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어느덧 다시 한 해가 끝나고 새해가 돌아왔습니다. 모두 건강하신지요?
이번 달에는 분량이 길고 구성이 탄탄한 글이 많았습니다. 즉흥적으로 써내려간 습작보다는 구성이나 주제를 고민한 흔적이 묻어나는 글이 많아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런 만큼 아쉬운 부분이 작아도 더 아쉽기도 했습니다. 새해에도 건필하시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 호를 마지막으로 독자우수단편 심사방식이 바뀝니다. 아직 공지를 확인하시지 않으신 분들은 공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50호에서는 우수작으로 민경일님의 {브레인 스톰}을, 가작으로 장피엘님의 {고리, 幻}을, 민경일님의 {휴먼 에스컬레이션}, 목이 긴 기린 그림님의 {약물요법ZA}를 선정하였습니다.

11월 16일부터 12월 15일 자정까지 올라온 총 11편의 글 중 심사대상이 된 글은 9편이었습니다. {속 검녀전(이니군)}은 분량 초과, {님아 그 우주를 건너지 마오3(알렉산더)}은 연작으로서 규정에 따라 심사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소희가 외계인이었던 시절- 목이 긴 기린그림

A: 반전을 위한 복선이 약한 것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결말을 말끔하게 처리하고 있어서 여운을 남기는 것이 장점이지만, 어쩐지 느닷없이 반전이 등장한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춘기를 관통하는 정체성의 혼란과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주장을 감성적으로 엮은 것이 인상적입니다. 공간도약 기술을 응용해 태내로 전송하는 아이디어가 흥미롭군요. 대화에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목적이 있는 작가의 의도겠지요?

B: 외계인이었던 시절이라는 말로 바로 연상할 수 있었던 장르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청소년 감성 같은 전개가 나와 의외였습니다. 아마도 결말의 반전이 없었다면 정말로 감성 드라마로 끝맺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따옴표를 사용하지 않은 스타일은 더욱 그렇게 보일 만했고요. 잔잔하게 잘 읽었습니다. 


뒷골목의 성형외과- Mr. Nerd

A: 아름다워지기 외모를 고치는 사람들을 두고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다는 말들을 흔히 합니다. 이 말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이 이야기 속에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가능케하는 내면의 변화 방식이 흥미로운 아이디어로 등장합니다. 소박하고 단순한 구성이지만 주제에 접근하는 신선한 관점과 간결함이 장점인 것 같습니다.

B: 외모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외모를 바라보는 방식을 고침으로써 성형하는 병원이라는 아이디어가 신선합니다. 하지만 환자 한 사람의 문진으로 그것을 알게 되며, 이미 그전에 환자가 대기하면서 어떤 원리인지 독자가 충분히 짐작할 만하기 때문에 길이가 훨씬 짧았어도 될 것 같습니다. 아주 압축하든지, 이러한 성형과 기술을 가지고 다른 일이 벌어지며 길어지든지 해도 흥미로울 것 같네요. 오타가 있습니다. “마음을 조정해 마음에 들게 만들었는데, 마음에 들 리 없는 일이니까.” 크게 반대되는 뜻이 되어버려서 지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호접지몽 - 딱다구리

A: 호접지몽을 시뮬레이션 우주 이론에 접목시킨 글입니다. 핵심적인 주제는 결말의 마지막 단락이 전부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너무 많은 설명이 인물 간의 대화로 제시되었습니다. 시뮬레이션 우주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과학 이론과 대비되는 우주 이론이 필요하다고 작가가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과학이론을 손쉽게 인물 간의 대화에 담아 나열하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풀어 갈 수는 없는지 고민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B: 호접지몽과 매트릭스는 이미 진부할 정도로 연관된 바 있지만, 가상현실이 존재하는 이유가 자살자를 가지고 하는 장기매매인 건 신선했습니다. 현 물리학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에 더 목적이 있나 싶도록 대화가 길고, 그 대화 전까지도 주인공의 인생이 구구절절이 나옵니다. 주인공이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 설득력을 얻기 위해 인생 전체를 알 필요는 없습니다. 뇌만 가상현실에 갇힌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긴 대화를 할 필요도 없고요. 대화 자체는 열변을 토하니 읽을 맛이 있었지만 꼭 필요한 길이와 내용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또한 뇌를 가상현실 속에서 살려두려면 필요한 비용도 있을 텐데 왜 굳이 그렇게 할까 하는 의문도 조금 들고요. 이야기거리가 시사하는 바나 주제에 집중하면 어떤 다른 이야기가 나올지, 그 이야기를 박진감 있게 전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좀 더 많이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전파통제자 - sntakim

A: 전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최면을 통해 그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범죄가 가능할까에 대한 아이디어로 써내려간 이야기로 보입니다. 구성이나 사건 진행에 계획을 세우기보다 즉흥적으로 써내려간 듯한 흔적이 보이는 것이 단점입니다. 또한 인물 간에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불필요한 대화가 많은 점도 언급하고 싶습니다.

B: 제목이 스포일러이면서도 명확합니다. 전파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식으로 쓸 수 있는 건지 모르는 채로 이용부터 당하고 이후에 속시원하게 해결되는 것 없이 이야기가 끝납니다. 이야기의 전개과정에서 쉬운 부분이 없도록 치밀하게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보고, 진부함을 어느 정도 갖고 있더라도 개운한 결말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일 - Lowin


A: 주나라 목왕 시대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기이한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창작한 글입니다. 설화를 풀고 해석하여 수록한 고서를 읽는 듯이 힘 있고 강건한 문체가 인상적입니다.

B: 실제인지 작가가 창작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등장인물 셋의 관점에서 전개해나간 이야기입니다. 인간으로 착각할 정도의 수준인 인형과 그 창조자, 목왕, 목왕의 비 성희. 공인이 인형을 통해 비에 대한 마음을 들키고 비의 죽음 후 목왕이 인형을 죽이자 같이 죽어버리는 결말로 이어지는 관계에는 애틋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의 틀에서 나가길 꺼려해서인지 보통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사건도 없고, 마지막에 인용한 구절과 내내 이야기한 주제가 따로 놉니다. 사람의 일, 이라는 제목과 언급은 넓고도 깊어서 이 이야기에서는 겉만 스치고 지나간 것 같네요. 필력이 뒷받침되니 다음에는 더 대담한 글로 만나고 싶습니다. 




고리, 幻 - 장피엘

A: 소재인 '고리'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횃불이 만드는 불의 고리, 반지 등의 소재로서의 의미와 각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이어져있음을 뜻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연작처럼 이어지는 이야기가 조금씩 관련을 가지면서 진행되어 독자의 호기심을 자아내지만, 각 이야기들의 연결고리가 느슨한 것이 다소 아쉽습니다. 전작들에 비해 기승전결의 구조가 선명하고, 생동감 넘치는 묘사 등에서 보이는 발전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다만 잔잔한 감성이 담긴 결말을 지향하고 흘러가려는 무의식적인 습관을 작가가 염두에 두고 활용하거나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B: 반지와 반지를 연상시키는 고리를 매개로 해서 무사와 아내, 그들이 살던 집, 떨어져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산 등 공간과 시간이 다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연관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만큼은 단서가 숨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야기들 중 어느 하나를 빼도 감상이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을 거라는 뜻이지요. 또한 다양한 인물의 시점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문체와 문장이 거의 같아서 각 시점의 맛을 잘 살리지 못하였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하지만 전작들의 결점을 연작구조로 보완하여 좀 더 인상 깊고 상징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150호 독자우수단편 가작으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휴먼 에스컬레이션 - 민경일

A: 다소 장대한 스케일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통제적인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인간의 본질에 관해 묻는 글은 흔합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글은 인간의 본질 전체가 아닌 '창의성'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소설가라는 직업은 미래에도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맞물린 주제가 흥미롭습니다. 짜임새 있는 구성에서도 작가가 고민한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B: 모든 것이 기업과 기술에 통제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사회에서 실직자 주인공이 소설가로 성공을 합니다. 그 성공으로 신분이 상승하지만 차기작에 대한 부담으로 처음에 도움을 받았던 글짓기 교실을 찾아다니다가 세계의 진실에 접근합니다. 조금 긴 단편의 길이지만 스케일과 전개방식은 장편과도 같은 느낌입니다. 아마도 드라마의 한 에피소드나 극장 영화 정도의 길이는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기엔 중간에 주인공에게 부여되는 갈등이나 고난이 ‘돈’밖에 없지만요. 세계의 근간 아이디어가 굉장히 신선하진 않지만 설득력 있고 세밀하나 전개과정이 아쉽습니다. 프롤로그는 없어도 괜찮았을 것 같아요.

150호 독자우수단편 가작으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약물요법 ZA - 목이 긴 기린 그림

A: 대단히 긴 분량에서 좀비에게 쫓기는 장면에 너무 많은 부분이 할애됩니다. 세밀한 묘사는 인상적입니다만, 그 비중에 비해 분량이 지나친 것은 아닌지요? 오히려 307호 여자의 수수께끼 같은 모습이나 결말을 위한 복선이 제시되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글의 분량에 비해 플롯이 단순한 것도 단점인 것 같습니다.

B: 뱀파이어의 피를 마시면 지고의 쾌락을 맛볼 수 있다는 설정에 이어 좀비바이러스를 스스로 투여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의문의 원인으로 다시 아파트 한 동이 좀비소굴이 되고, 전직 특전사인 주인공은 유일하게 제정신으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긴박한 과정 하나하나를 다 묘사하는 와중에 여자에 대해 수상하게 생각하는 단서 또는 복선이 있습니다만, 살아남기에 급급한 주인공과 함께 독자의 뇌리에서도 빨리 흩어져 나갑니다. 의도하신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전개에 완급을 좀 더 조절해주신다면 복선은 복선대로 기능하면서 숨겨놓을 수 있을 듯합니다. 군데군데 비문이나 고쳐 쓰다 빠뜨렸는지 이상한 문장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150호 독자우수단편 가작으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브레인 스톰-민경일

A: 결말의 반전까지 차근차근 접근해온 과정에서 독자에게 제공된 복선이 적은 편이어서 반전을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다소 있습니다. 복선을 지나치게 독자들에게 숨기거나 모호하게 감추는 것이 드라마틱한 반전을 노리는 작가들이 잘 빠지는 함정입니다. 실제 내가 누군지에 대한 암시가 전반부에 더 놓였거나 조금 더 명확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일상이 시작되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면서 매일 조금씩 점차적으로 원래 기억으로 접근하는 기법을 잘 활용한 글로 여겨집니다. 기억상실은 기억상실 전후 인물의 대비를 통해 드라마틱하고 극적으로 인물의 변화나 사건을 전개할 수 있기에 많이 사용되는 소재입니다. 그래서 자칫하면 식상할 수 있는 소재인데 이 글에서는 그 소재의 묘미가 잘 이용된 것 같습니다. 인물의 감정 변화를 자연스럽게 쫓아간 점이나 짜임새 있는 구조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B: 기억상실로 인해 치료 중인 동혁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기억이 하루하루 다르다는 것, 도와주는 수연이라는 인물이 보이는 단서 등으로 사연이 있음과 그 사연이 친형과 관련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모든 기억을 찾았을 때 뜬금없거나 비약이 있지 않도록 차근히 단서를 심어둔 점, 그래서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한 필력이 뛰어난 글입니다. 다만 심어둔 단서가 초반부터 보인 것은 아니고 후반부에 급히 몰려 있다는 점이 아쉽고 과거가 밝혀졌을 뿐 되돌이표로 돌아간 결말이 작가의 의도, 작가가 전달하려 했던 주제에 부합하는지 궁금합니다. 

150호 독자 우수단편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거울 독자우수 단편에 선정되신 분들께는 책을 한 권씩 보내 드립니다. mirrorwebzine @ gmail.com 으로 우편물 수령할 주소, 성함, 전화번호(택배 발송시 필요)를 보내 주세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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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경일 15.12.31 22:10 댓글

    상세한 심사평에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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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이긴기린그림 15.12.31 23:45 댓글

    심사평 감사합니다. 두 소설 다 그렇지만, 약물요법의 경우는 특히 제 스스로는 딱히 어떤 단점이 있는지 찾기 힘들었던 거라 여러모로 눈이 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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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ntakim 19.02.25 12:40 댓글

    이걸 이제야 봤네요. 심사평 감사드립니다. 제가 부족했던 점들이 많이 느껴지네요. 이젠 전파로 통제한다는 소재가 많이 나오는 듯해서, 다른 걸 써볼까하는데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쉽지가 않네요. 아무튼 모두 건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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