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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졸업 논문

2017.08.28 17:4508.28

졸업 논문

해망재

“다양성 말인데.”

 소희는 문득, 모니터를 들여다보다 중얼거렸다.

 “가장 완벽한 종자조차도, 다른 종의 다양성을 아예 배제해 버리는 방식으로는 발전시키지 않아. 받아들여서, 이제 정말 더이상 개량할 구석이 없을 때 까지 발전시켰어도 말야.”

 “응?”

 “단일한 속성을 가진 것들이 그야말로 대세를 이루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않잖아?”

 “뭐, 간단히는 병충해에 약할 테고. 그게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버그들이 나오겠지.”

 “맞아. 표면적인 이유야 사람들의 맛에 대한 취향이라는 건 워낙 다양하니까, 그러니까 이런저런 약점이 있는 종자들도 계속 재배하고 다른 방향으로도 개량 실험을 해 보는 건데. 그런데 말이지.”

 “무슨 문제라도 있어?”

 “응.”

 소희는 기지개를 쭉 켰다. 지하철역 근처, 그녀의 좁은 옥탑방은 순식간에 쭉 늘어난 팔다리로 가득찼다.

 “난 이제 내 셀들이 지긋지긋해.”

 “소희.”

 “어제 말이야, 그저께 날 죽인 녀석을 가만히 뒤쫓아갔어. 어떤 놈일까, 뭘 하는 놈일까.”

 “너도 참. 이 세계에 너무 이입하지 말라니까.”

 “어떻게 이입을 안 해, 졸업 연구인데.”

 그녀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3년이든 5년이든, 여기 내 셀들처럼 딱, 이만큼 공부하면 졸업할 수 있다, 그런 게 있으면 좋겠어. 이건 너무 길단 말야.”

 “네 셀들이라고 해도, 네 기준에서는 눈 깜짝할 만큼의 시간이겠지만 자기들 기준에서는 그렇게 빨리 학위를 받진 못해. 그나저나 이게 뭐야. 자기가 싫어하는 건 다 집어넣은 세상이라니. 셀들을 괴롭혀서 죽일 생각이었어?”

 “너무 순탄하면 셀들이 발전하지 못한다고 한 게 누구였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소희는 인내심이 약했다. 쉽게 짜증을 냈고, 쉽게 화를 냈다. 어쩌면 신이 되기엔 여러 면에서 부족한 성품이었다. 불멸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꼭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애는 늘, 남이 이룬 것은 자신도 이뤄야 직성이 풀리는 듯 했다.

 약점이 많았다. 그래도 자신의 피조물들을, 사랑하기라도 하면 좀 수월했을 텐데.

 “번식본능이 강한 놈들은 이해할 수 있어. 그런 놈들이 유전자를 남겨 왔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보통 이 정도로 지력이 올라가면 슬슬, 자기 개인의 유전자 뿐 아니라 종으로서 사회를 종속시키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지 않아? 내가 매뉴얼을 잘못 읽은 거야?”

 “초기 셋팅마다 다르지. 성격이라든가.”

 “내 성격하고 똑같이 넣었는데.”

 소희는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리다, 창문 밖으로 발가락을 내밀었다. 그녀가 살기에, 이 옥탑방은 너무 좁았다.

 “어떻게 내 성격하고 똑같이 넣어서 키웠는데, 이런 것들이 나왔나 몰라.”

 “간단해. 네가 아기였을 때 성격이 이렇게 지랄맞았다는 거지.”

 “시끄러워.”

 소희는 그냥 벽을 부숴버리려다가, 다시 웅크리며 한숨을 쉬었다.

 “날 닮아서 인내심도 부족할텐데, 애들을 낳고 산단 말이야.”

 “또 그런다. 감정이입 너무 하지 말래도.”

 “아니, 신기해서 그래. 번식본능이라는 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낳고…….”

 소희가 한숨을 쉬었다. 숨결이 몸에서 빠져나오자, 그 애의 몸은 다시 방 안에 적당히 어울릴 만큼 작아졌다. 찢어진 옷가지들을 발로 밀어놓고, 그 애는 옷장을 열었다. 싸구려 티셔츠 같은 것이 구깃구깃 구겨진 채로 튀어나왔다. 소희는 옷을 입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다시 알몸인채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있잖아.”

 “응.”

 “내가 신이 아니었다면, 난 정말 토막난 고깃덩이가 되었을 거야.”

 “신경 쓰지 마, 제발.”

 “내가, 그 녀석 앞에 가서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어. 안녕, 하고, 걔 말이다, 마누라도 있고, 자식도 있고, 키우는 강아지도 있었어. 그런 놈이, 오피스텔에서 몸 파는 계집애가, 그것도 겉보기 나이는 자기 딸이랑 얼마 차이도 안 나 보이는데 말야.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소주병으로 목이 너덜너덜해지도록 찔러놓고 도망갔으면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살더라? 야, 그런 걸 내가 셀이라고 만들어서 애지중지 키웠어요.”

 “그러게 얌전히 들여다나 볼 것이지, 왜 하필이면 그런 걸 하래.”

 “왜, 현실에서 안 하니까 여기선 할 수도 있지.”

 “그래도 그렇지. 너도 참 비위가 좋단 말야. 키우는 애완동물과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만들어낸 셀과 하는 건.”

 “마니악한데다, 화폐도 벌 수 있으니까.”

 “그래도 말이야.”

 “전에 그러지 않았어? 신은 가장 미천한 자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야, 셀들에게 좀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오피스텔에서 몸 파는 여자애, 언제 그런 녀석에게 찔려 죽어도 모를 그런 애 정도면 딱 괜찮지.”

 “그래서 셀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러고 있었다고?”

 “그래, 그래. 그런데 여기서 지내면 지낼 수록 확실한 게…… 내 셀들은 전부 실패작이라는 거야.”

 소희는, 여기서 자신의 피조물들과 비슷한 형태의 몸을 입어, 일종의 가상현실을 체험하던 중이었다.

 “짜증나 죽겠어.”

 귀찮네 어쨌네 말은 많아도, 소희는 호기심 하나는 차고 넘치는 아이였다. 제 피조물들, 그 셀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그 애는 심심하면 이런저런 셀의 모습을 하고 이 세상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셀들이 얼마나 모자라고 이기적인 것들인지 들여다보곤했다.

 피조물은 자신의 창조물을 닮는다더니, 이곳의, 그애의 모습과 마음을 본따 만든 셀들은 어느정도 지능이 발달하자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야기 속의 인물이 되어서 떠들고 놀며 주사위를 굴리더니, 나중에는 초기형 인공지능 같은 것을 만들어내어 그 안에서 가상게임을 즐기고 놀았다. 마치 소희가, 자신이 만들어낸 실패작들 사이에서 걸핏하면 싸우고 살해당하며, 피와 죽음과 야만적인 성행위가 가득한 날들을 경험하고 즐기는 것처럼.

 그런 것을 보면, 아직 신이 되려면 한참 남은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실패한 세계에서도 깨달을 것들은 얼마든지 있다. 여튼 피조물은, 그를 만들어낸 논리회로의 패턴을 닮아가는 법이니, 좋은 신이 되고 싶으면 먼저 자기 자신부터 쓸만한 불멸자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짧은 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셀들을 보고서라도 뭔가 배워야 한다는 것.

 하지만 둘 다, 소희에게는 아직 한참 일렀던 모양이었다.

 “있잖아.”

 “응.”

 “기본성별은 두 가지만 넣었어. 그게 제일 쉬운 조건이니까.”

 “무성생식이 더 쉽지 않았어?”

 “유전자 풀이 다양해지질 않으면 오래 키우기 불리하잖아. 그런 건 어린애들이 장난 칠 때 하는 거지.”

 “계속해 봐.”

 “무력하고 기술 민감도 중에 기술에 민감한 쪽으로 육성 방향을 잡았어. 여튼 전쟁이라는 건, 돌도끼 들고 싸우는 시절만 지나가면 기술에 비례하는 거니까.”

 “나쁘지 않네.”

 “중심이 되는 지역에 부족을 많이 넣으면 난이도가 확 올라간다고 들었어. 비슷비슷한 덩어리의 부족을 여럿 넣으면 자기들끼리 싸우다 다 죽어버리니까. 그래서 주된 부족을 놓고 다른 부족은 1할 미만으로 잡았다고.”

 “졸업 연구 치고는 너무 쉽게 간 거 아냐?”

 “그래, 나도 그럴 줄 알았어. 그런데 우리 노사님이 내 설정을 보고 그냥 웃으시는 거야.”

 “……네 수준엔 그게 맞았나보네.”

 “그게 아니었어. 조건값 완전 쉽게 잡은 줄 알았는데, 이 미친 셀들이 자기들끼리 종말 프로세스를 시작해 버렸단 말야.”

 “어떻게?”

 “아, 진짜 내가 미쳐서…….”

 “구시렁거리지만 말고 말을 해. 셀들은 원래 논리적이지 못하고 불합리한 일들을 잔뜩 하는 법이라고. 애들이 놀이터에서 하는 것 같은 그런 짓들 말야. 수명이 짧으니까, 겉보기로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붙들고 있는 거고.”

 “그래도.”

 “파리한테 수학을 가르쳐 봐라. 죽기 전에 덧셈이라도 할 수 있게 되는지.”

 “그래도…….”

 소희가 한숨을 쉬다가, 그냥 심호흡을 하며 팔다리를 쭉 폈다. 그 애의 팔과 다리가 창문과 문을 뚫고 밖으로 나갔다. 그 애의 배가, 천정에 닿더니 한여름 열기를 채 가려주지 못하는 슬레이트 지붕을 들썩거리게 했다.

 옥상 가득, 그 애의 몸이 가득 찼다. 여기서 숨을 더 들이쉬면, 발바닥이 저 거리를 지나는 셀들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것이다. 망할 때 망하더라도, 그런 사고를 쳐서 셀들을 놀라게 만드는 건 좋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그 애를 붙잡았다. 소희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유성생식을 하잖아.”

 “응, 그래.”

 “성별을 기본 둘을 지정했으니까, 포태를 하는 암놈이 있고, 그리고 정자를 제공하는 쪽이 있잖아.”

 “응, 그렇지.”

 “그럼 뭐, 정자야 풀이 작아도 돼. 암놈이 많으면 일정 수가 유지가 되잖아. 그런데 얘들, 완전히 거꾸로 간다고.”

 “암놈을 죽이기라도 했어?”

 “무력이 낮을 때는, 수놈들이 자기들만 살려고 암놈들을 두고 도망쳤어. 기술이 좀 발전하니까, 암놈에게 폭탄을 묶어서 적에게 보내더라? 안 가면 네가 낳은 새끼 셀들을 지운다고 협박도 했어.”

 “왜 남 탓을 해. 널 닮은 피조물인데.”

 “끝까지 좀 들어. 기술 민감도를 높여 놓았더니 기술로 전쟁은 이겼어. 그랬더니 그 다음에는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수놈들을 더 많이 낳겠다고, 암놈들을 계속 임신을 시키고, 어린 암놈 셀은 자원을 축낸다고 지워 버렸어.”

 “……기술을 발전시키려면 지능이 높아야 하는 거 아냐?”

 “어디가 꼬였는지 알 수가 없어. 그래서 지금은 어느 단계냐 하면, 암놈들을 마구 죽이고 있단 말이야. 저 수놈 셀들이.”

 본 적이 있는 상황이었다. 자멸하는 상황. 어릴 때, 파리를 키울 때, 일부러 파리들이 싫어하는 주파수를 쏘아 보냈더니 미쳐서 암놈들의 배를 물어 뜯어 죽이기 시작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역겨운 상황을, 파리보다는 훨씬 머리가 돌아갈 소희의 셀들이 반복하고 있었다. 아마도, 널 닮은 피조물이라는 말을 한 마디만 더 했다간, 소희는 내게 화를 내고 말 것이다. 소희는 머리를 쥐어뜯다가, 결국 어린 아이가 떼를 쓰듯이 다리를 휘저어 건너편 건물을 걷어찼다. 건물 무너지는 소리, 셀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거야?!"

 “이런 걸로는 졸업 못 해.”

 소희가 짜증을 냈다.

 “스스로 자살하는 유전자들도 아니고, 이게 뭐야.”

 “아니, 좀 진정해 봐. 어딘가 설정이 꼬인 게 있겠지.”

 “암놈한테만 그러는 거 아냐. 1할도 안 되는 다른 부족의 셀들에 대해서도 얼마나 공격적인지. 죽을 때 까지 괴롭히고 또 괴롭히고 있어. 그야말로 자기들 부족의 수놈 셀들만이 남을 때 까지 다 죽여버릴 기세야. 아, 진짜.”

 소희는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발이 바닥을 딛자, 두꺼운, 셀들이 깔아놓은 도로 위로 균열이 갔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자, 셀들이 지은 어떤 건물도 그녀의 어깨를 넘지 못했다. 손을 휘젓자, 그 건물들 위로 태풍이 불었다. 고개를 들자 그 머리는 겹겹이 하늘을 넘어, 먼 별들을 이었다.

 “이런 것들을 키우느니 그냥 내가 졸업을 늦추고 말지!!!!"

 그녀는 이마에 걸린 별들의 띠를 붙잡아, 벗어 바닥에 동댕이쳤다. 조금 전까지 그녀를 둘러쌌던, 좁은 옥탑방도, 셀들의 세계도 사라졌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다들 그래.”

 “뭐가.”

 “다들 처음에 키우는 셀들은 그 따위라고. 우리가 지나온 시대에 한번쯤 벌어졌던 멍청한 일들을,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계속 무한 반복하는 거야.”

 “진짜, 짜증나 죽겠어.”

 “내가 한참 우울하던 시절에 키웠던 셀은 모두, 셀들의 시간으로 스물 네 살이 되면 자살을 했어. 떼로 가서 물에 빠져 죽었다고. 그러다 보니 뭘 가르치고 배울 시간이 있어야지.”

 “어떻게 졸업을 한 거야.”

 “어떻게든.”

 나는 소희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중얼거렸다.

 “어떻게든, 알고자 하면 더 나은 답들이 나올 테니까. 그러니까 충분히 시험해보고 손쓸 도리가 없어지면 지워버리고 다시 시작해. 시간은 많잖아? 자신을 닮은 피조물을 만드는 것이, 한 번에 성공할 만큼 만만한 일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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