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우수작 슬픔이 가능한 기한

2016.06.30 23:5706.30

슬픔이 가능한 기한

 

 

어쩔 수 없는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거나 마음이 많이 아파 눈물이 날 때, 사람들은 줄곧 나를 진심으로 위로해주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나에게 슬픔이 가능한 기한을 함께 정해주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일곱 살 때 키우던 거북이가 나의 잘못된 관리로 몇 개월 만에 죽어버리고 초록색 살이 검게 썩어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버려지게 되었을 때, 내가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하루정도였다. 하루가 지나서도 슬퍼하고 있는 나에게 부모님은 얼른 정신 차리고 학교에 가라고 말씀하셨다. 내 슬픔은 아직 남아있었으나 거북이 한 마리 때문에 영원히 슬퍼할 수 없다는 엄마의 말이 어린 마음에도 꽤 그럴듯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나는 그 말을 따랐다.

 

아홉 살에 집이 이사를 가게 되어 제일 친하던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을 때, 내가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은 삼일 정도였다. 정말 사랑했던 친구였고, 어린 나에겐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는 친구였으나, 삼일이 지나도록 울고 있는 나를 보며 부모님은 친구는 또 사귀면 돼. 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도 맞는 말이었고 아무리 울어도 그 친구와 예전처럼 지낼 수 없었으므로 나는 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눈물을 멈추고 새로운 친구를 찾으려 노력했다.

 

열두 살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조금 달랐을까. 그 때는 좀 더 길고 깊은 슬픔의 기한이 주어졌었다. 밝고 건강하던 외할아버지(그 전날에도 회덮밥을 먹고 싶으니 사오라 하셨다)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아파트 11층에서 뛰어내려 돌아가셨으니 그 일은 어른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 나는 한 달 정도를 슬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난 후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생활을 했고, 맛있는 음식들을 배달시켜 먹었고, 외할아버지가 사시던 집을 처분하였다. 외할아버지께서 쓰시던 침대는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매일같이 그 침대를 쓰게 되었지만 침대를 바라보며 매일같이 슬퍼하지는 않았다. 그때쯤 나 또한 슬픔이 가능한 기한에 대한 학습이 되어 있었고 엄마의 가르침 없이도 스스로 슬픈 마음을 정리하여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열두 살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무뎌지기 시작하며 무언가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열여덟 살 때 일은 기억하는 것이 힘들다. 마치 습기가 가득 찬 창문을 통하여 들여다보는 것처럼 뚜렷하지 않은 기억들이 조각나 있어서 건져 올려내는 것이 쉽지 않다. 앞의 세 가지 사례가 나의 개인적인 슬픔들이었다면 열여덟 살 때의 일은 집단적인 슬픔이었다. 희미하게 그날이 기억난다. 나는 기숙사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기숙사에서 2학년 남자 선배 한 명이 목을 매고 죽었다. 성적 때문이었다. 선생님들은 거짓말을 했다. 그 선배가 죽은 장소는 학교가 아니라 집이며 오래전부터 지병이 있었다고 했다. 나를 비롯하여 마음이 약한 몇몇 아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수업은 0교시부터 그대로 진행되었다. 선생님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을 했다. 나는 그 선배와 친하지 않았으나 급식소에서 그 선배를 몇 번 봤었고 어제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사람이 갑자기 죽어버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날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남자 아이들은 평소처럼 농구를 하러 갔다. 한 명이 빠진 채로, 아무렇지도 않게. 선생님들은 성적 때문에 죽은 아이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우리에게 성적 생각을 해야 한다며 어서 눈물을 그치고 공부하라고 하셨다. 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뚝. 하고 끊어졌다. 그래, 선생님 말씀이 맞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릴 수는 없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그 선배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었던 기한은 그날 0교시에서 6교시까지 정도였다.

 

그렇게 꾸준히 슬픔에 무뎌져 온 나였기에 이번에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심지어 이번에 죽은 사람은 나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던 직장동료였기 때문이다. 그는 새벽에 한강에서 투신했다고 하였다. 그의 죽음을 핸드폰 문자 메시지로 받았을 때 나는 솔직히 조금 시원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제 해방이구나. 이제 괴롭힘을 안 받겠구나. 한 편으로는 재미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악하게도. 이 직장동료의 죽음 때문에 내일 아침 직원회의는 조금 미뤄지겠구나. 동료들과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지? 또 한 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려면 내일은 아주 슬퍼하는 모습을 연기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연기하지? 눈물을 흘릴까? 그건 너무 오버인가? 슬픈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건 어떨까? 옳지, 그게 좋겠다. 그것이 성숙하게 동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올바른 직장인의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9, 나는 직장에 출근하여 슬픈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직원들은 각각 슬픔을 연기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어떤 사람은 허탈하게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훔쳤다. 한 여직원은 충격으로 출근을 하지 못하겠다는 문자를 보내오기도 하였다. 출근을 하지 않은 여직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아침 직원회의가 미루어지고 죽은 동료에 대한 후속조치를 이야기하기 위해 직원들이 모이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죽은 직원의 후임자를 뽑기 위한 일정을 이야기했다. 취업난으로 지원자는 언제나 많았기 때문에 후임자를 뽑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인사 담당자가 오늘 내로 채용공고를 올리기로 하였다. 후임자의 자격요건과 면접절차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 후 잠시 보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으나 그는 무리한 대출금으로 고생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에 산업재해에 해당하지 않았다. 사내 규칙에 따르면 직원 본인이 사망하였을 경우, 직원회비 중 100만원을 지급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것이 회사에서 죽은 그에게 해주는 복지의 전부였다. 누가 그의 장례식장으로 가서 그 돈을 전달할지 역할을 정했다. 내가 직원회비를 관리하는 총무역할이었기에 그 역할은 내가 되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20분 정도 추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좋은 사람이었지. 입이 거칠어서 그렇지 일은 참 잘 했잖아. 덩그러니 남겨진 그의 자리에는 어제까지 그가 쓰던 커피 잔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커피 잔에는 그가 마시다 남긴 식은 커피가 아직도 삼분의 일이나 남아 있었다. 직원들은 씁쓸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미뤄진 회의 시작 시간을 잡았다. 회의는 10시 반에 시작하기로 하였다. 후속조치 이야기가 끝나자 직원들은 커피를 마시러, 혹은 담배를 피러 뿔뿔이 흩어졌다. 그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는 기한은 아침에 출근한 9시부터 10시 반까지였다.

 

그날 업무가 끝난 뒤 직원회비 100만원을 현금 인출하여 적절한 봉투에 담은 나는 지하철을 타고 그의 장례식장으로 갔다. 그의 장례식장은 고려대 안암병원이었다. 안암역까지는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돈을 전달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10시는 족히 넘으리라. 이것 또한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된 나는 그가 나를 끝까지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화가 났다. 그리고 내년 업무분장 때는 이 귀찮은 직원회비 총무 역할을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겠다고 생각했다. 퇴근인파로 분비는 답답한 지하철 안에서 나는, 잠시, 어쩌면 어쩔 수 없이 그에 대한 기억에 사로잡혔다.

 

그는 나를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서른 후반이 다 되도록 노처녀였던 그에게 연인이 있는 젊은 직원이었던 나는 그냥 미운 사람이었다. 나는 연인이 있다고 자랑을 하지도 않았다. 나의 첫 입사 날 순진한 내 연인이 회사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커피와 간식을 나누어주며 나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 것이 어쩌면 화근이었나 싶다. 아니, 그는 그냥 나를 미워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둔하다, 멍청하다, 일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말했고 나를 바보취급하기 일수였다.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매일 매일 내 복장을 가지고 지적하는 것이었다. 청바지를 입고 오면 대학생 같다고 비난하고 원피스를 입고 가면 힘든 일을 할 생각이 없으니 저런 고운 옷을 입고 온다고 비난했다. 어쩌다 염색을 하면 색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웃었고 오랫동안 미용실을 가지 않으면 자기관리를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미칠 것 같았다. 내 인사는 받아주지도 않았다. 내가 무엇을 하든, 잘 하든, 못 하든, 그는 그냥 나를 미워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직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돈다는 이야기를 마구 하고 다녀서 나는 우울증으로 회사를 그만둘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그 정도 힘든 것 가지고 회사를 그만둘 수는 없었다. 생활이 달려 있었다. 나는 참고, 또 참았다. 어떻게든 그와 잘 지내려 했다. 그건 쉽지 않았다.

 

입사한지 한 달쯤 되었을 때, 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나는 그가 평소 좋아하는 카라멜마끼아또를 사서 그에게 건네주려 했다. 내가 그의 책상에 카라멜마끼아또를 올려놓자, 그는 비웃음을 가득 띄고 나를 쳐다보았다.

 

유진씨, 이게 뭐에요?”

 

평소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 사 왔어요. 카라멜마끼아또.”

 

저 이 카페 커피는 안 먹어요. 여기 비싸기만 하고 맛은 없는데.”

 

죄송합니다.”

 

뭘 하든 센스가 없어. 왜 그러고 서 있어요? 유진씨는 왜 그렇게 매일 안절부절 어색하게 서 있어요?”

 

그때 나는 너무 식은땀이 나고 내가 앉아 있어야할지 서 있어야 할지, 재빨리 몸을 돌려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할지, 왜 이렇게 내 맘을 몰라주냐며 눈물을 흘려야 할지, 빙긋 웃으며 어떤 카페가 가격도 적절하고 맛있는지를 물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비참한 모습으로 땀을 흘리며 아주 천천히 내 자리로 돌아갔다. 누군가가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정말로 많이 힘들었다.

잘 죽었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순간 소름이 끼쳤으나 나는 그럴 자격이 있다. 라는 생각이 다시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지하철이 안암역에 도착했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사람의 장례식장이었으나 장례식장은 의외로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가 입사할 때 썼을 원서 사진은 영정사진이 되어 있었다. 사진 속의 그는 기계 같은 미소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미소가 정말 미치도록 싫었다. 조문객이 많지 않았다. 그의 친척으로 보이는 사람들 몇몇이 그의 부모님을 위로하고 있었다. 친구도 없나. 그럴 만도 하지.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겉으로는 견딜 수 없는 슬픔을 연기했다. 나는 정말 세상이 무너진 표정으로 장례식장에 들어가 부조금을 전달하고 (한시라도 빨리) 나오려 하였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붙잡았다.

 

잠깐만요, 우리 아현이 회사에서 오셨어요?”

 

, 어머님,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직원들도 정말 놀랐습니다. 어쩌면 이러게 갑작스럽게...”

 

우리 아현이가 유진씨라는 분에게 편지를 남겼어요. 친한 동료였나 봐요. 이것 좀 그분에게 전해주세요... 에구 썩을 것... 몹쓸 것...”

 

그의 어머니는 품속에서 조그만 엽서를 꺼냈다. 딸기를 안은 샴 고양이가 그려진 작은 엽서였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고르기에는 너무 귀여운 디자인 아닌가. 하지만 딸기도, 샴 고양이도 전부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나는 오열하는 어머니께 편지를 꼭 전달하겠노라고 약속하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나는 엽서를 주머니에 넣고 지하철을 탔다. 엽서를 꺼내어 읽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가 도대체 나에게 무슨 말을 남겼단 말인가. 왜 하필이면 나에게 편지를 남겼을까. 회사에는 20여명이나 되는 직원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미워했던 나에게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밤의 지하철은 올 때보다 한산했다. 지하철이 한강을 건널 때쯤 나는 호기심에 못 이겨 엽서를 꺼내었다. 딸기를 안은 샴 고양이가 빙긋 웃고 있었다. 귀여웠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엽서를 뒤집었다. 까칠한 그의 성격과 정 반대인 동글동글 귀여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엽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유진씨,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를 잊지 말아줘.

정말로 미안해.

 

 

그게 전부였다. 서른일곱의 여자가 죽음을 앞두고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며 썼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어린아이 같은, 마치 열 살짜리 여자 애가 절교한 친구에게 보낸 사과편지 같은 그 짧은 글이 전부였다. 자기가 잘못한 건 아나봐. 나는 엽서를 주머니에 넣었다. 하지만 그 짧은 글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다음날 출근을 했을 때 그의 자리는 이미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는 기한은 당연히 끝나 있었고 직원 중 가장 슬픔에 예민한 사람(예컨대 출근을 하지 못했던 여직원 등)들도 차분한 표정을 하고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얼마나 잘 잊는가. 나도 그에 관한 일을 모두 잊어버리고 새 출발을 하고 싶었다. 어느새 입사 3년차, 일도 손에 많이 익었고 나를 괴롭히던 그가 없으니 회사 생활은 아주 순탄할 예정이었다. 잊어버리자. 나는 생각했다. 잊어버리자. 어제 장례식장에 갔던 유일한 사람도 바로 나 아니었는가. 나는 직장동료로서 할 도리를 다 했다. 이제 잊어버리자. 오랫동안 반복 훈련되어 온 슬픔이 가능한 기한이 슬슬 작동하기를 바라며 나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눈엣가시처럼 미워하던 사람이다. 이제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자. 하지만 그것이 잘 되지 않았다. 마치 고장 난 기계처럼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물은 눈 안에 가득 고였다가 마치 열린 수도꼭지처럼 멈추지를 않았다. 나는 너무나 당황하여 화장실로 들어갔다. 10분 정도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다. 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황급히 눈물을 닦고 회의실로 향하였으나 화장실에서 회의실로 가는 그 짧은 복도 위에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와 나를 붙잡고 빤히 들여다보았다.

 

유진씨,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더니 많이 힘들었나봐. 괜찮으니 오늘은 들어가 쉬어요. 내일 출근해요.”

 

상사였다. 나는 울먹이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거푸 세 번 하고 일찍 퇴근했다. 3년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집으로 가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회사는 나에게 그의 죽음을 슬퍼할 기한을 하루 더 연장해 준 것이다.

 

낡은 아파트로 돌아온 나는 탁자 위에 그의 엽서를 올려놓고 한 참 동안 바라보았다. 딸기를 안은 샴 고양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딸기와 샴 고양이를 좋아했다. 내가 그것들을 좋아한다고 그에게 말한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3년 이라는 시간을 함께 지내며 언제인가 나도 모르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를 기억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빨리 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 충실히 슬퍼한 다음 내일은 정상적인 모습으로 출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저녁 여섯시가 되었을 때쯤 무언가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면을 끓였다. 한 젓가락도 입에 들어가지 않았다.

 

다음날 9시 회사에 출근했을 때 나는 상황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사소한 업무도 수행할 수 없었다. 보다 못한 상사가 병원에 가보라는 이야기를 했다.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거 아니냐는 직원들의 수군거림이 아프게 가슴을 찔러왔다. 나는 삼일 동안 병가를 내고 회사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나는 망가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더 이상 슬픔이 가능한 기한에 내 자신을 맞출 수가 없었다.

 

당분간은 괜찮았다. 회사의 도움으로 실업급여를 받았다. 실업급여는 6개월 동안 나온다고 했다.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정상인이라면 빨리 재취직을 준비해야하겠지만 나는 그 동안 슬퍼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슬퍼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기한을 정해주어 슬퍼하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던 모든 것들을 슬퍼했다. 처음에 슬픔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내 자신이 무엇을 슬퍼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거대하고 푸른 슬픔의 파도에 휩쓸려 눈물만 쏟아내야 했다. 파도는 매우 높고 깊어서 물이 빠지는 데까지 아주 긴 시간이 걸렸다. 파도 속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그저 슬퍼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무만이 나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슬퍼해야 한다, 기억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 몫까지. 영원히.

 

그렇게 보름이 지난 후 나는 뼈밖에 남지 않았다. 슬픔으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괴로워 술을 마셨다. 담배도 다시 피웠다. 씹어 먹는 음식은 단 한 가지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쌀을 사다놓고 묽은 죽을 끓여 먹었다. 그조차 이틀에 한 번 꼴로 먹었다. 슬픔 때문에 배도 고프지 않았다. 잠도 오지 않았다.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내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슬픔을 대리해줄 역할을 맡은 아주 중요한 인물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슬퍼할 일인가. 너는 정신병에 걸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내 이성의 끈이 그렇게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슬픔으로 인하여 집 밖으로 잘 나서지도 못했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구멍가게에만 겨우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약해져 있었다. 정신병이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었던 것이다. 거대한 파도가 조금씩 가라앉으면서 슬픔의 실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참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들으면 코웃음이 나올 사소한 내용들이었다.

 

첫 눈이 내릴 무렵 나는 아파트 상가 문구점에서 커다란 스케치북을 하나 샀다. 그리고 매일 같이 그 스케치북에 내가 슬퍼해야 할 것들의 목록을 썼다. 처음에는 또박 또박 써 나갔지만 나중에는 쓸 것이 너무나 많아서 휘갈겨 써야 했다. 슬퍼해야 하는 것들의 목록은 끝이 없었다. 어렸을 때 멋모르고 꺾어온 벚꽃가지가 하루 만에 시들어 버린 일(나는 벚꽃에게 미안했다), 아빠가 사주신 곰 인형을 아나바다 장터에 팔아버린 일, 키우던 강아지를 시골로 보냈는데 보신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일, 내가 잡아온 올챙이 물을 갈아주다가 배를 터뜨려 죽인 일, 초등학생 때 친구 한 명(모르는 애였다)이 철로에서 기차 사고로 죽은 일, 중학교 담임 선생님의 남편(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이 돌아가셨을 때, 모든 계절이 끝날 때 느꼈던 슬픔들, 모든 방학이 끝날 때 느꼈던 슬픔들, 모든 졸업식들, 모든 년도의 마지막 날들, 마지막 수업, 마지막 포옹, 마지막 인사, 마지막 순간. 그 모든 마지막과 죽음들. 나는 숨 쉴 수도 없이 많은 슬픔들로 가득 차 그것을 스케치북에 토해내듯이 써갔다. 스케치북은 금세 가득 찼고 그러면 나는 스케치북을 하나 더 샀다. 그것도 금세 가득 찼다.

 

나의 하루 일과는 스케치북을 가득 채우는 것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스케치북을 채우면 채울수록 나는 이 별의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슬픔이 가능한 기한을 정해두고 그 기한에 맞추어 슬퍼하는 것이 가능한 지구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터무니없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매우 강력하게 그 생각을 믿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별에서 왔고 그 별에서는 끝없이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나는 슬픔이 가능한 기한이 없는 별에서 왔다. 나의 별에서는 영원히 슬퍼할 수 있고 모든 것들은 영원히 기억되며 그 어디에도 마지막은 없다.

 

 

내 상태는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아주 심각했다. 당연히 영양결핍이었고 집에는 미치광이 같은 글자가 깨알같이 가득 찬 스케치북만 열 두 권이 쌓여 있었다.(나는 그 스케치북을 빼곡하게 채우느라 하루에 세 시간만 잤다) 그 상태에서 혼자 쓰러져 죽지 않은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추석이 다가올 무렵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는 내 건강을 걱정하며 하루빨리 재취업할 회사를 찾아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엄마를 안심시키며 그러겠다고 말했다. 엄마는 설날에 집으로 내려오라고 말씀하셨다. 다들 나를 걱정한다고.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스케치북을 어서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다 채워야 나는 재취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하셨다. 걱정이 되니 어서 본가로 한번 내려와 보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역시 엄마는 지구 사람이라 말이 안 통해. 나는 영원히 슬퍼할 수 있는 별에서 왔어. 슬픔이 가능한 기한에 맞추어 살 수 있는 엄마 같은 지구별 사람이랑은 다르단 말이야.”

 

고향의 가족들이 내가 혼자 살고 있는 아파트로 올라온 것은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나는 신속한 가족들의 도움(이라기보다는 조치)을 받게 되었다. 다음날 나는 자동차에 실려 정신병원으로 갔다. 대학병원이었다. 몇 가지 귀찮은 검사들이 끝난 후 나는 입원을 권유 받았고 폐쇄병동에 세 달 동안 입원하였다. 다행히 나는 자해나 자살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빨리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하기 직전 면담에서 의사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기분은 어때요? 이제 좀 괜찮아요?”

 

나는 빨리 내 아파트로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에(정신병원에서는 스케치북에 글 쓰는 것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적당히 꾸며댔다.

 

, 그 때는 동료 직원의 죽음에 너무 충격을 받아 그랬던 거예요.”

 

의사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한 동안 내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충격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 누구도 지인의 죽음을 겪지 않고 살아갈 수 없어요. 이제는 그만 슬퍼하고 털고 일어나야죠. 집에만 있지 말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햇빛도 많이 쐬셔야 합니다.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요. 가족들을 생각하세요.”

 

그날 나는 퇴원했다. 걱정하는 가족들을 억지로 집에 돌려보낸 나(정신병원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안심시킬 수 있는가를 아주 잘 배운 터였다)는 새 스케치북을 사서 내 아파트로 돌아갔다. 아파트 화단에 듬성듬성 나 있는 꽃들과 버려진 자전거들을 바라보며 새로운 슬픔의 목록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한 자, 한 자, 스케치북에 옮겨 적었다. 예전에 미처 슬퍼하지 못했던 것들의 목록을 아직도 다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파트 상가 구멍가게에 가서 쌀과 소주를 잔뜩 사 와서 쟁여 두고 나는 슬퍼하는 것에만 집중하였다. 목록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밖으로 나가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지어진지 40년이 넘은 낡은 건물이었다. 8평짜리 독신자 아파트에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은 가난하거나, 혼자이거나, 늙은 사람들뿐이었다. 아파트 화단은 관리가 잘 되지 않아서 나무와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나는 좁디좁은 아파트 베란다에 탁자를 두고 앉아 시시각각 바뀌는 식물의 색을 바라보며 슬픔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에 더욱 힘을 썼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였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고, 나처럼 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이 굉장히 이상한 것이었다. 내가 쓴 목록들에는 사람들이 정해둔 적절한 슬픔의 기한도 함께 써져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내가 작성한 서른두 번째 스케치북의 열다섯 번째 페이지를 한 번 함께 보자.

 

- 학교를 함께 다니던 동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슬퍼할 수 있는 기한 : 한 나절에서 하루 정도

- 늙은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할머니 집을 나설 때 슬퍼할 수 있는 기한 : 한 시간 정도

- 아끼던 낡은 옷이 찢어져 입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슬퍼할 수 있는 기한 : 10분 정도

-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할 수 있는 기한 : 3분 정도

 

이런 식이었다. 내가 정해둔 기한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지구별에서 생활하며 익힌 관습을 참고해서 최대한 보편적인 시간을 잡아보려 노력하였다. 보통의 경우 그 이상의 시간을 슬퍼하거나 견디지 못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으며 시간을 낭비한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게으른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기도 하였다. 너무 큰 슬픔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 사람들은 어서 털고 일어나야지, 산 사람은 살아야지, 다른 생각을 해 봐 라고 말했다. 아무도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슬퍼할 수 있는 기한은 분명하게, 정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이 세상의 어딘가에는 세상 모든 슬픔의 목록과 가능한 애도의 기한이 적힌 거대한 지침서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지침서에 따라 생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몸 속 어딘가에 가지고 있지만 나는 그 프로그램이 망가져 버린 것이다. 나는 시스템을 자동 복구하려 노력하는 낡은 컴퓨터처럼 슬픔이 가능한 기한을 계속 기록하였다. 매일 같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슬픔 속에서 바들바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실업급여가 끊어질 무렵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낡은 아파트는 냉동실처럼 싸늘했지만 가스비를 낼 형편이 되지 않았던 나는 두꺼운 외투를 잔뜩 껴입은 채 계속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텅 빈 내 마음 어디에서 그토록 긴 글들이 나온 것인지 신기할 정도로 스케치북들은 차곡차곡 쌓여갔다. 스케치북들이 깨알 같은 글씨로 통통하게 살이 오를수록 내 몸은 바싹 말라갔다. 쌀과 돈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조금 난감해졌다. 하지만 나의 고장 난 프로그램은 쉽게 복구되지 않았다.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많이 상해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나는 돈을 어디서 구할지 고민하며 그가 남긴 엽서를 꺼냈다. 딸기를 안은 샴 고양이 그림을 계속 바라보며 이 모든 슬픔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왜 우리는 언젠가는 슬퍼하기를 멈추고 내일을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가를, 계속 고민했다. 정답이 나올 수 없는 고민이었지만 나는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는 나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했다. 기억이란 무엇일까. 그와 같이 싸가지 없고 못된 상사를 만났을 때마다 가끔 한 번씩 떠올려 달라는 이야기였을까. 아마 그런 것이지 않았을까. 나는 그의 뜻에 따라 그를 기억하고 있지만 나의 애도는 과도하다. 나는 매일 매일 그를 생각한다. 슬픔이 가능한 기한은 이미 아주 오래 전에 지냈지만 나는 계속해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이것은 정상이 아닌 일이다. 그도 자신이 남긴 글 하나가 나를 이토록 망가뜨릴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베란다에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회색 담뱃재를 따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얼음 덩어리가 함께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눈이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손을 뻗어 눈송이 하나를 잡아보려 했다. 내 몸이 점점 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나의 손톱은 딱딱한 돌로 변해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여 보려 했는데 열 손가락에 깁스를 한 것처럼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내가 돌이 되어가고 있구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몸을 돌려 아파트 문을 열려 했다. 돌이 된 손가락으로 대문을 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아직 돌이 되지 않은 팔을 이용해 아주 어렵게 대문을 열어야 했다. 나는 빠르게 돌이 되어가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갈 때쯤에는 머리카락과 다리가 모두 돌이 되어서 내 발걸음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쿵쿵 낡은 아파트 단지를 울렸다. 다리가 무거워 앞으로 나가는 것이 고통스러웠으나 누군가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돌로 변한 팔 다리를 이끌고 아주 힘들게 현관을 지나 아파트 화단까지 나왔으나 그 순간 다리 위 몸통까지 돌로 변해 버렸다. 아주 크게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나는 아파트 화단에 주저앉아 버렸다. 돌이 된 몸 위로 눈이 떨어져 내렸다. 내 입술이 돌로 변해 버리기 전에 나는 아주 작게 도와주세요, 라고 말했던 것 같다. 돌이 된 몸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쏟아지듯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격동하였다.

 

이 별은 참 이상하다. 자동차를 타다가 죽을 확률이 10만 명당 네 명인데도 사람들은 자동차를 없애지 않는다. 정말로 이상하다. 시험을 치고 자살하는 사람이 매년 나오는데도 시험을 없애지 않는다. 누군가가 아파하면서 죽어도 기억하거나 슬퍼할 시간을 정해두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다시 밝은 얼굴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살아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렇게 해야 이 별이 지금까지처럼 운영되기 때문이다. 나를 괴롭히던 못된 상사가 죽은 것은 이토록 슬퍼할 일이 아니다. 슬픔의 흉내를 잠시 낸 후에 나는 다시 평소처럼 지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이 정답일까? 정말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이 세상은 알 수 없는 슬픔들로 가득 차 있다. 어떤 슬픔은 수천 년이 된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감당해낼 수 없어 돌이 되었다. 사람들은 세상살이가 원래 그런 것이라고들 한다. 누구나 겪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나 겪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여 이렇게 돌이 되었다. 나는 슬픔을 묻어두고 내일로 나아가야 하는 삶을 살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떠나간 사람들, 물건들, 시간들 모두.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다. 나는 이제 나의 별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 잠시 후, 이상한 소리를 듣고 자전거를 탄 경비원이 아파트 화단으로 찾아왔다. 하지만 그는 기괴한 모양의 거대한 돌덩이만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크기도 꽤 크고 무거울 것 같았다. 재건축으로 이사 가는 집이 많다보니 이렇게 쓰레기를 불법 투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경비원은 매직을 꺼내 돌덩이에 이런 글씨를 썼다.

 

“CCTV 분석하여 벌금 부과하겠습니다. 폐기물 스티커를 부착하여 버려주세요.”

 

글씨를 다 쓴 후, 그는 자기 임무를 다했다고 생각하여 경비실로 돌아갔다.

 

- 그날 밤, 바닷가의 모래알들보다 많은 눈송이들이 떨어졌다. 눈송이들은 바닥으로 쌓여 떨어지거나 녹아 사라졌지만 그 중 단 하나의 눈송이는 녹지도 떨어지지도 않은 채 하늘 위를 떠돌았다. 그 눈송이는 저 멀리 다른 별로 날아갔다. 그 별에는 슬픔이 가능한 기한이 없었기에, 그 별의 사람들은 지구와 달리 영원한 애도 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댓글 0
분류 제목 날짜
2019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명단 2019.02.26
후보작 블런더버스 2017.03.31
선정작 안내 심사평2 2017.03.31
우수작 개나 고양이 2017.02.28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1 2017.02.28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 2017.01.31
선정작 안내 2016년 4분기 우수작 및 2016년 최우수작 2017.01.01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1 2016.11.30
후보작 다수파 2016.11.30
선정작 안내 독자우수단편 후보작 심사평2 2016.11.01
선정작 안내 2016년 3분기 독자우수단편 선정2 2016.09.30
우수작 스마트폰은 이제 우리 몸의 일부나 다름없습니다 2016.09.30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6.08.31
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1 2016.07.31
우수작 속 사소설 고양이 이야기1 2016.07.31
선정작 안내 2016년 2분기 독자우수단편 선정 2016.06.30
우수작 슬픔이 가능한 기한 2016.06.30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 2016.06.01
선정작 안내 선정작이 없습니다.1 2016.04.30
선정작 안내 거울 독자우수단편 선정3 2016.03.31
우수작 그날 산 속에서 시간여행자를 만났어 2016.03.31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