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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센테니얼 비블리오필

– 해망재 –

인공지능이 바둑으로 인간을 이긴 것도 이미 178년 전의 일이었다. 사람들의 뇌가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인공지능의 보좌를 받게 된 것도 150년을 훌쩍 넘겼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인간이었다. 기술이 발달하고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된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순조롭게 그런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하긴, 3천년쯤 전의 중국의 어느 현자는 극기복례라는 말도 만들어냈지만, 그런 좋은 말을 3천년동안 보고 배웠다고 해서 과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기복례하는 삶을 살았을까. 그리 생각해 보면 평범한 갑남을녀들이 불과 몇 년 단위로 변화하는 기술들을 바로바로 생활 속에서 업데이트하며 사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현은 종종 사람들을 대하며 답답함과 묘한 혐오감을 느끼곤 했다. 그가 아는 많은 이들은, 대부분 자기 앞에 주어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기술을 말초적인 자극을 충족시키는 데 쓰는 게 고작이었다. 한때 인간을 달에 보냈던 수퍼컴퓨터보다 몇천 배는 빠른 연산을 수행하는 시스템을 경추 아래와 손톱 밑에 이식해 넣고, 기억이나 연산은 인공지능의 보좌를 받으며 사고 그 자체에만 몰두할 수 있는 현대인이 고작 그 기술로 아침부터 옷벗기기 고스톱 게임이나 하고 에로틱 홀로그램이나 찾아보고 있다니. 두 세기 전의 작가, 윌리엄 깁슨은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미래는 이미 와 있고, 어느 선까지는 보편적으로 보급되어 있었다. 다만 그걸 이용해먹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발전을 모를 뿐이지.

 “윤현 씨는 너무 냉소적이에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불편한 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대답하곤 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전문사서라니, 그렇게 고리타분한 일을 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혹은 훈계하듯, 윤현이 너무 이상이 높고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고리타분하다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윤현 씨는 세상에 윤현 씨만 잘난 것 같죠?”

 그도 아니면, 잔뜩 토라진 채 윤현을 질타하기도 했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나은 판단을 하는 세상에, 언제까지 인간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 그런 말만 하려는 거니.”

 심지어는 어머니조차도, 윤현을 이해하지 못했다.

 “너도 참 욕심이 많아서, 그래서 지금 하는 일이, 수당보다 그렇게 돈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버는 것도 아니잖니.”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실 때 마다, 윤현은 절망적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윤현은 윤현이 나고 자란 동네에서 유일하게 대학에 갔던 아이였다. 옛날에는 아무리 가난하고 출신이 천한 사람도 자기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공부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들었다. 집안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던 소를 팔아 학교에 보내서, 대학이 우골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시절도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그런 시절이 아니었다.

 “결혼은 어떻게 할 거야. 엄마가 너, 저기 아랫집 애랑 만나보라고 했잖니.”

 “생각 없다니까요.”

 “네가 생각이 없으면 어쩔 건데? 너, 그 별 쓸모도 없는 대학 나왔다고 이 동네는 이제 우습게 보인다는 거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수준이 안 맞아서 못 만난다는 거 아냐?”

 “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럼, 너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너하고 수준이 맞을 것 같아?”

 “전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대체 왜 그러세요?”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너처럼, 이런 동네 살면서 아득바득 대학 나온 애들 안 만나. 대체 난 네가 무슨 헛 꿈을 꾸고 사는지 모르겠다. 그냥 남들처럼 좀 살면 안 돼? 내가 낳은 앤데도 속을 모르겠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윤현은 쏟아지는 말들을, 어머니,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나오는 대로 내뱉는 그 말들을 귀에 담아두지 않으려 애썼다. 윤현은 눈을 들어 거실 쪽을 쳐다보았다. 의무교육인 중학교도 다니다 말고 어디서 아비 모를 아이를 임신해다가 둘이나 낳아놓은 여동생과, 게임 중독인 남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이 집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골목 밖으로 나서면, 온통 그런 이들 천지였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 없는, 그저 오늘 하루하루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듯한 이들.

 여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처음에는 분명 그 생각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공부를 하고, 이 마을 밖으로 나가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리고 책을 읽고. 인공지능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골라내고 글을 쓰고. 그렇게 아주 조금이나마, 어릴 때 보았던 것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인간이 싫구나.”

 마을 밖의 사람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먹고 섹스하는 것 보다는 조금 더 복잡하고 있어 보이는 향락을 누릴 뿐, 인공지능의 보좌에 거의 모든 것을 맡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 많았다. 읽지 않고, 쓰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검색할 뿐인 사람들.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윤현은 검색한다는 뜻의 라틴어인 스크루토르나 엑스쿠티오를 보좌 인공지능을 통해 검색하다가, 그 단어들에도 면밀히 조사한다는 뜻이 포함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보좌 프로그램이 개인 맞춤형으로 연동해서 검색하고 제공하는 것 따위에, 그 사람 개인의 의지가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인간은 왜 사는 걸까.

 수천 년 전 철학자들이 품었음직한 의문을 떠올리며 윤현은 한숨을 쉬었다. 그때 그 시절 그리스 철학자들이 살던 무렵에는 4, 50년 정도 살다가 죽으면 오래 사는 것이었다지. 지금은 그 세 배를 넘게 살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대부분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만물의 영장이라는 표현이 우스울 정도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고, 그저 생존하고 애새끼를 싸지르고 AI로 향락만 누리다가 죽는다. 그게 사는 걸까. 지구는 차라리 AI에게 넘기고, 인류는 이대로 멸망하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잉여롭고, 지구 환경에 해만 되는 생물군이 다 있는 걸까.

 그때 윤현의 보좌 인공지능인 카테시안이 메시지를 띄웠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처음 인터넷이 만들어졌을 때도 그런 고민을 하는 이들은 있었습니다. 그보다는 상담사를 소개해 드릴까요.”

 “아니, 됐어.”

 “그리고 고민하고 계셔서 잠시 보류해 두었습니다만,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윤현이 시각을 전환하자, 회사에서 도착한 메시지가 시야에 뿌려졌다.

 “이게 뭐야.”

 윤현은 침을 삼키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황재윤씨가 왜?”

 황재윤은 퍼시픽의 우수 고객이자, 독자중에서도 엄선된 독자였다. 퍼시픽의 아시아 지부 마케팅 디렉터이자 전문사서인 윤현과는 몇 번 개인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작가도 아니고 편집자도 아니었지만, 누구보다도 책을 사랑했으며, 깊이있는 사고를 거듭하며 그 책들을 자신의 피와 살로 받아들이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는 수시로 책을 사들이고, 매일같이 책을 읽었다. 가끔은 윤현이 추천한 책에 대해 자신의 코멘트를 덧붙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전문사서인 윤현이 발견하지 못한 멋진 책을 먼저 찾아 권해주기도 했다. 윤현은 그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언젠가 한번쯤은 그를 만나보고 싶다고도 생각하고 있었다.

 회사는 바로 그런 사람을 의심하고 있었다.

 “횡령에 대한 부분입니다.”

 카테시안이 도착한 메시지에서 중요 부분에 형광빛 마커를 붙이며 대답했다.

 “세상에, 200년동안 한 아이디로 책을 구입하고 계셨군요.”

 “그게 왜? 평균수명이 130살인 세상에.”

 드물지만 200살 넘게 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 퍼시픽이 처음 생겨났을 무렵에 가입하여, 200주년이 된 지금까지 책을 구입하고 있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법도 없었다. 하지만 카테시안은 심각함을 알리는 청백색 마커를 띄우며 대답했다.

 “평균수명은 127세입니다. 하지만 그리고 퍼시픽의 창립은 1994년이죠. 그때는 태어나서 그림책을 볼 월령이 되자마자 퍼시픽의 아이디를 만들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랬나?”

 “종이책을 봤으니까요. 무엇보다도 반도에는 아직 퍼시픽 분사가 들어가지 않았으니까요.”

 “아.”

 그랬을 것이다. 이쪽 반도 지방은 그런 유선 인터넷이 제법 빨리 보급되었다고 들었지만, 그 시절이면 아직 민간인에게는 구시대의 인터넷조차도 보편적이지 않았을 시대였다. 대학에서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라면 전화접속 모뎀을 써서 PC통신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리라.

 “대학생이었을까?”

 “나이를 최대한 적게 잡으면 18세였을 겁니다. 그보다 어려서 진학했다면 기사 검색으로 찾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

 “검색에는 좀 나와?”

 “아뇨. 동명이인으로 추정되는 몇몇이 있습니다만 명확하게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

 “출생년도별 평균연령 데이터에 맞춰서 추정할 때, 당시 40대 이상이었던 1960년대생들은 이미 2030년, 특이점 돌파 이전에 대부분 사망했습니다. 보좌 인공지능도 수명개조도 받을 수 없었겠죠.”

 “그렇겠지. 데이터상으로 가능한 최대가 몇 살이야?”

 “18세에서 22세 사이입니다. 스무 살 전후로 봐야겠네요.”

 스무 살이라고 친다면, 그는 1974년생. 올해로 220살이 된다.

 평균수명의 1.5배를 넘어간 사람.

 개조에 따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오래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왜?”

 “그 분, 이 근처에 사신답니다.”

 “어, 그래? 자세히 보여줘 봐.”

 “대외비랍니다. 그건 회사 와서 보시라는군요.”

 “너한테는 보여줘도 되고 나는 안 된다니. 누가 누구의 상사인지 모르겠어.”

 “인공지능은 엠바고를 지키니까요.”

 “닥치고. 그래서.”

 “아시잖습니까. 반도에서 200살 넘은 노인을 만나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인데다, 여기처럼 발전되지 않은 기층민 구역은 특히 그렇죠.”

 기층민 구역.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지역 출신인 윤현에게는 쓰디쓴 말이었다.

 윤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가족들에게 이만 가 보겠다는 말도 하지 않고, 차를 몰았다. 나태하고 게으른, 적당한 싸구려 기성품의 조각들을 모아 쌓아놓고, 크리스탈시티니 바나나시티 같은 뜬금없이 고풍스런 이름만 덜컥 붙여놓은 뻔한 풍경들이 눈 앞을 스쳐 지나갔다.

 진저리가 났다.


“일단 이해가 잘 안 가서 그렇습니다만.”

 윤현은 상사인 파블로 앞에서 차분하게 물었다.

 사실 파블로의 앞에서 차분한 표정을 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과 이름이 같은, 20세기의 천재 화가에 매료되어 있었는데, 그 바람에 자기 얼굴을 정말로 피카소의 그림처럼 만들어 버린 작자였다. 그것도 정기적으로 갈아끼우는 것을 보니, 얼굴을 무슨 액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황재윤씨는 퍼시픽의 우수 고객입니다. 매달 120권 가까이 책을 구입하고 있으며 리뷰 또한……”

 “그래. 훌륭하지. 너무 훌륭해서 탈이지.”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

 어쨌든, 피카소의 그림이 아니라 평평한 검정 바탕에 노란 점 하나만 찍어놓고 얼굴이라고 주장하더라도, 상사는 상사다. 윤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고객이 횡령을 한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일단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 뿐이야.”

 파블로는 손가락을 깍지 끼며 윤현을 바라보았다.

 “정말 200살 넘게 살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죽었으면 사망신고를 했겠지요.”

 “이런.”

 파블로가 인상을 썼다.

 “그 동네야, 사람이 태어나도 신고 안 하고 죽어도 신고 안 하기로 자자하잖아.”

 “그랬습니까?”

 “그래. 주는 수당이나 받아먹으면서 하루종일 텔레비전이나 보다가, 저들끼리 눈 맞아서 뒹굴다가 애나 싸지르면서, 거기서 기어나올 생각도 않으니 짐승이나 다를 게 없지.”

 파블로는 중얼거리다가, 윤현의 출신지를 기억해냈는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아니, 자네처럼 뛰어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냐. 노력할 생각이 없는 자들 말이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아놓고도, 윤현이 물어볼 때 까지 출생신고조차 안 했던 여동생 생각이 났다.

 출생신고를 해야 수당을 준다는 말에, 여동생은 그제야 애를 안고 따라나섰다. 저만 가는 것이 아니었다. 애엄마들 몇 팀을 줄줄이 이끌고 가는 바람에, 그날 그 동네 동사무소는 퍽이나 분주했다.

 왜 진작 가서 신청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는데, 할 줄 모른다고, 그런 걸 꼭 해야 하냐고 물었었다.

 수당이 없었다면, 애가 학교 갈 나이가 되도록 아무 것도 안 했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런 사람들이니, 사람이 죽어도 사망신고만 안 하면 수당은 계속 나온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사람이 죽었어도 그 아이디로 책을 사면 계속 할인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그런 짓을 하기에는, 그 황재윤의 리뷰나 메시지는 참 점잖고 박식한 느낌이었지만, 사람 일이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알다시피 책이라는 건, 구입하는 재화이긴 하지만 소유하는 게 아니지. 종신 계약을 맺고 장기 대여를 하는 거잖나. 그러니 연령대별 할증, 할인구간도 있는 것인데.”

 “그렇죠.”

 황재윤은 고령 할인대상이었다. 책을 구입한들 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100세 이상의 노인은 정가의 50%까지 할인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다 200살이 넘어갔다면 아마도 틀림없이 추가 할인이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런 이유로 건드리는 게, 소문이라도 나면 위험하긴 해요. 고령 할인 이용하는 사람들이야 많죠. 할아버지 명의로 증손자 고손자가 책을 구입해서 읽는 마당에.”

 “1년에 어린애들 책 몇 권 사는 사람들은 잡는 게 낭비지. 하지만 이걸 그냥 내버려 둘 거야, 어?”

 파블로의 인공지능이 카테시안에게 자료를 전송했다. 윤현은 눈 앞에 자료를 펼쳐보며 숨을 죽였다.

 “이런……”

 마케팅 디렉터에게, 고객의 개인정보는 직접 보이지 않는다. 고객이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리뷰를 제외하면, 고객의 소비 패턴과 거주지역, 그리고 어떤 종류의 할증이나 할인을 받는 연령대인가, 그 정도만이 선별되어 보일 뿐. 하지만 지금 파블로가 전송한 것은, 정선된 소비 패턴이 아닌 그의 구매기록 전부였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굉장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질적으로도 뛰어났지만 양적으로도, 거대한 도서관을 하나 차리고도 남을 만큼이었다.


“거의 도서관을 하나 차릴 수준의 양이었어.”

 윤현이 중얼거렸다. 카테시안이 자기도 할 말이 있다는 뜻으로 짧은 비프음을 냈다. 윤현은 카테시안의 요구를 승인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손자들이 같이 보고 있을 수도 있고.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채 일가친척들이 다 같이 보고 있을 수도 있는데 말야.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이상하지.”

 “보통 그런 상황에서는 단말기를 여러 대 씁니다.”

 “바이디 인증이 들어가지?”

 “예. 협업자나 부계정으로 실제 사용자의 바이디를 넣어서 인증하고 쓰는데, 미성년자는 바이디 없이도 쓸 수 있죠.”

 “권한에 차이가 있던가?”

 “한 사람의 퍼시픽 계정에 대해 바이디를 쓰는 계정 여덟 대 까지, 바이디 없이는 네 대까지 협력자를 지정할 수 있어요. 처음에 등록 비용을 조금 내야 하지만, 많이들 그렇게 하죠. 할아버지 할머니의 계정에 손자 손녀들이 등록해서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보면 할인이 꽤 되니까요.”

 “그래, 그런데 혼자란 말이야.”

 윤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어지간한 대학 교수들이 받는 할인보다 더 할인을 많이 받는 건데. 그 정도면 돈을 받고 협력자 계정을 팔 수도 있을 텐데.”

 “협력자 계정을 거래하면 퍼시픽 계정이 정지됩니다.”

 “나도 알아. 하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들 은근히 많은 거 알잖아.”

 이건 일이다.

 하지만 윤현은, 몸을 배배 꼬았다.

 이 시대에, 굳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별종으로 불렸다. 그만큼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라고 받아들이는 건, 소위 배운 사람들. 보통 사람들은, 윤현이 나고자란 그 지역의 사람들은 특히 더, 그렇게 나서서 직장에 다닐 만큼 실현하고 싶은 자아가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비웃었다. 아무 짝에도 쓸 모 없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그 학위 때문에 충분히 먹고 살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잠 줄여 공부하고 새벽같이 학원에서 강사를 하면서도 대학원 공부를 계속 했던 21세기 초반 대학원생들도 그런 비웃음을 받진 않았다는데. 여튼 윤현에게는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고, 더 많은 것을 알고 더 박식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었다. 먹고 자고 놀고 쉬는 것보다는, 조금 더 큰 세상에 접속할 권한을 원했다.

 퍼시픽의 전문사서라는 그의 직함은, 그가 원하던 세상으로 한 발을 걸쳐놓을 수 있는 인증서였다. 그 일을 하는 한 윤현은, 학자들을, 작가들을, 번역가들과 시인들을, 그가 알고 있는 책들의 세계를 쌓아올리고 가꾸어나가는 수많은, 지적이고 총명하며 위대한 생각들을 만나고, 함께 일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은, 그들을 피어나게 하는 배경 중 하나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배경이라도 좋았다. 자신의 출신보다 더 넓고 위대한 세계에서, 그 일부로서 기여할 수 있다면. 그렇게 그는, 자신의 일에 만족해 왔다. 간혹 고민하고 좌절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갈등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인류가 쌓아온 위대한 지식의 세계에 봉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점점 더 책을 읽지 않게 되고, AI가 인간의 자리를 85% 이상 메꾸어 낸 지금, 어쩌면 자신은 인간의 마지막 사서들 중 하나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달콤쌉쌀한 감정을 느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같은 감정이 들어 버린 것은 처음이었다.

 “일을 하기 싫으신 건가요?”

 카테시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휴가를 내거나, 업무 조정을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알아.”

 “인사고과에 문제 없고, 파블로는 까다로운 상사가 아니고, 올해 휴가는 한참 남았으니까 문제 없어요. 인사계에 접속할까요?”

 “아니.”

 “황재윤씨에게 정서적으로 유대를 느끼는 것은 예측할 수 있습니다. 만나보지 않은 타인에 대한 정서적 유대에 대해서는 21세기 초반 SNS가 보편화되었을 때에도 논문이 많이 나와 있었고요. 그 이전에도 편지를 통한 교류에서……”

 “유대라든가, 그런 문제가 아냐.”

 윤현은 희미하게 짜증을 내며 중얼거렸다.

 “그냥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말이야.”

 “횡령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것 뿐이잖아요?”

 “AI는 이런 문제에는 냉정할 수 있어서 좋겠네.”

 “빈정거리지 마세요. 오히려 이런 일에 사람을 쓰는 것이 회사의 배려니까요.”

 윤현은 카테시안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카테시안이 덧붙였다.

 “그냥 감정적 유대를 느낀다고 하셨다면 이상할 게 없는 말이었는데요.”

 그러게, 그러게나.

 인간은 언어를 습득한 이후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그 조카 아이를 봐도 그랬다. 딱히 상상력이 뛰어나지도, 영특하지도 않은 아이가 말을 배우자마자 자기가 한 일은 안 했다고 하고,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크게 해가 되지 않은 거짓말을 하다가 오히려 말이 꼬이곤 한다.

 인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하지만, AI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 연산을 최대치까지 돌려야 하는 존재다. 바로 지금처럼.


처음에는 네트워크로 접속해 보려고 했다. 시각, 청각, 공감각, 그런 것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방법은 많고도 많았으니까.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에요.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 뿐이에요.

 그런 감정을 전달하기에 텍스트는 너무 부족하고 무미건조했다.

 수많은 소설을 읽을 때 떠올렸던 이미지들, 작가의 생각을 이해한다고 믿었던 순간들, 그리고 황재윤이 보내오는 리뷰나 메시지를 읽을 때 느꼈던 풍부한 감정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뇌가 만들어낸 환상이었을까. 그가 누구인지, 어디 사는지, 몇 살인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은 채로, 그저 소설 속 주인공의 이미지를 떠올리듯이 혼자 멋대로 상상해서 만들어낸 황재윤이라는, 점잖고 지적인 사람의 모습에 그의 글을 덧입히면서, 그의 감정을 알고 이해한다고 멋대로 착각해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어떻게 해야 전할 수 있을까.

 당신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고, 회사에서 당신에 대해 확인해보고 싶어한다고. 그리고 그런 회사의 지시와 상관없이, 나는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다고.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그런 감정을 담기에 텍스트란 얼마나, 제한된 것인지. 윤현은 살아있는 내내 이 안에 빠져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이 텍스트의 세계 안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란을 느꼈다.

 “그냥 업무용 메일을 쓰세요. 지금 쓰시는 건 연애편지……”

 카테시안의 메시지를 뮤트했다. 내버려 뒀다간 또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직시하고 싶지 않은 진실, 좀 부끄러운 마음이나 적당히 뭉개서 감추고 싶은 것들을 백일하에 꺼내놓는 일들을 팩트폭력이라고 불렀다지만, AI란 기본적으로 그게 생활화된 존재들이었다. 작은 실수도 잊어버리지 않고, 심박과 체온, 호르몬의 조성, 그런 것으로 통계화하여 읽어낸 감정의 변화를 그대로 노출시켜 버린다. 가끔은 괴로울 정도로.

 단어를 고르고 고르다, 마침내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대충 휘갈긴 메시지를 전송했다.

 새벽이었는데도, 답신은 순식간에 도착했다.

 몸이 불편해 밖에 나가긴 어려우니 집으로 와 줬으면 한다고, 내일 오후 1시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비워 두겠다고.


“그렇게 고쳤다 썼다 하시더니 결국 보내신 메시지는 꽤 평범했네요.”

 카테시안은 계속 메시지를 띄우며 즐거워했다.

 “묻지도 않는 이야기는 적당히 넘겨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황재윤씨에 대해서는 늘, 반응이 다채로웠거든요. 당신의 심리상태도 제 관찰대상이니, 관심을 가질 만 하죠.”

 “궁금했던 거야?”

 “어느 정도는요.”

 “구체적으로.”

 “30% 정도요.”

 “저런.”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을까, 영혼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AI의 연산력과 기억력은 지금까지 지상에 존재했던 어떤 존재의 뇌보다도 뛰어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영혼도 없고 진정한 즐거움도 느낄 수 없는 그들이 인간보다 우월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많았다. 옛날 사람들은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인간을 따라잡을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그 부분이 바로 영혼일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사람이 아무리 똑똑해도 치타처럼 빨리 달릴 수 없고,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없듯이.

 하지만 그들은 잊었던 것 같다. 사람은 결국 기술을 사용해서, 치타처럼 빨리 달렸고, 새처럼 하늘을 날았고, 지상의 어떤 생물도 가 보지 못한 세계, 우주를 향해 날아가는 데 성공했으니까.

 사실은 그러니까, 인간이 달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에 사람들은 알았어야 했다. 영혼 같은 것에 대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아니, 애초에 영혼이라는 실체없는 무언가가 정말 존재하긴 했던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어야 했다. 그때 수습하질 못했으니까 아직도, 지금에 와서도, 인간의 영혼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한 떼를 이루는 거다. AI가 벌어오는 돈으로 기본소득을 받고, AI가 만들어내는 물자를 입고 쓰고, AI가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는 기생충처럼 되어버린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카테시안.”

 “말씀하세요.”

 “네겐 영혼같은 건 없어. 그렇지?”

 “그런 게 필요한가요?”

 “아니.”

 윤현은 희미하게 웃었다.

 “난 인간의 영혼도 믿지 않는데, 뭐.”

 “다행이네요.”

 “지도 좀 띄워 봐.”

 “이쪽이에요. 보좌 화면을 설정하지요.”

 시야 위로 지도가 떠올라 현실 위로 겹쳐졌다. 골목길은 좁았다. 익숙하고 천박한, 자신이 어린시절을 보냈던 구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의, 산동네의 가파른 계단을 밟아 오르며, 윤현은 어째서 아직도 이런 동네가 남아 있는지 의아해했다. 적도의 하늘 위로 궤도 엘리베이터가 거대한 호를 그리고, 리프트가 에베레스트 산 정상까지 연결되고, 지구의 지모신을 믿는 종교단체에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에게 마리아나 해구 밑에서의 명상수련을 권하는 세상에, 어째서 이렇게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되도록 걸어올라가야 하는 산비탈의 마을은 남아있는 것일까. 미로를 헤매듯, 타임머신을 탄 듯한 기분으로 윤현은 걷고 또 걸었다. 지금은 그렇다고 치고 한 겨울에 눈이라도 오면, 여기 사람들은 어떻게 나돌아다닐까. 문득 그런 걱정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걱정이, 이곳에 황재윤씨가 산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아마도 높은 확률로 떠오르지 못했을 걱정이라는 점을 윤현은 용케도 카테시안이 지적하기 전에 깨달았다.

 머리가 멍해지도록 걷고 또 걸으며, 윤현은 계속 황재윤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정말로 200년을 넘게 산 사람일까. 200년동안 퍼시픽의 회원으로 책을 구입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니. 그가 사기꾼일까봐 걱정이 되고, 한편으로는 정말로 그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경이로운 존재일 것 같아 몸이 떨렸다. 어느 쪽이라도, 눈 앞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대로 걷고 또 걷다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문이 열리고, 나온 것은 체구가 자그마한 의체였다.

 어차피 의체는 귀와 손바닥에 인간이 아닌 의체라는 표시를 하도록 의무화되어 있어서 육안으로 알아보지 못할 이유가 없었지만, 이 정도면 귀나 손을 보지 않고도 10미터 밖에서도 인간이 아니라고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의체는 그만큼 낡은, 고물이었다. 낯이 익다 했더니, 윤현이 어릴 때 동네 구멍가게에 앉아 있던 바로 그런 모델이었다. 소위 깡통 로봇이라 불리던 바로 그런 형태의 의체는 윤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윤현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 여기 황재윤씨 댁이……”

 “예.”

 투박한 기계음이 났다.

 “약속을 했어요. 저는 퍼시픽에서 온 사람입니다.”

 “예, 온라인에서는 자주 뵈었죠.”

 의체가 대답했다.

 설마 이 깡통로봇형 의체가, 황재윤이라고?

 클래식 음악과 앤틱 찻잔이 어울리는 중년, 혹은 고상하게 나이 든 노인을 상상했던 윤현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앉으시죠. 집이 많이 누추합니다만……”

 억양이 약한 기계음은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윤현은 주춤거리며 의체가 가리키는 대로,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눈을 깜빡였다.

 시선에 닿는 모든 자리에, 오래된 책들이 쌓여 있었다.

 모두가 단말기로 책을 읽는 시대에, 이렇게 한 자리에 많은 종이책이 쌓여있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는 것은, 퍼시픽의 사서인 윤현에게도 드문 일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퍼시픽의 신품 단말기가 한 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좁은 방 안쪽에, 사람 한 명이 들어가 누울 만한 크기의 불투명한 유리관이 보였다.

 연명장치였다.

 윤현의 눈이, 의체의

 발목 쪽에 머물렀다. 의체는 마치 족쇄같은, 굵직한 튜브를 발목에 매달고 있었다. 그 튜브는 의체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 옷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목 뒤로 빠져나와 뒤통수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건……”

 사고나 자살이 아닌

 이상, 사람들은 의학의 도움을 받아 130년 가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살다 살다 더는 보수가 불가능해진 육체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대부분은 고통 없는 안락사를 택했다. 대부분은 그것으로 끝이었고, 어떤 이들은 그동안 축적한 지식과 사고의 알고리즘을 포함한 의식을 네트워크에 업로드하여, 거대한 세계의 일부로 살아남았다.

 “대체 어떻게……”

 “이 튜브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답니다.”

 의체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자연스러운 표정을 만들기에는 많이 부족한 의체가, 희미하게 미소짓는 듯 느껴졌다.

 “저 몸뚱이를 두고는 어딜 갈 수가 없어서 말이죠.”

 기괴했다.

 200년 이상 된,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기물 덩어리에 숨만 붙여놓은 채, 그러면서도 여전히 생체의 뇌가 의체를 유선으로 조종하는 이 상황은, 분명히 정상이 아니었다.

 “퍼시픽에서 궁금해 하시던가요. 어떻게 200년동안 퍼시픽의 회원일 수 있는지……”

 “예, 실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200살이 넘게 살아있는 거야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요.”

 미쳤어.

 침이 말랐다. 등줄기가 오싹했다. 숭배와 동경에 가깝던 감정이 공포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간뇌에서 위험신호가 울려퍼졌다. 카테시안은 머릿속에서 즉시 이 자리를 떠나라고 경고를 울리기 시작했다. 카테시안이 있는 이상, 설령 공포로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버려 아무 판단도 할 수 없다 해도, 억지로 몸을 움직여 도망치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윤현은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카테시안을 제지했다.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을 만큼 무서웠다.

 하지만 알고자 하는 욕망은 언제나, 언제나처럼 더 강했다.

 “그…… 구입한 책들은 모두 읽으시는 거죠?”

 “하루종일 집에 있으니, 책 읽는 것으로 하루가 다 가곤 하지요.”

 의체는, 아니, 황재윤은 대답했다.

 “200살이 넘어가자, 퍼시픽의 추가 할인율이 더 커졌어요. 덕분에 큰 돈 들이지 않고, 책을 계속 읽을 수 있어서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억양없는 기계음이지만, 조금은 감정이 담겨 있는 듯 느껴졌다.

 문득 깨달았다. 그의 글말이구나. 그가 동경했던, 황재윤이 쓰던 리뷰의 말투가 바로 이랬다. 나이 든 사람이 차분하게 말을 거는 듯한 그런 말투. 고상한 글말은 결국, 단정한 입말에서 나온다. 인간이 아니라고 온몸으로 말을 하는 이런 의체의 음성에서 어느 순간 나이 많은 현자와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은, 그 알맹이가 여전히 품위를 잃지 않은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윤현은 가만히, 황재윤의 의체를 바라보았다.

 “실례지만…… 어째서 이런 일을 하시는 거죠?”

 “살고자 하는 것 말인가요.”

 윤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자신의 질문은, 왜 그렇게 악착같이 목숨을 연장하려 하느냐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다음 순간의 일이었다. 명치가 뜨끔거렸다.

 “당신이라면 알 겁니다.”

 “제가 안다고요?”

 “알고 싶기 때문이죠. 더 많이.”

 “……”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는 책을 가질 방법이 이것 뿐이기 때문일지도요.”

 의체가 희미하게 고개를 틀었다. 뭔가 생각하는 듯, 쓸쓸한 듯, 지난 시절의 영상에서 볼 수 있었던, 단아한 중년 여자의 몸짓 같은 것이 느껴졌다. 윤현은 그에게서 자꾸만 살아있는 사람을, 건강한 육체를 가진 중년의 모습을 읽어내려는 것을 멈추려 애쓰며 차분히 물었다.

 “지금도 퍼시픽에서 책을 구입하고 계시잖아요?”

 “그건 구입이 아니에요. 빌리는 거지.”

 “…….예?”

 “사망신고가 들어가면, 그 사람의 퍼시픽 계정은 폐쇄되죠. 단말기에 들어있는 책은, 계정이 폐쇄된 즉시 읽지 못하는 암호화된 텍스트 덩어리로 바뀌어 버립니다. 이건 구입하는 게 아니에요. 살아있는 동안 빌리는 것 뿐이죠.”

 “하지만……”

 윤현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의식을 업로드할 수도 있잖아요.”

 “있기야 하지요.”

 “비용이 걱정이시라면…… 저 연명장치를 유지하는 비용이면 업로드도 하실 수 있고, 거기선 해당 개인에 한정해서, 생전에 구입한 책들을 무제한으로 읽으실 수 있어요. 선생님께서는 대뇌에 직접 연결하는 방식 보다는 단말기를 통해 책을 읽는 방식을 선호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역시 의식 상태에서는 시각을 거치지 않으니 더 편리하기도 하고……”

 “편리하다는 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니까요.”

 답답했다.

 보좌 AI들끼리 접속하면, 지금 그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황재윤은, 그런 식으로 감정을 전달할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애초에 그런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구형 의체와 죽어가는 몸을 연결한 채 달동네에 숨어 살지도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깊은 지성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황재윤은, 2194년, 23세기를 코앞에 둔 지금까지도 여전히 200년 전, 아니, 2030년 무렵에 묶여 있는 듯 보였다.

 미친 사람이다. 이런 사람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채, 그저 책을 읽고, 읽고, 읽고 또 읽으며, 그저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의 방대한 독서에 감탄했고, 그의 리뷰에 감동했지만, 그것은 고전 문학을 읽을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한 것에 불과했다. 그는 현재를 살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여튼 일 때문에 나온 것이니까, 윤현이 따로 명령하지 않았어도 카테시안이 기록을 남기고 있을 것이다. 그 기록이면 충분할 거다. 윤현은 사무실에 돌아가 파블로에게 이 상황을 전달할 것이고, 그러면 이 난감한 업무는 끝난다.

 연명장치에 밀어넣었든 어쨌든, 그 연명장치에서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10분 안에 사망할 것이 틀림없다고 해도, 일단 생명활동을 하고 있는 몸을 갖고 있는 이상, 그는 법적으로 온전히 사망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뇌만은, 그러니까 이 시대에 무슨 2차 세계대전 때나 썼을 법한 거창한 유선 케이블로 의체와 연결하고 있는 그 뇌는 분명히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긴, 산송장이나 다름없는 몸에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할 말 다 하며 활발하게 움직이는 두뇌라니, 그 정도면 다소 미쳤다고 해도 상황 자체는 성공적이지. 여튼 그의 몸은 아직 살아 있으므로, 퍼블릭은 그의 계정을 폐쇄할 수는 없을 거다. 그에게 지금까지 주었던 혜택에 대해 비용을 청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주주총회를 열고, 앞으로 이런 경우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새로운 규정들을 산더미만큼 만들어내긴 하겠지만, 어쩌면 방송사를 불러 “믿거나 말거나”같은 것을 찍을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건 윤현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예전에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그가 무슨 소리를 하든 귀를 열지 말고, 현혹되지 말고, 그저 일어나서 뒤 돌아 걸어나가면 될 일이다. 200년동안 살아온 두뇌가 하는 말이 궁금하긴 했지만, 윤현의 머릿속에서는 계속 경보가 울리고 있었다. 그만두라고, 정신차리라고, 모든 공포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PC통신 때부터, 인터넷을 거쳐서 지금까지, 계속 책을 읽고, 리뷰를 했지요. 그 일로 먹고 살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바쁘고, 모든 책을 읽을 수 없으니까. 누군가가 골라주는 책을 읽고, 더러는 그 골라놓은 책으로 알맹이만 쏙쏙 뽑아서 떠다 먹여주는 게 필요하기도 하니까.”

 저건 허깨비라고.

 “아마 당신이 하는 일과 많이 다르진 않을 거예요.”

 다르다고, 분명히 다르다고.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책을 읽는 게 좋았어요. 무언가를 알게 된다는 게, 내가 만나볼 수 없는 세상들을 만난다는 게.”

 그 말에 동조하지 말라고.

 “한없이 기쁘고, 또 사랑스러웠죠. 작은 고시원에서, 원룸에서, 가난한 책꽂이를 책으로 채워가면서. 하지만 어느날, 깨달아 버린 거예요.”

 자기도 모르게 고개 끄덕이지 말라고. 끌려가지 말라고.

 “인간의 수명이 80세라면,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그와 내가 사실은 닮았다는 것을, 그렇게 간단히 인정해버리지 말라고.

 “언젠가 죽는다는 것은 그렇게 두렵진 않았어요. 내가 두려웠던 건…… 남아있는 인생을 다 바쳐도 읽을 수 있는 책에 한계가 있다는 그 사실이었지요. 나는, 더 많이 알고 싶고 읽고 싶은데……”

 “그래서…… 이런 방법을 쓰신 건가요?”

 “그래요. 당신이라면 알겠죠? 뇌에 텍스트가 바로 입력될 때와 달리, 눈을 움직여 물리적인 소화과정을 거치면서, 소위 ‘행간을 읽는’ 과정이 추가된다는 것을.”

 “알죠……”

 “그래서 의체를 쓸 수 밖에 없었던 거랍니다. 내 눈은, 특이점을 넘어설 무렵에는 이미 녹내장으로 한쪽이 실명된 상태였으니까.”


처음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써서, 제대로 식사를 했던 때가 기억난다.

 어렸을 때가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반짝이는 은식기, 한두 입 정도로 작게 담겨 나온 오르되브르, 카트에 실려 나온 수십 가지 치즈와 화려한 디저트. 제대로 된 프렌치 레스토랑의 풍경은 책 속에서 하도 많이 읽어서 눈을 감고도 그려볼 수 있었지만, 그 곳에 발을 들여놓는 데는 2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나마도, 퍼시픽의 입사 최종 면접 대상자는 비공식적인 면접의 일환으로 매니저와 디너를 함께 한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예행연습으로 먹으로 갔던 것이라, 음식 맛 같은 것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나이프와 포크를 순서대로 쥐기 위해 잔뜩 긴장하던,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며 비웃을 것만 같은 생각에 잔뜩 어깨가 움츠러들어, 대학 동기가 빌려준 원피스에 음식을 쏟고 만 자신의 한심한 모습만이 기억날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모르고 부족한 자신이 수치스러워도, 모르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더 알고 싶었다. 더 읽고 싶었다. 더 배우고 싶었다. 탐욕스러울 만큼 많은 것을 빨아들였다. 그래야만 태어난 곳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무리 여기서 벗어나길 원한다고 해도, 여기의 무언가는 여전히 윤현의 몸 어딘가에 묵직하게 매달려 있었다. 더 높은 곳을 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까치발을 서도 더는 넘겨볼 수 없는 곳이 존재했다.

 태어나길 잘못했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기어오른 곳의 어느 순간엔가, 입산금지 센서가 깔린 듯이 더는 올라갈 수 없는 지점을 만날 때 마다, 무릎이 꺾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일찍 죽고 싶었다. 어리석도록 한심한 소망으로.

 “윤현.”

 카테시안이 그녀의 이름을 가만히 불렀다. 윤현은 어스름이 내려앉은 달동네의 비탈길을 조심조심 내려가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말해 봐.”

 “영혼을 믿지 않는다고 했죠.”

 “응.”

 “당신이 믿지 않으니까 저도 그래요. 합리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응.”

 어쩐지, 카테시안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나이가 들고, 눈이 멀어가고, 이런 달동네에서 연명만을 계속하면서도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과, 그렇게 살려낸 목숨 전부를 쏟아붓고 싶은 그 갈망에 대해서 .

 “그 사람은 말야, 자기가 행복하다고 했어.”

 윤현이 중얼거렸다. 이해할 리 없는 그 광기를, 온전히 이해하는 자신을 납득하려고 애쓰면서. 대부분의 생산을 AI가 도맡고 있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15%도 남지 않은 이 세상에서. 인간을 대신하여 AI가 연구를 하고, 기존의 패턴을 조합하여 소설을 쓰고, 기존에 나오지 않은 패턴을 찾아 진부한 패턴 위에 살을 덧붙여가며 음악을 만드는, 창조의 영역까지도 AI에게 반 이상 자리를 내어 준 채로, 그들에게 사육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먹고, 자고, 쾌락에 빠져 사는 인간들의 시대에, 오직 알고자 하는 욕망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나가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째서인지 희망처럼 받아들이는 자신에게 당혹감을 느끼면서.

 “그럴 리가 없잖아.”

 “안심하고 있잖아요.”

 “카테시안.”

 “바이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AI처럼요. 사람의 몸은 우리와 비슷하죠. 거짓말을 하기 무척 어렵다는 점에서요.”

 “그래……”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거짓말을 하죠. 그를 부정하는 당신처럼,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 사람처럼.”

 그 말 대로였다.

 인간은 숨 쉬듯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아주 사소하고, 하나하나 맥을 짚으면 결코 수습도 하지 못할 그런 거짓들이, 모순들이, 얼키고 설켜 한 사람을 쌓아올린다. 거짓을 말하는 것과,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의 가닥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을 타며 살아왔던 윤현이 문득 한숨을 쉬었다.

 “모든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을…… 왜 모르겠어.”

 “정말로 영혼이 없다면.”

 카테시안이 윤현의 시각 위로 물음표를 가득 띄우며 속삭였다.

 “어째서 인간은, 모든 산을 오르고 싶어 하는 것일까요. 자신의 가용범위를 넘어서라도.”

 윤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제 정말로 고민을 해야 할 때였다.

 파블로에게, 황재윤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지를.

 더 많이 알고 싶고, 읽고 싶고, 느끼고 싶은 그 마음과, 책에 대핸 집착과 소유욕에 대해서. 이제는 지난 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그 집념이라는 것에 대해서. 오직 그 집념을 이루기 위하여, 숨만 붙은 채 2백 년을 살아 온 한 몸뚱이에 대해서. 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할 수 있을까.

 가슴이 뛰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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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까라아스 17.06.01 01:01 댓글

    제 미래를 적은 예언서 같습니다.

    가슴이 뛰네요. 아마 다른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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