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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디, 블러디

해망재

배가 살살 아팠다. 영미는 가게에 걸린 달력을 노려보았다. 할 때가 되었는데, 이번 달에는 아직도 달손님이 오질 않았다.

“왜 그렇게 똥 씹은 얼굴이야?”

“아니, 올 게 안 와서 그러지……”

“늦둥이 생긴 거 아니야?”

“농담은 무슨……”

“생길 수도 있지. 얼마 전에 우리 성당 자매님이 나이 오십에 늦둥이가 생겼는데…..”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아이쿠, 아니, 왜. 아직도 이렇게 고운데 말이야.”

펌을 하러 온 단골, 재우엄마가 깔깔거렸다. 영미는 맞장구를 치듯 웃어보이며 아랫배를 한번 쓸어보았다. 웃으면 복이 오고 건강이 좋아진다더니, 시답잖은 수다를 떨며 깔깔댄 덕분인지 조금은 배가 덜 아픈 것도 같았다.

느낌만으로 보면 벌써 오늘 오전 쯤에는 생리가 터졌어야 했는데.

“다음 화요일에 산부인과라도 가 봐야 하나.”

“그래, 그래라. 그 있지? 저기 우리 성당에 누구는 그게 했다 안했다 시도때도 없이 왔다갔다 해서 그냥 폐경인 줄 알았는데, 세상에 암이었다지 뭐야. 여자 건강은 여자가 챙겨야지.”

재우엄마의 머리를 야무지게 말며, 영미는 달력을 한 번 더 쳐다보았다. 그때, 미용실 문이 열렸다.

“아이쿠머니나!”

먼저 소리를 지른 건 재우엄마였다.

“저, 저게 무슨 일이야!”

문을 연 사람은 분명, 자신의 남편이었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연이 아빠, 어떻게 된 거야? 응?!”

“병원, 119!”

재우엄마가 급히 119에 전화를 걸었다. 영미는 피를 줄줄 흘리머 나타는 남편을 소파에 눕혔다. 남편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뭔가 말하려 했지만, 목구멍에서 피가 튀어나올 뿐이었다.

“연이 아빠……?”

세상에, 어떡해. 이 사람 이제 겨우 마흔 다섯 살 밖에 안 되었는데.

우리 연이는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인데. 이렇게 벌써 보낼 수는 없는데, 이걸 어쩌면 좋아. 영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남편을 붙잡았다. 그때 남편의 입에서 시뻘건, 씹다 뱉은 굴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전 세계의 성인 남자 중 약 10%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려지는 괴질이 발생하고 열흘 째.

“어이, 연이 엄마. 나 물.”

처음 피를 토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아니, 의사 선생님이 이제 다 정상이라고 했잖아. 언제까지 누워 있을 거야.”

“원인불명의 괴질이라잖아. 넌 대체 하늘같은 남편이 누워 계시는데 무슨 잔 말이 그렇게 많니.”

원인 불명의 피를 토하기 시작하면 짧게는 사흘, 길게는 여드레 동안 말을 하려고 할 때 마다 목구멍에서 피가 쏟아졌고, 끝나고도 며칠은 목구멍에서 피 냄새가 올라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마치 돌림노래를 부르듯이, 오늘은 앞집 남자가, 내일은 아래층 남자가 피를 토하며 실려가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연이아빠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던 영미네 미용실은, 그 “원인불명의 유행성 괴질”의 공식적인 첫 발병지가 되어버렸다는 것이고.

그 덕분에 개점휴업도 아니고, 아직까지도 폐쇄된 채 소방서, 경찰서, 국과수에다가 질병관리본부까지 드나들며 온갖 조사를 벌이는 중이었다. 이 동네에서 장사는 다 했지. 영미는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그런데다 저 남편은, 안 죽은 건 다행이지만 얼마나 밉상짓만 골라서 하는지.

“아이구, 나 죽네……”

연이아빠는 병실 침대에 누워서 짐짓 앓는 소리를 냈다. 몸만 일으키면 꺼낼 수 있는 물병 하나도 제 손으로 안 꺼낸 채, 그는 아내와 간호사, 그리고 의사들이 자신을 동물원의 판다처럼 애지중지해주지 않는다고 계속 짜증을 냈다.

“의사들이 말이야, 이런 괴질이 유행하는데 좀 목숨걸고 치료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여기 선생님들 잘 해. 그러니까 당신이 벌써 일어나 앉아서 이렇게 못된 소리나 하고, 그러지.”

“아니, 높은 선생님들이 코빼기도 안 보이잖아.”

연이아빠가 말하는 그 높으신 선생님이란, 의학드라마 같은 데 나오는 나이 지긋하신 과장님들, 그리고 남자 의사들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와 보긴 했지. 그런데 하루이틀, 늦게는 열흘 쯤 지난 후에 다들 입에서 피를 토하며 실려오는 바람에, 이 괴질은 대부분 여자 의사들이 맡아 치료하게 되었다.

“희한한 일이야.”

연이아빠가 중얼거리며 스포츠 중계를 틀었다. 이 3인 병동에는 전부, 괴질로 쓰러진 남자만 누워 있었다. 두 사람은 아직 피를 토하고 있었고, 말을 하는 건 연이아빠 뿐이었다.

차라리 말이라도 못할 때는 딱하기라도 했지.

영미는 투덜거리며 복도로 나갔다. 이쪽 병동의 병실들 전부, 그 피를 토하고 실려온 남자들이 누워 있었다. 복도 끝은 함부로 사람들이 드나들 수 없도록 폐쇄가 되었고, 영미나 다른 남자들의 가족들은 병동에 들고 날 때 마다 소독제로 손을 씻고 마스크를 쓰고 비닐 가운을 입어야 했다. 여자들에게는 감염이 되지 않는 듯 했지만, 환자와 접촉했다가 밖으로 나가며 다른 남자들에게도 전염시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했다.

희한한 건 이 쪽이야, 여보.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며 영미는 중얼거렸다.

영미는 아직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 남편이 그렇게 쓰러졌으니, 병원에 가 볼 틈도 없었다. 생각해보니 여기도 병원인데. 하긴, 생리 같은 것으로 누가 병원에 가나. 임신을 했나 걱정이 될 때나 가는 거지. 그녀는 지하 식당 입구의 편의점에서 임신테스터를 하나 집어들었다.

“아, 나도 저거 해 봐야 하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옆 병상 환자의 아내였다.

“그쪽도 그거 안 해요?”

“예, 때가 지났는데 안 하네요.”

그녀도 테스터를 하나 집어들었다. 마지막 남은 한 개였다. 편의점 사장이 바코드를 찍으며 무심하게 한 마디 했다.

“요새 그거 잘 나가요.”

“그래요?”

“우습지 않아요? 여기가 병원인데. 저기 4층에 산부인과도 있는데 말이야.”

편의점에서 나오다, 영미는 옆 병상 환자의 아내를 돌아보았다.

“점심 같이 먹을래요?”

“예.”

구내식당도 있었지만, 마침 옆에 파파이스도 있었다. 두 여자는 나란히 가게로 들어가 신제품 버거 세트를 하나씩 주문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생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자꾸 고기 생각이 나네요.”

영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도 지금 그럼 생리 건너 뛰었어요?”

“예. 아니, 이거 여자한테 안 옮는다고 그러는데, 혹시 여자는 옮으면 생리를 안 하게 되는 건 아닌가 몰라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옆 방에도 환자들 있잖아요. 그쪽 보호자들 다 생리 건너 뛰었대요.”

“어머나, 세상에.”

영미는 고개를 들었다. 햄버거 가게 구석에 큼직한 TV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소리는 꺼진 채였지만, 뉴스 채널이 쉴새없이 자막으로 뉴스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애 아빠가 스포츠만 틀어서 뉴스를 못 봤네.”

뉴스 하단에는 자막으로, 이번 달 생리대 매출이 급감했다고, 여성들이 생리대를 해외에서 직구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나오고 있었다. 영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가게에 손님이라고는 자신들 두 사람 뿐이었다.

“저기…… 여기 뉴스, 소리 잠깐 틀어도 돼요?”

직원이 리모콘을 들어 소리를 켰다. 패널로 앉은 두 남자가, 생리대 매출에 대해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 식약청의 입장으로는, 그렇게까지 위험하진 않다던데요.

– 생리 양이 줄어들거나 생리통이 심해진다는 의견들이 있습니다만, 식약청이나 기업의 입장은 그렇지 않고요.

– 여성환경연대에서 자체적으로 검출 시험을 했다는데요.

– 그렇습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도 아직 생리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환경호르몬 등을 검출하는 표준 시험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요. 우리나라 제품들이 그렇게 나쁜 제품이 아닙니다. 써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랄하고 자빠졌네.”

영미가 중얼거렸다.

“저 생리대 쓰셨어요?”

“쓰지, 생리통이니 양이니 그런 건 둘째치고, 커버가 다 쓸려서 순식간에 일어나던걸.”

“저런……”

“그거 표면이 다 일어나서 먼지 날리면, 그 먼지가 다 어디로 들어가겠어. 물건을 저따위로 만드니 여자들이 그렇게 아프지. 나도 내가 왜 아픈가 했는데, 우리 딸이, 걔가 이제 중학생이거든. 걔가 몇달 전에 학교 갔다가 와서, 엄마 이 생리대 쓰지 말라고 그러는 거야. 인터넷에 보니까, 이 생리대 쓰고서 생리통 심해져서 고생하는 여자들이 그렇게 많다고.”

– 여성들이 직구하는 제품 중 1위가 이 제품이죠. 원재료로 유기농 면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국내에서는 이런 제품을 만들지 않는 겁니까?

– 유기농이라고 하는데, 사실 토양오염이 심해서 이거나 국산이나 비슷합니다. 아무래도 여성 건강과 직접 연관이 있는 제품이다 보니 예민한 반응은 이해할 수 있지만, 좀 더 이성적인 선택을 하실 필요가 있는 부분이지요.

“아, 저는 이번에 생리컵이라는 걸 사 봤어요.”

“생리컵?”

“요만한 컵인데, 몸에 넣으면 그 안에 피가 고이는 거예요. 이번에 생리를 건너뛰어서 써 보진 못했지만.”

“아니, 그만한 걸 어떻게 넣어. 남사스러워서…… 탐폰도 민망하다고 안 쓰는 사람도 있는데.”

“외국 여자들은 이거 많이 써요. 실리콘이라 해롭지도 않고.”

“하긴…… 이런 뉴스 보면 그런 생각도 들긴 하겠다.”

영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옆 병상 환자의 아내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페이지 하나를 보여주었다.

“이게 뭐야?”

“이번 달에 생리 건너 뛰었다는 여자들요.”

SNS라고 하던가, 사람들이 모여서 시끌시끌하게 올라가는 페이지였다.

“이상할 정도로 많아요. 생리 건너뛴 여자들이.”

묘한 느낌이 들었다.

“모르겠어요. 여자가 걸리면 생리를 안 하는 건지, 아니면 괴질같은 게 도는 비상 상황이니까 여자 몸이 알아서 생리를 거르고 가는 건지…… 근데 우습지 않아요?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생리를 안 하고 생리전 증후군만 끙끙 앓고 있는데, 생리대가 안 팔려서 큰일이라고 뉴스 나오는 게.”

“그래도 지금은 세상 많이 좋아진 거지…… 예전에는 생리의 생 자도 방송에 못 나오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건 그래요.”

그녀가 폰을 내려놓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제 남편이 피를 토한 게, 제 생리 예정일 하고도 이틀이 더 지난 다음이에요.”

“응?”

“첫날은 피가 조금씩 나오다가, 둘쨋날부터 갑자기 피가 쏟아지고, 덩어리같은 게 잔뜩 나왔어요. 나흘째까지 그렇게 피가 나오다가, 오늘이 닷새째인데 양이 확 줄었고요.”

영미는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 눈을 깜빡였다.

남편이 처음 쓰러졌을 때, 남편이 입에서 뱉어내던 핏덩어리가 생각났다. 씹다 뱉은 굴 같은 것.

“왜, 여자들이 굴을 낳는다고 그러잖아요.”

“굴?”

“생리할 때 그 덩어리 져 나오는 거요.”

“그래…… 시뻘개서 그렇지 형태만 보면 좀 씹다 뱉은 굴 같긴 하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며 말했다.

“지금 저 남자, 입으로 생리하는 게 아닌가.”

“……설마.”

“남편이 아픈데 이런 생각 하는 게, 이상할 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정말, 정말정말 화가 나는 순간들이 있어요. 이렇게 많은 남자들이 입에서 피를 흘리는 것은 뉴스거리가 되는데,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이번 달에 갑작스럽게 생리를 건너뛰는 건 뉴스거리조차 되지 않는 게. 여자 몸이 아니라 생리대 매출에 대한 뉴스가 나온다는 게.”

영미는 뭔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한없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분명히, 신경이 쓰였다.

“저 원래는 간호사였어요. 이런 종합병원은 아니고, 저기 지방 의료원의.”

“아.”

“결혼하면서, 시댁에서 3교대 하는 걸 싫어해서 그만뒀어요. 그래서 조금 아는데…… 오늘 아침에 의사들이 지나가다가 남자들이 토하는 혈액 성분에서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게 꽤 검출되더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게 뭔데? 생리에 있는 성분이야?”

“생리에만 있는 건 아니고요. 자궁근육을 수축시키는 건데…… 왜, 생리통 있고, 또 아이 낳을 때도 자궁이 이렇게 수축되고 그러잖아요. 그런 물질요.”

그녀가 스마트폰을 다시 집어들었다. 그녀는 엄지손가락을 재게 놀려, 조금 전 이야기하던 내용을 바로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근데 일리가 있긴 있다.”

“모르겠어요. 근데 이번 달에 유난히 생리 안 한 여자들이 많으니까.”

“남편이 입으로 생리를 해서 내가 이번 달에 건너뛰는 거면…… 뭐, 편하고 좋긴 하네.”

영미는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그럼 더 억울할 것 같아요.”

“응?”

“저는 평생 매달 해도 당연한 거고 숨겨야 하는 거고 탐폰 같은 건 정숙한 여자가 쓰는 게 아니고, 별 같잖은 잔소리를 다 들으면서 살았는데, 남자들은 피 좀 뱉는다고 바로 모두가 애지중지해주고 온 나라의 여자들이 들러붙어 수발들고 그러는 거라면.”

그녀는 한참 뭔가 입력하다가, 다시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영미는 그녀의 화면을 힐끔거리다가, 어째서인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근데 자기 그거 인터넷…… 뭐야? 나도 좀 볼 수 있어?”

“아, 이거 주소가 이렇게 돼요.”

“그럼 이게 자기야? 좀 전에 글 올린?”

“예.”

“그렇구나.”

영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혜선, 유안나, 박세란, 이월하, 아무개 엄마가 아니라 이름들이, 게시판에 올라온 글 말미마다 붙어 있었다. 영미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냥 옆 병상의 보호자일 뿐인데, 어쩐지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있잖아.”

“예.”

“자긴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한영미야, 한영미. 저기 도화동에서 미용실을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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