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

까막이

“그럼 마지막으로, 오늘 새로 온 분의 자기소개로 마무리할까요?”

좀비를 가족으로 둔 비(非)좀비 모임 회장이 내 쪽을 가리키자 원형으로 둘러앉은 회원들의 시선이 즉각 내게 향한다. 그들은 나이나 성별은 제각각이지만 눈빛만큼은 하나같다. 신입에 대한 호기심. 그러니까, 저 사람은 어쩌다 좀비가 된 가족과 함께 살게 되었는지 궁금한 것이다.

나는 접이식 철제 의자에서 일어난다. “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됐는지 목소리가 잠겨 있다.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헛기침을 한다. 그러고는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물을 좀 마셔도 되는지 눈으로 묻는다. 다들 흔쾌히 그러라는 제스처를 하고, 일부는 웃는다. 오른쪽 방향으로 한 자리 건너에 앉은 여자가 자기 생수병을 건네준다. 나는 “감사합니다” 하고 생수를 한 모금 마신다. 넥타이를 고쳐 메며 작게 목을 가다듬고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음, 안녕하세요. 저는 최도원이라고 합니다. 며칠 전에 저기 회장님 추천으로 이곳에 이사를 왔고, 어느 정도 정리가 돼서 오늘 이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음, 저의 아내는 좀비입니다.” 나는 좌우로 사람들을 한 바퀴 둘러본다. “물론 아시겠지만요.”

내 말이 농담으로 들렸는지 몇몇은 웃고 일부는 연민과 공감이 섞인 쌉싸름한 미소를 보인다. 그리고 나한테 생수병을 건넸던 여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날 보고 있다. 물론 아내가 좀비니까 안돼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저 여자는 남편이 좀비다. 공감대로 인한 표정이라기엔 뭔가 극적인 듯보인다.

“아내분이 어쩌다 그렇게 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내 정반대편에 앉은 회장이 대표로 묻는다.

“수지는… 아, 그러니까 저의 아내는, 동물을 사랑했어요.”

“저런, 좀비견한테 물렸군요!” 생수병을 건넸던 여자가 말한다.

“아니요. 길고양이한테요.”

고양이한테 물려 좀비가 됐다는 말에 소란스러워진다. 고양이로 인한 좀비 바이러스의 전염 자체에 대한 놀라움이라기보다는 고양이라는 동물 특유의 신화적 권위 때문인 듯하다. 수지도 그랬다. 병원에서 좀비 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자 곧바로 질병관리본부에서 투입된 특수차량을 타고 지정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수지는 보호복을 입고 있어 우주인처럼 보일 내게 끊임없이 말했다. 뭔가가 잘못됐다고. 고양이가 그럴 리 없다고. 개는 되고 고양이는 안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었지만, 나는 일단 수지의 손 위에 보호 장갑을 낀 내 손을 얹다시피 한 채로, 그래, 그럴 거야, 고양이가 그럴 리 없어, 하고 말했다. 하지만 고양이가 그런 게 맞았다.

수지의 동물 사랑, 특히나 길고양이에 대한 사랑은 간혹 유별나 보일 정도여서 나로서는 내심 서운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감히 질투 따위는 할 수 없을 만큼 수지의 사랑은 헌신적이었고 절대적이었다. 수지는 나와 결혼한 것도 그것의 연장선상이라고 했는데, 무릎 위에서 잠이 든 길고양이의 목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하는 수지는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날 밤, 나는 실제로 수지의 길고양이가 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운 밤을 보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생수병을 건넸던 여자의 질문에 나는 나도 모르게 짓고 있던 미소를 지우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다들 아시겠지만 한동안은 아내와 격리된 채로 살았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혼자가 되어버린 거죠(“저런!” 생수병을 건넸던 여자가 탄식한다.). 그제야 제가 수지를,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다행히 때마침 세계 곳곳에서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여러가지의 변화가 생겨났고, 우리나라도 조금 늦긴 했지만 그 흐름을 뒤쫓았죠. 결국, 다시 수지와 함께 살 수 있게 됐어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장내를 가득 메운다. 당황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이곳에 이사 오기 직전까지도 겪어야 했던 사회적 소외가 보상 받는 것 같아 감사하다. 나는 모두에게 고개 숙인다.

“감사합니다. 비록 쫓겨나듯 이곳으로 이사 온 감도 없잖아 있지만, 여러분의 환대를 받으니 정말 위로가 되네요.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또다시 박수갈채가 터져 나온다. 이제는 사족이 아닐까 싶지만, 생수병을 건넸던 여자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는 바람에 모임은 그렇게 흐지부지 마무리된다.


막 차에 오르려는데 누군가 “저기요!” 하고 부른다. 나한테 생수병을 건넸고 마지막에 대성통곡을 한 여자다. 여자의 눈 주변이 흐릿하게 보여서 나는 눈을 문질러본다. 여전히 여자의 눈이 뿌옇게 보인다. 내 차까지 가볍게 뛰어온 여자가 말한다.

“집에 가요?”

“네.”

“같이 가요.”

여자는 내가 “예?” 하고 말하는 걸 듣지도 못할 정도로 재빠르게 내 차에 타버린다. 졸지에 나는 내 차 창문을 통해 안에다 대고 말을 하는 모양새가 된다.

“저희 집엘요?”

여자는 꽤나 당황한 눈치로 얼굴까지 붉히며 창문 너머로 날 쳐다본다. 나는 얼른 “아, 미안합니다” 사과부터 하는데, 이런 경우가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수지는 나더러 신이 버린 사회관계망에 사로잡힌 아기새라며 놀리고는 했다. 그날 밤 또한 만족스러웠다.

“왜… 웃어요?”

나는 못 들은 척하고 차에 오른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댁이 어디시죠?”

아무리 이 동네가 좀비를 가족으로 둔 비좀비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지만(이런 마을을 인터넷에선 ‘좀비좀비’라고 하던데 정확한 뜻은 알 수가 없다.), 일반적인 주택 단지보다 밀도가 낮아 아무하고 카풀을 할 정도로 규모가 작지는 않다. 수지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그 부분을 설명했겠지만, 지금은 차 시동을 켜고 주소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바디 시그널을 취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여자는 아까부터 머리를 둔기로 맞기라도 한 듯한 얼굴로 날 쳐다볼 뿐이다. 그러는 동안 좀비를 가족으로 둔 비좀비 모임 회원들이 하나둘 차 앞과 뒤를 지나쳐 간다. 마지막으로 회장인 성전철 씨가 지나가다가 날 발견하고 손을 흔든다. 나도 손을 흔들어 대응한다. 성전철 씨가 내 옆에 있는 여자를 보더니 이쪽으로 다가온다.

“아, 같은 방향이지?” 성전철 씨가 내 표정을 보더니 어색하게 웃어 보인다. “몰랐구나. 그럴 수 있지. 이사 온 지 며칠 안 돼서 정신도 없을 거고.”

나도 따라 웃으려는데 옆에서 여자가 버럭 말한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인사했어요.”

성전철 씨는 허허허, 웃으며 그냥 가버린다. 나는 차를 출발시킨다.


차 안은 여자가 화장을 하느라 솜을 얼굴에 툭툭툭 때리는 소리만 들린다. 나는 수지한테 전수받은 기술을 사용할 때임을 깨닫고 미소 짓는다.

“감쪽 같아요. 운 티 하나도 안 나요.”

여자는 또 얼굴을 붉힌다. 나는 그냥 앞을 본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어떻게 매일 밤낮으로 얼굴 보고 인사하는 사람을 기억을 못 해요?”

“미안합니다.”

“설마… 모임에서 낯설게 군 것도?”

“미안합니다.”

“말도 안 돼! 잠깐만, 그럼 내 이름은……. 됐다.”

“미안합니다.”

“한 번만 더 미안하다고 하기만 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드디어 내가 사는… 옆에 있는 여자도 같이 사는 나구역 입구가 보인다.

“앞에 내려드릴게요. 정확한 위치가…….”

여자가 히스테릭한 웃음을 터뜨린다.

“정확한, 위치는요, 최도원 씨, 집, 바로, 옆이거든요.”

“아… 잘됐네요.”

입구를 지나자 길게 뻗은 포장도로와 그 양옆으로 드문드문 자리잡은 단독주택들이 보인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외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고 마음을 굳혔었다. 수지도 틀림없이 좋아할 것 같았다. 수도권에도 이러한 마을이 있지만, 일반적인 아파트 단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집같이 비쌌다. 각 세대에 설치된 특수 제작 챔버 때문이었다. 그 챔버 하나 값이 이곳 주택 두세 채 값이다.

나는 조금이라도 여자의 집에 가깝게 차를 대고 싶지만, 그러려면 여자의 집이 정확히 내 집의 오른쪽인지 왼쪽인지를 또다시 묻지 않을 수 없기에 그냥 내 집 정 가운데에 차를 주차한다. 여자는 팔짱을 낀 채 앞만 노려보고 있다.

“다 왔어요.”

돌여 여자가 웃는다. 수지도 저렇게 웃을 때가 있었는데, 대개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황당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일단 악수를 청한다.

“최도원입니다. 고미호 씨?”

여자는 마지못해 내 손을 잡는다.

“이름은 어떻게 기억하네요?”

“아까 모임에서 자기소개 했잖아요. 그런데 거긴 매주 자기소개를 하나요?”

“새로 회원이 들어오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 시간을 확인한다. 곧 수지한테 안정제를 투여할 시간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여자와 손을 잡고 있다. 여자가 말한다.

“처음 만난 걸로 치고 차나 한잔 할래요? 도원 씨 집, 바로 옆에 있는, 제 집에서.”

“곧 약 시간이에요.”

“지병 있어요?”

“아니요. 수지, 아내 안정제요.”

여자는 아 그거, 하듯 반응한다.

“그거 뭐 조금 늦는다고 어떻게 안 되던데.”

“그럴지도요. 그래도 용법이 있으니까 지켜야죠. 그러라고 써놓은 건데.”

“그래요, 그럼. 고마웠어요.”

여자는 내 손을 놓고 차에서 내려 뒤도 안 돌아보고 왼쪽 집으로 간다.

정말 어려운 사람이다.


“나 왔어.”

나는 우선 부엌으로 가서 싱크대 서랍 안에 있는 안정제 키트를 가지고 방으로 간다. 수지는 언제나 그렇듯 침대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다. 사실 저 모습만 보면 이런 안정제 같은 거 쓰고 싶지 않지만, 엄연히 좀비 판정(암으로 치면 초기에 해당하는 B등급이다)을 받고 안정제가 지급되기에 도리가 없다. 이런 보장조차 받을 여력이 안 되는 나라에서 좀비가 된 가족에 의해 일가족은 물론 마을 전체가 좀비가 되어버렸다는 소식이 비극을 넘어 희극처럼 소모되곤 하는 걸 보면 이것도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생각보다 괜찮더라. 그 모임이라는 데 말이야.”

나는 안정제 키트를 열고 일회용 주사기와 앰풀을 꺼내며 수지를 힐끔 본다. 보통은 내 목소리나 움직임에 반응하는데 오늘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눈을 뜨고 자나 하고 수지 눈앞에 고개를 내밀어보지만, 오히려 내 얼굴을 피해 밖을 볼 뿐이다. 나도 밖을 확인하는데 미소부터 번진다.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 마당을 거닐고 있다. 내가 수지한테 여전히 의식이 남아 있음을 확신하는 이유다.

“고양이네.”

수지가 고양이한테 한눈이 팔린 틈에 수지의 팔에 연결된 튜브를 찾아 주사기 바늘을 꽂고 피스톤을 부드럽게 누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지는 고양이만 응시한다. 고양이도 시선을 의식했는지 멈춰 서서 우리 쪽을 바라본다. 그때, 수지의 몸이 살짝 움직인다. 평소였다면 벌떡 일어나 고양이한테 줄 음식부터 찾았을 수지가 떠오른다.

‘나 없을 때 얘네 찾아오면 꼭 밥 줘.’

나는 말한다.

“고양이한테 밥 줄까?”

수지의 몸이 또 들썩이는 게 느껴진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냥 수지가 내 말에, 고양이한테 반응하는 거라고 생각해버린다.

“잠깐만. 냉장고에 뭐 있나 볼게.”

나는 주사기와 앰풀을 챙겨 부엌으로 간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인스턴트 음식이 전부다. 전에는 늘 집에 고양이용 사료 포대가 있었지만, 벌써 수년도 더 지난 일이다.

‘알았어. 근데 사료 없으면 어떡해?’

‘그럼 물이라도 줘. 사료 떨어졌다고 나한테 문자 하고.’

나는 그릇을 꺼내 물을 받는다. 물이 차오르는 걸 지켜보다가 충동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수지 번호로 문자를 보낸다. ‘사료 떨어졌어.’

물을 받은 그릇을 들고 방으로 돌아가 수지가 볼 수 있게끔 옆에 서서 창문을 열고 그릇을 마당에 내려놓는다. 창문을 열어놓고 싶지만 저 고양이가 멀쩡한 고양이인지 겉으로 봐서는 알 수가 없어 다시 창문을 닫는다. 한 발 물러서서 고양이가 다가오는 것을 지켜본다. 왠지 긴장이 돼 수지의 약간 빳빳한 어깨를 잡아본다.

일단 물에 반응하는 걸 보면 좀비묘는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창문은 열지 않는다. 닫힌 창문 너머를 경계하는 고양이의 눈에서 나 못지않은 긴장이 엿보이는 듯해서다. 하긴, 고양이 입장에서도 세상은 언제 좀비가 된 짐승이 튀어나와 이빨을 들이밀지 모를 밀림이나 다름없을 거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사냥감이 온전한지조차 의심해야 할 테니, 굳이 나까지 그 경계심에 무게를 더할 필요는 없다.

나는 모른 척 침대 끝에 걸터앉아 수지를 바라본다. 여전히 고양이만 바라보는 수지한테 말한다.

“나 오늘 사람들한테 박수 받았어. 귀가 막 울릴 정도로 격렬하게. 네 덕분이야.”

수지가 드디어 내 쪽을 돌아본다. 식욕이 없는데 음식을 볼 때 지을 법한 표정에 나는 그만 실없이 웃어버린다. 그래도 날 봐준 게 어디야.

그나저나 나야말로 허기가 진다. 나는 다시 부엌으로 가서 인스턴트 음식을 조리해 플라스틱 용기째 들고 수지 옆에 앉아 허겁지겁 먹는다. 수지가 또다시 문자 그대로 ‘밥맛 없는’ 표정을 하고 날 쳐다보는 게 은근히 재밌다. 어쩐지 기시감이 들어 생각해보니 수지와의 연애 초기의 식사 시간이 떠오른다. 수지는 (애석하게도) 채식주의자였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수지한테 고기를 권하자 수지가 딱 지금 같은 표정으로 거절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여자도 이런 표정으로 돌아섰지.

“아까 모임에서 어려운 일이 있었어. 고미호라는 여자가 있는데, 우리 옆집 사는, 남편이 좀비고, 근데 내가 못 알아본 거야. 수지 네 식대로 말하면 기억을 안 한 거겠지만. 어쨌든, 그래선지 그 사람, 나 때문에 기분이 좀 상한 거 같아. 차 한잔 하자고도 했는데 약 시간이라고 했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더라고. 지금 네 표정으로.”

수지는 다시 고양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인생은 너무 어려워. 나랑 안 맞아. 네 말대로 차라리 고양이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수지가 몸을 들썩인다. 긍정의 의미로 해석해버린다.

그러고 보니 이사 오고 나서 인사를 한 적이 없다. 수지라면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거실로 가서 아직 정리가 덜 된 집 안을 둘러보며 필요없지만 쓸 만한 물건을 찾아본다. 한참을 뒤져 발견한 것은 다용도 주머니칼이다. 이것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을 줄로만 알던 시기가 있었다. 수지 몰래 거금을 들여 사고는 들키지 않으려 숨겼다가 아예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 비운의 물건. 지금이야 필요는 없지만 고미호 씨한텐 필요할 수도 있겠지.

나는 다시 한 번 수지의 상태를 확인하고 현관으로 간다. 신발장 안에서 국가에서 안정제와 함께 지급하는 탈취제를 꺼내 몸에 뿌린다. 집을 나서려다 주머니칼을 꺼내 펴보고 냄새를 맡아본다. 주머니칼에도 탈취제를 살짝 뿌린다.


옆집 초인종을 누른 지 꽤 지나자 문이 벌컥 열린다. 고미호 씨가 놀라움 반 경계심 반인 얼굴로 마치 해명을 요구하듯 날 본다. 나는 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꺼내 고미호 씨한테 건넨다.

“뭐예요, 이게?”

“주머니칼이요.”

고미호 씨가 인상을 쓰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그냥 오기 뭐해서요. 당장 가져올 만한 게 이거밖에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뭐 방문 선물이라고요? 이 칼이?”

“네.”

고미호 씨는 크게 하, 하고 웃고는 내 손에서 주머니칼을 낚아채 가져간다. 그러고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듯 주머니칼을 쳐다보다 신발장 선반에 툭 내려놓는다.

“어쨌거나 고맙네요. 쓸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있을 거예요. 비싼 거거든요.”

고미호 씨가 안으로 들어가며 말한다.

“어디에 썼는데요?”

“못 썼어요.”

고미호 씨가 걸음을 멈추고 날 돌아본다.

“수지 몰래 산 거라. 사자마자 어디 숨겨놓고는 까맣게 잊어버렸거든요.”

고미호 씨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웃음을 터트린다. 그러다가 정색하고 말한다.

“뭐 해요, 들어와요.”

당연한 얘기지만 집 구조는 우리 집과 같다. 나는 자연스럽게 안방이 있는 거실 너머를 보지만 문이 닫혀 있다.

“남편분은 어디 계시죠?”

고미호 씨가 팔로 어딘가를 가리키고는 그대로 부엌으로 가버린다. 워낙 순간인데다 동작이 불분명해서 어디를 가리킨 건지 애매하다. 분명한 건 이 집 안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수지 이외의 좀비와 이렇게 가까이 있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왜요, 겁이라도 나요?”

고미호 씨가 커피포트에 물을 받으며 도발적으로 묻는다.

“그런지도요. 수지 외에는 처음이라.”

고미호 씨가 웃는다.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세련되고 매력적인 웃음이다. 나는 아일랜드 식탁 앞에 앉는다. 고미호 씨가 커피포트의 전원을 켜고 찬장 문을 열고 컵과 컵받침을 꺼내고 함께 곁들일 비스킷과 치즈를 진열하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다 고미호 씨와 눈이 마주쳐 살짝 웃는다.

“어색하네요.”

고미호 씨가 커피를 따르며 묻는다.

“뭐가요?”

“그냥… 이런 거요. 누군가와 부엌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다니.”

“그거 꽤 위험한 말인 거 알아요?”

“예?”

고미호 씨가 김이 피어오르는 컵을 내 앞에 놓아준다. 나는 잘 마시겠다고 하고 커피를 맛보며 내가 한 말 어디가 위험한 건지 생각해본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어 컵을 내려놓고 설명한다.

“여유롭다고 한 말은… 그러니까, 좀비에 대한 경계를 늦추고, 비좀비끼리 편안하게…….” 나는 두 손을 들어 보인다. “그만 해야겠어요. 말을 하면 할수록 이상해져요. 마치 좀비를, 내 가족을 벗어던지고 싶은 짐짝처럼 생각하는 것처럼…….”

“그럼 아니에요?”

고미호 씨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내 뒤쪽 어딘가를 흘겨본다.

“아니죠, 당연히. 전 수지를 사랑해요.”

고미호 씨가 이번에는 날 쏘아본다.

“나도 내 남편 사랑해요. 이 동네 사는 모두가 자기 가족을 사랑한다고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안 그럼 왜 이런 오지에 와서 살겠어요? 혼자만 특별한 척 유세 부리지 마요.”

나는 고개를 떨군다.

“미안합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됐으니까 이거나 먹어요.”

고미호 씨가 비스킷과 치즈 조각이 가지런히 담긴 쟁반을 내 쪽으로 밀어준다. 나는 비스킷 하나를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고미호 씨가 커피를 또 홀짝이고는 말한다.

“사랑하는 건 사랑하는 거고, 아무리 사랑해도 아닌 건 아닌 거 아니에요? 적어도 이런 여유 정도는 누려야 되는 거 아니냐고요, 내 말은. 그래야 지치지 않고 계속 케어할 수 있을 테니까. 막말로 우리가 좀비 전담 간병인도 아니고(그 사람들은 돈이라도 벌지), 언제고 이렇게만 살 수는 없잖아요. 내 말 틀려요? 저기요, 언제까지 그 과자만 씹고 있을 거예요? 미치겠네.”

나는 커피로 입 안의 비스킷 반죽을 삼켜버린다.

“예, 뭐, 그럴 수 있죠.”

고미호 씨가 일어나서 내 쪽으로 와서는 아일랜드 식탁에 비스듬히 기대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볼 작정인 듯 내 눈을 빤히 본다.

“왜 그러시죠?”

“그쪽 정말 이상한 거 알아요? 궁금해서 그러는데, 내가 한 말, 무슨 뜻인지 알고나 말하는 거예요?”

내가 당연하다는 듯 “그럼요.” 하고 답하자 고미호 씨가 씩 웃는다.

“지금 그럼요, 하고 말했어요.”

고미호 씨가 돌연 얼굴을 들이민다. 입술과 입술이 닿는 느낌에 나는 감전이라도 된 듯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러자 되려 고미호 씨가 놀란 얼굴을 한다. 나는 할 말을 고르다 결국 말한다.

“가보겠습니다.”

“뭐라고요?”

“가보겠습니다.”

고미호 씨가 달아오른 얼굴로 뭔가를 말하려다 꿀꺽 삼키고는 현관문 쪽으로 간다.

“안녕히 가세요.”

나는 인사하고 고미호 씨를 지나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신는다. 고미호 씨가 날 부르더니 내 손에 주머니칼을 쥐어준다.

“이건 가져 가야죠. 와이프한테 깨지지 않으려면.”

그때, 고미호 씨 너머로 보이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나는 입을 떡 벌린다. 사람이 복도 끝에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좀비지만.

“어딜 보는 거예요?”

나는 뒤를 돌아보려는 고미호 씨의 팔을 잡아 휙 당긴다. 고미호 씨가 “뭐 하는…” 하며 내 쪽으로 딸려온다.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할 여유가 없다. 나는 고미호 씨를 거의 안다시피 한 채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균형을 잡지 못한 고미호 씨가 넘어지지만 나는 일단 현관문부터 닫고 본다. 도어락만 잠기면……. 하지만 현관문이 쿵 닫히고 곧이어 들려오는 소리는 ‘닫혔습니다’ 하는 녹음된 목소리가 아니다. 더 큰 쿵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폭발하듯 튕겨져 나온다. 현관문에 얻어맞아 손목이 꺾이고 뒤로 붕 날아가 땅바닥에 처박힌다.

당장 통증은 느끼지 못한다. 그저 어지러울 뿐이다. 나는 어떻게든 균형을 잡으려 애쓰며 고미호 씨 집 현관문 쪽을 확인한다. 날 날려버린 현관문 옆으로 덩치가 커다란 남자가 모처럼의 탈출에 낯설어하는 유인원처럼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다. 기회라면 기회다. 나는 고미호 씨 쪽으로 달려가 고미호 씨를 부축해 내 집 쪽으로 간다. 고미호 씨가 온몸을 덜덜 떨며 중얼댄다.

“안정제… 안정제…”

“언제 마지막으로 투여했어요?”

“그게… 몰라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괜찮았는데…”

“일단 수지 거라도 써보죠.”

뒤에서 꽥, 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나와 고미호 씨 모두 몸을 움찔한다. 나는 뒤를 돌아본다. 고미호 씨 남편은 잔뜩 화가 나 있는데 그걸 어디에 풀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것처럼 하늘에 대고 소리를 쳐대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거다. 나는 핸드폰과 차 키를 구미호 씨의 떨리는 손에 쥐어준다.

“어쩌라구요?”

“내 차에 타서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해요.”

“안정제는요?”

“집에 있어요. 가지고 올게요.”

“지금 나만 두고 집에 들어가겠다는 거예요?”

또 꽥!

“이대로 둘 다 집까지 가다간 늦어요. 차가 가까우니까 한 명이 차에서 유인을 하고 있어야…….”

“그쪽이 해요!”

“안정제 찾을 수 있겠어요? 저 상태로 투여는요? 잔말 말고 차에 타요.”

나는 고미호 씨를 차에 욱여넣다시피 하고 곧장 집으로 달린다. 다행히 고미호 씨 남편은 차 안에 있는 고미호 씨를 보고 차 쪽으로 이동한다.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 만일에 대비해 현관문이 닫히는 걸 확인한 뒤에야 부엌으로 달려간다. 안방 쪽을 힐끔 보니 수지는 고개를 옆으로 떨군 채 눈을 감고 있다. 안정제 탓이다. 나는 뭔지 모를 슬픔에 고개를 돌린다. 싱크대 서랍에서 키트를 챙겨 곧장 다시 달린다.

현관문을 거의 들이받다시피해서 나가보니 고미호 씨의 남편이 내 차의 보닛을 약에 취한 드러머처럼 두들겨대고 있다. 느닷없이 떠오른 연상은 역시나 수지와의 추억이다.

수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웬만한 인디밴드보다 유명한 락 매니아였다. 수지는 주기적으로 새로 나온 음반에 대한 소신 있는 평을 기록했는데, 거기 이름이 언급된 밴드 치고 음원 순위 상위권을 석권하지 못한 그룹이 없을 정도였다. 아예 새로 출시한 음반을 직접 수지한테 보내는 밴드도 있었다.

하루는 수지가 날 데리고 락 콘서트에 데려갔다. 나한테 음악이란 스트리밍 앱에서 그때그때 인공지능이 추천해주는 대로 흘려 듣는 것일 뿐이었다. 직접 눈으로 본 음악은 내게 있어 충격 그 자체였다. 무대 위에서 약에 취한 것처럼 몸을 흐느적거리며 악을 쓰는 건 적어도 내가 알던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콘서트 내내 수지는 조용했다. 꼭 뭔가를 필사적으로 견뎌내는 듯보였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악을 쓰고 싶은데 참는 건가 했지만 아니었다. 수지는 콘서트 도중 기절했다.

병원에서 의사한테 콘서트 얘기를 했더니 의사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내게 수지의 선천적인 면역력 결핍에 대해 설명했다. 따로 병명을 붙일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사람을 데리고 그런 곳엘 갔느냐고 따져묻는 듯했다.

나는 병실에서 잠이 든 수지를 지켜보며 생각에 잠겼다. 수지는 그 밴드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나는 조용히 병실을 나가 다시 콘서트장으로 갔다. 그 일대를 한참을 돌아다니다 뒤풀이 중인 밴드를 발견하고 사정을 설명했다. 그들은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줬고 나는 병원으로 돌아갔다. 아침이 되고 개운한 듯이 눈을 뜬 수지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나는 수지한테 전날 받은 사인 앨범을 줬다. 수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사인과 응원 메시지를 보더니 날 와락 껴안아줬다.

그때, 고미호 씨의 남편이 내 차의 보닛 위로 올라가려다 발을 헛딛고 넘어진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허우적거리는 고미호 씨 남편한테 다가가며 주사기를 앰풀에 꽂고 피스톤을 힘껏 당긴다. 그리고 튜브를 찾아 안정제를 주입한다.

이제 다 끝났다 싶은 순간 고미호 씨의 남편이 내 팔을 턱 붙잡는다. 안 그래도 아까 현관문에 맞아 부어오르기 시작한 손목이 불에 덴 것처럼 뜨겁다. 나도 모르게 악, 소리가 튀어나온다. 고미호 씨 남편이 최후의 저항이라도 하듯 감겨가는 눈으로 날 보며 다른 한 손을 뻗어 내 목을 움켜쥔다. 한순간에 목이 쪼그라들어 숨을 쉴 수가 없다. 나는 차 안을 곁눈질로 본다. 고미호 씨가 창문을 뚫고 나올 것처럼 바짝 붙어서 내 쪽을 보고 있지만 정말로 밖으로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주머니에서 다용도 주머니칼을 꺼낸다. 버튼을 누르자 반동이 느껴지고 나는 그것을 그대로 고미호 씨 남편 얼굴에 꽂아 넣는다.


내가 차에 오르자 울고 있던 고미호 씨의 어깨가 움찔한다.

“미안합니다.”

고미호 씨는 울음을 삼키느라 끅끅댈 뿐 고개를 들지 않는다.

나는 차 시트에 몸을 기대고 저 먼 곳을 쳐다본다. 날씨가 좋다. 수지가 산책하기 좋은 날인데, 싶다가 웃어버린다. 너무 오랜 이야기 같아서다.

“언제 온대요?”

고미호 씨는 여전히 대답이 없다. 나는 고미호 씨 주변을 살펴 내 핸드폰을 찾아낸다. 통화내역을 확인해보니 질병관리본부 번호가 없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질병관리본부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한다.

통화를 마치자 고미호 씨가 중얼거린다.

“그쪽이 죽였어…”

“죽진 않았어요. 그냥 잠든 거지.”

고미호 씨가 드디어 고개를 든다.

“칼로 찔렀잖아!”

“미안합니다. 하지만 죽진 않아요. 아시다시피 좀비니까.”

고미호 씨가 악에 받친 고함을 쏟아낸다. 한참을 그러더니 대성통곡을 한다.

얼마 뒤 질병관리본부 사람들이 도착한다. 우주인 같은 차림새를 한 그들은 현장을 통제하고 고미호 씨의 남편을 수습한 뒤 나와 고미호 씨를 커다란 트럭으로 안내한다. 그곳에서 일련의 검사를 받고 모두 음성 판정이 나오자 또 다른 트럭으로 안내되어 참고인 진술을 한다. 고미호 씨는 좀비관리법 위반으로 그들과 함께 간다.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나 왔어.”

그새 시간이 훌쩍 지난 터라 나는 부엌으로 가서 안정제를 찾는다. 없다. 아까 게 마지막이었나. 나는 방으로 가서 수지 곁에 앉는다. 정신 팔릴 고양이도 없어서 수지는 날 쳐다본다. 약기운이 떨어져가는지 반응이 크다. 나는 다시 질병관리본부에 전화해 사정을 설명하고 안정제를 새로 신청한다.

“오늘은 조금 지치네.”

나는 침대에 모로 누워 수지의 딱딱하게 굳은 다리에 머리를 기댄다.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내쉰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나는 고개를 돌린다. 수지가 날 내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다.

“또 꿈이구나.”

수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상관없어. 어차피 안정제 오면 초인종 울릴 거니까.”

수지가 고개를 끄덕인다.

“뭐… 안 깨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야. 그렇지?”

수지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머리를 편하게 돌리고 다시 눈을 감는다. 수지의 부드러운 손길을 음미하며 완전한 무의식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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