몸에 잔존한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이것은 분쇄맨이 가진 에너지가 아니었다. 분쇄맨의 몸에 누군가 중력을 조절하는 에너지를 걸어둔 것이었다. 그는 몇 배로 강한 중력을 받고 바닥에 쳐박혀 있었다.

“이건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뭐야, 또 월인한테 걸린 거야?”

“예, 예. 월인 가시나가 갑자기 나타나서… 이 동네에 아무 악행도 벌어지지 않도록 하긋다고…”

뻔했다. 에들레다였다. 중력 조절 능력은 월인 중에서도 극도로 드물고, 마산에 두 명 이상의 중력을 조절하는 월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치안유지팀에게 메세지 하나를 더 보냈다. 지게차를 끌고 오는 편이 더 좋을 거라고. 그 분쇄맨은 이제 프로미넌스에서 신나게 교육을 받고 있다. C급 분쇄 능력자도 산업현장에서 쓸 데가 많으니까.

그 이후 하루에도 여러번씩 마산의 약탈자들이 중력에 묶여 바닥에 처박혀 있는 것이 발견 됐다. 중력 다섯 배 정도면 꼼짝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어야 했다. 몸무게가 다섯 배가 되는데 도리가 있나. 그들은 ‘악마 같은 월인’이 하늘에서 갑자기 나타나 그들을 순식간에 제압한다고 증언했다. 우리는 근처 공장에서 지게차 기사들을 징발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약탈자들을 본사로 데려가면, 이종예가 자신의 능력으로 약탈자들을 해방시키고 훈련소로 보냈다. 그들은 반중력 부상 열차를 타고 일괄 이동했다.

하지만 약탈자 외의 사람들은 그 ‘악마 같은 월인’에 대해 대단히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실제로 마산은 에들레다 덕분에 더 안전한 곳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치안유지팀의 통계에 따르면 범죄 발생률이 유의미하게 줄어가고 있었다. 마산 사람들은 서울에서 온 프로미넌스보다 정체불명의 월인을 더 좋아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혼란한 시대의 진정한 영웅으로 떠받들기까지 했다.

에들레다는 정말로 자경단 놀이를 하고 있었다. 능력을 얻게 된 사람들 중에서도 꽤 흔한 유형이었지만,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물론 에들레다처럼 강력한 A급 능력자는 지극히 드물지만, 상성이 잘 안 맞는 적수와 만나거나 너무 많은 수의 악당들과 만나면 속수무책으로 제압당할 수 있다. 갑자기 강력해진 자기 힘을 과신하는 것이다. 걱정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의아한 점도 있었다.

일주일 뒤, 나는 바닥에 처박힌 약탈자에게서 힘을 해제하고 있는 이종예 옆에 서 있다가 말했다.

“뭔가 이상해요.”

“뭐가?”

“에들레다의 능력은 중력 조절이잖아요? 그런데 중력 조절 능력의 발현은 인종에 따른 게 아니잖습니까? 중요한건 능력을 얻을 당시의 위치죠. 지구인들 중에도 달에 있다가 중력 조절자가 된 사람이 드물지만 분명히 존재하고요.”

“그렇지.”

“그리고 달에는 지난 1년 동안 데카헤드론 출몰 사례가 보고된 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에들레다는 이번에 마산에서 능력을 얻은 게 아니고 마산에 그리 길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1년도 전에 달에서 능력을 얻고, 마산에 오기까지 뭔가를 했다는 거죠.”

이종예는 답하지 않고 손을 앞으로 당겼다. 나는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팀장 님, 해제하시기 전에 제가 한 번 복제해봐도 될까요? 저도 그 중력 조절 능력을 한 번 느껴 보고 싶은…”

“스스로를 지킬 용도가 아니라면 프로미넌스 요원은 능력을 함부로 쓰면 안된다, 잘 알고 있을 텐데, 유성우 씨?”

나는 어깨를 으쓱 하고 뒤로 한 걸음 빠졌다. 순간 처박혀 있던 약탈자에게서 중력의 닻이 빠져나갔다. 약탈자는 신음을 내면서 천천히 일어났다. 나는 잠시 이종예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가라는 손 동작을 했다. 나는 프로미넌스가 전세 낸 호텔 밖으로 걸어나갔다. 밤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마산항이 있었다. 그 곳의 부두는 이제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나는 부두 위에 섰다. 나는 어둠의 장막이 내린 마산 앞바다를 보면서, 에들레다의 과거에 대해 나름대로의 추론을 했다. 어쩌면, 에들레다는 3년 전에 일어난 전쟁에 참여한 병사였을지도 모른다.

2083년 일어난 지구와 달의 전쟁은 1년간 지속되었다. 에너지 데카헤드론으로 능력을 얻은 월인들은 지구에게서 독립적인 자치 정부를 구성하고자 여러 테러를 저질렀고 결국 전면전이 일어났다. 프로미넌스의 전격적인 지원으로 지구 연합정부는 폭풍의 대양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해할 수 없는 역사였다. 그 전에도 지구 연합정부와 프로미넌스는 월인들에게 충분한 자치권과 커다란 지원을 제공하고 있었다. 달은 대기조차 없는 극도로 척박한 곳이고, 지구인들의 지원 없이는 살 수 없다.

나는 밤바다를 보면서 약간의 비릿한 실망감을 느꼈다. 나를 구해준 에들레다는 그저 달 국수주의자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때 무언가 어색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아악!”

나는 소음의 근원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이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쫓는 사람에게서는 희미한 빛이 일렁거렸다. 팔에 찬 측정기가 조금씩 진동했다. 틀림없이 능력을 지닌 무법자가 누군가를 쫓고 있는 것이었다. 빛의 세기로 보나, 측정기의 진동으로 보나 별로 센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빠르게 달렸다. 그 둘은 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나는 팔에 찬 측정기의 진동을 따라 질주했다. 간신히 도착했을 때 무법자는 희생자를 완전히 제압하고 있었다. 희생자는 쓰러져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다급히 외쳤다.

“야, 야이 비겁한 새끼야! 능력도 없는 사람을 괴롭히냐!”

무법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손에 빛이 집중된 것이 보였다. 어떤 나약한 수준의 공격 능력인 것이 분명했다. 나는 적당히 거리를 재 보았다. 무법자의 정신에 바로 접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자 내 몸을 따스한 빛이 연기처럼 감싸안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그의 정신에 들어갔다. 그의 정신 세계 속에는 자기 능력에 대한 과신이 악성 종양처럼 커다랗게 부풀어 있었다. 어렵지 않았다. 나는 2초 안에 그 능력을 취했다.

C-급 자기 강화 능력. 별 것도 아닌 새끼가.

다시 눈을 뜨자 무법자가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취한 능력을 사용했다. 불타는 혈액이 내 혈관을 질주하고, 근육이 달아올랐다. 이제 나는 그 약탈자와 동등한 초인적 근력을 가졌다. 초인이라고 해봐야 C-급 수준이지만. 글쎄, 벤치프레스로 치면 450kg 정도?

같은 힘을 가진다면, 보통의 어중이떠중이들과의 싸움에선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나는 프로미넌스에서 3년 넘게 훈련 받은 요원인걸. 특히, 고유 능력이 없고 다른 사람의 능력을 잠시간 복사하거나 하는 메타적 능력을 가진 나 같은 사람은 육탄전 대비를 지긋지긋할 정도로 해야 한다.

그 무법자는 제대로 된 스텝도 없이 그냥 달려와, 커다란 빈틈을 보이며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나는 몸을 최소한만 뒤틀면서 그 주먹을 피했다. 능력으로 강화된 무법자는 그 초월적인 힘을 이용하여 순식간에 자신의 자세를 바로하려 들었지만, 나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무법자의 명치를 강타했다.

“억!”

무법자가 나자빠졌다. 순식간에 기절했는지 몸에서 빛이 새어나오지도 않았다. 나는 프로미넌스 치안유지팀을 부르고 쓰러진 피해자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랐다.

쓰러져 있던 피해자는 내가 찾고 있는 신체 특성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칙칙한 회색빛 머리카락과 보통 사람보다 훨씬 커다란 신장, 지나치게 가느다랗고 긴 신체 말단. 나는 그의 눈꺼풀을 벌려서 의식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회색빛 눈동자가 보였다. 뇌에 상처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는 기절해 있었다.

그는 월인이었다. 나는 잠시 에들레다가 저런 저수준의 악당에게 쓰러졌나 싶었다. 좀더 자세히 확인해 보니, 그는 에들레다가 아니었다. 나는 이 월인이 어쩌면 내가 에들레다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싶었다. 나는 그를 들쳐업었다. 아이처럼 가벼웠다. 나는 골목길 안으로 걸어갔다.

몇 분쯤 걸었을까. 갑자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달동네로…”

그 어색한 억양. 에들레다와 같았다. 나는 그를 골목 구석에 앉혔다. 그는 많이 아프고 지쳐 보였으나 분명히 깨어 있었다. 그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고마운 분… 나를… 달동네로 데려다 주세요. 여기 있으면 안돼.”

“뭐요? 달동네요? 그 달동네 말하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에요. 창원특례시 마산합포구…”

그는 주소를 늘어놓았다. 나는 다급히 그 주소를 받아적었다. 주소를 다 말한 그는 다시 기절했다. 별로 멀지 않은 곳이었다.

달동네는 어떤 지역이 아니라 건물 내의 장소였다. 인터넷 지도에는 식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식당은 허름한 건물의 지하에 위치해 있었고, 간판도 없었다. 나는 월인을 들쳐업은 채로 문을 열고 단이 지나치게 높아 불편한 계단 아래로 내려가다가, 갑작스레 가슴이 붕 뜨고 귀가 멍해지는 느낌을 받고 당황했다. 그 월인이 이전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졌다. 에들레다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나는 달동네의 커다란 나무문을 열었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어, 게루! 어, 넌 첫번째!”

에들레다가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첫번째?

 

4

다 무너져가는 외견과는 달리, 달동네 내부는 커다란 바가 있는 깔끔한 공간이었다. 에들레다는 잠시 빛을 내더니, 게루라고 불린 내가 업고 있던 월인을 한 손으로 잡아들었다. 아무리 가벼워도 최소한 40kg는 될텐데. 프로미넌스에서 일하면서 온갖 초현실적인 광경을 다 봐온 나에게도 얼이 빠지는 광경이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면서 합리적으로 이 상황을 보려고 노력했다. 저 게루라는 월인에게 가해지는 중력의 크기를 줄인 것이다.

나는 에들레다가 빛을 발하는 동안 미친듯이 진동하는 손목의 측정기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는 A0급이었다. 중력을 자기 수족보다 편하게 다룰 수 있는 등급이다.

“코넬! 이리 와요, 게루가 많이 다쳤어.”

에들레다는 뒤를 돌아보고 외쳤다. 그러자 우당탕 하는 소리가 나더니 또다른 월인 한 명이 달동네의 뒤쪽에서 나타났다. 에들레다보다 훨씬 키가 컸다. 적어도 2.2m? 코넬이라 불린 월인은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며 날아오더니, 에들레다에게 게루를 건네받더니 구석으로 그를 데려갔다. 나는 코넬의 손에서 진록의 빛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 그 보기 드물다는 치유 능력이었다. 별 구경을 다하는군. 코넬이 말했다.

“아직 숨은 붙어 있어. 사흘이면 다시 걸어다니겠군.”

에들레다가 안도의 한숨을 푹 쉬고는 나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첫번째, 네가 게루를 구한 거야?”

“네? 아, 네. 저 쓰러진 월인 이름이 게루가 맞다면요. 마산항 부두 근처에서 웬 깡패한테 쫓기고 있더군요. C-급이던데요.”

“첫번째도 능력이 있어? 저번에는 별로 세지도 않은 애들한테 탈탈 털리고 있던…”

“아니, 아니, 저도 B+급 능력자거든요? 그냥 전투용으로 쓰기 애매할 뿐이지. 그런데 대체 왜 제가 첫번째입니까?”

“핑계가 얄팍한걸? 하여튼, 처음으로 구해준 지구인이라 첫번째지.”

나는 잠시 머리를 짚었다가 말했다.

“제 이름은 유성우에요.”

“유성우! 이름 예쁘네. 혹시 천문학 공부했어? 하여튼 게테루데를 구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 여기 이야기는 하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하면서 에들레다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주춤주춤 뒷걸음질쳤다. 뒤를 바라보았다. 문이 가까웠다.

“천문학은 안 했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여기는 월인들의 안식처야. 본래는 절대 다른 사람들한테 밝히지 않는데, 게테루데가 위험한 상황이라 말했나보네. 우리 서로 목숨을 구해준 거니까, 이제 서로 빚은 없는 거야. 자, 딜?”

왠지 모르게 엉덩이 쪽에 무게가 걸리는 것 같았다. 아니, 이건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에들레다가 중력을 걸고 있는 것이었다. 빠르게 사라지라 이거지.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저, 저기, 저는 에들레다 당신을 찾고 있었는데요?”

“음? 유명해지기 전에 싸인 받으려고? 코넬, 펜 있어?”

“아니, 그런게 아니라! 젠장, 업무란 말입니다. 프로미넌스에서 왔어요.”

에들레다의 표정이 급속도로 차가워졌다. 아차, 달 출신이라 지구 측에 섰던 프로미넌스를 고깝게 보지 않는 것인가? 나는 엉덩이가 무시무시하게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순식간에 주저앉았다. 나는 큰 소리를 냈다.

“어이쿠!”

“프로미넌스 놈이 여기까지 기어들어오네? 좋아. 월인들한테 무엇을 더 빼앗아가려고? 그래, 프로미넌스면 그대로 못 보내지.”

내 몸이 식당 바 쪽으로 질질 끌려갔다. 에들레다는 중력을 자기 수족보다 편하게 다루고 있었다. 나는 중력의 꼭두각시가 된 것이었다. 의자에 가까이 다가가자 내게 가해지는 중력의 벡터가 또다시 바뀌었고, 나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에들레다가 나를 혐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혹시나 그의 정신에 침입할 수 있을지 시도를 해보았으나 턱도 없었다. 그의 마음은 완전히 닫혀 있었고, 능력을 취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번에도 전략적인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최대한 비굴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잠깐만요. 에들레다님. 저는 에들레다님이 저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선생님을 스카웃하려고 이 주 넘게 찾았는데, 왜 이러시는 건가요.”

“프로미넌스 때문에 월인 삼만 명이 죽었어. 그런데 스카웃? 최소한의 양심이 있으면 감히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하, 하지만 그건 전쟁이었잖아요. 프로미넌스는 질서를 지키기 위해…”

나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땅바닥이 갑자기 너무 빠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머니 지구가 나에 대한 사랑을 표시하는 것일까? 나는 어정쩡하게 뒤틀린 자세로 땅에 처박혔다. 이제야 나는 길거리에 눌려 있던 깡패들의 신세에 완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이제 보니 에들레다는 내 몸에 적용되는 중력을 일괄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부위마다 그 정도를 다르게 해서 고통을 극대화시켰다.

나는 달동네의 방바닥에 쳐박힌 채로, 끙끙대는 소리를 냈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중력 때문에 피가 땅바닥에 지나치게 몰리는 탓인지, 머릿속에서 생각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얼마나 물리법칙에 종속된 인간인지 똑똑히 실감할 수 있었다. 1분 정도 하면 세상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괜찮은 경험일 것 같기도 한데, 에들레다는 1분을 훌쩍 넘은 시간까지 나를 이 중력의 족쇄에서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했다.

모호한 감각들만이 경험 속에 스쳐지나갔다. 에들레다와 다른 월인들의 목소리. 게루라 불리던, 내가 구한 월인 게테루데와… 코넬이라고 했던가? 그것도 애칭인가. 별명 같은 건가. 그럼 에들레다의 애칭은 뭐지? 에레? 그건 좀 에베베 하는 것 같군. 게테루데는 언제 깨어난 거지? 코르넬라가 에들레다와 말싸움을 벌이는 듯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만한 체력이 없었다.

아… 정말 허리가 아팠다. 이대로 죽는 건가? 만약 내 생체신호가 멈추면 분명히 프로미넌스에서 이 곳을 찾아올텐데. 중력을 다루는 사람이 있으니 누군가는 전자기력과 강력과 약력을 다룰 수 있는 건가? 전자기력을 다룰 수 있으면 전자장비를 마음껏 충전시킬 수 있겠군. 빌어먹을 능력 복제 같은 기괴한 메타 능력을 가질 시간에 전자기력 조종이나 개화해야 했어…

쓸데없는 생각을 끝없이 하던 도중, 몸에 걸리던 힘이 풀렸다. 갑작스레 고통이 가셨다. 고통의 앙금만이 몸에 남았다.

“어, 어, 어?”

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몸이 위로 휙 쏠리더니 천천히 회전하려 드는 것을 느꼈다. 나는 바닥에 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바닥이 나를 밀어냈다. 천장으로 나는 치솟아올랐다. 너무나 어지러워 미칠 것 같았다. 나는 바에 두 손으로 매달렸다. 어질거리는 시야를 간신히 바로잡았다. 내 눈 앞에 빛나는 에들레다가 보였다.

에들레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항구적인 디스크 문제가 생길까봐 중력을 빼 줬는데, 이제 무중력 때문에 우주 멀미를 느끼는군. 하여튼 지구인들이란. 내가 중력을 최소한만 걸어줄게.”

내 몸이 아주 사뿐히 내려앉았다.

“0.02g… 엔켈라두스 정도의 중력이야.”

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린 채로, 의자에 걸터앉아 에들레다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팔짱을 낀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 의미도 자아내지 못하는 말을 읊조렸다.

“뭐, 뭐가, 무슨. 왜, 나는… 허…”

“밥은 먹었어?”

나는 입을 쩍 벌린 채로 고갤 흔들었다.

"메뉴는 내가 고를게. 가장 지구인 입맛에 맞을만한 걸로. 직접 골라봐야 달 먼지 같은 거나 먹게 될테니. 이봐요, 리라.”

에들레다는 그러면서 바에 있는, 또다른 월인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아마도 달의 언어였을 것이다. 나는 월인의 체격에 맞춰진 좁고 긴 의자가 불편하다는 것이 그제야 깨달았다. 에들레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저 요리사는 리잘라타, 당신이 구해준 사람은 게테루데, 치료사는 코르넬라.”

날카로운 인상의 리잘라타가 내게 물컵을 가져다주었다. 그 물컵은 보기보다 훨씬 가벼웠다. 이 달동네에 있는 모든 것은 제각기의 중력을 따르고 있었다. 나는 겨우 이상한 맛이 나는 물을 식도로 넘기고 물었다.

“저, 저를 죽이려고 하시는줄 알았잖아요.”

“프로미넌스라니까 어쩔 수 없었지. 하지만 게루가 깨어나서는 말하더라. 당신이 게루를 위해 싸우기까지 했다고. 당신 같은 약골이 능력자랑 싸우려고 했다니까 어느 정도 참작해줄만 했지. 좋아, 당신이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무슨 이야기를 하러 온 건지 간략하게만 말해 봐.”

약골 아니라니까… 하지만 초월적인 힘을 다루고 있는 이 월인에겐 대부분의 사람이 약골이리라. 꽤 오랜 시간 고문을 받았던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옆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에다. 그렇게까지 말할 것까진 없지.”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코르넬라가 내 옆에 앉아 웃고 있었다. 그의 손에서 녹색 빛이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에들레다의 별칭은 에다였군.

“이봐요, 지구인. 우리 월인들 중 안 그런 사람이 없겠지만, 에들레다는 정말로 프로미넌스를 미워해요. 당신이 좀 이해해 줘. 아, 치료해줘도 괜찮지요?”

“무, 물론입니다.”

코르넬라가 손의 찬란한 빛을 내 몸에 가져다댔다. 나는 갑자기 10대 때로 돌아간 것처럼 온몸에 활기가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이것도 보통 힘은 아니었다. 아이고. 오늘 너무 많은 것을 보는군.

“코넬, 내가 지구인들을 그렇게 미워하는 건 아냐.”

에들레다가 코르넬라를 보면서 말했다.

“그래? 그럼 매일 밤마다 마산 깡패들을 바닥에 내려꽂는 건 뭐야?”

“내가 몇 번을 설명을… 그래, 야, 유성우라고 했지?”

“아, 네.”

“내가 여기서 자경단 짓을 하니까 날 찾아온 거지? 그래, 나는 프로미넌스가 제일 싫어하는 종자야. 지난 전쟁에 참여하기도 했고, 지구로 몰래 기어들어왔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라고 짐작을 했습니다. 타임라인과 데카헤드론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마산에서 능력을 얻었을 리가 없죠. 그 정도로 강한 힘이면 평범하게 살 수도 없었을 테고요… 그런데, 대체 왜? 마산에 오신 거죠?”

“여기서부터 월인들을 해방하려고.”

“예? 그럼 그… 테러?”

그때 리잘라타가 나와 코르넬라 앞에다 음식이 든 접시를 가져다 놓았다. 조금 매캐한 냄새가 났다. 에들레다는 나를 보면서 들라는 제스처를 했다. 나는 코르넬라가 음식을 먹는 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포크로 먹는 보통 음식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포크를 들어 음식을 조금씩 떠 먹어 보았다가, 대단히 진한 맛에 놀랐다. 낮은 중력 환경에서는 미뢰가 잘 작동하지 않아서 양념을 강하게 하는 건가?

달의 음식은 지구의 음식보다 훨씬 간이 셌다. 그리고, 낮은 중력 때문에 물의 표면 장력이 더 강해 음식이 쉽사리 포크에서 떨어져 흘러내리지 않았다. 내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대단히 독특한 경험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으깬 감자를 꾹꾹 씹고 있을 때 에들레다가 말을 이었다.

“월인들을 모두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나 본데, 우리는 그렇게 폭력적인 사람들이 아냐. 지난 전쟁에서 일어난 소위 ‘테러’들은 전부 프로미넌스 일당들이 조작해낸 것이었다는 걸, 너는 모르고 있나 보구나. 프로미넌스 사람인데.”

나는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폭풍의 대양에 있는 온실 40개가 월인 폭발능력자에 의해 파괴됐다는 건 지구 연합정부에서도…”

“자기 능력에 휩쓸려 잿더미가 된 사람이 월인인지 지구인인지 어떻게 알아?”

“저, 에들레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내 말이 길어지자 코르넬라가 내 스푼을 집어들더니 내 앞의 음식에 쑤셔넣었다. 나는 무슨 뜻인지 깨닫고 잠자코 음식을 퍼먹었다. 에들레다가 코웃음을 쳤다.

“너, 월인이랑 지구인이랑 유전적으로 다르다고 믿니? 달에서 처음 사람이 태어난 것만 해도 2051년이야. 그 이후로 30년 정도 지났는데 유전자에 변화가 일어나? 너 생물학은 아예 모르는구나?”

그 즈음 나는 내 몫의 음식을 다 먹어치웠다.

“하지만, 몸이 다르잖아요.”

“그건 유전자의 차이가 아니라, 그냥 신체가 달의 환경에 맞게 성장한 것일 뿐이야. 나나 너나 유전자 차이는 극히 적어. 저중력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는 다들 길쭉해지고, 심장이 비대해진다구.”

나는 컵을 닦고 있는 라잘라타의 손을 보았다. 그 손가락은 극도로 가늘었다. 저중력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의 손가락이었다. 나는 내 손을 눈 앞에 펼쳤다. 두꺼웠다. 에들레다는 웃었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사람들은 자기랑 다른 사람 너무 싫어하니까. 월인한테 어떻게든 죄를 뒤집어씌워서 전쟁을 일으킨 거지. 월인들한테 어떻게든 더 영향력을 뻗으려고. 그렇게 돼버렸어. 이제 달에 사는 월인들은 모두 지구인들의 노예니까. 지구에서는 아예 달 사람의 존재 자체가 허락받지 못하고.”

동의할 수 없었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프로미넌스의 이야기를 더 하면 고중력으로 땅바닥에 처박히는 것 이상의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좋습니다. 그럼… 마산에 오신 것과 월인의 해방은 무슨 상관이죠?”

“어, 달에는 요즘 데카헤드론이 안 나타나거든.”

“예?”

나는 멍하니 에들레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회색빛 눈동자에는 이제껏 찾아볼 수 없는 당당함이 깃들어 있었다.

“달은 지금 완전히 안정되어 있어. 능력 있는 월인들은 대부분 지구인 총독에 복속됐고. 혁명을 일으킬래야 일으킬 수가 없어. 우리는 무기를 쥘 수 없잖아. 하지만 데카헤드론이 나타난 도시는 무질서가 판을 쳐. 여기 사람들은 프로미넌스를 싫어하고. 이런 무질서에서야말로 우리 월인들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거야. 내가 당당한 월인으로서 질서를 바로잡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월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거야. 월인들을 거부하던게 잘못된 건 아니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될 거라고.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우리 월인들도 언젠가 다시 지구인들 사이에서 걸을 수 있을 거야.”

‘악마 같은 월인’이 마산을 들쑤시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를 알고 있었다. 약탈자들은 월인을 무서워했고, 능력 없는 약자들은 에들레다를 구원자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게 월인 전부를 위한 일이었다고? 꿈은 컸지만 너무나 순진했다. 나는 에들레다에게 말했다.

“하지만, 너무 위험하잖아요. 에들레다. 당신의 능력이 강하긴 하지만, 세상에 당신의 적수가 없는 것도 아니예요.”

"알고 있어. 나는 위험 없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가장 위험한 임무에서 내가 월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거야. 내 몸은 어떻게 되든 괜찮아."

에들레다의 회색빛 눈동자가 찬란히 빛났다.

 

5

달동네에서 나오면서 시간을 확인했다. 그 안에서 일곱 시간을 보냈다. 나오기 전에 에들레다는 내 몸에 걸린 중력 조절 능력을 완전히 해소해주었다. 다시 안정한 지구 중력의 품으로 돌아가자, 그야말로 고향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적당한 크기의 중력가속도가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것인지는 몰랐다. 나는 우주 여행은 가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물론 에들레다를 프로미넌스로 스카웃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에들레다는 나를 놔 주었지만, 프로미넌스 이름만 들어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월인들은 내가 전투를 벌이면서까지 게테루데를 구해주었기에 나에게 해는 끼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이 곳에 들어온 이상 맹세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맹세는 무엇을 걸고 입을 터는 게 아니었다.

“이건 특이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에들레다는 새끼손가락 마디 하나 정도 되는 크기의 볼록렌즈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 렌즈의 중심을 보자마자 심대한 편두통이 몰려왔다. 그 볼록렌즈 속으로 빛이 휘말려들었고, 주위로는 공간이 이지러졌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집중된 중력의 점이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진 에들레다의 발언은 충격적이었다.

“이걸 네 몸 속에 넣을 거야.”

“예?”

“걱정 마. 코르넬라의 능력을 이용하면 하나도 안 아프니까.”

말 그대로였다. 그 특이점 렌즈를 내 몸의 어디에다 강제로 집어넣는 것은 아니었다. 코르넬라의 치유력은, 좀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인간의 세포 하나 하나에 물리화학적 힘을 가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코르넬라의 손짓에 따라 내 왼쪽 가슴이 스스로 벌어지더니 그 특이점 렌즈를 집어삼켰다. 즐거운 광경은 아니었다. 코르넬라의 마법이 끝나자 에들레다가 웃으며 말했다.

“자, 끝났어. 이 특이점은 길거리에 쳐박고 다니던 애들처럼 내 능력과 연결되어 있고, 네가 어딜 가든 나는 중력의 차이를 통해 느낄 수 있어. 함부로 빼내려고 들면 재밌는 일이 일어날 거야.”

“재밌는 일이라면…?”

“렌즈가 파괴되면서 안에 있던 특이점이 풀려나는 거지. 중력 붕괴가 일어나서 반경 5m 정도가 완전히 한 점으로 쭈그러들 거야. 나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그리고 나서야 나는 호텔로 돌아왔다. 함부로 에들레다가 한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검증해볼 생각은 감히 하지 않았다. 에들레다의 능력은 비교적 단순한 중력 조절이었지만, 그것을 응용하는 실력은 가장 잘 훈련받은 프로미넌스 요원보다 뛰어났다. 전쟁에 참여해서일까, 아니면 위태로운 자경단 노릇을 하면서 온갖 변칙적인 상황에 마주했기 때문이었을까. 뭐, 둘 다겠지. 몸을 씻으니 지저분한 뗏국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바닥에 오래도 박혀 있었나보군. 그래놓고도 코르넬라의 치유력 때문인지 몸은 가뿐했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나는 이종예 팀장을 찾아 내가 겪은 일을 보고하려고 했다. 별로 즐겁지 않은 조식 뷔페에서 일단 식사를 했다. 이상하게 나 말고 다른 현장 요원들을 찾을 수 없었다. 하여튼, 나는 임시 업무실로 쓰던 라운지층으로 향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갑자기 가슴이 벌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가슴을 문지르면서 벽에 등을 댔다. 의무실로 가야 하나? 설마 에들레다가 렌즈에 무슨 마법을 부렸나? 그래서 이 렌즈가 내 생각과 동기를 읽는 건가?

그럴 리가 없었다. 이 렌즈가 하는 일은 미묘한 중력 섭동을 통해 에들레다가 내 위치를 감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무시무시하지만, 내 가슴 속에 든 렌즈가 내 감정을 유도하거나 할 리는 없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벽 위로 등을 미끄러뜨리며 살짝 자세를 낮췄다. 그 달동네에서 에들레다에게 들은 이야기가 계속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미넌스가 폭풍의 대양에서 일어난 온실 테러들을 기획했다고? 나로서는 들은 바가 없는 이야기였다. 믿기 힘들었다. 프로미넌스는 에너지 데카헤드론의 발견 이후 실시간으로 파멸을 향해 돌진하는 문명의 유일한 방향추이다. 이 초국제기업이 없었다면 지구는 오래 전에 이미 말 그대로 반토막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래, 괜히 마음에 불편한 의구심을 두느니 그것을 싹 해소하고 이종예에게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보고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던져 두었던 터미널을 실행했다. 순식간에 3차원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내 책상 위를 가득 채웠다. 프로미넌스 인트라넷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서 월인에 관한 키워드로 검색해 보았다.

의아하게도, 내가 접근할 수 있는 프로미넌스의 데이터베이스에는 단 한 명의 월인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2915명의 요원들은 전부 지구인이었다. 내 보안 등급이 너무 낮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저 확률상의 문제인가? 지구에는 120억의 사람이 살고 있고, 달에는 1억의 사람이 살고 있고, 월인들은 지구에도 거의 내려오지 않고… 음.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통계학은 내 전공이 아니다.

조금 더 뒤적거린 후, 나는 지난 달 전쟁에서 기록된 자료 몇 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보안 인가 등급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내용이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 손을 가져다 대 보았다. 자물쇠 모양이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장비를 스캔합니다. 임시 3등급 보안 인가가 주어졌습니다. 환영합니다, 프로미넌스의 유성우 요원님.]

그리고 3D 사진들이 떠올랐다.

나는 내 팔목을 바라보았다. 에들레다를 추적하는 데 쓰라고 이종예가 지급한 팔찌가 손목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능력이 내는 그 특유의 빛과 같았다. 젠장, 데카헤드론 파편이 들어있다더니 확실히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내가 이런 장비를 평소에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3차원 사진들과 여러 기록들을 하나씩 넘겨 보았다.

대부분은 내가 아는 내용 그대로였다. 2082년 9월 벌어진 폭풍의 대양 테러 사건은 전쟁을 촉발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다. 당시만 해도 폭풍의 대양은 달에서 가장 많은 온실들이 모여 있는 장소였고, 달의 곡창 지대였다. 달의 온실은 월인들을 먹여살리는 첨단 기술의 집합체이고. 당연히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보니 지구 자본이 많이 들어갔다. 그런데 어떤 과격한 국수주의자 월인이 지구 자본에 해를 끼치려고 그 곳을 폭발시켰다. 누가 폭발시켰든 간에 그게 지구와 달 사이 갈등의 기폭제가 되었다.

내가 대충 알고 있는 상식과 반대되는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실망스러웠다. 결국 에들레다와 그를 따르는 월인 패거리는 망상을 공유하는 힘센 사람들이었을 뿐일까? 나는 월인들에 대한 연민과 경멸이 마음 속에서 뒤엉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확실히 경멸이 더 컸다.

별다른 수확을 거두지 못한 나는 허공에서 손을 계속 흔들었다. 그러다가 내 임시 보안 등급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사진까지 홀로그램 스크롤이 내려갔다. 온실이 폭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촬영된 3D 스냅샷 묶음 중 몇 장의 사진이었다. 나는 썸네일 위에 손을 가볍게 댔다. 곧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전체가 그 순간을 3차원으로 모사했다.

끝없는 공간 속에 온갖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는 온실, 그 한가운데에 테러리스트가 서 있었다. 그는 팔다리를 쭉 편채 온 몸을 잔뜩 긴장시켰다. 그의 가슴에서 막대한 빛이 흘러나와서 거의 전신을 알아볼 수 없었다. 아마 폭발 직전이었으리라. 그런데, 그의 왼손이 빛에 아직 집어삼켜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확인해 보았다가, 깊은 기시감에 당혹했다.

그것은 평범한 손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손이면 안되는데? 나는 달동네에서 본 손가락들을 생각했다. 너무나도 얇은 손가락, 쉽게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가녀린 손가락. 머릿속에 에들레다에게 들은 말이 떠돌았다.

‘저중력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는 다들 길쭉해지고, 심장이 비대해진다구.’

나는 와락 겁을 먹고 두 팔을 앞으로 흩뿌렸다. 터미널이 종료되면서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 머릿속에 떠도는 불길한 예감 때문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왜 나는 에들레다가 특이하다고 느꼈던 거지? 지난 몇 년간 왜 나는 월인을 보지 못한 거지? 이종예는 모든 월인들이 불법체류자로 등록됐다고 말했다. 내가 외부 세상이 돌아가는 꼴에 관심이 없기는 했지만, 달 사람들을 지구에 오는 것을 막을 정도로 우리가 그들에게 적대적으로 굴어야 했나?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는데?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바람을 쐬면서 생각하고 싶었다. 프로미넌스의 요원으로 일하면 수입도 짭짤했지만, 충분한 자긍심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엉망이 된 지구의 질서를 지키는 능력자 집단의 개인인 것이었다. 하지만 프로미넌스가 지구와 달의 전쟁을 꾸몄고 월인들을 복속시켰다고? 문명은 그 보호 속에서 사람들이 진정 자유롭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 아니었나?

나는 비틀비틀 문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종예였다. 그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의 옷은 대단히 더럽혀져 있었다.

그는 내 가슴팍을 한손으로 밀었다. 나는 뒤로 주춤거리면서 밀려났다. 정신이 확 들었다. 나는 그를 보았다. 그는 평상시의 그 입꼬리 한쪽만 올리는 웃음을 유지했다. 분명한 공격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능력에 불을 당겼다. 나는 그의 정신 속 능력이 깃들어 있는 곳에 비집고 들어가려다가, 포기했다. 그는 나와 같은 등급이었고 내가 시도한다면 능력을 복제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미가 없었다.

이종예, 그도 나와 같은 메타능력자였다. 물리법칙이 아니라 능력 자체에 작용하는 메타능력. 내가 다른 사람의 정신에 깃든 능력을 잠시라도 복제하여 내 것으로 할 수 있듯, 그는 다른 능력을 완전히 무효화할 수 있었다.

무효화와 복제, 서로에게 의미가 없는 무기였다.

나는 물었다.

“팀장님?”

“시치미 뗄 필요 없어, 유성우 씨. 월인들을 찾아냈는데, 보고가 좀 많이 늦네?”

“시정하겠습니다. 바로 보고하려고 했는데 제가 좀 늑장을 부렸네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예?”

이종예는 내 팔목의 장비를 가리켰다.

“위치 추적이 안 되는 기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하여튼 됐어. 이미 그 달동네와는 용건이 끝났으니까.”

“용건을 끝내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왜, 본부로 데려가야지. A0급 중력 조절에 B+급 치유력까지! 마산에서 월척이 둘이나 낚였어.”

그래, 내가 걱정하던 그대로였다. 에들레다의 중력 조절 능력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괜찮은 능력자들이 잘 조합된다면 강한 개인쯤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을 테다. 이종예의 무효화 능력은 특히 강한 능력자를 제압하는 데 상당히 유용했다. 중력 조절 능력 하나만 막으면 되니…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두 월인이 제 동료가 되는 겁니까?”

나는 두 주먹을 꼭 쥐었다.

“글쎄, 그들은 월인이지. 테러리스트들의 피를 타고난 자들이 어떻게 문명의 질서를 지키겠나. 하지만 능력에는 언제나 쓸모가 있어. 비록 데카헤드론은 망한 동네에서만 발견되지만 프로미넌스에게는 커다란 쓸모가 있는 것처럼…”

나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이종예에게 달려들었다. 이종예는 날렵하게 나를 피하면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좋아, 해 보자 이거지. 내 두 눈이 불타올랐다.

메타능력자 둘의 싸움은 순전한 육탄전이다. 이종예도 나처럼 철저한 근접전 훈련을 받은 자였다. 나는 자신 있었다. 오랫동안 팀장으로 근무하던 이종예보다는 내가 현장에서 훨씬 오래 굴렀다. 게다가, 이종예의 더럽혀진 옷으로 볼때 그는 달동네에서 한바탕 싸우고 왔음이 틀림 없었다. 주먹을 몇 초간 주고받은 다음, 나는 그에게 저돌적으로 돌진했다.

“윽!”

이종예가 신음을 내면서 뒤로 쓰러졌다. 나는 내 몸을 휩싸는 분노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냥 발을 쓰는 편이 나았을텐데, 나는 그의 위에 올라타 팔을 치켜들었다.

그때 이종예가 두 팔로 내 가슴을 후려쳤다.

“억!”

나는 가슴을 강렬히 쥐어짜는 통증에 신음했다. 분명히, 분명히 급소를 맞았지만, 그로 인한 고통이 아니라, 나는 무언가, 왜 이렇게, 생각보다 너무 아파서, 나는 덜덜 떨었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 강렬하게 요동치는 느낌이었다. 아, 맞다, 렌즈. 나는 옆으로 쓰러졌다. 이종예가 일어서서 나를 짓밟는 것이 보였다.

의식이 잦아들었다.

 

6

악몽을 꿨다. 임무 도중에 방출 능력자가 쏜 에너지 벡터에 가슴 정중앙을 관통당하는 꿈이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의식을 되찾았다. 가슴이 쓰리고, 두근거리면서, 텅 빈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느낄 수 없는 감각이 한 번에 닥쳐오니 기이했다. 나는 내 가슴을 꽉 채운 이 기이한 기분을 최대한 무시하면서 바깥에 신경을 썼다. 나는 결박되어 있었고, 어딘가에 앉아 있었다. 몸에 가끔씩 실리는 이 관성의 무게감.

나는 눈을 떴다. 나는 수갑에 속박된 채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 어슴푸레하지만 차가운 금속성의 빛이 앞뒤로 긴 방을 밝히고 있었다. 방 안에는 희미한 조명 뿐, 자연광이 들어오는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창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몸이 가끔씩 여기저기로 쏠리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지금 나는 프로미넌스의 반중력 부양 열차 안에 있다. 반중력 열차는 공기저항을 제외한 모든 마찰에서 자유롭지만, 역시 관성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기에 내 몸이 쏠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곳은… 죄수실이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내 앞쪽, 손이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먼 곳에 세 월인이 의자 위에 옹기종기 묶여 있는 것을 보았다. 코르넬라, 게테루데, 리잘라타. 그들은 모두 대단히 지저분한 꼴이었지만 상처를 입은 것 같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입을 벌렸다.

“코르넬라.”

코르넬라가 움찔하더니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내가 본 것중 가장 강력한 치유 능력을 가진 월인, 가위로 커트한 그의 머리카락에는 에들레다의 잿빛 회색과는 또 다른 푸른 회색이 감돌았다.

코르넬라는 나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제 일어났군, 지구인. 꼴을 보니 우릴 팔아넘기고 얻은 과실이 그렇게 달콤해보이진 않아. 에다가 옳았군. 너도 똑같은 프로미넌스 놈들이었을 뿐이야. 네가 게루를 정말 구하긴 한 거야?”

그 목소리에는 원한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머리를 뒤흔들었다. 그제야 입 안이 터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컹거리는 가슴을 바라보았지만 시각적으로는 차이가 없었다.

“미안해요. 하지만 나는 당신들을 팔아넘기거나 한 적은 없어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팀장이 내 위치를 추적해서… 젠장,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에들레다는 괜찮나요?”

“네가 떠나고 나서 다섯이 넘는 프로미넌스 요원들이 들이닥쳤어. 전부 중급 이상의 능력자였고. 에다도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더군. 그 무력화 능력만 아니었어도 다 으깨버렸을텐데. 중력 조절이 차단당하니 답이 없더라. 내 능력만 아니었으면 다 죽었을 거야. 결국 우리 모두 잡혀왔지만. 에다는 다른 방에 있어. 위험하니까.”

“리잘라타와 게테루데는 전투원이 아닙니까? 능력이 없어요?”

코르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기 양 옆에 있는 두 월인을 보았다. 그 둘은 고개를 계속 숙이고 있었다.

“그래, 둘은 내가 재워뒀어. 어차피 능력 없는 자가 뭘 할 수도 없을테니…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지구인?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야? 프로미넌스가 월인들을 고용한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모르겠습니다. 프로미넌스는… 적어도 우리 한국 지부에서는 에너지 데카헤드론이 나타난 지역에서 데카헤드론의 파편을 최대한 긁어모으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끌어모아서 강원도로 데려가죠. 그 곳에서 요원들이 양성됩니다. 저는 약탈자 생활을 한 게 아니라 자원해서 프로미넌스에 들어간 거지만…”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지구에서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군.”

“예?”

“몰라? 전혀 모른단 말야? 월인들이 항복하고 난 뒤에도 그랬잖아. 프로미넌스는 달의 능력자들과 데카헤드론의 파편을 긁어모아서 고요의 바다에 있는 본부로 가져갔지. 달에서 충분히 연습했다 이거군. 이제 지구에서도 그러고 있네. 하긴, 달이나 마산이나 중력 빼고는 다를 것 없지. 달은 가장 취약한 곳이었고, 이제 지구의 취약한 동네들을 하나씩 정리하는 거지. 모든 힘은 프로미넌스가 가지겠고.”

“하,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데카헤드론이 주는 힘은 너무나 강력해요. 사람들이 그 힘을 마음대로 휘두르면 문명이 유지될 수가 없어요. 프로미넌스가 모든 면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통제를 해야 합니다. 이전에 그걸 실패했기에 달에서 전쟁이…”

“오, 아직도 월인들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생각해? 그리고 지금 우리가 기차 안에 처박혀 있는 건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서고?”

나는 입을 앙다물었다. 이종예와 싸우기 직전 본 사진들을 기억했다. 나는 울릉도에서 능력을 얻은 직후 거의 곧바로 프로미넌스에 입사했다. 프로미넌스는 능력이 좋은 곳에만 쓰이는 위대한 세계를 약속했다. 하지만 월인들은… 나는 에들레다를 떠올렸다. 누군가가 분명히 그를 억압하고 있으리라.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먼저 말했다.

“잘… 잘 모르겠어요. 차라리 당신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해요.”

코르넬라가 한숨을 쉬었다.

“이봐, 유성우라고 했지. 당신도 이제 말려들었어. 강원도로 가면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군. 우리 모두 좋지 않은 꼴을 맞겠네. 그래, 내가 믿고 따랐지만, 솔직히 에다가 순진했어. 우리가 지구인들에게 호의를 베풀면 호의가 돌아오리라고 걔는 믿었던 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너도 무능해?”

“네?”

“능력이 뭐냐고. 프로미넌스 요원이니까 능력은 있을 거 아냐. 뭐 분쇄 능력 같은 거 없어? 수갑 터뜨리고 도망치자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불가능합니다. 제 능력은 전투용이 아니에요.”

“젠장, 괜히 에다가 약골이라고 한 게 아니네. 괜히 프로미넌스 놈들이 감시도 없이 우릴 여기에 처박은 게 아니고. 정확히 무슨 능력인데?”

“전 복제자입니다.”

“복제자?”

“네, 다른 사람의 능력을 복사해서 쓸 수 있어요. 저랑 비슷하거나 강한 능력은 제가 비집고 들어가야 하지만…”

또 침묵. 나는 운명을 바꿀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은 코르넬라의 능력 뿐. 치유력으로 좀 더 활기찬 몸으로 내릴 순 있겠군.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던 차에 코르넬라가 갑자기 내 가슴을 가리켰다.

“어, 너, 그럼, 가슴!”

나는 내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기괴한 기분은 그대로였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네 가슴 속에 에다의 힘이 들어있잖아. 특이점!”

“하, 하지만… 보이지 않아요.”

“이 멍청이, 내 능력을 베껴!”

“그, 그런게 되나?”

코르넬라는 답하지 않았고, 순식간에 그의 몸이 진록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반신반의하면서 내 능력의 심지에 불을 당겼다. 나는 코르넬라의 정신에 맞닿았다. 아찔했다. 그의 정신에는 평소라면 내가 결코 비집고 들어갈 수 없는 강인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나는 인상을 썼다.

“좀 더, 좀 더 내게 마음을 열어 봐요.”

“그게 돼? 이 바보야?”

코르넬라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코르넬라의 마음에 두텁게 쌓인 수많은 정신을 방어하는 기작들이 조금씩 풀려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진록의 치유력이 내게 깃드는 것을 느꼈다. 나는 신음을 흘렸다. 내 몸에서 코르넬라와 같은 진록의 파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조, 좋아요. 이제, 이걸, 어떻게 써야 해요?”

“가슴에 정신을 집중해. 세포들이 그 속에 든 걸 밀어낸다고 생각해! 그 이미지를 떠올려! 메타능력자들은 다들 너처럼 바보야?”

“아니, 치유력 복제는 훈련받은 적이 없거든요? 저도 잘 쓰는 능력은 대단히 잘…”

“토 달지 말고 집중해!”

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내 가슴이, 속에 든 것을 토해낸다. 토해낸다. 토해낸다. 스스로 세포들이 길을 열고 상처를 만든다. 그 상처 속에 잠들어 있는, 에들레다의 힘이 깃든 렌즈가 튀어나온다. 튀어나온다… 이를 꽉 깨물었다. 그래도, 코르넬라가 내게 마음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능력을 훨씬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열린 마음에서는 능력에 대한 사용법 또한 얻을 수 있으니까.

가슴이 조금씩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다. 코르넬라가 할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그도 그렇겠지, 코르넬라는 전문가니까. 눈을 떠서 내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가슴에서 피에 물든 렌즈가 조금씩, 조금씩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생긴 구멍으로 피가 줄줄 흘렀다.

“허어, 허어, 허어어…”

“좋아, 바로 그거야, 집중해!”

특이점 렌즈가 내 몸 밖으로 튀어나와,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이전처럼 렌즈에서는 일그러진 공간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렌즈 일부가 살짝 깨져 있었다. 이종예에게 맞는 도중에 금이 간 것일까.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가슴에 난 구멍을 닫았다. 여는 것보다 닫는 게 훨씬 쉬웠다. 입에 울컥 피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피를 퉤 뱉고는 그 렌즈를 보았다.

“젠장, 이렇게 센 능력은 한 번도 복제해본 적 없는데!”

“원래 지구인들은 중요한 순간에 그렇게 나불대니?”

특이점 렌즈는 에들레다가 만든 것, 에들레다의 막대한 중력 조절 능력이 그대로 깃들었다. 에들레다는 이종예에게 능력이 무효화됐고, 그렇다면 자신의 능력에 대한 통제 또한 많이 줄었을 것이다. 내 눈 앞의 특이점은 그 누구의 의지에도 속해 있지 않은 주인 없는 힘이었다. 하지만 내가 과연 이 커다란 힘을 뽑아낼 수 있을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힘을?

뭐, 내가 힘을 통제하지 못하나 프로미넌스에게 끌려가나, 결과가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내 모든 파장을 특이점 렌즈에 집중했다. 렌즈 속에서 막대한 중력으로 일그러진 공간이 조금씩 풀려났다.

나는 힘을 얻었다.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에게 존재하는 인력, 중력. 모든 물체는 서로를 끌어당긴다. 우주의 네 가지 근원 힘 중에서 중력은 가장 약하다. 가장 강한 힘인 강력의 크기가 1일 때, 전자기력은 그 백 분의 일, 약력은 10^5분의 일이라면 중력은 10^44분의 일의 크기를 갖고 있으니. 하지만 중력은 시공간 자체를 일그러뜨릴 수 있으며, 무한한 범위에 작용한다. 블랙홀과 같은 우주의 가장 장엄하고 기묘한 현상들은 중력의 마법을 통해 일어난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껏 다룰 수 있는 힘이 잠시나마 내 속에 흘렀다.

노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내 몸에서 태양과 같은 빛이 뿜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 자신이 너무나도 빛났기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괜찮았다. 나는 새로이 얻은 감각으로 모든 물체가 내뿜는 가장 미묘하고 감지하기 힘든 중력파를 마치 내 수족처럼 전부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원래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들이 나를 방해했다. 나는 팔을 들어올렸다. 수갑에 바깥쪽 방향으로 동그랗게 형성되는 중력의 띠를 형성했다. 나를 억제하던 수갑이 바깥쪽으로 찌그러지더니 튕겨나갔다.

나는 일어서서 다리를 한 번 돌려보았다. 전능한 기분이었다. 당장 이 불쾌한 반중력 열차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내게는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때 밑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공했군! 괜찮아?!”

방금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코르넬라의 목소리임을 알았다. 나는 부푼 가슴을 조금 잠재웠다. 심호흡을 했다. 자기 힘에 지나치게 도취되어서는 안된다… 심지어 이것은 나의 힘도 아니고 잠시 빌려온 힘일 뿐. 나는 내 마음 한 켠에 찌그러져 있던 내 본래 힘을 확인했다. 이 중력 조절 능력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5분이예요.”

“5분?!”

“제가 이 힘을 쓸 수 있는 시간이요. 갑시다.”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월인들이 차고 있던 수갑을 똑같은 방법으로 해제해 주었다. 또다시 굉음이 퍼져나갔다. 그제야 앞에 봉인되어있던 문이 열렸다. 다급히 소총을 내게 겨누는 사람들 몇 명이 보였다. 너무 가소로워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딱히 동작을 취할 필요도 없었다. 내 생각에 따라 그들의 소총은 그 중심점으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찌그러졌다. 사람들은 찌그러지기 시작한 총을 놓쳤고, 당황할 시간도 없이 바닥에 처박혔다.

다른 월인들을 마취시킨 코르넬라가 내 뒤를 따라오면서 다친 사람들을 일일히 치료해주는 것을 중력파의 변동으로 느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결국 그도 에들레다와 비슷한 사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충분히 착하게 굴면 상대도 착하게 굴어줄 거라는? 너무 순진하지만 매력적인 생각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힘들었다.

나는 앞쪽으로 빠르게 걸어나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반중력 기술로 떠다니는 이 열차에게 조금씩 중력을 가했다. 중력 조절 능력을 가지게 되자, 이 인공적인 반중력이 이상할 정도로 불쾌하게 느껴졌다.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일까? 하지만, 중력 벡터를 의지에 따라 아무렇게나 조정하는 게 더 부자연스러운 일 아닐까? 나는 에들레다를 생각했다. 능력이 무효화된 상태에서도 반중력에 불쾌감을 느낄까? 알 수 없었다.

열차가 조금씩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사이렌이 울렸다. 곧 내 앞에 수많은 능력자들과 보통 사람들이 가로막았다. 마음 같아서라면 나도 좀 더 극적으로 굴고 싶었다. 에들레다처럼 하늘을 날고 싶었다. 지휘자처럼 손을 흔들며 사람들에 걸린 중력의 미묘한 변화를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나는 걸어가면서 나를 가로막는 자들을 처박고 흩날렸다.

일곱 개의 차량을 지나면서 서른이 넘는 사람들을 제압하고 나자, 열차가 급히 멈추면서 땅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나와 코르넬라는 앞으로 살짝 날아갔다. 우리 둘은 벽에 처박혔다가 천천히 일어났다. 앞쪽, 마지막 차량의 문이 열렸다.

이종예와 웬 덩치 큰 남자가 팔짱을 끼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덩치를 기억했다. 게테루데에게 큰 상처를 입힌 그 C-급 깡패였다. 이종예의 수하였군. 그 뒤, 차량의 맨 끝에 익숙한 회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에들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억제된 채로 고개를 치켜들어 우리를 지켜보았다. 나는 이를 갈았다. 힘을 이끌어내었다.

순간, 중력과의 연결이 끊겼다. 몇 분 되지도 않은 만남이었지만 나는 마음 속에 커다란 공허감을 느꼈다. 이종예가 웃었다.

“이래서 나는 상급 능력자 하나보다 중하급 능력자 여럿을 선호해. 상급 능력자는 능력 하나만 차단하면 너무 쉬워지잖아? 그에 비해 중하급 능력자들의 조합으론 별별 신기한 짓을 다 할 수 있지. 봐, 이 C-급 근력 강화자 한 명으로 내가 강한 월인 두 명을 낚고 이제 조직 내의 배신자까지 잡았잖아.”

“에들레다를 풀어줘!”

이종예는 뒤를 힐끗 바라보았다. 에들레다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대로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이종예는 싱긋 웃었다.

“궁지에 놓이니 별 이상한 말을 하는군. 처치해!”

빛나는 깡패가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껄껄 웃으며 좌석 하나를 내리쳤다. 쇠로 된 의자가 플라스틱처럼 손쉽게 뒤로 꺾였다. 나는 뒤로 주춤주춤 발걸음질쳤다. 아직 1분 이상의 시간이 남아 있었는데 나와 친한 그 중력은 되돌아올 시간을 하지 않았다. 공포가 마음 속을 뒤덮었다. C-급은 C-급이다. 저 정도 힘이면 내 팔을 쥐어짜 육즙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분명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를 딱딱 부딪치면서 말했다.

“코르넬라, 도망치세요. 저 사람은 메타능력자에요. 능력을 차단할 수 있어요. 더이상 중력을 조절할 수 없어요. 혼자 어떻게든 해 볼게요.”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옆을 바라보았다. 코르넬라도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뒷걸음질 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코르넬라는 웃었다.

“됐어. 아직 내 치유력은 살아있잖아. 다치면 고쳐줄게.”

곧 근력을 강화한 약탈자가 우리와 가까워졌다. 그는 대뜸 팔을 휘두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여전히 그의 움직임은 느렸다. 나는 그의 빛나는 주먹을 날렵하게 피했다. 얼마나 커다란 힘이 담겨 있는지 그의 팔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돌풍 같은 소리가 났다. 무서웠다. 내가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유성우 씨도 알지 않나, 우리 프로미넌스가 사회를 지킨다는걸?”

뒤에서 이종예가 나를 비웃었다. 나는 계속 들이닥치는 공격을 피하느라 도저히 입을 열 시간이 나지 않았다. 점점 몸이 무거워졌다. 내가 유효한 타격을 가할 수 있을까? 그때 에들레다가 외쳤다.

“야! 첫번째! 이 바보야! 너는 네 능력도 없어? 너도 쟤처럼 뭔가 쓰면 될 거 아냐!”

“하, 하지만, 난, 메타능력이라.”

“그럼 이 멍청이의…”

그때 이종예가 뭔가 깨달은듯 에들레다에게로 달려갔다. 그의 입을 막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나는 그 꼴을 보다가 나를 잡으려 드는 약탈자를 간신히 피했다. 휘말렸으면 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머릿속에 돌긴 했다.

나는 능력 복제자. 이종예는 능력 차단자. 에들레다는 중력 조절자. 내 앞에 이 탱크는 근력 강화자. 이종예는 지금 중력 조절을 차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무얼할 수 있었을까? 근력 강화자의 능력을 베끼는 것? 아니었다.

내가 메타능력자들끼리의 싸움은 무조건 육탄전이라는 관념에 너무 사로잡혀있었다. 나는 이종예의 능력을 복제했다. 그와 나는 비슷한 등급이었다. 어렵지 않았다. 동시에, 나는 이종예의 능력을 상쇄했다. 차단 능력이 부딪히면서 나와 그의 몸에 빛이 피어올랐다.

동시에 에들레다의 몸에 빛이 돌아왔다.

옆에서 코르넬라가 외쳤다. 우리 모두 소리질렀다.

“아, 아아아!”

갑자기 중력이 우리를 짓누르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건 에들레다가 중력으로 우리를 짓누르는 게 아니었다. 열차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건 열차의 반중력장 발생 장치가 일으키는 기적이 아니었다. 이것은 에들레다의 힘이었다. 나는 에들레다를 보았다. 에들레다는 태양보다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방금 전 내가 내뿜던 빛은 에들레다가 지금 발하는 빛에 비하면 손전등 수준도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으아아아아!”

지금까지 그 힘이 억눌리고 있던 에들레다, 그의 힘이 돌아왔다. 능력자가 감정적으로 극한에 다다랐을 때 그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해진다. 열차가 멈췄다. 우리는 관성에 따라 확 떠올랐다.

열차 속의 모든 물체가 제각기의 가속력과 제각기의 방향으로 온갖 곳으로 튕겨나가기 시작했다. 나와 코르넬라는 속절없이 세상이 수십 번 뒤집히는 경험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동안 나는 이종예와 약탈자가 한 점으로 끝없이 뭉쳐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둘은 너무나 극심하게 집중된 작은 중력의 특이점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중력 붕괴가 일어나고 있었다. 시뻘건 가스로 둘이 화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음, 맞아, 중력이 충분히 강하면 블랙홀이 될 수 있지. 지구 위에 블랙홀이 탄생한 걸 다 보는군. 도대체 이 능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지?

의문을 가지던 차에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정신을 잃고 싶었던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7

눈을 떴다. 어두웠다. 저 위로 찬란한 보름달이 둥둥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지구에서도 보이는 비의 바다의 기념비가 확실히 눈에 띌 정도로 크게 뜬 달이었다. 나는 누워 있었다. 누워 있다고 느꼈다. 코르넬라가 손에 진록색 파장을 띈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기도 전에 그가 말을 꺼냈다.

“자, 유성우라고 했나? 너는 지금 하늘에 떠 있어. 아래를 바라보기 전에 조심해. 기절하면 또 일으키기 귀찮으니까.”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일단 내 자세가 어떤지부터 알아보았다. 나는 하늘을 바라본채로 땅에 평행한 자세였다. 그러니까 누운 채로 떠 있었다. 나는 자세를 천천히 땅에 수직이 되도록 바로잡았다. 쉽지 않았다. 내가 몸에 조금만 힘을 줘도 몸이 여러 방향으로 마음껏 날렸다.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이었다.

허공에서 자세를 바로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자니 갑자기 어떤 힘이 내게 작용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강제로 바로섰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이 힘의 근원을 찾았다. 하늘 저 위에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에들레다가 보였다. 그 옆으로 게테루데와 리잘라타가 매우 익숙한 듯이 허공에 걸쳐져 있었고, 에들레다는 하늘에서 태어난 것처럼 고고히 떠 있었다.

나는 무심코 아래를 바라보았다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마음을 굳게 먹어도 역시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저 밑으로 산산조각난 반중력 부상 열차가 불타고 있었다. 화염에 휩싸인 에너지 데카헤드론이 내뿜는 빛이 눈에 띄었다. 프로미넌스의 소방대에서 보낸 능력자들이 방화 작업에 한창이었다. 전자기력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산화 반응에 손을 대면 불 쯤이야 금방 끌 수 있지. 천안 쯤이려나.

“너 때문에 우리 다 죽을 뻔 했어.”

에들레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그를 보았다. 나는 코르넬라에게 했던 변명을 또 해야 했다.

“죄송해요. 저도 정말 그러려는 게 아니었는데, 그게, 나도 모르게 이종예가 나를…”

“됐어, 그 이야기는 코넬이 다 말해줬어. 괜찮아. 게루랑 리라랑 나랑 코넬이랑 다 살았으니까.”

내 옆에 있던 코르넬라가 내게 눈을 찡긋거렸다. 나는 입을 오 하는 모양으로 벌리고는 끄덕거렸다.

“다행이네요. 이제 다 다시 마산으로 돌아갈 거에요?”

“아니, 프로미넌스가 마산에 연대 하나를 투입했어. 군대랑 맞서 싸우진 않을 거야. 당분간은 방랑해야지. 그래도 마산 사람들이 월인들을 좋게 보기 시작하는걸 보고 희망을 얻었어. 이 일은 끝까지 할 거야.”

“어디로...?”

“프로미넌스의 졸개한테 그런 걸 말해도 되나?”

모든 월인들이 웃었다. 코르넬라조차!

“아니, 제가 어떻게 프로미넌스 소속이예요. 저는 이제 절대 못 돌아가죠. 당연히.”

“그럼 뭐 할 건데?”

“어, 글쎄요…”

“사실 우리가 진로 상담을 해 줄 정도로 한가하진 않아. 첫번째 너는 지구인이고 능력도 있으니 살기 편하지 않겠어? 알아서 잘 하고. 우린 간다.”

에들레다가 말을 끝내자 월인들이 한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허우적거렸다. 그들에게 닿기 위해서였다.

“저기요, 저기요!”

에들레다가 고개를 돌렸다.

“왜, 첫번째? 아, 맞다, 중력. 내려 줄까?”

“아니. 그게 아니라! 원래 능력자 조합에는 메타능력자가 꼭 하나는 있어야 하거든요? 여러분들, 메타능력자 하나 때문에 망할 뻔 했잖아요? 복제자가 구하기 쉽지 않아요. 사실. 그것도 B+급이라면 정말로 특급 인재로 취급받는단 말이예요. 왜, 그리고 말이죠. 지구인이라고 월인들 옹호를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선의로 사람들을 지키다 보면 그 선의가 돌아올 거라는게, 여전히 좀 모호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가만 있는 것보다는 역시 움직이는게 나쁜 건 아니라구 생각도 많이 했구요. 그러니까 저 같은 복제능력자 지구인을 하나 데리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뭐 그런 추론을 할 수 있지 않겠나 싶기도 하고 그런 고민도 하게 되는데요. 흠. 코르넬라, 저 치료 잘해준 거 맞죠? 머리가 좀…”

에들레다가 피식 웃었다.

“첫번째, 너 면접 보니?”

“예?”

“됐어. 지구인도 하나쯤 있으면 나쁘지 않겠지. 지난 번처럼 게루가 먹을 것 구하러 나가다 당할 일도 없고. 아주 고된 길일텐데 괜찮아? 이 자경단 짓거리가 보상은 극히 적고 망하기는 딱 좋거든.”

아, 알고 있었구나. 왜 내가 그걸 모를 거라고 걱정한 거지?

“네. 프로미넌스는… 글쎄요, 한 번 알면 돌이킬 수 없는 게 있잖아요.”

에들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다라고 불러도 돼.”

“진짜요? 그거 애칭 아니에요?”

딱히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에들레다, 아니 에다는 침묵하고 앞으로 날아갈 뿐이었다. 곧 내게도 가속이 실렸다. 나는 굳이 굴러들어온 기회를 걷어찰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좋다, 이제부터 나는 그를 에다라고 부를 것이다. 에들레다도 아름다운 이름이지만, 언어의 경제성은 중요하지 않나. 또, 0.5초가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에들레다!’라고 네 글자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 ‘에다!’라고 부르는 게 훨씬 생존성도 오를 테고.

달에서 온 사람들의 회색 머리칼이 달빛을 받고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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