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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작 주름 - 쾌몽

2021.08.15 00:0108.15

주름

쾌몽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야간근무를 하다가 10시쯤, 그러니까 22시경에 사무실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한 층 위에 있는 부장 눈치까지 보는 오 대리를 끌고 회사 앞 편의점에 갔다. 몇 달 전부터 계속된 야근 탓에 오 대리는 안 그대로 홀쭉한 뺨이 더 홀쭉했고 눈에는 핏발이 섰으며 눈 밑은 검었다. 편의점에서 나는 커피를 집고 오 대리는 에너지드링크를 집었다. 나는 에너지드링크를 고르는 오 대리에게 어제 했던 말을 또 했다.

“그거 너무 많이 먹지 말라니까요.”

그 말을 듣고 오 대리가 힘없이 웃은 것도, 서로 카드를 내밀려고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내가 이겨서 오 대리가 벌게진 얼굴로 감사하다고 말한 것도 화면을 재생한 듯 어제와 똑같았다. 하지만 편의점을 나선 이후는 달랐다. 그 일은 등 뒤에서 종이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편의점 유리문이 닫힌 직후에 벌어졌다.

내 얼굴과 비슷한 높이에 있던 오 대리의 얼굴이 위로 솟구쳤다. 정면을 보고 있는 내 시야 가장자리에 걸린 바로는 그랬다. 오 대리의 키가 갑자기 커진 것이다. 아니, 키가 커졌다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거인이 한 손으로 오 대리의 다리를 땅에 고정시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를 잡아서 힘껏 당긴 것처럼 쭉 늘어났다. 오 대리는 점점 늘어나다가 삼층 건물만큼 커진 뒤에야 멈췄다.

길게 늘어난 오 대리의 몸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흐느적거렸다. 몸만 늘어난 탓에, 입고 있던 와이셔츠가 목 바로 밑에서 잘린 것처럼 보였다. 와이셔츠 아랫자락에서부터 반바지처럼 짧아진 정장바지 윗단 사이로 맨살이 하얗게 드러났다.

나는 멍한 눈으로 머리 위 높은 곳에 있는 오 대리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정말로 보이지 않는 거인이 잡아당긴 듯, 원래보다 홀쭉한 오 대리의 얼굴이 더욱 홀쭉해져 있었다.

“팀장님…….”

오 대리의 목소리가 저 높은 데서 들려왔다. “대리님” 하고 대꾸하는 내 목소리는 깊은 꿈속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오 대리의 얼굴은 기괴한 한편 내가 본 어느 때보다 슬퍼 보였다. 오 대리의 머리 바로 옆에서 별인지 인공위성인지가 반짝였다. 짧은 순간 나는 방금 일어난 일이 꿈인지, 만약 꿈이라면 지독한 악몽인지 단순한 개꿈인지 고민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을 때 눈앞에는 하얀 천장이 떠 있었다. 예상한 대로 응급실 천장이었다. 내가 누운 침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기획3팀 이 과장의 등 뒤로 간호사들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과장의 무표정한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괜찮아요?”

나는 대답 대신 물었다. “오 대리님은요?”

이 과장은 바로 대꾸하지 않았다. 어디까지 설명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과연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살짝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경찰이 데려갔어요.”

“다치진 않았어요? 오 대리님요.”

내가 몸을 일으키며 묻자 이 과장은 덤덤한 말투로 “다친 덴 없어요”라고 말했다. 시계를 보니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13시가 아니라 1시였다. 팔에서 링거 바늘을 뽑고 침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찾으려고 두 발로 바닥을 더듬더듬 짚는 나를 이 과장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는 이 시간까지 있어준 이 과장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한편, 그렇게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신발이라도 좀 찾아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양말 신은 발로 응급실 바닥을 계속 더듬었다. 신발 한 짝은 금방 찾았지만 나머지 한 짝은 침대 밑으로 깊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침대 밑에서 신발 한 짝을 끄집어낸 다음 허리를 펴고 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었어요?”

이 과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조금 전에 지었던, 과연 그런 일이 진짜로 있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그 얼굴로 묻는다.

“그걸 실제로 봤어요?”

“네. 옆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쳐다보니까 오 대리님이 쭉쭉 늘어나고 있었어요. 편의점 건물만큼 커지더라고요.”

“뭔가 특이한 일은 없었어요? 갑자기 빛이 번쩍했다거나, 오 대리님이 뭐 이상한 걸 만졌다거나.”

“특이한 일은 전혀 없었고, 오 대리님도 평소랑 똑같았어요. 늘 마시던 핫×스를 사 갖고…….”

나는 말을 멈췄다. 오 대리가 집어 든 에너지드링크를 가리키며 ‘그거 너무 많이 먹지 말라니까요’ 했던 일이 생각났다.

“혹시 핫×스 때문에? 하루에도 몇 캔씩 마시더니…….”

이 과장은 대꾸하지 않았다. 표정은 여전했지만 그 침묵은 설마 핫×스 때문이겠냐는 되물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다른 사람이 아닌 이 과장이었기에 나는 그다지 무안해하지 않았다. 곧바로 원무과에 가서 병원비를 지불했다. 응급실 영수증을 총무부에 제출하면 비용 처리가 될지 잠깐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가능성이 낮을 것 같았기에, 영수증을 받자마자 구겨서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 과장과 나는 병원 건물 입구에 나란히 서서 앞에 있는 택시들을 바라봤다. 내가 고맙다고 말하며 택시비를 내밀자 이 과장은 총무부에 청구할 거라며 받지 않았다. 택시들 쪽으로 걸어가면서 내가 물었다.

“근데 경찰이 오 대리님 어떻게 데려갔어요? 차를 탈 수도 없었을 텐데.”

“경찰 몇 명이 연행하듯 데려갔어요.”

“과장님은 얘기 듣고 안 놀랐어요?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믿어져요?”

택시 뒷문 손잡이 쪽을 향하던 이 과장의 손이 멈췄다. 곧이어 나를 돌아본 이 과장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몇 달 동안 야근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한 찰나 이 과장이 말했다.

“언젠가 벌어질 일 아니었을까요?”

그런 다음 이 과장은 곧바로 택시에 올라탔다. 나는 이 과장이 탄 택시가 병원 정문을 나설 때까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이 과장의 말이 무슨 뜻일까? 오 대리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 뜻일까? 몇 달이나 계속된 야간근무와, 지방대학 출신이라고 매사 무시하는 부장의 핍박을 못 견디고 언젠가는 폭발했을 거란 얘긴가? 아니면 오 대리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 오존층에 구멍이 생기거나 동물에게서 전이된 바이러스가 인간사회를 휩쓰는 것처럼 좀 더 개연적이고 범인류적인 현상이라는 뜻일까?

이 과장이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다음 날 나는 그 일이 오 대리에게만 아니라 범인류적인 차원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텔레비전에서, 라디오에서, 인터넷에서 하나같이 떠들고 있는 바에 따르면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은 오 대리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는 지인, 또는 눈앞을 지나가던 낯선 사람이 갑자기 쭉 늘어나 3층 건물만큼 커지는 모습을 본 사람 또한 나만이 아니었다. 함께 장을 보러 가다가 눈앞에서 딸이 쭉쭉 늘어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잃은 육십대 여성이 있었고, 늦은 밤 버스정류장에서 갑자기 키가 커지는 바람에 버스를 못 타게 된 사십대 남성을 목격한 사람은 여럿이었다. 새벽부터 출근해서 막 일할 준비를 하고 있던 한 직장인은, 건물 바깥에서 유리창을 통해 4층 사무실을 들여다보게 돼버린 동료와 눈이 마주쳤다.

출근하자마자 부장에게 불려간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설명한 뒤 사장실로 불려가서 다시 한번 설명하고 사무실로 내려가 동료들에게 또 한 번 설명했다. 그런 다음 목격자 진술을 해달라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경찰서에 가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동안 오 대리는 내 기억 속에서 몇 번이고 늘어났다. 기억 속 오 대리의 키는 늘었다 줄었다 했지만, 내가 오 대리와 처음 만난 이래 가장 슬펐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3층 건물만큼 커진 오 대리가 과연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물었지만 담당 경찰관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진술을 마치고 경찰서를 나섰을 때는 퇴근까지 한 시간 조금 넘게 남아 있었지만 귀가하는 대신 다시 회사로 향했다. 일도 남아 있었고, 이 과장에게 오늘 새벽에 한 말에 대해 물어보고 싶기도 했다.

파티션 두 개를 지나 기획3팀으로 가자 그 팀 팀장이 나를 보고 눈인사를 했다. 이 과장과 입사 동기인 한 팀장은 부장 마음에 든 덕분에, 같은 과장이면서 나이도 경력도 몇 년 더 많은 이 과장을 제치고 팀장이 됐다. 한 팀장이 부장 마음에 들었다기보다는 이 과장이 부장에게 밉보였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부장의 바람대로 한 팀장은 별다른 잡음 없이 팀을 잘 이끌어가고 있었다. 물론 부장의 평가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 구는 이 과장의 협조가 가장 큰 몫을 했을 게 틀림없다.

“이 과장님 어디 갔어요?”

내 물음에 한 팀장은 “지하에서 발송 작업 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혼자서요?”

모니터에 시선이 붙박인 3팀 팀원들을 둘러보면서 내가 묻자 한 팀장은 어설프게 웃었다. 뭐가 어쨌다는 건지 모르겠는 웃음이었지만 나는 더 묻지 않고 지하 창고로 갔다.

지상 사무실과 달리 어둠침침한 지하 창고에 박스테이프 뜯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상품 카탈로그와 사은품 샘플 더미 사이로 봉투 작업을 하고 있는 이 과장의 모습이 보인다. 양손으로 서류봉투와 카탈로그를 동시에 집어 들고 카탈로그를 봉투에 넣은 뒤 박스테이프를 뜯어서 봉하기까지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그곳으로 다가가 태연하게 봉투와 카탈로그를 집어 들었다. 오랜 기간 단련된 덕분에 카탈로그를 봉투에 넣고 테이프로 봉하는 내 솜씨 또한 막힘이 없었지만 이 과장만큼 빠르진 않았다. 손은 멈추지 않고 나를 잠깐 지켜보던 이 과장이 슬며시 웃었다.

“왜 웃어요?”

“팀장님은 왜 이걸 혼자 하고 있냐고 묻지 않네요.”

“아아” 하고, 나는 별 의미 없는 추임새로 반응했다. 이 과장이 말했다.

“근데 그건 혼자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안 하고 있는 사람한테 해야 할 질문이잖아요. 어쨌든 그 일을 안 하고 있는 사람이 하는 질문이기도 하고요.”

그 말에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오늘 새벽에 했던 말 무슨 뜻이에요?”

이 과장이 손을 계속 움직이면서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본다. 무슨 말이냐고 되묻는 표정이다.

“언젠가 벌어질 일이었다고 했잖아요.”

“아, 그거요?”

이 과장은 여전히 손은 쉬지 않은 채 그렇게 대꾸하고 한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재촉하지 않고 봉투에 카탈로그 넣는 일을 계속했다.

이 과장하고는 함께 일하기 편할 때도, 불편할 때도 있었다. 봉투와 카탈로그를 동시에 집고 카탈로그를 봉투에 넣은 다음 박스테이프로 봉하기까지 10초도 안 걸리는 만큼 업무적으로는 편했지만 대화하면서 타이밍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직원과 이야기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었다. 카탈로그 봉투를 세 개쯤 완성했을 때 이 과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사람 죽여본 적 있어요?”

“네?”

나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고 민망해했지만, 생각해보니 회사에서 가장 자주 내뱉는 소리였다.

“저도 아직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인데, 확실한 건…….” 이 과장이 열심히 움직이던 손을 드디어 멈췄다. “오 대리님은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저도 없는데요.”

내 말에 이 과장은 “그런가요” 하고는 슬며시 웃었다. 내가 다시 말했다.

“오 대리님이랑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요. 이 과장님도 사람 죽여본 적 없잖아요. 살인자는 감옥에 있겠죠. 그런데 무슨 그런 질문을 똠양꿍 먹어봤냐는 질문처럼 해요?”

“저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다고 확신할 수 없어요.”

나는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이 과장이 대화하기 편한 상대는 결코 아니었지만 실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게 무슨……?”

“직접 칼로 찌르거나 독을 먹이거나 목을 졸라서 죽이는 것만 살인이 아니잖아요.”

어느새 나 또한 굼뜨게 움직이던 손을 멈춘 상태였다.

“……음주운전이라도 했어요?”

나름 진지한 투로 물었지만 이 과장은 소리 내어 웃더니 다시 봉투와 카탈로그를 집어 들었다.

“아뇨, 저 운전면허 없어요. 그리고 이 회사만 해도 살인자가 제법 될걸요. 팀장님이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 중에도 있을 테고요. 그럼 이렇게 물어볼게요. 죽이고 싶었던 사람은 있죠?”

“그거야…….”

나는 지난 기억 속 몇몇 얼굴을 떠올리며 그렇게 얼버무렸다.

“하지만 실제로 죽이진 않았잖아요. 처벌받는 건 둘째 치고 그게 기본 윤리이자 상식이니까. 죽이고 싶다고 다 죽여버리면 지구의 절반은 시체로 뒤덮여 있을 거예요. 근데 본인이 누군가를 죽이고 있으면서도 그걸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담담하게 이어지는 이 과장의 말을 듣고 있자니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그게 오 대리님이 그렇게 된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오 대리님 같은 사람은 남을 죽이느니 자기가 죽는 게 낫다고 여기는 부류니까요.”

그 대답을 듣고 나는 멍한 얼굴로 이 과장을 한참 쳐다봤다. 그런 나를 본 이 과장이 말귀를 못 알아먹는 부장에게 하듯 또박또박 다시 설명했다.

“오 대리님이 길쭉하게 늘어난 건, 오 대리님이 남을 죽이느니 자기가 죽는 게 낫다고 여기는 부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나는 뭐라고 대꾸하는 대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 과장이 살짝 웃었다.

“저도 아직은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라서요. 좀 더 확실해지면 자세히 얘기할게요.”

그 뒤로 이 과장도 나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한 시간 뒤 우리는 카탈로그 1,000부의 발송 작업을 모두 마쳤다.

 

이 과장의 말처럼 뭔가 확실해지길 기다렸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길게 늘어나는 현상과 관련해서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었다. 별을 올려다보듯 오 대리의 얼굴을 올려다봐야 했던 그날 이후 몇 달이 지나는 동안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담당 경찰관에게 오 대리의 행방을 물었지만 여전히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사이, 오 대리처럼 변한 사람들의 수는 계속 늘었다.

전염병이 돌았을 때처럼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진 않아도, 처음에 오 대리를 비롯한 대여섯 명이 변신한 이래로 한 주에 평균 한두 명씩은 꼭 그렇게 됐다. 그 사람들은 연령도 성별도 거주 지역도, 심지어 직업도 모두 다양했다. 즉 그들 사이엔 명확한 공통점이 없었고, 그래서 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한 일도 아니고,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목격한 사람들이 똑같이 변한 사례는 아직 없었기에 바이러스에 의한 변형이라는 추측은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

이 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었다. 인구가 많은 중국이나 인도,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일주일에 평균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길게 늘어났다. 세계 곳곳에서 그렇게 늘어난 사람들의 사진과 그들이 늘어나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이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잠식했다. 비록 정신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 가기는 했지만 오 대리에게 일어난 일을 직접 목격한 나는 그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보다는 조금 담담하게 영상들을 볼 수 있었다. 영상 속 사람들이 늘어나는 모습은 오 대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들의 얼굴 또한 오 대리와 마찬가지로 위협적이기보다 슬펐다. 미국 뉴스에 군인들이 사람들을 데려가는 장면이 나오는 걸 보니 오 대리 역시 경찰에서 군으로 인계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언론에서는 그렇게 늘어난 사람들을 ‘엿가락 인간’이라고 일컬었다가 뭇매를 맞았다.

전에 없던 괴현상에 전 세계가 공포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누가 언제 늘어날지, 혹은 자기가 늘어나는 건 아닐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오 대리를 비롯한 사람들은 물리적인 외형이 늘어난 탓에 기괴해 보였을 뿐, 놀라서 당황한 것을 빼면 충분히 이성적이었고 본래의 인격과 성격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로 추정해봤을 때 그나마 확실한 사실은 실내에서 늘어난 사람은 없다는 것, 10세 이하의 아동에게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그 밖에 뭔가 확실해진 게 있는지 이 과장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 과장이나 나나 신제품 박람회 준비로 너무 바빠서 이야기를 나눌 새가 없었다. 제품 카탈로그나 샘플 따위를 들고 서로 바쁘게 스쳐 지나가면서 눈인사만 몇 번 했을 뿐이었는데, 그런 마주침을 네 번인가 다섯 번쯤 하고 나자 마침내 기회가 생겼다. 박람회가 열릴 전시장에서 작업 중인 외주 인테리어업체에 제품 샘플을 전달하러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이 과장과 딱 마주친 것이다.

“어디 가요?”

그렇게 묻는 내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들떴다. 이 과장이 빙글 웃더니 특유의 담담한 말투로 대답한다.

“전시장에 카탈로그 가져다놓으려고요.”

이 과장의 양손에 200부씩 묶인 카탈로그가 한 덩어리씩 들려 있었다. 나눠 들어주고 싶었지만 나 또한 제품 샘플(조리기구 세트)이 가득 든 상자를 양팔로 안고 있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그거 들고 전철 타려고요? 저도 거기 가는 길이니까 제 차 타고 가요.”

내 말에 이 과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에 주차돼 있는 차에 짐을 싣는 동안 이 과장은 별말하지 않았고, 나는 질문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지만 차에 올라타서 출발할 때까지 꾹 참았다. 출퇴근 시간이 아닌데도 도로는 꽉 막혀 있었고 나는 내심 기뻐하며 여태껏 궁금했던 것들을 다 물어보자고 결심했다. 사거리를 앞두고 속도를 줄이면서 조수석 쪽을 슬쩍 돌아보며 물었다.

“뭔가 확실해진 게 있나요?”

앞차들이 사거리를 금방 빠져나가지 못할 듯했기에 파란불인데도 더 가지 않고 횡단보도 앞에 멈추자 뒤차가 경적을 길게 울렸다. 그 탓에 이 과장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듣지 못했다. 나는 다시 물으려고 이 과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이 과장이 말했다.

“객관적으로 확실한 거요, 아니면 저한테 확실한 거요?”

“……그게 다른가요?”

“달라요. 저는 저한테 확실한 게 다른 사람들한테도 확실하다고는 생각 안 해요.”

“뭐 그건 알겠는데…… 객관적으로 확실한 건 뭐예요?”

“그건 아직 안 밝혀졌잖아요.”

“그렇네요.”

나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그럼 이 과장님한테 확실한 건 뭔데요?”

“글쎄요, 오 대리님이랑 그 사람들의 공통점?”

“그 사람들이라뇨?”

“길게 늘어난 사람들 말이에요.”

“공통점이 뭔데요?”

이 과장은 금방 대답하지 않았다. 뜸을 들인다기보다 곧 해야 할 말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이지만, 이 과장과 대화할 때 자꾸 페이스를 잃는 건 어떻게 보면 이 과장의 신중함 때문인 것 같았다. 이 과장은 자기 생각을 한참 공글린 뒤에야 내뱉는 사람이었다.

뒤차가 또 한 번 경적을 울렸다. 어느새 신호가 바뀐 것이다. 이 과장이 뭐라고 말할지 신경 쓰느라 신호가 언제 바뀌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사실은 바뀐 지 1초도 안 지났을 수도 있다. 나는 앞차가 저 앞의 횡단보도를 지나친 뒤에야 차를 출발시켰다. 그사이 뒤차가 몇 번 더 경적을 울렸지만, 고맙게도 이 과장은 경적이 다 울린 뒤에 대답해주었다.

“속에 주름이 많다는 거요.”

공글려도 너무 공글린 대답이어서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 대답이 뭘 의미하는지도,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얼빠진 말투로 묻고 말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뭐 이런 거요?”

“내가 많은 게 아니라 주름이 많다고요.”

이 과장이 다시 담담하게 말했다.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단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과장은 돼먹잖은 비유나 실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령 이 과장이 사내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가 독약이라고 하면 진짜 독약인 것이다. 나는 직접적인 물음을 던졌다.

“주름이 뭔데요?”

“말 그대로 주름요. 주름살 할 때 주름, 주름치마 할 때 그 주름.”

“그러니까 그게 왜 오 대리님 속에 있으며, 그거랑 오 대리님이 늘어난 게 무슨 상관이냐고요.”

나도 모르게 정색한 것 같았다. 핸들을 돌리는 손놀림도 조금 거칠어졌다.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이 과장이 조금 부드러운 말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오 대리님 속에만 있는 게 아니라요, 제 속에도 있고 팀장님 속에도 있어요. 속에 주름이 얼마나 져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뇌가 왜 그렇게 주름졌는지 알죠? 사람 두개골 안에 들어갈 만한 크기여도 거기에 엄청난 것들이 들어 있잖아요. 뇌 자체는 크지 않아도 주름을 다 펴면 표면적이 세 배나 늘어난다잖아요. 그것처럼 사람 속에도 주름이 있는데, 그 주름 켜켜에 그 사람의 말과 생각과 진심과 감정과 윤리와 그 밖의 모든 게 욱여넣어져 있는 거예요. 즉 주름이 많다는 건 속에 욱여넣어져 있는 게 많다는 뜻이죠.”

조수석에서 계속되는 이 과장의 말을 끊지 않으려고 나는 숨도 쉬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과장의 말을 이해했다는 건 아니지만. 이 과장의 설명이 계속됐다.

“내뱉지 못한 말과 숨겨야 하는 진심뿐만 아니라, 자기가 고민하고 완성한 윤리나 신념, 진실 같은 것들이 그 사람의 주름을 채우고 있는 거예요. 주름 하나가 꽉 차면 또 하나가 생겨서 채워지고 그것마저 꽉 차면 또 하나 생기고……. 근데 그렇게 계속 욱여넣다 보면 결국 어떻게 될까요? 속이 주름으로 꽉 차서 더 이상 주름이 생길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욱여넣지 않으면 되잖아요.”

나는 나름 논리적으로 대꾸한답시고 그렇게 말했다.

“맞아요.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오 대리님 같은 사람들이 그럴 수 있었다면 늘어나지도 않았을 거예요. 주름에 욱여넣어지지 못한 것들이 점점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뻥 터지겠죠.”

내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안내했지만, 이 과장의 말에 온 신경을 기울인 터라 주차장 입구를 지나치고 말았다. 전시장 건물을 다시 한 바퀴 빙 도는데도 이 과장은 개의치 않았다.

“몸속이 터지면 죽잖아요. 그래서 주름을 펴서 몸을 늘리는 거예요. 아마 사람 피부에 숨겨져 있던 주름이 최대한 활성화되는 거겠죠. 구부러지는 빨대를 떠올려봐요. 구부러지는 부분의 주름을 다 펴면, 그러니까 빨대를 쭉 잡아당기면 더 길어지잖아요. 오 대리님 같은 사람들은 그렇게 된 거예요.”

“네…… 뭐, 주름이 있다 칩시다. 근데 그걸 그렇게 펼 수 있는 거예요?”

마침내 건물 주차장에 들어서면서 내가 물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설명한 기세가 무색하게도 이 과장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또다시 말을 공글리고 있는 건가? 잠시 후 “이것도 추측이지만” 하고 말을 시작하면서도 이 과장의 목소리에는 어떤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저는 그게 진화의 한 형태인 것 같아요.”

“뭐요? 진화요?”

“진화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뤄지는지는 알죠?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말이에요. 생물은 생존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진화하잖아요. 속에 너무 많은 것이 쌓여서 터질 것 같으면 부피를 늘려야죠.”

“그러니까, 오 대리님이 진화를 했단 얘긴가요?”

“오 대리님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본 것밖엔 몰라서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왜 가끔 진화한 인간의 표본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유명인이나 예술가 중에……. 전 예전에 장국영을 보면서 그런 생각 했었어요. 아, 저 사람은 인간의 진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 예가 아닐까. 단순히 외모만이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보이는 뛰어난 재능이라든가, 직접 만나보진 못했지만 평판에서 알 수 있는 사람됨 등등. 자기 일을 완벽하게 해낼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남달랐잖아요. 그런 걸 보고 감탄하면서도 저 사람은 참 피곤하겠다 생각했었어요. 그래도 사람인데 저래서 몸과 정신이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결국 그렇게 됐죠.”

나는 머릿속이 멍한 상태로 드디어 주차를 마쳤다. 아는 이름이 나와서 반가웠지만, 내가 장국영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몇몇 영화와, 이른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홍콩 배우라는 간단한 사실뿐이었다. 이 과장이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면서 말을 이었다.

“인류가 진화의 국면에 들어선 게 아닐까요? 장국영은 기나긴 진화 과정에서 희생된 개체인 거죠. 장국영이 조금만 더 버텼다면 죽기 전에 오 대리님처럼 늘어났을지도 몰라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까 그런 선택을 했겠지만.”

차에서 내린 뒤에야 이 과장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다. 주름이니 진화니 하는 말을 길게 내뱉고도 이 과장의 표정은 태연했다. 나는 트렁크를 열려고 차 뒤쪽으로 가면서 겨우겨우 말을 짜냈다.

“근데, 그러면…… 그런 속성? 성격? 아무튼 그런 세상 살기 힘든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도태되고 그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만 살아남는 게 진화 아닌가요? 굳이 그런 신체적 변형까지 일어날까요?”

이 과장이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서는 나와 나란히 서서 트렁크 안을 내려다봤다. 이 과장은 “글쎄요……” 하고 길게 끌다가 곧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니까?” 그러고는 양손으로 카탈로그 더미를 번쩍 들어 올리고 먼저 가버린다. 나는 뿅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트렁크에서 샘플 상자를 꺼내 들었다.

배정받은 부스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샘플 상자가 너무 무거워서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패대기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샘플 상자를 탁자 위에 가만히 내려놨다. 이 과장은 그 옆에다 카탈로그 더미를 쿵 놓더니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주위에서는 다른 회사 직원 몇 팀이 박람회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과장은 그 사람들을 죽 훑어보다가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더니 고개를 한껏 젖힌 그대로 한참을 올려다본다. 나도 이 과장을 따라 고개를 젖혔다. 실내 스포츠 경기장 천장처럼 시멘트나 패널로 마감되지 않은 높다란 천장에 조명들이 듬성듬성 매달려 있었다.

“천장이 높아서 좋네요.”

이 과장이 웃으며 말했지만, 그때까지도 주름이니 진화니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나는 그 말은 또 무슨 뜻이냐고 묻지 못했다.

 

신제품 박람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나에게 오 대리의 상황을 묻는 사람들의 수도, 물음의 빈도도 점점 줄었다. 이 과장과 나를 비롯한 직원들은 상품 목록을 정리하고 실물과 맞춰보고 다시 정리하고를 반복했다. 그동안 오 대리처럼 몸이 길게 늘어난 사람들의 수는 일주일에 평균 한두 명에서 더해지지도 줄어들지도 않았다. 가끔 어느 부서 누군가의 몸이 늘어났다는 소문이 들려왔는데 확인해보면 하나같이 사실이 아니었다.

이 과장의 ‘진화론’이 점점 그럴듯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몸이 늘어난 사람들의 ‘규격’은 지금 같은 대량생산 시대에 맞지 않았고 그래서 자연선택의 원리대로라면 자연히 도태되겠지만, 이 과장의 말대로 인간이니까 예외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업무 중에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나는 너무 바빠서 그 생각을 길게 이어가지 못했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바로 곯아떨어지는 바람에 진화에 대해서도 자연선택에 대해서도 더는 생각할 수 없었다.

박람회 당일이 되자 나를 비롯한 직원들은 새벽부터 나가서 전시 준비를 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준비를 위해 일찍부터 나온 타사 직원들까지 더해, 전시장은 맥없는 분주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새로 가져온 제품 샘플 상자를 열고 전시대 위에다 기울였다. 실리콘으로 만든 갖가지 조리기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부스 한쪽에서 상품 카탈로그를 정리하고 있던 이 과장이 그 소리를 듣고 이쪽을 돌아봤다. 진화 이야기를 한 날 이후로는 이 과장과 전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이 과장은 카탈로그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는 대신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다. 눈으로 뭔가를 말하는 듯했지만 내가 그 의미를 읽을 수 있을 리가. 나는 입 모양으로 물었다. ‘왜요?’ 이 과장은 씩 웃으며 고개를 흔들더니 카탈로그 더미로 눈을 돌렸다.

이 과장이 왜 그러는지 궁금했지만, 곧 박람회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전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더 이상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순식간에 눈앞을 가득 메우고, 웅웅거리는 말소리가 귀뿐만 아니라 뇌까지 울렸다. 천장을 올려다보기는커녕 잠깐 고개를 젖힐 여유도 없어서 이곳이 과연 3차원 공간이 맞는지도 헷갈릴 지경이었다.

전시 부스는 여느 아파트 가정집 주방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이 과장은 평소와 다름없는 덤덤한 얼굴을 하고 안쪽에 전시된 도마 앞에 서 있었다.

이런 전시 디스플레이를 구상한 건 오 대리였다. 결국 오 대리의 이 플랜이 채택되긴 했지만 그러기까지 많이 돌아와야 했다. 처음 전시 디자인에 대해 의견을 모았을 때 대부분의 직원이 오 대리의 플랜에 표를 던졌지만 부장은 한 팀장의 플랜을 밀어붙였고 사장 및 전무 등에게 잔뜩 깨지고 나서 부랴부랴 오 대리의 플랜대로 진행한 것이었다. 오 대리는 자기 아이디어가 채택됐다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몸이 늘어나버렸다.

이 과장은 장국영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오 대리처럼 몸이 길게 늘어났을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오 대리와 장국영의 공통점은 뭘까? 오 대리가 이 얘기를 듣는다면 얼굴이 새빨개져서 ‘공통점이라뇨’ 하고 손을 내저을 게 틀림없었다. ‘얼굴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요’ 하고, 이 과장이 옆에 있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그렇게 덧붙일 것이다. 하지만 외모같이 타고난 것들은 차치하더라도, 오 대리는 완벽한 사람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적어도 완벽해지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업무에 관한 것만 아니라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때마다 스스로 세워놓은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따르려고 했으며, 그러면서도 자기 생각과 행동만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모두를 배려하려고 애썼다. 나는 그런 오 대리를 보면서 피곤함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몸이 늘어난 다른 이들도 오 대리 같은 사람들일까? 나는 뉴스에서 본 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봤다. 또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몸이 늘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유명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생면부지의 일반인들은 몰라도, 유명인들을 검색해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때 어떤 손님이 주방기구 세트를 가리키며 왜 스테인리스가 아니라 실리콘이냐고 물었고 그 상황이 꽤 길게 이어져서 나는 방금까지 하던 생각을 다시 접어야 했다.

이 과장의 존재를 다시 인식한 건 폐장 시간인 저녁 8시가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이 과장의 존재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서 일하고 있는 팀원들과, 어느새 도착해서 부스 근처를 기웃거리고 있는 부장에게도 신경을 쓰지 못할 만큼 정신없이 바빴는데 폐장 시간이 다가오고 사람들이 좀 줄어든 덕분에 어느 순간 이 과장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린 것이다.

“네, 벌목한 편백나무로 만든 친환경 도마입니다.”

이 과장의 말이 끝나자 꽤 오랫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이 과장 가까이에 있던 한 팀장이 헉 소리를 냈고, 우리 팀 누군가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이 과장 앞에서 도마를 가리키고 있던 손님은 그 말을 못 들었는지 혹은 이해를 못 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가버렸다.

부스 한쪽에 도사리고 있던 부장이 이 과장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이 과장, 방금 그게 무슨 짓이야? 설명을 그렇게 하면 돼?”

이 과장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꾸한다.

“카탈로그에 그렇게 써 있는데요.”

“뭐?”

“편백나무로 만든 도마라고 카탈로그에 써 있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 그렇게 설명한 의도가 뭐냔 말이야!”

주위에 몇 남지 않은 방문객들과 타사 직원들이 이쪽을 돌아봤다. 부장의 얼굴이 흥분으로 시뻘게졌고 나를 비롯한 나머지 직원들의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달아올랐다. 오직 이 과장만이 담담한 얼굴로 부장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의도 같은 게 있을 리가요. 일하는 건데요.”

“손님을 끌어오지는 못할망정 쫓아버려 놓고 뭐라는 거야?”

“쫓아버린 게 아니라 제 설명을 듣고 구입하지 않겠다 판단하셨겠죠.”

“그게 무슨 헛소리야? 왜 말을 그딴 식으로 하지?”

이 과장은 이번엔 대꾸하지 않았다. 주눅 들었거나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해서가 아니라, ‘왜말을그딴식으로해’는 부장이 평소에도 버릇처럼 하는 말이라 딱히 대꾸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장이 다시 말했다.

“전부터 회사에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 이거 명백한 귀책사유야.”

“그럴 리가요. 판촉 행위를 한다고 상품이 백 퍼센트 팔리는 건 아닌데요.”

“뭐?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러고도 이 회사 직원이라고 할 수 있어? 다른 직원들은 상품 하나라도 더 팔려고 기를 쓰는데, 이 과장은 뭔데 그딴 식으로 행동해? 응? 네가 뭔데?”

“저요?”

‘네가뭔데’라는, 또 다른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부장을 보며 이 과장이 말했다. 무척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인간입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 과장의 몸이 쭉 늘어났다. 오 대리 때와 달리 나는 천장을 향해 점점 올라가는 이 과장의 얼굴을 지켜봤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천장 조명이 너무 눈부셔서 계속 쳐다볼 수가 없었다. 이 과장은 전시장 천장에 머리가 살짝 닿을 때까지 길어지다가 멈췄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이 이 과장의 얼굴 바로 앞에서 반짝였다. 눈이 부신 듯 손차양을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던 이 과장이 회사 부스 외벽에 걸려 있던 커다란 현수막을 뜯어서 상반신을 가렸다.

가장 가까이 있던 부장이 넋 나간 얼굴로 뒷걸음질 치다가 곧바로 돌아서서 헛구역질을 했다. 몇 남지 않은 손님들과 타사 직원들이 작게 소리를 지르며 전시장을 우르르 빠져나갔다. 몇몇 직원은 그들과 함께 달아났고, 나를 비롯한 몇몇은 이 과장만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수리가 전시장 천장에 바짝 붙은 채 모두를 내려다보는 이 과장의 얼굴은 오 대리나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 보이기는커녕 평소처럼 담담했다.

잠시 후 경찰이 와서 이 과장을 데려가고 그다음부터 어떻게 정리하고 마무리를 했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실리콘 국자를 상자에다 마구 던져 넣은 것만 떠오른다.

차 트렁크에 짐을 싣고 운전석에 앉아서야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이 과장이 왜 천장이 높아서 좋다는 말을 했는지 이제 알았다. 그렇다면 이 과장은 딱 그 타이밍에 자기가 늘어날 거라고 예상했단 말인가? 아니면 고개를 젓거나 부장 뒤에 대고 가운뎃손가락을 세우듯 스스로의 의지로 몸을 늘린 걸까? 진화에 관한 이 과장의 짐작이 맞다고 하면, 이 과장은 스스로가 진화할 거라고 예상했거나 또는 진화하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신제품 박람회는 하루 만에 끝났다. 나는 다음 날 출근해서 사장과 동료들한테 목격한 일들을 설명했다. 부장은 일주일 결근했고, 한 팀장은 계속 넋이 나가 있었다. 회사 분위기가 대체로 그랬다. 일주일 만에 출근한 부장이 나를 부른 건, 나 또한 그 분위기에 휩쓸려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만 있을 때였다.

부장은 조금 주눅 들어 보이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원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똑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고,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여러 번 나눠서 하게 하고,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한 일을 부하직원들에게 대충 웅얼거리고는 왜 이해를 못 하냐고 되물었다. 부장이 나를 불러서 길게 늘어놓은 말의 요점은, 한 팀장에게 기획안 하나를 줬으니 같이 진행해보라는 것이었다.

기획3팀에 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이 과장의 책상이었다. 주인은 없어도 책상은 비어 있지 않았다. 3팀 직원들이 올려놓은 서류와 버리고 간 이면지와 스테이플러 심과 구겨진 메모지 따위로 가득했다. 나는 누군가가 놓고 간 빈 커피 캔을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제법 큰 소리가 나자 3팀 직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가만히 이 과장의 책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내게 한 팀장이 왠지 다급한 말투로 말했다.

“부장님이 이거 같이 진행하라고 하시던데요.”

나는 한 팀장이 내미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 크기가 조절되는 쿠키 틀에 관한 기획안이었다. 몇 달 전 오 대리가 올렸다가 부장에게 반려당한 기획안이기도 했다.

“이거……” 하고 입을 연 내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떨렸다. “오 대리님 기획 아니에요?”

“그래요?” 하는 한 팀장의 되물음이 연기인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한 팀장의 얼굴은 태연했다. 갑자기 몸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밀고 올라오는 느낌에 나는 서류를 한 손에 구겨 쥐고 바람이 일 정도로 세차게 몸을 돌렸다. 뒤에서 한 팀장이 불렀지만 돌아보지 않고 곧장 부장 방으로 했다. 나는 문을 박차고 열려다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고 가만히 노크한 다음 들어갔다. 나를 본 부장이 물었다.

“왜?”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다지만 의자에 비딱하게 앉아 나를 올려다보는 부장의 안색은 어두웠다. 일주일 전에 바로 앞에서 목격한 일로 충격을 받은 탓일까? 아니면 본인도 늘어날까 봐 걱정하는 걸까? 하지만 진화와 관련된 이 과장의 추측이 맞다면 부장은 몸이 늘어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한 팀장한테 기획안 받았는데요.”

“아, 그거 한 팀장이랑 같이 진행해봐.”

“오 대리 기획안인데요.”

“오 대리 지금 없잖아.”

“그럼 기획자를 오 대리로 해서 진행하는 겁니까?”

나는 무슨 대답이 나올지 뻔히 알면서 그렇게 물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나?”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부장이 다시 말했다.

“이 과장이 빠져서 3팀도 사람이 줄었잖아. 두 팀이 같이 진행해보라는 거지.”

나는 “오 대리 기획을 가로채라는 얘기군요”라는 말을 생목 삼키듯 삼켰다. 부장이 여전히 치켜뜬 눈으로 나를 보며 재차 물었다.

“아직도 이해 못 했어?”

“아닙니다”라고 내뱉는데 뭔가가 속으로 또 되삼켜졌다. 나는 알아들었으면 가보라는 부장의 말에 짧게 목례하고 방을 나섰다.

한 손에 기획안을 쥐고 잠깐 문 앞에 가만히 서 있다가 멍하니 걸음을 뗀 순간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진동했다. 휴대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정확히 이 과장의 이름이 떠 있었다. 나는 사무실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복도 끝에 있는 베란다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휴대폰은 다행히 끊기지 않고 끈질기게 진동을 이어 갔다. 나는 베란다에 한 발을 내놓는 동시에 전화를 받았다.

“이 과장님?”

“팀장님, 사무실에서 나왔어요?” 하고는 이 과장이 작게 웃는다. 나는 다급히 물었다.

“어디예요? 괜찮아요? 다친 덴 없어요?”

“전 괜찮아요. 몸이 갑자기 늘어나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긴 한데 아프거나 그러진 않아요. 그때 옷이 찢어져서 좀 창피하긴 했지만. 여기서 엄청 큰 천막 같은 걸 줘서 지금은 그거 덮고 있어요.”

“오 대리님은요? 오 대리님 봤어요?”

“아뇨.”

이 과장 근처에서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들 흩어져 있는 것 같아요. 저처럼 된 몇몇이랑 서울 근교에 있는 군부대에 와 있는데 정확한 위치는 외부에 알리지 말래요.”

“근데 어떻게 된 거예요? 그때 늘어날 걸 알았어요? 예상한 거예요?”

“예상했다기보다……”라고 한 다음 이 과장이 한참 말을 잇지 않아서 통화가 중간에 끊긴 줄 알았다. 휴대폰을 보면서 다시 걸어야 하나 하고 있을 때 이 과장이 말했다.

“타이밍을 보고 있었어요. 부장님이 끝낼 기미를 안 보이길래 그냥 저질러버렸죠.”

“그럼…… 과장님 의지로 늘어났단 말이에요?”

“네. 몸속 주름이 불수의근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가 없었는데…….”

“뭐요?”

“불수의근요.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근육 말예요. 심장 근육 같은 것. 주름 근육이 그런 불수의근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한번 움직여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오 대리님은 자기 의지로 그렇게 된 게 아닌 것 같았는데.”

“그런 근육이 있다는 걸 몰랐을 테니까요. 저도 백 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어요. 어차피 사람마다 다를 테니까. 막 자기 의지로 귀를 움직이는 사람도 있잖아요.”

“어쨌든 괜찮은 거죠?”

“네, 괜찮은 것 이상이에요. 이렇게 되기 전보다 더 많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에요. 대중교통은 이제 못 타겠지만.”

“앞으로 어떻게 한대요?”

“뭔가 대책을 세우고 있겠죠. 사회 지도층이나 저명인사 중에도 늘어난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우리한테 맞는 것들이 생길 거예요.”

이 과장이 ‘우리’라고 했을 때 나는 이상한 소외감을 느꼈다. 그 마음을 읽었는지 어쨌는지 이 과장이 말했다.

“팀장님도 어때요? 이 높이에선 공기가 달라요. 한번 도전해봐요.”

“글쎄요…… 그게 그렇게 맘대로 되나?”

“할 수 있어요. 저도 했잖아요. 그럼 거꾸로, 팀장님이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생각해봐요. 예를 들면, 부장님처럼 할 수 있겠어요? 점심 먹고 삼 분 늦게 들어왔다고 전 직원 소집해서 삼십 분 동안 잔소리 늘어놓는 일 할 수 있어요? 직원들 앞에서 대놓고 여자들이랑은 일 못 하겠다는 말 할 수 있겠어요?”

“그런 문젭니까?”

“그런 문젭니다.”

어느새 귀가 뜨거웠다. 뭔가로 꽉 막힌 속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꿈틀거림을 자세히 느껴보고 싶어서 오 대리의 행방을 알아봐달라 말하고 그만 전화를 끊으려는데 이 과장이 먼저 말했다.

“아, 가봐야겠어요. 다 모이라네요. 또 연락할게요.”

이 과장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심호흡을 했다. 조금 전 부장 방에서 되삼킨 것들 때문인지 속이 답답했다. 월급은 수명과 맞바꾸는 거라는 직장인들의 우스갯소리처럼 부장은 그런 식으로 오 대리를, 이 과장을 서서히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 대리와 이 과장은 꽉 채워진 것들이 몸을 터뜨리기 전에 몸속 공간을 늘렸다. 그것이 인간의 몸이 선택한 진화의 방식이었다.

몸속 주름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이 과장의 말대로 나 또한 몸을 늘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람 몸이 다 다르고, 선천적 또는 후천적으로 특정 근육을 못 움직이는 사람도 있으니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몸속 주름을 느껴보려고 했다. 부장 방에서 되삼켜진 것들이 어디로 갔는지 탐색해봤다. 오 대리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 동료의 기획안을 가로채라는 지시에도 아무 말 못 한 데서 오는 자괴감, 부장 얼굴에다 기획안을 내던지지 못한 데 대한 후회 같은 것들이 어디로 갔는지, 그것들이 내 몸속 주름에 욱여넣어졌는지 알아보려 했다. 내 몸속의 주름이 자바라 빨대 끝을 잡아당겼을 때처럼 쫙 펴지는 것을 상상했다. 몸속 주름을 아코디언처럼 자유자재로 늘려보려고 했다. 주름들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것을 느끼려고 애썼다.

문득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내 몸에도 주름이 많다면, 지붕이 없는 이곳에서 몸을 늘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회사 건물 밖으로 나가서 부장이 앉아 있는 자리를 가늠하고, 부장 방이 있는 4층 높이까지 늘어나서 책상 뒤에 있는 창문을 연 다음 기겁하는 부장의 얼굴에 오 대리의 기획안을 던질 것이다. 그 장면을 상상하자 웃음이 나왔다.

곧, 주름의 너울거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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