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조라는 밤바다에 있지

히로

 

01.

며칠째, 대문 앞을 박박 긁는 소리가 들린다. 평소 같았으면 방위대원을 호출해 호출사유를 설명하고, 내가 호출한 이유를 뒷받침할 영상이 담겼을 시간대를 알릴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런 시시껄렁한, 예를 들면 취객들을 내쫓는 일이 아니었다. 인터폰 너머로 비춰진 얼굴은 강남 제2지구를 관할하는 방위대원인 경수씨의 모습이었다. 내가 사는 집이 워낙 크다보니, 그가 새벽에 패트롤링을 할 때는 반드시 우리 집을 거쳐야했고 가끔 이곳저곳에 토악질을 해 놓은 취객들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얼굴을 트게 되었다. 그렇게 사유지라고 이곳저곳에 전광판 공지를 해 놓았는데도 그 모앙 그 꼴이었다.

 

경수씨는 공허한 표정으로 인터폰 너머에서 이렇게 지껄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짬뽕으로 할 걸 그랬어."

 

무심결에 나는 뭐라고요, 하고 반문했지만 사실 그런 질문을 할 필요는 없었다. 경수씨는 다시금,

 

"아무래도 짬뽕으로 할 걸 그랬어." 라고 중얼거렸다.

 

싸구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좀비 같은 행태를 벌이고 있는 방범대원의 모습에서 꽤나 공포를 느낄 법도 하지만 사실 나는 착잡한 기분일 뿐이다. 경수씨가 생애 마지막으로 한 말이나 생각이 바로 저런 거라니. 짬뽕이든 짜장이든 아무렴 어떠랴. 아마 마지막이 될 줄 몰랐던 근무를 서고 있던 와중에 봉변을 당한 것이리라. 불쌍한 사람.

 

남부럽지 않은 강남2지구에 자가를 가진 채 살고 있던 내 삶은 이제 모로봐도 망가졌다. 사랑하는 동거인이 떠나가면서부터였다. 매스컴은 사라진 내 동거인을 마치 영원히 추적하려는 듯 했고 나에게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가 끊이질 않았다. 매일 같이 집안 전경을 드론을 띄워 찍어대면서 '이곳이 강남 지구의 집값을 폭락하게 만든 범죄자가 살던 곳입니다.' 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들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대문 앞에서 인터폰을 박박 긁으며, 평생 일만 하다가 꼴사납게 죽어간 30대 방범대원의 마지막 말만 울려퍼지는 꼴이 혹처럼 붙었다. 신을 믿진 않지만 신 비스무리한 놈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다. 혹 신의 대리인이라도 있다면, '책임자 좀 불러줘요. 당신 윗사람 말이야.' 라고 말하면서.

 

 

02.

조라

내 애인의 이름이다. 멋진 예술가였고 동시에 신경공학자였다. 비록 경기 제3지구 출신에, 강북지구에 설립된 서울2대학을 나와, 그다지 수준 높은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는 재능이 있었다. 그를 만난 건 내가 친구들과 자주 스트레스를 풀곤 했던 곳인, 강남1지구에 있는 '랜딩문' 클럽이었다. 당시에 인기 있는 놀잇감이었던 약의 이름이 공교롭게도 '좀비'였는데, 나야 물론이고 내 친구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젊은 층이 애용하던 걸로 기억한다. 

이 약이 좋은 건, 먹고 나서 곧바로 자극이 온다는 것이었고 동시에 온갖 감각들이 복용자를 두드려 깨운다는 것이었다. 가장 처음으로 온 몸을 깨부술 것만 같은 통각들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어난다. 바늘부터 시작해서 망치로 두들겨 맞다가 빌딩 몇 채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만 같은 감각이라고 하면 가늠이 될까. 아니, 쉽게 말해서 내가 기억하는 모든 종류의 고통이 나에게 쏟아지는 것이다. 

그 경험은 정말이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참기 힘들지만, 놀랍게도 바로 약 1초 정도 뒤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황홀경이 찾아온다. 단지 0.89초 간의 지속시간을 지닌 통각의 지배가 마무리되면 그 공포와 고통을 모두 상쇄시킬 만큼의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다. 입맛을 다시면 내가 경험해본 가장 맛있는 단물이 배어나왔고 엉덩이에 집중을 하면, 직접 배설하지 않아도 배설의 가장 큰 쾌감만이 느껴지곤 했다. 그 약을 만든 이가 바로 조라였다.

 

'내가 만든 건 소뇌만을 집중적으로 자극해요. 물론 대뇌에서 축적된 기억들을 끌어오기도 하지만, 두정엽과 측두엽은 그저 그 사람의 기억 속 소스만을 끌어올 뿐이죠. 이 약이 쥐고 흔드는 가장 주된 부분은 뇌간의 연수 부분이고요. 실로시빈을 기반으로 해요. 어라, 내 말 듣고 있어요?'

 

조라는 조리있게 설명을 해주었지만 그때 나는 이미 끊임없는 절정과 동시에 무중력 상태를 느끼며 허공에서 유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약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다시 들어야만 했다. 조라는 지금은 사라진 미디어 아트를 전공했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예술, 특히 미디어를 이용한 그래픽 영상 예술 전반은 인간이 더 이상 직접적으로 작업을 주도하고 도안을 그리며 창의성을 발휘할 필요가 없어졌다. 컴퓨터가 기존의 창작물들을 끊임없이 변형하거나 조합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만든 작품들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시장을 잠식해버렸다. 또한 그 완성도에서도 인간의 작업과는 현격한 차이가 났다. 그러한 작업들을 설명하기 위한 학문의 발전이 같은 속도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소위 비평가들은 레퍼런스를 이해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절필을 선언하며, 기계가 몰살한 인간성을 피력하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반항적인 움직임도 경제활동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기에, 슬그머니 다시 펜을 드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조라는 시장을 잃은 작가 및 평론가들과 함께 자신들의 작업 과정과 인터뷰를 담은 영상을 배포하고, 직접 작업하는 모습을 퍼포먼스로 보여주는 활동을 하곤 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경제적인 이유로 체제에 영합하기 시작한 (조라에 의하면 그들은 '저열한 배신자'였다.) 사람들 때문에 운동은 중단되고 말았다. 조라는 이후 몰래 기계들을 파괴하고 다녔고, 때문에 얻게 된 전과 3범의 경력을 자랑했다. 조라는 나에게 자신을 혁명가라고 소개했고 동시에 무지하고 돈만 많은 인간을 증오한다고 했다. 나는 '그거 나 들으라고 하는 얘기야?' 라고 물었고 조라는 깔깔 웃었다. 사랑스러운 조라, 검고 긴 머리, 충혈된 눈, 화를 얼마나 냈는지 매일 하늘을 향해 있는 매서운 눈꼬리, 조금 뭉특한 콧잔등 아래 콧구멍에는 흉물스러운 피어싱이 있었지만 어쩐지 그게 더 매력적이었다.

 

 

03.

세상은 소위 좀비 아포칼립스가 되었다. 장난이 아니라 이 말 그대로 방송이 송출됐다. 그 시작은 이 나라 대통령의 마지막 말인 '내가 누군줄 알고서.'가 전 세계로 퍼진 이후의 일이었다. 나는 생방송으로 대통령이 구금복에 묶여 입에는 재갈이 물려진 채, 카메라에서 퇴장당하는 것을 지켜봤다. 아주 높은 하이톤의 목소리로 '내가 누군줄 알고서.', '내가 누군줄 알고서.' 라고 반복해서 외쳤다. 나는 뜻모를 공포를 느끼며 조라의 꺼끌한 팔뚝에 매달려 오들오들 떨었지만 조라는 이미 실신할 정도로 웃고 있었다. 

와하하- 와나- 와! 씨발! 존나 최고다! 

조라는 내가 자기 왼편에 매달린 것도 까먹고 발을 구르며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거 생각보다 효과가 있는데."

 

조라는 뜻모를 말을 했다. 지금은 내가 저주하고 있는 의미였다. 사실은 크게 저주하진 않는다. 아직 나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으니.

 

조라는 너무나도 선형적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를 바꾸고 싶어했다. 자신이 두각을 드러낸 신경공학으로 생계를 유지하려 시도하지 않았던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고작 삼성에 들어가서 뇌신경전단 스캐너나 만들고, 내 전공이 이제는 사양됐다는 것도 모르고 이력서에 '아트'라는 말만 읽고서 날 디자이너 부서에 배치하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

 

"그럼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나는 마치 어린 아이가 밝히는 미래에 대한 포부를 귀여워하며 듣는 말투로 물었다. 조라는 똑똑하니까 나의 그 무례한 태도까지 꿰뚫어 보았겠지. 그치만 동시에 내가 나쁜 의도로 한 말은 아니란 걸 알았을 거다. 나는 정말로 자기의 신념이나 꿈으로 인해서 변화할 인생이라는, 그런 개념 자체를 믿지 않으니까. 단 한 번도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자본 말고는 그런 변화를 이끌어낼 요소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지 않나. 허구에 가까운 신념으로 움직이는 삶, 누군가 그런 삶이나 태도가 존재한다고 외친다고 해서 믿어주어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고작 코모도 드래곤의 덩치를 보고서 정말 고질라가 있을 지도 모른다고 부르짖는 것만 같다고. 

조라는 말을 이었다.

 

"내가 뭔갈 짊어지겠단 건 아냐. 어떤 거창한 신념이라던가, 대의를 위해 살겠단 것도 아니고. 난 나를 위해 살아. 가장 나답게 살기 위해서 말야. 그냥 머리에 씌우는 뚜껑 덩어리나 디자인하면서 고상한 척 하고 싶지 않단 말이지."

 

"너를 위해 사는 일에 나도 포함돼 있어?"

 

나는 그저 웃으며 물어봤지만 약간 절박했던 것도 같다.

 

"물론이지, 당신은 졸라 귀여운 내 애인이잖아."

 

 

04.

어머니와 아버지가 흔히들 하듯 각자의 삶을 챙기며 사라진 뒤에 나만 혼자 남았다. 그들을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다. 제각기 행복이라 믿는 것들을 향해 나아갔겠지. 비단 벌레들만이 그런 게 아니라, 사람들도 불빛을 향해 나아가려는 욕구 뿐이다. 삶이 그렇다. 도처에 깔린 삶이 어둡다 느껴질수록 더욱.

 

어머니는 뇌의 구조를 분석하는 삼성의 선임 연구원이었고, 어머니가 디자인한 스캐너의 구조가 대박을 치면서 아무리 강남 지구의 재력가들이라도 평생을 걸쳐 벌기 힘든 돈을, 우리 가족은 얻게 되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는 뭘 하는지 모르는 작자였다. 어머니가 일을 하러 나가면,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며 작은 노트북으로 무언갈 타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보기에 둘 사이가 별로 나빠보였던 적은 없지만 사랑한 적도 없다고 믿는다. 키스나 포옹 따위의 횟수로 그걸 정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보면 그렇다. 둘은 이해할 수 없는 서로의 세계의 경계 근처에서 매일을 답보하는 시간을 가졌다. 언제나 함께 걷는다고 믿지만, 몇 보 뒤에는 기분 나쁜 겨울철 스웨터의 정전기 같은 전류가 느슨하게 쥔 손과 손 사이에서 흐를 위험을 안고 말이다. 어린 나이였음에도 난 그런 불쾌한 짜릿함을 느껴왔다.

 

아버지는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었고 영화 산업은 다른 영상 산업과 마찬가지로 기울고 있었다. 이런 좀비 사태가 나타나기 전에 영화는 이 나라에서만 연간 천 오백편 정도가 개봉하곤 했다. 놀라운 사실은 한 감독이 일 년에 250편 정도를 찍어내곤 했다는 것이다. 모두 뇌신경 전단 스캐너 덕분이었다. 그저 머리에 쓰기만 하면, 머리에 떠오른 그림들이 그래픽으로 구현됐다. 사실적인 느낌은 물론이고 질감마저 화면에 구현하기 쉬웠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종류의 렌더링을 입히거나 혹은 부러 화질을 저하시킬 수도 있었다. 그 기계를 만든 나의 어머니, 그의 이름은 천 편이 넘는 모든 영화 말미에 삽입되어 있었고, 그 기술의 이용권한은 지금도 여전히 회사와 어머니에게 있다. 아버지는 그로 인해 폭삭 망했다. 가족의 재정상황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지만, 그가 아무리 스캐너 기계를 뒤집어쓰고 창작활동을 하려 해봤자, 그가 구현해내는 그림은 너무 밋밋했다. 하다못해 햇빛 한 번 비추는 장면을 그려내더라도, 너무 지루했다. 과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한계일까. 고통은 아버지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친한 배우 후배들이나, 영화나 연극판에서 빌어먹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공장으로 떠났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동료들의 비난에 못이겨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려했지만, 그 대화는 단 한번의 시도만으로 끝이 났다. 이미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적이었고,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징징거리는 미숙한 바보였다. 

 

"돈을 벌어다 줘도 성질을 내고 있어, 왜. 내가 당신 영화 못 찍게 했어? 당신 상상력이 빈곤한 걸 왜 나한테 뭐라고 해?"

나는 이미 성인이 된 상태였고, 둘 중 아무도 나의 양육권을 짊어질 의무도 없더라. 피차 나도 둘과 함께 바득바득 참아가며 살고 싶진 않았다. 삶은 그렇게 우리를 분리해 놓았다.

 

날이 저물고 있다. 회상에 빠지면 오랜 시간이 졸졸 흐르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한번은 이 시간대 즈음에 경보가 울린 적이 있었다. 방범 지구대원 스무 명 정도가 뛰쳐들어왔는데, 동물보호 연구소에서 탈출한 맹수 카라칼이 어슬렁거리다 우리 집 정원에 들어오게 되었고 오밤중에 그걸 본 경수씨가 신고를 한 것이었다.

 

"이상한 남잔 줄 알았어요. 몰래 들어가는 것 같은 그림자가 보여서요."

 

카라칼의 피가 정원에 배어 들었다. 그 자리에서 즉시 사살된 카라칼의 눈이 나와 조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조라는 울었고 당신들 중 아무에게도 이렇게 누군가를 죽일 권리가 없다고 부르짖었다. 조라는 약을 하고 하이한 상태도 분명 아니었다. 그럼에도 감정의 너울이 나에게 느껴질 정도로 그는 동요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몸의 진동이 내 어깨에 닿은, 조라의 윤기 흐르는 몇 가닥의 머리칼을 타고 나에게 전해졌다. 경수 씨가 신고한 건 분명 시민을 위한 호의였고 카라칼은 맹수로 분류되는 동물이었다. 비록 멸종위기종이긴 했지만 사살은 불가피한 일이었을텐데. 조라는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쳤고 나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서 억지로 조라를 위로하려했다. 똑똑하고 눈치빠른 조라는 아마 그때 내 의도가 그리 순수하지는 않음을 알았을 거다. 며칠 뒤에 조라가 떠난 방에서 나는 홀로 앉아 울었다. 메신저나 메일은 물론 내 스캐너에도 아무런 메시지가 남겨져 있지 않았다. 조라가 절대 뇌전단스캐너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매일 어머니가 발명한 스캐너를 뒤집어 쓰고 미묘하게 다른 조라의 모습을 수백번은 만들다 지우곤 했다.

 

 

05.

나는 돈이 많았지만 결국은 다 어머니 돈이었다. 어머니가 스캐너의 소유권에 내 이름을 적어 놓은 덕분에 나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넉넉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기에 나는 취직도 잘 안 되는 정치인문학을 전공했다. 근 삼년 간 서울1대학에서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사람은 의도적으로 멍청해질 수 있단 거고 그게 길어지면 알아채지 못한 채 자신이 내리는 모든 선택들이 멍청해지고 만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들이 나에게, 내가 조라에게. 어쩔 수 없단 이유로 택했던 말과 행동들이 사실은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멍청해지고 있던 자신를 몰랐던 것이라면.

 

조라가 떠나고 나서 랜딩문에 다시 갔다. 조라가 유통하던 좀비가 여전히 활발히 팔리고 있었다. 그 약을 할까 생각했지만 이미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슬픔이 있었다. 좀비를 복용하면 약 1초간, 내가 경험한 모든 고통이 밀려올텐데, 그 때 내가 눈을 감으면 조라의 얼굴만이 떠오를 것 같았다. 혹은 그렇게라도 난 조라를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미치자 나는 좀비를 담당해서 팔던, 이른바 자신을 아그네스라고 부르던 아이를 찾았다.

 

"야, 아그네스 못 봤어?"

 

조라가 사라진 것처럼 그 아이도 없어진 건가. 이제 막 성인이 된 것 같았던, 약에 절은 그 아이. 짧은 금발머리가 매력적이지만 낮에는 엄격한 강령을 지키는 종교인이라고 한다. 스테이지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그를 본 것 같았다.

 

"아그네스, 여기 있었네.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까 지금 좀비 하나만 줘."

 

그러나 아그네스는 내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계속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갈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미 너무 가버린 상태인 것 같기도 했지만 어떤 절정에 오른 듯한 모습은 아니었다. 생기가 없는 모습, 아그네스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며 말했다. 

 

"하나님 좆같네.... 하나님 좆같네....."

 

생방송에서 끌려간 대통령의 모습과 똑같았다. 클럽 안을 뒤흔드는 베이스 진동을 넘어서 카랑카랑한 하이톤의 목소리가 내 귀를 뚫고 들어왔다. 아그네스는 조금씩 내게 다가왔다. 하나님이 좆같다고 외치면서. 그렇지만 표정은 없었다.

 

나는 바 자리와 화장실 근처를 돌면서 고래고래 소리쳤다. 조라의 웃음과 함께 떠오르는 슬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떠오른 공포 때문에 비명이 멈추질 않았다. 모두가 나를 반쯤 약에 절은 정크로 보겠지만, 그건 상관 없었다. 그 때 누군가 나의 손목을 잡고 화장실로 끌고 갔다. 남자 화장실이었다.

 

"뭐야, 씨발! 난 그런 거 안해, 미친놈아. 방범대 호출하기 전에 당장.."

 

그러자 그는 나의 입을 막고 말을 이었다.

 

"너, 나츠 맞지?"

 

그는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입이 막힌 채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그는 말을 이었다.

 

"조라가 안부 전해달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버둥거렸지만 그는 더 강한 힘으로 나를 누르며 말했다.

 

"일단 들어. 좀비를 찾는다고 했지. 혹시나해서 말해두는데 조라는 새로운 좀비를 만들었어. 예전보다 몇 배는 더 기분 좋지. 그래서 대뇌 측두엽을 다 태워버리고 피질 몇 조각만을 남겨놔. 그래, 그 정도 쾌락의 댓가는 죽음이다. 

인간은 나머지 생명활동을 서서히 소비만 하다 멈추게 돼. 자신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과 행동, 그 한조각 기억만 남겨둔, 그야말로 좀비를 만드는거야. 얼마 전에 영상 봤지. 조라가 너랑 같이 봤다고 하더라. 대통령이 중얼거리다가 실려나가는 그 영상. 그게 조라의 임상실험이었어. 모든 걸 자동화 일천한 세상으로 만든 수뇌부에 대한 일침이었지. 인간 중심의 편리함 말이야."

 

소름이 돋았다. 조라가 왜 그렇게 기쁨에 겨워 웃음 지었는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조라는 살인자였다.

 

"조라는 혁명가야. 아무리 뭔갈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일깨우려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이끌어내려해도 지금 인류는 안돼. 표면만 빨라지고 모든 건 정체화됐다. 한번쯤 물갈이를 깨끗이 할 필요가 있어. 그렇게 편리하고 단순한 생활을 해나가길 바라면서 결국 바라는 게 매일이 새로운 쾌락이라면, 그 잘난 효율성의 극단을 맛보게 해준다는 거지. 아무도 대통령이 좀비를 복용했단 사실은 몰라. 그래서 매일 몇 천개가 팔려나가지. 아주 싼값에, 그리고 한 방에 사람들을 보내. 너는 지금 그 약을 찾고 있는 거야."

 

조라는 내가 경멸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카라칼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조라에게 거짓으로 동조하던 내 모습이 미웠을 지도 모른다. 뒤에선 사람을 죽일 계획을 생각하면서. 나도 죽이려 했을까. 혹 오늘 내가 좀비를 복용해버렸다면, 내가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뭐였을까.

 

"네게 이걸 말해주는 건, 우리 모두에게 조라가 혹여 널 만나게 되면 반드시 이 사실에 대해 알리라고 해서였다. 그가 직접 당신 얼굴을 그려서 모든 동지들의 핸드폰에 전송했지. 

조라는 네가 좀비가 되길 원하지 않아. 대신에 조라는 네가 이 모든 걸 지켜보길 바란다. 이제 네 맘대로 해. 이 클럽은 물론이고 서울 전역 클럽에 우리 동지들이 좀비를 제조해서 팔고 있어. 클럽은 돈 많은 자제분들 아니면 들어오기 힘드니까 타겟으로도 안성맞춤이지. 구하려면 쉽게 구할거다."

 

조라, 이 인간은, 동지란 사람들에게 메세지나 지령을 보낼 때까지도, 정말 끝까지 내 어머니의 발명품을 쓰지 않았다. 나는 혼이 나간 채 남자 화장실을 나왔다.

 

 

06.

크고 텅 빈 집안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처음 조라와 함께 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조라는 큰 집에 대한 감탄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궁금증을 해소하려 하지는 않았다. 왜 혼자 사는지, 이 모든 게 나의 것이라면 돈은 어떻게 벌었는지, 왜 자신을 집에 데려왔는지. 그저 사소한 물음들 뿐. 청소는 힘들지 않은지, 평소에는 뭘 하면서 지내는지, 어떤 이슈에 관심이 있는지,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밥이야 시켜 먹고 청소는 가끔 날을 잡아서 내가 직접 한다, 관심있는 이슈? 지금은 너. 너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 괜찮다면 내일 아침을 같이 먹으면 좋겠다, 정도로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조라는 깔깔 웃었다. 아주 상스러운 웃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머리도 말리지 않은 채, 조라의 방 문 앞에서 서성거리다 굳이 드라이기를 가져와 조라의 방 안에서 머리를 말렸다. 스티커가 가득한 조라의 노트북이 없었고 피어싱한 자리가 가끔 덧이 나서 바르던 약도 없었고 그 약을 발라 상처 부위에 조심스레 톡톡 바르던 면봉통도 온데간데 없었다. 가득 채워진 조라의 드로잉도, 어지러이 선이 교차되던 노트북 화면 속 조라를 닮은 괴기한 얼굴의 소녀도 없었지. 

핸드폰을 열고 조라와의 대화창을 열어봤지만 그는 읽지도 않고 답장도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조라는 미숙했던 일처리 때문인지 꼬리가 잡혀 매스컴에 얼굴과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그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 바로 우리 집이라는 사실이 SNS를 통해 알려지고 있었다. 모두라고 해봤자 이제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온전히 두 문장 이상을 말하는 자가 별로 없긴 했지만 말이다. 이후 강남2지구의 집값이 끝없이 폭락하게 되었다. 익살스러운 좀비 그림이 삽입된 기사가 쏟아져나왔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마약, 그 악마의 제작자는 20대 여성. 우범지대에서 자란 유년시절이 문제. 환경이 만들어낸 괴물. 범인은 피어싱에 과격한 좌파 성향이 짙은 래디컬 진영의 기수. 이런 식이었다. 물론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별 지장은 없었다.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사람들이 뇌신경전단스캐너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조라가 만든 새로운 좀비는 이름대로 전염성을 갖고 있었다. 전염성이 그렇게 강하진 않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적인 성명이었지만, 이후 공기로도 감염된다는 사실이 발표되면서 국가위기상황을 선포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되었다. 

의문스러운 점은 대체로 50대 이후의 인간들 중의 감염자는 절대적으로 적었단 것이다. 또한 감염자들은 유아부터 30대까지가 대부분이었으며, 대부분이 강남지구에 거주하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약을 복용한 경우도 있었지만 분명히 감염자들과 한 공간에 있던 사람들도 좀비를 복용한 것과 같은 증상을 2~3일 내에 보이기 시작했다. 역학조사나 전수조사가 불가능한 수준의 속도였다. 마치 버섯이 포자를 뿜은 것처럼.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혼돈으로 빠져들었고 나는 집에 틀어박혀 꾸준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그 어떤 시간에 스캐너를 뒤집어 쓰더라도 언제나 가장 먼저 이슈란에 모습을 보이는 것이 조라의 과거 머그샷이었다. 생생한 질감과 더불어 만질 수도 있던 머그샷 속의 조라를 보는 것. 그건 나에게 일종의 지옥이었다. 조라와 딱 한 번만이라도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바다가 있는 곳으로. 아마 지옥은 그런 것 같다. 닿지 못할 천국만을 바라는 것 말이다.

 

 

07.

"네가 생각하고 있는 걸 훨씬 쉽게 구현해준다니까?"

나는 조라의 머리에 몰래 스캐너를 씌우려다, 근 일주일을 넘게 냉전을 했다. 굳이 편리함을 거부하려는 조라를 골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넌 배알도 없냐?"

조라의 화난 표정은 자주 봐 왔지만, 살기가 느껴진다싶은 건 처음이었다.

"뭐가?

내가 모르는 척 묻자,

"나 그런거 안한다고 했잖아. 넌 지금 내 삶을 부정하고 있어. 이해가 안될 정도로 멍청한거야? 아니면 내가 우스워?"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마음 한복판에서 어딘가 부끄러운 감정이 솟기는 했다.

"우습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난 네가 네 방에서 별로 좋지도 않은 노트북으로 낑낑대는 모습이..."

조라는 말을 잘라버렸다. 아주 무례했다.

"우스웠겠지. 의미도 없어 보이고. 등신 같겠지. 일부러 삽질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이런 애야. 내가 직접 만들고 직접 봐야만 한다고."

"그럴거면."

나는 숨을 고르고 단어를 골랐다.

"그럴거면 노트북은 왜 쓰는데? 아예 농사를 짓지 그래. 너 혼자서 모든 걸 다 직접 해 가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해? 너만 잘났고 네 말만 다 맞지. 잘난 네 현실은 사람들한테 마약이나 파는 약쟁이잖아."

그러자 조라는 말했다.

"넌 존나 비겁해. 그럼 닥치고 모든 걸 사람들이 설계한대로 살아야 한단거야? 그 고철덩이가 네 뇌에 뭔짓거리를 하는 줄은 알고 매일 그걸 뒤집어쓰는 거야? 

너, 그거 없인 아무것도 못하지? 너도 저딴 기계 없이는 혼자서 생각도 상상도 못하잖아. 매일 같이 이걸 뒤집어쓰고 헤벌레하는 놈들이랑 네가 다를 게 뭐야? 

아아, 있구나. 넌 돈이 썩을만큼 넘쳐나니까 말야."

나는 조라를 때리고 싶었다. 따귀를 치고 적당히 모른척 하고 싶었다. 전까진 한 번도 이런 생각이 든 적 없었는데.

"이 집에서 살면서 그 기계 욕하지 마. 그 기계는.."

조라는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왜? 잘난 네 엄마가 만든거라서?"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조라가 그것을 아는 지는 몰랐다. 꽁꽁 숨긴 비밀도 아니었지만, 내가 극적으로 흘릴 수도 있었던 사실을 그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에 애매모호한 증오 혹은 분노가 흘렀다.

그건 또 언제부터 알았냐고 따지듯 묻자, 조라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다. 랜딩문에서 만났을 때부터, 처음 내게 좀비를 팔 때부터, 처음 말을 걸고 농담을 했을 때부터.

"그럼 나한테 일부러 접근한거야?"

조라는 잠시 대답을 않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말했다.

"난 네가 뭐라도 알고 있는 줄 알았지. 근데 넌 정말 뭐 하나 아는 게 없더라고. 천재 뇌신경공학자의 딸이니까 그 정도 가까운 수준의 두뇌회전은 되는 줄 알았는데."

이 때, 생각보다 별로 화는 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들 때문이다. 똑똑하고 유망한 엄마에게 쏟아지던 비난들, 드세고 나대는 여자라서 인기가 없을 거란 말들, 어차피 남편이 못나서 밸런스는 맞을 거란 조롱, 그리고 딸인 나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엄마를 가리키며 했던 말. 네 엄마 같이 주제도 모르고 큰 소리를 내면, 결국 너도 네 아빠 같이 남의 비위나 맞추는 놈팽일 만나게 될 거라고.

뭐, 결과적으로 나는 남자에게 관심이 없는 인간이 되었지만 말이다. 조라의 말이 딱히 큰 상처가 되지는 않았다만 실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엄마에 대한 긍정적인 수식어에 약간 당황했을 뿐이다. 돈에 미친 독사년, 남편 잡아먹는 드센년, 결국 이혼하고 가족을 버린 매정한 년이 엄마였는데.

조라는 아무 말 없는 내게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이후로 조라는 잠시 작업을 핑계대며 일주일 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조라와 나는 끝장난 관계인 줄만 알았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던 시간에 조라는 문을 두드렸다. 나의 얼굴을 구현한 3D 일러스트레이션을 보여주면서. 

 

 

08.

조라는 스캐너를 여러 번 분해했다 조립하곤 했다. 조라가 열망하던 운동이라는 게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은 몰랐지만, 어쩐지 조라답게 느껴지더라. 불같은 성격, 타협할 줄 모르던 삶, 조라의 과거를 물은 적은 없었지만 그가 겪어온 길을 내가 상상할 순 없었다. 조라의 약은 뇌신경전단스캐너를 이용하던 사람들에게만 듣고 전염성 또한 스캐너의 이용자들에게만 작용했다. 전단 스캐너를 통해 발휘되는 이미지의 시각화 기능을 이용하여, 뇌가 짧은 순간 안에 소화하고 견디기 힘든 모든 쾌락의 기억을 집중시킨 것이다. 스캐너에 대한 접근성이 보다 낮은 50대 이상의 연령대의 대부분이 멀쩡한 이유였다. 기성세대가 말하길, 조라는 인류의 미래를 없애버린 끔찍한 살인자였다. 내 동거인이었던 사람은 그렇게 살인자가 되었다.

 

나는 조금씩 말라가긴 했지만 죽을만큼 힘들다고 생각했던 시기도 무사히 지나갔다. 누가 들으면 몇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고 여길 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몇 달 만에 나는 조라를 서서히 잊게 되었다. 동시에 스캐너는 점점 멀리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좀비가 될 것이 무서웠지만 떠난 조라가 평생을 다해 싫어하던 것을 무시하며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가끔씩, 조라가 너무 보고싶을 때, 잊고 싶지 않은 그의 얼굴을 그려보기 위해서 한 번쯤은 몰래 스캐너를 뒤집어 써본다.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는데도. 

이제는 대문 앞에서 짬뽕을 찾는 경수씨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끝맺는다. 성대 근육이 조금씩 썩어들어간건지, 하루가 다르게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다. 이미 경수씬 죽었지만, 신체의 활동이 모두 정지된다면, 그때 나는 그의 시체를 어떻게 해야할까. 카라칼의 눈이 떠오른다. 우리에게 그럴 권한이 있을까. 조라, 너에게 그럴 권한은 있었을까. 조라, 너를 그리다 잠에 든다.

얕은 꿈을 꾼다. 아무도 없는 어둔 바닷가에 나 홀로 있다. 파도치는 소리가 조금씩 늦게 들려온다. 스캐너로 인해 뇌기능이 조금씩 이상해진 걸까, 미묘하게 싱크가 맞지 않는 자연의 소리들. 모래사장을 저벅저벅 밟는 소리가 들린다. 어정거리는 걸음걸이가 상상된다. 가슴께까지 내려온 머리칼이 레자로 만든 재킷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쓸어내리는 소리도. 나를 삼킬 것만 같은 바다가 내뿜는 소리는 이토록 불명확한데, 너의 머리칼이 바람에 제멋대로 춤추는 소리는 답답할만큼 귓구멍을 메운다.

 

조라!

 

고개를 돌리고 꿈에서 깬다. 눈 앞에는 조라가 있었다.

 

 

09.

조라가 눈 앞에 있다. 몇 달 전, 소리소문 없이 내 곁을 떠나고서 아무런 말 없이 웃음 지으며, 소파에서 잠든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앉아서. 멋진 가죽재킷을 입었다. 물론 레자였다. 밤바다를 담은 눈, 분명 조라다. 작고 앙증맞은 피어싱이 콧잔등 아래에 빼꼼 나와 있었다. 입이 큰 조라가 희미한 웃음을 짓는다. 나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도 모른 채, 나는 조라의 바다에 빠져 있는다. 조라는 말한다.

 

"어때?"

 

조라가 묻는다. 어떠냐고. 나는 대답한다. 네가 너무 그리워. 그리고 너무 끔찍해. 너는 그래선 안됐어. 우린 끝없이 대화를 나눴어야 했어. 내가 멍청했어. 그치만 너도 멍청했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누군가를 죽일 권한은 설령 너라도 가질 수 없는거야. 그게 정말 옳은 일일지라도, 아무리 찾아도 그 길 밖에는 없다고 생각될 때라도. 아무리 너처럼 사랑스럽고 멋진 애라도. 

 

"그래, 카라칼처럼."

 

그래, 카라칼처럼. 카라칼은 죽어서는 안 됐다. 그치만 그렇다고 경수씨도 죽어선 안 됐다. 

 

"사랑만으로."

조라는 내 얼굴에 손을 올리며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사랑만으로 안 될 때는,"

조라가 다른 한 손으로 쥐었던 주먹을 펴며 말한다

 

"내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음에도 눈을 가리게 해. 설마 내가 그럴 줄은 몰랐네."

조라의 손 안에는 손가락 한 마디만한 알약이 있다. 그건 분명 좀비다. 나는 직관적으로 깨닫는다. 조라는 죽는다. 조라는 나를 바라보며 입에 알악을 털어놓는다. 그리곤 눈을 질끈 감고 삼킨다. 꿀꺽-하는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조라는 눈을 뜨고 말한다.

 

"날 사랑만으로 기억해줘."

 

 

10.

조라의 일당이 검거됐다. 경상지구의 특별지역인 경주에서였다. 나를 우악스레 남자 화장실로 잡아 끌었던 놈도 있었다. 고작 열대여섯명 남짓한 이십대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조라는 구속복에 갇히고 재갈에 물린 채로 실려갔다. 웅얼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밤바다같이 까만 눈에서 쉴새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조라는 좀비가 되었다. 죽은 것이다.

언론에서는 끊임없이 기사를 냈고 조라가 울고 있는 사진에는 '참회의 눈물'이라는 헤드라인이 붙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뇌신경전단스캐너의 도움을 받아서 조라의 모습을 보려하지는 않았다. 조라의 행적은 1급 사이버테러의 하나로 분류되었고 인류의 삶을 바꾸어놓았던 뇌신경전단스캐너는 이러한 위험을 우려해 전량 폐기되었다. 때문에 나는 가만히 앉아서 입금되는 돈을 더이상 받을 수 없었다.

조라가 제조한 약인 좀비의 재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조라의 일당이 거점으로 삼았다 여겼던 모든 장소에서도. 대신의 조라의 마지막 모습은 다양한 예술 작업의 레퍼런스가 되었고, 아주 잠깐 동안이었지만 사람들은 아날로그로의 회귀를 꿈꾸었다. 과정을 기억하는 운동을 벌인다거나, 완성된 기성품을 절반만 분해하여 사용하곤 했다. 부러 불편함을 만들고 그러한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 직접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성품을 보완하는 일을 했다. 물론 이내 그런 과정들마저 유명인들이 하는 방식이 유행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따라가는 양상으로 변모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삶을 분해하고 다시 완성하는 과정을 밟는 일을 조금씩 확장해나갔고 그것을 '조라'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조라를 하고 있다

그것이 조라의 마지막 퍼포먼스였다. 

나는 조라가 태어난 경기3지구의 어느 도시에서 살게 됐다. 조라가 죽고 나서 강남2지구의 집값은 다시 천정부지로 치솟게 되었고 나는 그걸 되팔기만 했는데도 많은 돈을 얻을 수 있었다. 조라가 이 광경을 봤다면 질린다, 부자들, 했겠다. 

나도 내가 질리지만 어쩔 수 없는 걸. 나는 그런 삶밖에 살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삶이 존재하는 걸 믿을 수 없다고 말하진 않으련다.

어머니에 대한 야트막한 애정으로 뇌신경전단스캐너를 버리진 않았다. 먼지 쌓인 그 헬멧을 보다 문득 떠올린다. 

조라, 조라는 죽어도 스캐너를 제 머리에 쓰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약을 먹고 좀비가 되어 죽었다. 나와 헤어지고 나서 조라가 단 한 번이라도 스캐너를 사용했던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나는 홀린듯이 스캐너의 먼지를 털고 머리에 뒤집어 쓴 채, 전원을 켰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밤바다에 있었다. 

 

파도 소리가 조금씩 뭉개지며 밀려난 세계. 

 

끝도 없는 어둠을 응시하다보면 어느새, 들려온다.

 

꺼끌한 살갗에 닿는 새까만 머리카락이 춤을 추는 소리.

 

고개를 돌려보면 있다.

 

 

어때?

댓글 0
분류 제목 날짜
후보작 미음 — 피는 물보다 진하다 2020.11.15
후보작 히로 — 복잡한 열의 2020.11.15
선정작 안내 10월 심사평 2020.11.15
우수작 샌드위치 맨 — 아메리카흰꼬리사슴 2020.10.15
선정작 안내 9월 심사평 2020.10.15
후보작 디어 브리타 — kangbomb 2020.09.15
선정작 안내 8월 심사평 2020.09.15
후보작 조라는 밤바다에 있지 — 히로 2020.08.15
선정작 안내 7월 심사평1 2020.08.15
후보작 이너프 — kangbomb 2020.07.15
선정작 안내 6월 심사평 및 2분기 우수작 안내2 2020.07.15
선정작 안내 5월 심사평 2020.06.15
우수작 아웃백 — 아메리카흰꼬리사슴 2020.05.15
선정작 안내 4월 심사평1 2020.05.15
후보작 별의 기억 — 강엄고아 2020.04.15
선정작 안내 3월 심사평 및 1분기 우수작 안내2 2020.04.15
우수작 임여사의 수명 연장기 — 강엄고아 (본문 삭제) 2020.03.15
선정작 안내 2월 심사평1 2020.03.15
후보작 경계선, 인격, 장애 — 최의택 2020.02.15
선정작 안내 1월 심사평3 2020.02.15
Prev 1 2 3 4 5 6 7 8 9 10 ... 22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