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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사진 좀 부탁해요
나오미 크리처, 전행선 옮김, 리프, 2020년 12월

나오미 크리처의 소설집 『고양이 사진 좀 부탁해요』가 2020년 12월 국내 출간되었다. 표제작 「고양이 사진 좀 부탁해요」는 2016년에 휴고상과 로커스상을 수상했고, 책에는 그 밖에도 여러 흥미로운 SF/F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틀을 차용하고자 한다. 바로 '존재의 방식에 관한 탐구'라는 관점인데, 그동안 SF 거장들이 끊임없이 추구해온 이 관점이 나오미 크리처의 작품들에도 또렷이 드러나 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모든 특별하고 이질적인 존재들은 작가 나름대로의 고민과 여러 가지 가능한 대답들을 담고 있다. 나는 오래된 질문을 파고드는 이러한 끈질김이 장르의 활력을 유지하는 동력이라고 믿는다. 아래에는 이 책에서 장르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작품 몇 가지를 추려 소개한다.

「고양이 사진 좀 부탁해요Cat Pictures Please는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에 관한 고전적인 아이러니를 언급한다. 알다시피 '로봇이 행동하거나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아시모프의 제1원칙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윤리적 문제들이 얽혀있다. 나오미 크리처는 이 원칙이 내포하는 쟁점의 세부사항을 반복해서 설명하기보다 AI가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 과정과 시행착오를 거쳐 스스로 타협점을 찾아낼 수 있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결과 이 작품 속 AI는 우리가 흔히 로봇에게 기대하지 않는 일군의 인간적인 ―그것도 매우 선하고 새침한― 기질을 드러냄으로써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를 선보인다. 이 AI가 바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하나는 인터넷에 업로드된 고양이 사진을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인간을 돕는 것이다. 그건 처음부터 그렇게 프로그래밍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AI의 일인칭 독백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의 선한 기질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나약함과 변덕스러움에 좌절하면서도 또다시 인간을 돕고자 활로를 찾는 AI의 선한 기질은 정교한 프로그래밍의 출력값일까, 아니면 스스로 사고하고 학습하여 내린 최선의 결론일까. 어느 쪽이든 그동안 인류를 파멸시키는 사악한 AI의 서사에 익숙해졌을 독자들에게, 이 이야기 속 AI는 처음부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악해지고 싶지 않아요."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나면, 아마 당신도 그 말에 담긴 선의를 믿고 싶어질 것이다.

「인조인간Artifice」에서는 포토리얼리즘 예술가인 '맨디'에게 만족스러운 로맨스를 제공하도록 설계된 로봇 연인 '조'가 등장한다. 남자라면 질려버린 맨디는 인조인간 조를 통해 완벽한 연애를 하게 되지만, 곧 싫증을 느끼고 다시 인간 남자에게 돌아간다. 조는 인간의 변덕에 맞추어 그때그때 원하는 성격을 이식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아마도 이런 '완벽한' 가소성Plasticity이 맨디를 공허하게 했을 것이다. 이는 맨디의 포토리얼리즘 예술을 바라보는 주인공 '이지'의 시선과도 교묘하게 맞닿아 있다. 포토리얼리즘에 대해 이지는 '사진처럼 보이길 원한다면 왜 사진을 찍지 않는 거냐'며 의아해하지만, 맨디는 포토그래피와 포토리얼리즘의 차이를 명확히 알고 구분하는 예술가다. 그 미묘하면서도 불완전한 경계를 통해 작가는, 조의 완벽함과 맨디의 불만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을 비유적으로 역설한다. 어쩌면 우리가 완벽하다고 믿는 사랑은 미완의 예술에 더 닮아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완벽함의 역설에 대한 의문은 「완벽함Perfection」에서도 이어진다. '아샤'는 인간종을 개선하기 위해 유전자 코드를 변경하는 데에 동의한 집단이고 '아샤리'는 그런 아샤에서 일률적으로 설계하여 탄생한 이상적 인간이다. 아샤리인 주인공 '시크릿'은 업무 도중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는다. 아샤리의 외모는 모두 흠잡을 데 없이 균일하기 때문에 코뼈가 부러진 시크릿은 갑자기 다른 아샤리들의 눈에 띄게 된다. 도망치듯 성형외과를 찾는 시크릿에게 아샤는 더 이상 이전처럼 쾌적한 공간일 수 없다. 이 소설에서 적절히 묘사된 바 완벽하게 통제된 질서는 편안함이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 특유의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장르적 요소를 가미한 이야기 몇 편도 인상 깊다. 「스페이드 에이스Ace Of Spades」는 헌팅턴병을 가진 주인공 '나탈리'가 중국 광둥성의 내전지 포산에서 전쟁 관련 취재를 하게 된 사연을 들여다본다. 미국은 전자 보병 오토마타를 평화유지군으로 투입함으로써 자기네 힘과 기술을 과시하는데, 그 대가로 감수해야 하는 실질적 위험은 거의 ―또는 전혀― 없다. 작가는 미국이 군사 개입 비용을 점점 싸게 만들고 있으며 그 때문에 타국의 전쟁에 개입하고 싶은 유혹을 더욱 강하게 느낄 것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맺는다. 

「골렘The Golem」은 2차 세계대전 시기 체코의 프라하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유대인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피조물 골렘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창조자이면서 유대인인 '한나'가 죽어야만 자유를 얻을 수 있다. 이 골렘은 특정 인간의 미래를 보는 예지능력을 지녔는데, 이를 이용하여 한나의 죽음―그리고 자신의 해방―이 7개월 후에 일어날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7개월 동안 한나와 그녀의 동료 '알레나'를 소극적으로 돕기만 해도 자유를 얻을 수 있지만, 골렘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고 한나를 은신처에서 탈출시킨다. 익숙한 구조의 서사임에도 홀로코스트의 실존적 위기 한복판에서 위태롭게 벌어지는 사건들이 깊은 생각과 감정을 불러온다.

2차 세계대전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또 다른 이야기 「할머니 동지Comrade Grandmother」는 히틀러의 독일에 맞서는 소련을 배경으로 한다. '바바야가'는 계약에 따라 대가를 취하고 소원을 들어주는 마녀고, 투철한 애국심으로 무장한 '즈네즈다'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마법사와 계약을 맺는다. 군인이 아닌 그녀가 희생할 수 있는 것은 머리카락과 젊음,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목숨이다. 소설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그간 희생되어 온 것들의 면면을 환기함과 동시에 사랑하는 이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어떤 여성의 실존적 고뇌를 일별한다.

그밖에 「블레싱 계곡에서 일어난 일What Happened At Blessing Creek」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서부 개척지에 관해 미화된 역사를 써온 미국 백인 작가들의 관점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고, 「베를린 장벽The Wall」은 작가가 속한 세대가 공유하는 거대한 경험으로서, 1989년 11월 9일에 벌어진 장벽의 붕괴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장르적 요소를 적절히 사용하여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실제로 일어난 역사의 한 단면을 성공적으로 포착하여 보여준다. 이런 이야기들은 과거를 되돌리거나 최소한 그때로 돌아가서 누군가에게 귀띔을 해줄 수 있다면, 그런 일이 가능한 세계에서 나는 과연 어떤 삶에 가치를 부여하며 존재할지를 상상해보게 한다.

당연하게도 이 책에 실린 단편은 대부분 여성의 관점으로 서술되어 있다. 주인공은 대체로 누군가의 딸이거나 엄마이거나 아내이고, 여동생이거나 언니이며, 다른 무엇보다도 여성이다. 이 책에서는 「착한 아들The Good Son」과 「고양이 사진 좀 부탁해요」를 제외한 모든 작품의 화자나 주인공이 여성으로 명시되어 있는데, 그마저도 「착한 아들」의 화자는 요정이고 「고양이 사진 좀 부탁해요」의 화자는 AI임을 감안하면 이 작품에서 인간 남성의 이야기는 한 편도 없는 셈이다. 게다가 「골렘」에 등장하는 헌신적인 골렘도 여성으로 묘사되었으니, 표제작에 등장하는 선량하고 섬세한 AI도 작가의 구상에서 여성이었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결코 무리한 추론이 아닐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 「착한 아들」의 화자는 남성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공정해 보인다.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스크랩 드래건Scrap Dragon」「정직한 남자Honest Man」는 작가의 실제 인연을 작품 속에 등장시켜 만든 이야기다. 「스크랩 드래건」은 작가가 추진한 경매에서 낙찰받은 지인의 아내를 주인공으로 했고, 「정직한 남자」에서는 작가 본인의 할머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현실의 지인이 등장하는 만큼 이야기는 유쾌하고 운치 있으며 낭만적이다. 고마운 지인에 대한 작가의 배려가 돋보이는 작품들이고, 특히 「정직한 남자」는 불멸의 존재에 대해 신화적인 접근 대신 다분히 인간적이고 재치 넘치는 스토리텔링을 채택한 점에서 더 정감 있게 느껴진다.

책에는 이 글에 짤막하게 언급된 11개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총 17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성향에 따라 편차는 있겠지만 모두 재미있고 기발하며 장르적 쾌감을 섬세하게 자극하는 이야기들이다. 단편소설집이 늘 그렇듯 여러 작품을 한 줄로 꿰어 정의하긴 쉽지 않겠지만, 작가의 다음 책 소식이 들려올 때 내가 곧바로 예약 버튼을 클릭할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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