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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레스 클레이븐 언터쳐블

2020.03.20 02:4703.20

언터쳐블

돌로레스 클레이븐

1.

 

도미닉은 총성과 함께 눈을 떴다.

그는 도망가는 발소리를 따라 눈알을 굴렸다. 그러자 유리 위에 시꺼멓게 그을린 자국들이 비쳤다. 점탄성 유리를 반절 이상 파고들어온 산탄이 박혀 있었다. 도미닉은 무력하게 캡슐저택 문짝 안에 달린 빨간 버튼을 눌렀다. 치익.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기름진 공기가 캡슐 안으로 스며들었다. 2등급 거주지의 낮은 천장 위로 광고가 어지럽게 머리 위를 가로질렀다.

‘미래에서 찾아온 패스트푸드 전문점, FTL은 새로운 매장 후보지를 찾고 있습니다.’

그는 머리를 뉘인 채 멀어져가는 광고를 노려보았다. 머리가 멍했고, 아침부터 오른손이 떨렸다. V럼이 남았던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 도미닉은 저택에서 나왔다. 그리곤 몸을 돌려 퀭한 눈을 번뜩이며 저택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방금 전까지 허리를 뉘였던 쿠션을 손으로 누르자 쿠션 아래 숨겨진 사물함 하나가 드러났다. 그는 사물함 속을 뒤졌다. 예비용 경찰 배지가 낡은 장난감과 함께 옆으로 밀려났다.

정작 그가 찾는 것은 몸을 좀 더 수그리자 얼굴을 드러냈다. 입고 있던 후줄근한 셔츠 윗주머니에서 흘러나온 작은 약병이 그의 구두 발등을 살짝 빗겨 때리고 길바닥을 굴렀다. 도미닉은 굴러가는 약병을 향해 엉거주춤 걸어갔다. 낯선 구둣발이 약병을 가볍게 밟았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두 사람이 서있었다. 오른쪽 어깨에 주먹만 한 거대한 유리공을 매단 정신 나간 금발머리와 양복차림을 한 검은 머리 인간이었다. 도미닉은 떨리는 오른손을 감아쥐고서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금발머리는 허리를 숙여 약병을 집어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도미닉 씨. 저희는 FTL에서 파견 나온 배달부들입니다. 저는 릭이고, 이쪽은…….”

“체린이에요. 이체린이죠.”

검은 머리 인간이 지친 듯 중얼거리자 릭은 약병 속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이거, V럼인가요? 꽤 중독성 있는 약물인데.”

“어쩌라고. 경찰이 증거 가지고 있는 게 잘못인가?”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금발머리 양아치는 순순히 약병을 도미닉에게 넘겼다. 도미닉이 병을 가로채 윗주머니 속에 찔러 넣자 릭이 말했다.

“우리는 당신이 무엇을 쫓는 지 압니다. 당신 아들을 죽인 자를 쫓고 있죠?”

도미닉은 지친 얼굴로 말했다.

“그래. 내가 맥거핀을 쫓고 있다. 제보할 내용이라도 있나?”

“근데, 왜 맥거핀이죠? 몇 번을 물어도 아무도 제대로 대답을 안 해주던데 말이죠.”

체린이 짜증 섞인 얼굴로 되물었다. 릭이 팔꿈치로 그녀의 옆구리를 툭 건드리자 도미닉은 힘겹게 말했다.

“우리가, 경찰이 그 자식을 안 잡으니까 시위대가 붙인 이름이지…….”

약에 절은 뇌리가 서서히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가 정신을 똑바로 붙잡을 동안. 릭의 목소리가 비수처럼 귓구멍을 파고들었다.

“뭐,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맥거핀이란 작자를 쫓지 마십쇼. 어차피 당신은 살인마 발끝도 스치지 못할 겁니다.”

도미닉이 릭을 죽일 듯이 노려보자, 체린이 나섰다.

“너무 화내지 마세요. 이건 아저씨를 위해…….”

“날 위한다고? 식품 회사 배달부 주제에 뭘 안다고 큰소리야?”

“뭐, 다른 배달부라면 그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겠죠. 하지만.”

릭은 검지를 위로 살짝 추켜올렸다. 때마침 천장 위로 광고가 지나갔다.

‘미래에서 찾아온 음식점, FTL에서 VIP맴버십을 15% 할인가에 구매하세요!’

광고가 ‘ㄱ’자 통로를 지나 사라지자, 릭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했다.

“들었죠? 저희는 미래에서 왔어요. 웬만한 일들은 다 손바닥에 꿰고 있죠.”

“그럼, 도박이나 하러 가. 남 일에 신경 끄고!”

도미닉은 오른쪽 귓불을 잡아당겨 청각 임플란트를 꺼버렸다. 목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미닉은 어깨 숄 위에 고정된 청록색 구체를 바라보면서 입을 벌리는 릭을 노려보았다. 그는 두 배달부를 무시한 채 빠르게 거리를 가로질렀다.

얼마나 걸었을까? 거주지 밖으로 통하는 거대한 격벽이 나타나자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 그림자 하나도 없는 삭막한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다시 청각 임플란트를 켠 그는 주거지 밖으로 나갔다. 그는 리프트로 향했다.

 

2.

 

도미닉은 리프트에 올랐다.

그가 상층부 버튼을 누르자마자 리프트는 지표를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행성 전역에 널려 있는 이 거대한 엘리베이터는 지상과 지하를 잇는 가장 싼 교통수단이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궤도까지 이어지는 리프트를 타고 다녔다. 우주 쪽 일거리가 더 많았고, 보수도 두둑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도 우주로 나가고 싶어 했다. 녀석은 우주의 미탐사 지역을 탐험하겠노라 말하곤 했다. 하지만 아이는 어른이 되지 못했다. 아이는 슬럼가의 FTL 편의점 뒤편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아이가 변을 당했을 무렵, 그는 마약상인 므두셀라에게 약을 사고 있었다. 그날, 약에 취해 있던 순간을 떠올리자 죄책감이 쥐 떼처럼 머릿속을 갉아댔다.

그는 과거 속에 몸을 숨겼다.

아이를 처음 배양기에서 끄집어냈을 때를 떠올렸다. 사례금이라 적힌 홀로그램이 눈앞에서 번쩍거렸다. 그는 약을 살 생각에 ‘I’형 인간 테스트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아이를 위해 울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다.

허나, 시간은 그를 바꾸어 놓았다. 하루하루 커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노라면, 아이가 그렇게 기특할 수 없었다. 그 조그만 녀석이 5급 인권 자격시험에 합격했을 때, 그는 아이를 얼싸 안고 울기까지 했다. 초기버전 양산형 인간이라 그런지 이유 없이 코피를 흘리거나 기절하는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도미닉은 휴가를 내고 아이를 돌보았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아이처럼 3급 인권 이하의 양산형 인간들은 루미너스의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찍어낸 세포체에 불과했다. 때문에 아이는 재활용되었다. 손상이 덜한 부분은 다른 이의 장기가 되었고, 기타 부산물은 비료로 쓰였다.

도미닉은 슬럼가를 전전하며 아이를 죽인 살인범을 쫓았다. 당장이라도 놈을 죽도록 팬 뒤 가슴에 플라즈마 탄을 꽂아 넣고 싶었다. 정의고 나발이고 놈이 길가의 똥개처럼 뒈지는 꼴을 보고 싶었다. 도미닉은 다른 동료들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놈을 쫓는 눈은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하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매정한 말뿐이었다.

“질질 짜지 말고 그냥 새로 하나 배양 받으라고. 같은 모델로 말야.”

“자네, 지금 말 다했나?”

“그럼. 슬럼가에서 수사할 만큼 멍청한 자식이 어디 있나? 그런 곳은 광고 수익도 안 나오잖아. 뭐, 누구처럼 마피아 뒤나 닦아주면 또 모를까.”

도미닉은 자리에서 일어나 놈의 면상에 주먹을 날렸다. 통쾌한 일격이었으면 좋으련만.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은 허공을 가로질렀다. 약에 찌든 몸뚱이는 중심을 잃고 꼴사납게 바닥으로 추락했다. 웃음소리가 날갯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3.

 

슬럼가의 풍경은 찬란했다.

허나, 이 표현은 문명의 발전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8중 성계의 강렬한 햇살들이 자아내는 장엄한 광채 덕분이었다. 백색 왜성과 적색 거성이 모여 있는 절경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은 루미너스를 찾았다. 허나, 이곳에 사는 이들에게 햇살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태양풍을 막아주는 역장이 행성 전역을 휘감고 있었음에도 8개의 항성이 뿜어내는 방사성 물질은 매 순간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곧장 지하로 숨어들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지상에 남아야만 했다. 그들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어 서서히 죽어갔다. 그나마 궤도를 지나는 거대한 태양광 패널이 희미한 밤을 드리울 때마다 슬럼가 사람들은 아주 조금 생기를 띠었다.

도미닉은 환한 밤거리를 거닐면서 아이의 사건 현장으로 갔다. 그곳은 리프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편의점 뒤편이었다. 현장은 이미 어제 저녁 즈음에 얼추 정리된 뒤였다. 그럼에도 그는 현장에서 무언가 놓친 것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가 리프트에서 내리기 무섭게 어깨너머에서 목소리 하나가 툭 다가왔다.

“형님. 오늘도 여길 올라오셨네.”

도미닉은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두 눈을 렌즈로 교체한 사이보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도미닉은 그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므두셀라였다. 놈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므두셀라는 얼핏 보면 선량한 이미지가 떠오를 만큼 그의 얼굴에는 찌든 때가 느껴지지 않았다. 도미닉이 그를 만난 건 6년 전의 일이었다. 거주지에서 마약을 팔던 그를 잡은 도미닉은 마약 판매 혐의로 경찰에 넘기려 했다. 허나, 그가 내민 저렴한 V럼은 거절하기 어려웠다.

두 사람은 평소처럼 근처 술집으로 향했다. 므두셀라가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자 테이블 위로 화면이 떠올랐다. 므두셀라는 맞은편에 앉은 도미닉에게 말했다.

“형. 오늘은 내가 살게. 뭐 드실래?”

“마실 기분 아냐. 야, 맥거핀에 대해 새로 들어온 정보는 없냐?”

“별거 없어. 요즘은 사고로 죽어도 맥거핀이 죽였다고 시위대 애들이 소문내고 다니거든. 형님은 뭐 발견한 거 없수?”

도미닉은 고개를 저었다.

“피해자들이 시위대 근처에서 시신이 발견됐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인파 때문에 현장이 많이 훼손됐어. 사건 전후로 H-플래티넘 인간을 봤다는 진술이 있긴 한데.”

“그건 단서도 안 돼. 걔들이 단종된 인간들이기는 해도 이 근방에 사는 놈만 수만은 될 거요. 거, 수상한 놈 있으면 연락할 테니까 오늘은 그냥 가셔.”

“아니. 조사를…….”

므두셀라는 고개를 저었다. 심상치 않은 눈빛에서 도미닉이 산탄총을 떠올릴 즈음. 그의 왼손에 가벼운 진동이 일었다. 도미닉은 왼손을 들어올렸다. ‘전 인원 시타델 중앙 광장 시위 현장으로 집결하라.’는 홀로그램 문구가 떠올랐다. 도미닉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가벼운 인사를 남기고 걸음을 옮기자, 멀찍이서 그를 지켜보던 두 배달부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남은 술을 들이키는 므두셀라에게 다가갔다.

 

4.

 

리프트가 최하층에 다다랐다.

도미닉은 주머니 속에서 배지를 꺼냈다. 오른쪽 팔뚝에 경찰 배지를 달자, 배지 위로 순찰 시작이라는 글귀와 함께 원통형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동영상이 떠올랐다. 형형색색의 광고가 떠오르자 그는 애써 광고에서 눈길을 뗐다. 속이 울렁거렸다. 당장 주머니 속에 든 V럼을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은 고상해 빠진 지하 시타델이었다. 이곳에서 약을 마신다는 건, 옷 벗을 각오부터 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충동의 모가지를 잡아 누르며 두꺼운 문 틈 사이로 비치는 화려한 시타델의 전경을 보았다. 은빛으로 번쩍이는 인공적인 노을 속에서 수많은 마천루들이 반짝거렸다. 그것들은 마치 동굴 속에 자리 잡은 종유석처럼 천장과 지표를 이어주고 있었다. 그 사이를 소형 우주선들과 광고들이 도시를 가로질렀다. 이제 도미닉도 도시를 가로지르는 광고 중 하나였다. 그가 거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왼손이 떨렸다.

도미닉은 왼손을 펼쳤다. 내부 통신망이 떠올랐다.

“잘 들어라. 시위대가 중앙 광장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말 실적 올릴 기회니까 모두 집결해라. 그리고 올해 수익이 3%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연말 휴가는 없다.”

통신망 너머로 야유가 쏟아졌다. 그들은 하나같이 슬럼가를 순찰하자고 말했던 형사를 욕하고 있었다. 도미닉은 왼손을 감아쥐었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저들의 게으름은 합리적인 게으름이었다.

애초에 경찰이 민영화된 것은 400년 전의 일이었다. 과도한 영토 확장 정책 때문에 행정력이 광속의 한계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이에, 정부는 경찰 업무를 용병 회사에게 맡겼다. 하지만 치안업무는 돈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놓고 수금을 받자니 식민지의 반발이 컸기에 이익을 원했던 회사는 경관들에게 광고 수익을 창출하도록 명했다. 범죄 적발 건수 대신 광고 수익이 승진고가에 반영되자 경찰들은 광고를 보아도 구매할 능력이 없는 슬럼가로 올라가지 않았다. 슬럼가의 치안은 그렇게 무너졌다. 그 공백을 파고든 마피아들은 사람들에게 마약을 팔아치웠다. 그리고 마약은 돌고 돌아 도미닉에게 다다랐다.

평소처럼 순찰을 돌던 어느 날. 도미닉은 골목길에서 잭나이프와 마주쳤다. 날카로운 칼날은 순식간에 그의 두 귀와 오른손을 앗아갔다. 놈은 도미닉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곧장 취조와 동시에 대뇌에 전극을 꽂아 기억을 추출해보았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V럼에 절은 놈은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기억나지 않아요. 기억나지 않아요.”

도미닉은 씁쓸하게 놈이 내뱉은 말을 곱씹어 보았다. 가해자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폭력 앞에서 도미닉은 장애인이 되었다. 청각은 싸구려 임플란트로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난도질당한 오른손은 낫지 않았다. 의사는 신경 임플란트를 권했지만 말단 형사인 그에게 그럴 돈은 없었다.

그는 처방받은 진통제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하지만 통증은 나날이 심해져갔고 그때마다 더 강한 약을 찾았다. 약값으로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사과에서는 사직을 권했다. 손을 떠는 경찰은 시민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결국, 길을 잃은 도미닉은 수사 차 들른 약쟁이 소굴에 발을 들였다. 확실히 V럼은 시중에 파는 약보다 효과가 좋았다. 손 떨림이 일시적으로 사라진 덕에 경찰에서 잘리는 불상사는 막았다. 하지만 마약은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거리를 지나 모퉁이를 돌자 시위 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선 수많은 H-플래티넘들이 슬럼가의 치안을 강화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들 주위에는 광고를 몸에 두른 형사들이 느긋하게 서 있었다. 도미닉은 광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도미닉 앞에 우주선 하나가 내려앉았다. 당황한 그가 눈을 부라리자 우주선 안에서 튀어나온 팔뚝이 그의 멱살을 잡아챘다. 도미닉은 새된 비명을 질렀다. 몇몇 경찰들이 도미닉 쪽을 노려보다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렸다.

도미닉이 배신감이 서린 눈을 부라리자, 강철로 된 주먹이 날아들었다. 머리 위로 쪼개지는 소리가 울렸다. 무릎을 꿇은 그는 그들을 올려보았다. 허나, 그의 시선은 곧이어 날아든 구둣발에 차여 산산이 깨져버렸다.

 

5.

 

“누가 사주했어? 왜 배지를 내밀고 우리 구역을 드나들어?”

놈은 도미닉의 콧잔등이를 빠르게 끊어 쳤다. 녹슨 철제 의자 등받이를 때리고 튕겨 나온 머리가 피를 토해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마피아들은 그의 머리를 잡아 올렸다. 도미닉은 퉁퉁 부운 눈으로 좁다란 방안을 노려보았다.

방 안에는 다섯 명의 마피아들이 눈을 부라렸다. 놈들 옆에는 턱이 두 개로 접힌 돼지 하나가 앉아 있었다. 놈은 도미닉의 이마에 붙여놓은 검은 감지기 위에 손을 올렸다. 감지기는 도미닉의 뇌 활동을 스캔한 뒤 화면을 띄웠다.

“의식이 30% 남았어. 더 때려.”

뚱뚱한 놈이 말했다. 고문을 하던 마피아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팔뚝을 휘감은 외골격이 벌어졌다. 외골격 아래서 인조 근육과 기이하게 꺾인 뼈 프레임이 오른팔을 압축시켰다. 그러자 주먹이 총알처럼 뻗어 나와 도미닉의 쇄골을 때렸다.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도미닉이 절규하자, 머리 위에 떠오른 숫자가 10% 아래로 떨어졌다.

돼지는 휘파람을 불며 두루마기처럼 생긴 기계를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놈이 두루마기 끝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동체 안에서 큼지막한 스크린과 바늘 두 개가 쑥 튀어나왔다. 돼지는 바늘을 빼들었다.

“별로 아프지는 않을 거야. 뇌가 타버릴 테니까.”

놈이 도미닉의 정수리에 바늘을 가져대던 그때.

마피아들은 문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크 소리가 한 번 더 울리자, 그들은 숨을 죽이고 방구석에 쌓아놓은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립을 움켜쥐자 음파총에 달린 공명기가 총열에서 일어났다. 플라즈마 권총을 든 마피아 하나는 문 바로 옆에 어깨를 기대고 섰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크 소리가 또 한 번 울리자 음파총을 쥔 마피아는 방아쇠를 당겼다. 낡은 문 위로 초고주파가 꽂혔다. 문짝은 진동하는 분자들이 내뱉는 열을 견디지 못하고 찰흙처럼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피아들은 김을 뿜으며 굳어가는 쇳덩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인사치곤 좀 거치네.”

녹아내린 문간 너머에서 후줄근한 레인코트를 입은 금발머리 사내가 얼굴을 드러냈다. 릭이었다. 어깨 위에 달린 허연 유리공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꾸덕꾸덕 굳어가는 쇳물을 뛰어넘어 방안으로 들어온 사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나 원. 노크하는데 대뜸 총부터 쏘면…….”

그가 투덜거릴 동안, 문간에 서 있던 마피아가 릭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들이밀었다.

그때였다. 총신 위로 붉은 반점이 나타난 것이다. 그 반점은 빠르게 플라즈마 권총을 뒤덮였다. 마피아가 입을 벌리고서 방아쇠를 당겼을 때는 이미 권총은 강철과 플라스틸로 만든 무기가 아니었다. 총구는 고개를 숙였고 단단했던 프레임은 녹이 슨 듯 붉게 변해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피아는 그립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권총의 남은 부분도 뭉그러지더니 권총은 수십 가닥의 실로 변해 손가락 사이로 터져 나왔다.

문간에 서있던 마피아는 진저리를 치며 실가닥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걸 바라보던 릭은 바닥에 떨어진 실무더기를 향해 가볍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붉은 실은 마치 한 마리의 뱀처럼 흐느적거리더니 바닥에서 뛰어올라 릭의 손가락을 휘감았다. 순식간에 릭의 손을 휘감은 붉은 실들은 그의 손아귀 속에서 서로의 몸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촘촘하게 서로의 몸을 휘감던 실들은 순식간에 정교한 직물이 되어 권총의 형태를 취했다. 그러더니 붉은 빛을 털어내고 검은 금속 빛 광택을 품고 릭의 손 안에서 차갑게 반짝거렸다.

릭은 바닥을 향해 45도 각도로 팔을 뻗었다. 총신을 엄지로 지그시 누르자 권총의 짧은 총신 옆에 홀로그램 화면이 떠올랐다. 10발이라 적힌 단조로운 화면이었다. 릭은 진저리를 치던 마피아를 바라보았다.

“고마워, 친구.”

릭은 곧장 놈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놈이 찍소리를 내기도 전에 플라즈마는 놈의 머리를 녹여버렸다. 다른 마피아들은 곧장 릭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아무리 방아쇠를 당겨도 총은 작동하지 않았다. 음파총이나 레이저 총에 전원을 공급해주던 축전지가 헐렁한 스웨터처럼 축 늘어져 붉은 실을 토해내고 있었다.

릭은 차례대로 마피아들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뒤늦게 음파총을 고쳐보려던 이도, 조금 이라도 더 살기 위해 엄폐물을 찾던 이도 모두 플라즈마 탄에 맞아 쓰러졌다. 뒤늦게 사이보그가 음파총을 내던지고서 오른팔을 팔꿈치까지 접었다. 하지만 놈이 주먹을 내지르기 전에 초록색 섬광이 놈의 머리를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몇 걸음 더 앞으로 다가오자 릭은 사뿐히 옆으로 비켜섰다.

사이보그는 텅 빈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더니 제 발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졌다. 바닥에서 간혈적으로 몸을 떨던 놈은 이내 축 늘어졌다.

“끄, 끝났어?”

문간 뒤에 숨어 있던 체린이 사색이 되어 말했다. 릭은 엄지를 추켜들었다.

“다 끝났어. 밖에 아무도 없지? 회로랑 카메라 다 확인 했냐?”

“응. 그렇기는 한데…….”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핏물을 바라보던 체린은 시체들을 피해 의자에 묶인 도미닉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손을 뻗자, 도미닉은 몸을 움찔거렸다. 체린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괜찮아요. 저희에요. 아침에 봤잖아요. 그죠?”

도미닉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도미닉을 옭아 맨 밧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하얀 실이 일렁이자, 도미닉은 진저리를 치면서 뒤로 물러났다. 의자에 묶인 도미닉은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돼지의 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고인 웅덩이 속에 처박힌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체린이 말했다.

“괜찮아요. 이건 홀로사이트라는 거예요. 먼 미래의 기술인데 돈만 있으면 뭐든 만들고 분해할…….”

체린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왼손으로 피웅덩이를 짚고 일어나는 도미닉을 바라보았다. 손등의 살점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와 얼핏 보면 새하얀 뼈마디가 보일 정도였다.

그는 헐거워진 오른손을 빼내 바닥을 손으로 더듬었다. 그러더니 자신의 머리를 찌를 뻔 했던 바늘을 집어 들어 체린에게 겨눴다. 떨리는 바늘이 예리하게 반짝이자, 릭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바늘은 붉은 실이 되어 흩어졌다.

“나 원, 사람 여럿 피곤하게 만드시네.”

음파총을 집어 든 릭이 중얼거렸다. 그는 권총과 음파총을 붉은 실로 분해해 손에 감아 주머니 속에 찔러 넣으면서 도미닉을 노려보았다.

“쯧쯧. 그러게 우리가 찾지 말라고 할 때 그만 뒀으면 이런 일도 없잖아요. 왜 일은 키워가지고 이 고생입니까?”

“네 놈들이 뭘 알아…….”

도미닉이 중얼거리자 릭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걸 알고 있어요. 그리고 이 분은 더 많은 걸 알고 있죠.”

도미닉은 유리공을 손으로 가리키는 릭을 괴상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그러든 말든 릭은 어깨에 매달고 있는 유리공에 손을 가져댔다. 영롱한 청록색으로 빛나는 유리공에서 실밥을 뽑아낸 릭은 도미닉의 관자놀이에 실을 가져댔다. 실가닥이 날카롭게 관자놀이를 파고든 순간. 도미닉은 번뜩이는 섬광을 보았다. 섬광이 잦아들자, 수많은 기억들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도미닉은 자신이 마약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다 경찰에 붙잡혔다는 뉴스를 바라보았다. 뉴스가 지나가자 도미닉은 폐인이 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내가 내 얼굴을 보고 있는 거지?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에서 튀어나올 즈음. 찌든 기름 때 속에서 뒹굴던 도미닉은 깡마른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낯익은 목소리가 울렸다.

“형님, 꼴이 말이 아니네.”

“형님이라뇨. 제가 형님이라 불러드려야죠. 므두셀라 형님.”

므두셀라? 도미닉은 입을 벌렸다. 그는 상황을 정리해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도미닉의 뇌는 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가 현실을 파악하는 동안 므두셀라는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오늘은 사업 때문에 온 거요. 약쟁이기는 해도 형님은 한때 경찰이었잖아.”

그랬죠. 그랬죠. 도미닉은 깨진 이빨을 드러내며 과하게 웃었다. 그러자 화면 오른편에서 손 하나가 나타났다. 그것은 붉은 액체가 일렁이는 작은 병 하나를 들고 있었다. 도미닉이 손을 뻗자, 손은 병을 뒤로 내뺐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

므두셀라가 말하자, 도미닉은 입맛을 다셨다.

“있죠. 요즘 V럼을 단속하려고 하는 놈들이 있어요. 보스께서 놈들이 손쓰기 전에 합법화를 추진하기로 결심하셨는데 본인은 얼굴이 너무 많이 알려졌다고 나 같은 말단 끄나풀한테 정계에 나가라더군요. 그래서 같이 일할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한데.”

“저 믿을 만해요. 저요.”

도미닉이 개처럼 침을 흘리자 므두셀라는 그에게 약병을 던져주었다. 도미닉은 허겁지겁 약병을 코에 들이밀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지 않은 바람에 그는 어떤 쾌감도 얻을 수 없었다. 신경질이 난 그는 약병을 바닥에 내던졌다.

약병이 깨지자, 붉은 기름이 흘러나왔다. 도미닉은 유리조각과 뒤섞인 V럼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유리조각에 찔린 얼굴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도미닉은 핏물을 손으로 긁어 입에 가져댔다.

그가 핏물에 찌든 마약에서 전희를 찾고 있을 동안 세상은 빠르게 흘러갔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슬럼가의 공원으로 들어선 도미닉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파여 있었다. 단상 위에 올라선 시선은 사람들을 훑어보다 사람들 앞에서 비틀거리는 도미닉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약을 한 모양이군. 나중에 주의를 주어야 겠노라 생각한 므두셀라는 햇빛 속에서 수많은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느새 H-플레티넘들이 누더기로 만든 두건을 벗고서 은백색 선이 그려진 얼굴을 내보였다.

군중들을 바라보던 므두셀라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가 연설을 시작하려던 순간.

초록색 섬광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뇌수와 비명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연설하던 므두셀라는 몸을 숙였다. 그가 살짝 고개를 들자 학살의 현장이 눈에 비쳤다. 학살의 현장 한 가운데에 도미닉이 서있었다. 그가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곳곳에서 무고한 이들의 처절한 비명이 쏟아졌다.

그의 폭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디선가 번뜩이는 초록색 섬광이 날아들어 도미닉의 가슴을 꿰뚫었다. 도미닉은 총에 맞아 쓰러진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깨너머에서 목소리 하나가 툭 날아왔다.

“꽤 씁쓸하지?”

도미닉은 고개를 돌렸다. 찢어진 정장을 입은 므두셀라가 천천히 도미닉에게 다가왔다. 도미닉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주름진 얼굴을 향해 말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난, 저런 적이…….”

“맞아. 형님. 지금의 당신은 저런 적이 없어. 저건 내가 배달부들과 함께 시간 이동을 하기 전의 형님 모습이야.”

시간 이동? 도미닉은 배달부들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분명 그들은 미래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눈을 부라리면서 소리쳤다.

“그, 그럼. 아이를 살려줘! 그 애가 죽기 전으로 돌아가서…….”

“그럴 수는 없어. 왜냐면 우리가 아이를 구하고 나면 내가 주지사에 도전하기 전에 죽더군. 네 놈이 마약에서 손을 씻고 날 감방에 집어 처넣는 바람에 말야.”

므두셀라가 혀를 차면서 말하자, 도미닉은 눈을 번뜩거렸다.

“잠깐, 아이를 구한 적이 있다는 건, 맥거핀이 누구인지 안다는 거군! 그렇지?”

도미닉이 눈을 반짝이자, 므두셀라는 경멸스런 조소를 흘렸다.

“맥거핀? 하, 맥거핀은 아이를 죽이지 않았어. 걔는 스스로 뛰어내렸지. 어디 사는 누군가에게 죽도록 맞아 코피를 흘리면서 말야. 걔를 때린 놈이 누구냐고 묻지는 마. 지금도 내 눈 앞에 쭈그려 앉아 있으니까.”

도미닉은 잠시 눈을 껌뻑거렸다. 느릿한 뇌리가 마침내 므두셀라의 말을 이해하자,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므두셀라에게 달려들었다. 므두셀라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그의 귓방망이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도미닉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몸을 웅크리자 므두셀라는 경멸스러운 듯 말했다.

“생각해봐. 하루에 몇 번이나 약을 했지? 의식이 끊긴 게 몇 번이야? 아이를 바라보다 필름이 끊어진 게 몇 번인지 기억은 나나? 네 귀를 찌른 놈 진술은 기억해? 엉?”

도미닉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는 끊어진 기억들을 이어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고장 난 뇌리가 토해낸 것은 검은 화면뿐이었다. 그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고개를 저었다. 기억나지 않아. 단지 아무 이유 없이 손이 얼얼한 적이 있긴 했지만. 어째서인지 아이가 코피를 자주 흘리다가 가끔 기절하기도 했다. 그랬지만.

도미닉이 멍든 머릿속으로 변명을 떠올릴 동안. 릭은 의식을 잃은 도미닉을 어깨에 둘러멨다. 녹아내린 문간을 나선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손끝에서 일렁이던 실들이 릭의 손을 떠나 방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가느다란 실들이 촘촘하게 짠 직물처럼 서로의 몸을 휘감아 조이더니 강렬한 열기와 빛을 자아냈다. 그렇게 방안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방이 불탈 동안 그들은 천천히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골목을 지나 주거지역을 빠져나가자, 어둠 속에서 목소리 하나가 날아들었다.

“아이고, 형님. 이게 뭐요. 대체……. 나도 몰랐어요. 나도 이분들 연락받고 알았어.”

골목 속에 숨어 있던 므두셀라가 탄식을 터뜨렸다. 릭은 만신창이가 된 도미닉을 그에게 떠넘겼다.

“고맙습니다. 근데, 댁들은 뉘신지…….”

릭은 손을 뻗었다. 붉은 실이 일렁이면서 릭의 손 위에 라텍스 장갑을 짜냈다. 라텍스가 그의 손을 조붓하게 달라붙자, 주머니에서 기다렸다는 듯 붉은 실이 기어 나왔다. 실가닥이 손바닥 속에서 플라즈마 권총을 짜내는 순간. 초록색 광채가 도미닉의 가슴을 꿰뚫었다. 도미닉의 머리는 녹아내린 쇠골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을 굴렀다. 릭은 체린에게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해? 신고 안 하고.”

치를 떨던 그녀는 경찰에 연락을 취했다. 조심스럽게 주머니 속에 찔러 넣었던 실들을 꺼낸 릭은 플라즈마 권총을 멀찍이 던져놓았다. 그리곤 주머니 속에서 꺼낸 실을 겁에 질린 므두셀라에게 던졌다. 실은 가느다란 뱀처럼 므두셀라의 손아귀에 휘감겨 총으로 자라났다. 마치 방금 전까지 총격전을 벌인 듯 총구에는 시뻘건 열기가 피어올랐다.

“만족하죠?”

릭은 고개를 돌려 유리공을 바라보았다. 청록색 구체가 번뜩이자 충격을 받은 므두셀라가 숨을 죽였다. 릭은 그를 노려보았다.

“뭐, 정 그러시다면. 조금 더 손을 보도록 합죠.”

그의 손끝에서 붉은 실이 몽환적인 궤적을 그리며 날아올랐다. 릭은 실 한 가닥을 낚아채 므두셀라에게 던졌다. 므두셀라는 반사적으로 팔뚝으로 얼굴을 가렸다. 몇 초가 지난 뒤 그는 떨리는 손을 내렸다.

어두컴컴한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6.

 

므두셀라는 거주지를 전전했다.

수많은 캡슐저택 사이에서 그는 일주일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한 몸뚱이를 움직였다. 이제 그에게는 희망 따윈 없었다. 선거는 참패했고 언론은 앞 다퉈 그와 마피아 사이의 커넥션을 보도했다. 이제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시타델에서는 경찰들이 그의 뒤를 쫓았고, 슬럼가에서는 마피아들이 그를 쫓았다. 어느 쪽에 잡히든 그를 기다리는 것은 파멸뿐이었다.

“안녕하신가요?”

낮선 목소리에 놀란 므두셀라는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검은머리 인간과 나란히 서있던 레인코트를 입은 금발머리가 입을 열었다.

“아, 해칠 생각 없습니다. 저희는 FTL에서 나왔습니다. 전 릭이고, 이쪽은 체린이죠.”

체린은 수줍게 고개를 숙이면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실은 FTL에서 이 루미너스 상공에 매장 건설권을 따내라고 저희를 보냈어요. 근데, 현 주지사님이 거절해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요?”

그의 회의적인 눈빛과 마주한 릭은 퇴폐적인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

“있죠. 우리 회사는 타임머신을 가지고 있거든요.”

얼굴을 일그러뜨린 므두셀라는 두 사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희는 지금부터 선거를 조작할 겁니다, 므두셀라 씨. 당신도 알고 있죠? 선거에서 참패한 이유 말예요.”

릭을 바라보던 므두셀라는 도미닉을 떠올렸다. 체린이 말했다.

“일이 잘되면 그 쪽은 건설 허가를 내주시기만 하면 돼요.”

므두셀라는 혼란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게 됩니까?”

당연히 되죠. 고개를 끄덕이던 릭은 레인코트 주머니 안쪽에서 회색 실을 꺼냈다.

“이건 홀로사이트라는 물건이죠. 이걸로 지금부터 페러독스 방지장을 만들 겁니다. 므두셀라 씨는 방지장 안에서 잠시 기다리고 계시면 됩니다.”

“그럼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건가?”

“아뇨. 저희와 같이 가주셔야죠.”

“거부한다면?”

“뭐, 거부하시는 것도 자유죠.”

릭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구두 소리가 울렸다. 므두셀라는 몸을 움츠렸다. 릭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가시죠. 좋든 싫든 고문당하는 것보단 나을 테니.”

선택권은 없었다. 릭이 내민 손을 노려보던 므두셀라는 머뭇거리면서 그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의 손은 무채색 실이 되어 흘러내렸다. 가냘픈 비명을 흘리던 므두셀라는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실이 되어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릭은 실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던 실가닥은 릭의 팔뚝을 타고 올라 릭의 어깨 위에 둥근 공처럼 똬리를 틀었다. 그것은 마치 유리공처럼 보였다.

“어때요? 불편하진 않죠?”

‘놀랬잖소! 미리 경고라도 했어야지!’

릭은 청록색 공을 바라보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경고한다고 안 놀랠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 어디로 모실까요?

므두셀라는 생각에 잠겼다. 고심 끝에 그가 날짜를 부르자 체린은 기다렸다는 듯 주머니 속에서 홀로그램 창을 꺼냈다. 그녀가 홀로그램을 손으로 구기는 순간. 어두컴컴한 인공적인 별빛 대신 타오르는 노을빛이 세상을 휘감았다.

노을을 바라보던 두 사람은 후줄근한 셔츠를 입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원기둥 형태의 캡슐 저택 안을 뒤적이던 그가 몸을 숙이자 가슴에 달린 주머니에서 약병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남자의 구둣발을 때리고 바닥을 굴렀다.

릭은 자신을 향해 굴러 오는 약병을 구둣발로 지그시 밟았다.

 

7.

 

유리공이 된 므두셀라는 므두셀라를 바라보았다.

눈앞에 서 있는 므두셀라는 값비싼 정장차림으로 시거를 물고 있다. 천장에는 주지사 당선을 기념하는 홀로그램 화면이 번뜩거렸다. 수많은 인파의 발아래 놓인 전망창 너머에서 항성들이 그의 밝은 앞날을 축복해주듯 반짝거렸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정지된 시간 속에서 동상처럼 굳어있었다. 딱 한 가지 그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시간이라고 유리공이 된 므두셀라는 생각했다. 릭은 므두셀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 정도면 괜찮죠? 주지사 자리도 얻었고, 꽤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군요.”

‘만족하네만, 내가 그 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지 좀 봐도 될까?’

고개를 끄덕인 릭은 손을 펼쳤다. 손바닥 위로 붉은 실이 떠오르자, 화면 너머로 검은 단발머리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귀찮은 듯 푸른 눈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또 너냐? 리키?”

“그래 나야. 요한나. 타임 테이블 20년 치 보내줘.”

“시간 여행도 모자라서 시간 정지를 요구하더니 이제는 시간을 원격으로 돌려보고 싶다 이거냐? 아주 전용 타임머신 한 대를 달라지 그러냐?”

“하지만 고객님이 원하셔서 그런 걸요. 점장님.”

체린이 애써 미소를 짓자, 요한나는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흠. 20년 치면 대략 20,000우주 달러쯤이니까, 둘 다 6개월 할부로 급여에서 제하겠다. 동의하냐?”

어휴. 두 사람은 동시에 동의하노라고 말했다.

“빨리 처리해라. 알겠냐?”

화면이 사라지기 무섭게 릭의 눈앞에는 큼지막한 원반이 나타났다. 므두셀라가 말했다.

‘방금 그 사람은 누구요?’

“우리 가게 점장님이죠. 돈에만 눈이 시뻘건 인간이에요.”

체린이 투덜거리자 릭은 한숨을 쉬며 원반 위에 손을 얹었다. 작은 손짓과 함께 세 사람은 20년 전, 도미닉이 죽던 밤으로 돌아가 있었다. 세 사람은 방에 갇힌 므두셀라를 바라보았다. 이름 모를 기계 위에 몸이 묶인 그의 머리에는 수많은 바늘이 꽂혀 있었다. 릭이 원반을 손가락으로 두드리자 시간 속에 얼어 있던 므두셀라는 비명을 질렀다. 경관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그의 진술이 담긴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니까 저 놈이 도미닉이랑 맥거핀을 잡으러 돌아다녔다는 걸 믿어야 한단건가?”

“저 자식 대가리 속을 들여다 본 게 벌써 12번째야. 전부 똑같은 결과 값만 나왔잖아. 두 놈이서 맥거핀을 잡으러 돌아다닌 건 맞는 거 같아.”

“이거, 돌아가는 꼴이 심상치 않아. 경찰이 하지 않은 일을 마피아가 대신 하다가 인명 사고까지 난 것처럼 보이잖아. 공개 절차 때문에 숨길 수도 없고, 우리가 한 짓을 까발릴 수도 없고. 젠장.”

경찰들의 한숨이 계속되었다. 릭은 원반을 돌렸다. 이번에는 연단 위에 선 므두셀라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머리 위에는 ‘명예 경찰’이라는 글귀가 떠 있었다.

“루미너스 시민 여러분. 저는 경찰과 함께 맥거핀을 쫓았습니다. 명예 경찰로서 루미너스 경찰은 항상 범죄와 싸우고 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 박수갈채가 날아올랐다. 경찰들은 환호 속에 밥숟가락을 얹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명예 ‘경찰’이 수사를 한 것에 불과함으로 현 수사는 용의자의 도주를 우려해 비공개로…….”

눈살을 찌푸린 체린은 원반을 돌렸다. 이번에는 고급스런 천으로 치장한 좁은 방이 나타났다. 소파에 앉은 므두셀라는 맞은편에 앉은 마피아들을 바라보았다.

“네 놈이 인기가 없었으면 넌 몇 달 전에 뒈졌을 거야. 알고 있지?”

므두셀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선글라스를 낀 마피아가 말했다.

“중앙정부에서 V럼을 중등 마약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만약에라도 법이 통과되면 우리 조직은 군대와 싸워야 할 거야.”

마피아는 데이터 칩을 라운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일회용이니까 혼자서 신중히 열어 봐라. 명심해. 우린 네가 누구인지 다 알아.”

마피아들이 일어나자, 릭의 어깨 위에 놓인 므두셀라가 말했다.

‘나도 젊었을 때 저 칩을 받았었네. 선거계획이 담긴 칩이었지. 저 칩을 받고서 도미닉을 찾아갔었는데. 젠장.’

릭은 원반을 끝까지 돌렸다. 다시 화려한 파티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릭은 어깨에 매달린 유리공을 잡아뗐다. 므두셀라에게 유리공을 가져대자 유리공은 실로 풀어져 그의 눈과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므두셀라는 시간을 되찾았다. 하지만 실은 그의 두뇌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젠장. 어쩔 수 없었어. 그 자식은 그렇게 갈 놈이었어. 내가 죽이지 않아도…….”

그가 동의를 구하듯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릭은 동의 하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체린을 바라보았다. 체린은 므두셀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끝에서 일렁이던 하얀 실이 날아올라 작은 화면을 자아내자 그녀가 말했다.

“이제 약속을 지킬 시간이에요. 건설 허가 서류에 서명해주세요.”

므두셀라는 입술을 깨물면서 화면 위에 손을 올렸다. 수많은 인증절차가 지나간 뒤, 그는 체린과 릭에게 악수를 청하면서 시거를 입에 물었다.

“그래, 첫 삽은 언제 뜰 건가?”

“지금요.”

므두셀라가 무슨 소리냐고 되묻던 그때였다. 공허한 우주 공간 위로 푸르스름한 섬광과 함께 우주 공간 위로 행성을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회색 균열이 나타났다. 균열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무채색의 실가닥들이 흘러나와 유유히 별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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