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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광속의 시선

돌로레스 클레이븐

 

1.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선잠이 달아났다. 그 바람에 짜증이 먼저 기지개를 켰다. 난 얼굴 위에 엎어놓은 잡지를 집어 던졌다. 새벽 1시를 가리키는 시계 아래로 관리실 창밖에서 날 바라보는 성난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6층에 사는 20대 여자였다.

이름이, 분명 나송이라고 했었다. 며칠 전인가? 어깨에 힘들어간 남자들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허벅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짧은 치마와 어깨가 드러난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가느다란 턱선이 조명 아래서 번들거렸다. 그녀는 관리실 정면 창문 위에 한손을 올리고서 엄한 얼굴로 문을 두드렸다. 마치 수업시간에 농땡이 부린 학생을 혼내려는 선생님 같은 얼굴이라 나는 몹시 당황했다.

“무슨 일이죠?”

문을 벌컥 연 내가 제일 처음 내뱉은 말이었다.

“무슨 일 있나요?”

“무슨 일은 무슨 일이야?”

여자는 날 잡아먹을 듯이 작은 루비색 손가방으로 삿대질까지 하면서 언성을 높였다.

“지금 내가 몇 번을 말해? 지하에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또 지랄병이 도졌단 말야! 어떻게든 해달라니까 아직까지 거기다 두고 지금 뭐하자는 거야?”

“아뇨. 그게…….”

나는 애써 변명을 짜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빈곤하기 짝이 없는 내 창의력은 딱히 좋은 묘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난 수개월 동안 우려먹던 변명을 다시 늘어놓았다. 저 할아버지 곧 있으면 계약 만료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여자는 완강했다.

“좆같은 놈의 소리 때문에 씨발 일도 제대로 못하겠잖아! 오늘만 내 클라이언트 몇이 날아갔는지 알아?! 거기다 난 이명까지 생겼어!”

여자는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기세등등한 그녀의 태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음, 클라이언트요? 고객 말인가요? 전 오피스텔 내에서 상업행위를 허락한적 없는데요.”

“그건, 그게 아니라 난 밖에서…….”

“하지만 밖에서 볼 거면 진동이랑 상관이 없죠. 요즘 같이 다들 카톡쓰는 세상에 전화를 했을 리는 없고요.”

내가 말꼬리를 잡기 시작하자 여자의 얼굴은 말라붙은 빵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래서 어쩔 건데?” 인상을 구긴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건물 주인이라고 일을 이딴 식으로 해도 된다는 거야? 지금 누구 편을 들어?”

“어쩌긴요. 전 누구 편을 드는 게 아니에요. 물론 요즘이 불경기고 집도 잘 안 나가는 판이라 세입자 한 분 한 분이 소중한 상황이죠. 하지만 선량한 시민으로서 신고의 의무란 게 있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죠? 함부로 항의하다가 그 쪽이 양팔에 경찰아저씨들 끼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올 수도 있다 이겁니다.”

“이, 이게…….”

“아, 그래도 걱정 마세요. 말썽만 피우지 않으시면 그럴 일은 없습니다. 악속합죠. 그리고 B04호 할아버지 일은 잘 처리할게요. 그러니까 요 며칠만이라도 좀 봐줘요. 알겠죠?”

여자는 한쪽 입술을 흉하게 아래로 늘어뜨렸다. 못마땅하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토를 달진 않았다. 아마도 내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던 듯 했다. 그녀는 날 노려보면서 현관 앞에서 한마디를 툭 던졌다.

“나 이번 일 그냥 넘어가진 않을 거야. 두고 보라고.”

하이힐이 또각이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현관문을 박차고 거리로 나갔다. 그리곤 천천히 회색 빛 콘크리트가 황량하게 감싸고 있는 도시 속으로 녹아들었다.

나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긴 몰라도 손에 들고 있던 폭탄 하나를 해체한 기분이 딱 이런 느낌이리라. 하지만 폭탄은 하나가 아니었다. 덜덜 떨리는 쇳소리에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로비 천장에 매달아둔 전등이 흔들렸다. 가느다란 쇠사슬에 묶인 전등은 먼지를 제 몸에 들러붙은 먼지를 털어대면서 빠르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전등뿐이 아니었다.

한차례 거대한 진동이 순식간에 건물을 집어삼켰다. 마치 건물 전체가 기지개를 켜는 느낌이었다. 골이 흔들릴 만큼 강렬한 진동에 나는 관리실 문짝을 붙잡았다. 그러자 알 수 없는 이명이 귓가를 찔렀다. 가늘고 기다란 바늘 같은 소리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명 따위가 아니었다. 가슴 속의 내 심장이 진동에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내 몸이 죽은 나무토막처럼 굳어갔다. 두려움이 아찔하게 밀려들었다.

나는 서둘러 자리에 주저앉아 심장을 움켜쥐었다. 숨은 가빴고 세상이 일그러졌다. 순간이었지만 거인의 손길에 구겨진 호일처럼 벽과 계단이 내 몸을 짓뭉개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진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젠장. 계단 위에 주저앉은 내 입 밖으로 절로 욕이 새어나왔다. 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걸까? 올해 초면 끝날 걸세. 내 뇌리 속에 남은 수척해진 모습의 B04호 영감님은 그러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지금은 벌써 6월 초였다.

“망할 놈의 영감탱이 같으니.”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 말에 상처받은 이도, 반성하는 이도 오로지 나뿐이었다.

 

2.

 

내가 지하에 다다랐을 때 즈음. 또다시 거대한 진동이 내 몸을 뚫고 지나갔다. 온 몸의 내장이 떨리는 것 같은 기분 나쁜 진동이었다. 나는 다시 벌렁거리는 가슴을 붙들고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그러자 투명한 빛줄기가 잠시나마 짙은 어둠을 가르고 복도를 비쳤다.

휴대폰의 불빛 아래 빛바랜 붉은 카펫과 회색이 되어버린 하얀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난 서둘러 B04호 실로 걸음을 옮겼다. B04호 실 앞에 서자 ‘방해하지 마시오’라는 작은 글귀가 앞을 막아섰다. 성이 난 도널드 덕이 물고 있는 팻말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건물주를 막을 순 없었다.

“교수님. 교수님?”

“잠깐.”

두어번 소리치기 무섭게 문 너머에서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5중으로 된 자물쇠가 철컥철컥 제 몸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간드러지는 디지털 음이 이어진 뒤 굳게 닫힌 문은 서서히 물러났다. 그러자 문틈으로 농도 짙은 검은 공간이 비집고 흘러나왔다.

“어서오게.”

어둑한 방 안에서 노인은 안경을 추켜올리면서 말했다. 그는 비쩍 마른 손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의 궤적을 따라 수북히 쌓여 있던 먼지가 뭉텅이로 긁혀 올라왔다. 나는 한숨을 참아가며 영감이 혼자 사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 처음 날 반긴 것은 냄새였다. 오래되고 켜켜이 배긴 냄새. 그 냄새는 노인의 체취와 먼지가 뒤엉켜 오래된 지층처럼 두텁게 쌓여 있었다. 나는 환풍구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제 보이는 것이라곤 오피스텔의 원룸 5개의 벽을 허물고 들어놓은 거대한 기계와 밖으로 이어진 배기관뿐이었다.

나는 으르렁거리는 거대한 기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딜 어떻게 눌러야 작동하는 지도 감이 잡히지 않는 용도 모를 장치였다. 큼지막한 발그스레한 전등불이 들어와 있었지만 내 눈엔 그것들은 전부 자폭 버튼으로밖엔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기계 말고도 바닥에 나뒹구는 몇몇 장비들이 있었다. 하지만 내 감상이 끝나기도 전에 차가운 손이 내 손목을 잡아채면서 한순간에 내 시선을 빼앗아 갔다.

“그래, 어쩐 일인가? 이번 달 월세가 안 들어갔나?”

노인은 두꺼운 안경을 추켜올리면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이사이 잔기침이 끼어 있어 그의 건강상태를 짐작케 했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교수님. 실은 진동 때문에 왔어요. 방금 한 분이 항의하고 갔죠.”

영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주름지고 오그라든 턱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진동은 어쩔 수가 없네. 이번에 고안한 작업상 진동은 꼭 필요한 거라서…….”

“하지만 올 초면 끝난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거의 다 끝났네.”

노인은 힘주어 말했다.

“내 약속함세. 올해 안으로 끝낼 걸세. 아마, 이놈이 끝나든 내가 끝나든 둘 중 하나는 끝장날 테지.”

“그런 말 마세요.”

나는 안쓰럽게 늙어버린 사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타들어가는 열정 속에서 이글이글 타올랐다. 문제는 그 열정이 이미 옛 저녁에 황혼으로 접어든 노인의 몸마저 불사르고 있었다. 그는 청소할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연구에만 시간을 들이붓고 있었다. 이런 비위생적인 환경은 그의 몸을 조금씩 갉아대고 있었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진동에 대해 입에 발린 사과를 하고서 학생에게 강의하듯 입을 열었다.

“어쩌면 매질 4459번, 그것만 조합하면 어쩌면 자기장 속에 빛을 가둘 수 있을 지도 몰라. 나노 단위, 아니. 옹스트롬 단위에서 조작된 탄소 구조체 중에 광 이성질체를 만들어서 빛을 교란시키게 되면 내가 적절한 진동으로 빛을 포집하고 그 속에 일정한 주파수로 흘려주는 게지. 그러면 빛을 거의 완전히 멈출 수 있을 걸세. 흐흐흐.”

노인은 한국말인지 외국어인지도 모를 말들을 쏟아냈다. 나는 언제나처럼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노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대충 그거면 될 거라고 말이다. 그러면 노인은 다시 의기양양하게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면 뭔지 모를 진동이 다시 건물과 사람의 뼈와 살을 발라냈다. 모든 것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소리쳤다.

“거, 청소 아줌마라도 좀 부를까요?”

노인은 기계를 끄고서 입을 열었다.

“뭐라고 했나?”

“청소아줌마요. 먼지가 너무 많은 거 같은데 거 청소 좀 해야 하지…….”

내가 눈치 없이 말하자, 노인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안경 너머로 살벌한 눈알이 튀어나와 바닥 위를 굴러다닐 것 같았기에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광기어린 핏줄 사이에 파묻힌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곧 모든 것을 살라먹을 기세였다.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을 내저어야만 했다. 노인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더니 성낼 시간도 아깝다는 듯 코를 훌쩍이곤 다시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간략한 인사를 남기고서 문을 닫았다.

디지털 도어락이 잠기기 무섭게 또다시 진동이 건물 전체를 뒤흔들어댔다. 젠장. 나는 이마를 문질렀다. 결국 오늘도 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좀 조용히 하시오란 말만 남겼어도 좋았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내 은인 앞에서 약해졌다.

 

3.

 

노인과 내 인연은 3년 전 내 오피스텔의 로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 당시, 노인의 몸은 지금보다 훨씬 정정했다. 아니. 정정하다 못해 어떤 면에선 나보다 건강해보였다. 떡 벌어진 어깨와 가슴엔, 술에 절어 살던 내 몸보다 더 많은 근육이 붙어 있었다. 턱도 지금처럼 오그라든 모습도 아니었다. 날렵하게 흘러내리는 곡선은 어떤 점에서 기하학적인 분야에 초월적인 감각을 소유한 조각가가 재능을 한껏 발휘한 것처럼 보였다. 때문에 그에겐 노인이라는 수식어보단 중년 남자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렸다.

특히, 나는 그의 눈을 잊을 수가 없었다. 완곡한 카리스마와 지적인 고집이 서로 마주 도는 눈빛은 별처럼 빛났다. 지금처럼 서늘한 눈은 아니었다.

그는 중절모와 안경을 쓴 채 관리실 문을 정중히 두드렸다.

관리실 뒷방에서 드러누워 졸고 있던 나는 벌떡 일어섰다. 그리곤 서둘러 문을 열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옆에는 얼굴이 낯익은 ‘부동산 중개인’도 함께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생각보다 늦으셨네요.”

내가 말하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무뚝뚝함 속에서 문뜩 며칠 전에 걸려왔던 그의 전화를 떠올렸다. 노신사의 전화는 늦은 오후에 걸려왔다. 그는 곧장 주소를 확인하고는 내 오피스텔의 지하 전체를 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도 약간의 개조와 소음을 고려해 기존 집세의 40%에 달하는 웃돈까지 얹어 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바람에 나는 동전만하게 커지는 내 눈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지하의 방만 12개였다. 방 12개를 모두 한꺼번에 계약하는데다가 웃돈까지 얹어준다니. 나는 고민하는 척도 않고 그 계약을 받아들였다.

물론, 이상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집을 구하는 사람이 부동산을 끼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모두가 부동산에서 알아보고 왔다. 거기다 웃돈을 얹어 주겠다는 그 놈의 집세도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아무렴 어때?

수화기에서 번진 돈 냄새에 공기마저 알코올로 변한 듯 어질하게 콧속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클럽의 불빛은 벌써부터 눈앞에 아른거렸다. 붉은색의 텍사스 버빈과 요즘 인기 좋은 압생트의 초록빛 물결 속에 정신을 떠내려 보내고 싶었다. 개중에도 압생트에 절어 불타는 각설탕을 보노라면. 그 아찔한 황홀함에 자리에서 오줌을 지릴 것처럼 온몸이 떨려왔다.

하지만 내 가슴을 애무하던 알코올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누군가가 움켜쥔 듯 파르르 떨리는 감각이 몸을 마비시킨 것이다. 나는 잽싸게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왜 이러는지는 몰랐다. 아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에 너무 놀란 모양이었다. 나는 신음하면서 심호흡을 터뜨리고 한 번 더 한숨을 터뜨렸다.

나는 서둘러 핸드폰에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렸다. 수많은 먼지 쌓인 번호들 사이에서 내가 아는 제일 유능한 부동산 중개인의 번호가 떠올랐다. 나는 헬륨을 머금은 입 꼬리를 애써 잡아 내렸다. 그리곤 노신사에게 우리 큰형의 전화번호를 넘겼다.

그렇게 우리는 지하에 다다랐다. 새 주인을 만난 텅 빈 방들은 조용했다. 밝은 조명 아래 새하얀 벽지와 붉은 카펫이 펼쳐져 있었다. 단조로우면서도 강렬한 색 배치는 마치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중 한 장면을 보는 듯 했다.

복도 위를 거닐면서 나는 노인에게 천천히 둘러보라 말했다. 노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에 방들을 살폈다. 문과 엘리베이터, 그리고 방 몇 개를 들여다 본 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 계약하지. 대신 조명은 끄고 방을 좀 손봐야 할 것 같군. 벽도 좀 허물어야 할 것 같네. B01부터 B04까지 중요한 기둥을 빼고 벽을 허물어도 되겠지?”

나는 알겠노라 말하자 그는 내게 수표를 내밀었다. 형이 계약서부터 쓰고 하자고 말렸지만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이 돈도 적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어깨에 걸친 코트 안에서 수표 하나를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심장을 움켜쥐었다.

내가 바닥에 나뒹굴 때까지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시선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수표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그대로 모든 것이 멀어져 갔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내 가슴을 세게 누르던 노인의 실루엣이 다였다.

훗날 병원에서 들은 바로는, 급성 심장마비가 왔었다고 한다. 아마 과음과 불규칙한 생활이 문제였을 거라고, 의사는 울고 있는 어머니 앞에서 말했다. 노인의 심폐소생술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반신불수가 되었거나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형과 함께 오신 어머니는 노인의 손을 붙들고 거의 30분 동안 감사하단 말을 아끼지 않으셨다. 형도 감사의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가 항상 내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입에 발린 소리란 걸 알지만 난 알았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와 형이 떠나고 나서 나는 노인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노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술 좀 작작하고 운동이나 하라는 잔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나는 안 그래도 그럴 차였다고 말했다.

“그래도 뭔가 보답을 해드리고 싶네요, 선생님.”

“교수라고 부르게. 그게 더 편해.”

“네, 교수님. 뭐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요? 계약금에 웃돈까지 주셨는데…….”

“그런가? 그럼 자네는 내가 좀 시끄럽게 써도 방해하지 않을 텐가?”

“시끄럽게요?” 난 인상을 찌푸렸다.

“음, 설마 지하에 뭐, 클럽 같은 걸 여실 생각은 아니죠?”

그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개인적으로 실험 기구를 좀 들여다 놓을 생각이거든.”

실험기구란 말에 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노인은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이 덤덤히 말했다. 그는 자신이 라이파이라고 하는 장치를 개발한 장본인이자 미스카토닉 대학의 명예교수직을 맡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바람에 내 심장은 다시 한 번 심장마비를 일으킬 뻔했다. 내 병실에서 와이파이를 완전히 사장시키고 등장한 최첨단 전등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거니와. 그런 세기의 발명품을 만든 장본인이 내 앞에 서있을 줄은 짐작도 못했기에 충격은 더했다.

내가 아는 한 라이파이는 일종의 전등 형태의 인터넷 공유기였다.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이 공유기는 빛의 속도로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지하철이나 비행기에서도 끊김 없이 인터넷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 무선충전기능까지 겸비하고 있어 데이터나 배터리 걱정은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그제야 나는 노인이 제시한 거금이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있었다.

“실험을 준비하고 있네.”

노인은 조금은 쑥스럽게 말했다.

“아주 중요한 실험이지. 하지만 학계에선 미쳤다고들 하고 미스카토닉 대학에선 지원금을 끊겠다고 해서 말이지.”

“그, 제 오피스텔 근처에 있는 그 미스카토닉 경기 분교 말이에요?”

“그렇네. 음, 일단은 사비를 들여서 한번 연구를 해보려는 차였지.”

“그걸……. 왜 하필 제 오피스텔이죠?”

“싸고 적당히 넓고 미스카토닉 대학이랑 가까운데다 관리인이 술에 취하고 흐리멍텅해 보여서 뒷꿍꿍이를 숨기고 있어도 모를 줄 알았지.”

“허. 이거 웃어야 하나요?”

내가 실실거리며 말하자 노인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입가에 난 자글자글한 주름이 일그러져 덩굴처럼 영키기 시작할 무렵. 노인은 입을 열었다.

“그래주면 좋겠군. 그래서 자네 생각은 어때? 해줄 수 있겠나?”

노인은 내게 되물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정은 오직 하나 뿐이었다.

 

4.

 

언제나 기회는 있었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처음으로 담배에 손을 댔던 중학생 때도 나는 담배를 거절할 수 있었다. 좀 논다는 애들과 작별을 고하고 그냥 교실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처음 술에 손을 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단란주점에서 못해도 10살은 더 많은 누님들과 술을 마시기보단 공부를 할 수도 있었다. 아니, 굳이 공부 말고도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다.

이를테면 사진을 찍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터였다.

풍경을 찍거나 작은 나비 같은 것을 찍는 것 말이다. 중학교 때 사진동아리에서 이름 꽤나 날리던 실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거기다 고등학교 때엔 대대적으로 사진전까지 열지 않았던가? 하지만 내 비행은 날 사진에게서 멀어지게 했다. 술과 담배는 달았고 늑대 무리 같은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하루는 스릴 넘쳤다. 반면 조용하고 인내를 요하는 사진 찍기는 불알 떨어진 범생이들의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모든 사진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옆에 있는 여고에 가서 몇몇 애들을 꼬여 놀 때는 예외였다. 헐벗은 속옷 아래로 속살이 들어나면 우리는 서로에게 플래시를 터뜨렸다. 누구건 상관없었다. 우린 곧 사그라질 고등학생의 젊음을 기록하듯 서로를 안고서 갈 데까지 갔다. 우리의 입에서 터져 나온 열기에 좁은 모텔 안은 열기로 가득 차올랐다. 그러고 나면 우린 소돔과 고모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열기와 돈, 그리고 헐벗은 우리들의 몸뚱이로 쌓아올린 우리들만의 도시 안으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업적은 새벽이 되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대여시간이 끝나고 우린 모텔에서 기어 나와 저마다의 길을 떠났다. 고등학생 주제에 술값으로 얼마를 썼고 다음엔 누가 낼 차례라는 상의도 잊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이게 나의 10대였다. 마시고, 피우고, 안고, 또 마시고. 나는 내 심장이 멎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그 짓을 반복했다. 몸이 망가지든 가족 간의 유대가 끊어지든 그딴 건 알 바 아니었다. 어머니는 금이 가는 가정을 항상 방관하셨다. 형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날 감사주면서도 언제 꺼질지 모를 불덩이를 손바닥에 놓고 사는 사람들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허나 아버지는 아니었다.

사업으로 승승장구하신 분이라 그랬는지 아버지의 결단력은 두 사람보다 단호했다. 그리고 자신의 작은아들에 대해 어느 정도 꿰뚫어 보시기도 했다. 특히 그 능력은 송년 회식 자리 친구들 앞에서 빛을 발했다.

“언젠가 큰애가 내 사업을 이어받을 거야.”

아버지는 큰형의 어깨를 감싸고서 말했다.

그러면 우유부단한 형의 얼굴은 멋쩍게 일그러지곤 했다. 그러면 몇몇 사람들이 되묻곤 했다.

“그럼 작은애는?”

아버지는 멋쩍게 웃으시다가 못들은 척 큰형 자랑을 이어갔다. 내가 작은 애라고 불리는 것 자체가 싫으신 눈치였다. 언젠가 그 일 때문에 아버지에게 대든 적이 있었다. 나는 추켜 올라간 솥뚜껑만한 아버지의 손바닥에다 대고 폭행죄에 대해 늘어놓았다. 자식으로서 되먹지도 않은 행동임을 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되먹지도 않은 자식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울긋불긋한 얼굴에 핏발을 세우시다 방안으로 들어 가버리셨다. 어머니는 따라 들어가셨고 형은 날 나무랐다. 물론 내 성질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자신이 있었다. 아버지 따위 없어도 그만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러다 일이 터졌다.

고3때 같이 놀던 여자애 하나가 내 아이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의 새끼야!”

아버지는 분에 못 이겨 아침상에서 보시던 신문을 나에게 집어던지셨다. 그리곤 집으로 들이닥친 여자애와 날 죽일 듯 노려보다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셨다. 결국 뒷수습은 어머니와 형의 몫이었다. 중절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를 찾아 수술을 한 뒤 수술비용 전액을 형과 어머니가 지불하는 선에서 끝을 내자는 것이었다. 다행히 여자애 가족들은 우리 쪽 제안을 거절하진 않았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아버지는 나를 개 쳐다보듯 하셨다. 뿐만 아니라 공공연히 개에게는 물려줄 재산이 없다고도 하셨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엇나갔다. 빌어먹을 노친네가 내게 줄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냐고 쏘아 붙이기도 했다. 결국 아버지는 경기도 언저리에 사둔 쓰레기 같은 오피스텔 빌딩 하나만 던져두고 나를 집 밖으로 내쫓으셨다.

난 아직도 아버지가 왜 나에게 오피스텔 하나를 물려주셨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뒤로 아버지와는 한 번도 얼굴을 마주치거나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던 탓이었다. 그리고 심근경색으로 쓰러졌을 때도 아버지는 끝내 얼굴을 비추지 않으셨다. 결국 지금까지도 나는 아버지의 결정을 이해할 순 없었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아버지 안에 타락해버린 자식에 대한 연민이 남아 있을 지도 모른다는 짐작만이 들 뿐이다.

 

5.

 

이제 내 아침 일과는 산책으로 시작한다.

새벽 5시에 눈을 뜨기 무섭게 공원으로 간 나는 가뿐하게 아침 조깅을 한다. 뿌옇게 낀 연무에 가려진 나무와 그 사이에 숨은 나비들이 내 핸드폰에 담길 주 고객들이었다. 하지만 난 고객을 가리지 않았다. 기묘한 구름이나 특이한 새들. 고양이와 싸우는 사마귀 같은 것들도 내 사진의 고객이었다.

나는 셔터를 누를 때마다 한 살씩 어려져갔다. 그 동안 찍은 수많은 사진들은 내 인생을 다시 써주는 대필 작가가 되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다시 한 번 올 수 있다는 듯이 난 햇살을 붙잡아 사진 안에 가둬두었다. 하지만 공원을 나오면 나는 다시 방탕한 흔적을 다 털어내지 못한 오피스텔의 주인이 되어 있었다.

가족들이나 연인의 친근한 말 대신 날 반기는 것은 오로지 알람뿐이었다. 다음 달 이자와 빌린 돈 액수가 적힌 문자만 빼곡했다. 가벼운 만남 끝에 고민을 털어놓을 친구 한 명 내겐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노인을 떠올리곤 한다. 내 가슴을 누르면서 소리치던 노인의 모습을 말이다.

그날 난 어떤 의미에서 구원 받은 셈이었다. 병원을 나오기 무섭게 난 방안에 가득했던 소주병을 따서 변기에 쏟아버렸다. 클럽 회원증은 찢어버린지 오래였다. 녹색 병들을 가지고 공사장에 가서 하나하나 깨뜨려버릴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병들은 내다 놓기 무섭게 다른 이가 집어간 터라 비원을 이루진 못했다.

“흠. 퇴원했군.” 노인은 관리실 문가에서서 방 정리하는 나에게 말했다.

“몸은 좀 어떤가?”

“괜찮아졌습니다. 술은 다 갖다 버렸어요.”

“흠. 잘했네. 원, 젊은 친구가 벌써부터 그래서야 쓰겠나?”

이런. 나는 노인의 잔소리를 들을까, 벌써부터 양쪽 귀를 뻥 뚫어놓았다. 잔소리가 어느 쪽으로 들어오든 반대쪽으로 흘러나가길 바랐다. 하지만 노인이 건넨 건 말이 아니었다. 그가 건넨 건 팸플릿이었다. 구청에서 하는 알콜 중독 지원 사업에 대한 팸플릿 말이다.

“이건 무료네. 구내에 사는 사람들에게 지원해주는 거니까 한 번 가봐.”

나는 잠시 노인을 바라보았다. 고맙다는 말을 했는지 아리송했지만 나는 그가 떠난 뒤로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인자한 목소리에 나는 시큰해져오는 콧잔등이를 문질렀다. 왜 내 콧잔등이가 시큰해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는 있었다. 그가 나에게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 비행이 시작된 이래로 누구도 날 믿어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엇나갔는지도 몰랐다. 물론 이건 오롯이 내 변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노인이 권한 알콜 중독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그 뒤로 다시는 술을 입에 대는 일은 없었다.

 

6.

 

초록색 코팅을 한 오피스텔의 유리문 너머로 아침 햇살이 흩어졌다.

나는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양복 입고 출근하는 회사원과 허름한 잠바를 걸친 막노동꾼, 미스카토닉 대학을 다니는 학생까지. 모두 저마다의 길을 가느라 7시의 로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개중에는 유치원에 가는 아이까지 있었다.

“안녀하세요.” 엄마 손을 잡은 아이가 졸린 듯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안녕 꼬마야. 어디 가니?”

내가 친근하게 손을 흔들어 보이자 소녀는 눈을 비비면서 유치원에 가노라 말했다.

“오늘은 고구마 캐러 농장에 간대요.”

“하하. 좋겠다야. 잘 다녀와라.”

내가 머리를 헝클어뜨리자 304호에 사는 아줌마는 조금은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나는 슬쩍 고개를 안으로 들이밀고선 아이에게 사탕 하나를 건넸다. 조그만 박하사탕이었다. 아이는 뛸 듯 기뻐했고 아이엄마는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사탕을 오물거리면서 문을 두드릴 동안 밖에는 노란 버스 하나가 오피스텔 앞에 멈춰섰다. 문이 옆으로 접혀 열리자 안에선 단발머리를 한 유치원선생이 아이를 해맑게 맞아주었다. 아이가 버스에 올라타자 버스는 문을 닫고 도로를 향해 빠르게 사라졌다.

나는 버스의 꽁무니를 슬쩍 바라보다 관리실 문을 닫으려고 했다. 하지만 304호 아주머니가 말없이 관리실 앞에 서있었다. 그녀는 무언가 하고픈 말이 있다는 듯 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 빤히 그녀를 바라보다 반쯤 닫은 카운터의 유리문을 열었다.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할 지 반쯤 짐작하고 있었다.

“진동 때문에 그래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밤에도 애가 못 자더라고요. 진동 때문에 귀가 가렵다고 계속 하더니만. 대체 아래에서 뭘 하는 거예요?”

“실험이요.”

나는 짦게 대답했다. 길게 말해주고 싶어도 아는 바가 적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이 엄마는 대충 알았다는 듯 고개를 두어 차례 끄덕이다 고개를 저었다.

“있죠. 저 아래 사시는 분이 뭐 하는 분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당신은 집주인이잖아요. 적어도 밤에만이라도 작업을 멈춰달라고 할 수…….”

또다시 가벼운 진동이 오피스텔을 덮쳤다. 철골이 울리고 천장에선 먼지가 쏟아졌다. 우리는 잠시 카운터를 붙들고서 무서운 것을 본 토끼 마냥 몸을 움츠렸다.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쇠사슬에 매달려 흔들거렸다. 삿갓처럼 생긴 전등커버가 휘청거리다 잦아드는 진동과 함께 멈췄다. 아이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1층에 아무도 안 살아서 다행이네요.”

“내가 살잖아요.”

“그쪽은 아래층 사람 감싸주기 바쁘잖아요. 이 정도는 감수해야죠.”

아이 엄마는 살짝 비꼬듯 말했다. 얼핏 보면 쏘아붙이는 것 같기도 하고 적당히 나무라는 것 같기도 해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녀가 말했다.

“있죠. 혹시 옆 건물이나 뭐 그런 곳에서 항의 안 들어와요?”

“안 들어오는데요? 왜요?”

“아뇨. 파란이 아빠가 건설사 다니거든요. 공사장처럼 시끌시끌한 곳 보면 주변에서 민원이 빗발치거든요. 좀 이상하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다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라도 큰일 터지기 전에 알아서 해요. 난 올라갑니다. 근데 엘리베이터는 언제 고칠 거예요?”

나는 입가를 쓸어내리면서 나중에요, 라고 대답했다. 여자는 못마땅한 얼굴로 날 바라보다 계단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7.

 

오후 내내 304호 아줌마의 이야기에 마음이 쓰였다.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했다. 왜 옆 건물에선 아무도 항의를 안 하는 걸까? 이 정도 진동이라면 분명히 옆 건물에서도 무언가 반응이 있을 텐데. 나는 관리실 밖으로 나와서 내 오피스텔의 양 옆에 들어선 다른 오피스텔들을 바라보았다.

빨간 벽돌로 쌓아올린 두 오피스텔은 고요했다. 하얀 시멘트로 발라 올린 단단한 외벽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었다. 거기다 불투명하게 반들거리는 유리창 위로는 조금의 떨림도 보이지 않았다. 수시로 파르르 떨어대는 내 오피스텔과는 다르게 말이다.

난 옆집 사람들에게 진동에 대해 물어볼까 망설였다. 하지만 괜한 긁어 부스럼을 만들까 싶어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순 있었다. 현관문이 떨리고 있었지만 현관에서 5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서있는 나에게까지 진동은 손을 뻗지 못했다. 대체 시공사 측에서 어떻게 공사를 했기에 이 모양인 걸까? 정말이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나는 현관문이 떠는 것을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처럼 어깨로 유리문을 밀고 들어간 나는 채 한발자국을 들여놓기 무섭게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꼈다. 탄내. 매케한 탄내가 로비 현관에 가득 차있었다.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곧장 핸드폰을 꺼내들고 119에 신고를 했다. 곧 도착할 거라는 소방관의 말을 들은 나는 곧장 관리실 안쪽에 구비해둔 소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탄내를 쫓아 지하실로 내려갔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매캐한 연기가 몸을 뒤틀기 시작하자, 열기가 내 얼굴을 매섭게 할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교수님! 안에 계세요?! 교수님!”

오직 내 목소리만이 지하실 속을 매섭게 메아리쳤다. 나는 귀를 기울이면서 빠르게 복도를 거닐었다.

“교수님!!”

“살려…….” 작은 목소리는 연기 너머에서 나고 있었다. 기침 속에 좀 먹어 들어가는 목소리는 점차 기력을 잃고 있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곧장 핸드폰의 플래시를 켠 체 지하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검은 연기를 들이켠 내 입에선 기침이 튀어나왔다. 마치 목구멍에 사포질이라도 한 듯 거친 기침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난 잽싸게 셔츠로 입을 가렸다. 하지만 핸드폰을 들 손이 부족했기에 하는 수 없이 바지 벨트 사이에 핸드폰을 찔러 넣었어야 했다. 뭐, 보는 사람도 없었거니와 체면 차릴 필요도 없었다.

핸드폰의 불빛이 간헐적으로 연기를 뚫고 나아간 빛이 붉은 카펫을 비쳤다. 어렴풋이 문들과 방 번호가 보였지만 이번엔 눈물이 내 앞을 가렸다. 최루탄 가스를 얼굴에 뿌리기라도 한 듯 콧물과 눈물은 내 얼굴을 뒤덮어버린 것이다. 나는 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얼굴셔츠로 대충 뭉개 닦았다. 하지만 매캐한 연기는 바람에 흩날리는 거대한 커튼처럼 유유히 휘날렸다. 조금 더 지하실 안으로 들어가자, 계단 바로 옆에 달려 있는 초록색 점멸등조차 사라졌다. 나는 앞으로 가는 건지 뒤로 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기침이 더 심해지고 눈앞이 흐릿해질 즈음.

나는 보았다. 그것은 눈 앞에 아른거리다 사라졌다. 손전등인가? 아니면 전깃불이 튀었나? 하지만 당시에 나는 노인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지하에서 전기를 쓰는 방은 노인이 머무는 연구실 뿐이었다. 나는 곧장 잦아드는 불빛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러자 B04호의 명패 아래 매달린 작은 도널드 덕의 모습이 드러났다.

곧장 문을 열자 반쯤 열린 문틈으로 어렴풋이 불길이 보였다. 연기에 제 몸을 감춘 검붉은 열기는 노인의 실험실을 서서히 태우고 있었다. 이래서 내가 먼지 좀 치우라고 했던 건데! 나는 기침을 토해내면서 문을 밀었다. 하지만 문은 잘 열리지 않았다. 무언가가 막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나는 문을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소화기로 문을 후려쳐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묵직한 소화기에 내 몸이 휘청거릴 판이었다. 때문에 나는 뒤로 물러섰다.

당장 나가도 시원치 않을 거란 생각이 머릿속에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지만 노인을 두고 갈 순 없었다. 문과 조금 거리를 둔 나는 소화기 밑바닥을 문 쪽으로 겨누었다. 손바닥 안쪽으로 소화기의 손잡이를 단단히 지탱하고 다른 손으로 소화기 몸통을 받힌 나는 그대로 문을 향해 돌진했다.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나는 자동차 충돌 실험에 쓰인 자동차들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온몸으로 문짝에 들이 받은 터라 어깨부터 삭신이 다 부서질 것만 같았다. 충격에 놀라 입술을 깨문 터라 입에선 시큼한 냄새가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성과는 있었다.

문틈이 살짝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틈바구니 사이로 소화기를 밀어 넣었다. 그리곤 소화기를 잡아당겼다. 지렛대의 원리를 어설프게나마 실행에 옮긴 덕분일까? 문은 서서히 열리더니 이윽고 사람하나 충분히 들어갈 만한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나는 바닥에 뒹구는 소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이제 천장으로 옮겨 붙기 시작한 불씨를 향해 새하얀 소화기 분말을 뿌렸다. 두어 차례 분말이 불길 위를 뒤덮자, 불길은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나는 소화기 분말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소화기 손잡이를 누르고 있었다.

 

8.

 

노인은 산소호흡기를 입가에 가져댔다. 고농도의 산소가 희미하게나마 그의 총기를 되돌려 놓았지만 불행히도 그의 실패를 되돌려주진 못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지하실로 향하는 소방관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측은한 시선은 연기를 토해내는 자신의 실험실로 향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일이 그의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남긴 듯 보였다.

소방관들은 10여 분 만에 지하실을 나서면서 내게 주의를 주었다.

“대체 얼마나 청소를 안 한 겁니까? 불이 먼지에 옮겨 붙어서 화재가 났어요. 까딱 잘못했으면 건물 전체로 옮겨 붙을 뻔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잘 치우도록 하죠.”

“그러시는 게 좋을 겁니다. 어르신. 몸은 좀 어떠세요? 아직도 목이 칼칼하고 계속 기침 나오시죠?”

“난 괜찮소.”

노인이 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구급대원은 말을 아끼라고 말하면서 노인을 구급차 안에 태우고서 간단한 혈압 검사를 했다. 하지만 노인은 그들의 손을 뿌리치고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구급차 밖에 멀뚱히 서있던 나는 노인의 손짓에 이끌려 구급차에 가까이 다가갔다. 노인은 파르르 떨리는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자네가 해줘야 할 일이……. 생긴 것 같네.”

“무슨 일인데요? 교수님. 말씀만 하세요.”

노인은 잠시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그의 얼굴은 후회로 일그러졌다. 그는 연신 고개를 젓다가 다시 구급차 들것 위에 몸을 뉘였다. 눈살을 찌푸린 나는 무슨 말을 하려던 거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그는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굳게 닫힌 입술이 시퍼렇게 질려선 마치 금방 죽을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내가 노인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이, 구급대원은 하늘을 향해 올라간 뒷문을 손으로 붙들고서 말했다.

“저기요, 환자분을 일단 병원으로 모실 겁니다. 보호자세요?”

“전 이 오피스텔 주인이에요. 세입자신데, 혼자 사셔서…….”

“잠깐만!”

구급대원과 나는 노인의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는 없었다. 저 왜소한 체격 어디에서 우레와 같은 호통이 터져나왔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노인은 천천히 구급대원에게 말했다.

“혹시 시간을 줄 수 있나?”

“대화를 나누실 거면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얼마든지…….”

“아니, 단둘이서만 할 이야기네. 비켜 줄 수 있나?”

구급대원은 슬쩍 내 쪽을 바라보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곧장 사건 현장을 한가롭게 거닐면서 구급차 조수석으로 걸어갔다. 조수석 문이 닫히자, 노인은 무거운 입을 땠다.

“실험은 실패야.”

그는 처참한 얼굴로 자신의 실패를 인정했다.

“모든 것이 틀렸어. 매질을 통해서 빛의 속도를 늦추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야.”

“이제 그만 다 끝내실 거죠? 그렇죠?”

“어쩌면.”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결심이 선 듯 먼 산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니, 끝낼 수는 없지. 암, 끝낼 수는 없고말고. 내가 얼마나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들인 시간이 얼만데. 이대로 끝은 낼 수 없어. 어쩔 수 없군. 이제 남은 건 하나 뿐이네.”

노인은 단호하게 말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네크로노미콘.”

노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걸 미스카토닉 대학에서 복사해오게. 그래야, 그래야만 하네.”

“그게 대체 뭔데요?”

내가 묻자, 노인은 그 책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그 책은 압둘 알하자드라는 아랍의 광인이 쓴 책이었다. 옛 교수들도 이 불길한 책에서 영감을 얻었노라고 노인은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페이지까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내게 부탁을 할 수 없었다. 기침이 심해지자 구급대원들이 나타나 노인을 구급차에 실어간 것이다.

아수라장에 홀로 남은 나는 노인이 적어준 페이지 번호를 떠올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9.

 

미스카토닉 분교는 생각보다 세련된 학교였다.

미국 대학의 분교임에도 정문은 한국적인 기와를 얹은 대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문 너머에는 작은 광장이 있었는데, 한가운데에는 학교 설립자로 보이는 사람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동상 주위로 이름 모를 꽃들이 원을 그리면서 심어져 있었다. 거기다 화기애애하게 지나다니는 수많은 학생들의 모습은 흐린 하늘과 달리 맑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런 학교에도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드넓은 캠퍼스가 문제였다. 아예 버스 노선이 학교를 가로지르고 있었던 탓에 어디서 도서관을 찾아야 할 지 막막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나는 정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학생회관 안에 들어가서 길을 물을 수밖에는 없었다.

“도오, 서관 말인가?”

두 눈이 툭 불거져 나온 경비원은 양쪽 눈을 번갈아 깜빡이면서 말했다. 나는 그에게서 나는 묘한 비린내를 참아가며 인내심 있게 그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는 친절하게도 약도가 적힌 안내책자를 내게 건네면서 말했다.

“음, 우리 학교는……, 도서관을 ‘헨리 아미티지 홀’이라고 불러요. 캠퍼스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언덕에 있죠. 그 언덕 위에 커다란 건물이 있는데, 거기가 ‘헨리 아미티지 홀’이죠. 참고로 그곳은 음식 반입 금지구역이네. 커피도 안 됩니다.”

경비원은 두꺼비 같은 얼굴을 깨름칙하게 찡그렸다. 아마, 웃는 모양이었다. 그는 데스크 아래서 책자 하나를 꺼내 보였다.

“자, 이건 약도예요.”

나는 문어의 촉수처럼 축축하게 엉기는 손을 바라보았다. 그 경비원의 손가락 사이에 늘어진 막 같은 것이 얼핏 보였지만, 나는 애써 태연한 얼굴로 안내 책자를 받아들고서 서둘러 그 음습한 학생회관을 빠져나왔다.

 

10.

 

나는 서둘러 이 불길한 곳을 떠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어느 덧 나는 언덕 위에 서 있는 ‘헨리 아미티지 홀’ 앞에 서 있었다.

헨리 아미티지 홀은 그저 평범하게 생긴 낡은 건물이었다. 외벽은 흔한 대리석 외장재로 마감되어 있었다. 거기다 오래전에 대리석으로 만든 표지판 주위는 흉물스럽게 녹물이 슬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도서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삐걱이는 유리문을 열자 작은 개찰구가 내 앞을 막아섰다. 하지만 다행이도 노인이 내게 준 도서관 출입증 덕에 나는 무사히 개찰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나는 자동으로 열린 개찰구 안으로 미끄러지듯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개찰구 옆에 자리한 사서실 쪽에서 목소리 하나가 다가왔다.

“저기요.”

한 서른 조금 넘었을까? 안경을 쓴 여자는 천천히 사서실을 빠져나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내게 방금 찍고 들어온 도서관 키카드를 보여 달라 말했다. 설마 다른 사람 신분증으로 들어온 걸 눈치 챘나? 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카드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카드를 본 여자는 안경을 올리면서 뜻밖의 말을 꺼내놓았다.

“교수님이 세 들어 사는 오피스텔 주인 되시죠?”

“아, 네. 제가…….”

“따라오세요.”

하이힐 소리를 또각이면서 로비를 가로지른 여자는 자신을 가인이라 소개했다.

그녀는 이 지방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지금은 사서일도 도맡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노인의 상황에 대해서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다. 노인의 입지가 많이 좋지 않다는 것도. 그의 몸 상태가 나날이 쇠약해져가고 있다는 것도.

“어제 교수님께서 전화하셨어요. 네크로노미콘을 찾으실 거라 하셨죠.”

“네, 그 책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그, 페이지가…….”

“알아요. 797페이지죠?”

그녀는 도서관 지하실을 문을 열어젖히면서 말했다. 단단한 녹색 철문이 열리자, 지하실 아래에 고여 있던 서늘한 냉기가 스멀스멀 매만지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가인 씨는 별다른 내색 없이 전등을 키고서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녀는 지하실로 내려가는 동안 노인의 상태를 물었다. 그녀는 화재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아마 노인과의 통화를 통해 알게 된 듯 했다. 나는 크게 걱정할 만큼 노쇠하시지 않았노라 답했다.

그러자 가인 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교수님이 크게 안 다치셨다니 다행이네요. 내일 저녁 즈음에 병문안 차 뵈러 갈 생각이었거든요. 오늘은 저녁 업무가 늦게 끝날 예정이라서 말이죠.”

“교수님과 상당히 친하셨나보네요.”

“네. 제가 석사 과정 때 그 분 도움을 상당히 많이 받았거든요. 조금 복잡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러니까, 당시에 전 석사 논문으로 네크로노미콘에 관한 해석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네크로노미콘에 대해 조예가 깊으신 분이 없어서 고전하고 있었죠. 심지어 제 지도 교수님도 네크로노미콘은 생소하다고 손사래까지 치셨죠. 그러다가 우연히 교수님께서도 석박사 과정 때 네크로노미콘에 관한 논문을 쓰셨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가서 도움을 구했죠.”

“하지만 교수님은 이과시잖아요. 그런 책을 논문으로 썼을 리가…….”

“아, 본토의 미스카토닉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을 때는 의례적으로 네크로노미콘에 관한 논문을 제출한다고 하시더군요. 어느 과든 상관없이 말이죠. 그분 말씀으로는 그 책을 읽어 내려가면 영감이 떠오른다고 하세요. 심지어 라이파이라는 기술도 네크로노미콘을 읽으면서 곱씹다가 만드신 기술이라고 하셨어요.”

가인 씨는 큼지막한 열쇠로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묵직하고 두터운 먼지와 공기가 강철 문을 따라 쏟아져 내렸다. 콧속을 따라 엉기기 시작한 공기가 목구멍 속을 턱하고 막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기침을 터뜨렸다.

“괜찮아요?”

가인씨가 묻자, 나는 괜찮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마치 바닷가에 들어온 것 같은 습기와 나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두꺼운 철문도 군데군데 녹이 슬기라도 한 듯 페인트칠이 붕 떠 있었다. 관광 잡지에 실린 인스머스의 습한 공기도 이보단 나을 것만 같았다.

“도서관이 이렇게 습해도 되나요?”

“당연히 안 되죠. 하지만 어쩔 수가 없어요. 건물이 낡을 대로 낡은데다가, 학생 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거든요. 그렇다보니 예산이 없어서 건물 보수는 꿈도 못 꾸는 상태죠. 그나마 오래된 제습기를 돌리고는 있는데도 역부족이에요.”

“그렇군요.”

내가 말하자, 가인 씨는 안경을 올려 쓰고 서고 목록을 살폈다. 그 사이 나는 책들을 살펴보았다. ‘오제이유 가에서의 기록’이란 책을 집어든 나는 슬쩍 책을 펼쳐보았다. 또렷이 새겨진 인쇄물은 번진 흔적이나 곰팡이 흔적 하나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런 습기 속에서 책들이 멀쩡하다는 게 더 놀라울 지경이었다.

내가 다른 책을 꺼내 보려 하자, 그제야 가인 씨는 입을 열었다.

“아, 이곳의 소장 도서들은 장갑을 끼고 만지셔야 해요. 몇몇 도서들은 진귀한 필사본이라서 지문이 남으면 손상될 수 있거든요.”

“흠, 그렇군요.” 나는 얼른 책을 제자리에 꽂아 두었다. 그러자 장갑을 낀 가인 씨는 내게 흰 장갑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이제부터는 함부로 손대지 마세요. 아시겠죠?”

“네. 그럼 이제 네크로노미콘을 보러 가는 건가요?”

가인 씨는 고개를 저었다.

“우선, 네크로노미콘이나 주요 필사본은 아무나 열람할 수는 없어요. 교직원들도 열람 신청을 한 뒤에 담당자 사인을 받아서 열람할 수 있죠.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게 뭔지 알아요?”

“뭔데요?”

“내가 그 승인 도장을 찍어주는 담당자라는 거예요.”

“음, 아무나 못 보는 책을 사서 허락 받고 볼 수 있다고요?”

“네. 아, 원래는 담당 학과장님이 도장을 찍어 주셔야 하는데 말이죠. 불행히도, 요즘은 아무도 이쪽으론 관심을 두질 않다보니, 절차들도 죄다 간소화되었죠. 이쪽으로 오세요.”

가인 씨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는 천천히 책장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그녀를 따라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서제 안으로 들어갔다. 도서관 안은 생각보다 넓었다. 천장까지 닿는 거대한 책장들이 연이어 늘어진 좁은 통로 너머로 또 다른 책장이 이어져 있었다. 거기다 무겁고 습한 공기까지 더해져, 마치 책장의 숲 속으로 걸어 들어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책장의 숲은 끝이 났다. 나는 벽에 기대어 선 책장들을 바라보다 책장 사이에 끼어 있는 금고를 발견했다. 내가 금고를 가리키면서 이게 뭐냐고 묻자, 가인 씨는 천천히 말했다.

“금고죠. 그 안에 네크로노미콘이 들어 있어요.”

“그럼 이 책을 들고 갔다 언제 돌려드리면 되죠? 이제 금고를 열면 됩니까?”

내가 말하자, 가인 씨는 정색을 했다.

“그건 안 되죠. 네크로노미콘은 도서관 영구 대출 불가 도서에요. 이건 교수님들도 못 건드리는 거라고요.”

“그럼 어떻게 하란 거예요? 교수님은 저 책 797 페이지가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가만있어 봐요.”

내게 주의를 준 그녀는 찬찬히 금고 옆에 굳건히 버티고 선 책장을 살폈다. 그리곤 그 곳에서 작은 논문 한 권을 꺼냈다. ‘네크로노미콘에 얽힌 정지된 광체의 묘사’라는 제목의 논문이었다. 논문 저자 란에는 가인 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요즘은 아무도 네크로노미콘을 신경 쓰지 않아요. 취업하느라 정신이 없거든요. 그래서 제가 논문을 썼죠. 주로 752페이지부터 800페이지에 서술된 시와 그림을 정리한 논문이죠. 해석과 다른 판본의 비교 글도 적혀 있으니까 아마 교수님 연구에도 도움이 될 거에요.”

나는 그녀의 논문을 들춰보았다. 기괴한 거품과 시간마저 잊어버린 고대의 옛 것들에 대한 기괴한 시와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나 거대한 거품으로 묘사된 어떤 존재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무한히 뻗어나가는 거품을 보라. 영겁의 시선을 벗어난 광체들의 도시 앞에서 영겁은 한없이 짧은 순간이리라.’

나는 휘파람을 불면서 말했다.

“대단한데요.”

“그런가요? 하하, 뭐, 그래봐야 인용도 2건밖에 안된 허접한 논문이었죠. 어쨌거나, 이게 왜 필요한지 몰라도 교수님께 전해주시고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11.

 

내가 오피스텔에 도착한 것은 늦은 오후 즈음이었다. 하늘 위로 흩뿌려진 새하얀 구름을 따라 죽어가는 노을이 마지막 광체를 번뜩이고 있었다.

“고맙네.”

노인은 눈을 번뜩이면서 말했다. 마치 마지막 생기를 불사르는 것처럼.

“정말로 고마우이. 내가 이 일은 절대로 잊지 않을 거네.”

“뭘 이런 걸 가지고 그러세요. 이제 푹 쉬세요. 기계 만지지 말고요.”

노인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문을 닫았다. 힘없이 닫히는 문을 바라보던 나는 몸을 돌려 다시 1층에서 세어 들어오는 빛 속으로 걸어 나갔다. 그때까지도 나는 이제 이 건물에 불어 닥칠 일들을 알지 못했다. 만약에 그날. 내가 그 저주 받은 책 사본을 노인에게 건네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일 내가 노인을 구하기 위해 연기 속을 뛰어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만일 그랬다면 나는 그들과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찬란한 도시 속을 들여다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그날 일을 후회한다.

 

12.

 

노인에게 책을 가져다 준 지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 한 달 동안 내 오피스텔은 별다른 소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진동이 사라지자, 사람들의 얼굴은 하루하루 밝아졌다. 늘 신경질적인 항의에 목말라 있던 6층 여자가 별말도 않고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면서 오피스텔을 나설 정도였다. 3층에 사는 파란이 엄마도 내게 고맙다며 감사를 아끼지 않았다.

“완전히 새로 태어난 거 같아요. 정말. 그 빌어…….”

“빌어먹을!”

파란이가 또박또박 외치자, 파란이 엄마는 아이를 품에 가리면서 멋쩍게 웃었다.

“아니, 그 놈의 진동 때문에 죽을 뻔했다, 뭐, 이거에요. 그나저나 밑에 계신 할아버지는 이제 더는 끔찍한 실험안하시는 거죠? 그쵸?”

“저야 모르죠. 하지만 이제는 전처럼 시끄러운 진동은 없을 겁니다. 약속드리죠.”

내가 말하자, 파란이와 파란이 엄마는 환하게 웃으면서 오피스텔을 빠져 나갔다. 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말이 사실이기를 바랐다.

진동이 걷힌 뒤로 나는 매일 밤마다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나는 꿈도 꾸지 않은 채 한 밤중에 골아 떨어졌다가 아늑한 침대에서 깨어났다. 한동안 나를 짓누르던 죄책감도, 은인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사진도 예전보다 훨씬 더 정교해지고 시선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사진을 인터넷에 올릴 때마다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미 사진작가나 다름없다는 사람들의 코멘트도 눈에 자주 띄었다.

나는 고앙감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작가라니. 그 길고 긴 방황 끝에 결국 사진작가에 다다를 수 있다니. 나는 흐뭇하게 내가 찍은 나비 사진을 훑어보다 핸드폰을 끄고 잠을 청했다. 보드라운 이불과 푹신한 침대가 아늑하게 몸을 감싸주기 무섭게 나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하지만 노인의 실험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랐지만,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가 새벽마다 중얼거리는 소리가 1층 바닥을 자욱하게 맴돌다 사라지곤 했으니까 말이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제대로 들을 수는 없었다. 너무 작은 소리여서 발음이 뭉개진 탓이었다. 그리고 파란이의 일이 일어나기 2주 전부터는 불길한 진동이 조금씩 방바닥을 타고 파르르 올라오기도 했다. 그때 나는 눈치를 챘어야 했다.

만약에 노인이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고 파란이와 파란이의 엄마에게 언지를 주었다면. 아니, 그 많은 사람들을 밖으로 피신시켰다면. 그랬다면 조금 나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침묵을 지킨 사이에 그날은 성큼 다가왔다.

 

13.

 

웅성거리는 소리에 나는 관리실 뒤편 쪽방에서 눈을 떴다.

졸린 눈은 저절로 감겼고 머릿속은 아직도 멍했다. 몇 시지? 나는 머리맡에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새벽 5시 반. 이제 서서히 터오는 햇살이 푸르스름한 기운을 온 세상에 퍼뜨리려던 찰나였다. 나는 불길한 예감을 견디지 못하고서 관리실 뒷방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수많은 시선들이 화살처럼 나에게 날아들었다.

“문 열어요!”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분노와 피로로 얽혀 있었다. 나는 대강 무슨 일인지 직감했다. 지하방에 은둔한 노친네와 얽힌 문제일 테지. 나는 핸드폰을 바지주머니에 찔러 넣고서 문밖에 놓아둔 슬리퍼를 끌고 비적비적 관리실 문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

문을 열기 무섭게 수많은 손들이 내 멱살을 잡기 위해 휘몰아쳤다. 런닝셔츠가 한없이 늘어나 내 뒷목을 조여 왔다. 그러자 눈가에 핏발이 잔뜩 선 304호사는 아저씨가 으르렁거렸다. 살벌하게 드러난 이빨 사이로 게거품이 흘렀다.

“네 놈 때문에 이게 뭐야! 네 놈 때문에!”

“무슨 소리에요! 뭐가 나 때문이란 거예요!”

“우리 파란이가 어떻게 된 줄 알아? 엉? 너 때문에!”

“파란이가 어쨌는데요?” 나는 당황하다 못해 굳은 얼굴로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내게 날아든 건 대답이 아닌 주먹이었다. 우락부락한 일격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딜 어떻게 맞은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날뛰는 304호의 목을 움켜쥐었다. 내가 오른손을 추켜들자 사람들은 순식간에 관리실 안으로 제 몸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리곤 수많은 손들이 홍해가 갈라지 듯 아저씨와 내 사이를 갈라놓았다. 나는 뒤로 밀려나서 바닥에 주저앉은 304호의 미친놈을 바라보았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놈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주체 못한 분노를 토해내던 그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이게 대체 뭔 일이야? 혼잣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내 물음에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대신 사방에서 말로 하지 왜 그러냐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저 미친놈이 먼저 시작했잖아!”

내가 소리치자 304호의 야수는 몸을 일으켰다. 이번에야 말로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눈빛에서 느껴졌지만 그 뿐이었다. 놈이 반쯤 정신 나간 상태에서 으르렁거리기만 하자 4층에 사는 대학생이 입을 열었다.

“아저씨. 저 분 따님이 지금 베란다에서 떨어졌어요.”

무언가 묵직한 쇳덩이가 내 머리를 후려친 느낌이었다. 뭐? 내 입에선 신음 섞인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304호 아저씨를 붙들고 있던 다른 아저씨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는 벗겨지기 시작한 정수리에 맺힌 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며칠 전부터 304호 아저씨네 딸에게 이명이 생겼다고 한다. 이명이 날로 심해져선 계속 무슨 소리가 들린다고 하더니 갑자기 정신 착란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그리곤 이상한 말을 남기고선 그대로 배란다에 몸을 던진 것이다. 나는 304호에 살고 있는 아이를 떠올렸다. 아직 유치원생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다. 자살이란 선택을 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울부짖기 시작한 304호는 고개를 저었다.

“요 며칠 밤에 잠도 못 잤어! 뭔가 무서운 게 있다고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칭얼거리지도 않던 애가 그 놈의 소리가 난다고 하더니만……. 갑자기 샤카켈릭인지 뭔지를 외치다가 뛰어내렸다고! 이걸 어쩔 거야!”

304호는 한차례 거칠게 포효했다. 하지만 분노는 곧 눈물 속에서 질식해 버렸다. 청동상처럼 단단해보이던 그의 얼굴이 통곡 속에 녹아내려 우리 모두의 발을 흥건히 적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중 그 누구도 바닥에 엎드려 울부짖는 그의 울음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지하 깊은 곳에서 울리는 거대한 진동이 그에게서 딸과 울음소리를 앗아가 버렸다고. 그들은 하나같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때였다. 나를 비롯한 상당수의 사람들이 귀를 틀어막았다. 귀가를 찌르르 울리고 사라지는 이명이 송곳처럼 고막을 찔렀다. 진동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이를 갈면서 성을 내기 시작했다.

“씨발! 나도 들었어! 그 이상한 소리. 분명 지하에서 나는 게 분명해. 빌어먹을 노친네가 무슨 짓을 꾸민거라고!”

어느 여자가 소리쳤다. 사람들은 서로 목청을 높이면서 지하에 홀로 살고 있는 노인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고작 몇 분 만에 그들은 프랑켄슈타인을 불태운 폭도로 변했다. 단지 쇠스랑과 횃불 대신 주먹과 스마트폰을 들었을 뿐이었다. 나는 주민들에게 소리쳤다. 잠깐, 멈춰 봐요. 잠깐만. 하지만 내 목소리는 거센 폭풍우처럼 오피스텔을 휩쓸기 시작한 목소리들 사이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무슨 사달이라도 날 것 같았다. 나는 서둘러 군중들 사이를 해집고 들어갔다. 멈춰요! 잠깐 만 멈추라고요! 아무리 목청을 높이자 어디선가 솥뚜껑만한 손아귀가 내 런닝셔츠를 잡아올렸다. 다음 순간, 눈앞이 번뜩이기 무섭게 콧잔등이 위로 시큼한 감각과 함께 내 몸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14.

 

코를 움켜쥐자 코뼈에서 일어난 아찔한 통증이 얼굴을 후려쳤다.

나는 멍하니 경찰차와 구급차들을 바라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일은 벌써 벌어진 뒤였다.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 뒤였다. 구급차에 앉아 있자, 지하실에서 나온 구급대원들이 들것에 죽은 사람들을 싣고 나오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노에 휩싸여있던 얼굴들은 싸늘하게 식어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마흔 아홉.”

구급대원들은 줄지어 나오는 들것들을 바라보면서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몸뚱이에 성한 곳이 없어. 얼굴이 뭉개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신원 확인도 어렵겠어.”

“하,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모르지. 계단에서 굴렀나? 지하 쪽이 어둡긴 어두운데…….”

그들은 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자 구급대원들은 슬쩍 고개를 돌려 자리를 떴다. 내 눈을 마주보는 게 상당히 껄끄러운 느낌이었다.

“코는 괜찮으신가요?”

나는 갑작스레 말을 건 누군가를 향해 시선을 올렸다. 경찰이었다. 나이는 서른 즈음 돼 보이는 그는 지구대의 야광 조끼 안에서 볼펜과 수첩을 꺼냈다. 그리곤 내 신분을 간단하게 확인하고서 물어볼 거리가 있노라 말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조명이 어두워서 이 사달이 난거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눈으로도 그 광경을 믿을 수 없었고 머릿속으로도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 입은 제 멋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고 있었다.

“어둡지는 않았어요. 그게 다들 핸드폰으로 불을 켜고 내려갔거든요. 분명히 발을 헛디뎌서 이 사달이 벌어진 건. 절대 아니에요.”

“확실한 겁니까? 그럼 당신은 어디 있었소?”

나는 그들의 경멸에 찬 손놀림을 떠올렸다. 그들은 내가 앞서 내려가는 걸 원치 않았다. 왜 그랬는지 몰랐다. 아마 서로 먼저 노인네를 찢어죽이고 싶어서 혈안이 됐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내 코를 후려쳐 바닥에 던져 놓았다. 내가 곧장 일어서려 하자 운동화 하나가 내 가슴을 걷어찼다. 그 바람에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나는 연신 벌렁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나는 서둘러 핸드폰의 잠금을 풀고서 112를 눌렀다.

바로 그때였다. 가래 끓는 소리가. 지독하게 괴상한 아우성이 지하 깊은 어둠 속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나는 1~2초 가량 저 아래서 나는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곧이어 나는 그 찢어지는 기괴한 소음이 비명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치 지옥 속에 떨어진 사람들처럼. 펄펄 끓는 용암 속에 빠진 이들처럼 그들은 비명을 지르고 악다구니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겁에 질린 것은 순전히 그 처절한 비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지옥 속에서 그 말을 외치고 있었다.

‘샤카켈릭.’

나는 내 입으로 읊조리고 있는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외국어인지 어떤 다른 말인지 알 도리도 없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경찰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경찰은 콧잔등이를 찡그렸다. 마치 수상한 냄새를 맡은 개처럼 그는 나를 수 초가량 응시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CCTV를 확인할 수 있느냐는 말이 나오던 그때였다.

“샤카켈릭샤카켈릭샤카켈릭!”

목소리는 비명과 함께 오피스텔 안에서 터져 나왔다. 오피스텔 문이 벌컥 열리면서 흰 천을 뒤집어쓴 벌거벗은 남자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운 없는 구급대원 하나가 그것이라고 밖엔 부를 수 없는 놈에게 붙들렸다. 놈은 구급대원을 덮쳐 바닥에 쓰러뜨린 뒤 구급대원의 등 위에 올라탔다. 그리곤 손톱으로 구급대원의 얼굴을 뜯어 뭉개면서 소리쳤다. 샤카켈릭! 샤카켈릭!

경찰은 서둘러 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놈은 막무가내였다. 급기야 구급대원의 얼굴이 거의 반으로 갈라지고 목이 뒤로 90도 가까이 꺾어 놓을 즈음. 전기총이 놈의 가슴에 꽂혔다. 전류가 흐르기 무섭게 놈은 차가운 청동상처럼 굳어 바닥에 쓰러졌다.

연신 파르르 떨리는 입술 사이로 걸쭉한 갈색 침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흘러나온 것은 침만이 아니었다. 샤카, 켈, 릭. 수갑이 채워지는 순간에 그는 말했다. 경찰관이 그를 바닥에서 일으키는 순간 나는 그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304호 아저씨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딸의 죽음으로 분노에 가득 차있던 그의 두 눈은 넋이 나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안에선 숨을 거둔 딸에 대한 연민도, 분노로 몸서리치던 아버지의 모습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흐리멍덩한 동태 눈알 속에서 드러난 것은 깊고도 깊은 광기뿐이었다. 마치 거센 돌풍에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라도 한 듯 그는 다시 광적으로 목청을 높였다. 샤카켈릭! 샤카켈릭! 귀를 틀어막은 나는 섬뜩한 기분에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 폭풍우가 지나가길 바라는 아이처럼 덜덜 몸을 떨어댔다. 하지만 폭풍우는 지나가지 않았다.

아직 오지도 않은 폭풍이 벌써 지나갈 일은 없었다.

 

15.

 

보름이란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 지 알 수도 없었다.

경찰서에서 12시간 넘는 참고인 조사와 언론의 끈질긴 추적이 번갈아가며 날 괴롭혔다. 온갖 뉴스는 내 오피스텔 사건으로 도배가 된 뒤였고 정치권은 앞 다퉈 관련규정을 손보겠노라 나섰다. 거기다 언론인들은 끊임없이 소모적인 기사를 토해냈다. 수많은 이들이 이번 사건에 관해 수많은 추측을 쏟아내고 있었다. 마약이나 사이비 종교같은 허황된 풍문만이 모든 진실을 가리고 있었다. 누구도 지하에서 펼쳐지는 노인의 기묘한 실험과 진동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저 어중이떠중이들이 보고 싶지 않아 TV를 꺼버렸다. 그러자 이젠 성난 이들의 아우성이 내 생각을 흐려놓고 있었다. 오피스텔 앞 시위 현장에서 나는 소리였다. 오피스텔 관리 소홀이 웬 말이냐! 그들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아마도 곧 변호사를 대동하고 정식고소절차를 밟을 생각인 듯 했다.

나는 방구석에 버려둔 휴대폰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쩌면 아버지에게 손을 벌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그 분은 내 오랜 방탕 속에 질려버리신지 오래였다. 심지어 내가 심장마비로 쓰러졌을 때도 아버지는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으셨다. 아마 이런 일 당해도 싼 놈이라고 혼자 중얼거리시고 계실지 몰랐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짓뭉갰다. 만약에 내가 방탕하게 살지 않았다면. 그 날. 내가 노인을 감싸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노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 돈을 거절했다면? 어쩌면 304호의 아저씨가 미치는 일도 파란이가 죽는 일도 없었을까? 거절할 명분은 많았다. 그래. 노인복지법이나 아니면 액수를 더 불려서 노인의 정나미를 떨어뜨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난 노인의 돈을 받았고 목숨도 받았다. 마흔 여덟의 목숨과 맞바꿔서 말이다.

똑똑똑. 묵직한 노크 소리가 한 차례 더 들릴 때 즈음에야 나는 입을 열었다.

“인터뷰 안 해요. 돌아가세요.”

“날세.”

목소리가 묵직한 투포환처럼 문을 뚫고 날아들었다. 노인이었다.

“이야기 좀 하지.”

그는 짧게 말했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를 일이었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당시의 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어쩌면 저 돈 많은 노인이 내게 또 다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 말이다.

문을 열자 한층 더 수척해진 노인이 날 맞이했다. 그의 키는 이제 내 기억 속에서 보다 절반 가량 줄어들어 거의 허리에 찰 지경이었다. 때문일까? 나는 나도 모르게 노인에게 괜찮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괜찮다마다. 그냥 기력이 좀 떨어졌을 뿐이네.”

노인은 차분하게 말했다.

“있잖나. 요즘 자네가 힘들다는 거 잘 아네. 나도 어제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으니까.”

“경찰이 뭐라던가요?”

“난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 났네.”

나는 노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정말로 혐의가 없는 걸까?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일이었다. 노인의 잘못이 아니라면 대체 그 광기를 불러온 것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 기묘한 진동과 기괴한 대학의 전경이 뇌리를 꾀찼다. 아니. 이건 뭔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된 일이었다. 흥분한 날 보고도 노인은 차분히 말했다.

“이해하네. 자네가 그러는 것도 이해해. 확실히 내게도 책임이 있어. 대화가 서툴렀지. 그래서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함세. 어떤가? 들어볼 요량은 있나?”

나는 뚱한 얼굴로 노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럼에도 노인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는 자신이 노쇠했다는 사실을 끝내 받아들였다고 내게 고백했다. 점점 집중력은 사라지고 눈에서 총기도 가시는 바람에 요 근래 실수만 했다고 한다. 그 덕에 막바지에 다다른 실험이 진전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조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 모든 노고는 공짜가 아니란 점을 노인은 강조했다.

“지금 자네 상황이 어떤지 잘 아네.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들은 답을 찾으려 할 것이고 그 중에서도 제일 합리적인 답을 찾으려 할 테지. 그리고 모든 가정 중에서 제일 합리적인 답은 자네가 지하실 아래로 가는 불을 꺼놓는 바람에 지하로 내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쓰러지면서 최악의 참사가 일어났다는 가정일 테고.”

“그래서 어쩌란 거죠?” 내가 으르렁거리자 노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어쩌자는 게 아닐세. 날 도와준다면 변호사와 소송비용은 내가 지불함세. 거기다 새 오피스텔을 알아봐주지. 어차피 내겐 남은 건 돈 뿐이니까.”

“대체 무슨 속셈인거죠?”

나는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대체……. 대체 저 아래서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매번 말했잖나. 난 빛을 멈추고 그 안을 들여다 볼 생각이네.”

“그러면 왜 하필 제 오피스텔이었죠? 실험실에서 해도 됐잖아요! 근데 어째서 제 오피스텔을 선택한 건데요?!”

노인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는 한참만에야 숨을 몰아쉬면서 입을 열었다.

“있잖나. 난 자네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네.”

“그럼 말해 봐요! 빛을 멈춰서 뭘 하겠다는 거죠? 네? 해를 끼치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 정도는 말씀 해주실 수 있겠죠? 네?”

노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는 모호한 표정을 하고서 입가를 쓸어냈다. 어딘지 모르게 우울함과 벗어날 수 없는 갈망이 그의 얼굴에서 엿보였다. 그는 다리가 아픈지 뒷방 문턱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리곤 내게 수년 전에 자신이 실패했던 실험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때 나는 라이파이를 개발 중이었네. 하지만 거의 개발 막바지에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지. 빛이 때때로 휘어지거나 금속성 물질이나 다른 광원에 의해 데이터가 손실될 때도 많았어. 우린 그 오차를 줄이는 실험을 수백 번쯤 반복했다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생긴 게야. 하지만 도중에 전선이 합선되어 실험기구에 불이 붙고 말았지. 다행히 큰 폭발은 아니었어. 그저 퍽하는 소리랑 연기랑 불길이 좀 일었지.

그 때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실험실 밖으로 뛰쳐나갔네. 하지만 기계 바로 앞에 있던 나는 나갈 수 없었어. 실험 책임자로서 자리를 뜰 순 없었거든. 난 근처에 배치된 소화기를 들고 기계 쪽으로 향했다네. 처음엔 연기 너머에서 무언가가 아른거리더군. 나는 사람인 줄 알았네. 그래서 빨리 피하라고 소리쳤지. 하지만 그 형체는 느긋하게 움직였네. 나는 연기를 뚫고 사람이라 생각했던 것에게 소리쳤지.”

노인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단 한 순간도 잠을 자 본 적 없는 이처럼 피곤에 절은 신음을 토해냈다.

“난 아직도 그게 무엇인지 모르네. 하지만 그것은 떠 있었어. 영사기로 투영한 것 마냥 공중을 날아다니더군. 처음엔 연기나 먼지가 일렁이는 거라 생각했네. 하지만 연기라기엔, 형태가 너무도 일정했어. 거기다 이글거리는 불꽃 속에서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더군. 그걸 보고 먼지는 아닐 거라 생각했네. 먼지라기보단 마치 필름 속의 상이 스크린에 맺힌 것처럼 보였지. 나는 다시 나타난 녀석을 관찰하려 가까이 다가갔네. 하지만 알아낼 만한 것은 없었지.

그것이 어떤 현상에 의한 건지, 어떤 원리에 의해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내 모든 지식을 총 동원해 보았지만 짐작도 되지 않았네. 하지만 딱 하나. 그 현상이 아무 곳에서나 일어나는 게 아니라가 기계 근처에 놓아둔 특수한 물체를 통해서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네. 그리고 그 액체가 빛의 속도를 느리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떠올렸지.

아마 그 빌어먹을 대학원생이 소화기를 들고 들어와선 사고만 안쳤다면. 어쩌면 그때 뭔가를 알아냈을 지도 몰라. 어쨌든 그날 이후로 내 삶은 달라졌네. 연기 속에 나타났던 그 놈에 관한 궁금증이 내 모든 것을 옭아맸지. 날 도와주는 이는 없었네. 내 친구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했지만 내 유명세에 기세등등하던 그 여우 새끼들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자마자 내 곁을 떠났어. 거기다 학교에선 날 실험실에서 내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 미친놈을 명예교수로 앉혀놓고 싶진 않을 테니까! 그래. 어쩌면 정말로 미쳤었는지 모르네. 하지만 난 분명히 봤다네. 분명히 그 안에 무언가가 있었어! 난 봤다고!”

목소리가 갈라지자 노인은 마른 침을 삼켰다.

“어쩌면 이게 금세기 최고의 발견이 될지도 모르네. 그래. 빛 속에 있는 어떤 희귀한 물질이라든가. 어쩌면 우리는 빛이 물질과 파동의 중간의 형질을 가지는 이유를 규명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 어쩌면 우리가 전자기파에 관한 새로운 접근법을 발견할 수도 있네! 그러니까 나와 함께 가세. 난 조수가 필요해. 버러지처럼 반기나 드는 멍청한 대학원생이나 조교 따위가 아니라 날 따르는 자네 같은 사람 말이야.”

노인은 마른 손으로 내 어깨를 붙잡아 흔들어댔다. 그는 오그라든 뺨을 한껏 비집어 올렸다. 나는 그것이 그의 웃음이라고 여겼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여겼다.

“이젠 돌아갈 수 없네. 경찰과 언론은 모두 자네를 의심하고 있지. 자네도 나도 더는 갈 곳이 없어. 자, 내 제안을 받아들일 텐가? 아님, 이곳에서 허송세월만 보낼 텐가?”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16.

 

노인과 나는 지하로 내려갔다.

한줄기 빛조차도 생기를 잃을 만큼 어둡고 퀴퀴한 냄새가 내 몸을 둘러쌌다. 아무리 눈이 어둠 속에서 적응한다고 해도 노인의 방은 윤곽밖엔 알아 볼 수 없었다. 때문에 나는 어둠 속을 움직이는 형상을 보고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가인 씨. 언제…….”

내가 손가락을 쳐들고 말했지만 가인 씨는 비적비적 실험실을 거닐면서 미소를 지었다. 푹 꺼진 뺨이 뒤틀리자 푹 꺼져 해골 모양이 훤히 드러난 그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보름 전에 왔어요. 교수님이 도움을 청하셨거든요.”

“보름 전이라면…….”

눈이 절로 번쩍 떠졌다. 그날은 분명, 세든 사람들이 광기에 휩싸인 날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당신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계속 여기에 있었다면…….”

“아, 저는 이곳에 있지 않았어요.”

그녀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동태 같은 눈빛이 희미한 불빛 속에서 반들거렸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입에서 샤카켈릭이란 말이 튀어나올 것 같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사카켈릭이란 말 대신 다른 것이 흘러나왔다.

“무한히 뻗어나가는 거품을 보라. 영겁의 시선을 벗어난 광체들의 도시 앞에서 영겁은 한없이 짧은 순간이리라. 기억해요?”

분명 네크로노미콘에 적혀 있던 시구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아래턱을 힘없이 늘어뜨렸다.

“그날 봤어요. 영겁의 시선을 벗어난 광체들의 도시를 말예요. 흐흐흐. 그곳을 거닐고 있죠. 지금도…….”

그녀가 이마를 찡그리며 웃자 해골이 드러난 얼굴이 그녀의 눈알을 서서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차가운 두려움이 내 발목을 움켜쥐자 다리가 절로 덜덜 떨렸다. 그러자 노인이 가인 씨에게 말했다.

“잡담은 그만하지. 오늘은 결실을 봐야 할 거 아닌가?”

기계의 전원을 넣자 노인은 좁은 턱이 부러질 듯 입을 벌려 웃어젖혔다. 기계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따라 입가를 타고 뚝뚝 떨어지는 맹목적이고 구체적인 열망과 광기 어린 열정이 묻어났다.

그는 비쩍 마른 손을 뻗어 곧장 기계에 전원을 넣었다. 전기를 한 사발 들이킨 기계는 낮은 중저음의 소리를 냈다. 어둠이 두꺼운 커튼처럼 모든 것을 가린 방 안에서 유일한 빛은 기계가 내뿜고 있는 작은 반짝임뿐이었다. 팔뚝만한 십자형태의 유리관 아래에서 가느다란 레이저 불빛이 곧게 천장을 가리켰다. 닿을 듯 말 듯 마주한 기계의 뾰족한 바늘 끝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거기다 계기판의 바늘들은 미친 듯이 가운데 눈금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이제 노인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가 되었다.

그의 손끝에서 이름 모를 기계들은 차례대로 작동을 시작했다. 세상을 찢어발길 듯 진동이 건물 전체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밖에서 접했을 때와는 세기부터가 차원이 달랐다. 관리실에선 골이 울릴 정도였다면 실험실 안에서 느낀 진동은 뼈와 살을 발라내는 느낌이었다. 본격적으로 진동이 시작되자 어김없이 이명이 고막 속에서 메아리쳤다.

그 바람에 현기증까지 이는 바람에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잡고 싶었다. 손을 뻗었지만 방 안에 딱히 잡을 것이 없었기에 나는 서둘러 기둥을 붙잡았다. 나는 지금도 후회했다. 이때 두려움에 몸을 싣고 방을 뛰쳐나갔다면 어땠을까? 나는 후회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때의 나는 노인의 결과물을 두 눈에 담고 싶었다.

그가 내민 매력적인 제안도 구미가 당겼다. 하지만 그보다도 이 노인의 시꺼멓게 눌어붙은 광기 속에서 누렇게 곪아 터져 나올 끝을 보고 싶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이 무엇에서 초래했는지. 또 날 벼랑 끝으로 내몬 빌어먹을 실험의 결말을 나는 정말로 보고 싶었다. 그러자 내 기대에 부응하듯 레이저는 유리관 속에서 진동 속에서 천천히 하나의 점으로 모여들었다. 유리관을 빠져나가던 빛도 서서히 조각나서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결국 남은 건 유리관 중앙에 모인 붉은 점이었다.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보통의 레이저라면 분명 천장에 붉은 점을 남길 터였다. 하지만 천장엔 붉은 점 따윈 없었다. 오롯이 그곳엔 짙은 어둠만이 깔려 있었다. 나는 혼란스런 얼굴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노인과 가인 씨는 나를 향해 너무도 해맑은 미소를 띠웠다. 그 웃음들은 장난감 조립에 희열을 느낀 아이처럼 천진해 보이기까지 했다.

노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레버를 돌려 기계의 출력을 올리자, 가인 씨는 정밀해 보이는 기계와 연결된 노트북을 살폈다. 그녀가 내는 타자 소리가 빠르고 규칙적인 소음을 내자 이제 붉은 빛은 얇은 막처럼 보였다.

마치 검은 물 위에 붉은 물감을 푼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붉은 물감과는 달리 두 광인의 빛은 어둠 속에서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희미한 외곽을 점점 넓혀가고 있었다. 이제 작은 점이었던 빛은 볼링공만한 크기가 되었다. 불규칙한 윤곽은 점점 더 불규칙하게 변했고 표면이 불규칙해지는 만큼 붉은 섬광의 색도 변해갔다. 이제 어떤 부분은 푸른색으로 변하기도 했고 서서히 누런색을 띠었다. 마치 회색이 짙게 깔린 황금빛이 저런 느낌이리라. 하지만 내 생각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순간, 날카로운 이명이 고막을 뚫고 지나갔다. 기계의 진동이 아무래도 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이명은 3초라는 일정한 간격으로 내 귀를 찌르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이명은 마치 작은 속삭임처럼 느껴졌다. 나는 멍해지는 기분 사이로 304호에 살던 파란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샤카켈릭. 소음 속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자 노인은 감격에 찬 함성을 질렀다.

“저길 봐!!! 저길 보라고! 그래, 바로 이거야!”

나는 노인이 가리키는 정지된 빛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숨을 집어삼킬 수밖엔 없었다.

볼링공마냥 휘어지고 느릿해진 빛의 표면 아래로 뚜렷한 윤곽이 보인 것이다.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것들은 투명한 비커 속에서 끓고 있는 물처럼 일그러져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노인이 기계의 출력을 올리자 윤곽은 더욱더 또렷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들이 베일을 벗고 내 눈 안으로 기어들어오자 나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얄따란 빛의 장막 속에서 서로 뒤엉겨 황금빛의 찬란한 몸뚱이를 꿈틀거리고 있었다. 기계의 출력이 올라갈수록 그들의 모습은 더더욱 선명해졌다. 이젠 그들의 기다란 몸 곳곳엔 농익은 거대한 주머니처럼 생긴 것들이 알알이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새된 비명을 지르면서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그것들 대부분 내 팔뚝만한 것들이었다. 간혹 내 몸만 한 녀석들도 있었지만 그런 녀석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하나같이 비대한 혹을 온 몸에 덕지덕지 매달고 있었다. 못해도 주먹만 한 크기의 주머니였다. 놈들이 꿈틀거릴 때마다 출렁이는 모습에 난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 고름이 그득하게 차오른 주머니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알을 깨고 나오려는 수천마리의 구더기처럼 서로의 몸을 짓누르고 뭉갰다.

탐욕스럽고 격정적인 몸부림은 저것들의 본질에 관한 의구심을 불러왔다. 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광체 속에서 의구심은 빛을 잃었다. 그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외계의 광체는 내 두 눈을 움켜쥐고 있었다. 영혼이 빨려나가듯 강렬한 색감이 내 머릿속을 매료시켰다. 나는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노인에게 소리쳤다. 그만 두라고했다.

하지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일은 이미 벌어진 뒤였다. 기묘한 광체가 광야를 뒤덮은 여명처럼 찬란하게 지하실의 어둠을 살라먹었다. 그러자 얇아진 장막을 뚫고서 그것들이 어두운 방안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봇물 터지듯 빛 속에서 꾸역꾸역 튀어나온 그것들은 어둠 속을 떠다녔다. 주위엔 형형색색의 부서진 색깔들과 함께 반투명한 촉수가 흐느적거렸다. 빛을 깨고 나오려 하던 그 간절하고 격정적인 몸부림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놈들은 호기심이 동한 듯 지하실 곳곳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어떤 놈은 기계가 신기한 지 제 몸을 비틀어 기계를 만지작거리기도 했고 천장과 문을 어루만지고 지나가기도 했다. 심지어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녀석들도 있었다. 놈은 형형색색으로 부서지고 있는 커다란 고름주머니들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그러자 주머니 표면에 농익은 갈색 점들이 한꺼번에 나에게로 쏠렸다.

그 순간 나는 당혹스러운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분명했다. 머리털이 곤두설 만큼 차갑고 공허한 시선이 내 얼굴을 덮친 것이다. 오로지 지성이 있는 것만이 가질 수 있는 시선이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충격보다도 저 주머니들이 전부 눈알이란 점에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야말로 억 만 개의 눈들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억만의 눈들은 내게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둘 노인에게 모여들었다. 자신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 준 광기 어린 과학자에게 감사를 표하듯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그들은 허옇게 썩어버린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는 촉수를 뻗어 노인의 양팔을 붙잡았다. 노인이 비명을 지르기 무섭게 그들은 노인의 몸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노인의 옷과 함께 살갗이 뜯겨 나왔다. 노인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놈들은 제 몸을 꽈배기처럼 뒤틀어 고름 주머니를 터뜨리기도 했다. 누렇게 농익은 주머니 안에선 혐오스럽고도 다채로운 색채가 쏟아져 나와 노인의 몸을 적셨다. 고름의 광체가 주위를 환히 밝히면서 사라졌다. 노인의 주위가 정체모를 광휘로 뒤덮였다. 피와 고름은 한데 뒤엉켜 연구실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자 공허한 목소리를 허공에 흘렸다.

“샤카켈릭. 샤카켈릭. 샤카켈릭.”

광적인 목소리 끝에 노인의 비명이 자리했다. 붉은 피바람이 노인의 양어깨에서 일었다. 나는 내 얼굴에 흩뿌려진 핏방울을 두 손으로 가리면서 노인을 불렀다. 하지만 내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샤카켈릭이란 뜻 모를 외계어였다. 노인도 이미 그들과 같은 말을 외치고 있었다.

외계에서 흘러든 광기에 젖은 합창은 비명과 뒤섞여 사방에 골수와 피부 조각을 흩뿌렸다. 나는 제대로 된 비명조차 못 지르고서 해체되는 노인의 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내 비명소리는 노인의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힘줄이 끊어지는 소리 속에 파묻혀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양 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노인의 머리가죽 아래에서 무언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지 않다 한들 그건 내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노인의 살갗을 뚫고 나오자 나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지를 밖엔 도저히 도리가 없었다.

환호하듯 쏟아지는 사악하기 짝이 없는 경건함을 갖춘 노랫가락이 솟아올랐다.

역겨움 너머에서 번뜩이는 그곳을, 나는 보았다. 정지된 빛 속을 들여다 본 내 생애 최악의 실수였다. 나는 아직도 그 찬란한 풍경을 잊지 못한다. 광체를 쌓아 만든, 헤아린다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수많은 거품들이 모여 만들어진 강대하게 쇠락해가는 도시를 말이다.

그곳은 도저히 인간들이 살았다는 흔적 따윈 보이지도 않는 곳이었다. 수많은 마천루들이 솟구쳐 올랐다가 동시에 자취를 감췄다. 위와 아래의 구별조차 모호했다. 그곳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동시에 우주 어디에도 존재한 적 없는 곳이었다.

도시 속에서 거품들은 태어나 자라나고 도시가 되었다.

도시 속에서 샤카켈릭이라는 만물을 담은 무의미한 단어들이 빗발쳤다. 그때마다 이 정체모를 고름 주머니들은 매 순간마다 화려하게 몸을 뒤틀면서 세상을 노려보았다. 그것의 시선에서 시공간은 무의미했다. 그곳은 언제나 우리 옆에 있었지만 동시에 우리의 시야 밖에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감히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너무도 두려워서 감히 상상할 엄두조차 낼 수 없는 광경이었다.

허나, 그 장대한 것은 결코 우리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알고 있었다. 샤카켈릭은 우리 안에 있었다. 단지 그들도, 우리도 서로를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들은 너무 빨랐고 우리는 너무 느렸다. 때문에 관음증에 찌든 머나먼 고대의 현자들만이 그들을 아주 잠시 엿보았을 뿐이었다.

아마도 음울하고 사악한 노교수의 광기가 그들을 보기 전까지도 그들은 우리를 알면서도 몰랐다. 허나, 노교수의 집착이 그들을 이 세상에 불렀다. 이제 작은 거품이 노교수의 머릿속을 헤집고 나와 허공에 떠올랐다. 나는 그것이 뿜어대는 부패한 광체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입은 벌리지 않았다. 입을 벌린다면 저들이 입 안으로 들어올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빛이요, 우리의 눈을 만든 장본인들이자 무지한 현자들이었다. 때문에 나는 저들을 내 몸 안으로 들이고 싶지 않았다. 본능적인 혐오감이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인 씨는 달랐다.

가인 씨는 황홀한 얼굴로 놈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입을 벌리지 못한 나는 그녀에게 신음을 흘렸다. 가지 말라는 소리였지만 내 미개한 언어가 그녀에게 닿을 리 만무했다. 그녀는 이미 샤카켈릭 속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무한조차 힘을 잃은 전능한 단어 속에서 그녀의 정신은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결국, 가인 씨는 아무런 저항도 않고 그 도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를 막아야 했지만 으깨진 포도송이만큼 처참하게 뭉개진 의지는 두려움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나는 그녀가 거대한 마천루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영겁의 공간을 담은 광체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절규하듯 마지막 힘을 짜내어 외쳤다.

샤카켈릭. 광적인 미소와 환희에 찬 웃음 속에서 그녀는 몇 번이고 샤카켈릭을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잦아들어갈 즈음. 기계는 스파크를 튀기면서 연기를 뿜어냈다. 연기가 신경 쓰였던 걸까? 거품들은 복잡한 기계에 달라붙었다. 그것들이 거대하면서도 왜소한 고름 주머니를 비틀자 기계들은 그것들의 심부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전선이 끊어졌고 가인 씨의 노트북도 거품 속으로 사라졌다.

기계가 사라지자 황금빛으로 뒤틀린 거품들의 도시는 스멀스멀 옅어져 갔다.

영원하면서도 찰나 속에 서 있는 마천루가 자취를 감추었고 수많은 다차원 구체 속을 헤집고 다니는 거품들의 퍼레이드도 사라졌다. 그러나 도시를 빠져나온 거품들은 여전히 어둠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노인의 갈라진 정수리를 뚫고 나온 괴물은 천천히 검은 어둠 속을 헤엄쳤다. 투명한 촉수 끝에서 흩날리는 핏물 속 작디작은 광휘가 몰아치던 그때였다.

“여기야! 오빠. 여기라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그라지던 내 정신에게 장작을 던져주었다.

“야이, 새끼야. 너 거기 있는 거 알아! 이 문 안 열어? 우리 송이한테 그딴 짓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 엉?”

문 두드리는 소리에 겁에 질린 나는 문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철문을 붙들고 문짝을 미친 듯이 긁어대자 문 밖의 목소리가 사그라졌다. 나중에나 안 사실이지만 철문을 긁는 바람에 손톱 10개 중 8개가 빠져버렸다.

나는 살려 달라 소리쳤다. 하지만 내 입에서 광적으로 터져 나온 것은 샤카켈릭이란 말 뿐이었다. 전지의 단어를 입에 올리자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눈앞에 그려졌다. 허나, 나는 전지한 언어가 전해준 미래를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그나마 기억나는 것은 빛 속에 숨은 황금 도시가 온 우주로 뻗어 나가는 광경뿐이었다. 그들은 검은 파라오를 참배하고서 잠자는 위대한 백치의 왕을 위해 스스로를 재물로 바쳤다. 그들은 더 많은 재물을 바치기 위해 미천한 생물들을 착취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어서 이 전지의 언어가 사라지길 빌었다. 하지만 내 입은 샤카켈릭을 외치면서 두려움에 찬 시선으로 놈들을 노려보았다. 샤카켈릭이란 단어가 목구멍을 조르고 있었다. 나는 목을 움켜쥐고 바닥에 쓰러졌다. 천장을 가득 채운 놈들은 스멀스멀 누런 시선을 뒤틀면서 내게 다가왔다. 놈들이 내 팔을 휘감던 그때였다.

잠금장치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쇳덩이가 휘어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쇠지레를 들고 선 양복차림의 남자들과 6층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들도 검은 방을 맴도는 누런 시선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새된 비명을 지르는 순간. 무슨 일인가 벌어졌다. 거대한 불덩이가 눈앞을 새하얗게 태워버린 것도 같았고 귓가가 찢어진 것도 같았다.

그 다음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새하얀 방안이었다.

 

17.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옷 대신 하얀색 구속복이 내 몸을 옭아매고 있었다.

거기다 날 둘러싼 콘크리트 방 대신 마치 푹신한 베개를 벽에다 처덕처덕 붙여놓은 방이 날 맞이했다. 나는 문을 두드리면서 간호사를 찾았다. 그러자 간호사 두 명이 내가 일으킨 소란에 놀라 달려왔다. 둘 다 거대한 몸집의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한쪽은 나이에 비해 유독 허리가 굽은 모습이었다. 그들은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그러다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의사를 부르려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다급하게 내 상태를 알렸다. 목소리가 갈라지고 어딘가 불안한 낌새가 곳곳에서 엿보였다.

그들은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의사 가운을 걸친 여자와 갈색 점퍼를 입은 남자 둘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세 사람은 간호사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긴 어디죠?”

내 물음에 여자는 미스카토닉 의대 정신병원 병동이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오늘 날짜를 말해보겠느냐 물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날짜를 말했다. 2019년 6월 7일. 하지만 의사가 내민 핸드폰 속의 날짜는 달랐다. 2021년 6월 7일. 휴대폰은 그렇게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믿지 못하자 자신을 형사라 소개한 남자가 찬찬히 내게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그 저주받은 날. 내 오피스텔이 마치 화산이 터지 듯 폭발했다 한다. 어찌나 거대한 폭발이었던지 위성에도 잡힐 정도였다. 주변에 있던 건물들은 당연히 엄청난 피해에 휩싸였고 복구가 완료된 것도 최근의 일이라 했다. 처음에 구조대는 생존자에 대한 기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지하실 쪽은 유독 보존이 잘 되어 있던 터라 구조대원들이 기절한 나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쓰러진 내 주위에 널브러진 시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노인의 시체와 지하실 문간에 서서 잘게 토막 난 성인 4명의 사체에 대해 말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날 의심하고 있었다.

의사는 내게 스크랩한 신문 기사를 보여주었다. 모종의 종교단체와 결탁했거나, 아니면 북한과 연계된 범죄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헛소리들이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의사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샤카켈릭이 무슨 뜻이죠?”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304호 아저씨처럼 사카켈릭이란 말만 되풀이 하며 난동을 부리던 내 모습이 너무도 선하게 그려진 터였다. 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두려움에 찬 눈물이 부서진 정신과 함께 눈구멍에서 콸콸 쏟아져 내렸다. 내 광적인 울음에 경관들은 고개를 저으면서 먼저 자리를 일어났다. 의사도 얼마안가 간호사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진정제를 놔줘. 그리고 환자분. 아마 여기서 한동안 계속 지내셔야 할 거예요. 몇 차례 검사를 한 뒤에 보도록 하죠.”

의사는 차트를 작성하면서 간호사들과 함께 병동을 나섰다. 뒤이어서 서늘한 한기가 내 뒷목을 붙잡았다.

내 왼편에 선 간호사가. 유독 등이 굽은 간호사의 등이 서서히 꿈틀 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같은 장면을 전에도 본적이 있었다. 저 격정적인 몸부림. 마치 번데기를 까고 날아오르는 파리 같은 갈망과 광기에 찬 몸부림을 말이다. 간호사는 결국 모퉁이를 돌기 전에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입 밖으로 괴상한 소리가 핏물과 함께 쏟아져 나왔다. 그 광경에 놀란 의사와 동료 간호사가 달려와 그를 살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아무런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목덜미에서 튀어나온 찬란한 고름주머니들과 눈을 마주친 것이다.

그 자리에서 나는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숨이 터지도록 비명을 질러댔다. 꾸역꾸역 셀 수도 없이 튀어나오는 그것들은 빛을 타고 사라져갔다. 의사와 간호사는 괴물들이 보이지 않는 듯 쓰러진 시체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철창문을 두 손으로 붙들었다. 그 뒤는 자세히는 기억이 나진 않았다. 다만, 나는 그것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그리고 내 몸을 바닥에 처박은 간호사의 얼굴과 주사바늘이 간간이 떠오를 뿐이었다.

나는 밤이 될 때까지 멍하니 병실 안에 누워 있었다. 서서히 드리워지는 달빛은 쇠창살처럼 반짝이는 강화 유리 너머에서 부서져 내렸다. 그러자 한조각의 생각이 내 망가진 정신 위에 고였다.

대체 노인과 가인 씨는 무슨 짓을 한 걸까? 노인은 빛을 정지시킨다고만 했다. 그러나 빛 속에선 저 괴물들이 튀어나왔다. 그렇다면 노인은 괴물들을 불러낸 걸까? 아니면 애초에 빛이란 것은 괴물들을 가둬두는 감옥 같은 것이었던 걸까? 전지의 언어를 엿본 나는 이 답을 알고 있었다. 내 처참한 뇌리 속에 깃든 전지의 언어가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하지만 나는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외계의 존재가 내 정신을 흔들고 있을 뿐이라 여기고 싶었다.

병실로 쏟아지는 달빛을 바라보았다. 그 빛은 역겹게 누런빛을 띠고 있었다. 내가 입술을 깨물던 그때였다. 어디선가 나타난 갈색 시선이 내 얼굴을 훑고 지나간 것이다. 그것은 달빛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좀 정신을 차렸나보군.”

낯익은 목소리였다.

“걱정 말게나. 해치지 않을 테니”

나는 굳은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괴물의 꿈틀거리는 촉수가 썩어버린 해파리처럼 내 팔뚝을 옭아맸다. 그것은 달빛 속을 해엄치면서 투명한 촉수들을 살랑거렸다. 희미하게 보일 듯 말듯 윤곽조차 뚜렷하지 않은 그것의 고름주머니가 떨렸다. 그 미묘한 떨림은 귓가를 핥고 지나갔다.

샤카켈릭. 나는 그 한마디에 눈을 뻔쩍 떴다. 그 썩어가는 광체는 그 말이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초차원적인 언어라는 사실을 기어코 내 기억 속에서 캐냈다. 망각 속에서 살아 돌아온 단어는 내 뇌리에서 소리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물질과 파동을 넘어선 어떤 형상들이 단어로서 재배열되었다. 너무도 단순한 과정이었음에도 감히 나 따위는 모방할 수 없을 만큼 체계적이고 복잡한 언어가 내 영혼을 긁어댔다.

그것은 한소절의 노래가 되어 내 뇌리를 잠식했다. 결코 인간의 입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음색이 빛과 함께 내 눈을 움켜쥐었다. 괴물은 말했다.

“다른 이들도 자네의 공적을 높이 사고 있어. 곧 자네도 나처럼 떠다니게 될 걸세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고…….”

그것은 할 말이 더 있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더 듣고 싶지 않았기에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다.

이제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무너져 내린 현실 감각 때문에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 수 없었다.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다. 이젠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난 그저 잠에 들고 싶었다.

어두운 방안에서. 내 방안에서. 그리고 다시는 피할 수 없을 이 억만 개의 시선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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