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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작 안내 8월 심사평

2021.09.15 00:0009.15

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을 선정하기 위해 2021년 8월 1일부터 2021년 8월 31일 사이에 창작 게시판 단편 카테고리로 올라온 작품들을 심사하였습니다.

이달의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으로 히로 님의 「먼지보다 가벼운 기록」과 빗물 님의 「제주 문어는 바다처럼 운다」를 선정하였습니다.

 

히로, 「먼지보다 가벼운 기록」
두 명이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서로의 삶에 간섭하는 타임 패러독스물입니다. 삶에 첨예하게 서로 연결된 양상이 아주 아름답네요. 에스테와 정우의 캐릭터가 선명하고, 설정을 과잉되게 사용하지 않은 부분도 훌륭합니다. 에스테의 입을 빌려서 굳이 정우와의 관계를 설명하진 않아도 될 듯합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친절합니다. 마지막의 열린 결말까지 좋습니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삶을 관통하는 거라는 단순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했습니다.

달리, 「바벨」 
미스터리 소설과 비슷한 외양을 가지고 있는 SF 소설이네요. 만화 『총몽』이나 애니메이션 『On your mark』를 연상시키는 ‘성채’와 ‘바깥’이 존재하고, 그 안에 들어간 이들의 관계성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올가, 연우, 원장의 관계성이 풍성하게 들어가기에는 분량이 짧다는 점인데요. 만일 개작을 한다면 원장의 캐릭터를 이야기에서 좀 더 두드러지게 드러내주는 복선들을 활용해보아도 좋을 듯 합니다.

ㄱㅎㅇ, 「우리가 모두 흰수염고래와 은행나무와 곰벌레가 될 수 없다면」
타자에게 감각을 공유하거나, 공유받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아이를 주인공으로 기후위기 문제를 다룬 작품입니다. 어디까지 감각을 공유할 수 있는지, 인간은 무엇을 중심으로 생각하는지는 SF소설이 가진 오랜 주제죠.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이라던지) 매력적인 설정입니다만 아이인 주인공이 서툴게 생각하는 게 문제일까요. 이야기의 매음새가 깔끔하지는 않아요. 제목에서부터 사실 문제가 조금 보이는데요. 흰수염고래, 은행나무, 곰벌레, 너무 많은 소재들을 한꺼번에 밀어넣으려고 한 건 아닐지요. 우리의 인지감각을 대표할 수 있는 소재가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이야기의 나열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보여요.

잉유신, 「그라데이션 증후군」
‘그라데이션’에 집착하다가 자기 존재를 ‘그라데이션’ 해 버린다는 흥미로운 설정입니다만, 설정밖에 없습니다. 이 설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읽고 싶어서 평을 씁니다.

가가, 「갈림길에 선 여자를 관찰하며」
00년대 초반의 ‘문단문학’ 단편소설들을 연상시키는 짜임새 있는 소설이네요. 완과 은의 캐릭터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소재도 그렇습니다. 자칫 위험할 수 있는 소재를 용기있게 서사에 밀어넣은 뚝심이 훌륭하네요. 무엇보다 문장이 정말 매끄럽고 좋습니다. 길지 않은 문장들이 노래하듯이 가볍게 서사 위로 넘나드네요. 다만 이 소설의 마지막까지도 00년대 초반을 연상시킨다는 점이 어쩔 수 없이 아쉽습니다. 주인공들이 조금 더 의지를 가지고 행동해도 되지 않을까요.

삶이황천길, 「여덟 연꽃잎 펼쳐진 하늘 밑」 
러브크래프트의 코스믹 호러를 연상시키는 소설입니다. 소설의 형식마저도 그렇네요. 러브크래프트의 동양풍 오마주로도 읽힙니다. 다만 러브크래프트가 오랫동안 해 온 이야기를 동양풍으로 다시 한번 재현하는 이야기여야 하는 특별한 연유를 이 소설 안에서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 소설만의 특별한 서사, 특별한 이야기를 찾아주었으면 합니다.

쟁뉴, 「운우지정」
소위 ‘필멸자’와 ‘불멸자’의 러브스토리네요. 제목이 이래서 조금 섹슈얼한 이야기라도 들어있을까 생각했는데, 구름과 비의 연관관계가 다른 식으로 읽히는 점이 더 멋졌습니다. 굉장히 넓고 깊은 이야긴데, 가벼운 소품처럼 풀어낸 점도 아주 매력적입니다. 수 세기의 시간을 가로질러서 인간사의 편견과 억압들을 농담처럼 뛰어넘는데, 그러면서도 프로파간다가 되지 않았고, 운정이라는 불멸자의 캐릭터를 선연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빗물, 「제주 문어는 바다처럼 운다」 
‘출생의 비밀’이라는 막장드라마에서 흔히 쓰여온 소재가 이토록 아름답게 Sci-Fi적으로 재현될 수 있다니 감탄했습니다. 서로를 억압하는 존재로 규정지어진 관계가 서로의 특별함을 발견하고 끝내는 당연한 연대감을 발견하는 데까지, 괴로운 이야기를 경이롭게 만들어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소리를 질러버렸네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닌데도 구석구석에 사랑스러운 농담들까지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습니다. 읽는 동안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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