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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의식 업로드에 처음 성공한 작자들은, 이런 미래 따위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아니, 그때 처음 성공한 작자들이 아직까지도 조상님 행세를 하며 갑질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그 자들은 알면서도 저질렀을 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한 명 있으면, 그에게는 최소 두 명의 생물학적 부모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 있을 수도 있고. 그에게는 최소 네 명의 조부모가 있으며, 여덟 명 이상의 증조부모가 있다. 자식을 낳지 않고 살다가 의식을 업로드한, 잔소리많은 친척과 같은 자들까지 생각하면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조상들이, 여전히 죽지 않고 의식을 업로드한 채 우리 곁에 머무르며 온갖 구시대적인 취향들을 강요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식이다. 비틀즈의 음악이나, 크리스마스 때 머라이어 캐리의 캐롤을 듣는 것 까지야 뭐, 고리타분한 구식이라는 느낌은 있어도 클래식이니까 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서기 2377년이고, 그 사이에도 수많은 톱스타들이 인류의 음악과 영상물 라이브러리를 업데이트해 왔는데, 왜 업로드한 의식들, 간단히 말해서 조상들은 여전히 1990년대의 음악과 드라마를 틀어대느라 정신이 없느냔 말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정우성이나 이정재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사진을 보면 이해는 간다. 잘 생기긴 했지. 하지만 그때 2D로 찍어놓은 사진이나 영상 같은 것을 이제와서 뭘 어디에 쓸 수 있겠나. 이건 그냥 17세기의 초상화만큼이나 쓸모가 없는 것이다. 지금은 지금의 미남들이 있고, 직접 연기를 할 수도 있고, 샘플링을 해서 가상의 모델에게 스턴트를 시킬 수도 있고, 얼마든지 지금 시대에 만들어지는 창작물들을 즐길 수가 있는데.

- 너희가 하는 건 너무 경박하다니까.

천일쯤 사귀었다고 하면 이승환의 "천일동안"을 틀고, 사랑에 고민하고 있어도 윤종신이며 토이를 틀고 있다. 7080 주점이라고, 2370년대가 아니라 1970년생들 취향에 맞는 노래들만 틀어주는 바가 따로 있는데, 거기 가면 서태지며 H.O.T며 핑클의 음악이 나온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하다못해 2000년대 이후의 음악도 아니다. 사귄지 1년이 되었다고 하면 어디서나 질리도록 틀어주는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1년"도 진저리가 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이건 2001년도에 나온 노래라니 이번 밀레니엄에 아슬아슬하게 발이라도 걸치고 있지.

- 좀 차분한 옛날 음악도 듣고 그래야지. 클래식 모르나.

전부 1990년대의 음악들. 무슨 세기말, 아니, 두번째 밀레니엄의 말기 분위기를 아직까지 생명연장 시키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세 번째 밀레니엄이 시작되고도 세기가 세 번을 더 바뀌었는데. 하다못해 그때 음악이 지금보다 더 차분하다는 말에도 동의할 수 없다. 저 "벌써 1년"만 해도 원곡을 들으면 차분하지만, 그걸 테크노 스타일로 편곡한 버전을 나이트클럽에서 틀어놓고 사람들이 미친듯이 춤을 추는것을, 바로 그 370년 전의 드라마 클립에서 본 적이 있다.

대체, 무슨 놈의 클래식.

"이해는 해 줘야지, 어쩌겠어."

효리가 한숨을 쉬었다.효리의 조상님은 하필 90년대의 톱스타였던 핑클의 오타쿠였는데, 자손들 중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핑클의 이름을,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젝스키스의 이름을 돌아가며 붙였다고 한다.

효리네 엄마는 원래 이름이 유리였는데, 나중에 성인이 되고 이름을 변경하신다고 한참 고생하셨다고 들었다. 그 와중에 조상들이 반대까지 해서 더 어려웠다고. 그래도 워낙 대가 세신 분이라 잘 헤쳐나가셨다는데, 효리 얘는 또 애가 물러서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아마 그 이름 그대로 쓰겠지. 생각해보니 내 구남친 이름은 창민이었는데, 그 동생은 윤호였다고 한다. 대체, 대대손손 자손에게 이게 무슨 짓들이야.

"취향이라는 거야 존중해 줘야지."

"그래, 취향 존중은 알겠는데. 그 조상들이 우리 취향을 존중 안 하잖아."

"그건 그래."

효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음료수 팩을 열었다.

이번 밀레니엄 초에, 인공지능이 소위 "폭발기"를 맞이하고, 인간의 의식을 온전히 네트워크에 업로드하여 기억과 판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저 1970년대생들은 막 50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인간의, 영생에 대한 욕망에는 끝이 없다. 불로초를 찾으러 다니고, 피라미드를 짓고, 신선이 되겠다며 수은을 넣어 빚은 단약을 먹고. 그런 것들을 비웃던 20세기 후반 사람들도 불치병에 걸렸을 때 냉동인간이 되어 먼 미래에 깨어나 치료를 받겠다며 이집트 파라오 피라미드 짓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 낡은 몸을 버리고 네트워크에 의식을 업로드하여 영원히 살아가는 기술이 나타났다. 무협지 스타일로 말하자면 우화등선이었다.

처음에는, 달에 가는 것이나 냉동인간이 되는 것 처럼 일부 선택된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가능할 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이미,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개념이 내면화되진 못했을지언정 보편화되어 있었고, 누구나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식을 업로드하고 네트워크 안에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게도 되었다. 낯선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청소년기나 늦어도 대학에 갈 무렵에는 컴퓨터와 인터넷에 일상적으로 접속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SNS로 공유하던 이들이었으니까. 좀 더 많은 것을 공유하며 네트워크와 물아일체를 이룬 것 뿐이다. 그래, 그들 중 목소리 큰 몇몇이 아직도 말하는 저 고전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말, "인류보완계획"처럼 말이다.

"사람이 100명이 있으면 그 중에서 한 80명은 보통 사람이고, 10명은 찌질이고, 다음 세대에게도 쓸만한 말을 해주는 사람은 열 명도 안 되는 거 아냐? 근데 100명을 모두 업로드해서 대대손손 잔소리를 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90명을 버리고 가면 평등에 위배되니까."

"그래, 모두가 평등하게 갈 수 있는 저승이지. 근데 또, 사고로 즉사한 사람들은 업로드도 못하잖아. 오래 앓다가 죽은 사람이면 몰라도."

"그렇네."

나는 전자책 화면을 옆으로 밀어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교양과목 과제 때문에 보고 있던, 한국의 무속에 대한 책이었다. 무속신앙 같은 것은 이미 사라져 이제는 그 형태만이 남았을 뿐인데. 책을 읽다 보니 묘하게 현실과 겹치는 지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있잖아. 요즘 세계의 종교라는 과목 듣잖아, 나."

"그거 나 몇년 전에 듣고 망했는데. 근데 그걸 왜 들어?"

"심심해서."

"심심해서 공부를 하냐. 진짜 특이해."

"어쨌든 그거 레포트 쓰느라고 한국의 무속 조사하는데, 좀 흥미진진해."

"거기서 흥미진진할 게 있어?"

"어. 조상이 해코지하는 거."

효리는 음료수를 마시다 말고 쿨럭거렸다.

"일단 1980년대에 구비문학을 채록하여 정리한 게 있는데, 여기 보면 제사 음식에 성의가 없다고 손자를 화로에 떠다 밀거나, 제삿날 며느리가 불손하게 굴었다고 손자를 국솥에 빠뜨려 죽여버리거나."

"그게 뭐야...... 이건 뭐 며느리를 협박하기 위해 손자를 인질로 삼은 귀신이잖아."

"응, 그리고 1960년대에 미국 민속학자가 한국 무속을 기록한 것도 나오는데, 여기 보면 '신령들은 앙심과 적의로 가득 차 있지만, 희생자들의 도덕적 특성이나 행위와는 상관없이 단지 변덕이 심해 희생자들을 공격한다고 믿어진다'는 말도 있고."

"야, 그거....."

"여기 있네. '조상 손은 가시손이다'라는 말도 나와. 심지어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조상도 자신이 살아생전 못 이룬 것들을 이뤄내라고 후손들을 괴롭히고, 후손들은 무당을 통해서 조상신에게 뇌물을 바치고."

"그거 그냥 업로드된 조상님들하고 비슷한 거 아니냐?"

효리가 다 마신 음료수 팩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엄마가 말야."

"응."

"인공지능 엔지니어잖아. 인공지능 관련해서 학자들이 1년에 한번씩 학회를 여는데, 몇년 전에 그런 이야기가 나왔대. 업로드 된 의식들이 영생을 누리는 건 좋지만, 교류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대에 제한을 좀 두자고."

"그거 좋네."

"이를테면 자기보다 100년 아래의 후손과는 교류할 수 있어도 그보다 더 넘어가면 교류하지 못한다거나."

"그치. 사실 뭐, 업로드한 의식이라도 만나고 싶은 건 우리 엄마 우리 할머니까지지, 그 이상이야 내가 알 게 뭐야."

"그래, 아주 괜찮잖아. 근데 그거 학회 하려는데, 인공지능들이 네트워크를 끊어버렸대."

"헐."

"누가 그랬겠냐."

"조상들?"

"어."

한숨만 나왔다. 대체 지난 세기도 아니고 지난 밀레니엄에 태어난 자들이 이게 무슨 깡패짓이야.

"언제까지 대장 놀이를 하고 싶은 거래?"

"나도 모르지."

우울해졌다.

사람은 태초부터 신을 꿈꾸고, 영생을 꿈꾸었지만.

이제 의식을 업로드하고, 수백년 뒤 후손에게 잔소리도 할 수 있는 지금, 사람의 모습은 여전히 그냥 사람일 뿐이었다. 신을 닮아 가는 것도 아니고, 일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지만 대부분은 여전히 지난 세기, 지난 밀레니엄의 실수를 반복하면서, 그저 살아갈 뿐이다. 그런 사람들이, 다시 의식을 업로드하고 영원히 살며 후손들을 괴롭힌다. 진저리가 날 정도로.

"있잖아, 효리야."

"응?"

"나, 그냥 수어사이드 할까봐."

"고모 또 왜 그래."

효리가 정색을 했다.

"내가 아빠는 싫어도 고모는 좋다고 했잖아."

"그랬지."

"고모가...... 더 나이 먹지 않아서, 고모하고는 그래도 말이 통하는데."

"어차피 난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잖아."

나는, 화면 너머 닿지 않는 효리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25년 전, 내가 딱 지금의 효리와 같은 나이일 때, 내 몸은 죽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발견되었을 때 즉사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미성년자라 부모님의 뜻대로 의식이 업로드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의식만은 살아있다. 영원히 17살인 채로 늙지 않으면서, 이런저런 공부들을 찾아 하면서 나름대로 부지런히 지내고 있었다. 사실은 그때 죽은 거라고, 이건 그냥 길고 긴 임사체험이라고 생각하면서.

"놀아줘서 고마워, 효리야."

"왜 그래, 고모."

완벽하게 죽지 못했던 자신을, 간혹 원망하면서.

"난 그때 자살했었어."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지게 되어버렸다. 오빠가 꼰대 중년이 되고, 부모님이 늙어가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하고싶은 일만 하려고 애썼다. 네트워크상에서 좋아하는 만화를 보고, 팬픽을 쓰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애들이 나이들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하지만 그때는 죽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어."

효리를 만난 건 선물이었다.

이 아이를 만났을 때, 나는 처음으로 완벽하게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이 아이가 태어난 것을 기뻐하고 이 아이를 사랑할 만한 의식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언젠가는 수어사이드 모드를 실행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이 딱 좋은 것 같아. 네가 나만큼 나이를 먹은 지금, 네가 내 나이를 추월하려는 지금."

"내가 지금 조상들 갖고 뭐라고 해서 그래?"

"조상 이야기는 내가 먼저 했어."

오빠가 이혼을 했지만, 효리는 여전히 내 조카였고, 효리는 나를 나이들지 않는 친구처럼 여기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열 일곱 살이지만, 효리는 이제 열 여덟 살이다. 그리고 나는, 계속 그 애에게 말을 걸고, 잔소리를 하고 싶어하겠지.

언젠가는 그 애가 질려서 진저리를 낼 때 까지 그러고 말 것이다. 다른 조상들처럼.

나는 닿지 않는 저 편, 한 번도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못한 조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고민은 길었고, 결심은 순간이었다. 모니터 너머에서 누군가가 사라지는 일은, 피와 살을 지닌 가족이 눈 앞에서 죽는 것 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잘 있어, 효리야."

그리고 관리자 모드로 들어가, 수어사이드 모드를 실행했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멀어져 가는 의식 너머로 환각처럼 빛이 보였다. 길고 긴, 임사체험의 끝을 알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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