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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거 (trigger)

후안

[새벽 4시]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은 역시 하나였다.

답은 없다.

숨을 몰아쉬며 성식은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조금 있으면 동이 튼다. 헛웃음이 나온다. 동이 트면 뭐 어쩌라고? 답이 나와? 누군가 지금 이 상황을 목격하고, 구조를 요청하면 나는 살게 되는 건가? 무슨 게딱지 같은 소리야.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기어서라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럴 수가 없다. 성식은 자신의 다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부러진 뼈가 살갗을 뚫고 튀어나왔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체념이 더 먼저다. 조금 있으면 죽는다.

“어이! 이봐! 아직 아니지? 벌써 변한 건 아니지?”

성식이 그를 보며 외쳤다. 약간은 울먹인 것도 같았다. 쪽팔리네. 대답은 없었다.

죽은 듯 엎드려 있던 그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며, 그가 몸을 뒤틀었다. 우두둑. 이를 갈던 그가 고개를 쳐들었다. 죽은 눈. “미치겠군.” 성식이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그가 입을 벌려 기묘한 소리를 냈다. “어어어. 어어어어어어.” 듣기 싫은 소리.

“어어어어어.”

그가 천천히 일어섰다. 한쪽 팔만 덜렁거리는 그의 몸이 아주 조금씩, 성식에게로 향했다. 하나. 둘. 셋. 넷. 십여 걸음이면 도착하는 건 순간이다.

“결국은 죽는구나.”

왜 이 일을 한다고 했을까. 평소에 욕은 입도 벙긋하지 않았었는데, 어느새 욕지거리가 흘러나온다.

하는 게 아니었는데. 빌어먹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이르자. 그가 입을 벌렸다.

지저분한 타액이 줄줄 흐르며, 정갈한 치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빨 하나는 관리 잘했네. 엉뚱한 생각을 하는 성식을 향해, 그의 성한 팔이 성식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엄청난 힘에, 성식의 어깨가 움푹 파인다.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성식의 머리를 향해, 그의 벌어진 입이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왔다.

[저녁 10시 - 6시간 전]

준행이 입가에 손가락을 대며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다. 성식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벽으로 조용히 기댔다. 어깨를 벽에 등진 둘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앞만 주시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은 작은 의자와 그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한 사람의 그림자였다. 준행이 가만히 손을 들었다. 세 손가락을 편 채 준행이 성식을 보자, 성식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성식은 손에 든 분사기의 안전장치가 제대로 풀려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적막 가운데 준행이 침을 삼켰다. 너무나 조용해서, 꿀꺽하는 그 소리가 행여 들렸을까 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준행이 엄지를 접었다. 손가락을 모두 접으면 시행하는 거다.

검지를 접었다. 성식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중지를 접었다.

준행이 양손에 입마개를 들고 뛰쳐나갔다. 뒤를 이어 성식이 준행과 다른 방향으로 그림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충분히 한 번에 성공할 수 있다. 성식이 분사기를 발사해 신경을 마비시키면, 준행이 입마개를 걸어 봉인한다. 그림자가 움직였다. 까득 거리는 뼈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며 그림자가 고개를 들었다.

죽은 초점. 벌어진 입가에서 떨어지는 타액.

“뿌리라.”

분사기를 들어 강하게 스위치를 눌렀다. 미세한 분무 구름이 뿜어 나간다. 예상외로, 그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 당황하지 않고 성식은 맡은 바 임무인 가스 뿌리기에 충실했다. 결국, 몇 번 몸을 부들거리며 경련을 일으키던 그림자가 턱 하고 의자 옆으로 고꾸라졌다. 준행이 들고 있는 입마개를 황급히 그림자의 얼굴에 물렸다. 끝이다. 덜덜거리며 몸을 떠는 그림자 위로, 준행이 성식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다시 고개만 끄덕이는 성식에게 준행이 쓴웃음을 지었다.

“마. 니는 입이 없나. 뭐 웃지도 않고 말도 안하고 고개만 까닥거리나. 내같은 선배가 잘한다고 칭찬해주믄 리액숀 확실히 취해줘야지. 그게 사회다 사회.”

“네.”

“하, 무뚝뚝하기는. 내보다 더 심하구마 니는.”

“죄송합니다.”

“운이 좋네. 쉽게 끝났어. 얼른 뜨자. 정부 개들이 들이닥치면 골치 아파진다카이.”

준행이 등에 멘 가방에서 포대를 꺼냈다. 바닥에 널어놓고 포대를 벌려 쓰러진 그림자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뭐 이렇게 무겁노. 비쩍 마른기.” 준행이 투덜거리며 도와달라는 손짓을 하자 성식도 얼른 거들었다. 억지로 구겨 넣은 묵직한 포대를 어깨에 둘러멘 성식이 몸을 움직여 출구로 향했다. 준행이 덜렁거리는 포대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 놈은 을마나 받으려나. 이 건 끝내고 몇 달은 푹 쉬고 싶은디.”

“이곳에 좀비가 보관된 건 어떻게 안 겁니까?”

“내도 모르지. 위에서 다 알려준다. 그러니까 니도 몰라도 된다. 나중에 니가 내 위치에 오면 다 알기다.” 성식은 더는 묻지 않았다. 건물 뒤편 몰래 주차해 둔 차를 향해 둘은 말없이 걸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준행이 입을 열었다.

“니, 우리가 뭐 하는 건지는 알고 있지?”

“거래처에 좀비를 공급합니다.”

“그렇지. 이기 불법이지. 그란데 사람들이 와 좀비를 사노, 이런 생각 안 해봤나?”

“생각 안 해봤습니다. 그냥 하라니까 하는 겁니다.”

“짜슥, 니가 더 좀비 같구마.”

차 트렁크를 열어 포대를 밀어 넣었다. 마비 가스로 인해 최소 몇 시간은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잘 들어가지 않는지 준행이 인상을 찌푸리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쓰벌.” 발을 들어 몇 번 걷어차니 움찔거리며 포대가 반응했다. 깨어난 것은 아니고 단지 경련 같은 거 같았다. 겨우 구겨 넣은 준행이 트렁크를 닫았다. 쾅. 차체가 약간 흔들거리다 잠잠해졌다. 준행이 성식에게 타라고 손짓을 했다. 성식이 운전석으로 향하자 준행이 킥킥대며 웃었다.

“이기 똥찬데, 니 구경도 못했을 기라. 신뺑 운전 잘하나?”

“그냥, 면허는 있습니다.” 차에 올라타며 성식이 답했다. 옆자리에 올라탄 준행이 품을 뒤적여 구겨진 담뱃갑을 꺼냈다. 구부러진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물고 다시 품을 뒤졌다. “니기미 불이…….” 성식이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주었다.

준행의 입가에서 출발한 뿌연 연기가 똬리를 틀며 돌진하다 공중에서 장렬히 산화한다.

“니 여기 들어온 지 을마나 됐나?”

“일주일입니다.”

“일주일? 바로 내랑 붙인 거 보면 위에서 마음에 들었나 보다.”

“아닙니다.”

“시끄럽고 니, 군인 출신이재?”

성식은 답하지 않았다. 준행이 그거 보라는 듯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시동을 걸자, 덜덜거리며 차체가 진동했다. 액셀을 밟자 차가 스르르 움직임을 시도한다. “니미 이 똥차 잘 굴러 는 가노? 내 몇 번이나 바꿔달라 말했는디 들은 척도 않네.” 준행이 다시 연기를 내뿜는다. 운전대를 돌려 고속도로로 향했다.

고속도로로 진입.

칠흑 같은 어둠이 이 둘을 반긴다.

“내 눈치가 백단이다. 니 행동이나 말하는 것 보면 딱 군인 티 확난다카이. 요즘 아들은 좀비 이런 거 모르재. 일반인이면 분명 아까 보고 놀랐을 끼야. 니 말고도 몇 번 신뺑이들 델꼬 일해 봤는데, 오줌 지리고 난리도 아니었구마. 근데 니는 눈 하나 깜박 않더만. 시키는 거 잘 하고. 말 잘 듣고 일 잘하고, 군바리밖에 더 있겠나? 내 말 맞재?

“......”

“하 대답 좀 해라 마. 뭐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지만서도, 내는 이제부터 니 군바리라 부를 기다. 큭큭큭. 그나저나 웃긴 일이야. 세상 망한다고 난리법석 치던 게 엊그제 같은기 벌써 몇 십 년이나 흘렀구마. 니도 잘 모르겠네. 그렇지? 내 같은 아재들이 농담 삼아 던지는 말 하나하나가 니들한테 웃기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내 그때 진짜 세상 망하는 기 싶었다.”

준행이 담배를 열린 창밖으로 내던졌다. 투득. 룸미러를 통해 빛나는 점 하나가 공중을 돌다 떨어져 뒤로 멀어지는 게 보였다. 헤드라이트 불빛만 어둠을 밝혀주고 있었다.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반복되는 눈부심에 성식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 근방은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곳이다. 사실 꽤 번창한 도시 주변이었긴 하다. 예전 그 일이 일어난 후에는 버려진 지역이라고 들었다. 아무래도, 인구수가 급격하게 줄어들면 이런 곳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워낙 좁은 땅에 사람만 득실대던 우리나라가 숨통이 트인 게, 우습게도 좀비 바이러스로 인한 결과물이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어차피 몇 시간 걸릴기다. 그 동안 내 얘기나 하나 할게. 가는 동안 들으라. 니도 이 일 꾸준히 할라믄 알아야 될 기야. 거래할 물건, 그러니까 좀비라는 게 말이야. 우리한테는 돈 인기다. 돈. 돈!”

준행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마침 라디오를 켜보려 손을 올렸었지만, 성식은 그의 얘기를 경청하겠다는 표시로 슬쩍 손을 내렸다. 흠흠. 그런 성식의 모습을 보고 헛기침을 몇 번 한 준행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이제부터 후배 교육 들어간다카이. 수우십년전에. 뭐냐, 뭐시기 바이러스인지 뭔지가 요 아시아 지역을 휩쓸고 일본이 난리 나고 중국도 나가리 났지? 훅 갔다 마. 그나마 우리나라는 어찌어찌 버텨서 지금 이나마 버티는 거 니도 알기다. 이 바이러스가 중국 일본 휩쓸고 지나간 끝물이라 얻어걸린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동북아 중 우리나라만 버틴 건 사실 아이가. 미친 노마들은 김치 때문에 바이러스가 힘 못 썼다는 얘기도 하고, 뭐 발효 음식을 처묵음 면역성이 는다나? 근데 말이야, 이기 양키들한테는 아무 영향 없는 거 동북아만 아작 났으니 관심 가지는 거 당연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좀비들을, 갸들이 어떻게 보겠냐는 기다.”

성식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번쩍. 번쩍. 번쩍. 아까와 마찬가지로 헤드라이트 불빛만 요란하게 깜박인다.

“그 인류란 말이지, 살아남는 거에 아주 민감하다고. 좀비란 게 죽어도 죽은 게 아니잖아? 왜 다 죽은 시체 쪼가리가 걸어서 움직일 수 있을까? 이기 엄청난 연구 대상이 됐단 말이다. 아무 피해 없는 멀쩡한 양키 새키들한테는 말이지. 양키들이 어마한 자금을 들여서 비밀리에 좀비 연구를 시작했다고. 그리고 그에 맞춰 돈 받은 인간들이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에 비해 대한민국 정부님들은 말야. 지저분한 건 다 정리하고 싶어 하는기다. 국가 위신이 걸린 거지. 유일하게 버텼다는 자부심도 있겠지. 아무튼 그건 그거고, 자, 정부가, 나라가, 좀비를 쫑내겠다고 무조건 발견 즉시 회수하는디, 그것들이 씨가 마르면 생존 연구가 부질없어 지는 거니 엄청난 고가에 불법거래 되는 거야. 간단히 말하자면 좀비의 씨를 말리려는 정부와, 좀비를 연구하려는 양키 돈을 받는 이들의 불꽃 튀는 싸움이란 말이지. 알겄나?”

“정부는 왜 좀비를 서양 쪽에 넘기지 않습니까? 연구 대상으로 거래할 수 있지 않습니까.”

“넘기겠지. 박멸이라는 명분하에 외교적인 무기로 사용할 기다. 썩은 정치인들 생각하는 거 다 똑같지 않나. 니 존나 역사적 유물 발견하면 정부가 뭐 하는지 아나. 애국지사십니다 하고 채간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십시오 하고 돈 뺏는 기다 일진처럼. 양아치 새끼들이다. 아주 살 판 난 게, 중국이나 일본 같은 이런 데는 이미 초토화돼서 협상이고 나발이고 없다 하재. 버틴 우리나라가 대세인기다. 운 빨도 좋아 대한민국 만세. 그래도 돈이 최고인 나 같은 인간들에게는 나라 사랑 애국지사 하는 거 보다, 거래 넘기고 몇 달 푹 쉬면서 애기들이랑 떡이나 치고 술이나 퍼마시는 그런 보상을 받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거 잘 알고 있으니까 이 일에 뛰어드는 거지. 니도 그런 거 아니가. 맞재?”

“........”

“니 진짜 말 없다 마. 입에 뭐 지퍼 달았나. 이기 기계도 아니고.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게, 우리 같은 인간들과 정부 말고도 웬 변태 같은 놈들이 나타나는데, 그기 개 웃긴 거라. 이 좀비 말이재, 장난감으로 여기는 인간들이 생겼다카이. 니 스너프 필름 아나? 들어봤나? 막 강간하고 살인하고 그런 거 찍은 필름인디, 그런 게 아주 고가로 거래된다카이. 니가 그거 알면 이해가 쉬울기다. 세월이 지나도 똑같다마. 좀비를 소유하려는 변태 집단이 존재한다고.”

“좀비를 소유?”

“그렇고마. 가진 건 돈밖에 없는 놈들이 이제는 좀비를 가지려고 하는기다. 알다시피 이 좀비라는 것들, 트리거가 쥐어지지 않으면 걸어 다니는 인형 일 뿐이거든. 그래서 아까 우리가 쉽게 잡은 거기도 하고. 내도 내심 걱정했는데, 우리가 잡은 좀비가 봉인이 풀렸다면 니랑 내는 창자를 질질 흘리면서 바닥에 자빠져 꿈틀거리고 있었을 기다.”

“트리거요?”

“방아쇠. 좀비를 각성시키는 방아쇠를 바로 트리거라 하재.”

준행이 말을 멈췄다. 성식도 입을 굳게 다문 채였다. 털털거리는 차체의 진동만 듣기 싫은 소음을 울리고 있었다.

“이것들은, 좀비들은, 살아서 가장 하고 싶었던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카이.”

“본능?”

“도덕적인 관념이나 법치에 어긋나지만 차마 할 수 없었던 본능. 알재? 원래 인간은 악한 법이지. 내는 성악설을 신봉한다.”

“그 방아쇠가 봉인된 이성의 끈을 풀어버린다는 겁니까?”

“좀비가 이성이 있나. 허나 니 말도 맞다. 그렇지. 니 누구 죽이고 싶었던 적 있나? 괜시리 짜증 나서 다 때려 부수고 싶은 감정 있지 않나. 그걸 이 노마들은 아무렇지 않게 한다는 기다. 단, 발화점이 있어야재. 그기 트리거다. 예를 들어 아무나 죽이고 싶은 본능에 미친 좀비한테, 그에 맞는 도구를 쥐어주면 시작되는 기다. 칼이든, 총이든.”

“뭐가 시작됩니까?”

“지옥. 내는 봤다. 순식간에 덮친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지옥이.”

준행의 입가가 떨렸다. 그는 보았다. 그 나이 또래들은 지옥의 현장을 보고 살아남았다. 바이러스가 창궐한 이후 인구의 10%가 줄었다. 그중 태반은, 친지와 가족들한테 살해당했다. 죽이고 먹히고 그 와중에 부활하고.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고 들었다. 이유를 모르지만, 갑작스레 바이러스의 활동이 멈춘 틈을 타, 반격을 시작한 정부의 대대적인 숙청과 박멸이 자행됐다. 말 그대로 중세 마녀사냥과 같은 학살의 시작이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죽은 일반인도 많다고 했다. 지역에 상관없이 인류의 본성은 그대로 이어지는 거다. 준행이 너털웃음을 날렸다. 지저분한 그의 수염이 부들거리며 흔들렸다.

“참 웃기재? 그런 기 이제는 돈 거래, 거래 대상으로 전락했단 말이지. 내랑 니랑 이노마 넘기면 수천에서 수억을 번다카이. 내 언저리 주워들은 애긴데 사실 오늘 작업한 이노마는 원래 정부에서 회수해서 박멸해야 될 놈인디, 우리 쪽에서 선수 쳐서 채가는 기란다. 내 잘 알지는 못하지만 평범한 좀비는 아니라고마. 뭐 중요한 물건이라고 했지만서도, 죽은 놈이 죽은 놈이니 별 차이 없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노리는 아들이 있다 하니 조심하는 게 좋단 말이재. 아까 말했지? 좀비를 소유하려는 인간들이 있다고. 가들은 있는 게 돈이라 어마어마한 상금을 걸어. 소위 사냥꾼들이 움직인다. 우리 딴엔 헌터라고 부르는 디, 아주 무시무시하다 카이.”

“헌터요?”

“헌터. 밤의 사냥꾼들.”

준행이 버튼을 눌러 창을 닫았다. 스르르 올라가는 창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좀비를 거래하는 우리와, 좀비를 회수하려는 정부와, 좀비를 채가려는 헌터들. 실타래처럼 꼬였지 재수 없게.”

“어?”

순간, 성식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놀란 준행이 성식을 바라보자, 성식이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저거 뭐꼬?” 갓길에 차 한 대가 서 있고 남자 하나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의 몸은 비대했고 발로 차면 퉁퉁거리며 튕겨 나갈 듯 둥글둥글한 생김새였다. 속도를 줄이는 성식을 향해 준행이 속삭였다.

“모른 체 그냥 가라.”

“하지만 차가 고장 난 것 같은데요. 이 근방은 아무도 없고.” 성식이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마 니가 뭔데 신경 쓰나? 그냥 가라.”

타이밍 좋게도, 둘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샌더스 대령을 닮은 남자가 - KFC라는 전설적인 닭요리를 창시한 남자라고 들었다 - 고속도로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양손을 휘저었다. 그대로 지나갈 수 없어 성식이 속도를 줄였다. “아 나 시발.” 준행의 욕지거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뚱뚱한 남자가 성식의 우측 창으로 다가와 노크했다.

똑똑.

창이 쓱 내려가자 씩 웃으며 남자가 땀을 닦았다.

“살았네요. 어우. 꼼짝없이 벌벌 떨며 노숙할 뻔했네요.”

“......”

“뭐 상황 보시면 아시겠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도와주세요.”

“......”

“경계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 늙은 뚱뚱한 늙은이일 뿐입니다. 물론, 사례합니다. 저 돈 많습니다.”

돈이라. 툴툴거리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며 준행이 솔깃한 표정으로 성식에게 바짝 몸을 기댔다. 그 모습을 보며 큰 웃음소리를 터트린 샌더스 대령이 양손을 펴 손뼉을 짝 쳤다. 말이 통하시네.

“여생, 즐기면서 살려고, 모처럼 둘러볼까 혼자 여행 왔더니.”

손을 비비며 샌더스 대령이 중얼거렸다.

“차가 뻑 나고, 배는 고프고. 도와주시면 사례하겠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내가 이래 봬도 가진 건 돈밖에 없습니다. 혼자 이곳에 온 거 보면 아시지 않소? 이런 시국에 돈 없고 빽 없으면 이 지방 오지도 않겠죠. 이곳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들었습니다. 수십 년 전 그 사건으로 폐허가 됐다 들었죠. 번창하던 지역이 폐허라니, 이 얼마나 독특합니까? 나는 번창하던 이곳을 기억하죠. 얼마나 변했기에 이러나 궁금해서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요. 그래서 구경 온 겁니다. 아시잖소? 나 같은 인간들한테는 관광지거든요. 이런 곳. 차를 아예 하나 새로 살 걸 그랬습니다. 렌트하니 이 모양이네요. 뭐 여기 까지 올지 알고 빌려준 건 아닐 테지만. 돈을 아끼려고 한 건 아닌데 어쨌든 망가졌네요.”

“생긴 거랑 다르게 말 참 많네 영감. 돈 많소?” 준행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많습니다. 도와주시면 사례하죠.” 샌더스 대령이 답했다.

“어떻게 믿지?” 준행이 가늘게 뜬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내드리지.” 샌더스 대령이 주머니를 뒤적여 무언가를 꺼냈다.

황금빛 손목시계. 준행의 눈이 빛났다.

“뭐 보면 다 아는 상표요. 굳이 말 안 해도 알 거요. 요즘 세상에 이런 거 가지고 있는 사람 봤소? 구할 수가 없어. 30년은 된 시계지만, 오래될수록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법이지 이런 물건은. 주겠수다. 도와주면 주겠소. 가지쇼.”

“이 양반 맘에 드네. 군바리, 문 열어라.” 준행이 웃었다.

“선배님, 그 아까 말씀하신 건…….” 성식이 조용히 속삭였다.

“내도 안다. 미친 노마 아니고서야 누가 혼자 이런 곳에 관광을 오나? 그래도 내 하나 확실히 아는기, 정부 아들은 절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는 기다. 그라믄 뭐겠노? 그냥 돈돼지일 뿐이다. 아니면 아닌 거고 맞으면 맞는 거고. 꿩 먹고 알 먹음 된다 카이. 걱정 안 해도 된다. 내 프로다. 경계는 하고 있다마.” 준행이 웃으며 답했다. 들었겠지만 아랑곳없이 샌더스 대령이 뒤편에 올라타며 문을 닫았다. 쾅. 하하 웃으며 샌더스 대령이 물었다.

“이제야 살 것 같군! 그런데 댁들은 어인 일로 이런 폐허를 다 다니쇼?”

“일입니다.” 성식이 답했다.

“아아.”

잠시 적막이 흘렀다.

성식이 손을 들어 라디오 스위치를 눌렀다. 치직. 잡음 소리가 울린다. 치지직. 성식이 다이얼을 돌렸다. 준행이 갑자기 성식의 손을 누르며 말을 던졌다.

“잠깐. 그래도 차가 고장 난 게 맞는지는 확인하자고. 누가 숨어있는지도 모르니까.”

“으하하.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나밖에 없다니까. 차가 뻑 났다니까요. 고칠 수 있으면 고쳐 보쇼. 나는 아무래도 귀찮아서 저런 거는 꼴도 보기 싫단 말이지. 냅두고 얼른 도시에 도착해서 견인하면 되는 거 아니요?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건, 샤워하고 가운 입고 와인 들이키며 가장 유명한 콜걸이 누군지, 인터넷 사이트로 하나하나 프로필 클릭하는 마우스 클릭 질이란 말이요.”

“그래도 모르니까, 군바리 니가 내려서 확인해 봐.” 준행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끼익. 움직임을 시도했던 차가 다시 멈췄다. 성식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갓길에 세워진 샌더스 대령의 렌터카는 구형 지프였다. 뒤에 달린 타이어는 이미 다 헤져 스페어의 역할 따윈 잊은 지 오래였다. 다가가 보넷을 열어보고, 좌석 쪽을 확인해 본 성식이 고개를 저으며 준행을 바라보았다. 뚫어지게 바라보던 준행이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성식이 다시 올라타며 문을 닫았다.

“어때?”

“고장이 맞습니다.”

“내 말이. 왜 저런 똥차를 빌렸는지 모르겠소.” 샌더스 대령이 끼어들었다.

침묵이 흘렀다.

휘익. 망가져 버린 가로등 하나가 창을 스치며 잠시 모습을 보였다 사라졌다. 차체 진동만 적막을 깨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액셀을 더 밟아도 속도가 올라가는 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밖은 컴컴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10분이 채 지났을까. 먼저 적막을 깬 건 준행이었다.

“간덩이가 부었소마. 이런 델 다 오고.” 준행이 말을 걸었다. 샌더스 대령이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덩이가 부어야 돈도 많이 벌지요.” 성식이 액셀을 다시 힘주어 밟자, 덜덜 떨리며 차가 있는 힘을 다해 달리려 했다. 적막. 미칠 것 같은 어둠. 번쩍이는 헤드라이트. 아까 같이 반복되는 모습들.

변화를 주기 위해 성식이 다시 라디오 다이얼을 돌렸다. 치직. 치직.

[......발견하면 신고합시다. 당신의 신고 하나가, 국익입니다. 공익 광고 협…….]

“좀비? 뭐 이런 곳에는 있을 수도 있겠네.” 샌더스 대령이 중얼거렸다. 좀비라는 말이 나와 흠칫 놀란 준행이 몸을 잠시 움츠렸다. 치직. 다시 잡음이 들렸다. “니미럴 똥차.” 준행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다이얼을 이리저리 돌렸다. 신호가 잡혔는지 잔잔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클래식?

처음에는 잔잔했던 음악이 슬슬 템포를 올리고 있다. 쿵쾅쿵쾅하는 소리가 묘하게 심장박동 수와 매치를 이룬다. 쿵쾅쿵쾅. 쿵쾅쿵쾅.

성식은 액셀을 밟고 있는 왼발에 더욱 힘을 주었다. 계기판의 바늘이 서서히 12시를 찍고 1시 방향으로 향했다.

속도가 빠르거나 느리거나 지나가는 풍경과 정면의 시야는 한결같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다.

“마탄의 사수 아니오?”

대뜸, 샌더스 대령이 말했다.

“뭔 사수?”

“마탄의 사수. 지금 나오는 이 곡 말이야. 칼 마리아 폰 베버의 명곡이지.” 샌더스 대령이 답했다.

“니미. 뭔 놈의 클래식이야. 군바리, 다른데 돌려.” 준행이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잠깐만. 이 부분 마음에 들어. 합창 부분이지. 서곡은 잔잔하게 흐르지만, 마지막 이 합창 부분은 웅장하지. 악마와 거래한 몹쓸 놈의 마무리를 애도하는, 말 그대로 사냥꾼의 합창이라고.”

“사냥꾼?” 묘한 이질감에 준행이 고개를 돌렸다.

샌더스 대령이 웃으며 답했다.

“무엇에 비길까, 사냥의 즐거움을……. 사냥은 사나이다운 욕망이며 사지를 강건하게 하고 식욕을 돋운다……. 이 합창의 가사야. 마음에 들지 않소?”

준행이 황급히 몸을 틀었다.

샌더스 대령의 목을 조르려는 준행의 행동을 파악한 듯, 그가 뒤로 몸을 뺀 뒤 양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휘갈겼다. 짝! 강렬한 아픔에 준행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군바리!” 성식이 브레이크를 밟으려는 순간, 번쩍이는 칼날이 성식의 귀 뒤로 향했다.

“멈춰봐.” 차가운 목소리였다.

퍽. 칼을 쥐지 않은 손으로 준행의 얼굴을 후려친 그가 다시 말했다.

“멈춰봐. 그럼 넌 죽을 거야.”

성식은 브레이크 위에 반쯤 올라간 오른발을 다시 가만히 들었다. 번쩍. 번쩍. 헤드라이트 불빛이 도로를 깜박이며 비추었다. 퍼억! 준행의 얼굴을 다시 후려친 샌더스 대령이 준행의 머리칼을 붙잡고 있는 힘껏 좌석 머리맡으로 당겼다. 충격을 받은 준행이 어리둥절한 틈을 타 샌더스 대령의 주먹이 다시 준행의 뒤통수를 향했다. 퍼억! 고개를 숙인 준행의 머리 뒤로, 샌더스 대령의 칼날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손에 칼을 쥔 그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반갑수다. 돈돼지요.”

“이 돼지 새끼가!”

“아이고, 프로님. 알아봐 주셔서 영광이요.”

샌더스 대령이 웃었다. 번뜩이는 칼날이 그의 웃음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귀 뒤를 노리는 그의 칼날은 미동도 하지 않고 부동의 자세를 유지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잘 들어. 귀 뒤로는 경동맥이 흐르지. 박히면 끝장이야.

고요했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이번에 적막을 깬 건 샌더스 대령의 목소리였다.

“차 돌려.”

“뭐?”

“내 차로 간다. 아마추어들아.”

성식이 머뭇거리는 사이, 샌더스 대령의 차가운 칼날이 성식의 목덜미를 훑었다. 성식은 흠칫했다. 얼음 같은 서림을 느낀 그가 곧바로 핸들을 돌렸다. 쿵쾅거리는 음악은 계속 흘러나온다. “아주 좋아. 여기서 이 음악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샌더스 대령이 웃으며 말했다. 먼지를 일으키며 방향을 틀자 차체가 흔들렸다. 끼기긱. 타이어 마찰음이 귓가에 진동한다. 달려오던 방향과는 정반대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샌더스 대령의 구형 지프를 향해 말이다.

“그나저나, 무슨 깡으로 정부의 극비 회수 물품을 훔쳐?”

“......”

“이 좀비가 얼마나 중요한 놈인지 알고는 있나?”

“......”

“돈이 중요한 게 아니지. 내가 아니었더라도 너희들은 어차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운명이었어.”

샌더스 대령이 팔을 내렸다. 물론, 작은 반응이라도 보이면 가차 없이 귀 뒤에 찔러 넣을 생각이었다. 그런 건 말 안 해도 다 아는 거다. 준행과 성식은 굳은 자세로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면 도착한다. 샌더스 대령이 성식의 등받이를 툭툭 쳤다.

“음악 좀 키워 봐.”

성식이 볼륨 다이얼을 올리는 사이, 준행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성식에게 눈짓을 보냈다. 말을 걸 수는 없었다. 뒤의 샌더스 대령이 눈치라도 채면 큰일이니까. 음악을 음미하며 좌석에 몸을 포갠 샌더스 대령이 보지 못하는 공간에서, 준행이 오른손을 펼쳤다. 좀비를 회수하기 위해 돌입하기 전 보여주던 그 손짓이다. 준행이 손을 펼쳐 가지런히 모았다. 손가락을 세 개 펼쳐 보인 뒤, 다시 손을 모았다. 천천히 앞으로 움직임을 보여준 그가, 갑자기 주먹을 쥐며 안으로 당겼다. 준행이 다시 성식을 쳐다보았다. 반복하는 행동.

손가락 세 개를 편 뒤, 손을 모으고, 앞을 향해 움직이다가, 주먹을 쥐고 안으로 당긴다.

준행의 입이 소리 없이 움직인다.

[급. 정. 거.]

준행이 가만히 안전띠를 찾아 채웠다. 도착 전에 급정거하면, 준비되어 있지 않은 뒷좌석의 돼지는 당황할 것이다. 충분히 반격할 수 있다고마. 급정거 후 정신을 못 차리는 돼지의 목덜미를 내 조르고, 군바리 신뺑 니가 칼을 뺏어 그의 옆구리를 찌르면 되는 기야. 준행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성식이 고개를 약간 움직였다. 내 말 알아들은 거냐? 성식이 다시 눈치채지 못할 만큼 미세하게 고개를 움직였다. 좀비 같은 새끼. 이럴 땐 말 안 하는 게 좋지. 준행이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성식이 액셀을 밟은 왼발의 힘을 서서히 줄였다. 손가락을 다 접으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엄지가 접힌다.

검지가 접힌다. 준행이 침을 꿀꺽 삼켰다.

중지가 접힌다.

준행이 주먹을 쥐었다.

“밟아라!”

찰칵. 성식이 준행의 안전띠를 풀었다.

“응?”

준행의 고함에 놀란 샌더스 대령이 칼을 쥔 손을 다시 들어 올림과 동시에, 딩동 하는 소리가 울리며 준행의 옆문이 벌컥 열렸다.

“어?”

“바람이 찹니다. 몸조심하십시오.”

성식이 왼발을 들어 준행의 몸을 걷어찼다.

경악하는 표정으로, 준행의 몸이 기우뚱하며 문밖으로 나가나 싶더니, 순식간에 뒤로 사라졌다.

성식이 열려있는 문을 닫았다.

“왜?” 멀뚱히 지켜보던 샌더스 대령이 물었다.

“뭐 하는 거야? 도착하면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

성식이 특유의 말투로 답했다. 딱딱한 말투.

“......조금 귀찮아질지 몰라서 먼저 손 봤습니다.”

“너무 멋대로잖아? 잊었나 본데, 계획도 내 거고 저 좀비도 내 거야. 너는 그냥 도와주고 돈이나 챙겨서 멀리 뜨면 되는 거고.”

“......”

“잘 들어. 내가 약속한 돈은 그냥 주는 게 아니야. 봉사 활동하는 거 아니라고. 무슨 수호천사라도 되는 줄 알아? 짜증 나네. 아직 어려서 돈의 중요함을 모르나 본데, 당신 포섭 금액으로 몇 명은 1년 동안 일 안 해도 먹고 살아. 이게 무슨 말이냐면, 갑과 을의 관계 알지? 내가 갑이고 당신이 을이야. 거금을 쥐여주면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지. 튀는 행동을 보이면, 갑의 눈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이면 당연히 갑은 을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지 않다고.”

샌더스 대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잘 알고 있습니다.”

“좋아. 나도 뒤끝 같은 건 없어.”

성식의 딱딱한 대답에 샌더스 대령도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차는 계속 달리고 있었다. 잠시 후, 저만치 갓길에 세워진 샌더스 대령의 지프가 보였다. 성식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 너무 바짝 붙이지 말고.” 샌더스 대령의 지시에 성식은 차 두 대 정도가 들어갈 만한 공간을 비워 정차했다.

“후우.” 샌더스 대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만히 성식의 뒤통수를 쳐다보던 샌더스 대령이 좌우 주위를 살폈다. 두리번거리며 차안을 살펴보던 그가 피식하고 코웃음을 쳤다.

“진짜 똥차구먼. 굴러가는 게 용해.”

“안 내리십니까?” 성식이 가만히 물었다. 주파수가 어긋났는지, 클래식을 틀어주던 라디오가 다시 잡음을 내질렀다. 성식이 라디오를 껐다.

“지금 살짝, 고민 중이라.”

샌더스 대령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성식은 여전히 운전석에 앉은 채, 그런 샌더스 대령을 룸미러를 통해 살펴보고 있었다. 답답하고 캄캄한 공기가 둘 사이를 에워싼다.

주위는 고요하고, 바람 한 점 없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칠흑 같은 어둠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달빛도, 별빛도 없다. 오로지 암흑뿐이다.

“이봐.” 샌더스 대령이 입을 열었다.

“저 좀비, 뭔지 알아? 그냥 평범한 좀비는 아니거든. 괴물이지.”

“괴물, 입니까.”

룸미러를 통해 샌더스 대령의 노려보는 시선과 성식의 시선이 부딪혔다.

살기가 올라온다.

“그렇지. 괴물.”

“왜 괴물입니까?”

“사람 죽이는 괴물. 생전에 수십 명을 도륙 냈지.”

“아하. 그래서 정부가 극비리에 회수하려 한 겁니까. 사람 죽이던 살인마가 좀비가 됐는데, 그게 밝혀지면 안 되는 거라서. 내심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정부 고위 관계자와 관련되어 있을 것 같군요.”

“놀랍군. 그 말이 맞아.”

샌더스 대령은 웃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초짜 맞나?”

“......”

“어떻게, 알았지?”

샌더스 대령이 눈치채지 못하게, 성식이 운전석에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두 손을 내렸다. 오른손을 품에 집어넣으며 성식이 대답했다.

“당신이 ‘정부’ 소속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내가 아는 ‘헌터’중에 당신같이 뚱뚱한 사람은 없거든.”

성식은 슬며시 오른손을 다시 꺼냈다.

한동안 둘은 말없이 룸미러로 눈빛만 교환했다.

“잊을 뻔했네. 사냥꾼들 특성이, 덫과 매복이라지?”

“맞습니다. 괜스레 쓸데없는 피 보는 건 싫어합니다.”

샌더스 대령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서 아까의 그 조직원을 밖으로 차 버렸나? 운이 좋았다면 살아남겠지. 만약 이대로 도착했다면, 우리가 그를 고문하면서 조직의 정보를 알아내고 죽일 걸 뻔히 알고? 확실히 네 말대로 정부의 움직임을 어떻게 알아낸 건지, 고문하고 죽일 셈이었어. 뭐 꿩 대신 닭이라고, 너라도 잡아 족칠까 했거든. 그런데 초짜가 뭘 알까 싶어서 잠시 고민하느라, 차에서 내리지 않은 거야. 뭘 고민하는지는 알지?”

“압니다.”

성식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곤두섰다.

“그래.” 샌더스 대령이 답했다.

“아, 궁금할 텐데 지금 나, 아직도 고민 중이야.”

샌더스 대령이 어깨를 으쓱했다. 성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했다.

살짝 치켜뜬 채 노려보고 있는 샌더스 대령의 눈빛이 어둠 속 고양이의 눈처럼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꼼짝하지 않은 채 성식은 계속 자세를 유지하며 그런 그를 살폈다.

“......”

“......”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샌더스 대령의 입에서, 차갑고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고민은 이제 끝났어.”

“결정하셨나요?” 성식이 오른손에 힘을 주며 천천히 답했다.

“맞아. 나도 사냥을 참 좋아하거든.”

샌더스 대령의 오른손이 성식의 귀 뒤를 찔렀다. 광택을 빛내며 번뜩이는 칼날이 목덜미를 후벼 파기 전에, 성식은 몸을 돌리지 않고 그대로 품에서 꺼낸 걸 들어 그의 칼날을 막았다. 챙! 떨림에 샌더스 대령이 팔을 뒤로 뺐다. 바닥에 몸을 숙인 샌더스 대령이 팔을 뻗어 다급히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열리지 않는다. “역시.” 바짝 바닥에 엎드린 그가 소리쳤다.

“잠갔나? 날 이길 자신 있어?”

성식의 몸이 좌석 아래로 사라졌다. 재빨리 몸을 돌린 성식이, 좌석을 방패 삼아 최대한 구부렸다. 샌더스 대령의 칼날을 막은 가스 분무기는 옆구리가 찌그러져 마치 구겨진 알루미늄 캔 같이 보였다. 다 써버리는 게 아니었는데. 좀비를 기절시키는데 너무 많이 써버렸어. 성식은 곧바로 바지의 벨트를 풀었다. 순식간에 동그란 올가미 형태로 만든 그가, 샌더스 대령을 도발했다.

“칼을 잘 못 쓰시네요.”

“주 무기는 아니거든.” 샌더스 대령이 몸을 움직이며 답했다. 벨트로 만든 올가미를 움켜쥔 채로 성식이 다시 한번 웃으며 도발했다.

“역시, 너무 뚱뚱해서? 살을 빼야 했었나?”

말을 던지며 성식이 얼굴을 살짝, 좌석 옆으로 내밀었다.

샌더슨 대령이 몸을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칼날을 뻗었다. 노렸다는 듯 성식이 피하며 그의 팔을 잡고, 벨트를 샌더스 대령의 오른 손목에 걸었다. 성식이 벨트 끄트머리를 힘주어 잡아당기자, 올가미가 강하게 조여졌다. 당황한 샌더스 대령이 몸을 황급히 일으켰다. “이런 시발…….” 동시에 일어난 성식이 찌그러진 분무기로 샌더스 대령의 일그러진 얼굴을 가격했다. 억하며 다시 자리에 주저앉는 샌더스 대령의 오른팔이 벨트에 묶인 채로 공중에 덩실 들렸다.

벨트를 자신의 무릎 아래쪽으로 쭉 당긴 성식이 왼발을 치켜들었다. “잠깐만!”

샌더스 대령이 소리쳤다. “잠깐 기다려봐!”

콰직.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큰 소리로 울려 퍼졌다.

“으아악!”

고통 어린 비명을 지르며 샌더스 대령이 부러진 팔을 빼내려 애썼다. 온 힘을 다해 벨트를 당기며, 성식은 재차 발을 들어 그런 샌더스 대령의 부러진 팔을 계속 짓밟았다. 콰직. 콰직. “이 새끼가!” 샌더스 대령의 왼손에 들린 칼이 오른손에 묶인 성식의 벨트를 잘라냈다.

“이런 시발!”

숨을 몰아쉬며 둘은 다시 대치상태로 들어갔다.

좌석 하나를 가운데 두고, 팽팽한 살기들이 서로 부딪히며 차내를 마구 휩쓸고 있었다.

“빌어먹을. 주머니칼 따위 역시 쓸모가 없어.”

샌더스 대령이 중얼거렸다.

“허리띠도 내 주 무기는 아닙니다.”

성식이 답했다.

“좋아 갈 데까지 가 보자. 나도 우리 쪽에선 최고의 사냥꾼이라고 불렸다고. 이 와중에 뭘 숨기겠어? 이 좀비는 아주 높은 분의 영애시지. 바이러스에 걸린 걸 지금까지 몰래 숨겨 왔는데 결국 좀비가 되는 뻔한 결과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다 이 지경이 된 거지. 좀비 바이러스가 다 끝나가는 마당에 잿밥 제대로 뿌릴 거라 생각한 윗사람들 지시로 온 거라고. 봉인이라도 풀려서 이것저것 죽이고 다니면 금세 정체가 드러날 테니까. 살아서도 속 썩이고, 죽어서도 속 썩이는 존재야.”

“일단 의뢰를 받은 이상, 저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냥꾼이라는 자부심이 있죠.”

“사냥꾼은 시발, 지들이 뭐라도 된다고 지랄이야.”

샌더스 대령이 이를 갈았다.

“깔끔하게 결론 내줘? 너희들 다 쓰레기들이야. 나라 좀먹는 새끼들. 이 빨갱이 새끼들아. 좋아. 해보자. 내가 직접 네 살을 발라 주지.”

쿵.

쿵쿵쿵.

쿵쿵쿵쿵쿵쿵쿵쿵.

차 뒤편에서 나는 소리였다. 트렁크 쪽이다. 둘은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눈을 커다랗게 뜬 샌더스 대령이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쿵쿵. 끼익. 퉁. 퉁퉁. 성식이 머리를 굴렸다.

제기랄. 아까 포대를 발로 찰 때의 그 떨림이 경련이 아니었단 말이야?

“이봐, 저 좀비, 제대로 처리한 거야?” 샌더스 대령이 외쳤다.

“트렁크에는 뭐가 있지? 무기가 될 만한 게 있어? 저놈이 발작할 만한 트리거가 될 만한 게 있냐고!”

“크로우바.” 성식이 중얼거렸다.

“그 외에도 삽이나 곡괭이 같은, 땅을 팔 수 있는 연장들.”

“미치겠네. 이봐, 휴전하자고.” 샌더스 대령이 말했다.

쩍 하고 운전석 옆 창문이 비명을 내며 갈라졌다. 쿵! 쩍. 두 번의 충격에 유리창이 금방 부서질 듯 사방에 금이 갔다. 성식이 황급히 몸을 빼 반대편 문으로 향했다. 고개를 기울인 채 그런 성식을 보고 있는 그림자의 모습이 보였다. 어둠을 등지고 서서, 크로우바를 들고 목이 꺾여버릴 각도로 머리를 틀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그림자.

“문 열어!” 샌더스 대령이 소리쳤다.

“내 차 뒷좌석에 있어. 이놈을 상대할 수 있는 장비가 있다.”

“휴전입니다.” 성식이 답하며 버튼을 눌렀다.

샌더스 대령이 문고리를 당겼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낌새를 눈치챈 좀비가 몸을 돌렸다. “어떻게든 버텨봐 사냥꾼!” 샌더스 대령이 밖으로 나서며 외쳤다. 좀비가 움직였다.

이런 세상에.

성식이 중얼거렸다.

믿지 못할 속도로 빠르게, 좀비가 샌더스 대령의 뒤를 쫓고 있었다.

크로우바를 든 채 좀비가 달리고 있었다. 샌더스 대령이 기다시피 자신의 차로 필사적으로 향했다. “뭐라도 좀 해봐!” 성식이 경적을 울렸다. 빠아앙! 빠아앙! 빠아앙! 미친 듯이 경적을 누르자, 그 소리에 좀비가 반응을 보이며 몸을 다시 돌렸다.

“잘 했어!”

샌더스 대령이 외쳤다. 그가 지프의 문을 열어 차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성식은 문을 닫고 걸어 잠근 채 경계했다. 쾅! 크로우바가 창을 두들겼다. 쾅!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쪽 창도 갈라졌다. 두 번, 아니 세 번인가. 창이 깨지는 건 순식간이다. 번개같이 머리를 굴렸다. 반대편 문을 열고 나간다. 있는 힘껏 뛴다. 이놈이 나를 쫓아 잡을 확률은? 무기가 될 만한 게 있나.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면 저 돼지가 반격할 수 있어.

쾅!

깨지는 건 순식간이다. 자, 이곳이 안전한가. 아니면 나가는 게 안전한가.

쾅!

창문이 깨지며 파편이 휘날렸다.

성식이 몸을 틀어 뒷좌석으로 재빨리 피했다. 좀비의 팔이 허공을 휘저었다. 바동거리던 그의 팔이 움직임을 멈췄다. “어어어.”

기묘한 소리를 내던 좀비가 팔을 휙, 아래로 내렸다.

벌컥, 하고 문이 열렸다.

뱀처럼 쓱 기어들어 온 좀비가 성식의 왼쪽 뒷다리를 잡아들었다.

손에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성식에게는 이렇다 할 반격의 여지가 없었다. 좀비가 다른 한 손을 들더니 양손으로 성식의 다리를 움켜쥐었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리를 빼보려는 성식에게 곧바로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좀비가 성식의 다리를 붙잡고, 그대로 꺾어버린 것이다.

“으악!” 생전에 어떤 인간이었기에, 다 죽어서 아무 생각 없이도 이렇게 치밀한 거지. 도망칠 수 없게 다리를 공격하다니. 툭 하고 부러진 다리를 떨어뜨리며, 좀비가 몸을 움직여 성식에게 다가갔다. 드러누운 채로 성식이 양손을 뻗었다. 열려있던 문의 가장자리를 붙잡고 성식이 힘껏 몸을 끌어당겼다. 뼈가 튀어나온 왼쪽 정강이 부분이 덜렁거리며 흔들렸다. 바닥에 등을 댄 채로 성식이 뒤로 기었다. 그를 따라 모습을 드러낸 좀비가 고개를 이리저리 마구 흔들며 듣기 싫은 괴성을 흘렸다.

“어어어어어.” 크로우바를 쥔 채로 말이다.

“이봐아!” 성식이 고개를 돌려 목청껏 외쳤다.

“이봐! 아직 이야?”

좀비가 고갯짓을 멈추더니, 다시 옆으로 꺾은 채 가만히, 바닥에 누워있는 성식을 쳐다보았다. 무시무시한 고통이 몰려왔지만, 지금 그까짓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좀비가 크로우바를 높이 들어 올렸다.

“어어어어어어.”

양손을 들어 치켜든 크로우바를 보며 성식은 말라서 더는 나오지도 않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망했군.

성식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퍽. 좀비의 이마 왼쪽 부분이 터지며 날아갔다.

질척이는 피와 뇌수의 파편이 성식의 온몸에 튀었다.

좀비가 여전히 크로우바를 높이 든 채, 고개를 돌렸다. 성식이 눈을 뜨자, 엽총을 들고 서 있는 샌더스 대령의 모습이 보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샌더스 대령이 엽총의 총구를 좀비의 머리를 향해 다시 겨냥했다.

퍼억. 좀비의 몸이 휘청였다. 크로우바가 댕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비틀거리던 좀비가 몸을 숙여 크로우바를 집어 들려 했다.

“회수고 나발이고, 작살을 내버리겠어. 이 빌어먹을 새끼.”

샌더스 대령이 입술을 잘근 씹으며 침을 뱉었다.

성식은 얼른 몸을 일으켰다. 절뚝거리며 성식이 문이 열려있는 구형 승용차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죽기 직전 한숨 돌리고 나니, 반격할 방법이 떠오른 것이다. 분무기. 마비시키기에는 적은 양이지만, 조금이라도 가스 분출이 가능하겠지. 바닥에 뒹굴 던 분무기를 집어 들고, 성식이 다시 차 밖으로 나왔다.

좀비의 얼굴은 위 반쪽이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찔끔찔끔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정육점 부수물 같은 고기조각들이 퍼덕거리며 그런 피 분수를 타고 흩어졌다. 크로우바를 집어 든 좀비가 구부정한 자세로 특유의 괴성을 내질렀다.

“으어어어어어.”

좀비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샌더스 대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부러진 오른쪽 팔 어깨에 엽총을 끼워 넣고, 성한 왼손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총알을 꺼냈다. “나 좀 도와줘. 이 총은 두 발밖에 안 들어간다고. 재장전이 힘들단 말이야. 이런 시발, 머리를 날려버렸는데도 움직이잖아!” 좀비가 크로스바를 들고 샌더스 대령을 쳐다본다.

시선을 떼지 않고 샌더스 대령은 차분히, 총알을 하나 들어 엽총에 장전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남은 턱주가리도 날려줄게.”

샌더스 대령이 두 번째 총알을 장전하며 중얼거렸다.

“어어어.”

좀비가 크로스바를 던졌다.

갑작스레 날아든 크로우바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얻어맞은 샌더스 대령이 넘어지며, 엽총을 놓쳐버렸다. 넘어진 그를 향해 좀비가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으윽!”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으나, 하필이면 부러진 오른팔이었다.

좀비의 턱이 샌더스 대령의 팔을 물어뜯어 버렸다.

아악. 피가 터져 나온다. 물고 있던 팔을 뱉어낸 좀비가,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크로우바냐?” 샌더슨 대령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런 시발, 이 와중에도 흉기를 찾아? 너 뭐하던 새끼였냐?”

좀비가 크로우바를 집어 들고, 위로 들었다가 그대로 내리찍었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다리 한쪽에 크로우바 끄트머리가 박혔다. “으아악!” 바동거리며 샌더스 대령이 저만치 떨어진 엽총을 향해 손을 뻗었다. 좀비가 크로우바를 다시 뽑아 들었다. 뽑자마자 핏줄기가 솟구쳤다. 샌더슨 대령의 입에서 고통 어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래, 어디 죽여 봐!”

샌더슨 대령이 악을 썼다.

쉬익.

좀비의 목에, 올가미가 걸렸다.

셔츠를 벗어 올가미를 만든 성식이 좀비 뒤쪽으로 다가가 목에 걸어 순식간에 묶어버렸다.

개목걸이처럼 조이는 올가미가 답답한 듯, 좀비가 풀기 위해 목 언저리로 손을 올렸다. 성식이 두 손으로 남은 셔츠 끄트머리를 힘껏 당겼다. 벌러덩 뒤로 자빠진 좀비가 괴성을 질러댔다.

“우어어어어!”

아랑곳하지 않고 성식이 그런 좀비를 질질 끌었다. 휘청 이며 넘어진 성식이, 차 범퍼 가장자리에 남은 셔츠 끝을 묶었다. 좀비의 손이 목을 옭아매는 셔츠를 풀기 전에, 성식은 아까 찾아 주워든 가스 분무기를 들어 좀비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죽어.”

라이터 불꽃이 분무 되는 가스 구름을 만나 순식간에 거대한 불길로 부풀어 올랐다.

화염에 휩싸인 좀비가 꺽꺽거리며 두 팔을 마구 휘저었다. 옆으로 몸을 굴린 성식이 샌더스 대령을 쳐다봤다.

상체를 반쯤 세워 한 손으로 엽총을 겨누고 있던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팔을 가져갔으니 답례로 대가리를 날려주지!”

성식이 놀라 재차 옆으로 피했다.

퍽. 왼쪽 볼이 터지며 살덩어리가 튀었다. 묶인 올가미가 불에 타 끊어지자, 좀비는 꿈틀거리며 다시 일어섰다. 불길이 거세졌다. 한 걸음, 두 걸음, 불덩어리가 된 그가 샌더슨 대령을 향해 힘들게 걸음을 옮겼다. 퍽. 작게나마 형태를 유지하던 남은 얼굴 부분도 터져 나갔다.

조금씩 걸어가던 좀비의 움직임이 그제야 멈추었다.

샌더슨 대령이 다시 주머니에서 총알을 꺼냈다. 힘겹게 총알을 장전하려는 그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의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사냥꾼 승부는……. 내야 하는데…….”

샌더슨 대령의 장전 된 엽총이 재차 좀비의 몸을 겨누었다.

“끝난 거 아니야?” 성식이 외쳤다. “불타고 있다고!”

그 말에 대답하듯이, 좀비의 몸이 움찔하며 흔들렸다.

우두둑. 활활 타오르는 목 없는 시체가, 허리를 고 각 도로 꺾으며 앞으로 풀썩 쓰러진다.

하나, 둘, 셋, 넷.

기괴하게 기어오는 그의 모습에, 성식과 샌더슨 대령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날아간 얼굴로 인해 드러난 목의 단면이 그로테스크하게 이런 둘을 비웃었다.

“거기냐.”

퍼억.

퍼억.

두 발의 총성이 울리며 좀비를 가격했다. 단면 내부를 겨냥했는지, 털썩거리는 흔들림과 함께, 좀비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움찔거리며 흔들리던 좀비의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졌다. 둘은 여전히 그런 그의 모습을 뚫어지라 노려보았다. 불길이 올라왔다.

새까맣게 타들어 가는 좀비의 몸을 태우는 불길이, 캠프파이어 불꽃처럼 어두운 고속도로를 밝혔다.

샌더스 대령이 엽총을 집어 던졌다.

지켜보고 있던 성식이 놀라며 말을 꺼내기 전에, 그가 먼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총알이 없어.”

둘은 한동안, 말없이 타오르는 불길만 바라보았다.

행여 다시 움직인다면, 그때는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여전히 좀비는 미동도 없었다.

십여 분을 더 기다려본 성식이, 좀비가 쓰러진 걸 확신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리자 잠깐 잊고 있었던 고통이 그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비명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며, 저만치 엎드려 있는 샌더스 대령을 향해 성식이 외쳤다.

“괜찮습니까?”

“아니.”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샌더스 대령이 입에서 피를 토했다.

“승부…….”

샌더슨 대령이 힘겹게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다.

“내가 이긴 거야. 이 승부는…….”

“무슨 승부? 좀비를 쓰러뜨린 건 당신이야.” 성식이 외쳤지만, 그가 말을 알아듣는지는 알 수 없었다. 샌더슨 대령이 칼을 손에 꼭 쥐고, 기도하듯 품에 안았다.

“사냥꾼과의 승부 말……. 이야.”

그렇지.

성식은 그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팔을 물어뜯긴 그가 어떻게 될지를.

기록되어 있는 예전의 그 지옥도를 펼친, 좀비 바이러스의 전파 과정을.

타액과 혈액이 섞이면, 몸 안에서 잠복기 없이 1시간 이내 모든 세포를 말살하고 변이하며 한 번 죽고, 부활하는, 깨어난다는 사실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구로 인해 거래되는 좀비들. 서양으로 불법 밀수품이 되어 넘어가는 그것들. 그 좀비들이, 트리거 없이 봉인이 풀리면?

아직은 그런 적이 없지만, 그 누가 동북아시아가 좀비가 득실대는 지옥이 될 거로 생각했었겠는가?

멀리 갈 것도 없다. 나 같은 사냥꾼들은 의뢰에 충실하지. 사냥해 온 수많은 사냥감은 가만히 장난감의 인생을 살 거라는 자신 있는가?

오한이 온다.

샌더슨 대령이 엎드린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이 칼이…….”

그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땅에 박으며 축 늘어졌다.

트리거가 되겠지. 성식은 이미 그가 할 말을 알고 있었다.

갑자기 짜증이 몰려왔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자꾸만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건,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아니라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다.

“후우” 성식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새벽4시]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은 역시 하나였다.

답은 없다.

숨을 몰아쉬며 성식은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조금 있으면 동이 튼다. 헛웃음이 나온다. 동이 트면 뭐 어쩌라고? 답이 나와? 누군가 지금 이 상황을 목격하고, 구조를 요청하면 나는 살게 되는 건가? 무슨 게딱지 같은 소리야.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기어서라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럴 수가 없다. 성식은 자신의 다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부러진 뼈가 살갗을 뚫고 튀어나왔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체념이 더 먼저다. 조금 있으면 죽는다.

“어이! 이봐! 아직 아니지? 벌써 변한 건 아니지?”

성식이 그를 보며 외쳤다. 약간은 울먹인 것도 같았다. 쪽팔리네. 대답은 없었다.

죽은 듯 엎드려 있던 그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며, 그가 몸을 뒤틀었다. 우두둑. 이를 갈던 그가 고개를 쳐들었다. 죽은 눈. “미치겠군.” 성식이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그가 입을 벌려 기묘한 소리를 냈다. “어어어. 어어어어어어.” 듣기 싫은 소리.

“어어어어어.”

그가 천천히 일어섰다. 한쪽 팔만 덜렁거리는 그의 몸이 아주 조금씩, 성식에게로 향했다. 하나. 둘. 셋. 넷. 십여 걸음이면 도착하는 건 순간이다.

“결국은 죽는구나.”

왜 이 일을 한다고 했을까. 평소에 욕은 입도 벙긋하지 않았었는데, 어느새 욕지거리가 흘러나온다.

하는 게 아니었는데. 빌어먹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이르자. 그가 입을 벌렸다.

지저분한 타액이 줄줄 흐르며, 정갈한 치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빨 하나는 관리 잘했네. 엉뚱한 생각을 하는 성식을 향해, 그의 성한 팔이 성식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 엄청난 힘에, 성식의 어깨가 움푹 파인다.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성식의 머리를 향해, 그의 벌어진 입이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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