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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 박애진, 김이환입니다.

사회가 점점 각박해지는 탓일까요. 멸망을 소재로 다룬 글이 많이 보였습니다. 소설의 기본인 사건이 없거나 최소한의 사건은 만들었다 해도 이야기를 치밀하게 파고드는 글이 보이지 않았다는 게 아쉽습니다. 초고를 쓴 후 이 이야기에 덧붙일 건 없는지, 아까워도 빼야 하는 군더더기는 없는지, 부족한 점은 없는지 냉정한 눈으로 돌아보고 검토하기 바랍니다.

이달은 선정작이 없습니다. 가능한 가작이라도 선정하려 했는데, 두 심사위원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의견이 갈릴 경우 두 작품을 다 선정한 적도 있지만 이번에는 아무래도 미숙한 점이 많아 선정작을 내지 못했습니다.

다음 달 건필을 기원합니다.




멸망과의 만남 - blackmass

A: 몇 가지 이미지들을 나열했을 뿐 단편소설로 보기 어렵습니다. 글쓴이의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의 형체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출근’한다는 말로 보아 평범해 보이는 화자에게 ‘세계의 멸망’이 ‘나의 친구’라고 인사하는 장면도 뜬금없고, 대사 하나에 너무 많은 설명을 넣었습니다. 아직 이야기로 완결성을 갖기에는 많이 미숙합니다만 현실에 비현실을 섞고, 연인이라는 현실적인 모습을 비현실적인 형태로 서술하고, ‘멸망’에 현실적인 형태를 부여한 점 등은 재미있었습니다. 너무 멋을 부리려 하는데 힘을 조금 빼고 서사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B: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계단 끝에 앉아 있는 멸망이 등장하고, 이후로 멸망에 대한 내용이 이어지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멸망, 금빛 날개, 하늘의 빛 등 나열되는 이미지를 연결하면서 생각해보려고 애써도 그렇습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것들을 바라보며 갖는 주인공의 생각도 공감하기 힘들었습니다. 특히 지나가는 연인을 보고 인간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을 갖는 결말은 다소 황당했습니다.



환각 - blackmass

A: “멸망과의 만남”보다 진일보한 흥미로운 글이었습니다. 글 전체에서 불안, 분노, 공허, 헛된 노력 등이 느껴집니다. 문장이나 묘사에도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인상적인 서술들이 보이는데 아쉬운 점은 장면들의 무게가 다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글의 절정에 이르는 과정은 좀 더 담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글쓴이가 가장 말하고 싶은 핵심이 빛납니다. 너무 과잉된 서술은 읽는 과정에서 독자를 지치게 합니다. 다른 말로 절제가 필요합니다.
지금 글이 갖는 몽환과 불안, 어두운 느낌을 명확한 서사구조를 갖춘 이야기에 입힐 수 있다면 좋은 글을 쓰게 될 것 같습니다.

B: 마약을 복용한 주인공은 갑자기 맥주를 마시고 싶어져서 밖으로 나갑니다. 환각이라는 제목에 잘 어울리는 이미지들이 이어집니다. 글에는 좋은 문장도 있었지만 간혹 지나치게 멋을 부려서 다소 허무한 문장도 있습니다. 어느 순간 길에서 본 풍경과 상관없는 여인을 목격하고 존재와 사랑에 대한 긴 독백을 풀어놓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화려하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한 독백들입니다. 특히 칼에 찔리는 여인에게 왜 갑자기 사랑에 대해 말하는지 다소 의아했습니다. 혹시 주인공이 실연했다는 암시가 아닐까도 생각해 봤습니다.


별고양이는 하늘양을 꿈꾼다 - 티블

A: 귀엽고 잔잔한 이야기입니다. 하늘에 빛나는 것이 모두 양이고, 멀리서 즐겁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상상은 사랑스럽고 따뜻합니다. 다만 독자의 마음을 확실히 끌만한 한 방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이야기를 끝까지 파고들어야 합니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 멸망한 세상의 풍경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생생하게 서술해야 그 속에서 고양이와 한 인간의 우정이 더 따뜻한 빛을 발합니다. 고양이와 인간이 함께 지내는 동안 있는 일화도 흔히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가 세밀하게 살아있어야 합니다.
“어린 왕자”에서 비행기 조종사는 황량한 사막에 추락해 앞날이 막막합니다. 인적 없는 사막에 어린 소년이 나타난 것도 놀랄 일인데, 소년은 태연자약하게 양을 그려달라고 하죠. 그런 경지까지는 무리더라도 독자를 놀라게 하든, 촉촉하게 마음을 적시든,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는 필요합니다. 그런 장면을 만들려면 치열하게 써야 합니다.
많이 알려진 작품의 제목을 차용해 글을 쓸 경우, 독자들은 당연히 원작을 어떤 형태로 재구성했나 기대하기 마련인데, 크게 와 닿는 부분이 없었습니다. 눈길이 끄는 제목을 짓는 것도 좋지만 기대치를 충족할 수 없다면 제목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비문이 많은 것도 걸립니다. 문장을 짧게 쓰며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는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B: 주인공은 하늘에서 내려온 고양이를 만납니다. 둘 사이의 만남이 우정으로 이어지는 것 이외에는 큰 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고양이와의 만남을 통해 무언가를 배워가고 성찰하면서 변화합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은 결말에 이르러서도 별다른 사건을 만들지 않고 그저 고양이가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글을 마무리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조금 더 예상외의 일이 일어났으며 했습니다. 고양이가 사용하는 단어나 고양이의 정체를 주인공은 잘 모르지만 독자에게는 넌지시 힌트를 주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 좋긴 하지만, 조금 더 세련되게 사용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를 파괴할 네메시스는 어디까지 와있나 - 유광석

A: 위기상황을 설정했는데 이렇다 할 사건이 없습니다. 등장인물은 여럿인데 인물들 사이에 갈등이나 긴장이 없습니다. 도입부를 이야기의 배경설명으로 시작할 경우, 아주 특색 있지 않으면 자칫 지루해집니다. 안타깝게도 흔한 설정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배경을 설명하고, 인물들 간의 별 의미 없는 대사만 나열하다 끝납니다. 배경과 인물을 만드는 건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이 배경과 인물들로 무엇을 할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인물들 간의 갈등이든, 외부의 적과 싸우든 이야기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B: 문장이 다소 산만합니다. 때문에 글의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선명하지 않으며, 간간이 글에 잘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주인공은 초소에서 날짜도 시간도 잘 모르면서 지내는데 이런 상황에서 군인이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지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물들은 무서운 일이 닥칠 것 같은 긴장 속에서 살아가며, 때문에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과 감정 대립이 긴장감을 줍니다. 비상사태를 대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긴장감이 흥미롭습니다. 마지막 몇 개의 문장에서 글 전체 분위기를 바꾸는 결말을 보여준 것이 좋기는 한데, 글 전체적으로 문장이 깔끔했으면 감정이 더 살았을 듯합니다.



모기 가면 - 민근

A: 모기를 이용한 신흥종교는 얼핏 농담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독특한 설정이나 이야기를 만들 때에는 이야기를 진행하는 인물이 독자의 입장에 선다면 좀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태가 모기를 숭배하는 종교에 대해 처음에는 당황하고, 그 종교에 대해 알수록 점점 기괴한 점을 알게 되며 독자를 이야기 안으로 인도하는 겁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처음부터 주인공이 모든 것을 다 안다며 설명하는 게 역효과를 냅니다. 독자보다 인물과 이야기가 앞서가서 독자가 기괴함을 느껴야 하는데 기괴하다고 선언합니다.
모기를 이용한 신흥종교라는 점 외에는 크게 새로울 게 없는 구성입니다. 긴박한 상황을 서술할 때 위기감이라도 주면 좋았을 텐데, 독자가 무섭다고 느끼기 전에 인물이 먼저 공포라고 말합니다. 문장도 과하게 복잡하게 꼬아 읽기 부담스럽습니다. 한 문장 안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가 들어있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봄 개강에 맞추어 자취방으로 돌아온 기태가 발신인 불명의 소포 하나를 수령한 것은 중간고사가 한창인 4월 중순이었다.” 같은 문장이 그렇습니다. 봄 개강에 맞춰 자취방으로 돌아왔다는 걸 한 문장으로, 그 다음에 중간고사가 한창인 걸 다음 문장으로 넣으면 독자가 좀 더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습니다. 

B: 모기를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라니 다소 황당한 설정입니다. 글이 이 점을 더 잘 설명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끝까지 독자에게 완전히 설득력 있게 보이진 않기 때문입니다. 글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에서 주인공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점이 의아합니다. 때문에 꽤 자극적일 수 있는 소재의 글임에도 박진감은 떨어지는 편입니다. 특히 결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글에서 직접 기계 장치의 신을 직접 언급하고 있지만, 리카가 어느새 자신의 힘으로 줄을 풀고 내려오면서 위기를 벗어나는 것은 그다지 설득력을 주진 않습니다. 글은 주로 주인공의 대화나 회상에서 정보를 계속 나열하고 있습니다. 회상과 회상을 거듭하면서 글 전체를 거의 한 개의 덩어리로 묶어서 긴장감을 주는 솜씨는 좋았습니다. 사이비 종교를 소재로 한 스릴러를 단편 소설의 길이 안에서 풀어내기 위해서 이런 방식을 채택한 건 아닌지 짐작해 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박진감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습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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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광석 15.03.05 11:47 댓글

    고견 감사드립니다. 다음 달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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