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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의 거리

샤쟈(夏笳) 


경칩

귀가鬼街의 가도는 마치 푸르스름한 요대처럼 좁고 또 길었다. 남에서 북으로는 채 열 걸음이 되지 않지만,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걸어가려면 한 시진은 족히 걸어야 했다.
귀가 서쪽 끝에는 이미 쇠락한 난약사蘭若寺가 있다. 절 안에는 색색의 과일이며 채소가 자라는 밭, 또 대나무 숲이며 연못까지 있는 아주 커다란 정원이 있었다. 연못에서는 물고기와 새우, 미꾸라지며 누런 우렁이까지 키우고 있으니, 내가 일년 내내 먹어도 충분한 식량이 있는 셈이었다.
해질 무렵, 대전 처마 아래 앉아 <회남자淮南子> 를 읽고 있노라니, 연적하燕赤霞가 대바구니를 옆에 낀 채 걸어 오는 것이 보였다. 연적하는 바지를 높게 말아 올리고 있었는데, 다리에 검은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키득 웃음이 나왔다. 
그때 고 선사가 어두운 구석에서 삐거덕대며 나오더니, 계척으로 내 머리를 한 대 쳤다. 나는 너무 아픈 나머지 맞은 머리를 만지며 원망스럽게 그를 노려보았지만, 고 선사는 마치 대전에 있는 그 불상들처럼 철판 같은 얼굴에 아무 표정도 내보이지 않았다. 나는 책을 내던지고 후다닥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고 선사도 삐거덕삐거덕 쫓아왔다. 고 선사의 관절은 이미 한참 전에 녹슬어 버렸기 때문에, 달팽이처럼 느렸다.  
나는 연적하에게 달려가 대바구니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막 채취한 연한 죽순 몇 개가 있었다.


“고기가 먹고 싶어.”

나는 비스듬히 그를 올려보며 말했다.

“새총으로 검은머리촉새 잡아 주면 안 돼?”
“검은머리촉새는 가을에나 살이 찐다고. 지금은 새들이 둥지를 짓고 알을 낳을 시기야. 지금 먹어버리면 내년에 먹을 게 없어지지.”

연적하가 대답했다.

“한 마리만 잡아줘, 응.”

나는 그의 소매를 잡고 생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바구니를 내 손에 넘긴 후, 삿갓을 벗고 땀을 훔쳤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또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그의 얼굴은 계란처럼 반들반들했고,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카락이 아주 드물게 있는 것이 마치 김을 매지 않은 밭에 드문드문 자란 잡초 같았다. 예전에는 그의 수염이며 머리가 매우 풍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틈을 타서 내가 수시로 몇 가닥씩 뽑아서 가지고 놀았고,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 그는 지금의 이런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아귀가 환생한 것도 아니고.”

그가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정원에 있는 것은 다 네 것이다. 그래도 누가 네 먹을 것을 빼앗을까 두려우냐?”

나는 그저 얼굴을 찌푸리며 바구니를 챙길 수밖에 없었다.
비가 막 그친 정원, 축축한 진흙 속에 벌레 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몇 달만 지나면 파릇파릇한 메뚜기가 사방에서 이리저리 뛰어오를 것이다. 메뚜기를 잡아 꼬치에 꿰어 불에 올리면 황금빛 기름이 자르르 흐르겠지. 그런 상상을 하고 있노라니 텅 빈 뱃속에서 벌레들이 꼬르륵꼬르륵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두 다리를 내디디어 뛰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의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금빛 햇살이 청석 가도 위에 내려앉으며 내 외로운 그림자를 길게 늘여 주었다. 나는 뛰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소천小倩은 어두운 방에서 머리를 빗고 있었다. 방에는 거울이 없었고, 그래서 그녀는 항상 머리를 몸에서 떼어내어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단장하곤 했다. 먹빛 두루마리 같은 그녀의 머리카락은 펼치면 방 전체를 덮을 수 있을 만큼 길었다.
나는 조용히 곁에 앉아 그녀가 머리를 다 빗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는 머리를 기울어진 달 모양으로 매만진 다음, 붉은 산호 구슬을 박은 흑단 비녀로 고정했다. 그다음 다시 머리를 들어 목에 끼워 넣고, 나에게 어디 비뚤어진 부분은 없는지 봐 달라고 말했다. 나는 소천이 왜 이리 열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머리를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게 아닌 이상, 누구라도 그녀를 아름답다고 여길 텐데 말이다. 어쨌든 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주 예뻐.”

사실 내가 소천의 머리를 제대로 보고 대답한 것은 아니었다. 귀신들과는 달리 나는 어두운 곳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까.
내가 긍정적으로 대답하자, 소천은 바구니를 들고 부엌에 가서 불을 지펴 밥을 짓기 시작했다. 나는 곁에 앉아 풀무질하며 하루 동안의 일을 이야기했다. 고 선사에게서 계척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이야기를 하자, 소천이 손을 내밀어 내가 맞은 곳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의 손은 마치 옥돌처럼 희고 차가웠다.

“책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소천이 말했다.

“장래에 네가 이곳을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가게 되면, 먹고 살 만한 기량이 있어야 하니까.”

그녀는 달고 부드러운 맥아당처럼 온유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내 머리 위의 혹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소천은 연적하가 어린 나를 난약사 대전 계단에서 주웠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어린 나는 배가 고픈 나머지 큰 소리로 울고 있었고, 연적하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여린 바위취 하나를 따서 내 입에 밀어 넣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바위취의 즙액을 빨며 울음을 멈췄다.
내 부모가 누구인지 아는 이는 없었다.
그 무렵 귀가는 이미 쇠락하여 장사가 형편없었다. 아주 오랫동안 손님이라고는 하나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소천의 말에 따르면, 세월이 흐르며 사람들은 새로운 조류에 맞춰 더욱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어냈고, 귀가와 같이 오래된 것들은 잊히고 말았다. 소천은 이런 일을 아주 많이 보았다고 했다. 소천은 귀신이 되기 전, 두 번 시집을 갔고 아이 일곱을 낳아 어른이 될 때까지 키우는 등, 인생경험이 아주 풍부했다. 

소천의 아이들은 후에 병을 얻어 하나하나 죽어갔다. 소천은 아이들을 치료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을 조각조각 팔아넘겼다. 이, 눈, 가슴, 심장, 간, 골수, 마지막에는 자신의 영혼마저 팔아버리고 말았다. 소천의 영혼은 귀가로 팔려와 한 여자 귀신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긴 검은 머리와 희고 차가운 피부를 가진 귀신, 소천의 새 피부는 빛에 극히 민감해 햇빛에 한 번 쏘이기만 해도 불타올랐다.

연적하는 나를 안고 귀가를 두루 다니다가, 결국 소천에게 나를 맡겼다.
나는 소천이 사람이었을 때의 사진을 본 적 있었다. 그 사진은 그녀의 화장대 제일 구석진 곳 작은 궤짝 안에 있었는데, 사진 속 여인은 눈썹도 두껍고 눈도 큰 데다 피부도 검어 지금 모습과는 비할 수 없게 추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소천은 종종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소천의 눈물은 옅은 붉은빛이었고, 새하얀 옷자락에 떨어져 번져 나간 눈물은 마치 한 잎 한 잎 떨어진 도화 같았다.

모든 귀신에게는 살아 있을 때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몸은 불타 재가 되어 진흙 속에 섞였지만, 그 이야기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귀가 전체가 깊은 잠에 빠지는 낮이면, 그 이야기들은 꿈의 풍경으로 변했다. 그 풍경들은 돌아갈 곳 없는 제비들처럼 어두운 처마 밑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하늘로 올라갔다. 낮 시간이면 나는 홀로 귀가를 걸었다. 나만이 그들을 볼 수 있었고, 그들이 흐느끼며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귀가에서 살아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소천은 내가 이곳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른이 되면 떠나도록 결정되어 있다고 말해주었다.

 

어두운 방에 맛있는 냄새가 가득 찼고, 뱃속 벌레들은 더욱 시끄럽게 울었다.
나는 혼자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겨울 죽순과 함께 삶은 절인 돼지고기, 새우젓을 넣은 계란 국, 그리고 열기가 올라오는 냉이 주먹밥이 있었다. 소천은 곁에 앉아 말없이 나를 지켜보았다. 귀신은 밥을 먹지 않는다. 귀가의 주민들은 물론, 연적하와 고 선사도 밥을 먹지 않았다. 나는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게걸스럽게 먹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곳을 떠난 후에도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을까?


대서

밤의 장막이 내려앉으면, 온 세상에 생기가 넘친다.
나는 후원 우물가에서 물을 퍼 올리고 있었다. 도르래가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평소에 나는 소리와는 좀 다른 것 같아 우물 안을 들여다보니, 머리가 긴 여자 귀신이 흰 옷을 입고 두레박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녀를 끌어올렸다. 그녀는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눈알 하나만 내보이며 물었다.

“녕寧 도련님, 오늘밤은 백귀가 모두 나오는 날인데, 구경하러 안 가니?”
“소천이 목욕할 물을 떠다 주고.”

내가 답했다.

“목욕을 끝내고 갈 거야.”

그녀는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정말이지 착한 아이라니까.”

그녀는 다리가 없었기 때문에 기어갈 수박에 없었다. 정원에는 온통 바스락거리며 기어가는 소리 천지였다. 푸른 도깨비불이 사방에 나부끼는데, 이리저리 불안정하게 날아다니는 반딧불 떼 같았다. 썩어 문드러지는 달콤한 꽃내음이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어두운 방으로 돌아와 향백나무 욕조에 물을 부었다. 소천이 옷을 벗었다. 소천의 등에는 어두운 붉은빛 바코드가 있었는데, 마치 작은 뱀 같았다. 그녀의 피부 속으로는 투명하고 맑은 빛의 파장이 흐르고 있었다.

“함께 씻지 않을 거니?”

그녀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었다. 소천은 한숨을 쉬며 손을 내밀었다.

“이리와.”

나는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욕조 안에 앉았다. 향백나무 냄새가 매우 좋았다. 소천은 얼음처럼 차가운 두 손으로 내 등을 문질러 주며 가볍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이지 아주 듣기 좋았다. 나는 그녀의 노래를 들은 남자들은 모두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도 어른이 되면 소천을 사랑하게 될까? 나는 고개를 숙여 작디작은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의 피부는 목욕물에 불어 쪼글쪼글해져, 마치 습기 먹은 크라프트지 같았다.
목욕을 끝낸 후 소천은 내 머리를 빗겨주고, 새로 지은 옷을 입혀 주었다. 그리고 내 옷자락 안에 녹이 슨 동전 한 줌을 넣어주었다. 

“놀러 가렴. 하지만 너무 많이 먹지는 말아라. 또 배가 아프면 안되니까.”

 

문을 나서니, 거리에 수많은 등불이 빛나고 있었다. 여름 밤하늘의 별들조차 빛을 잃을 정도였다. 귀신이며 여우 요괴들이 퇴락한 주택 칸칸에서 나왔다. 벽돌 사이에서, 찬장 틈에서, 겹처마 지붕 아래에서, 우물의 난간 속에서도 나왔다.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무리를 이루어 발길 닿는 대로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좁고 긴 거리를 꽉 채우는 행렬이었다. 나도 그들 사이에 껴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거리 양편의 가게며 노점에서 군침을 돌게 하는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크고 작은 나비들이 내 코를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물건을 팔던 귀신들은 나를 보자 기를 쓰고 손짓했다.

“녕 도련님, 이리 와! 막 솥에서 꺼낸 계화떡이야, 아직 뜨끈뜨끈하다고!”
“설탕에 볶은 밤! 설탕에 볶은 밤! 아주 향기롭고 달콤한 설탕에 볶은 밤!”
“튀긴 떡! 고소하게 튀긴 떡!”
“인육만두, 인육만두가 동전 하나에 두 개!”
“녕 도련님, 어서 와서 설탕인형을 좀 보려무나. 맛있고 또 갖고 놀기도 좋다고!”

사실 인육만두 안에 든 것은 인육이 아니었고, 그건 그저 손님을 끌어들이려는 익살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허리띠를 풀고 한바탕 먹어 댔다. 결국 괴로울 정도로 배가 불러 길가에 앉아 한동안 쉴 수밖에 없었다. 거리 건너편 높은 누각에는 사람 키만 한 백지 등롱을 밝히고 있었는데, 귀신들이 그 위에서 온갖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칼을 삼킨다든가, 불을 토한다든가, 미녀가 해골로 변한다든가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이런 묘기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누런 피부의 늙은 귀신 하나가 가면이 가득한 수레를 내 앞으로 끌고 왔다.

“녕 도련님, 가면 하나 골라봐. 소, 개, 말 가면도 있고, 흑백무상 도 있어. 수라, 야차, 나찰, 그리고 벽사와 뇌공 가면도 있다.”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붉은 머리에 벽안인 나찰 가면을 골랐다. 늙은 귀신은 내 동전을 받고 연신 고맙다고 하며, 마치 활처럼 몸을 굽혀 큰절을 했다.
나는 가면을 얼굴에 쓰고, 배를 흔들거리며 걸었다. 별안간 커다란 음악 소리가 들렸고, 거리를 가득 채운 귀신들이 모두 발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보니 멀리 행진하는 행렬이 보였다. 맨 앞에는 일 촌 크기의 녹색 옷을 입은 개구리 스무 마리가 손에 나발, 소고, 호금, 대나무로 만든 생황 따위를 들고 있었다. 그 뒤로는 검은 옷을 입은 지네 요괴 스물이 손에 각양각색의 등을 들고 춤을 추며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다시 노란 옷을 입은 뱀 요괴 스물이 종이를 잘라 만든 꽃을 한 움큼씩 공중에 흩뿌리고 있었다. 그 뒤로는 잘 보이지 않았다.

행렬 한 가운데에 흰옷을 입은 외눈박이 역사가 둘 있었다. 삼층 건물 높이만큼 키가 큰 이들이었다. 그들은 작은 가마를 메고 있었는데, 소천의 노랫소리가 그 안에서 흘러나왔다. 그 노랫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하늘의 별이 하나하나 내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색색의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선명하게 붉은, 연둣빛의, 자욱한 자줏빛에 흐르는 듯한 금빛의 불꽃들. 나는 하염없이 불꽃을 바라보았다. 내 몸이 가벼워지며 하늘로 떠오르는 것 같았다.

행진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거리 동쪽 끝에는 한 그루 늙은 계수나무가 있는데, 세 사람이 함께 안아야 겨우 둘러쌀 수 있을 정도로 굵은 나무였다. 나뭇가지에는 항상 수많은 까마귀가 앉아있었는데, 모두 사람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들은 나무를 노귀老鬼라고 불렀고, 나무가 귀가 전체를 관장한다고 말했다. 누구건 나무의 환심을 사면 빠르게 출세할 수 있고, 나무의 명을 어기면 머지않아 불운한 일을 당한다고도 했다.
나는 이 행렬이 오늘 밤 노귀가 있는 곳까지 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행렬이 귀가 중앙에 이르렀을 때, 땅이 진동하더니 청석 가도에 균열이 생겼다. 그러더니 땅속에서 아주 거대한 백골들이 기어 나왔다. 뼈 하나하나가 난약사를 지지하는 기둥만큼이나 굵었다. 뼈들은 천천히 한 곳으로 모이더니 서로 짜 맞추어 한 구의 거대한 해골로 변했다. 해골은 달빛 아래 백자처럼 빛나고 있었다. 검은 진흙이 샘물처럼 그들의 다리 아래에서 솟아오르더니 골격을 따라 흐르면서 그들의 피와 살이 되었다. 마침내 그것은 흑야차의 모습으로 변했다. 새까만 피부와 유달리 커다란 외뿔, 흑야차가 몸을 일으키자 그 뿔은 마치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행렬 속 흰옷을 입은 역사들은 흑야차의 정강이 중간에도 미치지 못했다.

흑야차는 거대한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광란의 밤, 상례적인 행사가 시작될 참이었다. 흑야차는 살아있는 사람을 하나 잡아채야 했다. 만약 살아있는 사람이 없는 밤이면, 흑야차는 실망하여 다시 땅속으로 돌아가 깊은 잠에 빠져야 했다.
흑야차가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나를 응시했다. 나도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 한편으로 던져버렸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초리는 마치 불붙은 석탄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소천이 가마에서 몸을 반쯤 내밀고 날카롭게 외쳤다.

“녕, 도망쳐! 어서!”

밤바람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말아 올렸다. 마치 짙은 자줏빛 꽃잎이 한 겹 한 겹 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옥으로 조각한 듯한 그녀의 얼굴 아래 귤색 등불이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돌려 나는 듯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흑야차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한 발자국 디딜 때마다 온 거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흔들렸고, 길가의 처마에서 기왓장이 마치 잘 익은 과실처럼 덜컹거리며 떨어졌다. 나는 바람처럼 빠르게 달렸다. 내 맨발이 청석 가도를 디딜 때마다 탁탁 소리가 났다. 흑야차는 절뚝거리면서, 긴장을 전혀 풀지 않고 나를 바싹 따라오고 있었다. 몇 년 전, 나는 땅에서 그릇 크기의 뼛조각 하나를 파내 내 침상 아래에 숨겨두었다. 그것은 아마도 흑야차의 발꿈치뼈일 터였다. 그때 이후로 흑야차는 더 이상 나를 따라잡지 못했다.
거리를 가득 메운 귀신들이 모두 길을 내어주며 다 같이 고함쳤다.

“빨리 뛰어, 녕 도련님! 더 빨리!”

그들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어두운 밤에 각양각색의 불꽃이 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흥청거리는 거리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사실 귀신들이나 나나 속으로는 모두 알고 있었다. 흑야차는 결코 나를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귀신은 살아있는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없었고, 그것이 바로 유희의 법칙이었다.

나는 난약사를 향해 서쪽으로 달렸다. 흑야차가 나를 잡기 전에 연적하를 찾아내기만 하면 안심이었다. 이것 역시 놀이의 한 부분이었고, 이 행사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다. 광란의 밤이면 연적하는 의관을 정제하고 대전 계단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내가 외쳤다.

“도와줘요! 대협, 구해줘요!”

그러면 그는 길게 소리 지르며 높이 뛰어올라 담장을 넘어 다시 귀가로 뛰어내렸다. 왼손에는 누런 바탕에 붉은 글씨로 적은 부적을 들고, 오른손에는 등에 진 행낭에서 꺼낸 참요검을 들고, 밝게 빛나는 밤하늘을 향해 대갈일성을 질렀다.

“대담한 요마로구나! 감히 무고한 백성을 해치려 하다니, 연적하가 오늘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하겠노라!”

그러나 그는 오늘 삿갓을 잊고 말았다. 계란처럼 매끄러운 얼굴이 거리를 가득 채운 등불 속에 드러났고, 몇 가닥 남아 있지 않은 머리카락이 구불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의 얼굴에 드러난 삼엄하고 정의로운 기품과는 걸맞지 않은 풍모였다. 나는 결국 큰 소리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웃다가 결국은 사래마저 들려 차가운 돌길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이 장면은 온 여름 내내,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한로

하늘에 얇은 구름이 한 겹 깔려, 만월의 휘황한 빛을 가리고 있었다. 나는 난약사 연못가에 쭈그리고 앉아, 연못을 가득 채운 연잎의 어두운 그림자가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물처럼 차가운 밤, 덤불 속에서는 가을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채소밭의 가지며 콩꼬투리는 이미 익어 맑은 향기를 흩뿌리고 있었고, 나는 그 냄새가 전해오는 유혹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밤을 틈타 몰래 조금 따서 돌아가려는 생각뿐이었다. 연적하의 말대로, 나는 아마 전생에 굶어 죽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연적하의 우레와 같은 코 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나는 한참 동안 기다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덤불 속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 소리의 주인은 연적하가 사는 작은 집의 문을 가볍게 밀고 들어갔다. 잠시 후, 어두운 방 안에서 남녀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연적하였고, 여자는 소천이었다.
소천이 말했다.

“무슨 일로 부른 거죠?”

연적하가 대답했다.

“무슨 일 때문인지 알잖아.”

 소천이 말했다.

“지금은 아직 당신과 떠날 수 없어요.”

연적하가 말했다.

“어째서 안된다는 거지, 약속했었잖아?”

소천이 말했다.

“몇 년만 더 기다려줘요. 녕이 아직 어려요.”
“녕, 녕, 또 녕!”

연적하의 목소리가 분노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정말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 같군!”

소천이 가련하게 말했다.

“나는 몇 년 동안 녕을 키워왔어요. 그냥 가겠다고 말하고 갈 수는 없어요.”

연적하가 원망스럽다는 듯 말했다.

“당신은 항상 녕이 아직 어리다고 말하면서 계속 나를 기다리게 하지. 당신이 나를 몇 년 동안 기다리게 했는지는 기억해?”
“기억하지 못해요.”

소천은 낮은 소리로 답했다.

“매년 그 애에게 새로운 옷을 지어주면서 어떻게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연적하가 냉소했다.

“하지만 나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이 정원의 과일은 일 년에 한 번 익거든. 나는 이미 십오 년이나 봐왔어, 십오 년! 그 애가 일곱 살이던 그 해부터, 그 애의 모습에 무슨 변화라도 있나? 아직도 그 애를 산 사람이라고 믿는 거야?”

소천은 잠시 침묵하더니, 낮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연적하는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더 이상 자신을 속이지 마. 그 애도 우리와 같은 노리개에 불과해. 그 애는 당신이 그렇게 진심으로 대할 만한 가치가 없어.”

소천은 여전히 흐느끼고 있었고, 그 울음소리는 점점 더 애절해 졌다.
연적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될 줄 알았다면 그 애를 주워 오지 않았을 텐데.”

소천이 울면서 낮은 소리로 물었다.

“귀가를 떠나면,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나요?”

연적하도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소천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가슴 속이 매우 괴로웠다. 나는 조용히 정원 담장에 뚫린 구멍을 통해 빠져나왔다.
옅은 구름이 흩어지며 쌀쌀한 달빛이 청석 가도 위로 쏟아졌다. 한 알 한 알 반짝이는 이슬에 달빛이 맺혔고, 나는 맨발이었기 때문에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거리에는 여전히 문을 열고 있는 작은 가게들이 있었고, 귀신들은 나를 보자 열정적으로 인사했다. 상인들이 화로에서 따뜻한 녹두떡이며 계화떡을 꺼내고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떡을 사 먹으러 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나는 무엇인 걸까. 나는 그들과 같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보다 못했다.

귀신들은 모두 한때 사람이었고, 그들의 가짜 몸 안에 진짜 영혼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안팎으로 모두 가짜였다. 이 세상에 태어난 그 날부터 바로 가짜였다. 모든 귀신은 생전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무 이야기도 없었다. 귀신들은 한때 부모와 가족이 있었고, 그들에 대한 사랑과 기억을 품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것조차 없었다.

소천이 말한 적이 있었다. 귀가가 쇠락한 것은 산 사람들이 더욱 새롭고 흥미로운 노리개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아마도 그런 노리개 중 하나였을 것이다. 정교한 기술로 만들어져 사람들이 도저히 진위를 판단할 수 없었던 그런 것. 나는 울 수 있었고 웃을 수 있었다. 뭔가를 먹고 똥과 오줌을 쌀 수도 있었다. 넘어지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으며 피도 흘렸고, 또 스스로의 심장이 뛰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기의 모습에서 천천히 일곱 살까지 자란 후 성장을 멈췄다. 내가 어른이 되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귀가의 주민들은 관광객들의 노리개였다. 그리고 나는 소천의 노리개였다.
가짜가 진짜처럼 보일 때, 진짜 역시 가짜가 된다.

나는 천천히 거리 동쪽 끝으로 걸어갔다. 노귀라는 이름의 그 계수나무 아래까지 가니 밤안개 속 자욱한 계화 향이 달콤하고 또 서늘했다. 나는 갑자기 나무를 오르고 싶었다. 그러면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것만 같았다. 노귀는 가지들을 아래로 내려, 내가 위로 기어오르도록 도와주었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에 앉아있노라니 마음이 어느 정도는 평온해졌다. 주위에는 칠흑같이 까만 까마귀들이 앉아 있었다. 유리 같은 눈알이 어두운 밤에 붉은빛으로 반짝였다. 그중 한 마리가 입을 열었다.

“녕! 이렇게 좋은 밤인데 난약사에 채소를 훔치러 가지 않고 왜 여기 온 거지?”

나는 까마귀가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귀가에서 벌어지는 모든 크고 작은 일들은 노귀가 관장하고 있었고, 그 까마귀들은 노귀의 눈이자 귀였다.
내가 물었다.

“내가 산 사람인지 아닌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지?”
“네 머리를 베어보면 되지.”

까마귀가 대답했다.

“산 사람은 머리를 베면 죽거든. 귀신은 아니지만.”
“머리를 베었는데 죽어버리면 어떡하고?”

내가 말했다.
까마귀들이 까악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듣기 좋은 웃음소리는 아니었다. 두 마리 까마귀가 날아 내려왔다. 그들은 양쪽으로 무늬가 있는 낡은 동경을 물고 있었다. 까마귀들은 각각 내 몸의 앞과 뒤에 섰다. 나뭇잎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을 빌려, 나는 마침내 거울 속의 영상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작디작은 얼굴, 새까만 머리카락, 가느다란 목. 나는 머리카락을 들어 올리고 목 뒤에 각인된 어두운 붉은빛 바코드를 바라보았다. 바코드는 마치 작고 가느다란 뱀 같았다.
나는 소천의 등에도 같은 표식이 있던 것을 기억해냈다. 뜨거운 여름밤, 그녀는 차가운 손으로 내 등을 문질러 주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니,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동지

이번 겨울은 건조하고 추웠다. 또한 먼 곳에서 항상 쾅쾅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천이 말하기를, 천년에 한 번 있는 뇌겁이라고 했다.
뇌겁은 하늘에서 내리는 것으로, 이 세상의 귀신이며 여우 요괴들을 불태우는 것이다. 뇌겁을 피하면 다시 천 년의 수명을 누릴 수 있지만, 피하지 못하면 불에 타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나는 이 세상에 뇌겁이라는 것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소천은 귀신이 된 지 너무 오래되어 약간 뒤죽박죽이 된 것 같았다. 그녀는 차가운 손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그녀는 종이처럼 창백한 얼굴로, 뇌겁을 피하려면 반드시 살아있는 사람 중에 후덕하고 복이 많은 이를 찾아 곁에 있어야만 한다고 했다. 쥐를 잡고 싶어도 그 옆의 꽃병을 깰까 두려워 차마 잡지 못하는 것처럼, 귀신이 그런 이 곁에 있으면 뇌공도 쉬이 뇌화를 던질 수 없으리라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너무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계획하고 있던 가출을 미뤘다. 짐은 이미 몰래 정리해 둔 상태였다. 짐이라고 해도 훔쳐온 감자 몇 알, 오래된 옷 몇 벌이 전부였지만. 내 몸은 더 이상 자라지 않을 테니 그 정도 옷이면 오래 입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천이 준 동전들은 챙기지 않았다. 아마 바깥 세계에서는 그런 것들이 쓸모없을 테니까.
나는 정말로 귀가를 떠나고 싶었다. 어디로 가건 상관없었다. 그저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를 보고 싶었다.
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주춤거리고 있었다.

 

동짓날엔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작고 하얀 눈송이는 마치 부서진 톱밥처럼 날려 땅 위에 내리자마자 녹아 버렸고, 정오가 되어서야 겨우 얇게 한 겹 땅 위에 깔렸다.
나는 혼자 적막한 거리를 걷고 있었다. 매우 무료했다. 예년 이맘때라면, 나는 연적하를 찾아 난약사에 갔었다. 우리는 함께 연못의 얇은 얼음을 두들겨 깨고, 직접 만든 초라한 낚싯대를 얼음 아래로 드리워 물고기를 낚았다. 겨울 메기는 지방이 풍부하기 때문에, 마늘을 더해 함께 구우면 맛이 아주 좋았다.
연적하를 본지 오래되었다. 그의 머리카락과 수염은 좀 자랐을까.

뇌성이 여전히 쾅쾅 울리고 있었다. 멀리서 들리는 것도 같고 가까이서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귀 안에 윙윙거리는 이명이 일었다. 나는 노귀의 가지 위로 올라 조용히 앉아 있었다. 바스락바스락 눈송이가 내리고 있었지만 내 몸 위로는 떨어지지 않았다. 내 주변은 그렇게 따뜻하고 또 조용했다. 나는 몸을 둥글게 말고 마치 새처럼 잠들었다. 
귀가가 한 마리 가늘고 긴 뱀으로 변했다. 노귀는 뱀의 머리였고, 난약사는 꼬리였다. 빛을 발하는 청석 가도의 노면은 뱀의 몸에 달린 비늘이었고, 비늘 조각마다 작은 귀신의 얼굴이 하나씩 정교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뱀은 아주 고통스러운 듯, 멈추지 않고 요동치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흰개미며 거미들 한 무리가 뱀의 꼬리를 물어뜯고 있었다.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들은 날카로운 이와 발톱으로 뱀의 비늘을 하나하나 벗겨내어 살점을 드러냈다. 푸른 뱀은 말없이 발버둥 치며, 결국은 한 치 또 한 치 그 벌레들의 입속으로 사라져갔다. 뱀의 몸이 다 먹혀갈 무렵, 뱀은 마침내 비통한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뱀의 머리는 바로 소천의 얼굴이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차가운 바람이 휙휙 소리를 내며 노귀의 잎을 흔들고 있었다. 주변이 너무 조용했다. 그 시끄러운 까마귀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한 마리는 마치 긴 수염처럼 턱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내 가슴 위에 쭈그린 채 졸고 있었다. 
나는 근심스러운 나머지 있는 힘을 다해 까마귀를 깨웠다. 까마귀는 잘게 부서진 유리 같은 눈을 뜨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녕!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야?”

내가 말했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데?”
“어디든 좋지.”

그것이 말했다.

“귀가는 곧 끝날 거야. 우리 모두 끝났다고.”

나는 나뭇잎 사이로 머리를 내밀었다. 청회색 하늘 아래, 수많은 까마귀 떼가 난약사 위를 빙빙 돌며 끊임없이 깍깍 울부짖고 있었다. 예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나는 나무 아래로 뛰어내려 뛰기 시작했다. 길고 좁은 거리를 뛰며 검은 문과 창들을 지났다. 시끄러운 까마귀 소리에 잠에서 깼을 귀신들은 감히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문 뒤에 숨어 울부짖을 뿐이었다. 마치 겨울날 집 아래 살고 있는 귀뚜라미 떼처럼.

난약사의 퇴락한 담장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수많은 거대한 강철 거미들이 대전을 향해 기어가고 있었다. 암홍빛 유리 기와며 조각한 대들보가 하나하나 뜯겨 나와 눈 위에 내던져지고 있었다. 거미들은 평평한 몸에 눈에서는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날카로운 입은 아주 흉악해 보였다. 거미들의 몸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르릉거리는 거대한 소리는 바로 우레 치는 소리 같았다. 까마귀 떼는 날개를 파닥거리며 거미들에게 기와를 던져 으스러뜨리려 하고 있었지만, 그런 미약한 힘으로 거미들을 막을 수 없었다. 기왓조각이 강철로 된 껍질에 맞을 때마다 드물게 텅 빈 듯한 되울림 소리만이 돌아왔다.
채소밭도 짓밟혀 있었다. 얇게 깔린 눈 아래 검은 진흙이며 창백한 덩이뿌리들이 드러나 있었다. 나는 고 선사의 팔 한쪽이 기와더미 속에서 빠져 나와있는 것을 발견했다. 관절 부분이 녹이 많이 슬어 있었다.

나는 정원 안으로 뛰어들어가 연적하를 불렀다. 그는 내 목소리를 듣고 작은 집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여전히 귀신을 잡고 요괴를 항복시키는 그 옷을 입고 머리에는 삿갓을 쓴 채 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도와 달라고 말하려고 했다. 그에게 이 거미들을 쫓아 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들은 입안에 갇혀 한마디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마치 아주 쓰고 또 아주 떫은 사탕처럼. 연적하는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나에게 다가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연적하의 손은 소천의 손처럼 차가웠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웅장한 대전이 하나하나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대전은 기와로, 벽돌로, 진흙덩이로, 나무토막 더미들로 변했다.
거미들은 난약사 전체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담장, 대전, 채소밭, 연못, 죽림, 그리고 연적하의 작은 집까지. 남아있는 것은 진흙탕이 된 폐허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귀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청석을 깐 길을 파헤치며, 길 양쪽의 낡은 집들을 밀어버리면서. 집 안에 있던 귀신들이 쫓겨나와 뛰어다니며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그들의 피부가 어두운 하늘빛 아래 천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꽃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피부가 조금씩 검은색으로 변하며 떨어지고, 코를 찌르는 듯 역겨운 탄내가 날 뿐이었다. 

나는 눈 쌓인 땅 위에 주저앉았다. 그 냄새 때문인지 구역질이 멈추지 않았지만 빈 뱃속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사이사이 소리 내어 울 뿐이었다.
이게 바로 뇌겁이었다.
불에 타서 모습이 전혀 달라져 버린 귀신들이 울부짖으며 눈 위를 뛰어다녔다. 그들이 발버둥 칠 때마다 눈 쌓인 땅 위에는 각종 발자국이 남았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비뚤비뚤 쓴 글씨 같았다. 갑자기 소천이 떠올랐다. 나는 나는 듯이 뛰기 시작했다. 

소천은 어두운 방에 앉아 흥얼거리며 머리를 빗고 있었다. 우르릉거리는 뇌성 속에서도 그녀의 노랫소리는 그렇게나 평온하고 또 그렇게나 투명했다. 마치 달빛 아래 꿈과 같은 풍경이었다. 그녀의 몸에서는 온갖 화초의 향이 한 겹 또 한 겹 감돌고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화염처럼 멈추지 않고 출렁거렸다. 나는 그녀의 곁에서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듣고 있었다. 온 방 안이 모두 흔들리기 시작할 때까지.

지붕 위에서 온갖 소리가 들려왔다. 강철이 부딪치는 소리, 발걸음 소리, 그리고 연적하의 고함. 기와들이 우르르 떨어져 내리고, 그 틈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내렸다. 은빛 눈꽃이 햇빛 속에서 사방으로 춤을 추었다. 나는 소천을 불빛이 없는 어두운 구석으로 밀어 넣고 홀로 문밖으로 나왔다. 연적하는 검을 쥔 채 지붕 위에 서 있었다. 차가운 바람에 그의 옷자락이 펄럭였고, 그는 마치 찢어진 회색 깃발 같아 보였다. 

그는 거미의 등으로 뛰어내려 검으로 거미의 눈을 찔렀다. 거미는 한바탕 발버둥을 치더니, 결국 그를 떨쳐냈다.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연적하의 몸을 잡아 입가로 가져갔다. 마치 장아찌라도 씹는 것처럼. 연적하의 몸은 한 조각 한 조각 거미의 입안에서 떨어져 나와 탕탕 소리를 내며 지붕 위로 날아갔다. 그의 반질반질한 머리가 기울어진 지붕을 따라 떨어져 내 발 앞까지 굴러왔다. 마치 잘 삶은 계란 한 알 같았다.  

나는 그의 머리를 주워들었다. 연적하는 나를 죽어라고 한참을 노려보았는데, 그의 눈에 눈물은 보이지 않고 그저 분노와 후회의 기색만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눈을 꽉 감았다. 이 모든 것을 계속 보고 있을 만큼 모질지는 못한 그였다. 
거미는 연적하의 몸을 씹어 파편 더미로 만든 후, 지붕에서 뛰어내려 나에게 기어왔다. 거미의 눈은 짙은 남색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소천이 나에게 달려와 차가운 두 손으로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나는 힘을 좀 써서 소천을 다시 방 안으로 밀어 넣고, 연적하의 검은 주워 들고 거미를 향해 달려 나갔다. 

강철이 섬뜩하게 번쩍였다. 마침내 내 머리가 청석 가도 위로 데굴데굴 굴러떨어졌고,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온 세계가 기울어지고 있었다. 기울어진 하늘, 기울어진 거리, 눈꽃도 기울어진 채 춤을 추고 있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몸을 돌렸다. 거미가 내 몸을 씹고 있었다. 암홍색의 걸쭉한 거품이 그의 입가에서 용솟음쳐서 눈 위로 점점이 떨어졌다. 거미의 속도가 점차 느려지더니,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거미의 눈 속에 비치던 어두운 푸른빛도 사라져 버렸다. 
소리 없이 신호라도 받은 것처럼, 뒤에 따라오던 다른 거미들도 한 마리 한 마리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귀가 전체에 죽음과도 같은 적막이 내려앉았다.
눈송이만이 소리 없이 그들 위로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웃고 싶었다. 그러나 웃음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숨을 들이마실 수 없었으니까. 나는 입을 헤 벌렸다. 어떻게든 내 얼굴에 웃음을 남기고 싶었다. 
저 거미들은 나를 살아있는 사람이라 믿은 것이다. 내 몸을 씹다가, 피를 보고 또 살의 맛을 느낀 것이다. 그들은 산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없었고, 만약 산 사람을 해치면 자살해야만 했다. 이것도 유희의 법칙이었다. 귀신이건 거미건, 누구도 결코 위반할 수 없는 법칙.
이 녀석들이 이렇게까지 아둔할 줄은 몰랐다. 정말이지, 귀신보다도 속이기 쉬웠다.

눈앞이 점점 흐려졌다. 청회색 하늘이 한 겹의 얇은 직물을 내려 내 머리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까마귀의 말을 떠올렸다. 산 사람은 머리를 베면 정말로 죽는다고 했지.
나는 이 거리에서 자랐고, 이 거리를 뛰어다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거리에서 죽는다. 살아있는 사람으로, 그렇게 죽는다.
하얗고 차가운 손이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차가운 바람이 느껴 울며 붉은빛 눈꽃을 내 얼굴 위로 날려 보냈다. 나는 그것이 눈이 아니라 소천의 눈물임을 알았다.

-<과환세계> 2010년 10기 발표

 

*작가 : 샤쟈
샤쟈는 80년대 생 여성 중국 과학소설가이자 판타지 작가인 왕 야오(Wang Yao)의 필명이다. 북경대에서 비교문학 및 세계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서안교통대학 중문과 부교수로 일하고 있다. 샤쟈의 각 단편들은 중국 내에서 은하상 및 성운상 수상작으로 여러 번 선정된 바 있으며, 중국어와 영어 외에도 체코 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폴란드어로 번역되었다. 「백귀야행의 거리」는 켄 리우가 번역하여 클락스월드(Clarkesworl)에 게재되었으며, 2013년 과학소설 및 판타지 소설 번역상 선외 가작 수상을 비롯하여 한 해 최고 SF 앤솔로지 수록작으로 여러 번 선정된 바 있다.
* 번역가 : 이소정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북경대에서 중국고대사로 석사를 받은 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중국어 사전실 연구원을 역임했다. 《증허락》을 번역했고, 현재 《장상사》, 《특공황비 초교전》을 번역 중에 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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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dHatter 18.01.23 00:07 댓글

    도중에 갑자기 바코드 얘기가 나오기에 그게 그건가 했는데 그게 그거였군요. 환상적인 색채 속에 기분 나쁠 정도로 현실적인 분위기가 느껴져 서글펐습니다. 귀가의 주민들은 도시빈민 + 망해가는 자영업자 + 강제 철거민 + 직업병 피해자의 요소를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더 끔찍합니다 ㅠㅠ 낭만도 돈이 돼야 존속할 수 있다는 사실이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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