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우수작 당신의 1%

2015.04.30 23:3404.30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잘못 이해하는 말 중 하나지. 흔히 우리는 이 말이 노력의 소중함을 역설한다고 보지만, 후에 에디슨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1%의 영감이 없다면 99%의 노력은 무용지물일 뿐이라고. 호오, 다들 못마땅한 눈초리로군. 그렇다면 너희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뭐지?

  수업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리고 학생들이 조금씩 동요하자 담임은 책을 덮으며 수업을 마쳤다.

  그래, 쉬는 시간이 더 중요하겠지.

  교실을 빠져나가는 담임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오늘 체육 밖이래. 교무실을 다녀온 반장의 들뜬 목소리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갈아입을 체육복을 찾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잠들 수 없는 수업시간을 위해 나도 체육복을 가지러 사물함을 열었지만 이내 황급히 닫았다. 어느새 체육복은 발효가 되어 있었다. 그 곳에 가득한 냄새는 난다기 보단 쩐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그 새끼도 이런 냄새가 날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방구석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다는 우리 반 오덕후가 떠올랐다. 점심시간에 자신의 반찬을 감싸 안으며 허겁지겁 밥을 먹는 피둥피둥한 모습에 언제나 욕지기가 났다. 하지만 그 모습은 나뭇잎을 뒤룩뒤룩 기어가는 애벌레와도 같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도 왠지 건드려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켰다. 나뭇가지로 찔러보고, 물속에도 넣어보고, 때론 개미떼가 바글바글한 곳에 놓아도 보고, 그러다 지겨우면 발로 밟으며 통통한 살집의 감촉을 느끼기도 했던 파브르를 존경하던 유년시절의 심심풀이 놀이는 지금도 꽤나 유효했다.

  할 수 없이 옆 반에 갔다. 체육복을 빌리려 했던 자리의 주인은 없었지만 난 익숙하게 책상 옆에 매달린 가방을 뒤져 체육복을 꺼내 들었다.

  누구야. 너?

  슬쩍 고개를 돌렸다. 옆자리에서 엎드려 자던 여자애가 눈을 부스스 비비고 있었다. 난 대꾸 없이 체육복을 어깨에 둘러메고 자리를 떠났다.

  동규 친구니?

  난 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돌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뒷자리에 앉은 여자애가 그녀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발걸음을 되돌려 그녀에게 다가갔다. 잠이 덜 깬 그녀의 책상을 짚고 서서 질겁하는 표정으로 슬쩍 자리를 뜨려 하는 뒷자리 여자애까지 도로 자리에 앉힌 채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나니벌이란 게 있어. 모르면 파브르 곤충기 찾아보시고. 그 벌은 번식기가 되면 애벌레를 잡아와. 꼼짝 않는 애벌레는 죽은 것 같지만 실은 마취만 된 상태지. 죽이진 않는다. 그게 재미있는 점이기도 해. 나나니벌은 구덩이를 파. 꽤 깊이. 왜냐면 이 애벌레를 넣고 그 녀석의 몸속에 알을 낳을 거거든. 그렇게 깊이 파서 애벌레를 구겨 넣고 그 안에 알을 낳은 다음 흙으로 묻기 전 나나니벌은 구덩이 속을 바라보지. 그리고 그 안에 뽕 맞은 눈빛으로 널 부러진 애벌레에게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는 거야.  

  여어, 잘 있게. 친구.

  뜨악한 그들의 표정들이란. 여기서 문제. 그렇다면 나나니벌과 그 애벌레가 친구일까?

  대답을 재촉하는 눈으로 두 사람을 흘겼다. 그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빙고! 생각보다 상식이 있는 애들이네. 좋아. 다음 문제. 그럼 내가 왜 너희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역시 고개를 젓는 그들.

  쓸데없는 소리하면 묻어버린다.


 

  방과 후 후장과 엑기스를 불렀다. 녀석들은-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불만 가득한 얼굴이지만 학교 내에선 이 호칭으로 통한다. 후장은 첫 경험 당시 입구를 제대로 찾지 못해 여친에게-어따 집어넣는 거야-싸대기를 맞은 전설적인 일화를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었고, 본명이 고선호인 엑기스는 담배를 너무 사랑하는 종갓집 2대 독자의 몸을 괜히 염려하는 집안에서 챙기는 보약(달팽이 엑기스)의 제조사가 공교롭게도 선호식품이라는데 착안, 부르게 된 별명이었다.

  오늘 메뉴는 뭔데?

  나는 습관적으로 말했다.

  동규.

  그 말을 들은 후장과 엑기스는 코웃음을 쳤다. 

  편식 좀 그만해라. 새끼야.

  우리는 흡연 장소로 애용하는 곰팡이 쓴 자재가 쌓인 체육창고 뒤쪽으로 동규를 불러왔다. 옆구리에 차고 있던 만보기의 리셋버튼을 눌렀다. 내가 천천히 다가가자 동규는 창백한 얼굴로 몸을 움츠리며 뒷걸음쳤다. 몇 걸음 되지 않아 붉은 벽돌의 창고건물이 동규의 등을 떠밀었다. 그의 코앞에서 걸음을 멈춘 난 그의 뒤통수를 툭툭 치다가 이내 칠판지우개를 털 듯 연속으로 내리쳤다. 그리고 충격에 무릎을 꿇은 그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명치에 캉캉을 추듯 경쾌하게 무릎을 올려붙였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쓰러져 배를 부여잡고 거억거억거리는 동규에게 침을 뱉었다. 차고 있던 만보기를 체크했다.

  운동되네, 이거.

  뒤에서 지켜보던 엑기스는 쓰러진 그의 품에서 지갑을 꺼내 살펴보더니 담배 값도 없다며 배를 걷어찼고, 후장은 그의 안경을 벗겨 밟아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가방을 툭툭 털며 본 동규의 모습은 눈물, 콧물, 침 범벅에 흙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벌벌 떨고 있었다.

  여어, 잘 있게. 친구.


 

  2010년 4월 9일 금요일

  체육복이 없어졌다. 처음엔 집에 놓고 왔나 했지만 집을 나서기 전 엄마가 직접 체육복을 챙겨준 기억을 떠올렸다. 당황했던 마음이 차츰 가라앉았다. 잠시 잊고 있었다. 학교에서 나란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체육복을 빌리고 싶지만 친구들은 날 상대하지 않겠지. 전염병이다, 난. 조금만 가까이 가도 전염되는 무서운… 아니 더러운 전염병.

  결국 체육시간 고릴라에게 정신이 해이하다며 귀싸대기를 맞았다. 병신처럼 눈물이 핑 돌았다. 저 작자는 내가 왜 우는 지 모르겠지? 그 생각이 더 서러웠다. 방과 후 또 녀석들에게 끌려가 개처럼 맞았다. 복날에 개처럼. 일어나 주섬주섬 옷과 가방을 챙겨 수돗가로 갔다. 세수를 하기 전 습관적으로 안경을 벗으려 얼굴을 더듬었다. 눈앞에서 밟혀 부서진 그 안경을. 머리를 한참 수돗물에 담갔다. 나도 모르게 주먹이 나갔다. 으스러지듯 힘껏 벽을 때렸지만 피가 나진 않았다. 애꿎은 수돗가를 때리며 단련한 주먹에 박힌 상처들은 어느새 굳은살로 변해 있었다. 이 주먹이라면. 그 자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분노는 두려움으로, 수치심은 절망으로 너무도 쉽게 뒤바뀐다. 또다시 벽에 주먹을 날린다. 피가 흘렀다.

  집에 오자 어머니가 안경은 어떻게 했냐고 물었다. 난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농구하다 부러졌다고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진지한 표정으로 S대를 가려면 점심시간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들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라며. 웃음이 터졌다.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미친놈처럼 깔깔거렸다. 어머니는 그런 날 이상하게 쳐다봤다. 하지만 난 평소처럼 어머니에게 대답했다. 그럴게요. 그러죠, 뭐. 어머니는 대견한 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또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서둘러 방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베개에 얼굴을 묻고 소리 질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바람이 분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죄책감이요? 글쎄요. 가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게 죄책감씩이나 되나? 물론 잘하는 짓이 아니란 건 잘 알죠. 그런데 병신 같은 애들이 있어요. 매를 버는. 또 재수 없는 애들도 있고. 그런 애들은 좀 맞아도 된다고 봐요. 깐적으로(인간적으로) 그렇잖아요. 인간이 평등한 건 아니잖아요. 네? 하지만 사회도 그렇게 돌아가잖아요? 잘난 사람들은 좆나 잘 나가고, 못난 놈들은 좆나 빌빌대는 거고. 깐적으로 우리가 시험을 왜 봐요? 다 잘난 놈, 못난 놈 가려내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뭐, 요즘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변명들 하지만, 국영수에 무슨 창의성이 있어요? 문제지에서 시험 다 나오는데. 저기도 있네. 길 건너 학교 있죠? 저 학교 옥상에 걸린 슬로건도 그렇잖아요. 창의적 사고, 준비된 인재 육성. 틀린 말은 아니죠. 늘 새로운 사고를 칠 준비가 된 넘치는 인재들과 항상 불려갈 준비가 된 형법에 강한 교사들로 구성된 학교니까. 암튼 그래서 전 인간이 평등하다고 안 봐요. 어차피 공부도 남들보다 높이 올라서려고 하는 거구요. 우리가 재수 없는 애들을 패는 것도 일종에 서열을 매기는 거라고 보면 돼요. 우린 너네 같은 병신들과는 다르니까 눈 깔아라. 뭐, 이런 거. 물론 잘하는 짓은 아니죠. 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거죠. 이게 현실이니까. 정 억울하면 지네들이 힘을 기르시던지. 역지사지? 입장을 바꾸라구요? 그래도 절대 그럴 일 없어요. 나는 그렇게 병신같이 안당해요. 뒤지면 뒤졌지, 그런 꼴을 당하고 어떻게 살아요. 아니, 그런 건 가정할 필요도 없어요. 말했잖아요.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니까요."


 

  깊게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연기를 내뱉었다. 후. 손가락을 튕겨 불똥을 날렸다. 불똥이 사그라지는 그 곳엔 이미 후장과 엑기스가 버리고 간 꽁초가 나뒹굴고 있었다. 안주머니를 뒤져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그 종이는 여기 버린 담배보다 더 태우고픈 것이었다. 성적표. 성에 관한 모든 것에 광분하는 10대지만 이 성적표 앞에서만큼은 모든 10대들은 방종했던 과거를 참회한다. 회개합시다.

  처음 등수가 적힌 성적표를 받았던 초등학교 4학년. 난 떨리는 마음으로 성적표를 펼쳐보았다. 학급 석차 27/50. 27등. 그 당시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27이란 숫자는 내게 상당한 자신감으로 다가왔다. 27등이나 했다. 내 뒤로 23명이나 있다니까! 난 그대로 집으로 달려가 헐떡거리며 어머니에게 자랑스럽게 성적표를 펼쳐 보였다. 엄마, 나 27등 했어. 하지만 어머니는 날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긴 침묵 끝에 던진 한마디.

  27등이 좋아?

  그때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움과 의문, 그리고 왠지 모를 부끄러움 같은 것이 마치 고장 난 신호등처럼 교차했다. 이튿날 아침, 난 그 이유를 알았다. 도장을 찍은 성적표를 찾으러 안방에 들어선 난 화장대 위에 놓인 두 장의 성적표를 발견했다. 하나는 내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형 것이었다. 그리고 그 종이 위에 새겨진 거짓말 같은 숫자를 보았다. 학급석차 1/48. 신이여. 왜 세상에 나 주유를 내고, 또 공명을 내셨단 말입니까? 장탄식과 함께 난 화장대 앞에서 눈물이 핑 돌 만큼 회개했다. 그렇게 항아리처럼 깨져버린 난 결코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이 되었다. 27등이 좋아? 오늘도 난 회개합니다. 제발, 도장 찍어 주세요.


 

  여기서 뭐하고 있어?

  교문을 채 나서기 전 비를 만나, 다시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우산을 찾았지만 살이 부러져 쓸 수 없는 것뿐이었다. 할 수 없이 사물함에 있는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교복은 비닐봉지에 싸서 가방에 넣은 뒤, 맨 뒷자리에 누군가 놓고 간 듯 보이는 교복재킷을 걸치고 나왔다. 하지만 교문을 나선지 몇 걸음 되지 않아 비가 억수로 쏟아졌고, 이렇게 학교 근처 정류장에 쪼그려 앉아 인상만 푹푹 쓰는 와중에 갑자기 들린 그 낯익은 음성은 마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는 기분이었다. 공명, 아니 형이었다. 그리고 그 옆엔 뜻밖에 동규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여긴 웬일이야?

  형은 어깨를 으쓱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네가 우산 안 가져갔을 줄 알았다.

  그쪽은?

  난 턱짓으로 동규를 가리켰다.

  너랑 같은 학교인데도 몰라, 동규?

  내가 어떻게 알아.

  난 슬쩍 동규를 흘겼다. 그는 이내 주눅 든 모습이 되었다.

  그러니까 성당 좀 나오세요. 스테파노 형제님. 같은 성당 식구잖아. 성당에서 만났는데 우산이 없어서 같이 쓰고 가는 참이야.

  무슨 이 시간에 성당들이셔?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는지 눈동자만 굴리던 형은 이내 실없는 미소를 흘리며 내 어깨를 쳤다.

  그냥.

  근데 세 명이 어떻게 쓰고 가라고?

  말이 많다, 어서 낑겨.

  쳇!

  너 자꾸 콧방귀 뀔래?

  쳇!

  얼마가지 않아 동규는 집 근처라며 발걸음을 멈췄다. 가기 전 동규는 형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쭈뼛거렸지만 짜증 섞인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그냥 인사만 건네고는 오른편 골목으로 흙탕물을 튀기며 달려갔다.

  누가 괴롭히나 봐.

  작아지는 동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형이 말을 꺼냈다.

  많이 힘들어하더라.

  저 새끼, 그래서…. 하지만 짐짓 모른 척 물었다.

  누가 그런다는데?

  글쎄…

  어정쩡한 형의 대답에 내심 불안해졌다.

  쪽팔리게 고민상담이라도 한 거야, 뭐야? 그럼 당신의 고민은 뭔데?

  형은 고개를 돌려 잠시 내 눈을 응시했다.

  이젠 됐어.

  홀가분한 대답과는 달리 떨어뜨린 형의 시선은 애잔했다. 하지만 곧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장난스런 눈빛으로 형이 말했다.

  너는 고민 있지?

  없거든!

  성적표 나왔다는 것 같던데.

  그것도 그 새끼가 말했구나.

  형은 웃었다.

  처음 본다는 애한테 그 새끼가 뭐냐?

  난 속으로 찔끔했지만 말버릇 거친 거 하루 이틀인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우리가 티격태격하며 걷는 사이 아는 형이 일하는 편의점이 보였다. 편의점으로 들어간 난 담배를 사서 돌아왔다.

  담배 좀 줄여.

  내 맘이야.

  그럼 나도 한대만 피울까?

  순간 형을 째려봤다.

  담배 피워?

  왜, 난 못 피울 것 같아?

  됐고 어서 끊어. 대학 들어갈 때까지 담배피우면 안 돼.

  넌 되고 왜 나는 안 되는데?

  당신 필요충분조건이라고 알지?

  당근. 고1 수학이잖아. 근데 뭐야? 지금 공자 앞에서 문자…

  난 공자가 된 공명의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 못 들은 척 말을 이었다.

  말을 하자면 당신은 우리 집안의 필요조건이고 난 충분조건이라 이거야. 당신이 타락해서 내가 될 수 있어도 내가 공부해서 당신처럼 될 순 없거든. 그러니까 당신은 담배피면 안 된다는 거야.

  하지만 형은 고개를 저었다.

  꽤 논리적이지만 오류가 있는데. 누구도 싸가지 없고 말 징그럽게 안 듣는 널 대신할 수 없어. 그건 나도 자신 없거든. 그리고 필요충분조건에 의한다면 너란 존재는 내게 필요조건이라고.

  형은 손을 들어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누가 뭐라 해도 단 하나뿐인 내 동생이니까.

  에이, 짜증나게. 머리 만지지 말라고.


 

  2010년 6월 21일 월요일

  텅 빈 성당은 언제나 안식을 가져온다. 이 거대한 공간에 홀로 앉아 있으면 내가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걸 느낀다. 그런데도 찾아오는 이 편안함은 도대체 뭘까? 세상엔 뱀을 만난 개구리처럼 한없이 자기 자신을 부풀리는 개구리들의 노랫소리로 요란한데 말이다. 이곳은 너무나 고요하다. 마치 깊은 숲속에 동물들만 찾는 옹달샘처럼. 목이 마른 난 조심스럽게 옹달샘 속에 두 손을 모아 물을 떠올리듯 자리에 앉아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린 그를 바라보았다. 힘없이 떨어뜨린 그의 얼굴을 보자 불현듯 눈물이 솟았다.

  당신도 아픈 거겠죠. 당신도 고통스러운 거겠죠. 나도 그래요. 나도 아프고, 나도 고통스러워요. 아픈 당신 앞에서 이런 말 밖에 주저리지 못하는 날 용서해주세요. 내 아픔이 선명해질수록 당신의 고통 또한 내게 다가오네요.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는 그런 잔인한 아픔이 세상이라면 우리의 삶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제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요. 이를 악물고 있지만 더 이상은 힘들 것 같아요. 어쩌죠? 당신이 주신 삶이 내 영혼 안에서 무너지고 있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이제 너무 힘들어요. 제게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게 힘을 주실 순 없나요? 하지만 이미 힘겨운 당신의 어깨에 내 짐마저 얹어 놓을 순 없을 것 같아요. 더 이상 비참해지긴 싫어요. 전 이제 되찾을 수 없는 무언가를 잃어버렸어요. 그건 죽음이라는 칼날을 목덜미에 드리우더라도 잃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어요. 그땐 몰랐어요.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잃어버린 다음에야 알게 되었어요. 그 소중한 것을. 살아있지만 더 이상 전 숨 쉬지 않아요. 마지막 순간 힘껏 들이쉰 숨으로 발버둥 치더라도 당신께 가려했지만 이젠 어려울 것 같아요. 당신께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깊은 바다 속으로 침전되면서 점점 멀어지는 수면에 비치는 당신의 얼굴이 너무 그리울 것 같아요.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성당을 나섰다. 눈부신 가로등의 불빛이 비가 내리는지 눈이 내리는지 모를 정도로 하얗게 마당을 비추고 있었고 그 마당 한가운데 당신이 서 있었다. 그리고 당신은 이미 검은 미사포를 쓰고 있었다.


 

  "솔직히 왕따는 교사들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죠. 속성상 잘 드러나지 않는데다, 당하는 애들도 입 다물기 일쑤구요. 그렇다고 우리가 일일이 애들 따라 다니며 감시할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게다가 요즘 애들 보세요. 좀 대담합니까?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애들도 화장시켜놓으면 발육이 좋아서 애인지 어른인지 분간이 안 간다니까요. 게다가, 아뿔싸 캇트! 아까 초등학생 이야기. 자칫 성희롱적인 발언이라고 논란이 될 지도 모르고, 게다가 근래 아동성폭행 문제도 있고 하니까. 요즘 같은 시기는 몸 사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시겠죠? 에, 이야기를 이어서 하자면 요즘 인터넷에 자주 뜨곤 하지 않습니까? 교사가 학생을 폭행했네, 어쨌네 하면서. 물론 아이들을 폭행해선 안되죠.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칠 땐 어느 정도 사랑의 매는 필요한 거 아닙니까? 말이 나와서 그렇지 우리 어렸을 때 안 맞아본 놈이 어디 있습니까? 솔직히 인터넷에 뜨는 그런 것들은 우리 때는 사건 축에도 못 꼈어요. 그렇게 맞고 집에 가면 요즘처럼 전화 걸어서 선생님께 따지는 줄 아십니까? 맞을 짓을 왜 했냐면서 맞은 데 또 두드려 맞고 그랬어요. 그리고 학교가면 왜 부모님 안 모셔왔냐고 또 맞고. 그렇게 한 달을, 아뿔싸 캇트! 교사로서 위신이… 아시죠? 몸 사려야 하는 시기니까. 암튼 그런데도 탁상 공론하는 인간들이 야만적인 교육이라니, 일제의 잔재라니, 네? 주제가 많이 벗어났나요? 뭐였죠? 사랑의 매가 아니었나? 아, 왕따였죠. 근데 제가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그러니까… 그러니까… 하하. 제가 이래요. 수업시간에도 열정적으로 가르친다고 푹 빠져서 나중에 종칠 때쯤 정신 차려보면 한 시간 동안 딴 소리만 하다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애들이 부르는 제 별명도 삼천포라죠, 아마. 후훗. 우습죠. 내가 왜 이런 교사가 됐나 싶기도 하고. 처음엔 안 그랬거든요. 열정만 가지고 경주마처럼 달리다보니까 이렇게 삼천포로 빠진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교사가 경주마는 아니니까요. 뭐, 아이들도 경주마는…, 음…… 아니잖습니까? 가끔씩, 요즘 아이들을 보면 짠하기도 해요."


 

  몰랐어. 진짜 모르고 말한 거야.

  하지만 묵묵한 내 발차기에 동규는 이내 나가 떨어져 창고 벽에 등을 부딪히며 나동그라졌다.

  일어나. 뒤지고 싶지 않으면.

  그러자 동규는 벌떡 일어나 차렷 자세로 벌벌 떨었다.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자. 내 이름 말 했어? 안 했어?

  아…안 했어.

  안 했어?

  내가 눈을 부라리며 되묻자 동규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안… 했습니다.

  씨발아, 누가 존댓말 듣고 싶데? 진짜 얘기 했냐고? 안 했냐고?

  내가 소리 지르자 동규는 발작처럼 허둥지둥 대답했다.

  안 했어요. 믿어주세요. 진짜 안 했어요.

  그러셔?

  그러면서 내가 주먹을 치켜들자 동규는 무릎에 힘이 풀린 듯 주저 앉아 팔 속에 얼굴을 파묻고 울부짖었다.

  정말 안 했어요. 정말로, 흐흑… 안 했다니까요. 흑흑… 살려줘요. 제발.

  벌벌 떠는 그를 보고 비로소 난 손을 내리고 숨을 골랐다. 극도의 두려움은 진실을 잉태한다. 극한 압력 속에서만 잉태되는 다이아몬드처럼.

  입조심해라. 뒤지기 전에.

  그는 엎드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신발에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그의 뒤통수에 신발을 문질러 흙을 털고 창고 뒤를 걸어 나왔다. 문득 동규를 손봐주기 전 리셋 시켰던 만보기가 생각났다. 얼마나 나왔을까? 떴다. 신기록.


 

  여름방학을 지나 개학을 맞았지만 여전히 무더운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 지친 나와 후장, 그리고 엑기스는 쉬는 시간을 틈타 원기회복이라는 미명하에 도시락을 열어젖히며 심심한 면학의 공기가 떠돌던 교실 안에 짠 내 가득한 반찬 냄새를 첨가시키며 간을 맞추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자 미리 도시락을 까먹었던 우리는 도시락 뚜껑만 들고 지난 국사 시간에 배웠던 여진족들의 만행처럼 아이들의 도시락을 기웃거리며 이곳저곳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간혹 서둘러 도시락 뚜껑을 닫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럴 땐 알리바바처럼 주문을 외우면 된다. 맞을래, 열래. 만족스런 수확을 담은 도시락 뚜껑을 책상에 놓은 채 알리바바와 2인의 도둑은 게걸스런 식사를 시작했다. 입이 짧은 엑기스는 어느새 식사를 마치고 가방에서 달팽이 엑기스를 꺼내 쭉쭉 빨아들이고 있었다.

  어제 스파르타쿠스 봤냐?

  몇 개 남지 않은 치즈가 함유된 프랑크소시지를 주시하며 나와 후장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아니.

  함 봐봐. 케이블에서 하는 미드인데 완전 재밌어.

  결국 마지막 소시지를 나에게 빼앗긴 후장은 안타까운 탄식을 터뜨렸고 승자의 여유로움으로 난 엑기스에게 그 미드의 줄거리를 물었다.

  검투사얘기인데, 진짜 멋있어.

  그게 다냐?

  엉, …어.

  뭐야, 재미없겠네.

  그러자 엑기스는 마시던 달팽이 엑기스인지 침인지 모를 액체를 분사하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니라니까. 영화 300알지? 그거랑 거의 비슷하다니까.

  그러자 나와 시선을 교환한 후장이 씩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오! 진짜?

  우리들의 호들갑스런 반응에 엑기스는 자못 득의만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다니까!

  그럼 재미없겠네.

  후장과 나는 도시락을 챙기며 킥킥거렸다. 그러자 평소 고혈압이 가족유전이라던 엑기스는 증명이라도 하듯 이마에 핏대를 세웠다.

  재미있다니까! 좋아, 재미있는지 없는지 증명해주지.

  난 벌떡 일어선 엑기스를 바라봤다.

  어쩌려고?

  그는 책상을 쾅 치며 말했다.

  검투사대결이다.

  뭐!?

    

 

  엑기스의 말은 이러했다. 3인의 검투사를 만들어 대결시키자. 검투사를 어디서 구하냐는 후장의 질문에 엑기스는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따까리들은 뒀다 뭐하시게요?

  스티브 잡스처럼 자신만만하게 플랜을 밝히는 엑기스의 모습에 우리는 사과 한 입을 베어 문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룰은 이종격투기와 같았고 우승자에겐 그 미드처럼 자유를 주기로 했다. 또 참가자가 세 명이기 때문에 방과 후 시합 전 제비뽑기로 한 명을 부전승시키고, 승부의 묘미를 위해 각자 뽑은 검투사는 밝히지 않기로 했다.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엑기스는 기립박수를 기대하는 듯 또 한번 득의만면했지만 후장과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우와, 재미없겠네.

  악다구니를 퍼붓는 엑기스를 뒤로 한 채 난 교실을 나섰다. 누굴 고르나? 각 반을 돌아다니며 호구들의 프로필을 훑던 내 눈에 맨 뒷자리에서 엎드려 자고 있던 동규가 띄었다. 그만하면 덩치도 좋고 깡이 없어서 그렇지 힘도 좀 있을 것 같았다. 이리저리 재던 나는 생각을 굳히고 동규에게 다가가 그를 깨웠다. 하지만 판도라 상자라도 연 것일까? 그는 상자를 열자마자 튀어나오는 재난들처럼 솟구치듯 벌떡 일어났다. 덕분에 깜짝 놀란 난 뒷걸음치지 않을 수 없었다. 놀란 얼굴로 동규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신이 들어 잠을 깨운 사람이 다름 아닌 나라는 걸 알자 동규의 얼굴엔 긴장의 빛이 역력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입술처럼 굳게 닫힌 판도라 상자 속에 남아 있는 것은 희망이라는 사실을 그에게 주지시켰다. 그는 주저했지만 마지막 단어를 듣는 순간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유.

  그 추상적인 말이 그에게 절실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는 대답했다.

  할게.

  판도라 상자에 대해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 판도라가 마지막 남은 희망을 위해 상자를 열었을 때 이를 본 제우스는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그것은 희망이 바로 제우스가 부여한 진정한 재난이기 때문이었다. 먹이를 유인하는 아귀의 돌기처럼, 늑대거북의 혀처럼. 신들은 유희를 원했고 희망은 개미굴에 떨어진 애벌레의 생의 의지이자, 거미줄에 걸린 나비의 날개였다. 나 또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빤히 응시했다. 개미지옥에 밀어 넣은 개미를 보듯.



  동규는 미친 것 같았다. 상대의 몸에 올라타 체중을 실은 주먹을 막무가내로 얼굴에 날렸다. 간헐적으로 반항하던 상대는 거의 실신직전에 이르렀다. 미친 새끼. 나는 발로 동규를 차버렸고, 엉망진창이 된 자신의 검투사를 본 후장은 마치 자신이 진 양 달려들었다. 동규를 노린 후장의 주먹이 내 뒤통수에 적중하자 그제야 후장은 진정할 수 있었다. 소란을 추스르며 부들부들 떠는 동규를 바라보았다. 처음엔 어설펐다. 우스울 정도로. 후장은 이게 검투사의 재미냐며 엑기스를 놀리기도 했다. 하지만 휘발유에 불이 붙듯 순식간에 그들의 몸짓은 동물적으로 변했다. 이것은 승부가 아닌 죽고 죽이는 싸움이라고 해야 했다.

  내가 보아왔던 싸움 중에서도 가장 처절했다. 근래 일방적인 싸움만을 해온 탓이었을까? 두 칼날이 부딪히며 튀기는 불꽃은 섬뜩했다. 당황스러웠다.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가장 낯설게 느껴졌다.

  시합은 곧 재개되었다. 엑기스는 휴대폰으로 자신의 검투사를 호출했고 그는 교문을 지나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져 그의 얼굴이 드러나자 난 엑기스를 쳐다봤고, 내 시선을 느낀 엑기스는 씩 웃음을 흘렸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동규를 바라보았다. 다음 상대를 알아본 동규의 얼굴은 당혹스러움으로 일그러졌다. 사람이 가장 크게 고통을 느끼는 곳은 손톱 밑 연한 살이라고 한다. 손에 닿지 않아 가장 연한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에게 있어 소중한 곳은 연약하기 마련이다. 손톱 밑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지금 동규의 손톱을 들어내 그 연한 살에 바늘을 꽂으려 한다. 친구라는. 다가온 상대 역시 동규를 알아보고 우리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억지로 마주선 그들은 쉽사리 다가오지 못했다. 자유보다도 친구가 소중하냐는 후장의 야유에도 그들은 멀뚱거릴 뿐이었다.

  하는 수 없지.

  그러자 엑기스가 나서려 했다.

  뭘 어쩌려고?

  내 물음에 엑기스는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으로 답했다.

  차가 방전되면 점프를 대야지.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 동규에게 친구의 뺨을 칠 것을 명령했다. 동규가 치지 않자 엑기스는 직접 상대방의 뺨을 후려쳤다. 벌게진 뺨을 비비던 동규의 친구에게 동규의 뺨을 칠 것을 명령했다. 아까의 모습을 본 터라 그는 동규의 뺨을 엑기스의 강도보다 약하게 쳤다. 그러자 엑기스는 다시 치라며 명령했고 할 수 없이 그는 아까보다 강하게 동규의 뺨을 쳤다. 다시 동규의 차례가 돌아왔고 동규 역시 이를 반복했다. 강도는 점점 높아졌고 마치 시동이 걸리지 않던 엔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발동이 걸리듯 말 그대로 착착 소리를 내며 엑기스가 관여하지 않아도 서로의 뺨을 때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엑기스는 점화플러그가 불똥을 터뜨리듯 시작을 외치며 둘의 등을 떠밀었고 폭발하듯 상기된 그들은 뒤엉켜 심한 몸싸움을 했다. 하지만 힘에서 밀린 동규의 친구는 중심을 잃었고 동규는 그대로 밀어 붙여 그의 친구를 깔아뭉갰다. 친구의 몸에 올라탄 동규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치켜들었다. 이를 악문 동규는 온 몸을 떨고 있었다.

  치라고! 쳐!

  하지만 동규는 친구의 눈을 응시하며 부르르 떨 뿐이었다.

  그 새끼 이기면 자유라고, 자유!

  순간 난 동규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동규의 주먹은 친구의 얼굴에 내리꽂혔다. 이미 친구는 기절한 듯 보였지만 난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성을 잃은 동규는 소리를 지르며 친구의 얼굴을 계속 내리쳤다. 그 소리가 내겐 마치 비명처럼 들려왔다. 엑기스와 후장은 욕지걸이를 내뱉으며 동규에게 달려갔다. 그러자 동규는 일어서서 먼저 다가간 엑기스에게 주먹을 날렸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엑기스는 정통으로 안면을 맞고 쓰러졌다. 쓰러진 엑기스를 본 후장은 화가 치솟아 동규에게 주먹을 날렸지만 동규는 후장의 주먹을 잡은 채 힘 싸움을 벌였다. 곧 힘에서 밀린 후장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친 채 후장의 가랑이 사이에 자신의 팔을 파고들어, 그를 거꾸로 든 다음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 꽂았다. 등부터 떨어진 후장이 호흡곤란을 일으켰지만 동규는 그의 몸 위로 타고 앉아 이성을 잃은 그 묵직한 주먹을 계속해서 날렸다. 하지만 난 그 모습도 바라보기만 했다. 너무도 익숙했던 것이기에 너무 낯설었다. 그래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어느덧 피를 다 빤 뱀파이어가 고개를 돌려 관객을 노려보듯 동규가 충혈된 눈으로 날 쳐다봤다.

  나와! 개새끼야!

  나도 그의 눈을 응시했다.

  이 새끼들! 다 걸렸어. 이리 나와!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운동장에 손전등을 든 사람 둘이 다가왔고, 그들이 타고 온 차는 파랗고 빨간 빛을 교대로 내뿜고 있었다.


 

  2010년 10월 15일 금요일

  친구에게 조롱당하고, 친구에게 무시당하고, 친구에게 얻어맞고, 친구에게 짓밟힌다. 친구와 조롱당하고, 친구와 무시당하고, 친구와 얻어맞고, 친구와 짓밟힌다면 적어도 그 기억은 색깔을 가질 텐데. 친구가 두렵다는 건 정말 두려운 일이다. 내겐 그 친구들이 너무도 많다. 학교도 이렇다면 세상엔 그런 친구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또한 두려운 일이다. 외로움은 친구를 갈망하지만 두려움은 친구를 멀게 한다. 이 두 가지 모두 내 안에 있다.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듯 그 둘은 다르지만 같다. 마치 나비의 날개처럼. 나의 그 날갯짓이 당신에게 닿을 수 있기를. 모든 것을 떠나겠지만 그러면 모든 것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 한 번의 두려움. 눈을 감으면 되겠지. 잠깐이면 될 거야. 따끔한 주사처럼 말이야.


 

  "집단 따돌림에는 많은 이유가 있는데요. 이를테면 지저분하다던가, 거짓말을 잘 한다던가, 잘난 체를 잘한다던가 하는 그런 이유들이 있죠. 따라서 우리친구들이 그 이유를 알고 이미지를 고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여기서 PD는 왕따의 이유 중에 공부를 잘해서, 내성적이어서, 얼굴이 예쁘거나 못 생겨서 혹은 그냥 미워서와 같은 이유를 제시했다-네… 그렇죠. 그런 이유도 있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힘들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이미지를 바꿔나간다면 우리친구들의 친구들이 보는 시선이 차츰 변화될 거라고 믿습니다. 이 문제에서 도망쳐선 안됩니다. 왜냐면 이 문제는 학교생활 내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인데요. 지난 설문조사에서 봤듯이 직장인 5명중 4명은 조직 내 외톨이가 있다고 답했구요, 그리고 응답자의 87%는 따돌림 당하는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응? 아… 정정할게요. 응답자의 87%가 아니라 칠십… 몇 퍼센트? 칠십 오? 칠십 육. 네, 76%라고 뭐… 점구? 점구가 뭐야? 아… 소수점. 이 선생도 참. 반올림 합시다. 반올림. 우리 반올림하기로 해요. 그럼 77%죠. 네, 응답자의 77%가 따돌림 당하는 본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라도 절대 감추지 마시고 주위의 도움을 요청하도록 하세요. 만약에 마땅한 주위분이 안 계신다면 저희 엔젤SOS센터로 연락주세요. 전화번호는 국번 없이… 아, 자막처리 해주시나요. 네. 홈페이지 주소도 부탁드리구요. 우리친구들, 힘내시고 파이팅!"

    

 

  김 순경, 저 애들 뭐야?

  패싸움이요.

  두 명이 무슨 패싸움이야?

  순찰 나갔다가 들어온 경찰이 모자를 벗으며 동규와 나를 가리켰다.

  모르는 소리 마세요. 4명이나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뭐? 애들 싸움치곤 크네. 진술조서는?

  지금 쓰려구요.

  암튼 고생이다. 수고해. 난 이만 퇴근할게.

  예. 수고하셨습니다, 이 경사님. 너희들 이리 와서 앉아.

  동규와 내가 주섬주섬 의자를 챙겨 김 순경에게 다가가자 그의 뒤쪽에서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뭐 좀 하려고 하면 전화가 오네.

  그러자 뒤쪽 문이 열리면서 이경사라고 했던 경찰이 웃옷만 갈아입은 채 단추를 채우면서 나왔다.

  내가 받지. 여보세요. 네? 거기가 어디죠? 산영고요. 예. 알겠습니다.

  산영고라는 말에 내 시선이 그를 향했다. 황급히 전화를 내려놓은 그는 단추를 다시 끄르며 웃옷을 벗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무슨 전화인데요?

  박 경사하고 송 경장은 나갔지?

  그렇긴 한데, 그래도 15분 안 되서 금방 들어올 텐데요.

  안 돼. 지금 바로 가야돼.

  무슨 사건인데요?

  사람이 죽었어. 옥상에서 뛰어내렸대.

  그러자 김 순경은 장탄식과 함께 책상 위에 펜을 놓으며 의자를 뒤로 젖혔다.

  아이고, 또 자살이군요. 어린놈들이, 참!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러게 말야. 먼저 가 볼 테니까 박 경사 오면 그쪽으로 좀 보내줘.

  네. 그럼 욕보세요.

  그래.

  어느새 복장을 다시 갖춘 이 경사는 모자를 고쳐 쓰며 문을 나섰다. 김 순경은 다시 자세를 고쳐 잡으며 화면 속 진술조서 서식 위에 떠 있는 깜박이는 커서를 응시했다. 그는 나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름.

  그러자 휴대폰이 대답이라도 하는 양 엊그제 다운받은 최신가요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좀 하려고 하면 전화가 온다니까. 받아봐.

  발신자는 어머니였다. 하필. 어머니는 마치 파리채 같았다. 파리 좀 잡으려고 찾아보면 어디에도 없다가 성적표 받는 날이나 사고를 친 날에는 꼭 눈에 띄는 곳에 있곤 하는. 난 어렵게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너무도 쉽게 전화를 끊었다.

  무슨 전화를 그렇게 싱겁게 받냐? 암튼 이름부터… 야! 어디가?

  당황한 김 순경이 출입구로 향하는 내 앞을 막아섰다.

  가야 돼요.

  왜 그러는데?

  난 초점을 잃은 눈으로 말했다.

  형이 죽었데요.

  뭐?

  그 말에 그는 더욱 어리둥절했다.

  일단 침착해. 내가 너희 집에…

  그러자 나도 모르게 비명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까 자살한 새끼가 우리 형이라고! 그 새끼가, 그 미친 새끼가 우리 형이라고.

  순간 경찰서 안은 적막이 가득했고 이따금 무전기 수신소리가 잡음처럼 들릴 뿐이었다.

    

 

  ……성민아. 네겐 정말 면목이 없다. 그때 빗속에서 대화를 나누던 네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동규의 이름이 쓰인 체육복을 입고 있던 네 모습이. 네 거짓말은 언제나 어설퍼. 내가 성적표 얘기를 하자 네가 발끈하며 '그것도 그 새끼가 말했구나.' 했을 때 확신했다. 네가 동규가 말하던 그 친구라는 걸. 사이좋게 지내. 부탁한다. 성민아……

 

  형의 일기는 유서로 끝맺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남긴 말은 그리 길지 않았다. 경찰에서는 일기를 토대로 자살의 이유를 집단 따돌림으로 보고 가해학생들을 색출해냈다. 며칠 뒤 집으로 가해자의 부모라는 사람들과 당사자들이 찾아와 부모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형을 괴롭혔다는 학생들은 생각과는 달리 평범했다. 길을 가다가 흔히 보는, 버스 정류장에서 같은 버스를 기다리며 옆에 서 있을, 몇 번을 그렇게 만나도 인상조차 남지 않을 것 같은 평범한 얼굴이었다. 벽에 걸린 십자가만을 하염없이 응시하는 부모님 앞에서 그들의 사죄는 간절했고 결국 아버지는 '자식이 죄지 부모가 무슨 죄겠소.'라는 비교적 평범한 말로 합의를 보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 집의 평범한 일상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난 지난 번 패싸움으로 인해 두 달간의 정학처분을 받았다. 이 때문에 더욱 노한 아버지는 내가 마치 형이라도 죽인 양 매질을 퍼부었다. 아마도 어머니가 말리지 않았다면 정학대신 휴학을 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책임은 내가 가져갔다. 학교가 사우론의 눈으로 주시하는 나이기에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나머지 녀석들은 근신 2주의 비교적 가벼운 처분을 받았다. 무료한 근신의 나날들을 보내며 난 PC방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게임에 열중했다. 화면 위에 떠오른 난 3D 세상 속을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 지나지 않아 질리게 되었다. 필름 같은 일상의 잔영 속에서 어느 날 집으로 사람이 찾아왔다. 낯이 익었다. 몇 달 전 집단 따돌림을 주제로 다큐를 만든다며 나를 인터뷰했던 송 PD였다. 그 역시 날 알아보곤 당혹스런 표정으로 자신의 손에 들린 주소쪽지를 다시 한 번 살폈다. 부모님은 부재중이었고, 그는 마루에 앉아 나와 담배를 나누어 피웠다.

  네 말이 맞아. 세상은 공평하지 않지. 자연이라는 것조차 약육강식의 세계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인간이란 건 세상의 오류인지도 모르겠다.

  난 아무런 대꾸 없이 시선을 떨어뜨린 채 담배를 빨아들였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자살하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다고들 하잖아.

  그는 그 말을 침과 함께 내뱉고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주말에 어머니와 함께 성당을 찾았다. 형을 위한 장례 미사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성당사무소로 들어가 사무장을 만나 이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이번에 새로 오신 본당신부님께서 해주실지 모르겠네요. 젊은 분이라 워낙 깐깐하셔서…

  어머니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난 어머니와 사무장 사이에서 두리번거렸다. 사무소 문이 열리며 채플린의 콧수염만큼 하얗게 드러난 로만 칼라에 검은 색 수단을 내려 입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신부가 들어왔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던 사무장은 일어나 신부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신부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단호했다.

  자살이 큰 죄라는 것을 죽은 요한 형제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안타깝지만 그럴 수 없군요.

  신부를 맞아 서 있던 어머니는 그의 말대로 정말 죄인인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가요. 엄마.

  난 우리를 대접하기 위해 내놓은 주스가 담긴 유리잔을 들고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본당신부를 바라보며 건배를 하듯 유리잔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 유리잔에게도 그 죄를 물어보시죠, 신부님.

  손에서 놓은 유리잔은 섭리에 따라 땅으로 곤두박질쳐 존재의 연약함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고, 그 안에 고여 있던 주스는 죄악처럼 바닥을 더럽히고 말았다.

    

 

  2주 뒤 난 학교를 찾았다. 내가 동규의 교실로 들어서자 이미 내 정학처분을 알고 있던 아이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동규와 나는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따라와.

  그리고 우리는 체육창고 뒤쪽에서 마지막 시합을 치렀다. 동규는 이미 이전의 동규가 아니었다. 마치 들소처럼 밀어붙였고 난 이를 악물며 그를 맞이했다. 동규의 힘은 압도적이었지만 경험이 부족했다. 매 순간 허점이 보였고 그곳으로 난 주먹을 날렸다. 하지만 꽤 강력한 주먹이 들어갔다 싶어도 어김없이 동규는 일어났다. 질릴 정도의 맷집에 난 숨이 턱에 차오를 정도로 지쳐가고 있었다. 결국 동규의 힘에 밀린 난 바닥에 쓰러졌고 내 몸에 올라탄 동규는 주먹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동규는 부르르 떨뿐 주먹을 던지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며 난 말했다.

  쳐. 치라고, 병신아.

  하지만 주저하는 동규를 보며 난 지난 번 친구를 올라타고 주저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난 피식 웃었다.

  내가 네 친구로 보이냐?

  그러자 동규는 신음을 흘리며 그때처럼 묵직한 주먹을 내던졌다. 정신이 번쩍 들만큼 아니 정신을 잃어버릴 만큼 강한 주먹이었다. 정신을 잃기 직전 그의 주먹이 멈췄다. 난 간신히 눈꺼풀을 들 수 있었다.

  왜 그렇게 날 괴롭혔던 거냐?

  해를 등진 채 주먹을 치켜든 동규의 실루엣은 마치 번개를 던지려는 제우스 같았다. 인간을 닮은 신에게 인간은 무엇일까? 인형을 수집하는 악취미? 그렇다면 말하지.

  그럼 넌 지금 날 패면서 어떤 기분이 들지?

  동규의 주먹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짐승이 되는 거야. 마치 우리에서 탈출한 짐승처럼 거침없는 해방감을 맛보는 거지. 그럼 그 때만큼은 부끄러운 사실을 잊을 수 있거든.

  주먹을 내리며 동규는 내게 되물었다.

  그게 뭔데?

  난 힘없이 웃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

    

 

  집단 따돌림에 관한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장면은 파브르의 실험이었다. 모충 여러 마리를 화분주위에 한 줄로 둥글게 배치시켜 테두리를 이루게 한 후 화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모충이 좋아하는 송즙을 뿌려두었다. 하지만 모충은 앞의 모충을 쫓는 습성이 있어 화분을 치워도 처음 배치된 테두리 형태 그대로 앞 놈만 쫓을 뿐, 시간이 지나도 행렬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아무리 먹이를 찍어 유인해도 모충은 앞의 모충만 쫓을 뿐 행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7일이 지나자 모충들은 모두 굶어죽고 말았다는 내레이션을 끝으로 화면은 바뀌어 무표정한 수많은 사람들이 쫓기듯 걷는 대도시의 거리와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빛을 내뿜는 차량들이 교차하는 대로를 배경으로 엔딩 크레딧이 흘러 내렸다.


 

  마지막 형의 시선에 담겼을 광경을 지금 나는 바라보고 있다. 어둠에 물들어가는 회색의 텍스트 같은 세상은 가장 그럴 듯한 문항 2개를 남기고 갈등하게 만드는 시험지 같았다. 인간으로서의 죽음과 호모(種)로서의 삶. 인간과 짐승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문득 천재와 보통사람을 구분 짓는 것은 99%의 노력이 아니라 1%의 영감이라던 담임의 말이 떠올랐다. 드링크제에 함유된 홍삼의 수치와 같은 그 1%로 홍삼드링크라고 우기듯, 어쩌면 우리는 그 1%로 인간이라고 우겨 왔는지 모른다.

  갑자기 옥탑 문이 녹슨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 늦은 시간에, 그것도 학교 옥상에 올라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뒤돌아보았다. 방구석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다던 우리 반 오덕후가 내 시선 속에 서 있었다. 이미 무언가를 선택한 자의 얼굴이었다. 난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타인의 고통이 내 안에 있었다. 이것이 내가 가진 1%이길.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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