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천선란 그림자놀이

2020.01.15 00:0001.15

그림자놀이

천선란

 

차단막의 효과는 영구적이며 제거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수술을 시행하시겠습니까?

예, 하겠습니다.

수술을 진행한다면 당신은 타인의 감정을 공감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도 수술을 시행하시겠습니까?

예,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선택은 자발적인 선택입니까?

…예, 저의 선택입니다.

본 영상은 증거자료로 녹화되며 당신은 수술 이후의 부작용 및 의료사고 등의 이유로 본 영상을 법정에서 증거로 쓰실 수 있습니다. 수술동의 서명을 위해, 앞의 카메라를 바라보고 자신의 이름을 세 번 말하십시오. 세 번을 읊으면 자동으로 서명되며, 세 번을 다 읊기 전에 언제든 수술을 철회할 수 있습니다.

서 이라. 서 이 라. 서 이 라.

 

* *

 

세 번째 같은 알람이 반복됐다.

그때서야 알람이 아니고 나를 찾는 전화라는 것을 알았다. 커튼을 젖혔으나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시간이었다. 손으로 침대 옆 테이블을 더듬다 휴대폰을 밑으로 떨어트렸다. 전화가 끊겼다. 피곤함이 묻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어림잡아 잠에든지 한 시간 정도 지난 듯했다. 그 전에는 극심한 불면증으로 세 시간 가량 침대에서 뒤척였을 것이다. 시계를 확인해 본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늘 세네 시간을 침대에 묶여 있다 잠에 들고는 했다. 수면제는 조금씩 줄여가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의사는 침대에 눕기 전에 적어도 두 시간 전부터는 하지 말아야 할 목록들을 알려줬지만 그것을 다 지킨다고 해서 잠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목록들을 지키는 건 필수였고, 그 다음에 잠에 들지 말지는 때에 따라 달랐다. 그렇지만 서랍에 늘 구비되어 있는 수면제를 꺼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적어도 짧게는 한 시간이라도 잠에 들기는 한다는 점이 위로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 옅은 잠마저도 더는 들 수 없게 되었다. 감은 적 없다는 듯 뻑뻑한 눈을 손바닥으로 천천히 문질렀다. 휴대폰을 꺼놨어야지, 미련하기는.

전화는 다시 울렸다. 스탠드를 켜고 침대 밑에 떨어진 휴대폰을 찾았다. 급한 상황이어도 방금 교대를 끝내고 퇴근한 나를 부르지는 않을 거였다. 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왔던가. 잠시 기억을 더듬었지만 빠트린 부분도 없었을 뿐더러 각별히 위급한 사항도 없었다. 그렇지만 병원 말고 나를 찾는 전화가 또 있을까.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화면에는 발신자표시제한이라고 떠 있었다. 스팸전화도 이렇게 치밀하게 걸지는 않을 거였으므로 잠긴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이 시간에 누구신가요? 라고 묻고 싶은 말을 눌러 삼키고는, 마치 방금까지 깨어 있었다는 사람처럼 평이하게 말이다. 하지만 내게 전화를 건 상대방은 그렇지 않았다. 시끄러운 잡음. 전화를 받았다는 것은 인식하자마자 자리를 옮긴 듯이 다급하게 깔린 정적.

“김도아 씨를 아십니까?”

이 새벽에 전화해 자신의 소개를 건너뛰고 다짜고짜 용건부터 말하는 상대방의 무례함에 불쾌했으나 나는 그 점을 지적하지 못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는 나에게 상대는 재차 물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듯이, 찾는 사람이 아니라면 미련도 없이 끊을 듯한 말투였다. 나는 방금 가다듬었던 목을 반복해 가다듬었다. 다시는 듣지 못할 줄 알았던 이름 석 자가 너무 낯설게 다가와 잠시 몸서리를 쳤다.

“예, 압니다.”

“자택 앞으로 지금 차 보내겠습니다. 그 차를 타고 오세요.”

상대방이 전화를 끊기 전에 다급하게 물었다. 누구시죠? 뭐하는 곳인데…. 아무렴 범죄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들 이 새벽에 출처도 알 수 없는 이가 보낸 차를 탑승할 자는 없을 거였다. 비록 상대방의 입에서 나온 이름 하나가 모든 이유를 막론하고 가야 할 필연을 만들었지만. 상대방이 짧게 숨을 골랐다.

“한중항공우주국 사무처장 김 휘라고 합니다. 어제 밤 열한 시 경 밍티엔 3호가 지구에 도착했습니다. 자세한 건 이곳에서 들으시죠.”

차는 20분 만에 집 앞에 도착했다. 운전기사 한 명과 차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경호원 한 명을 창밖으로 확인하고는 챙겨두었던 짐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짐이라고 해봤자 신분증이 들어있는 지갑과 휴대폰이 전부였다. 피곤한 몰골을 숨기기 위해 입술에 뭐라도 발라야했던 걸까. 경호원과 눈이 마주쳐 도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해 하는 수 없이 차에 올랐다. 손거울도 챙기지 않아 썬팅이 진하게 된 차창을 거울삼아 얼굴을 정돈했다. 그러다 문득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밍티엔 3호가 지구에 도착했을 뿐, 탑승자들의 생사는 알 수가 없는 것을. 시신처리를 위한 소환일지도 모른다. 서류에 보호자로 동의한 사람이 나였으므로. 어쩌면 텅 빈 우주선만 돌아왔음에 시신 없는 장례식 이야기를 꺼낼지도 모르지. 찬바람이 쐬고 싶어 창문을 열었다가 얼굴에 닿는 빗줄기를 느꼈다. 분무기로 뿌리는 듯한, 얇고 가벼운 빗줄기였다. 안개에 더 가까운.

차는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었다. 꽤 먼 길을 달렸다. 도중에 보았던 이정표에 인천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던 것으로 미루어, 인천 항구에 위치한 우주국지사가 아닐까 추측할 뿐이었다. 손가락으로 밍티엔 3호가 처음 이륙했던 날로부터 얼마나 흘렀는지는 헤아렸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손가락으로는 그 날을 전부 헤아릴 수 없었다. 당시 우리의 나이가 스물다섯이었으므로 자그마치 이십년이 지났다. 살아서 돌아왔다고 한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목적지에는 새벽 네 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도착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우산을 든 사내가 곧바로 다가와 우산을 씌웠다. 그리고 머지않아 차 한 대가 더 도착했고 그 안에는 머리가 희끗한 남성과 이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내렸다. 나와 마찬가지로 자다가 다급하게 온 흔적이 역력한 몰골이었다. 그들이 누군지 알고 있다. 비록 품에 인형을 안고 있던 아이가 이제는 제 엄마가 떠났을 때의 나이가 됐을 만큼 컸지만 왼쪽 눈 아래 있던 점은 그대로였다. 점으로만 아이를 알아본 것은 아니다. 아무리 외형이 바뀌었다고 한들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의 원석이 있다. 아무리 깎고 다듬어도 기어코 알아볼 수 있게끔 빛나고 있는. 눈 밑의 점은 긴가민가했던 내게 확신을 주는 마침표 정도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여자와 문득 눈이 마주쳤다. 여자도 나를 알아보는 모양인지, 놀람과 반가움을 내비치더니 이내 옅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름이 뭐였더라. 그동안 잘 지냈느냐고 다정히 이름을 부르며 묻고 싶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이름을 소개했을 텐데…. 이것도 기억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부작용일까. 하지만 그보다는 세월에 따른 자연적이 퇴색일 것이다. 나도 여자를 따라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부녀와는 대기실에서 다시 마주쳤다. 대기실에 오기 전까지 나는 간단한 본인확인 절차를 받았고, 내가 이십 년 전 서명했던 동의서도 확인했다. 직계가족과 친인척을 포함하고도 보호자가 없을 때에야 가능한 ‘본인 임명 대리보호자 확인란’에 내 이름 석 자가 쓰여 있었다. 보호자가 책임져야 할 것들에는, 귀향 후 탐사로 인해 질병을 얻었을 경우 그에 대한 항공우주국의 지원으로 당사자를 보살 필 권리가 있다. 그 항목에 형광펜이 쳐져 있었다. 살아서 돌아온 것인가. 죽은 것과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고서 이제야.

잠시 기다리는 말을 듣고 의자에 앉았다. 부녀와는 마주보는 자리였다. 남자는 긴장한 듯 손수건으로 연신 손을 훔치고 있었다. 나는 남자의 행동을 유심히 본다. 손에 난 땀을 닦고,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가 소리 없이 내뱉고, 눈을 지나치게 많이 깜빡이며 마른 입술을 혀로 훔친다. 초조함, 긴장감, 설렘… 그런 단어들이 떠오른다. 저 남자는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여자라고 다를 것 없었다. 대신 지나치게 떨고 있는 남자를 위해 다소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다. 여자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남자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아마도 나와 대화를 하고 오겠다는 말인 듯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여자가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내 손을 포개 잡는 여자의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마디마다 박혀있었다. 어쩌다 생긴 굳은살이 아닌 긴 시간동안 터졌다 아물었다를 반복한 흔적이었다.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손을 많이 쓰는 직업 따위를 생각하고 있는 내게 여자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술을 받으셨나요?”

어떤 수술을 말하는 지는 곧바로 알아들었다. 여자의 눈에 내가 지나치게 덤덤했으리라. 나는 육 년 전쯤이라고 대답했다. 여자는 옅은 탄성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술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 4년 후에야 받은 수술이었다. 나 역시도 버틴다고 버티다 느지막이 받은 수술인데, 아직도 수술을 받지 않은 사람이 남아있을 줄이야. 여자는 자신들의 미련함을 수습하기 위해서였는지 묻지 않은 변명을 댔다.

“엄마를 위해서였어요. 돌아오실 거라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

“저도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은 안 했는걸요.”

믿음의 차이가 있을 순 있겠지만 그 애가 우주에서 죽었다고는 단정 지은 적 없었다. 여자가 당황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을 곧장 깨달았지만 제 마음에 걸렸는지 미안하다는 말을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필요 없는 사과였다. 사과한 사람은 있지만 받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관리자가 대기실로 들어오며 여자는 남자에게 돌아갔다. 관리자는 부녀를 먼저 밖으로 안내했다. 부녀는 대기실을 나가는 순간까지도 서로의 손을 꽉 붙잡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문이 닫힐 때까지 바라봤다.

언론에는 오늘 아침 뉴스를 통해 보도될까. 정확한 정보만을 전달하기 위해 모든 것이 정리된 후에 보도하려면 사나흘은 더 걸릴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마음을 동하는 신속하지만 부정확한 정보는 이제 아무 소용없다. 관심을 끌기 위한 발 빠른 뉴스를 아무도 원치 않으니까. 방금 나간 부녀를 떠올리며 괜히 내 손바닥을 맞잡았다. 소독약품으로 쉼 없이 세척한 탓에 피부가 건조하다. 크림을 바르고 나오는 걸 깜빡했다. 관리자가 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나는 그와 나란히 걸으며 복도 끝으로 향했다.

“정확히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나요.”

내가 물었다.

“이십 년하고 삼 개월이요.”

문 앞에서 나와 통화했던 김 휘라는 사무처장을 만났다. 휘는 악수와 함께 본론부터 꺼냈다.

“간호사로 십오 년 째 일하고 계신 거 맞습니까?”

“예, 맞아요.”

“다름이 아니고 서이라 씨께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탑승자들의 전담 의료인이 되어주실 수 있는지요. 허락하신다면 다니고 계시는 병원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대체 인력을 넣을 겁니다. 물론 거절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나는 휘의 말을 단 번에 알아듣지 못했지만 휘는 내가 모든 문장을 이해하고 되물을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렸다. 전담 의료인이라 함은 우주에 장시간 나가있던 탑승자들의 망가진 몸을 봐주는 일이리라. 보호자 중에 의료인이 있으면 한 번쯤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라 생각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삼교대의 직장에서는 그 애를 만나러 올 시간도 녹록치 않을 테니.

“얼마나 봐야하죠?”

“열흘 정도입니다.”

생각보다 길지 않은 기간이다. 그 시간 안에 모든 걸 치료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일까. 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이후로는 탑승자들이 살아있지 않을 테니까요.”

 

* *

 

그 애는 잠을 자고 있었다. 실크처럼 보이는 편안한 옷을 입고는 마치 그곳에서 오래도록 잠을 잤던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침대 옆 창문은 서해안을 담고 있었고 푸른 불빛을 내뿜는 공기청정기와 은은한 조명을 한 번씩 훑어보고 얇은 커튼을 젖혔다. 일정하게 오르내리는 복부와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안정적이게 움직이는 바이탈사인. 나는 등받이 없는 둥근 의자 위에 앉았다. 떠났을 때보다 아주 조금 더 긴 머리카락은 간신히 목에 닿을 듯했다. 나는 이 애와 만나는 순간을 오래도록 상상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상상이 감정을 뒤흔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네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떠올렸던 모습은 나와 함께 세월을 흡수해가는 ‘늙음’이었다. 그 애가 떠나기 전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우리에게 나이차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었던 것이 이제야 떠올랐다.

그 애는 그대로다. 떠났을 때 모습과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나는 이십 년을 기다렸지만 그 애는 내게 고작 몇 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휘의 말을 떠올린다. 휘는 우주에 오래도록 나가 있던 그 애의 몸이 우주 방사선에 수없이 피폭되었고 지구에 돌아왔을 때에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고 말했다. 검사를 했던 의료진의 말에 따르면 항암치료조차도 시작할 수 없는 마지막 단계라고 말이다. 하지만 도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왜 휘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도아는 그저 힘든 훈련을 마치고서 이제야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는 전사 같았다. 잠들어 있는 얼굴에도 그 정도의 강인함이 엿보였다. 원래부터 단단한 애였지만 긴 항해의 끝이 죽음이라는 이 순간에서조차도 그것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우리는 어쩌면 태초부터 다른 종족일지도.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도아를 바라보다 잠시 방을 빠져나왔다. 옆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십 년 만에 만난 가족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우는 소리였다. 문에 난 작은 창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모녀는 바짝 붙어 앉은 채 서로의 얼굴을, 놓쳤던 세월을 샅샅이 뜯어보고 있었고 남자는 그 둘 옆에 앉아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세 가족의 모습은 마치 아버지와 두 딸의 모습 같다. 한동안 그 셋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휘를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엄마를 위해서 수술을 받지 않았다는 여자의 말을 떠올리면서.

내가 수술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몫은 직업 탓이었다. 간호사가 감정노동자는 아니잖아. 먼저 수술을 결심한 동기의 말이 마음속에 내내 얹혀 있다가 끝내 수술 동의서에 서약하게 만들었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않음으로써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수술이 처음 우리에게 소개되었을 때 의학계에서는 그렇게 설명했다. 누구나 머릿속에 거울을 가지고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통해 상대방의 감정을 관찰하고 모사하며 공감을 이끌어낸다. 상대방의 화난 마음, 상처 받은 마음, 그로 인해 나에게 던져지는 공감대의 형성이 나를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놓이게 한다. 전쟁이 공감의 부족이 아니라 내집단에 대한 정서적 공감이 극대화되어 초래한 비극이라 말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칼을 쥐고 있지 않아도 행해지는 수많은 전쟁과 살인들이 결국 ‘공감’에서 비롯되었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수술은 그 거울을 깨트린다. 거울뉴런계를 차단함으로써 타 개체의 행동을 관찰하거나 모방하지 않아, 거울을 통해 개체의 마음을 공감할 수 없게 한다. 이를 깨진 거울 수술이라 불렀다.

수술은 시술이라 불릴 만큼 간단했다. 한 시간 안으로 끝났고 회복 기간도 필요치 않아 모두가 간단히 뇌를 바꿨다. 부작용도 크지 않았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조금 틀어질 수 있다는 것과 타인과의 공감뿐 아니라 자발적인 감정마저도 둔화된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후자를 부작용이 아닌 극대화된 효과라고 칭했다. 타인을 통해 옮겨오는 감정을 제외하고 인간이 하루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은 크게 많지 않았으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해 드라마나 영화 같은 콘텐츠 들은 수술 시행 5년 이내 빠르게 사라져갔다. 사람들의 감정을 동요시키는 가짜뉴스와 자극적인 기사도 사라졌다. 그토록 원했던 담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거울 하나만 깨트리면 되는 거였다.

휘를 다시 찾아가 나는 보류해 두었던 답을 했다.

“할게요, 전담 의료인. 고통을 멎게 해주는 정도라면 무리 없을 거예요. 그리고 저 말고 당장 이들을 돌 볼 적임자를 찾아놓은 것 같지도 않고….”

내 말에 휘는 어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웃어보기만 했다. 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봤을 때도 생각했지만 키가 훤칠하고 팔다리가 길었다. 꼭 곧게 뻗은 가로수 같은 이미지였다. 휘가 바지주머니에서 손을 뻗어 내게 악수를 청했다. 손을 맞잡자 휘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마치 예정된 녹음이 틀어진 느낌이었다.

“김도아 씨에게 가족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했겠지만 보호자가 되는 건 쉽지 않았을 선택이었을 텐데요. 말이 보호자지 지구에 붙잡은 인질이라고 해도 다를 게 없었으니까.”

“외계인을 만나 그 편에 서서 지구를 침략할 것 같지는 않은 애라 서요.”

휘는 옅은 실소를 터트렸다.

“사이가 좋았나 봐요, 친구끼리.”

“친구한테 빚을 진 게 있어요.”

의외라는 눈빛이다. 그 의문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도아의 우주비행사 자격을 논하던 이십 년 전, 도아의 채무관계와 대인관계에 대한 조사는 이미 다 끝내놓았을 테니 말이다. 말하자면 내 빚은 물질적이라기보다 물리적인 빚이다. 평생 기억 속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거운 질량. 휘도 곧 금전적인 빚이 아님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의문이 가시지 않은 채였다.

“수술을 받았다고 알고 있는데….”

휘가 자신의 의문을 어렴풋이 꺼냈다. 타인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 깨졌다고 해서 내가 느낀 타인에 대한 감정까지 깨지는 것은 아닌데 사람들은 이 둘을 종종 혼동했다.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휘는 방금 뱉은 말이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사람이었다.

“수술을 받았다고 해서 빚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몇 시간 자리를 비운다고 통보했다. 아무리 대체인력이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전후사정은 어느 정도 직장에 설명해야 할 터였다. 동료들은 내 상황을 안타깝게 느끼거나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수고하고 오라는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겠지. 타인에게 불필요한 동정을 받지 않는 것은 가볍고 산뜻하다. 휘는 이동을 도와주겠다며 차 한 대와 운전기사를 붙여줬다. 동인천 끝자락에서 서울에 있는 집까지, 새벽에 나온 차림으로 돌아갈 체력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런 기관에서 하는 응당한 절차적 예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돌아갈 때까지도 가족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아직도 마르지 않았다. 저들도 이야기를 들었을까. 이제 막 돌아 온 저 비행사에게 남은 시간이 고작 이주 남짓이라는 것을. 도아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었지만 다른 비행사는 혈액에까지 이미 암이 다 퍼져 있었다. 지구에 태어난 생명체 중 가장 위대한 걸음을 뻗었지만 결국 지구에서 생을 마감한다. 우주를 함부로 휘젓고 다닌 죄일까. 보통의 죽음보다도 훨씬 지리멸렬하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순간의 감각을 알고 있다. 그건 모든 것들이 나와 멀어지는 기분이다. 모든 공간에 일어나는 일들이 전부 나와 관련 없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커튼을 뚫고 들어와 벽에 새겨진 햇빛의 줄기마저도 나와 전혀 상관없이 굴러가는 지구의 일인 듯한 기분. 이 행성의 모든 일들이 나를 제외하고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는 물론이고 꽃이 피고 지고,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자연적인 현상에서마저도 제외되어 있다는 생각. 한 때는 내가 살아가기 위해 일어난다고 믿었던 것들이 철저하게 나에게서 멀어진다. 그 모든 일들은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것이지 곧 죽을 나를 위한 일은 아닐 테니.

내가 그런 생각을 했던 시절은 아주 오래전이다. 병원에 오래 있다 보면 병원 밖의 세상이 마치 다른 행성의 일처럼 느껴진다. 하물며 유치원보다 먼저 병원에 들어가야 했던 나는 어땠던가. 엄마는 열 밤만 지나면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말했지만 엄마가 말했던 열 밤은 내가 알고 있는 열 밤과 달랐다. 내 몸 속에 자리 잡고 있던 ‘괴물’의 시간으로 흘렀을 것이다. 내 몸 속에 살고 있던 괴물의 시간을 알고 있다. 괴로운 순간은 길게, 행복한 순간은 거짓이었던 것처럼 만드는 놈이다. 어떤 형태의 괴물이었는지는 시간이 너무 흘러 중요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것은 괴물이 내 몸 속에 살았었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아주 잠시 말이다.

병원으로 돌아가 동료들에게 인사를 남기고는 도로 인천으로 돌아왔을 때 도아는 잠에서 깨 책을 읽고 있었다. 아니, 저건 책이 아니라 갈색 가죽커버를 가진 다이어리다. 도아가 떠날 때 내가 선물했던 것이며 그곳에서 보았던 것들, 들었던 생각들을 빠짐없이 적어오라는 숙제를 함께 줬다. 도아는 내 숙제를 완성했을까. 푹 빠져 읽고 있는 도아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용히 몸을 돌렸지만 등 뒤로 다이어리 덮는 소리가 들렸다.

“이라니?”

몸이 멈춰 움직이지 않는다. 목소리까지 이리도 그대로일 줄이야.

“이라야.”

이번에는 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부른다. 뒤돌아 볼 수가 없다. 나는 어쩌면 네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몇 십 년의 간격이 생겼다는 것을 도아는 모르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럴 리가 없겠지만. 도아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를 모습으로 뒤돌았다. 창밖으로 거무죽죽한 인천 바다와 해를 완전히 가린 먼지가 안개에 뒤섞여 자욱했고, 도아는 마치 어제 헤어졌다 만난 사람처럼 이질감 하나 없는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하나로 묶어 쓸어 넘길 일도 없는 머리카락을 괜히 매만지며 도아에게 향했다. 발뺌할 수도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거니와 시간이 아무리 흐른다한들 사람은 지문과 같아서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알아보게 되어있다. 내가 그 여자를 단 번에 알아본 것처럼. 더 시간을 끌지 못하고 도아 옆에 서자, 도아가 다이어리를 놓으며 내게 악수를 요청했다. 백량금 잎사귀 같이 길게 뻗은 도아의 손. 한 손으로 내 두 손을 감싸 잡을 수 있던 그 손을 실로 오랜만에 맞잡는다. 손바닥 사이로 얼마만큼 뒤틀린 시공간이 소용돌이 치고 있을까.

도아에게 말했다.

“보고 싶었어, 수고했고. 기다렸어.”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 휘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는 도아는,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나라는 것과 자신에게 남은 생이 몇 남지 않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더라. 그 수술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어. 네가 받았다는 것도. 너를 보기 전까지 그 수술이 뭐를 의미하는 지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거든.”도아는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근데 너를 보니까 바로 알겠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걸 내가 말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잖아. 그렇지?”

도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도아는 대화가 아니라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듯했다.

“너는 내가 아는 이라가 아니야.”

“나이가 이제 마흔 다섯이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야.”

도아가 고개를 저었다. 나를 낯설어 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나를 쳐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반박이나 변명을 멈추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타인의 결정은 내가 교정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단지 반박의 의지를 상실한 채 도아의 말을 기다렸을 뿐인데 그 애는 내 닫힌 입술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거봐, 너는 서이라가 아니야.”

자꾸만 나를 부정하는 도아에게 물었다.

“그럼 나는 뭔데?”

“나도 모르지.”

“…쉬어.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말하고.”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걸 고민하고 있어봤자 시간만 아깝게 흐를 것이다. 도아에게는 허송으로 날릴 시간이 없지 않은가. 침대 밑 쓰레기통을 비우고 걸음을 돌렸다. 문을 연다.

“내가 여기로 돌아오는 동안 줄곧 상상했던 너와의 재회는 이게 아니었거든. 처음이야, 너를 맞추지 못한 거.”

문이 닫힌다.

 

 

“속 안 좋아요?”

“예?”

“자꾸 문지르기래요.”

나는 그제야 오른 손바닥으로 가슴께를 문지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치 내 손바닥이 아닌 것 같은 낯설음에 손바닥을 가만 주시했다. 속이 불편한 것은 느끼지 못했다. 나는 아니라며 다급히 손을 물렀다. 나와 함께 이곳에 온 간호사 ‘홍’은 그래요? 하고는 금방 관심을 물렀다. 환자들이 쓸 수건을 정리하고 있는 홍의 뒷모습을 유심히 본다. 질문을 던졌던 적 없다는 듯한 무심한 등이다. 홍이 잘 개어놓은 수건과 깔개를 들고 병실로 향하고, 나는 차마 할 말을 끝내지 못한 미련한 짝사랑꾼처럼 입술만 다셨다.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입안에서 만들어내지 못한 이 문장은.

여자의 이름은 연정이다. 연정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잠을 잘 때 빼고는 한 시간도 빼놓지 않고 제 엄마 옆을 지켰다. 올해 초 대학교를 졸업하고 여직 일이 없어 모든 시간을 엄마에게 할애할 수 있다고 말하며, 그것을 ‘다행’이라 표현했다.

“온전히 한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살면서 잘 나지 않잖아요. 마지막을 꽉 채울 수 있어 위로가 돼요.”

연정의 모녀가 머무는 병실에는 물건들이 많았다. 그 중 눈에 띈 건 앨범이었다. 커버에는 언제부터 언제까지의 사진이 담겨 있는지 년도가 적혀 있었다. 내가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며 앨범을 곁눈질 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챈 연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옛날에는 엄마가 왜 그렇게 사진에 집착하는지 몰랐는데 이제 알겠어요. 정말 남는 게 사진 밖에 없네요.”

“그래요?”

나는 적당히 추임새를 넣었다.

“나는 잊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라 여기에 다 저장해뒀던 거죠. 그때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다요.”

별 다른 대꾸 없이 혈압과 체온을 체크했다. 마땅히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감정을 기억하고 싶을 때는 그래서 사진을 봐요. 그럼 떠오르거든요. 특히 사진은 대부분 행복한 순간들이잖아요. 몇 개 빼고는. 그러니까 이게 행복을 뽑을 가능성이 높은 복권인 샘이죠.”

챙겨 온 것들을 정리했다. 병실을 나가기 전까지 링거와 병실 온도를 한 번 더 체크하고는, 나를 보고 웃고 있는 연정을 향해 비슷한 모양새로 화답했다. 좋겠어요, 앨범. 저도 집에 있는데 한 번 꺼내봐야겠네요.

하필 직전에 모녀의 병실을 보고 온 탓에 도아의 방이 헛헛해 보이는 것뿐이리라. 기척 없이 움직이려 노력했지만 도아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며 아는 채를 해왔다. 나만이 아직도 도아와 나 사이에 생긴 시간의 물리적 거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모양이었다. 도아는 자신보다 스무 해는 더 나이 많은 나를 보고도 스스럼없이 이름을 불렀다. 도아는 내게 궁금한 게 많았다. 언제부터 이 일을 시작했는 지와 그 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우리 가족의 안부까지도 말이다.

내게 특별한 일이 있었더라면 네게도 내 삶을 우주탐험을 다녀온 것처럼 들려줄 수 있었을 텐데, 내게 일어난 특별한 일이라고는 절친했던 친구가 지구 대표로 뽑혀 우주에 나갔다는 그 사실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 외에 모든 것이 지루할 만치 평범하게 흘렀다. 내가 가장 바란 미래이기는 했다. 하루가 못 견디게 답답할 만큼 지루하게 흘러가는 것. 나는 그제야 내가 바란 대로 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도아가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말이다.

도아가 잠시 뜸들이다 물었다.

“결혼은?”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짤막한 이유를 덧붙였다. 마땅한 여유도, 마땅한 사람도 없었다는 지극히 타당한 이유였다.

“혼자가 편하기도 했고, 굳이 할 필요도 없고….”

도아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지금 도아가 어떤 기분일지가 궁금해졌다. 어느 감정을 느끼기는 할까. 도아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지만 그저 인체의 한 면적일 뿐이다. 구겨진 종이를 보고 심미적인 추론을 가능할 지라도 감정을 느낄 수는 없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 너를 떠올리느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시간이 없었다고 했을 수도 있지만 그런 말들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도아에게 짐이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도아의 시선이 밑으로 떨어진다. 그곳이 내 가슴께인 것을 알아차린 후에야 나는 아까처럼 내가 가슴을 문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차, 싶은 마음으로 손을 떼어냈다. 나도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가슴에는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의 멍울도 잡히지 않는다.

“이제 네 이야기 좀 들어보자.”

나는 자세를 고쳐 잡고 도아에게 말했다. 여태껏 심문 같은 시간을 견뎠으니 이제 도아가 당할 차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발을 장전한 채 준비된 저격수의 태세를 갖추었지만 도아는 손을 살랑살랑 저으며 내 공격에 미리 막을 쳤다. 도아는 피곤해서 한 숨 자야 할 것 같다고 딱 잘라 말했다. 예전이라면 내빼는 도아를 붙잡고 도망가지 못하게 온 몸으로 깔아뭉개 괴롭혔을 것이다. 도아는 나보다 체력이 좋았지만 내 끈질김에 언제나 두 손 두 발 들던 아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의 천진난만함을 꿈꿀 수 없다. 나는 차분히 병실 온도를 체크하고 햇빛이 덜 들어오도록 블라인드 방향을 조절한 후 병실을 빠져나갔다. 문을 닫기 전 등 돌려 누워 있는 도아의 등을 바라보았다. 가죽밖에 남지 않아 앙상하게 말라 비튼 나무의 사체 같다. 물 한 방울 흡수해내지 못하는, 생명력을 완전히 잃어 살아있다고 칭할 수 없는. 도아는 자신의 양분을 어디에 빼앗기고 왔을까. 우주에는 아무 것도 없다면서….

도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다. 유난을 떨 정도로 특별한 삶은 아니다. 누구의 것과도 엇비슷한, 지극히 개인적인 비극이 난무하는 삶이다. 도아를 처음 만난 것은 여덟 살이 되던 해 1월이었고, 대학 병원 로비에서였다. 도아는 엊그제 태어난 제 동생을 보기 위해 외할머니 손을 잡고 병원을 찾았고 나는 그즈음 소아병동의 터줏대감 자리에 들려던 찰나였다. 반복되던 병원 생활이 익숙하고도 몸서리 칠 정도로 지겨웠던 나는 병원 간호사들을 속 썩이는 골칫덩이 중 한 명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진료시간만 되면 병원 곳곳을 숨어 다녔기 때문이었다. 도아는 내가 마흔 번째 숨바꼭질에 불쑥 참여한 길드원이었다. 술래가 점점 감시망을 좁혀 오던 로비 안내데스트 뒤편, 멀리서 나를 지켜보던 도아는 졸고 있는 외할머니 손을 놓고 내게 다가와 손을 붙잡았다. 도아가 나를 이끌고 데리고 간 곳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쭈글쭈글한 제 동생 앞이었다. 동생이 누워 있는 신생아실 침대를 캡슐이라 부르며, 지구인이 되기 위한 마지막 수속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외계인이었던 기억을 지우고 있는 중이야, 그래서 계속 잠만 자는 거야.

굳이 왜 지워?

외계인이면 지구인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 지구인들도 외계인이었을 때의 기억은 다 지웠으니까.

말이 통한다는 게 뭐야?

응?

엄마도 만날 나보고 말이 통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게 뭐야? 나는 다 듣고 있는데 왜 안 통한다고 해?

도아는 신생아실을 바라보느라 들고 있던 까치발을 내리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때 도아의 동생이 울지 않았더라면 오래도록 생각에 잠겨 있었을 테지. 아이가 울자, 간호사는 여유 있게 다가와 아이의 기저귀를 한 번 확인하고는 새 기저귀를 꺼내 갈기 시작했다. 도아는 그 모습을 가리키며 저거야, 하고 말했다.

저게 뭔데?

초능력.

초능력?

모든 대화는 초능력이야.

초능력이 결국 능력이여서 개인마다 차이가 존재했고,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타고난 기질은 결코 뛰어넘을 수 없었다. 도아는 등급으로 치자면 에이급 초능력자였다. 그 정도의 능력치가 되면 말로써 고통을 나눌 수 있었다. 이 말은 이제 아무 소용없는 문장이지만 한때 도아는 ‘그림자놀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붙여, 나의 고통을 끊임없이 나눠가졌다.

도아의 이야기를 이어가보자면 도아에게는 8살 차이나는 동생과 부모님이 있었지만 도아가 열다섯 살 되던 해에 도아만 남겨두고 모두 세상을 떠났다. 술에 취한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건물에 불을 질렀다. 뛰어들기만 하면 됐지만 남성은 순간 결정을 번복하고 살기 위해 도망갔다. 자신이 질러 놓은 불은 차마 끄지 않은 채로 말이다. 누군가는 우연의 비극이라고 표현했지만 비극 앞에 우연은 붙을 수 없다. 그 집이 도아의 집이였다는 것에는 우연이 필요하지 않다. 비극만 있을 뿐이다. 도아는 그 절망 속 지푸라기처럼 살아남았다.

방화를 저지른 남성은 하루가 지나지 않아 잡혔다. 방송에서는 남성의 대략적인 신상정보와 그의 일생에 대해 보도했다. 남성이 밟아 온 삶의 밑바닥, 끊임없는 사회의 차별, 회생불가능의 구조… 그런 것 따위를 줄기차게 보도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 그 남성의 삶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고 억만 걸음 양보해 치더라도 그렇다면 한 순간에 아무 죄 없이 빼앗긴 한 가정의 내일은, 도대체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지나치게 남성에게 관대했던 사회는 실형 6년을 선고했다. 세 사람이 앞으로 십 년만 더 살았다고 하더라도 삼십 년은 받았어야 했던 것을. 도아가 말했던 인간들의 초능력은 가해자에게 통했던 것이다.

세상이 미친 것 같아.

내가 말했을 때, 도아는 오히려 나를 끌어안아주며,

내 생각에도 그래.

하고 말했다. 나는 철없이 도아의 품에 안겨 울었다. 울음이 소리의 전부였던 시절까지 포함해 그렇게 서럽게 울었던 것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온 몸을 쥐어짜내듯 울었다는 사실만 기억에 남는다. 그때의 감각은 오래 되어 흐려졌다. 단지 도아가 했던 말만이 내게 오래 남았다.

네가 울어서 내가 울어야 할 양이 사라졌어.

도아는 이모네 집에서 함께 살았다. 그 즈음부터 도아는 우주로 나가는 일을 꿈꿨는데, 지구에 말이 통하는 사람이 나 밖에 남아있지를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주로 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가 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냥 그렀느냐고, 네가 우주로 나가면 나는 너와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느냐고 물었던 것 같다.

도아가 탄 우주선이 떠날 때까지 나는 그 애가 여수나 제주도, 미국이나 중국이 아닌 우주로 나간 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비행기가 아니라 우주선을 타고 이 행성 어디도 아닌 우주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일까.

그날 집으로 돌아와 나는 오래도록 잠에 들지 못했다. 도아의 표정이 눈을 감으면 자동으로 재생되는 영상처럼 떠올랐다. 사랑하는 사람을 여태 만나지 못했다는 내 말을 듣고 있던 도아의 표정을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어떤 말을 꺼내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너무 오래도록 묵혀놔 더는 꺼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말일지도 모르겠다.

또 가슴께를 쓸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잘못을 들킨 것처럼 손을 무르지 않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손이 움직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수술하기 전에는 언제 이런 행동을 했더라. 가슴이 답답하거나 쓰라릴 때였던가. 하지만 그건 내가 수술하기 전의 이야기이다. 어떤 이유든 현재의 나는 재미없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것처럼 무미건조할 뿐이다. 밤늦도록 도아의 생각이 멈춰지지 않는다. 이제야 현실처럼 다가온다.

도아가 돌아왔다. 생을 며칠 남기지 않고서.

 

* *

 

모녀의 병실에서 파생된 괴성이 복도 전체를 메운다. 통증을 잠재우기 위한 처방으로는 모르핀 밖에 남지 않았다. 다급히 장비를 챙기고 병실로 들어섰다. 연정은 여자를 안고 있었다. 여자가 침을 흘리며 악을 쓰자, 연정은 뒤에서 끌어안은 채로 여자의 몸부림을 따라 몸을 움직이며 소리를 내질렀다. 연정의 행동은 괴이하다. 암컷 등에 붙은 수컷 개구리처럼 딱 달라붙어, 혹은 머리가 분열 된 신화 속 거인 같은 형상으로 포효하고 있다. 여자의 통증이 연정에게 전이라도 된 것일까. 서로 땀을 잔뜩 흘린 채 얽혀 있는 두 여자를 바라보다 나는 그만 심장이 비틀어지는 감각을 느끼고는 주사기를 떨어트렸다. 옆에 있던 홍이 그런 나를 자리에 세워두고 보조사들과 함께 여자에게 달려가 몸부림치는 팔을 붙잡는다. 마치 뒤에 붙은 연정은 보이지 않는 다는 듯이. 핏줄이 살을 뚫을 것처럼 올라온 팔뚝에 주삿바늘이 관통하고, 진정하라는 보조사들의 외침에 여자는 애써 진정해보려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크게 부풀었다 줄어드는 두 개의 몸통이 겹쳐진 채 소란이 진정되었다. 여자가 연정의 품에 기대어 눈을 감았고, 연정은 그제야 꽉 감쌌던 팔에 힘을 풀고 여자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귓가에 입술을 바짝 붙인 채 무어라 속삭였는데 그 말까지는 들리지 않았으나 입모양은 대충 이러했다. 잘했어, 잘 버텼어, 잘 이겨냈어.

“생각보다 통증이 빨리 가라앉네요.”

홍이 약품을 뒷정리하며 모녀에게 말했다. 연정은 땀이 흥건한 얼굴로 홍을 향해 힘없이 웃었다. 빨리 가라앉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모녀에게서 느꼈던 그 미묘한 기시감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림자놀이. 자그마치 37년 전에 도아와 내가 했던 놀이였다.

어린 시절 병원에서 보냈던 시기의 기억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깨진 거울 수술의 부작용 중 하나였다. 특별한 사건에 대한 기억보다 비슷한 하루의 반복과 그 날의 감정으로 결정되었던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수술의 부작용으로 인해 일부 감정이 사라지며 그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수단도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잊고 있었다. 아예 지워진 줄 알았다. 그런데 지워진 게 아니었구나. 너무 소중한 기억이라 혹여 지워질까봐 꽁꽁 숨겨두었던 것이구나.

나는 새하얀 이불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장수풍뎅이처럼 엎어져 있다. 외부로부터 나를 지키고 싶은 필사의 몸짓이지만 내 등은 갑각류의 외피처럼 단단하지 못하고, 오래 전에 죽어버린 동물의 화석처럼 등뼈가 곧게 튀어나와 있다. 더는 주사바늘을 꽂지 못할 정도로 퍼렇게 멍든 양쪽 손등. 그곳을 피해 발등에 꽂힌 링거바늘. 치료를 받은 후일 것이다. 아프지 않게 해주기 위함이라는 말을 들으며 아픔을 느낀 시간에 대한 배신감과 잔열처럼 몸에 퍼져있는 감각들을 잠재우고 있을 때 도아를 내 앞에서 나와 똑같이 몸을 웅크린 채 엎드렸다. 내가 눈을 깜빡이면 도아도 눈을 깜빡였고, 내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면 도아도 나를 따라 자신의 마른 눈가를 문질렀다. 나는 기어코 옅게 터진 웃음으로,

또 그림자 하는 거야?

하고 물었다. 도아는 머리카락이 이불에 흐트러지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아파하는 걸 내가 조금 훔쳐가는 거야.

…나는 잘 모르겠는데.

도아는 내 그림자처럼 움직인다고 하여 그 행위를 그림자놀이라고 이름 붙였다. 도아는 내가 아프고 슬플 때마다 나를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하면 네가 얼마나 아픈 지 조금 알 것 같아.

그런 도아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응, 덜 아픈 것 같아.

정말로 아픔을 덜 느꼈을까. 진실을 판단하기에 지금은 너무 늦었다. 나는 기억의 조각을 떠올릴 뿐 그때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내가 진심으로 웃었다는 사실이다.

“간호사님.”

꽤 큰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예예? 하고 더듬거리며 대답을 하자, 홍은 내게 뭐하고 계세요? 거기에서. 하고 되물었다. 나는 모녀의 병실 앞에서 카트를 쥔 채 서 있었다. 마땅히 할 만한 대답이 없어 아니에요. 하고는 어설프게 웃어보였다.

“어제부터 조금 이상해보여요. 피곤하신가요?”

“아뇨, 괜찮아요.”

“가슴도 자꾸 만지시고… 아프시면 병원부터 가보세요.”

“제가 또 문질렀나요?”

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해지면 병원에 가보겠다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짓고는 카트를 끌고 도아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통증이 느껴지는 것은 아닌데 습관적으로 가슴께를 문지르는 것은 부작용 중에 하나인 것일까. 도아를 만난 후부터 나타난 증상이다. 문제가 생긴 거라면 도아를 다시 만난 순간부터 발생했을 것이다. 병실 앞에서 카트를 멈춰 세우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사람이 돌아왔다. 하필 네가 있던 곳이 우주여서 나는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네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내가 숨 쉬는 모든 곳에 네 아래에 있었다. 나는 너를 보낼 때 끝까지 웃지 못하고 기어코 눈물을 터트린 순간을 후회했고 우리의 시간이 달라질 지도 모른다는 네 말을 생각하며 시계를 볼 때마다 네 시간을 추측하는 습관이 생겼다. 우리가 정의내리지 않고 묻어둔 관계에 대해 홀로 공식을 세워 풀어내려가기를 반복했고 가끔은 네가 가까이 다가가는 그 블랙홀 속에 답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너는 우주에서 어떤 생각을 할까. 너는 그곳에서 내 생각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혹시 너도 그곳에서 아직 풀지 못한 관계를 풀어 보려고 하는지, 그 답이 나와 같을지 따위만을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과 물리적 거리가 결국 우리를 추억으로 남겨둘 거라는 네 말을 부정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점차 기다림이 일상이 되며 하늘을 보고 너를 떠올리는 일이 더는 내게 아프지 않게 다가왔을 때, 인류가 다음 인류를 꿈꾸며 뇌 속의 거울을 깨트리는 일에 동참한 뒤 눈을 떴을 때, 어쩐지 너는 우주에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다.

그랬던 네가 돌아와서 내 안에 규형을 잡고 있던 무언가가 뒤틀어진 것이 분명하다.

도아의 병실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병실 문을 열었지만 엎드려 이불을 쥐어짜고 있는 도아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몸속에 퍼진 죽음이 차츰차츰 도아의 살점을 뜯어내고 있다. 모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여자의 통증을 나눠가지려던 연정의 몸부림을. 오른 손을 위로 뻗고 왼손으로 이불을 쥐고 있는 도아를 바라보다, 오른 손을 천천히 위로 뻗고 왼손으로 허공을 쥔다. 평정을 유지하려는 도아의 다급한 호흡을 따라 내쉬어보지만 세 번째 숨을 내뱉고는 행동을 멈춘다.

나는 도아의 고통을 나눠 가질 수 없다. 고통에 잔뜩 찡그린 얼굴 표정이 전부 보이지만 그것은 도아가 고통스러움을 드러내는 수단일 뿐이다. 도아가 고통스럽구나.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약을 놓아주는 일 뿐이다. 카트에서 모르핀 약통을 찾아 도아에게 다가갔다. 도아가 대뜸 내 팔을 붙잡는다. 내 팔이 으스러지도록 움켜쥐는 손이 지금 얼마만큼의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눈물 한 방울 맺혀있지 않지만 폭포수 같은 눈물을 쏟아내는 듯한 표정이다.

“진통제를 놔줄게.”

“…이라, 이라야.”

“응, 잠시만 기다려. 내가 금방…”

“너, 왜.”

신음에 뒤섞인 말은 뚝뚝 끊어졌다. 손을 붙잡고 있는 도아의 악력이 강해 손을 빼낼 수가 없다. 진통제를 놔준다고 다시금 말했으나 도아는 손을 놓지 않았다. 무엇을 원하는 지 알 수 없다. 고통을 없애려면 주사를 놓아야하는데 도아는 그걸 알면서도 손을 놓지 않고, 나를 바라보면서,

“너, 왜, 나를, 끄흑 그런, 눈으로…”

하고 말했다. 홍이 뒤늦게야 들어와 도아를 붙잡아 손을 떼어놓고 자리에 눕혔다. 주사를 놓는다. 몸속을 빠르게 타고 들어간 모르핀이 고통을 잊게 만들고 난 후에야 도아는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

뒷정리를 하겠다고 말하고는 도아의 병실에 남았다. 발밑에 뭉쳐 있는 이불을 펴 목덜미까지 덮었다. 평온하게 잠들어 있지만 실은 죽어가는 중이다. 그것도 삶의 잔여량이 5%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병실의 온도와 습도를 맞추고 빛이 들어오는 창에 커튼도 쳤다. 어제와 거의 다를 것 없는 서랍장도 정리하다가 도아의 다이어리를 발견했다. 펼쳐보고 싶다는 충동이 옅게 들었으나 자리에 놓고는 병실을 나왔다. 도아는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도대체 어떤 눈으로 도아를 보고 있었길래….

몇 시간 뒤 도아의 병실을 찾았을 때, 도아는 실눈을 뜬 채 천장을 보며 누워 있었다. 잠들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깨어 있는 상태도 아니어 보였다. 병원에 있다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환자들의 모습이다. 조금씩 삶을 포기하는 지점. 고통보다 편안한 안식을 바랄 때의 공허한 눈빛들이 딱 저런 모습이었다. 도아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다가가자, 천장에 닿아 있던 시선이 내게로 옮겨왔다. 지금은 조금 괜찮아? 라고 묻자 도아는 대답 대신 미지근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에 가까운 환자들이 제일 먼저 잃는 것은 소리이다. 생명이 뿜어내는 소음들이 차츰차츰 사라지면 죽음과 같은 침묵이 주변을 감싼다. 죽어가는 환자가 있는 병실은 그래서 고요하다. 숨소리, 발소리조차 제대로 낼 수 없게끔. 그런 침묵이 조금씩 도아를 덮는다. 언젠가는 완전히 덮을 것이다. 그때는 지구에서 사라지는 거겠지. 도아가 지구에 없었던 적은 있었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소멸이 되겠지.

도아의 심박수와 체온을 확인한 후 푹 쉬라고 말을 건넸지만 도아는 살며시 손을 맞잡아 왔다.

“할 말 있어? 불편한 거라도?”

그 침묵의 언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주의를 기울였다. 도아는 시선을 옮겨 서랍장을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 위에 올려 진 다이어리였다.

“이거?”

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손에 쥐고만 있자, 도아가 다이어리를 내 품으로 밀었다. 도아가 입을 열었다.

“내 이야기가 궁금하다며.”

“…….”

“그거 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몇 번씩 다이어리가 가방에 잘 들어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러다 이내 가방을 끌어안고 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해서는 식탁 위에 다이어리를 올려두고는 쌓아둔 집안일과 샤워를 했다. 밥을 먹을까 하다가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꺼내 소파에 두 다리를 끌어 앉고 앉았다. 티브이를 틀었다. 도아의 소식이 한 카테고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도아가 이루고 돌아 온 업적이 간단하게 소개되었다. 현재 입원해 있다는 소식도 끄트머리에 짤막하게 나왔다. 뉴스는 곧바로 다른 소식으로 넘어갔다. AI가 읊어주는 문장은 소식을 전달하는 것 외에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 이상의 무언가를 원하지 않으니까. 뒤이어 들려오는 뉴스에는 도통 집중이 되질 않는다. 정신은 식탁에 쏠려 있다. 다이어리가 나를 부르는 듯했다. 그만 버티고, 이만 오라고. 두렵다. 큰 두려움은 아니다. 손짓이 망설여지는 정도의 크기다. 왜 두려우냐고 묻는다면 이유를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나는 다이어리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소파에 돌아와 앉았다.

첫 장을 펼쳤다. 네가 떠났던 2028년 3월 1일부터 일기가 시작되었다.

 

2028/3/1

간다.

이제야.

 

첫 발 치고는 허무했다. 하지만 그 일기뿐만 아니라 이후의 일기도 전부가 이런 식이었다. 칼칼하게 끓인 김치칼국수가 먹고 싶다. 라고 쓰인 날도 있었고 아파트 화단에 살고 있던 고양이들이 아직 그곳에 살고 있을까. 라고 쓴 날도 있었다. 그날 들었던 생각 중 한 토막을 잘라 무성의하게 옮겨 놓은 문장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이어리를 놓지 못하고 있다. 무심하게 쓴 도아의 문장은 그런대로 매력이 있었고 고요한 우주에서 고작 쓴다는 일기가 이런 것이라는 점에서 때때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일기는 몇 달에 한 번씩 쓰이기도 했고 길에는 2년 후에야 쓰이기도 했다. 공백에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으리라. 몽롱하다든가 시간을 우주에 버리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2035/10/04

거울을 보는 시간이 많아진다. 거울의 내가 나를 따라 괜찮다고 중얼거리는 것을 오래도록 본다. 나를 공감해주는 사람이 거울 너머에 있다. 유일하게.

 

다음 장을 넘긴다. 전 페이지로부터 5년의 공백이 있다. 이번 일기는 유달리 길다. 나는 첫 문장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2037/12/05

외로움에 대한 소설을 써야겠다.

돌아간다면. 다시 지구에 돌아갈 수 있다면. 주인공은 이름이 없고, 성별이 없고, 얼굴이 없는 존재로 설정해야겠다. 그런 것들로 규정되는 편견을 피하기 위해서.

나처럼 우주비행사도 좋을 것이다. 다른 행성에서 지구를 찾아 온 외계인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사연을 만들어줘야지. 아주 커다란 슬픔을. 그래서 본인의 행성을 견디지 못하고 추방당하듯 떠났다는 설정을 가져와야겠다. 그렇게 우주를 떠도는 것이다. 일부러 말이 통하지 않는 외계생명체를 찾아서. 안녕이라는 말조차도 알아듣지 못하는, 그래서 한 마디를 전달하는데 아주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존재를 만나기 위해서.

하지만 결국 그곳에서도 답을 찾지 못하겠지. 그렇게 돌아갈 것이다. 상처 가득 안았던 본인의 행성에서, 오직 한 존재만을 바라보기 위해서. 오직 그 존재에게 위로받고 공감 받기 위해서.

그거면 충분하다는 것을, 이 주인공은 먼 우주에 나와서야 깨닫는 것이다. 끊임없이 그 존재에게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부터, 상처뿐인 언어로부터 멀어진 우주에서 제 숨소리를 유일한 소음으로 삼으면서.

그렇게 마침내 모든 여정을 끝내고 돌아가, 다시 만나겠지. 그 존재는 많이 야윈 주인공을 보고 무작정 끌어안을 것이다. 외로웠지만 슬프지 않는 이야기가 되겠다. 끝내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주는 존재를 만나게 됐으므로.

지구로 돌아가야겠다. 떠나올 때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더라도 여정을 완수하겠다는 서약서를 썼지만 모든 여정을 완수하고 반드시 지구로 돌아가리라. 소리가 있고, 빛이 있고, 그림자가 있고, 설움이 있고, 가시가 있고, 원망과 미움이 있고, 그렇지만 네가 있는 곳으로.

 

가슴께를 어루만진다. 오래도록. 손바닥이 아리도록.

도아에게 하지 못한 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일 도아를 만나 그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해주어야겠다.

상처받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보호막이었어. 사람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지쳐있었으니까.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다면, 그래서 나를 비롯해 곁의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감정을 잃더라도 모두가 감내할 수 있다고 믿었어. 세상은 더 편리해 질 거야. 분쟁과 전쟁이, 다툼과 사냥이 전부 사라질 거야. 간결하고 깔끔하게 지구가 변하겠지. 우리는 그게 간절했어. 네가 있었다면 너 역시도 수술을 받았을 거라 생각했어. 그러니까 도아야, 나는 내가 너를 잃더라도 너를 이 세상에서 지킬 수만 있다면 수술을 받게 했을 거야.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 이해할 수 없을 거고.

내가 지금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연정은 여자의 마지막 장소로 집을 선택했다. 챙겨줄 수 있는 것은 진통제뿐이었다. 연정에게 진통제를 투여하는 방법을 몇 차례 반복해 설명하며 옆에 함께 서 있는 여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여자는 처음 왔을 때보다 더 야위었지만 집을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느 때보다 활기찼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를 올리는 여자에게 수고했다는 투박한 인사를 건넸다. 이곳을 떠나는 가족을 바라보다 가슴께를 문질렀다. 여자의 손을 꼭 붙잡고 걸어가는 연정의 뒷모습이 커 보인다. 앞으로 닥칠 이별을 전부 감내할 수 있을 듯한 크기였다. 슬프겠지. 하지만 지나갈 것이다.

진통제를 맞을 시간에 도아는 잠들어 있었다. 며칠 전 내가 읽고 돌려줬던 다이어리는 창틀에 놓여 있었다. 도아는 어땠느냐고 묻지 않았다. 나 역시도 사족을 붙이지 않았다. 언어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어떤 말이 위로가 되는지, 공감이 되는 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 후로 도아가 일기를 더 썼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이어리를 다시 보여 달라는 용기도 나지 않았다. 링거에 진통제를 투여하고는 카트를 정리했다. 수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몸을 돌렸다가, 문득 다시 도아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오르내리는 도아의 배에 손을 얹고, 바닥에 무릎을 꿇어앉는다.

또 그림자 하는 거야?

네가 아파하는 걸 내가 조금 훔쳐가는 거야.

호흡을 맞춰, 천천히. 나는 절대로 도아가 될 수 없으므로, 그 아픔을 나눠가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혹시 모른다. 분명 도아가 내 그림자가 되어 내 아픔을 조금씩 나눠가졌다. 나도 그럴 수 있기를 빌어. 내 깨진 거울로 너를 얼마만큼 담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도아가 일어나면 끝내 하지 못한 이야기를 마저 할 것이고, 끝내 풀지 않은 공식을 풀어낼 것이다. 네 행동을 따라할 것이고, 네 말을 따라 읊으며 너를 등 뒤에서 끌어안고 괜찮다고 속삭일 것이다. 앨범을 찾아야겠다. 어쩌면 나도 연정이 말한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도아와 함께 있으면 조금씩 가슴께가 아려온다. 근육이 뭉친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 사이의 가장 강력한 감정 하나가, 내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려놓을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도아는 나와 나흘을 함께 있었다. 마지막에는 만나서 반가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네가 죽었다는 것을 오래도록 곱씹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탕이 쪼개지듯 통증이 밀려오겠지.

그게 무슨 느낌일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댓글 0
분류 제목 날짜
돌로레스 클레이븐 오를레앙 2020.01.16
돌로레스 클레이븐 아광속의 시선 2020.01.16
천선란 그림자놀이 2020.01.15
노말시티 등라모연 2020.01.01
karidasa 드래곤의 소원 2020.01.01
이경희 우주가 멈춘다!3 2020.01.01
천선란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 2020.01.01
곽재식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2 2019.12.31
천선란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2019.12.15
이경희 살아있는 조상님들의 밤 2019.12.15
amrita 조 팀장이 불보살인 이유 by amrita 2019.12.01
윤여경 이물 by 윤여경 2019.12.01
괴이학회 비상구 by 김선민 2019.12.01
노말시티 별 헤는 밤의 기억 2019.12.01
해망재 파촉, 삼만리 2019.12.01
갈원경 푸른 돌 2019.12.01
곽재식 판단6 2019.11.30
손지상 냉동육 by 손지상 2019.11.15
아밀 외시경 by 아밀2 2019.11.15
괴이학회 죄는 죄로 by 장아미 2019.11.15
Prev 1 2 3 4 5 6 7 8 9 10 ... 42 Next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