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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원경 푸른 돌

2019.12.01 00:0012.01

푸른 돌

갈원경

바닷가에 두 명의 시체가 떠오른 것은, 막 더운 계절이 가고 추수기가 올 무렵이었다. 계절이 변할 시기엔 바닷물 역시 변해서, 그 계절에 우리들은 바다로 배를 띄워 고기낚는 일을 하지 않았다. 바다가 원만하게 새로운 계절을 맞고 옛 물고기들이 그들의 자식을 낳는 일을 다하고 나서야 우리들은 바다로 다시 나아갔다. 그들이 우리 마을에 온 것은 그런 금어禁漁의 시기였다.

“…이방인의 시체라니, 불길해.”

어머니는 무슨 저주라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어깨를 감싸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내 눈에는 새하얀 모래사장에 늘어져 있는 두 구의 시체가 단지 신비롭게만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알 수 없는 이상한 색깔의 옷이라든가, 그들의 검은 머리카락이라든가, 그런 낯선 것이 내게 주는 충격은 신선하고 짜릿했다. 촌장 어르신과 카테레가 그들이 혹시 살아있을까 해서 둘을 마을의 중앙 회관으로 옮겼다. 아직 15살이 되지 않은, 나를 포함한 몇 명의 아이들이 그 곳에 감히 접근할 수 없게 금지를 당한 것은 물론이다.

며칠 후에 우리는 마을 회관에서 나오는 그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이 목덜미 언저리에서 찰랑거렸다. 그러나 그 아이와 함께 밀려왔던 나머지 한 사람은 끝내 보지 못했다. 어른들의 수군거림으로부터 우리는 회관으로 옮기던 그 때 이미 그 사람은 죽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른들은 이방인임이 분명한 두 사람 가운데 그나마 살아남은 것이 아이라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얘, 너 이름이 뭐야?”

우리들 중에 좀 겁이 없는 키세가 대뜸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대답 대신 새까만 눈망울만을 깜빡거렸다. 키세는 자신을 가리키며 키세,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아이를 가리켰다. 아이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다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레프튀.”

“레프튀?”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를 따라 뛰어나온 카테레가 우리를 꾸짖었다. 그날은 아이-레프튀가 회관을 나와 카테레의 집으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바로 그 전 해에 남편과 아이를 모두 잃은 카테레가 그 아이를 선뜻 맡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나중에야 들을 수 있었다.


“카테레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이방인의 아이를 길러서 어쩌겠다고.”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날 밤, 저녁을 먹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가 투덜거렸다.

“그 애의 머리카락 봤니? 마치 밤 같지 않든. 어둠의 빛깔이야. 불길하지, 불길하고말고. 게다가 계집아이야. 사내아이라면 키워서 밭일이라도 시키겠지만-.”

“하지만 카테레도 여자잖아.”

어머니에게 발끈한 것은, 아마 레프튀의 머리카락에 대해서 나쁘게 말한 것에 대한 반발심이었을 것이다.

“모르겠다. 저 애가 커서 카테레가 되어줄 수 있을지. 아니, 이방인이 카테레가 되어서도 곤란한 거 아니야? 나는 네 아들이 이방인에게 뭔가 배우는 건 싫다.”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는 신탁이 정하는 거잖아. 그 애가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면, 그렇게 신탁이 내리겠지.”

내가 생각하기에도 꽤 거창하고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어머니는 으음- 하고는 말문이 막혔는지, 나를 방으로 올려 보냈다. 창밖으로 레프튀의 머리카락을 닮은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한참 그 바깥을 내다보던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짙은 어둠이 깔린 밤바다에 알 수 없는 빛이 어린다 싶었더니, 모래사장 위를 멍하니 허위허위 걷고 있는 그림자 하나가 보였던 것이다. 그 어둠 속에, 밤하늘 빛을 옮긴 것 같은 머리카락의 아이가 걷고 있었다.

“레프튀?”

2층에서 바깥으로 난 사다리를 따라 나는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1층의 부모님들은 눈치를 채지 못하게 조심하면서 말이다. 어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어둠에서 빛을 내는 것은 모래사장뿐이었다. 그 위를 마치 그림자처럼 흔들리며 걷고 있는 레프튀의 모습은, 현실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런 계절에 이렇게 입고 다니면 어떻게 해?”

덥석, 레프튀의 얇은 옷자락을 붙잡았다. 검고 공허한 눈이 나를 보았다.

“…너는 봤어? 카엔?”

그 입이 열리며, 내 이름을 말했다. 겨우 한 번 만났을 뿐일 텐데. 아니- 우리의 말은 하나도 알지 못한 상태로 고작 이레 정도가 흘렀을 뿐인데.

“뭘?”

“…센페르.”

“너랑 같이 있었던 사람 말이야? 그 사람은 여기 왔을 때 벌써 죽어 있었대.”

레프튀는 조금 묘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돌려 바다로 향했다.

“…어디에서 왔어 너?”

“몰라.”

고개도 돌리지 않고 레프튀가 말했다.

“여기 말을 하나씩 배워갈 때마다, 내 말을 하나씩 잊어버리는 것 같아. 이젠 거의 기억이 안 나.”

“아무 것도?”

“…센페르가 날 붙잡고 말했어. 살아라- 우리의 레프튀. 하지만 그는 누구지? 나는 누구지? 왜 나는 살아야 하지?”

그리고 레프튀는 갑자기 그 자리에 정말로 유령처럼 거꾸러졌다. 그 애의 어깨를 내 어깨 위에 얹어 부축했다. 영혼이 빠져 버린 것만 같은 그 애가 내게 완전히 몸을 기댔다. 내 또래일 그 아이는 보이는 것만큼이나 너무 가벼워서 나는 그 아이가 그 자리에서 모래로 변해 흩어져버릴 것만 같아 카레테의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카레테는 그다지 놀라지도 않고 그를 받아 부축했다.

“이 아이가 무슨 말을 하든?”

“아니오, 아무 것도.”

카레테는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한참 훑어보았다.

“무슨 말을 들었든지, 빨리 기억에서 지워버려라. 이방인의 흔적이 남은 것은 누구든 꺼리실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카레테는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실제로 그 말을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딱 한 번, 한 달쯤이 지난 어느 날, 내가 무심결에 센페르의 이름을 올렸을 때, 레프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나는 기억했다. 레프튀의 기억에서 사라진 센페르의 마지막 말, 살아라- 우리의 레프튀. 그 말은 레프튀가 우리들 사이에서처럼 겉도는 이방인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서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라는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레프튀가 이 곳에 온 지 여섯 해가 지났을 때, 나와 키세는 신탁을 받았다. 키세는 사람들이 예상한 대로 아니크가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릇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았던 키세였다. 활달한 성격 때문에 종종 선대의 아니크가 만든 그릇을 깨버려서 혼이 나곤 했지만, 아니크의 도공으로 들어간 키세는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한 모습으로 그릇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키세가 지금껏 없었던 독특한 형식의 그릇을 만들어내는 아니크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나는 스티페르Stiper가 되었다. 스무살이 된 마을의 아이들 여섯이 앉아서 신탁을 받는 자리에서, 어머니는 내가 받은 새하얀 판을 보고는 혼절할 듯이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나는 신전을 좋아했다. 에듀카에서의 수업이 마치면 바다로 나가 물고기를 잡고 백사장을 뛰고, 산으로 올라 과일을 따는 그런 일상 틈틈이 나는 신전을 찾았었다. 신탁의 판을 받자마자 나는 내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신전의 천정 가까운 곳, 스티페르들이 둘러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 곳에서 나는 ‘그’를 보았다. ‘그’는 어느 때보다도 침울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내 아버지였다.

“괜찮아 엄마, 난 괜찮아.”

내 말에도 어머니는 계속 침통한 얼굴이었다.

“그 사람을 잃은 것으로 충분해. 어째서 너까지 스티페르가 되어야 해? 나는 네 아이를 안아보고 싶어, 네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고 싶단 말이다.”

“…내가 신탁을 깨길 바라?”

어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그것은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조차도 신탁에 따라 보낸 사람이었다. 나이 열아홉,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 아버지도 아니크였기 때문에 누구도 아버지가 아니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하고 나를 낳는 것에도 별 어려움은 없었다고. 그러나 신탁의 자리에서 아버지가 받은 것은, 짙은 회색의 판이 아니라 너무나 새하얀 판이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도 쓰러지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담담히, 아버지를 보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신전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스피테르의 예우로 아버지를 대했다.

어쩌면 아주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이것으로 스피테르의 아이는 더 이상 없게 될 테니까. 그 전에도 없었고 그 후에도 없이, 스피테르의 자손은 나 혼자이게 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 어째서 레프튀의 얼굴이 스쳤던 것일까. 너는 봤어, 카엔? 하고 말하는 검은 눈동자가, 그리고 밤에 백사장을 걷고 있던 레프튀의 춤추는 것 같은 걸음걸이가, 그 순간에 내게 떠올랐는지.

그 이듬해 레프튀는 신탁을 받았다. 사람들은 어쩌면 신탁이 레프튀의 일을 결정하는 것을 거부할지도 모른다고들 수군거렸다. 나는 그런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오래 이 마을에서 살아온 노인들은 그 전대의 사람들로부터 전해들은 신탁에서의 기이한 일들에 대해 입방아를 찧어대었다.

스무 살이 된 사람은 그 해의 첫 보탄이 피는 날 신탁의 자리, 투명한 판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신탁의 ‘입’에 넣는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신탁의 대상들은 다시 신전으로 모여 그들이 넣은 신탁을 거두어들인다. 투명한 판은 하루 사이에 색이 바뀌어있다. 아니크가 될 사람에겐 짙은 회색의 판, 스피테르가 될 사람에겐 새하얀 색의 판, 카테레가 될 사람에겐 바다처럼 푸른 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아주 오래전, 신탁의 판은 딱 한 번 신탁을 거부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대상은 이방인이었다고도 하고 촌장의 외동아들이었다고도 하지만, 확실히 동일한 내용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신탁이 거부한 그 사람의 판은 처음 넣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투명한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마을에 남지 못하고 바다를 향해 배를 띄웠다고 했다. 그리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레프튀 역시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지, 조금은 기대를 섞어서 수군거렸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스티페르의 한 사람으로써, 나의 아버지가 나를 내려다보았듯이 천장 가까운 자리에서, 신탁을 받는 네 명의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내가 본 것은 네 명 중 가장 왼쪽에 서 있는 검은 머리의 아이 하나였다. 이제는 아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야 할 나이의, 그러나 너무나 아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얼굴의 사람 말이다.

하나씩 하나씩, 각자의 신탁을 받아들고 마지막으로 레프튀가 자신의 판을 받았다. 그것은 마치 무지개처럼 현란하게 아롱지는 빛깔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레프튀가 신탁을 받은 자체에 대해서 놀란 것인지 아니면 레프튀의 신탁 결과가 놀라운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낮은 소리로 술렁였다. 그것은 리우렛riwret의 표시였다. 여태 적어도 20년 동안은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신탁의 판을, 레프튀는 담담히 보고 있었다. 내게는 숙인 레프튀의 뒷머리밖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떨고 있지도 않고 심지어 당황하고 있지도 않다는 것을.

어떤 면에서 레프튀가 그런 신탁을 받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었다. 리우렛은 선대의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레프튀는 정식으로 에듀카를 졸업하고 혼자 살게 되었고, 종종 신전을 방문했다. 때로는 푸른 풀먹새의 향을 함뿍 배어서, 때로는 바닷가의 짠 내음이 옷에 배인 채로. 리우렛에게 허락된 자유로운 행동이, 레프튀를 더욱 레프튀답게 만들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가 나를 찾아오는 시간과 내게 주어진 자유 시간이 우연히도 교차하는 때면 나는 그와 함께 바다로, 혹은 산으로 갔다.

그 날은 레프튀를 키운 카테레가 세상을 떠난 후 일 년이 되는 날이었다. 레프튀는 품속에서 붉은 천으로 싼 것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나는 레프튀를 힐긋 보고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끌렀다. 남자 손바닥 정도 될 법한 크기의 돌이 들어 있었다. 신탁의 판보다는 조금 크고, 두께는 신탁의 판보다 훨씬 두껍다. 그 돌에 이상한 홈이 파여 있었다. 기이한 푸른색의 돌, 기이한 홈의 모양.

“…뭔데 이건?”

“그 사람이 죽기 직전에 나한테 줬어. 내가 여기에 왔을 때 가지고 있었던 거래.”

레프튀는 돌을 도로 거뒀다.

“그건 꼭 글자처럼 생겼구나.”

“응.”

레프튀Refutu는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작은, 푸른 석판- 혹은 금속, 혹은 다른 것-에 파여진 홈은, 정말로 그랬다. 레프튀는 쓰다듬듯이 손가락으로 그 홈의 흐름을 따라갔다.

“어떻게 보면 글자와도 닮았지. 이건 꼭 ‘아’처럼 생겼고, 이건 꼭 ‘데’처럼 생겼으니까. 그 옆의 이건 뭘까? 그냥 단순하게 한 줄로 주욱 따라가는 이것- 어디에도 닮은 건 볼 수 없는 건데, 왜 세 개는 똑같이 생겼을까. 이런 상상을 하면 즐거워져.”

“너는 리우렛이니까… 그런 상상도 할 수 있는 거구나.”

“…그래, 나는 리우렛이니까.”

레프튀는 마치 그것이 저주받은 이름이기라도 한 듯이, 그 단어를 또박또박 끊어서 읽었다. 누군들 리우렛이 되기를 바라겠는가. 가능하다면- 신탁으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그 순간에, 차라리 어부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끊임없이 여기에 있지 않은 무언가를 써내야 하는 리우렛이 되어야 한다는 신탁을 받을 사람이란, 결국은 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카테레들은 말했던 것이다.

“왜 이런 걸 들고 있었을까. 그 사람은, 이건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거라고 말했지. 아마도 내가 온 곳과 연결되는 유일한 물건일 거라고.”

“네가 온 곳?”

“응, 나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리고 레프튀는 또 웃었다.

“…하지만 나는 기억하고 있어.”

잠시 망설이다 내가 말했다. 레프튀는 그 까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았다.

“네가 여기 왔을 떄 함께 온 사람을, 너는 ‘센페르’라고 불렀어. 그리고 그 사람은 너한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어. 살아라, 우리의 레프튀… 라고.”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내 입에서 동행인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레프튀의 얼굴이 묘하게 흔들린 것과, 그리고 그의 마지막 말이 끝나는 순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을 지었던 것을. 그것은 전혀 모르는 사실을 접했을 때 보이는 당혹감 같은 느낌이었지만 곧 경악과 충격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레프튀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어깨를 떨었다.

“…센페르…, 레프튀.”

레프튀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돌연 산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황급히 그 뒤를 쫓았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그 순간 레프튀를 잡아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신전의 흰 옷자락이 거추장스러웠다. 레프튀의 작은 몸이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심지어 달리는 그 동작은, 발돋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약해서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레프튀!”

그 뒤를 쫓으며 나는 계속해서 그 이름을 불렀다. 결코 돌아서지 않는 뒷모습이 점점 멀어졌고, 나는 천천히 속도가 느려졌다. 결국 추적을 포기하고 멈추어 선 순간, 내 발밑에 무언가가 걸렸다. 그것은 바로 레프튀가 들고 있었던 푸른 돌이었다. 매끈매끈한, 글씨를 닮은 홈이 파여진 푸른 돌 하나가, 내 손 위에 있다.


한동안 레프튀는 신전에 오지 않았다. 레프튀가 쓴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리기 시작하고, 레프튀를 가리켜 앞으로도 계속 이름이 남을 리우렛이라 말하기 시작할 때까지. 레프튀는 그대로 자신의 집에 틀어박혀 계속해서 무언가를 써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드물게 나오는 리우렛들은, 평생 걸쳐 대여섯 가지의 글 정도를 써내는 것이 고작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레프튀가 써내는 많은 이야기들이 충격적이고도 신선했다. 그것들은 일관되게 하나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 세계가 있었다. 그 세계도 우리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하늘에 해가 있고 달이 있었으며 사람들이 있었고 동물들이 있었다. 사람들의 생활은 점점 윤택해지고 사람들의 숫자도 엄청나게 늘어나, 사람들은 마침내 먼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들은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이 모두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처럼 하나의 세계라고 믿었다. 그들은 그 별에 닿을 커다란 배를 지었고, 그 별에 닿을 수 있는 연료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물 속 깊이에서 숨쉬기 위한 도구를 만들고, 하늘 너머의 별까지 가는 동안에 숨 쉴 수 있는 도구를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한정되어 있는 먹을 것들을 손에 쥐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먹을 것 때문에, 혹은 신념 때문에 서로를 죽였다. 강한 자들은 하늘로 계속해서 배를 띄웠다. 가능하다면 저 하늘 너머에 닿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그렇게 배를 띄웠다.

밤하늘에 박혀있는 별들 중에는 우리와 같은 생명체가 사는 별이 있다고, 내가 어렸을 때 카테레는 이야기했다. 그들 중에서 누군가가 우리 세계를 찾아온 적도 있었다고 했다. 카테레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이 세계에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방인이었을 거라고.

나는 레프튀의 머리카락을 생각하고, 또 레프튀의 낯설었던 그 표정을 생각했다. 이 곳에서 이미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음에도 그 아이는 여전히 우리와 다르다. 어떠한 리우렛보다도 뛰어난 사람. 역대의 리우렛들 가운데 가장 빼어난 글을 쓰는 사람. 그런 칭송이 레프튀에게는 부담이었을까. 아니, 그것은 어쩌면 레프튀가 이 곳에 속해 있지 않다는 증거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숨이 막힐 듯이 답답해져서, 벌떡 일어났다.

상관없다. 레프튀가 이방인이라고 해도, 신탁으로 스티페르가 된 사람이 반려를 맞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나는, 지금 레프튀와 함께 있고 싶다.


산 중턱,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 지은 레프튀의 작은 집에는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었다. 조그만 호롱불을 들고 그 집에 도착하자, 레프튀는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었다.

“어쩐 일이야?”

“…네가 오지 않으니까, 내가 오는 수밖에.”

아주 조금, 레프튀가 웃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어째서 늘 그런 이야기만 쓰는 거야?”

“나는 이방인이니까.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로 하는 거야. 사람들은 즐거워하잖아? 이곳과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들을 얼마나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잖아,”

“넌, 넌, 그게 좋아?”

레프튀의 웃음이 너무나 차가워서 그랬을까. 스티페르가 된 후로 계속해서 감정을 눌러야 한다고 배웠는데도, 그 순간은 어떤 감정도 누르고 싶지 않았다.

“이방인이라고, 계속 그렇게 주장하고 싶어? 그래도 좋아? 여기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데 여전히 이방인으로 대하는 게, 넌 그게 좋아?”

레프튀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나는 이방인이고 싶지 않았어.”

“네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평범한 이야기를 쓰면 되잖아, 그럼 아무도 네가 이방인이라고 하지 않아!”

“아니, 나는 단 한 번도 여기에 속해 있었던 적이 없었어.”

레프튀는 씁쓸히 웃었다.

“어딜 가든, 사람들은 내 검은 머리카락을 알아보지. 이 곳을 떠나 다른 곳에 가더라도 마찬가지야. 세계 어디를 다녀도 사람들은, 있을 수 없는 내 검은색 머리카락을 보고 놀라. 햇빛을 아무리 보아도 소용없어. 내 검은 머리카락이 저주의 뜻이라고 오물을 끼얹기도 해. 내가 기도를 하면 사람들은 내 뒤통수를 힐끔거리지. 내가 신전에 들어가면 신전이 더럽혀질까봐 수군거리지.”

그건 사실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스티페르 모두가 그 아이를 살폈다. 이곳에서 그런 것을, 다른 곳인들 다를까.

“아무도 모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렇게 말하지 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널 모를 것 같아?”

죄책감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나는 힘주어 되물었다. 레프튀는 씁쓸한 얼굴로 숨을 깊이 내쉬었다.

“내 진짜 목소리도 들어본 적 없잖아, 너는.”

“응?”

레프튀는 돌연 팔을 활짝 벌리고, 하늘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폭포 같은 소리였다.

검은 밤하늘에 레프튀의 목소리가 울렸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언어로 되어 있는 그 소리는 귀가 아니라 가슴을 울리는 듯이 퍼졌다. 이 소리가 마을까지 들리지는 않았을까 걱정했지만, 레프튀가 이 집에 산 시간동안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으므로 나는 애써 나 자신을 위로했다.

“…나에 대해서 정말로 알고 싶어?”

원래의 내가 아는 레프튀로 돌아와,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본 순간부터, 어쩌면 바닷가에서 그를 보았을 때부터 나는 이미 그에게 홀려 있었을 것이다. 무엇을 더 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는 레프튀,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는, 밤하늘을 옮겨놓은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레프튀.

“들어가자, 다 가르쳐줄테니까.”

그가 나를 끌었다. 나는 작은 집 안으로 끌리듯이 들어갔다. 평범한 화로가 있는 입구를 지나 한 방의 문을 열자, 나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방 안에는 내게 레프튀가 보여주었던 그 푸른 돌이 동그란 구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 가운데, 레프튀의 손 가까이에서 나는 글자를 닮았던 그 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사람을 통해 레프튀에게 전해주게 했던 바로 그 돌이다.

“오래 걸렸어. 내 옛 언어를 찾아가는 데에도, 그 기억을 더듬어 이 잔해를 찾아내는 데에도.”

“…이게, 뭐야?”

“내가 이 곳에 타고 온 것. 그래, 배라고 하면 되겠지.”

레프튀가 푸른 돌의 빛나는 부분 아래에 있는 납작한 것들을 차례대로 눌렀다. 그것은 마치 악기의 건반 같은 모양이었다. 더욱 얄팍하고 정방형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하나의 건반을 누를 때마다 빛의 모양이 변하더니 낮은 소리를 내며 그것이 열렸다. 내부에도 알 수 없는 빛들이, 불길하게 느껴지는 푸른빛들이 어지럽게 비추이고 있었다. 낮게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다.

“나와 그가 여기에 온 건, 이 곳에 우리들이 살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어. 나는… 학자였어. 너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거기서는 가끔 나 같은 사람들이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빠른 사람들. 어쨌든, 나는 학자여서,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혀가면서 나는 그 사람과 단둘이 이 배에 올랐어. 어느 정도 체류하면서 몸에 이상이 없으면 돌아가서 사람들의 이주를 추진할 계획이었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나는 벽에 기대어 섰다.

“몰랐어. 언어가 바뀌는 것이 무슨 영향을 주는지. 내가 완전히 그 곳을 잊어버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고마워, 카엔. 네가 기억해준 덕분에 나는 옛 언어를 찾을 수 있었어.”

레프튀의 말은 분명 우리의 말이었지만, 다른 곳의 말처럼 낯설었다.

“…돌아가도, 어쩌면 우리의 ‘별’은 살아남지 못했을지 몰라. 나는 여기 너무 오래 머물렀으니까. 하지만 나는 돌아가야 해. 나는 이 별에서 살 수 있다는 증거가 되겠지.”

“그 이야기… 모두, 진짜 있는 이야기였단 말이야?”

“정확히. 내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기록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매우 즐겁게 읽어주더라.”

레프튀가 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금… 떠날 거야?”

“응. 떠나기 전에 널 한 번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마침 네가 와 줬고, 이젠 됐어. 돌아가서 이 별로 이주할 큰 배를 지을 거야. 살아남은 사람들 모두를 데리고 올 수 있으면 좋겠지. 이 곳은 충분히 넓고, 아직 오염되지도 않았으니까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관없을 거야.”

뭐라고 말하기 전에, 내 손은 레프튀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그 푸른 돌 안으로 들어가면 레프튀를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아서, 이대로 그를 보내면 나는 평생을 후회하며 살 것만 같아서.

“…카엔?”

“난 아직 너에 대해서 잘 몰라. 네가 가르쳐 줘.”

이것은 내가 평생 살아온 중에 처음 일으키는 사고가 될 것이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다가 빙긋 웃었다.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데.”

“괜찮아. 난 아직 젊으니까.”

그가 나의 손을 잡았다.


누가 알았겠는가. 푸른 돌 하나가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을 줄은. 나는 지금 배 안에 있다. 배는 생각보다 좁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새로운 언어를 배웠다. 그 별에 도착했을 때 아무 말도 알아듣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에. 내가 그에게 배운 첫 번째 글자는, 그 푸른 돌에 패인 홈이었다. 그건 2090이라는 숫자, 그가 아홉 살이 되었던 해를 그들의 달력으로 세는 수라고 알려 주었다.

내가 그에게 배운 가장 아름다운 말은 ‘미래’라는 말이다. 그것은 그의 이름이다. 푸른 돌을 손에 쥔 채 바닷가에 정신을 잃고 있었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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