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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파촉, 삼만리

2019.12.01 00:0012.01

파촉, 삼만리

해망재

“파촉(巴蜀) 삼만리”라는 말을, 나는 고등학교 때 들었어. 정확히는 한국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시에 그런 구절이 실려 있었지. 죽은 연인을 두견새에 빗대어 그리워하는 내용의 시인데, 여기에서 떠난 님이 도착할 피안의 세계를 “다신 오지 못하는 파촉 삼만리”라고 표현한 대목이 있었어. 

딱 그 무렵이었지. 엄마가 건설중이던 궤도 엘리베이터 모듈을 점검하러 가셨다가 그대로 추락해서 돌아가신 것은. 인간이 지구를 둘러싼 거대한 궤도를 지어 올라가는 세상에서도,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않았지. 그래서였을 거야, 파촉이라는 예쁜 지명이, 내게는 우주보다도 더 먼 곳으로 느껴졌던 것은. 엄연히 지구상에 존재하는 곳이라고 들었으면서도 언젠가 내가 죽으면 가게 될 머나먼 저승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네 고향에 대한 내 그 엉뚱한 생각에 너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어. 그러다가 아차 싶었는지 바로 웃음을 멈추었지. 그리고 내 어머니에 대한 일을 물었어. 그런 질문을 한 너를 탓하려는 건 아니지만, 그다지 좋은 질문은 아니었다고 생각해. 나는 그때 엄마를 아주 잃어버렸으니까. 성층권 높이에서 추락하다가 아예 레일에서 분리되어 떨어진 모듈이 무사하기를 기대하느니, 사람이 두견새로 변하는 기적을 바라는 게 더 쉬울 테니까. 참 우습고도 아득한 일이지. 너의 고향인 그곳에 아주 오래 전, 삼국지에서 유비가 제갈량에게서 천하를 셋으로 나눌 계책을 얻어 마침내 세웠던 촉나라가 있었고, 그보다 훨씬 전에는 지금은 고촉이라 불리는 멀고 먼 옛나라가 있어, 나라를 빼앗긴 왕이 ‘가야 한다, 촉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귀촉도(歸蜀途), 귀촉도 하고 울다가 두견새가 되어버렸다는 옛 이야기가 전하고 있지. 나는 삼국지도 읽었고, 국어 시간에는 두견새를 두고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는 “귀촉도”라는 시도 배웠지만, 그곳이 네 고향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 내가 좀 더 나이 들어 그곳에 갈 거라는 것도, 그곳에서 너를 그리워하며 살게 되리라는 것도.


너와 나는 둘 다, 시대착오적인 낭만에 빠져 있었지. 정말 대책없는 멍청이들 같았어. 이렇게 몽상가가 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유전인걸까? 우리 엄마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였으니까. 엄마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에는 이미, 인간이 전력으로 공부하고 일하고 기술을 발전시켜야만 살아나갈 수 있는 시대는 끝난 지 오래였는걸. 그런데도 엄마는, 어째서인지 그 속에서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는 꿈같은 이야기를 했지. 그렇게 꿈을 꾸며 살다가 공학자가 되었고, 하필 궤도 엘리베이터 감리 일을 맡았다가 이카루스처럼 추락한 사람이 우리 엄마인걸. 그런 엄마의 딸인 내가 로봇 공학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생각한 것도, 엄마의 그런 대책 없이 낭만적인 면을 닮았기 때문인지도 몰라.

“우와, 넌 산업용 로봇에 대해 공부한다고?”

“응, 조금 특이하지?”

“나도 만만치 않은걸. 난 의대 다녀.”

그래서 너를 만났을 때, 처음에는 당황했어. 

나만 미친 줄 알았는데 미친 애가 또 있었다니.

“잘 됐다. 넌 언제 나랑 같이 내 고향에 가 보는 게 좋겠어. 역사상 최초의 산업용 로봇을 만든 사람의 사당이 내 고향에 있거든.”

“산업용 로봇을 만든 사람의... 뭐?”

“사당. 한 승상 무향후 제갈량, 줄여서 제갈무후. 왜, 삼국지에도 나오잖아. 제갈량이 목우와 유마라고, 군량을 실어나르는 산업용 로봇을 만들었다고.”

답답하다는 듯 나를 채근하는 너를 보며, 나는 내가 미친 놈에게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어. 세 사람이 함께 있으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는데, 나는 세 사람까지 모으기도 전에 나보다 더한 사람을 만나고 말았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네가, 지금은 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네 고향의 옛 문자로 적은 시를 내게 건넸을 때는, 정말 이 정신나간 애의 곁에 있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솔직히 말하면 대책이 없다고 생각했지. 그게 이 박물관 속의 도자기 같은 인간을 구제할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한심한 책임감이었는지, 아니면 너의 그런 세속의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것 같은 아날로그한 면에 반해버렸던 것인지는, 지금으로서는 분간이 가지 않아. 

자율주행차량이 나온 게 벌써 백 년 전의 일이야. 사람들이 다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게 된 것도 벌써 백십 년이지. 그리고 대략 그 무렵에 AI는 인간과 바둑으로 승부를 가렸어. 그 이후의 바둑이란, 인간들의 패배의 기록이나 다름없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바둑을 두고, 체스를 두고, 한 자 다섯 치 짜리 반상 위에 성을 쌓고 별을 그렸지만, 느릿하게 모든 것이 시들해지고 완만해졌을 거야.

십수 년의 수련과 술기 연마를 거쳐 한 사람의 의사가 만들어져도, 인간의 목숨은 길지 않지. 경험이 쌓여 환자의 사소한 증상에서 실마리를 잡아내는 노련함이 쌓일 무렵이 되면, 수술을 감당할 체력과 집중력은 하락하기 시작해. 의사로서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부를 만한 시기는 길지 않아. 하지만 AI 로봇들은 지치지 않고 질리지 않으며 침착하고 꾸준하게 환자를 돌볼 수 있지. 24시간을. 예전에는 적은 수의 간호사가 한 층의 병동을 돌보며 과로했다면, 지금은 각자가 누워있는 침대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가 쌓이지. 여기에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정서적인 부분 정도일까. 아무래도 사람끼리 살아온 세월이 길었던 노인들은, 사람이 아니면 정을 느끼지 못한다고도 하니까 말야. 

아니, 사실 입원까지 갈 것도 없지. 순식간에 신체를 스캔해서 30초 이내에 병명이며 병소의 위치까지 전부 알아낼 수 있고, 수술도 인공지능의 판단에 의해 로봇이 집도하는 지금 시대에, 굳이 의사가 되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너 같은 괴짜를 제외하면 말야. 

사람이 공부하기를 원한다면 언제든지 배울 수 있어야 한다며 모든 대학들은 문호를 개방했어. 대학에 가기 위해 노부모가 소중히 기르던 소를 팔아야 했다고, 대학이 우골탑이라고 불리던 것은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지. 대학에서는 매 학기 새로운 최신 학설을 탑재한 AI 로봇 교수진이 우리를 기다렸고, 정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인간이 갖지 못한 끈기를 갖고 우리를 공부시키려고 했어. 원한다면 누구든, 언제든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거지.

하지만 어째서일까, 사람이 하던 일들이 사람의 손을 떠나기 시작하고, 공부를 더 많이 하는 것이 출세나 돈을 보장해 주지 않게 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학에 가지 않기 시작했어. 정말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학에 갔지만, 그들은 대부분 순수학문에 몰두하며 학문의 아름다움에 감탄했지. 공학이나 의학, 경제학같은 응용학문을 지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 이 공부의 결과로 안정된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 사람들의 존경이나 부를 얻는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기술의 첨단에 서서 미래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 이미 공학이나 의학의 발달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지 오래였으니까. 

보람이 없는 일을 계속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야. 그러니 호사가처럼 그런 학문에 손을 대었다가도 다들 금세 나가떨어지는 거지. 나는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 만났던 선배나 동기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해. 처음에는 눈을 반짝이던 이들은 곧 완전히 포기한 듯한 태도를 보였어. 나른하게 늘어진 채 헤드기어를 쓰고 가상현실 속에서 이어지는 끝없는 즐거움에 탐닉하거나, 나르시스트처럼 자기 몸의 아름다움을 끝없이 추구하거나, 그냥 의미없이 늘어져 빈둥거리고 있었지. 처음부터 대학에 갈 생각을 하지 않고, 건실한 직업을 가질 생각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처럼. 고대의 사람들이 빵과 서커스에 만족했다면, 지금의 인류는 가상현실이 주는 쾌락과 일할 필요가 없는 안락함에 푹 빠져서 다들 넋이 나간 것 같았어.

그렇다고 건실하게 자기 일을 해 나가며 산다고 해서, 뭔가 뾰족하게 다른 게 있었던 건 아냐. 학교를 졸업하고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고, 그리고 취직을 하려고 해도, 나처럼 정부에서 지정해주는 사무실에 나가서 별다른 일은 없이 대기하다가 집에 돌아오는 게 고작이었지. 하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사람들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잡담을 하는 것을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그렇게 별다른 고민 없이 빈둥거리기만 하는데도 세상은 흘러가고 있었어. 그건 마치 우리 모두를 어린아이의 요람에 처박은 듯한 무기력하고 보드라운 쾌락이었어. 

“결국 인간의 문명이라는 건 완만한 종말을 맞을 거야.”

그런 한심한 감각을 몇 번이나 곱씹어,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면, 나는 네게 쳐들어갔어. 그게 한밤중의 네 침실이든, 혹은 속세의 먼지가 희미하게 내려앉은 한낮의 네 진료실이든.

“머릿속까지 AI에 의탁한 채로 이렇게 발전없이 살다가 다들 죽을 거라고. 우리 모두 거대한 동물원에 갇혀 버린 것 같지 않아? 난 이러고 사는 게 가축 취급당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싶어.”

“가축 우습게 보지 마. 가축은 길러서 쓸 데나 있지.”

“그래,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쓸모가 없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먹고 살 수 있고, 옛날 사람들이 원죄처럼 여겼다는 번거롭고 힘든 노동 같은 것은 전부 로봇이 하고 있는데, 그러면 사람이 좀 더 생각을 하고 살 줄 알았어. 자기 자아라든가, 지적인 문제라든가.”

“진정하세요. 그 보편적인 복지를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알아?”

“알아. 하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 야, 난 명색이 로봇 공학자인데,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얼마 되지도 않아. 내 머릿속에 있는 칩? AI들이 만들어서 인간의 머릿속에 넣는 칩을 인간이 따라잡을 수가 없다고. 야, 이건 어쩌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 잃어버리지 말라고 넣는 칩이랑 본질적으로는 같은 게 아닐까? 응?”

“너랑 똑같은 결론을 말하는 사람들을 알아. 내 고객님들이지.”

“고객님?”

“신앙이 깊은 분들 중에는 말야, 그러니까 종교인이라든가. 신앙의 문제고 영혼의 문제라면서 굳이 와서 칩을 제거해 달라고 하거든.”

배울 만큼 배웠어도 한가한 내가, 역시 배울 만큼 배웠어도 할 일 없는 너를 찾아가서 떠들어대면, 너는 진료실 구석에 놓아 둔 개완 두 개와 작은 차통을 가져와 내게 차를 우려 주었지. 내 침실에 네 몫의 베개가 있고 네 진료실에 내 몫의 개완이 있는,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사이였으니까. 

“너같은 돌팔이에게 진료를 받으러 온다고?”

“야, 그러니까 나도 진료실을 열고 있지. 어쨌든 의사는 로봇 공학자보다는 수요가 있으니까 말야. 고작해야 이런 칩 제거밖에는 안 하지만.”

“칩 제거... 도 수술이지?”

“응. 오래 걸리는 건 아니지만 뇌신경에 연결된 거라 전신마취가 들어가지.”

“용감하네. 요즘같은 세상에 누가 사람 의사에게 머리 여는 걸 맡겨.”

“헛소리 하지 말고 차나 마셔.”

나는 개완의 뚜껑을 열었어. 그러면 새싹이 피어나듯 맑고 투명한 연둣빛 찻물 아래, 가느다란 붓으로 꾹꾹 눌러 그린 듯 펴진 찻잎과, 그 위에 피어난 연약하고 하얀 꽃들이 보이곤 했지. 벽담표설이라고, 아미산의 녹차에 말리꽃을 블렌딩한 거라고 너는 말했지만, 나는 차에 대한 네 설명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그저 투덜거리기만 했어.

“그래도 우리 엄마가 젊었을 때는 인간이 감리 책임자 노릇이라도 했는데. 지금은 진짜 뭣도 아니라니까.”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너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지. 

“옛날에는 솜씨 좋은 목수 한 사람이 마차 한 대를 혼자 만들었지만, 백 년 전에도 자동차는 혼자 만들 수 없는 물건이 되어 있었어. 전에는 혼자 하던 일을 사람들이 나눠서 하고, 그러다가 AI에게 손이 넘어간 것 뿐이지.”

“이러다간 사람이 하는 일은 하나도 남지 않을 거야. 베이징 동물원에서 본 자이언트 판다가 된 것 같은 기분이야. 모두가 애지중지 해 주지만 사람이 없으면 금방 죽어버릴 것 같았잖아. 지금 인간이 딱 그래. AI가 없으면 숨이나 쉴 수 있겠어?”

“인간은 지금, 잠깐 쉬어야 할 때가 되어서 쉬는 것 뿐이야.”

그리고 너는, 조용히 차를 마시며 내게 말했어. 

“사람이 일을 하면 쉬고 잠을 잘 때도 있어야지. 지난 두 세기동안 인간의 문명이라는 건 정말 미친 듯이 달려왔잖아? 사람은 하루에 열 여섯 시간 깨어 있고 여덟 시간은 자야 하는 법이야. 남들 다들 자는 시간에 일어나서 일하라고 달리라고 안절부절 못할 필요 없어. 일어나야 할 때가 되면 일어날 거야.”

그리고 너는, 남들이 잘 때는 날뛰지 말고 자라면서도, 자기는 혼자 일하던 너는, 영원히 잠들고 말았어. 

어처구니없는 사고였지. 그날도 칩을 제거하는 수술을 한 건 하고 집에 돌아가던 길, 너는 공사를 하던 산업용 로봇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데 휩쓸렸어. 크레인이 달린 로봇 팔이 역회전하며 적재한 짐이 쏟아졌고, 너는 피할 도리도 없이 그 짐에 깔리고 말았어. 로봇 구급대원들이 즉시 출동했지만, 신이라 해도 너를 되살리기에는 이미 늦어 있었지.

나는 그날 네가 입고 있었던 블라우스를, 한참동안 비닐에 넣어 갖고 있었어. 

네 그 영리한 생각과 다정한 목소리와, 너의 모든 것이 담겨 있던 뇌수의 흔적이 누르게 남아 목덜미에 피와 함께 얼룩져 있었지. 네가 실려간 병원의 로봇 의사들이 가위로 급히 잘라낸 흔적들이 역력한 그 블라우스는, 지난 번 생일에 내가 사 준 것이었어. 30초면 사람이 어디가 아픈지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그 모든 시스템이 전혀 손을 쓸 틈조차 주지 않고 서둘러 가 버릴 거면서, 너는 어떻게 내게 쉬어야 할 때라는 말을 했을까. 


너와 함께 만들었던 마지막 밑반찬들을 다 비웠어. 네가 좋아해서 사다 놓았던 훠궈 재료들로 혼자 훠궈를 해 먹었지. 네가 마시다 두고 떠난 벽담표설을 하루에 한 잔씩 마저 마셨어. 그리고 그 차가 거의 바닥날 즈음에, 나는 마음을 먹었어. 휴가를 내자고. 그것도 한 달짜리 장기 휴가를 내겠다고.

쉬어야 할 때라고, 너는 몇 번이나 말을 했지. 그 말을 늘 귓등으로 흘리기만 했던 나는, 네가 떠나고도 3주는 더 지난 뒤에야 그 결심을 할 수 있었어. 어리석게도. 네가 그렇게 떠나버릴 줄 알았더라면, 네가 살아있을 때 함께 자주 휴가도 내고, 여행도 다니는 건데 말야. 

나는 내가 마치 부지런하게 자기 할 일을 하며 사는 인간의 마지막 주자가 된 것처럼 살았어.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짝에도 쓸 데 없는 사명감이고 책임감이었지.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만들어내는 시대에, 로봇공학자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직업이었으니까. 나는 모든 것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게 된 시대에, 한 장 한 장 실로 종이를 엮어 책을 만드는 제본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아니, 인쇄된 책조차도 소장용 장식품 정도로 취급받는 이 시대에, 아직도 펜촉에 잉크를 찍어 한 글자 한 글자 필사한 성경을 만드는 필경사보다도 쓸모없었어. 손으로 쓴 아름다운 글씨나 아름답게 장정한 책은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호사가들의 값비싼 취미거리라도 될 수 있었지만, 로봇공학에서 그런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진작 그럴 걸 그랬어. 남들처럼. 남들처럼 그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두 손을 늘어뜨리고, 그저 보드라운 쾌락 속에 파묻힌 채로.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질식해 죽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어. 어차피 이렇게 될 거라면 괜히 고생했지 뭐야, 그 어려운 공부를 하겠다고 설치면서.

하지만 그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너와 만나지 못했겠지. 너와 같이 살지 못했을 테고, 너를 사랑하지 못했겠지. 그렇다면 결국, 박사 학위까지 따도록 매달렸던 내 그 쓸모없는 공부들은 전부 너를 만나기 위한 일이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나는 청두로 가야겠다고 결심을 했어. 네가 담긴 작은 캡슐을 품에 안고, 너를 네 고향, 네 어린 시절을 아는 사람들에게 돌려보내주기 위해. 

그래, 네 장례식에는 네 가족들은 오지 못했어. 워낙 모든 일이 속수무책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고향의 네 가족들을 모셔 올 시간이 없었던 거야. 베이징에서는, 장례식이란 그렇게 시간을 오래 들여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거든. 서울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너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네가 유언장에 이름을 남겨 놓은 사람으로서 너의 장례식을 주관하고 너의 임시 상주가 될 수는 있었지만, 네 가족들을 수소문해 그분들이 오실 때 까지 네 시신을 보존해 두는 것은 내 권한 밖의 일이었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교수, 선배, 후배들에게 연락하고, 네 환자들을 수소문해서 네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달라 부탁하는 게 고작이었지. 네 환자들에게 연락하는 건 네 병원의 늙은 수간호사 증(曾) 씨가 맡았어. 증 씨는 자신이 너를 딸처럼 생각했었다며, 마지막까지 나를 끌어안고 흐느껴 울었단다. 네가, 너를 사랑하던 사람들의 그 모든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겐 일이 남아 있었지. 너를 네 가족들에게 돌려 보내주는 것. 가능하면 네 고향에 네 쉴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 말야. 

네 가족들을 수소문하는 데는 의외로 시간이 걸렸어. 베이징의 공무원들은 혈연도 배우자도 아닌 내가 너에 대해 조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십 년이 넘게 함께 살았다는 건, 그들에게는 고려 대상도 아니었거든. 처음에는 기숙사의 좁은 방에서, 그 다음에는 서로의 직장이 가까운, 방 두 개와 좁은 거실이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우리는 함께 살았지. 서로의 서재를 공유하고, 일상을 공유하고, 숨결을 공유하면서. 뜻밖에도 도움을 준 건 한국 대사관이었어. 나는 한국인이고 너와 시민결합을 했으니 한 가족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공문을 넣어 주었거든. 그 덕분에 겨우 나는 네 원가족들을 찾을 수 있었어.

“그 애를 잘 보내 줘서 고맙다.”

나는 사실 두려웠어. 그동안 네가 네 가족들을 내게 소개하지 않았으니까. 혹시라도 뭔가 사연이 있어서 떠나 온 거라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오히려 그런 사연이 있었다면 넌 내게 말을 했을 거야. 내가 그랬을 것처럼. 나 역시도 베이징에서 고작 한 시간 떨어진, 서울에 있는 내 가족들을 네게 소개하지 않았잖니. 

그래서 나는 청두로 갔어. 비행기의 창문을 내린 채로 잠시 잠들었다가, 청두 상공이라는 방송을 듣고 나서야 창을 열었지. 창 밖에는 저물어가는 석양 속에서 그린 듯이 아름답게 보이는, 개완의 뚜껑을 뒤집어 엎어놓은 듯한 도시가 보였어. 그 낯익은 형상을 바라보며 나는 알 수 있었어. 이 도시가, 이곳의 공기가, 이곳의 사람들이, 매캐한 훠궈의 향기와 부드러운 차 향기가, 이곳의 모든 것이 너를 키웠다는 것을. 나는 공항에서, 마치 고향에 돌아간 듯, 네 가족들의 품에 안겨 잠시 울었어. 

그리고 그분들이, 딸과 함께 살고 있던 한국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지에 대해 걱정할 겨를도 없이, 그 일이 일어났어. 

EMP 폭탄에 대해서는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AI 의사들이 훨씬 더 일을 잘 한다고 하는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의과대학이 남아 있는 이유고, 너희 병원에서도 은퇴한 의사들에게 연락할 비상연락망을 남겨두는 바로 그 이유였지. 전자기 펄스를 사방으로 방출해서, 그 반경 안에 있는 전자기기를 무력화하는 폭탄 말이야. 그게 청두 상공에서 터진 거지. 그 증거로 공항에서 일하던 로봇 직원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청두 시내의 불빛들이 꺼지기 시작했어. 

자가발전기를 돌리고 있는 몇몇 곳에는 여전히 불빛이 들어왔지만, 오래 버티진 못할 거야. 공항에서도 발전 상태가 불안정한 게 눈에 보였거든. 그런데다 나는, 청두 상공에서 내려다 본 이곳의 모습을 떠올렸어. 개완 뚜껑을 뒤집어 놓은 듯 보였다는 건, 이곳이 분지라는 거야. 이런 곳에서 대규모 EMP 테러라니. 아무것도 없는 평지보다 더 피해가 클 거라는 건 분명해 보였어. 

나는 겁이 났어. 복구될 수 있을까. 이렇게 사람들이 AI 문명에 의존해서 살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사람의 손으로 뭘 어떻게 복구할 수 있을까. 만약 베이징에서, 혹은 서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도망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 같았지. 어깨가 마구 떨렸어. 최악의 경우 여기 말고도, 중국 내의 어지간한 도시에 전부 이런 게 떨어졌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까. 두려웠어. 내가 늘 말하던 완만한 종말이 눈 앞에 떨어진 것 같았지. 하지만 그때, 네 생각이 났어.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죽었지, 너는. 

어지간해서는 그런 오작동이 일어날 리 없었는데, 그 산업용 로봇이 갑자기 잘못 움직이면서 쏟아진 짐이 너를 덮쳤지. 그걸 생각하니, 숨이 막힐 것 같았어. 그건 너 한 사람에게만 닥친 일이 아니었으니까. 누군가 이 도시를 위해 나서지 않는다면, 그건 이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닥칠 수도 있는 미래였어.

그리고 너라면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진 않았겠지. 그게 청두건 베이징이건 서울이건 상관없이,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했을 거야. 나는 두려워하는 네 어머니의 손을 한 번 잡았다 놓았어. 그리고 일어나, 혼란스러워 하는 경찰을 붙잡았어. 

“저, 저는 로봇 공학자예요. 도시를 복구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EMP 폭탄에 대해서는 너도 말만 들어 봤을 거야. 그런 게 도심 상공에서 터지면 대규모 정전이 일어나고 전자기파가 도시의 모든 전자제품들을 못 쓰게 될 거라고. 통신이 마비되는 것은 물론, 인터넷도 쓸 수 없을 거라고. 교통수단들도 이용할 수 없게 되고, 무엇보다도 병원에서 중환자들의 생명을 지탱하는 장비들을 쓸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만약 그런 게 폭발하여 AI 의사들과 로봇 구급대원들을 쓸 수 없게 되면, 정말 기본적인 진료도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있었지. 어떤 면에서 인간 의사들은 바로 그런 것을 대비해서 월급을 받고 있는 게 아닐까, 너는 그런 농담을 한 적이 있었어. 

너의 고향은, 내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그런 재난에 빠지고 말았어. 

물론 EMP 폭탄이 터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고장나고, 온 도시가 암흑 속에 가라앉고, 사람들이 식량을 노리고 서로 죽고 죽이며 다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야. 그런 건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지. 기계마다 EMP에 대한 저항력이 다르기도 하고, 또 주요 시설에는 어느정도 차폐를 해 놓기도 하니까. 또 지하에 있는 전자제품들은 대체로 괜찮았지. 그건 정말 다행이었어. 고장나지 않은 부품도, 예비 기종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자가발전기도, 처음에는 잘 돌아가지 않았지만 그건 기계 문제는 아니었어. 늘 자동으로 돌아가던 일을 갑자기 사람이 하려다 보니 잘 되지 않은 것 뿐이지. 그래도 젊었을 때 몇 번 자가발전기를 시동해 본 직원이 남아 있는 곳들은 곧, 발전기를 돌리며 가장 급한 구역들에 불을 켜 나갈 수 있었어. 

공항도 마찬가지야. 의외로 공항 같은 곳에 있는 관제 장비들은 EMP 차폐가 되어 있어서, 당장 청두 상공에 떠 있는 비행기들을 유도하여 착륙시킬 수는 있었다고 해. 여기서 문제는 말야, 지금은 밤이었고, 솽류 국제공항에서는 야간에는 로봇 직원들이 관제사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다는 거였지. 문제는 지금, 이 도시를 실질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로봇들이 멈춰 버렸다는 거야. 숙직실에 잠들어 있던 견습 관제사가 눈곱도 못 떼고 달려 올려와 관제를 해야 했어. 그 사이, 나는 경찰들과 함께, 쓰러진 로봇들을 끌어 모아놓고 살펴보았어. 

일부는 EMP 공격으로 아예 회로에 쇼트가 나 버렸지. 2/3 정도는 전원은 들어오지만, 계속 에러 메시지를 출력하며 무한 재부팅을 시도하고 있었어. 나는 무한 재부팅을 하는 AI 직원들을 안전하게 껐다가 다시 켜 보았어. 절반 정도는 콜드부팅 과정에서 오류를 수정하고 무사히 켜졌지만, 나머지 절반은 AI 운영제체 로더 쪽에 손을 좀 봐야 했어. 어쨌든 제대로 껐다 켜는 것만으로 전체의 1/3 정도는 운용할 수 있게 된 거야. 그게 어디야. 

“괜찮으십니까.”

경찰은 나를 돕다 말고,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그게... 저는 그 폭발이 일어나고서 계속 머리가 멍해서 생각이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머릿속에 넣은 칩이 고장난 거예요.”

나는 부지런히 손을 놀려 로봇들을 껐다 켜며 대답했어. 알다시피 이런 복잡한 애들은 그냥 껐다 켜면 안 되고, 몇 가지의 안전 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누군가에게 이 과정을 설명하라고 한다면 난 못 할 것 같았어. 내 머릿속의 칩도 신호가 안 들어가고 있었거든. 나는 그야말로 진짜 내 머리에 의지해서 이 일들을 계속해 나갔어. 그 칩, 별 쓸모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꺼지니까 정말 아쉽더라. 처음 보는 로봇 직원들의 부팅 오류를 잡아내며, 나는 내 머릿속 고장난 칩 속에 내가 알고 있는 로봇 공학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것만 같아 괴로웠어. 물론 칩은 교체하면 그만이고, 거기 담긴 내용들은 다시 동기화를 시키면 되지. 그 데이터들이 서버에 무사히 남아 있을 때의 일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안 남아 있을까봐 겁이 났어.

“청두만 그런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도시들은 무사하다면, 아침 쯤에는 연락이든 지원이든 뭐든 닿겠지요.”

나는 경찰을 따라나섰어. 일단 공항의 급한 불을 껐으니 시청으로 가야 했지. 가는 길에 나는, 경찰에게 네 가족들을 집까지 무사히 보내달라고 부탁했어. 네 어머니가, 꾹꾹 눌러 쓴 손글씨로 너희 집 주소를 적어서 내 주머니에 넣어주셨어. 나는 그 쪽지를 소중하게 간직한 채로 시청에 갔지. 도로에서는 경찰들이 차량을 통제하여 안전한 곳으로 돌려보내고 있었어. 세상은 어둑어둑했지. 병원과 공항과 몇몇 중요한 곳들을 제외하면 불이 꺼져 있었어. 오직 홀로 밝은 것은, 하늘 뿐이었어. 땅이 어두워지자 비로소 밝아지는 은하수와, 보름에 가까워 오는 둥글둥글한 상현달, 그리고 그 달의 궤적을 따라 달리듯이 먼 하늘에 반짝이는 빛의 선. 그건 궤도 엘리베이터였어. 문득 내가,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걸 깨달았어. 원망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더는 엄마가 그리워서 훌쩍거리는 어린아이인 것도 아니면서도. 마치 오랜 습관처럼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땅만을 바라보고 있었지.

“달이라도 밝아서 다행이지요.”

경찰은 차량에 시동을 걸어보다가, 디젤 엔진으로 작동하는 삼륜차를 어디서 끄집어내 나를 태웠어. 나는 헬멧을 쓴 채, 시청으로 가는 내내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마치 달을 처음 본 아이처럼. 아니, 궤도 엘리베이터를 처음 본 사람처럼, 그렇게 계속 눈으로 하늘을 훑었지.

40분쯤 달려가 도착한 시청에는 늙수그레한 아저씨 몇 분과 활달한 인상의 아주머니 세 분이 계셨어. 전파사라고 하지, 고장난 가전제품들을 고치시는 분들. 이분들은 AI들이 자체수복 시스템을 갖추기 전에 바로 그 일을 하시던 분들이었어. 나는 그 자리의 유일한 외국인이었고, 유일한 공학박사였어. 하지만 머릿속의 칩은 망가지고, 가방끈만 길었지 실제로 로봇을 설계한 일도 없고, 수리를 직접 해 본 적도 거의 없어. 고장난 로봇들을 해부해 보거나, 혹은 반제품을 가져다가 AI의 설정을 바꾸며 실험을 해 본 일은 많았지만 말야. 나는 머뭇거렸어. 괜히 나선 것은 아닐까? 내가 도움이 될 수는 있을까? 이런 상황이라면 이 전파사 사장님들이 훨씬 더 활약하시는 게 아닐까?

그때 두꺼운 안경을 쓰신 아주머니가 내게 손을 내미셨어.

“잘 왔어요, 멀리서 왔다고?”

“예, 한국에서 왔어요.”

“저런, 난 멀리서라길래 베이징에서 온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 온 박사님하고 일하는 건 처음이네.”

아주머니가 미소를 지으셨어. 그 순간,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네가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어.

“제가 산업용 로봇에 대해 연구하겠다고 했더니, 제 친구가 그런 말을 했어요.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이 역사상 최초의 산업용 로봇을 만들었는데, 청두에 가면 그 제갈량의 사당이 있다고요.”

“정말 잘 왔다. 그런데 오자마자 이렇게 일을 하게 되어서 어쩌누?”

그 다정하고 느릿한 목소리에, 나는 너를 계속 겹쳐보았어. 마치 오래 그리워하던 고향에 온 것 같았지. 내가 태어나서 자란 서울에서도, 내가 어른이 되어서 생활했던 베이징에서도 찾지 못했던, 오직 너와 함께 있을 때 느꼈던 편안함이 이 도시의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는 것 같았어. 오래된 도자기 같은, 손때묻은 개완에 담겨 맑은 다향을 흘리는 찻물같은, 그런 느긋한 부드러움이랄까, 유유자적이랄까. 

아니, 우아함이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지금은 비상사태고, 묵직한 공구함을 발치에 내려놓은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우아한 다정함이 있었어. 그래서 나는 다시 마음을 먹었지. 너를 닮은 이곳을, 결코 아포칼립스 이야기의 배경으로는 만들지 않겠다고 말야. 
그때 이곳의 공무원들이 나타났어. 그들은 다행히도 지하의 시스템들이 무사하다는 것과, 전기나 유선통신망 대부분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알렸어. 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었지. 한 가지는 유선통신망 기반의 무선통신망은 무사했지만, 바로 완전 무선기반의 통신망은 아주 먹통이 되어 버렸다는 것. 각종 개인 단말기는 전부 이쪽으로 연결되어 있다보니, 불편함이 클 거라고 했어.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로봇들 대부분이 공항에서와 같은 문제를 일으키며 꺼져버렸다는 것. 

“간단히 말해서, 로봇들을 전부 재부팅시키면 되는 문제예요.”

내가 말했어. 

“그러면 그 애들이 망가진 무선망을 수리할 테니까요. 병원 쪽은 괜찮나요?”

“그렇지 않아도 AI 의사들이 작동불능이 되어서, 은퇴한 의사들까지 전부 불러들이는 중입니다. 가벼운 환자들이라면 몰라도 응급환자들이나 중환자들이 있으니까요.”

말하자면 이건, 사회의 기간망 상당수가 망가진 상태인 거야. 그리고 이런 기간망은 서로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보니, 일부가 고장나는 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생기기도 해. 당장 사람 목숨이 달린 것은 병원에 있는 장비들 쪽이었지만, 아마 내일 아침이 되면 당장 사람들이 가게에서 물건을 사질 못할 거야. 개인 단말기에 연결된 통신망을 쓸 수 없으니, 당연히 은행도 신용카드도 가상화폐도 쓸 수 없는 걸. 

“...그나마 발전소가 무사해서 다행이야.”

아저씨 한 분이 말씀하셨어.

“그거 알아? 대규모로 정전이 일어나면 수돗물도 안 나온다는 거.”

“수도는 왜요?”

“이런, 박사님이라도 그건 모르는구만. 수돗물을 끌어오는 펌프도 전기로 움직이니까, 정전이 크게 일어나면 수도도 못 쓰는 경우도 생기지.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야...”

젊어서 사막 한가운데에 대규모 거주지를 만드는 일을 하셨다는 아저씨는, 그때의 무용담이며, 변전소에 문제가 생겨서 거주지 전체가 이틀동안 정전이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말씀하셨어. 그 이야기를 군말없이 들었다니 놀랍지 않니. 평소같으면 나이 든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나 때는 말이야”하고 시작하는 모든 말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한물 간 잔소리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래도 그날은 어쩐지, 조용히 그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었어. 끝도 없이 밀려들어오는 로봇들을 재부팅하거나 조정하며, 내가 이론으로만 알고 있던 것들, 알고 있지만 손에 익지 않은 것들을, 내 머릿속의 칩이 꺼진 채로 하나하나 되짚어나가는 그 순간에는, 세상 누구라도 나의 스승이 될 것 같았거든. 지금 내 눈 앞의 전파사 아저씨부터, 온갖 놀라운 일들을 하다 하다 못해 인류 최초의 산업용 로봇까지 만들었다는 저 2천년 전의 제갈무후까지 말야.


이틀동안 꼬박 로봇들을 손을 본 끝에, 로봇들은 무선 통신망을 복구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무선 통신망이 돌아오며, 로봇들은 패치 파일들을 다운로드하고 자체 수복을 시작했지. 망가진 동료들을 수리하고 일으켜 세우고, 자신들의 에러를 점검하고 복구하고. 그리고 그렇게 자신들의 손으로 도시를 점검해 나가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 이틀동안, 청두는 놀랍게도 고요했어. 물건을 사고 팔 수 없는 것도 큰일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언제야 복구가 끝나고 이 상황이 해결될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이 먹을 것만은 서로 나누었다고 해. 개인 단말기들 중에서도 고장난 것이 많았기 때문에, 방송 로봇들은 수리를 마치자마자 아침부터 청두 곳곳으로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찍고 또 방송했지. 그렇게 찍혀 온 모습 속에서, 너희 어머니가 보였어. 네 어머니는 이웃 아이들을 불러 이것저것 먹이다 말고 말씀하셨지.

“우리 마을의 아이들은 마을사람 모두의 아이니까요.”

그 말씀에 나는 마음이 따뜻해졌어. 

네 어머니 뿐 아니라, 이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랬지. 첫날의 혼란이 지나고 나자, 그날 오후부터 도울 일이 없냐며 시청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어. 그분들이 수레에, 혹은 수동운전이 가능한 차량에 로봇들을 실어서 시청으로 데려오면, 우리는 밤새 그 로봇들을 껐다 켜고 수리했지. 그렇게 무사히 내보낸 로봇들이 도시를 점검하고, 사람들의 단말기를 수리하기 시작했어. 사흘째 되던 날 늦은 오후, 아저씨들은 구석에서 잠이 드셨고, 아주머니들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셨지. 

너, 전파사의 류 사장님을 기억하니? 놀랍게도 이곳 시청에서 처음 나를 반겨주시던, 안경 쓴 아주머니가 그 분이셨어. 네가 살던 마을의 전파사 사장님 말야. TV에 비친 너희 어머니를 보시고 알은체를 하시던 류 사장님은 너에 대해서도 잘 기억하고 계셨단다. 네가 어릴 때 얼마나 호기심 많은 아이였는지, 얼마나 공부를 잘 했고, 청두의 자랑이 될 거라고 다들 생각했는지를. 네가 그리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그 마을 사람 모두가 슬퍼했다는 이야기도 하셨어. 

“이런 것을 인연이라고 하는 모양이구나.”

아주머니, 아니 류 사장님은 느릿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 

“청두의 자랑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그 아이가, 너를 이 곳으로 보내 주었으니까. 네가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모든 게 복구되진 않았을 거야.”

“아니에요, 저는...”

“겸손할 것 없다. 우리같은 전파사 주인들이야 텔레비전이나 고치고, 오래된 집의 전기 배선이나 보았지. 이런 신식 로봇을 만지는 일은 우리도 거의 없어요. 젊은 네가 침착하게 대처하는데, 저 아이는 여기 사람도 아니고, 그런데다 외국인에 박사님이라는데, 우리라고 한가하게 있을 수 있겠니?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밖에.”

류 사장님이 내 어깨를 쓰다듬으셨어. 

“그러면 넌 이제부터 뭘 할 거냐?”

“예?”

“한국이나 베이징으로 바로 돌아갈 것은 아니지? 옛날에 이태백이 그런 말을 했단다. 파촉으로 가는 길이 하늘에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蜀道難, 難于上靑天). 그렇게 이곳 청두가 멀고 오기 힘든 곳이라는 이야기였지. 그런데다 너는, 이 땅에 인연이 있잖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내겐 해야 할 일이 많았지. 품고 온 너를 네 가족들에게 돌려보내 주고, 네가 네 고향에서 무사히 영면에 드는 것을 보고 돌아가야지. 그리고...

그리고 나면 나는 뭘 해야 할까?

문득 나는 울고 싶었어. 진달래 꽃비도 내리지 않는 서역의 봄날, 나는 너를 여기에 남겨두고 홀로 돌아서며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고등학교 때 배웠던 시에서는 피안의 세계만큼 멀었던 이곳에 너를 두고서, 나는 어떻게 발걸음을 뗄 수 있을까. 나는 어느새 울고 있었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다 류 사장님의 품에 안겨 대성통곡을 하고, 그러다가 어린애같이 흐느꼈어. 류 사장님은 나를 끌어안고 나직하게 속삭였어. 그건 중국어가 아니었어. 하지만 중국어와 비슷하게 들렸지. 문득 그 목소리에서 나는, 옛 기억을 하나 떠올렸어.

네가 적어 주었던 그 시 말이야. 끝끝내 무슨 내용인지 알려주지 않았던.

“그 애가요...”

나는 눈을 깜빡였어. 그러다가 말했어.

“그 애가... 무슨 시를 적어 줬었어요.”

“어떤 시인데?”

“몰라요. 중국어도 아니고, 한국에서 배웠던 번체자 한자도 아니었어요. 약간 갑골문자같이 생긴 것이었는데.”

“아아.”

류 사장님은 손가락을 움직여, 몇 글자를 적어 보였다.

“혹시 이런 거였니?”

“예, 좀 그 비슷한...”

“그건 여자들의 글자란다.”

“여자들의 글자요?”

“그래, 원래는 후난 성의 여자들이 아주 오래 전에 만든 글자였지. 후난과 쓰촨의 여자들은 친구들끼리 여자들의 글자로 쓴 편지를 주고받거나, 의자매를 맺어 평생 가까이 지냈단다. 그 아이가 네게 이 여자들의 글자로 쓴 편지를 주었다면, 그건 아마도 너와 평생 마음을 가까이 하고 싶다는 뜻이었을 거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어. 그때 류 사장님이 내게 말씀하셨지. 

“너, 지금 머릿속에 있는 칩이 망가진 게 맞지?”

“예, 그런 것 같아요.”

“그러면 달이 떴을 때, 강에 한 번 가 보거라.”

“강이요?”

“왜, 네 나라에서 이름난 시인이 파촉을 머나먼 저승길처럼 묘사했겠니.”

“그건... 멀어서요...?”

“이런, 로봇 박사님이라더니 이런 건 또 서투르구나.”

류 사장님이 나를 보고 웃으셨어. 

“옛날 옛적에, 이곳에는 촉이라는 나라가 있었단다. 아니, 삼국지에 나오는 그 촉 말고. 그보다도 한참 더 전에. 그 옛 촉나라에.”

언젠가 네가 내게 들려주었던 이야기였어. 나라를 빼앗긴 왕, 망제(望帝)가 귀촉도, 귀촉도 하고 울다가 두견새가 되었다는 이야기. 

“옛날에는 농사 짓는 게 큰 일이었잖니. 그 망제는 늘, 강물이 범람하는 게 걱정이었지. 그래서 강가를 거닐었는데, 물에 빠져 죽은 시신 한 구가 떠내려왔단다. 시신을 건져 묻어주려고 했는데, 그 시신이 깨어나고 말았어. 그 사람이 바로 별령(鼈靈)이었단다.”

별령이라면 별주부의 혼이라는 뜻인가. 별주부는 자라니까 당연히 물에 안 빠져 죽는 건가. 나는 머릿속에 복잡했어. 하지만 류 사장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자, 나는 더 이상 그 이야기를 복잡하게 뜯어보는 것을 그만두었지. 그냥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로 했어. 

“얘야,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단다. 나라를 잃고 떠난 망제는 죽어 소쩍새가 되었고, 그가 토한 피는 진달래꽃이 되었지. 그리고 먼 옛날 이 땅에는, 죽었다가도 다시 살아나는 이들이 있었단다.”

마치 눈을 빛내며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어린아이처럼.

“별령만한 신통력은 없다고 해도, 이곳 사람들의 혼은 죽어 첫 번째 보름달이 떴을 때 그리운 이들을 찾아 이곳의 강가로 돌아온다고 하지. 오늘이 마침 보름이니, 어쩌면 이곳의 강가에서 그 애를 만날 수도 있을 거다. 네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다면.”

그저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달은 하늘 높이 떠올랐어. 나는 류 사장님과 함께 금강을 따라 걸었지. 청두의 야경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고 들었지만, 며칠전 EMP 폭탄 때문에 여기저기 변압기에 이상이 생겨서인지, 화려한 야경 대신 길가에서, 어제 우리가 손을 봤던 정비 로봇들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도시 여기저기를 수리하는 모습만이 수도 없이 보였어. 

초저녁이었지만 버스는 끊어져 있었어. 지금같은 때는 조심하는 게 좋기도 하고, 교통신호 제어 시스템이 고장난 구역도 있다 보니 시에서 자동차 운행을 자제시킨 모양이야. 그것도 며칠 안으로는 회복되겠지만 말야. 우리는 가는 길에 류 사장님의 전파사에 들렀어. 사장님이 뭔가 꺼내 오시는 동안 나는 잠시 고민했어. 너희 집에 먼저 인사를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하지만 오늘은 보름날 밤이고, 어쩌면 너를 만날 마지막 날일 테니 서둘러야 했지. 나는 류 사장님을 따라 합강정으로 갔어. 

주변에 꼭 필요한 만큼만 불을 밝힌 고즈넉한 강변에서, 나는 먼 옛날 배를 대었다가 출발하던 나루터였다는 이곳에서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강은 깊고, 생각보다 물이 거칠게 흐르는 것 같았지. 그 아래에서 언뜻언뜻, 희끄무레한 인영 같은 것이 비치는 듯 했어. 그것이 달무리였는지, 너였는지, 내 눈에 어린 눈물이었는지는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정말 먼 길 떠나가는 너를 위해서 내 머리카락이라도 잘라 신을 삼아주고 싶었어. 거친 물살에도 씻겨 내려가지 않는 정이, 그 애끊는 마음이, 서러운 이별을 하듯 다리 아래에서 웅웅, 흐느끼듯이 소리를 내는데, 나는 합강정의 난간을 붙든 채 흘러가는 강물을 향해 손을 뻗었어. 그러자 흘러가는 강물 아래, 희끄무레한 모습이 조금씩 그리운 모습이 되어 가는 것만 같았지. 그건 너였을지도 모르고, 그날 궤도 엘리베이터를 점검한다고 집을 나서다가 나를 돌아보며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보이던 우리 엄마의 마지막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어. 눈물이 뚝뚝 떨어져 강물에 섞여 들어갔어. 나는 울다가 울다가, 이곳에서 소쩍새가 되고 싶었어. 그리운 너를 보고 싶어 돌아온 이곳에서, 불귀, 불귀, 불여귀(不如歸), 그렇게 서럽고 애달프게 울다가 죽고 싶었어. 그런 나를, 류 사장님이 붙잡으셨어.

“그러지 말아라, 너는 살아야지.”

그저 조용히 흐르는 듯 한 도시의 한가운데, 의외로 격렬한 흐름으로 흘러가는 강물 속에 나는 너를 떠나보내고, 우리 엄마를 마침내 떠나보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내가 알던 이들을, 먼저 간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나보냈어. 마치 이곳이 정말로 그 파촉 삼만리, 차안과 피안을 가르는 그 머나먼 땅인 것처럼. 그렇게 목이 쉬도록 울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하늘 위에는 커다란 보름달과, 그 아래로 강철로 만든 긴 무지개같은 궤도 엘리베이터의 모습이 보였어. 류 사장님은 가져온 것을 주섬주섬 풀어 놓으셨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지금 하려무나.”

나는 더듬거리며 대답했어. 나는 괜찮다고. 나는 살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류 사장님은, 노란 풍등에 먹물로, 미려한 여자들의 글자를 적어 내려갔어. 엄마에게로, 그리고 너에게로, 편지를 띄워보내듯 풍등에 불을 붙이자, 등은 네 영혼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듯이 둥실 떠올라 깜빡이며 멀어져갔어. 달을 향해서, 저 궤도 엘리베이터를 넘어서, 불귀, 불귀, 불여귀, 돌아오지 못할 눈물처럼 아득하게도. 

여기저기에서 둥실, 두둥실, 풍등들이 떠오르는 모습을 나는 바라보았어. 그 중에는 너를 잃고, 이 환한 보름달 아래 마지막으로 너와 작별하는 네 부모님도 계셨을 거야. 하늘 대신 바라보던 너를 잃은 나는, 너와 알고 열 다섯 해 동안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 발 한가운데에서 서서히 보이지 않는 마음의 뿌리가 땅으로 뻗어내려, 너의 땅에 자리를 잡으려 하는 것을 깨달았어. 너는 다시 오지 못하는, 그러나 나는 마침내 도달한 저 파촉 삼만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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