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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판단

2019.11.30 08:5811.30

판단

곽재식

옮겨서 입사한 새 직장에 출근한 둘째 날이었다. 김 대리는 이 과장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과장이 이렇게 말했다.

“김 대리, 잠깐만. 잠깐만 여기로 와 봐. 잠깐 나하고 이야기 좀 하자.

음, 그래, 김 대리. 혹시 무슨 일 있어? 집에 무슨 일 있냐고. 아무 일 없어?

그런데 아까 방금 그 태도가 뭐야? 몰라? 아무 감이 안 와? 한번 생각해봐. 김 대리도 그래도 대리라고 할 정도면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판단이 있을 거 아니야. 내가 지금 김 대리가 잘 했냐, 잘못했냐를 따지려는 게 아니고 그냥 한번 스스로 생각을 해 보라고 물어 보는 거야. 김 대리하고 나 하고 생각이 다를 수도 있는 거니까. 서로 생각이 다른 거는 그냥 다른 거지, 어느 한쪽이 틀린 거는 아니잖아. 한국 사람들이 다른 것하고 틀린 것을 구분하지 않고 막 섞어 쓰는데, 그거 잘못된 거 거든.

그래서 물어 보는거야. 한번 다시 곰곰히 생각해 봐. 김 대리 정말 아무 느낌 없어?

아까, 김 대리가 내 앞에 지나가면서 고개 까딱하면서 인사했지? 아니, 내가 인사할 때 고개만 까딱했다고 뭐라고 하려는 거는 아니야. 항상 사람 만날 때마다 소리치면서 '안녕하십니까' 막 소리치라고 하는 것도 진짜 웃긴 거고. 회사에서 그냥 오다가다 마주치면 고개만 까딱할 수도 있지. 이해 해. 그거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그런데 아까 김 대리 그 태도는 뭔데? 야, 보통 인사라고 하는 거는 어떤, 그 사람한테 우호적인 감정을 조금이라도 표출하려는 거 아니야? 적어도 그게 상식 아니야? 그러면 인사를 하면서 상대방한테 웃음을 살짝 지어 준다든가, 아니면 눈을 맞추면서 친근한 느낌을 보여 준다든가, 그런 게 당연한 거 아니야? 그게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교육을 받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다들 서로 공유하는 거 아냐?

그런데 아까 김 대리가 고개 까딱할 때, 눈동자가 옆으로 움직이더라고. 그냥 눈동자가 조금 떨린 정도가 아니잖아. 옆으로 확 움직였다고.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야? 나도 김 대리가 무슨 나쁜 마음을 먹었을 거라고는 생각을 안 해. 그렇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더라고. 왜 고개 까딱 하면서 눈동자를 그렇게 움직여? 어떻게 그렇게 하면서 아무 생각도 안 들 수가 있냐고.

아니, 왜, 초등학교 다닐 때 배우는 역지사지란 말 있잖아. 인간 관계의 기본이잖아. 사회생활의 제일 기초, 기초 중의 기초잖아. 역지사지를 한번 해 보라고. 김 대리가 내 입장이 되어 보라고. 내가 너무 유치한 이야기라서 이런 이야기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그냥 탁 까놓고 이야기해서 내가 김 대리 보다도 나이도 세 살이 많고, 경력도 사 년이 길고, 회사에서는 그래도 회삿밥 몇 그릇 더 먹은 과장이라는 직함도 달고 있잖아. 그래서 내가 무슨 상급자라고 갑질을 하려거나 그러는 게 아니고, 그냥 내 기분을 입장 바꿔서 순수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아침에 일찍 나와서 자리에 앉아 있는데 꼴랑 어제 새로 입사한 대리 하나가 지나가다가 내 자리 앞에서 눈이 마주쳐서 뭐 인사를 하는지 마는지 한답시고 고개를 까딱하네, 그래도 참고 참으면서 인사를 받아 주려고 그냥 넘어 가려는데, 눈동자가 옆으로 움직이는 걸 본다고 생각해 봐. 김 대리, 김 대리 같으면 화 안 나겠어? 아무 느낌 없겠어? 솔직히 꼭지가 확 돌아서 벌컥 치밀어 오를 만하잖아.

아니, 내가 김 대리를 크게 비난하려고 지금 붙잡고 화풀이하려는 게 아니야. 정말 그런 생각 안 들었냐고 물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김 대리가 내 입장이면 기분 안 나쁘겠냐고. 아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도 완전히 무시 당한 느낌이 들잖아. 하루 일 시작하는 아침에 기분 확 잡치면서 직장 생활에 회의감 안 생기겠냐고. 아니, 죄송하다는 이야기를 듣자는 게 아니고, 어떤 식으로 생각했길래 그런 행동을 했는 지 궁금해서 그래.

요즘 세대들은 워낙 다르다고 하니까. 사회가 전부 다 민주화 되고, 다들 집안에서 귀한 자식 대접 받으면서 자라 나니까, 다들 자기 생각만 최우선으로 하고 살아서 남을 생각하는 능력, 역지사지가 퇴화가 된 건 지. 요즘 교육과정은 애들 힘들게 안 한다고 학교에서도 그냥 쉽게 쉽게만 가르치잖아. 그렇다 보니까, 애들이 사고 능력이 떨어진 것도 떨어진 거지만,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 자체가 없어졌잖아.

그건 사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공감할 거야. 그래서 요즘 세대는 회사 생활 하다 보면 자기 일, 딱 시킨 일, 그것만 할 줄 알 지, 남에 대한 배려라든가, 다른 사람의 심정을 이해한다든가, 그런 것까지 할 수 있느 능력이 없어졌다고.

물론 세상이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세대가 다르니까 그렇게 자유롭게 살 수도 있다는 거는 이해를 해. 거기까지는 이해를 한 다고. 그런데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거는 뭐냐면, 진짜 정말 이해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게 뭐냐면, 그래도 기본 예의라는 게 있잖아. 김 대리가 나한테 일부러 싫다는 표현을 하려고 그런 거야? 혹시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사람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잖아.

물론 그런 어떤 악독한 의도가 있어서 그런 짓을 한 거는 아닐 가능성이 높겠지. 실수라고 할 거야.

그런데 김 대리, 내가 직장생활하면서 충고 하나 해 줄까? 실수도 실력이야. 응?

실수도 실력이라고. 무슨 말뜻인지 이해해? 내가 입사한 지 얼마 안 지나서 그 말을 듣고 나는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어. 그런데, 김 대리. 김 대리가 그런 실수를 했다는 자체가 평소에 그런 실수를 안 하도록 충분히 훈련이 안 되었다는 뜻이고, 그 만큼 실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그런 식으로 사회 생활을 하면 서로 힘들다는 걸 알아야 해. 아침부터 이게 뭐냐고. 김 대리는 김 대리 대로 기분 나쁠 거고, 나는 나대로 오늘 하루를 완전히 다 망쳐 버렸잖아. 이런 기분으로 나는 무슨 업무를 하고 어떻게 회사 일을 제대로 된 컨디션으로 조금이라도 손을 댈 수가 있겠어.

조금만, 약간만 신경 써 주면 되는 건대.

물론 쉽지는 않겠지. 김 대리는 요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으니까, 부당한 일을 자기가 겪었을 때 항의하는 법, 권위에 반항하는 법, 그런 것만 보고 접하고 살았을 거라고. 요즘 세대의 전체적인 문제도 그거지. 무조건 다 높은 사람이면 부정부패에 엮여 있는 썩은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하고, 자기 보다 높은 사람들은 다 꼴통일 거라고만 생각하고. 그런 반항심만 있지 권위를 존경하고 자기보다 더 경험이 있는 사람의 가치를 존중할 줄은 모르잖아.

내가 말하는 게 김 대리가 아침에 날 야려서 내가 기분나빴다, 그런 이야기야? 그런 말 하는 거라고 생각해? 아니잖아. 높은 사람한테 무조건 굽실굽실하고 복종하라는 이야기야? 아니잖아. 막 불합리해도 무조건 시키는대로 해라 그런 이야기야? 그게 아니잖아.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상대방 기분을 존중하면서 행동을 하는 태도를 취해 보라는 그런 아주 작은 이야기잖아.

워낙 요즘 사회에서는 평등해야 된다, 동등한 대우를 해야 된다, 이런 점만 강조하다 보니까, 그냥 해야할 최소한의 일도 안 하려고 하고 자기가 받을 것은 다 받아 가려고, 자기가 뭔가 조금 더 하면 엄청 부당한 대접 당한 줄 알고 항의하라고 부추기는 그런 분위기가 돌긴 하는데, 아무리 그게 요즘 세상 돌아 가는 거라지만, 아닌 건 아니잖아.

아침부터 나한테 이런 말 들으니까 짜증나고 듣기 싫을 거라는 생각은 들어서 내가 길게는 말 안하는데, 그냥 사회 생활, 아니 그냥 사람으로 사는 삶에서 가장 기초를 이야기하는 거니까, 한번 생각해 보라고.

지금은 김 대리가 아무래도 이해 안 가겠지. '저 자식 오늘 기분 나빠서 괜히 아무한테나 시비거나' 싶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정말 한번 생각해 보라고. 김 대리. 김 대리는 회사에 와서 일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회사에 일 하러 온 거지만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미안하지만, 일 잘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얼마나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느냐야.

일 하는 거는 자꾸 바뀐다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면 우리가 하는 일 중에 뭐가 얼마나 인공지능으로 바뀔 지 누가 알아? 내가 겪어 봐도 그래.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일도 바뀌고 갑자기 뭐가 터져서 전혀 예상 못했던 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그렇게 갑작스러운 일이 닥치면 내가 일을 한 번 잘 할 수도 있고, 일을 한 번 못할 수도 있어. 그런데 회사에 왔으니 일 잘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건 어불성설이지. 아, 저 사람은 일을 좀 잘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겠지만 저 사람한테 일을 믿고 맡기면 결국 편하게 해결 되겠다, 바로 그 느낌, 편안한 느낌, 신뢰감을 회사의 여러 사람들에게 주는 게 제일 중요 하다고.

그런데, 오늘 아침 김 대리의 그런 태도는 나한테 전혀 신뢰를 줄 수 있는 태도가 아니었어. 김 대리 세대는 워낙 신자유주의 문화 속에서 자라났으니까, 그냥 모든 게 다 경쟁이고, 내가 남 보다 더 세냐 약하냐 싸우고 이기고, 그런 문화에 워낙에 익숙할텐데, 사실 그게 아니잖아.

김 대리도 사회 생활 좀 해봤으니까 알 거 아냐? 결국 다른 사람들 하고 같이 어울려서 일을 해야 회사가 돌아 가고 그게 사회 생활인데, 상대방을 조금만 배려 해 준다는 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나 혼자 그냥 돈 많이 벌고 출세하면 그만이라는 그 생각 보다 한 걸음만 나가 보자고. 조금만 더 생각해서, 다른 사람하고 같이,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먼저 조금 생각해 보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나는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아무리 회사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고 돈 버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 있는 곳이잖아. 그냥 돈 벌면 장땡이고, 돈 버는데 득 안 되는 거는 다 쓸데 없는 짓이고, 그렇게 생각해야 해? 요즘 한국 사회 수준이 그렇고, 젊은 세대로 가면 갈 수록 계속 그렇게 모든 것을 돈과 경쟁을 기준으로만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해서, 우리까지 그렇게까지 낮은 수준으로 살 필요는 없잖아.

상무님하고 전무님이 우스갯소리로 '요즘은 직장에서 갑질하면 안 된다고 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꼭 해야 할 말은 메시지로 보낸다'고 하는 거 김 대리도 들었지? 그게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길 이야기라고 생각 해? 그게 그냥 웃긴 이야기가 아니야. 김 대리는 웃겼어?

나는 그 이야기가 정말 가슴 아픈 이야기로 들렸다고. 그만큼 회사 안에서 한 사람이 상대의 마음을 배려해 주지 못하고, 생각해 주지 못하는 세태가 지금 한국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 하나 뿐은 아니지 않을까?

그러니까 갑질하지마라, 상대방에게 작은 일이라도 예의를 갖춰서 대해라, 그런 말이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모르겠어. 내가 너무 혼자만 이상적인 생각을 하는 걸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김 대리. 아무리 세상이 더러운 곳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게 나 혼자 어떻게 한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도 그냥 내가 이 말은 해 주고 싶었어. 자기 짜증나는 거, 자기 개인적으로 피곤한 거, 그냥 남한테 다 뿜어 내지 말고, 남을 대할 때는 한번만 생각을 하고 대하자고.

김 대리는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인데 내가 너무 짜증나게 설교한다고 생각할 수는 있을거야.

김 대리. 그런데, 미안하지만, 사람 대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면 안 되거든? 응?

무슨 말인지 알아? 사람 대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면 안 돼. 상대방도 나하고 똑같은 인격이 있고 마음이 있는 대상인데 항상 어떻게 느낄 지 생각을 하고 대해야 한다는 그런 뜻이야.

그래, 김 대리, 이게 무슨 크게 일을 키워서 막 사람을 면박주고 그래야 될 일은 아닌 것 같고. 오늘 일은 그냥 없었던 셈 치자고. 김 대리도 내가 오늘 김 대리한테 하려고 한 이야기가 뭔 지는 어느 정도는 그래도 알게 된 것 같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침부터 서로 너무 기분 상하면 안 되니까, 나도 그냥 김 대리가 한 그 행동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럴 수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는 안 가. 그렇지만, 뭔가 그 순간만의 이유가 있어서 본의와는 다르게 한 행동이라고 받아들일게. 지금 이 시간부터 다 잊을거야.

그러니까 너무 깊게 마음에 담아 둘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말고.

그래. 가서 일 하자.”

김 대리는 그 날 하루의 근무를 예정대로 마치고 퇴근했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 2019년, 제주 공항에서

댓글 6
  • 빌린 19.12.03 02:14 댓글

    이 과장 말이 이해되는 저는 이미 꼰대가 된 걸까요...

  • 빌린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9.12.03 07:27 댓글

    이 과장이 적수로 생각하고 있는 젊은 세대, 신입 직원을 어떤 이유로 싫어하고 계시기 때문에 무심코 마음이 그렇게 흘러가신 것 아닐까요?

  • 곽재식님께
    빌린 19.12.03 21:50 댓글

    아래 답글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빌린 19.12.03 21:55 댓글

    에구... 댓글 등록 버튼을 눌렀더니 페이지에서 나갈 거냐고 묻길래 다른 버튼을 잘못 누른 줄 알고 두어 번 더 눌렀는데 답글 테러가 되어버렸네요;;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 No Profile
    청야 19.12.03 15:31 댓글

    출근하면서 내 눈동자도 마음대로 못움직이는건지의 문제는 차치하고, 눈동자 움직임 때문에 저 많은 말을 할 정도면 일단 일을 안해서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임이 자명합니다...

  • 청야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9.12.03 20:43 댓글

    저 사람은 자기 기분 때문에 괜히 크게 느껴진 것일 뿐인 문제를 두고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완전히 착각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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