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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설 고독한 미로

2014.03.01 00:0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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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로
옥타비오 파스, 손관수 옮김, 신원문화사, 1990년 10월


pena (pena12@gmail.com)



 고독한 미로는 멕시코의 저명한 시인이자 외교관인 옥타비오 파스의 수필집이다. 예전에 역사를 공부하면서 읽은 책인데, 읽으면서 멕시코인들의 문화가 한국과 비슷한 면이 있으면서도 굉장히 음울하고 극단적이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역사의 일부만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와는 달리 인종의 뿌리까지 모두 혼합된 나라, 세계 최강국인 미국 바로 아래에 있는 나라라는 점 등의 특수성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민족성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시인이자 외교관이 쓴 자기 나라에 대한 통찰은 서늘하리만치 아름다워서 사실 그냥 읽어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여 여기에 소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명하다고 하지만 옥타비오 파스라는 작가 자체가 생소할 수도 있으므로 일단 작가 설명을 발췌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

1914. 3. 31 멕시코시~ 1998. 4. 19 멕시코시.
멕시코의 시인·작가·외교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인 문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가족이 멕시코 내란으로 파산했기 때문에, 파스는 궁핍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로마 가톨릭계 학교와 멕시코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글쓰기에 몰두하여, 19세 때인 1933년 첫시집 『숲속의 달 Luna silvestre』을 출간했다. 파스는 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에 스페인을 방문하여, 공화주의자들의 대의명분에 강한 공감을 느꼈다. 그는 『그대의 뚜렷한 그림자 밑에서 외(外) Bajo tu clara sombra y otros poemas』에서 그 경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고, 1937년에 스페인에서 출판된 이 시집을 통하여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작가로 인정받았다. 고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는데, 여기서 접한 초현실주의는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멕시코로 돌아와서는 『탈레르 Taller』(1939)와 『엘 이호 프로디고 El hijo prodigo』(1943)를 비롯한 여러 권의 중요한 문학 평론지를 창간, 편집했으며 1970년대에는 또다른 문학 정치 평론지인 『플루랄 Plural』을 편집했다. 주요시집으로는 『통과 금지! No pasaran!』(1937), 『가석방 상태의 자유 Libertad bajo palabra』(1949), 『독수리냐 태양이냐? Aguila o sol?』(1951), 『태양의 돌 Piedra de sol』(1957)이 있다. 같은 시기에 수필과 문학 평론을 모은 산문집도 출판했는데, 영향력 있는 수필집 『고독의 미로 El laberinto de la soledad』(1950)는 멕시코의 특성과 역사, 문화를 분석한 책이고, 『활과 금조 El arco y la lira』(1956)와 『느릅나무에 열린 배 Las peras del olmo』(1957)는 동시대의 스페인계 중앙 아메리카의 시를 연구한 문학 평론집이다. 파스는 1946년에 멕시코 외교관으로 들어가, 1962~68년에 인도 주재 멕시코 대사로 재임한 것을 비롯하여 다양한 직책을 맡았으나, 1968년에는 멕시코 정부가 급진파 학생들을 가혹하게 다룬 것에 항의하여 인도대사직을 사임했다. 1962년 이후에 쓴 시로는 『백색 Blanco』(1968), 『동쪽 비탈 Ladera este』(1971), 『공기의 아들들 Hijos del aire』(1981) 등이 있으며 후기 산문 작품으로는 『접합과 이합 Conjunciones y disyunciones』(1970), 『원숭이 문법학자 El mono gramatico』(1974)가 있다. 파스는 마르크스주의·초현실주의·실존주의·불교·힌두교에서 차례로 영향을 받았고 원숙기의 시에서는 풍부한 초현실주의적 형상으로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루었다. 그가 다룬 가장 중요한 주제는 성적인 사랑과 예술적 창조성을 통해 실존적 고독을 극복하는 인간의 능력이었다. [브리태니커 사전 인용]

고독한 미로El Laberinto de la Soledad


 고독한 미로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빠츄꼬(Pachuco)와 또다른 극단들
2. 멕시코인의 가면
3. 사자(死者)의 날
4. 말린체(Malinche)의 자식들
5. 정복과 식민
6. 독립으로부터 혁명까지
7. 멕시코의 지성인들
8. 우리들의 시대
9. 고독의 변증법

 간략하게 말하자면, 1, 2, 3은 멕시코인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는 몇 가지 표상을 통해 멕시코인을 해부하고 있다. 4번부터 8번까지는 느슨하게 멕시코의 역사를 따라가며 분석하는 것이다. 

 빠츄꼬와 또다른 극단들에서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나오며 미국과 멕시코를 비교한다. 옥타비오 파스는 미국에 있을 때에 이 책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성찰을 했다고 한다. 타향에 있으면서 자신과 자신의 나라의 정체성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본 빠츄꼬- 미국 남부 도시에 사는 멕시코계 젊은이 집단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도 현재의 상황도 모두 거부하는 이들이다. 다만 거리에 완전히 드러난 채 있으며 박해를 받고 박해가 구원이 된 이들이다.
 그리고 멕시코인의 고독과 미국인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한다. 멕시코인과 미국인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다르다. 미국인에게 세계는 인간이 세운 것이다. 그들은 확실성과 신용, 외견상의 유쾌함과 세계와의 조화를 지니고 있어 비판 또한 자유롭다. 그러나 구조의 기저까지 비판하지는 않기 때문에 혁명이 아닌 혁신을 한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죽음을 부정하는 낙관주의자들이다. 반면 멕시코인들은 공포의 관망, 공포에의 친밀함을 가진 사람들이다. 죽음에 대한 찬양은 삶에 대한 찬양이기 때문에 멕시코인들 사이에서 당연한 일이며, 멕시코인들은 니힐리스트이다. 술을 마시는 습관에서도 두 국민의 차이는 드러난다. 멕시코인들은 고백하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미국인들은 잊어버리기 위해 술을 마신다.

 멕시코인의 가면에서는 멕시코인들의 감추는 속성을 이야기한다. 멕시코인들은 천성적으로 자기 자신을 감추어 보호하는 데에 익숙해 있고, 그럼으로써 외부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유지한다. 그들에게 사내다움이란 감추어서 외부에 고통이나 속내를 알리지 않는 것이다. 여성이란 수동적이고 의지가 없는 존재로서, 대답만 할 뿐 질문하는 존재가 아니다. 심지어 동성애에서조차도 능동적 역할을 하는 남자는 사면받을 수 있지만 수동적 역할을 하는 남자는 굴욕을 당하고 폭력의 대상이 된다. 결국 사내다움이란 자기 자신을 열지 않고 보호하면서 상대를 열어 상처입히는 것이다.

 사자의 날은 축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축제는 가난한 나라의 유일한 사치이자 즐거움이고 오히려 부자 나라의 취미생활보다 더 돈이 적게 들지도 모른다. 멕시코인들은 축제를 사랑한다. 축제기간에는 소극적인 사람도 모두 대담하고 도발적으로 변한다. 모든 것이 거꾸로 변하는 시간이자, 신화적으로 멈춰져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축제의 기능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이 연구하고 말하여왔다. 그러나 멕시코인들의 축제는 조금 다른 성격을 띤다. 멕시코인들은 원초적인 시간으로 돌아가는 축제에서조차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해방되고자 한다. 완전히 부서져 사라져버리려고 한다. 그러므로 멕시코의 축제는 즐거움의 시간이지만 고통의 시간이기도 하다. 죽음과 삶 두 가지 모두를 무시하고 등돌리고 있는 멕시코인들의 삶에, 놀이에, 축제에, 사랑에, 사상에, 모든 곳에 죽음은 깊이 침투해있다.

 말린체의 자식들은 멕시코인들의 뿌리에서부터 존재하는 모순을 이야기하고 있다. 처음에는 chiganda로부터 파생되는 상스러운 말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상스러운 말은 오히려 생명력의 표출이며 성스러운 언어로서 각국마다 상스러운 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chiganda와 chingar에 대한 용례들을 보고 있자면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 있다. chiganda는 억지로 개방되고 더럽혀졌거나 조롱당한 어머니를 말한다. 스페인인의 경우 그것은 창녀를 말하겠지만, 멕시코인의 경우 그것은 강간의 산물을 말하는 것이다. 마쵸는 삶의 극단적인 남성을 뜻하며, 이른바 chingar를 행하는 사람이다. 폭력과 복수를 위한 힘을 가진 뒤틀린 남성상이 마쵸로, 고독한 이방인이며 모든 걸 삼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마쵸는 영웅이나 신성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영웅은 젊고 고난당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래서 멕시코인에게 아즈테카의 마지막 황제인 쿠아우테목은 영웅으로 비친다. 이와 반대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욕의 대상이 되는 것이 말린체이다. 말린체는 배반이라는 행위로 인해 쿠아우테목의 반대편에 위치하게 되었고 쿠아우테목과 말린체의 존재는 서로 반대되면서도 보완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말린체를 부정함으로써 멕시코인들은 혼혈을 더럽게 여기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이 멕시코인들의 모순이다. 19세기 중반의 자유주의 정부는 이런 혼혈과 같은 조건을 무시할 수 있는 새로운 나라를 멕시코에 세우려 했던 것이다.

 정복과 식민, 독립으로부터 혁명까지, 멕시코의 지성인들, 우리들의 시대는 느슨하게 역사적으로 시대를 구분하여 그에 대한 옥타비오 파스 자신의 성찰을 말하는 것이다. 소르 후아나, 후스또 시에라, 호세 바스콘셀로스 등 멕시코 역사상의 지성인들과 큰 역할을 담당한 이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새로이 입법되었던 제도에 대한 평가를 하고, 역사적인 평가를 하면서도 철학적인 코멘트를 빼놓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쓴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멕시코에 한정시켜서 조금 더 역사적 맥락을 약화시킨 것처럼 보였다. 내용이 비슷하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역사의 고독을 지나 지금(이란 옥타비오 파스의 시대이겠지만) 멕시코는 처음으로 세계와 동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멕시코 혁명에 대한 해석이다. 멕시코 혁명에는 이데올로기가 없고 대신 신화적인 인물만이 존재했으며, 멕시코는 메마른 19세기의 문화를 지나 혁명에서 문화적 자양분을 섭취했다는 것이다. 혁명 이후에 혁명의 호걸들이 신화화되고, 새로운 멕시코를 만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계속되는 것은 멕시코 혁명의 이런 특이한 성격 때문이다.

 고독의 변증법은 사랑, 고독, 죄에 관한 이야기이다. 멕시코인만 고독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고독하며, 그러한 고독의 반대편에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독과 동일한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현재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계급조차 장애가 되는 제한적인 것이다. “우리들 세계에 있어 사랑은 거의 가닿을 수 없는 하나의 경험”인 것이다. 사랑은 인간적인 행위이며 선택이고 내부로 파고드는 것과 타인 속에서 자신을 실현시키는 이중의 본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본보기 중 하나이다. 고독은 한 세계와 단절하는 동시에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겠다는 욕구가 공존하는 이중적인 것이다. 그래서 종교와 신화와 비밀의식 속에 그런 고독의 이중성이 살아있다. 또한 고독을 느낀다는 것은 떨어져나온 몸뚱이, 공간을 그리워한다는 것으로 여기에서 낙원과 세상의 배꼽에 대한 신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미로의 신화는 성스러운 장소, 중심을 내포하고 있는 풍부한 상징이다. 이 중심을 향한 여정에서 인간은 떨어져나와서 직선적인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신화는 죽지 않았다. 현대에서도, 죽어가거나 불모에 허덕이는 황무지 같은 사회는 고독과 죄를 융합시켜줄 풍요와 화합, 구원의 신화를 만들어냄으로써 스스로 구원하려 애쓴다. 현대인은 각성하려고 애쓰지만 이제까지 눈을 뜨고 이성의 꿈을 꾸었으며 그 꿈이 오히려 더 잔인했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뜬 후 새로운 꿈을 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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