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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러다이트

돌로레스클레이븐

정우는 수풀 너머를 살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아래서 평화로이 풀을 뜯는 사슴 무리가 눈에 띄었다. 그는 곧장 아랫배에 매달린 화살 통에서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꿩 깃털로 짜서 만든 화살깃이 손에 보드랍게 얽혔다. 하지만 그는 시위를 당기지는 않았다. 그저 화살을 시위에 걸어만 두고서 조심스럽게 수풀 뒤에 숨어 걸음을 옮겼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있는 탓이었다.

그는 수풀 속을 전전하면서 천천히 사슴들을 살폈다. 깡마른 놈. 그 왼쪽에 커다란 뿔이 나뭇가지처럼 난 커다란 수사슴이 눈을 부라리면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아마 정우 같은 불청객들이 나타나 무리에 해를 끼칠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컷 뒤로 암컷들과 작은 뿔이 자라나는 어린 수컷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미 곁에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작은 새끼들 몇 마리가 한가로이 나비를 쫓고 있었다.

정우는 손가락에 침을 묻혔다. 그리곤 손가락을 머리 위로 들어 바람을 살폈다. 바람은 얼굴 정면으로 불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멀찍이 떨어진 사슴의 누릿내가 코끝을 지독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는 새끼들을 향해 화살을 겨눴다. 맞출 수 있을까? 그는 불안한 눈초리로 새끼를 노려보았다. 혼자 사냥할 때 철칙은 절대로 큰놈을 노리지 않는 거야. 큰놈들은 화가 나면 사람에게 덤벼들거든. 항상 작고 어린놈을 노려.

이제는 기억으로만 남은 철호 아저씨가 말하자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팽팽하게 당겨진 활대가 휘면서 마른 나무가 비틀어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바람에 사슴 몇 마리가 정우 쪽을 힐끔 쳐다보기도 했다. 정우는 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새끼 사슴을 향해 화살촉을 겨눈 뒤 시위를 놓았다. 빠르게 활대를 떠난 화살이 휙 소리를 내며 사슴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사슴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숲속을 가득 메웠다.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건 수사슴이었다. 놈이 울기 시작하자 사슴들은 일제히 숲속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암사슴들이 뛰자 아직 어린 티도 못 벗은 사슴들이 그 뒤를 이었다. 제일 뒤에 남아 있던 수사슴은 성이 난 듯 뿔을 세우다 암사슴들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사슴들이 달리기 시작했음에도 정우는 서두르지 않았다. 어차피 사람은 사슴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었다. 거기다 사냥은 인내심을 가지고 버티는 것이 중요했다. 그는 찬찬히 무리를 살폈다. 그러자 새끼 중 뒤처지는 녀석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런. 그는 수풀 속으로 사라지는 어린 사슴을 바라보았다. 화살은 녀석의 뱃가죽에 박혀 있었다. 별로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내장이 터지면 그 사냥은 허탕 친 거야. 철호 아저씨는 혀를 차면서 말했다.

하다못해 다리라도 맞춰야 해. 정우는 곧장 수풀너머로 사라진 사슴들을 향해 두 번째 화살을 쏘았다. 화살이 시위를 떠나기 무섭게 다친 녀석은 수풀 너머로 사라졌다. 화살도 수풀너머로 사라졌다. 돌아온 것은 오로지 둔탁한 소리뿐이었다.

망할. 그는 활을 어깨에 가로 메곤 사슴들이 사라진 곳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수풀 속으로 한 걸음 들어서기 무섭게 나무에 엉성하게 박힌 화살이 정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는 화살을 뽑아 화살촉을 살폈다. 돌로 만든 화살촉 끝이 조금 부러지긴 했지만 조금 갈면 한 번은 더 쓸 수 있었다.

그는 화살을 화살 통 속에 넣고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이끼 위에 떨어진 핏자국을 살폈다. 배를 맞춘 탓일까? 발자국을 따라 띄엄띄엄 이어진 핏자국은 사슴이 간 방향을 알려 주고 있었다. 정우는 사슴이 간 방향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끼가 잔뜩 낀 바위를 지나 사슴 털이 잔뜩 묻은 소나무를 살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바윗돌 아래 떨어진 화살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정우는 그 화살을 집어 들었다. 검붉은 핏자국 위로 진하고 역한 냄새가 나는 덩어리가 조금 묻어 있었다. 아무래도 배를 맞춘 덕에 내장이 터진 모양이었다. 즉, 새끼 사슴에게서 얻을 수 있는 이틀분의 고기 중 하루 치 고기를 날려 먹었다는 것을 뜻했다.

정우는 입술을 씰룩이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냥꾼이라면 절대로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아. 철호 아저씨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정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단 다친 녀석을 찾기만 하면 하루 치 고기라도 건질 수 있을 테지. 그는 풀숲에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손으로 쓸어 모아 입안에 밀어 넣고 우물거리면서 생각했다.

머리 위에 떠 있던 해는 서서히 풀숲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정우가 새끼 사슴을 찾은 때는 이미 태양이 머나먼 숲 건너편으로 얼굴을 감추던 때였다.

새끼 사슴은 딸기나무 아래 힘없이 앉아 있었다. 붉게 물든 상처 자국 사이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녀석은 가냘픈 숨을 몰아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부질없는 노력이었다.

정우가 수풀 속에서 걸어 나오자 새끼 사슴은 부들거리는 뒷다리에 힘을 주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이끼를 밟은 바람에 그만 바닥에 미끄러져 왼쪽 골반을 고목 뿌리에 부딪히고 말았다.

아무래도 더는 걸을 수 없는 녀석이라 버려진 모양이었다. 정우는 천천히 사슴에게 다가갔다. 그는 철호 아저씨에게 배운 것을 상기했다. 일단 주위를 살펴야 했다. 숲은 혼자서 사냥하는 곳이 아니었다. 눈은 어디에나 있었고 이빨은 화살보다 빠르게 다가와 사냥꾼을 찢어발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냥엔 정우를 바라보는 시선은 없었다. 풀숲 어디에서도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풀잎은 바람결에 흔들렸고 삭정이는 부러지지 않았다. 나무들도 이따금 가지를 흔들어대긴 했지만, 표범이 흔들어대는 것보다도 훨씬 더 조심성 없이 흔들렸다.

그렇게 정우는 다시 사슴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는 허리춤에 감추고 있던 작은 칼을 꺼냈다. 돌을 갈아 만든 칼이었다. 정우는 천천히 사슴에게 다가갔다. 그럼에도 사슴은 도망가지 않았다. 그가 손을 내밀어 사슴의 등에 손을 얹을 때도 사슴은 가만히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는 녀석의 눈동자에서 기대감을 엿보았다.

맑은 눈망울로 정우를 올려다보는 작은 새끼는 귀를 축 내리고 코끝을 실룩거리고 있었다. 마치 어미에게 젖을 달라고 애원하듯이.

하지만 정우는 그 기대감을 이뤄줄 만한 아이가 아니었다. 사슴의 삶을 꺾어놓은 것도 정유요, 이제 사슴의 목숨을 거둬갈 이도 정우였다. 문제는 그가 사슴을 죽이고 가죽을 벗기기에 너무도 어렸다는 점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돌칼을 들어올렸다. 이걸 사슴의 목에 찔러 넣어야 했다. 그래야 사슴을 죽이고 가죽을 벗긴 뒤, 손질을 해서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파르르 떨리는 손은 정우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칼을 쓰는 것은 멀리서 화살을 쏘는 것과 다른 느낌이었다. 가까이서 괴로워하는 존재의 숨통을 끊어버려야 한다는 것은 정우에게 있어 너무도 벅찬 일이었다. 정우는 돌칼을 내렸다.

차라리 산딸기나 먹으면서 살 걸. 정우는 깊은 후회에 잠겼다. 눈두덩이가 알싸하게 달아올랐다. 곧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줌 밖에 되지 않는 산딸기를 언제까지 먹어야 할까? 언제까지. 풀뿌리만 캐다 먹어야 할까? 이 헌 옷을 언제까지 입고 있어야 할까? 적어도 가죽 한 장만 더 있었어도 깊은 밤마다 추위에 놀라 깨지 않아도 될 터였다. 고기를 뜯으면서 조금은 주린 배를 채울 수 있을 터였다.

언제나 그랬듯 두려움과 갈망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었다.

빨리 끝내야 해. 철호 아저씨가 말했다. 벌써 뭔가가 피 냄새를 맡았을 거다. 지금 해야 해. 철호 아저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이야.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지금. 정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철호 아저씨가 호통 치자, 정우는 돌칼을 고쳐 잡았다. 그리곤 사슴의 목에 돌칼을 찔러 넣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애처로운 시선을 보내던 새끼 사슴은 정우의 품속에서 버둥거렸다. 마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어린 소년처럼. 녀석은 고통스러운 듯 다친 몸을 비틀어 어떻게든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정우는 새끼 사슴을 도망치게 두지 않았다. 그는 곧장 칼날을 안쪽으로 더 깊숙이 밀어 넣고 녀석의 턱 밑까지 그었다. 칼날이 살점을 찢고 빠져나오자 사슴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정우의 입술도 파르르 떨렸다.

사슴은 잡자마자 머리를 때버려야 해. 철호 아저씨가 첫 사냥에서 말씀하신 내용이었다. 그리고 정우는 아저씨의 말대로 했다. 한때 새끼 사슴이었던 고운 머리가 땅에 떨어지자 정우는 그 머리를 수풀 너머로 집어 던졌다.

그는 잘린 머리가 싫었다. 생기가 사라져가는 그 시선들은. 차마 마주하기 힘들었다. 어릴 적에도 그는 그랬다. 그럴 때마다 철호 아저씨는 동물과 눈을 마주쳐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정우는 혼자가 된 뒤로 단 한 번도 죽은 동물과 눈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그 시선들은. 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고루하다 못해 썩어 문드러져서 더는 쳐다보기도 싫은 감정이었다. 아주 어릴 적엔 소중했던 것 같았지만. 저주받은 아이가 지니기엔 그것은 너무도 무거운 짐이었다.

이제 정우는 사슴의 배를 갈랐다. 양 앞다리 쪽에서 윗배 쪽으로 비스듬히 터진 내장을 헤집어냈다. 찢어진 내장에서 터져나온 반쯤 소화된 풀잎이 뱃속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정우는 혀를 차면서 내장과 똥을 손으로 긁어냈다. 그리곤 식도를 잡아 뺀 뒤에 항문 쪽을 칼로 잘라 내 대장을 조심스럽게 드러냈다.

사슴 안에 축 늘어져 있는 오줌통을 손으로 잡아 잘린 항문과 함께 끄집어냈다. 적어도 오줌통이 터지는 것은 막아야 했기에 그는 내장이 그냥 나무뿌리를 따라 땅바닥으로 흘러내리게 두었다. 언덕비탈을 따라 빠르게 흘러내리는 내장은 굳다만 페미컨처럼 출렁거렸다.

그 뒤에 그는 핏물을 뺐다. 이끼 위로 흐르는 검붉은 액체가 시냇물처럼 흘러내리다 이내 검은 자국만 남긴 체 사라졌다.


정우는 고기가 된 사슴을 어깨에 짊어졌다.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제거한 터라 사슴은 그리 많이 무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굴로 돌아가기엔 날이 너무 어두워진 뒤였다. 정우는 한치 앞도 분간 되지 않는 숲길을 노려보다 천천히 발길을 돌렸다.

그가 향한 곳은 사슴이 누워 있던 나무였다. 오래도록 자란 아름드리나무는 튼실한 가지를 자랑하듯 잔가지들을 흔들어댔다. 고민할 것은 없었다. 어차피 조만간 나뭇가지도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될 터였다.

하지만 올라가기 전에 우선 정우는 사슴 고기부터 처리해야 했다. 표범이나 다른 동물들이었다면 아마도 물고 그대로 나무를 탔을 터였다. 하지만 정우에게는 강한 이빨 따윈 없었다. 그렇다고 한 팔로 사슴을 잡고 올라가거나 어깨에다 짊어진 채로 올라갈 순 없었다. 때문에 정우는 사슴을 어깨에 들쳐 멘 뒤 벗겨낸 사슴 가죽으로 사슴의 양 다리를 묶었다. 아직 생각보다 보드라운 발굽을 동여맨 가죽이 사슴을 고정시켰다.

정우는 곧장 사슴의 가죽과 고기를 어깨에 가로 멨다. 활과 같은 방향으로 맨 터라 조금 거북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기를 아래에다 두고 혼자서 올라갔다간 어떤 놈이 나타나 고기를 체갈 지도 몰랐다.

그렇게 정우는 힘겹게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잔가지와 껍질을 적절히 발판삼아 무거운 몸을 지탱하던 정우는 얼마 안가 큼지막한 가지를 찾을 수 있었다. 정우의 허벅지보다 더 굵은 가지는 정우와 사슴이 함께 올라타도 끄떡없을 것만 같았다.

정우는 거미처럼 천천히 나무를 기어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햇살마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출 때 즈음. 그는 눈여겨봤던 가지 위에 고기를 걸쳐둘 수 있었다. 혹시 몰라 한번 가지를 흔들어 본 뒤에야 안심하고 가지 위로 기어올랐다. 그러자 밤하늘이 그를 맞이했다. 깜빡이는 별들로 뒤덮인 검은 강물은 정처 없이 하늘 길을 흐르고 있었다.

정우는 천천히 그 별들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오늘 하루 종일 뛰어다녀서 잡은 게 고작 새끼 사슴한마리라니. 웃기지도 않았다. 어른들이 계셨다면 아마 오늘 중으로 다 큰 사슴 한 마리는 너끈하게 잡았을 터였다. 하지만 어른들은 이제 없었다. 언제나 정우를 무시하고 얕잡아 보던 아이들도 이제는 어디에도 없었다.

정우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사슴 가죽을 가슴에 둘렀다. 멧돼지 가죽보단 한참 작은 가죽이었지만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아마 이 가죽은 잠시 동안은 밤의 추위로부터 정우를 지켜줄 터였다.

그는 사슴 허벅지 살을 도려내서 한입 덥석 입에 물었다. 피 맛이 여전히 비릿하게 입안을 감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고기 서너 점을 더 취한 정우는 날고기를 질겅질겅 씹었다. 역한 비린내가 입안을 가득 채우자, 그는 반쯤 씹다만 고기를 목구멍 안으로 넘겼다. 내일. 제대로 마른 가지를 모아서 불을 피워야지. 그는 서쪽 하늘을 노려보았다. 서쪽 하늘 어딘가에 벼락이 내리치자,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그는 스스로를 달래면서 고기를 먹었다. 여전히 비린 맛은 가시지 않았다.


꿈속은 정우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그 안에서 그는 적어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어울린다는 표현은 그리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정우는 누구보다 뼈저리게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야! 저주받은 놈!” 아이들 한 무리가 소리쳤다. “진흙이나 먹어라! 똥 같은 놈아.”

아이들 중 누군가가 소리치고 나면 진흙 한 덩이가 정우의 머리를 후려쳤다. 정우는 피할 세도 없이 냄새나는 덩어리와 하나가 되어야 했다. 얼굴과 머리카락이 완전히 진흙 속에 파묻혔다. 어떤 때는 눈 속에까지 진흙과 오물이 들어와 한참동안 부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런 정우를 보며 비웃었다.

“부모 팔아 얻은 목숨으로 잘도 사는구나? 더러운 자식아! 마을에서 꺼져!”

까르르.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된 정우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익숙해 질대로 익숙해진 괴롭힘이었다. 어린 정우는 그들에게 대를 들어봐야 좋을 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깨닫고 있었다. 저 아이들은 나이도 제법 있었고 머릿수도 많았다. 심지어 편들어주실 부모님도 계셨다. 하지만 정우에게는 이 세 가지 중 아무 것도 없었다.

정우는 흔히들 말하는 고아였다.

부모님은 그를 낳자마자 돌아가셨다. 마을어르신들의 말씀에 따르면 두 분은 정우와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하늘이 끝나는 곳’에 자리한 신당에서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무슨 기도를 올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중요한 건 두 분 다 그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마른하늘에 내리친 천둥번개를 맞고 돌아가셨다는 점이었다. 반나절에 걸쳐서 사람들이 찾아낸 두 분의 흔적은 타다 남은 발가락과 조각난 손뿐이었다.

그날 부로 정우는 저주받은 아이가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번개 치는 돌, 정우’란 이름이 ‘저주 받은 돌, 정우’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누가 먼저 그를 그렇게 불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신당에 내리친 벼락이 예사 번개가 아니란 소문이 무성했기에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그 말에 수긍했다.

딱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야 이놈의 새끼들아!”

벼락같은 호통이 내리치자 아이들은 놀란 사슴 때처럼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오솔길을 따라 한 남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정우는 환하게 웃으면서 오래된 거목 같은 남자에게 달려갔다.

“철호 아저씨!”

“잘 지냈냐?” 아저씨는 다부진 두 팔로 정우의 어깨를 툭툭 내리치면서 말했다.

“동굴은 어떠냐? 먹을거리는 많이 남아 있니?”

“네. 아직 은요. 페미컨은 많아요. 맛은 없지만요.”

철호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곤 뒤통수에 찐득하게 들러붙은 진흙을 때어주면서 말했다.

“좋아. 오늘은 뭐하고 놀았니?”

“놀긴요. 애들이 절 항상 괴롭히죠.”

철호 아저씨는 멋쩍은 미소를 띠며 정우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정우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아저씨. 오늘도 같이 사냥 가는 거예요? 저도 따라가도 돼요?”

“아니, 오늘은 아저씨들끼리만 갈 거다. 가는 김에 꿀도 좀 따고 사슴이랑 돼지도 잡을 거다.”

아저씨는 슬쩍 얼굴을 들이밀면서 말했다.

“다녀오면 기름 빼는 법도 알려주마. 페미컨 만들 땐 그것부터 알아야하거든. 이왕이면 며칠 있다가 저기 사냥터 오두막에 와보렴. 거기서 페미컨을 만들거니 까 이왕이면 페미컨 만드는 법까지 배워두자. 알겠지?”

정수는 어색한 표정으로 ‘네’라고 대답했다. 그는 페미컨이 싫었다. 말라비틀어진 고기를 갈아 느끼한 지방을 섞어서 굳힌 음식인 터라 너무도 느끼했다. 거기다 마른 딸기까지 영글어진 이상한 맛이 싫었다. 차라리 신선한 산딸기로 연명 하는 게 나았노라 당시 어린 정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철호!”

멀찍이서 누군가가 손을 흔들면서 소리쳤다. 사냥을 나가는 아저씨들인 듯 했다. 철호 아저씨는 아저씨들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리곤 오솔길을 절반가량 지나 숲과 마을의 경계 즈음에 서서 정우에게 손을 흔들었다. 정우도 손을 흔들었다.

정우는 마을 어귀의 작은 언덕배기에 앉았다. 그리곤 아저씨가 사라진 오솔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언제 돌아오실까? 하지만 아저씨는 그날 돌아오지 않았다.


며칠 뒤. 페미컨이 떨어지자 정우는 동굴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고 쌀쌀한 바람이 묘하게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스산한 날이었다. 그는 곧장 숲 속에 자리한 사냥터 오두막으로 향했다. 며칠 전에 철호 아저씨가 사냥을 간다고 하셨으니 분명 말린 고기랑 지방을 섞어 페미컨을 잔뜩 만들어 뒀을 거란 계산에서였다. 하지만 정우의 기대와는 달리 사냥터는 비어있었다. 오두막의 화로는 잔불도 남아있지 않았고 화로 옆에 방치된 고기는 모두 허옇게 설은 상태였다. 지방을 발라내지 않은 내장은 이미 구더기의 차지였다.

구역질을 참지 못한 정우는 곧장 밖으로 나왔다. 나무를 붙잡고 몇 번인가 토악질을 한 끝에 그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쥐어 짤 수 있었다. 한 번도 고기를 방치해 둔적이 없는 철호 아저씨가 어째서 고기를 썩게 둔걸까? 잠시 땅바닥을 바라보던 정우는 잽싸게 수풀을 내달렸다. 그리고 그의 예감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벌써 인기척이 났어야 할 마을 어귀까지 들어와도 그를 놀려대는 소리는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딜 가나 따라오던 경멸스런 시선도, 수군거리던 목소리도 없었다. 마을은 온통 적막에 휩싸여 있었다.

뭔가 잘못 됐어. 정우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는 이번에 마을 한가운데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을 찾을 수 있었다. 정우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흰자위만 남은 두 눈을 감지도 못한 체 그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개중에는 낯이 익은 아이도 있었다. 매번 뒤통수에 진흙을 뿌려대던 녀석이었다. 그 녀석은 진흙 속에 뺨을 파묻고 미동도 없이 드러누워 있었다. 키 작은 놈도, 아이를 안은 아줌마도. 모두 맨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들의 얼굴엔 붉은 색 반점이 가득했고 사타구니와 목이 시뻘겋게 부어있었다.

시퍼렇게 질린 정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힘겹게 옮겨 죽어버린 이들의 마을을 가로질렀다. 그리곤 마을 반대편에 있는 철호 아저씨 네 집으로 향했다.

아저씨 집 앞에 걸음을 멈추기 무섭게 기침소리가 오두막 안에서 흘러나왔다. 정우는 풀잎을 엮어 만든 앞문을 들추고 들어갔다. 그리곤 입술을 깨물면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곳엔 마지막 사냥꾼이 앉아 있었다.

“정우냐?”

지칠 대로 지친 얼굴에 붉은 반점을 가득 머금은 철호 아저씨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의 다부진 팔뚝이 파르르 떨리자 정우는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만. 더 이상, 오, 오지 마.” 아저씨는 힘없이 말했다.

“너도, 오오, 옮는다. 최대한 떨어져.”

“아저씨, 왜 이래요? 마을이…….”

“모르겠구나. 다들 아프다고 하더니……. 아이들도, 아, 아프다고 했는데…….”

철호 아저씨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정우야. 우리, 부, 부족은 가망이, 없구나……. 아무래도, 나도 여기까지인거 같다.”

“아니에요. 아저씨. 힘내요. 제가 나가서 뭐라도 잡아올게요. 그러면 힘이 나실 거예요.”

“아니,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나, 난 이미 글렀어.”

그는 시뻘겋게 부어버린 허벅지를 내보이면서 말했다. 그의 종아리는 목덜미만큼이나 시뻘겋게 부어있었다. 거기다 싯누렇게 농익은 환부에는 누런 고름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철호 아저씨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고통스럽게 일그러진 얼굴을 애써 펼치면서 입을 열었다.

“정우야. 잘 들으렴.” 그는 식은땀을 닦으면서 말했다. 눈물이 맺힌 큼지막한 눈을 따라 흐릿한 시선이 매달려 있었다.

“네 부모님은……. 서쪽으로 가면, 우리가, 우리 모두가, 구원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절벽너머로 갈 수, 있다고……. 그래서 우리, 우리들을 데리고……. 서쪽, 서쪽 땅으로 가셨다. 하지만 족장님은 돌아가셨지. 번개가 내리쳐서……. 어린 네가 보는 앞에서 돌아가셨어. 으으……. 너와 우리 모두를 더, 더 나은 세상으로 데려다 주실 거라 믿었는데…….”

사냥꾼은 뜨거운 숨을 내쉬면서 몸을 뉘였다. 그는 힘겹게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호쾌하게 웃던 입가는 쩍 갈라져 누런 거품만이 떠오르고 있었다.

“다, 다른, 다른 사람들이, 너얼, 저주, 받았다고 해도……. 넌 자랑스런, 우리 러다이트 족의 후예란다……. 하늘이 끝나는 곳……. 하늘이 끝나는 곳에, 네에, 부모님이……. 은빛 들판 위에서 돌아가신, 네 부모님이 돌아가신 장소가, 심장이……. 어두워……. 아아…….”

그것이 철호 아저씨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 단단했던 손은 축 늘어졌고 지친 눈꺼풀이 아래로 늘어졌다. 그것이 다였다. 정우는 한동안 사냥꾼의 오두막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슬픔보다도 너무도 초라한 죽음에 정우는 차마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그는 아저씨에게 모여드는 파리를 쫓다 지쳐 잠이 들기를 이틀 동안 반복했다. 그리고 역한 냄새를 견디지 못해 밖으로 나왔다. 그제야 정우는 철호의 죽음을 직감했다. 그랬다. 철호는 죽었다. 검은 늑대가 죽은 것이다. 러다이트 족 최고의 사냥꾼이 고작 병에 걸려 침대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언제나 사냥터에서 죽을 거라 장담하던 그 용맹한 이가 그렇게 무너졌다. 정우는 정처 없이 적막에 휩싸인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은 이제 파리의 차지가 되었다.

사람은 하나였건만 셀 수도 없는 검은 벌래 때는 안개처럼 마을 위에 내려앉았다. 그 무리를 뚫고서 멧돼지 몇 마리가 시신을 놓고 싸우기도 했다. 홀로 남은 정우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먹이가 있으면 너에겐 신경 쓰지 않을 거다. 철호 아저씨가 말했던 대로 돼지들은 서로 싸우다 이내 다른 시체에게 두꺼운 코를 처박았다.

정우는 구역질을 참지 못했다. 그가 먹은 것도 없는 속을 게워내자 소리에 놀란 파리 때가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돼지들은 고개를 들었다 다시 배를 채우기에 바빴다. 정우는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때문에 정우는 불을 피웠다. 그가 피운 것은 잘은 나무 조각에 붙은 자그마한 불씨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불씨가 사냥꾼의 집에 옮겨 붙었을 때. 불씨는 거대한 화마가 되어 서서히 마을 전체를 살라먹기 시작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러다이트라는 이름도. 붉은 여울 속에서 천천히 사그라졌다.

정우는 그대로 불타는 마을을 뒤로 하고 숲 속으로 향했다. 그리고 숲속에 배치해둔 사냥터지기의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활과 화살, 그리고 잡다한 먹을거리를 챙겨 더 깊은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게 바로 정우의 삶이었다. 혼자 남은 생존자. 역병을 빗겨간 저주 받은 아이. 그리고 결국엔 외로움과 싸우다 지고 말 쓸쓸한 인간이었다. 아무런 기대도,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살아 갈 고독한 존재였다. 때문에 정우는 계속해서 서쪽으로 향했다. 언젠가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노하신 하늘이 앗아간 두 분의 그림자를 따라 그는 걷고 또 걸었다.

하늘이 끝나는 곳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아침에 일어난 정우는 고기를 바라보았다. 고작 하룻밤 사이였건만 고기 위로 파리 몇 마리가 덕지덕지 끼어 있었다. 정우는 무심하게 파리를 쫓은 뒤에 뒷짐에 찔러 넣은 돌칼을 꺼내 다리살을 뭉텅이로 잘라냈다. 고기 한 덩이를 입에 문 정우는 남은 고기를 먼저 떨어뜨리고 잽싸게 나무 아래로 내려왔다.

숲 바닥엔 간밤에 방문객들이 남긴 흔적으로 가득했다. 새끼 사슴의 내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먹다 남은 허연 덩어리가 버려져 있었다. 거기다 정우가 잠을 자기로 마음먹었던 나무줄기에 깊게 파인 발톱자국이 선명했다.

아마, 늑대일터였다. 간밤에 그랬다면 아마 지금쯤 다른 곳으로 갔을 테지. 정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고기를 집어 들어 어깨 위에 얹은 정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가 손으로 풀숲을 해치고 고개를 들이 밀던 그때였다. 수풀 너머로 회색빛 털들이 그를 맞이했다. 번득이는 노란 눈과 피로 물든 입가엔 침이 주룩 흘렀다. 그것들의 발아래 찢겨진 커다란 사슴 한 마리가 고개를 부자연스럽게 뒤로 젖히고 있었다.

정우는 곧장 늑대를 향해 사슴고기를 집어던졌다.

그 짧은 순간에 늑대들은 거칠게 새끼 사슴고기를 찢어발겼다. 하지만 다른 늑대 두 마리는 새끼사슴고기로 성에 차지 않는 다는 듯 정우의 뒤를 쫓았다. 짖는 소리와 발톱소리가 순식간에 정우를 쫓아왔다. 그는 서둘러 어깨에 가로 멘 활을 꺼내들었다. 아저씨가 가르쳐 주시길 늑대는 측면에서 공격하길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옆에서 덤벼드는 늑대가 있으면 활대로 코를 후려쳐주겠노라 다짐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네 발은 두 발보다 빨랐다.

늑대 한 마리가 발톱을 드러내면서 등 뒤를 덮치자 정우는 땅바닥을 굴렀다. 가슴 언저리를 맨바닥에 부딪치면서 멈춘 터라 정우는 잠시 동안 숨을 쉴 수 없었다. 하지만 숨은 사치였다. 그는 곧이어 자신의 목을 향해 달려드는 누런 이빨을 바라보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활을 쳐들어 늑대의 이빨을 막아냈다. 나무를 잘근잘근 씹어대는 탐욕스런 누런 눈빛이 번뜩이자, 정우는 곧장 화살집에서 화살을 꺼내 놈의 목덜미를 화살촉으로 찔렀다. 그러자 놈의 목덜미에선 뜨거운 액체가 퍼져 나왔다. 그럼에도 놈은 포기를 몰랐다. 활대가 우지끈 소리가 날 때까지 물어뜯고 있었다. 정우는 다시 한 번 놈의 목을 찔렀다. 이번엔 놈의 허연 아래턱이 붉게 물들었다. 그제야 놈은 발을 버둥거리면서 낑낑거리는 소리를 흘렸다. 하지만 늑대는 녀석 하나만이 아니었다.

정우는 다리를 파고드는 통증에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는 자신의 가슴 위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늑대를 밀어내고 왼쪽다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정우의 피를 잔뜩 묻힌 늑대 한 마리가 뻘건 잇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우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날카롭게 날이 선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정우는 길을 잃고 말았다. 그는 방금 전 늑대의 턱을 찔렀던 화살을 다리를 물고 있는 늑대에게 집어던졌다. 그러자 화살은 늑대의 등을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늑대는 개의치 않았다. 놈은 살점을 때어낼 심산으로 정강이를 물고서 빠르게 고개를 흔들어댔다. 작렬하는 통증 속에서 정우는 울면서 늑대에게 애원했다. 제발 살려줘! 그는 피가 범벅이 된 부엽토 위에서 몸부림을 치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목청을 높일수록 정우는 자신이 홀로 남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적막한 숲 속 어디에도 그를 도와줄 이는 없었다. 철호 아저씨도 오지 않을 터였다.

정우는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집어던졌다. 돌멩이든 반쯤 썩은 나뭇잎이든 상관없었다. 조금이라도 상황이 변할 수 있으면 그 걸로도 족했다. 그리고 정우의 바람은 조금씩 이뤄졌다. 늑대가 낑낑거리면서 물고 있던 다리를 놓아준 것이다. 돌멩이에 콧잔등이라고 맞은 모양이었다. 정수는 잽싸게 바닥에 떨어진 활을 집어들었다. 그리곤 아랫뱅 매달린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눈을 맞추는 것도 꿈은 아니었다. 정우는 숨을 골랐다. 그리곤 자신의 목덜미를 향해 달려드는 늑대를 겨누고 시위를 놓아주었다. 그러자 허공을 유유히 가로지른 화살이곧장 눈두덩이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늑대는 몸을 뒤틀면서 나가 떨어졌다. 놈은 앞발을 허공에 내젓고 있었다. 그 동안 정우는 다친 다리를 끌고 네 발로 기다시피 숲 속을 가로질렀다. 절뚝이는 다리엔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뼈와 근육이 전부 커다란 혹처럼 느껴졌다. 어디가 다친 거지? 그는 슬쩍 다리를 살폈다. 그러자 종아리 아랫살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다리에선 여전히 피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놈들에게 따라 잡힐 거야. 그는 두 동강이 난 새끼 사슴을 떠올렸다. 아직 멀쩡한 두 놈은 사슴을 먹느라 늦게 오는 모양이었다. 안 그랬다면 당장에 따라잡혔을 테지.

정우가 냉철하게 생각할 무렵. 그는 뇌리를 관통하는 현기증에 휘청거렸다.

뭐지? 그는 한 번 더 다리를 살폈다. 그러자 모든 게 또렷해 졌다. 다리에서 흘러나온 붉은 강물이 나무 그루터기를 적시다 못해 이끼를 검게 물들이고 있었다. 정우는 그 다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제 죽인 새끼 사슴의 다리일거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정강이에서 뻗어 나온 통증은 그의 뺨을 후려쳤다. 이건 네 다리야. 반쯤 조각난 고기가 아니라 네 다리라고! 고통이 말했다. 어서 피를 멈춰야해. 고한은 그의 팔을 목덜미로 옮겨주었다. 빨리. 질통은 정우의 손을 붙잡아 가슴에 둘러맨 새끼 사슴 가죽을 풀었다. 그리곤 상처 쪽에 둘러매라고 질책했다. 그 뒤로 격통이 찾아왔다.

정우는 금방이라도 온 몸이 산산이 찢겨 나갈 사람처럼 비명을 질렀다. 눈앞에는 시퍼런 불빛이 요동쳤다. 노랗게 질린 하늘이 아찔하게 땅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정우는 망가진 몸을 움직였다. 여전히 현기증이 그의 몸을 점점 주저앉히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그는 젖 먹던 힘을 다해 몸을 움직였다. 오른발. 왼발.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무거운 다리가 측 늘어졌다.

숨이 목까지 차오르던 그때. 왼쪽 수풀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정우는 곧장 목발로 쓰던 활을 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수풀 속에서 탐욕스럽기 짝이 없는 늑대가 튀어나왔다.

놈이 이빨을 드러내자 정우는 옆에서 달려드는 늑대를 활로 후려쳤다. 활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늑대는 깨갱 거리면서 물러섰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몸을 너무 왼쪽으로 급격하게 돌린 탓에 몸에 중심이 무너진 것이다. 정우는 다시 흙 위에 처박혀야 했다. 돌부리에 걷어 채인 뺨이 짓이겨진 딸기마냥 피를 토해냈다.

뺨을 손으로 훔친 정우는 곧장 두 손으로 바닥을 기었다. 왼쪽 다리는 여전히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죽고 싶지 않았다. 조각나고 싶지 않았다. 누구하나 묻어줄 이도, 불태워줄 이도 없는 삶이 너무도 싫었다.

그는 작은 덤불 줄기를 손으로 붙들었다. 그리곤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어차피 도망갈 순 없었다. 그렇다면 몇 놈이라도 쏘아 맞춰야 했다. 적어도 혼자서 죽진 않을 거야. 악에 받혀 없는 기력을 짜낸 정우는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무력한 인간이 소리 없이 다가온 늑대를 이길 도리가 없었ㄴ다.

늑대가 낮은 울음소리를 내자 정우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이미 서너 마리의 늑대가 정우를 둘러싸고 있었다. 한 놈은 눈에 화살이 박혀 있었지만 다른 두 놈은 멀쩡한 놈들이었다. 정우는 화살집을 더듬었다. 그 난리를 겪고도 화살 통 속엔 화살이 두어 자루 남아 있었다. 그가 화살을 꺼내자 늑대들은 슬금슬금 정우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놈들은 노란 눈을 부라렸다. 얼른 포기하라는 듯 놈들은 이따금 정우를 향해 잇몸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정우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절뚝이는 다리를 끌고 뒤로 물러서면서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한발 한발이 중요했다. 그가 화살을 당기자 눈에 화살 박힌 녀석이 몸을 움츠렸다.

매운 맛을 제대로 봤지? 그는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다가오는 두 마리의 늑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디, 어느 놈이 먼저 덤빌 거냐? 정우는 눈을 부라리면서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정우의 생각과는 정 반대로 흘러갔다.

정우는 뒤로 넘어가는 몸을 버둥거렸다. 그 바람에 정우는 시위를 놓치고 말았다. 화살이 수풀 너머 멀찍이 사라지자 늑대들은 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우의 몸은 이미 언덕배기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화살깃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자갈이 콧대를 짓이기고 지나갔다. 입 안 가득 시큼한 맛이 감돌자, 정우는

언덕을 구르던 몸뚱이가 모래먼지와 함께 멈춰 섰다. 정우는 몸을 둥글게 말았다. 갈빗대 마디마디를 때어내서 바꿔 끼우기라도 한 것처럼 온몸이 바스라지다 못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만신창이가 된 정우는 지친 눈으로 늑대들을 찾았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고작 이런 일로 포기할 놈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것은 흙뿐이었다. 그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활을 쳐들었다. 하지만 활의 시위는 활대에서 풀어져 느슨하게 바닥으로 늘어져 있었다. 정우는 곧장 활대를 잡아 휘었다. 그리곤 활대에서 빠진 시위를 활대 끝에 묶었다.

그가 활을 고칠 동안에도 늑대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또 어디로 돌아서 내려오려나 싶던 순간. 언덕 위를 슬쩍 바라본 정우는 늑대들을 찾을 수 있었다.

언덕 위에 선 늑대들은 덤벼들지 않았다. 놈들은 언덕 아래를 이리저리 살폈다. 마치 정우가 보이지 않는 다는 듯 놈들은 혀로 입맛만 다셨다. 그리곤 이내 수풀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정우는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얼떨결에 얻은 승리였다. 그는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왜 뒤를 돌아보았는지는 정우,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곳에 펼쳐진 낮선 광경에 입을 벌렸다.

말 그대로 하늘은 그곳에서 끝이 나고 있었다.

칼로 자른 듯이 반듯하게 그어진 푸르스름한 경계선, 그 너머에는 별들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기이하게 움직이는 불덩이들과 번적이는 별빛들이 한 대 어우러진 밤이었다. 밤은 멀찍이 서있는 거대한 깎아져 올라가는 절벽까지 이어져 있었다. 하얀 절벽 너머로 말이다.

정우는 천천히 별들의 세계로 걸어갔다.

은색 대지가 그의 발가락을 휘감았고 차디찬 눈처럼 새하얀 암반은 거대한 장벽처럼 정우를 막아섰다. 그는 깎아져 오르는 암반을 향해 다가갔다. 어쩌면 저 암반 너머에 무언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암반에 다가가자, 정우는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그 하얀 암반은 지나지게 매끄러웠다. 아니, 애초에 그것이 암반인지도 알 수 없었다. 흑요석조차도 저 암반처럼 매끄럽지는 않았다. 어떤 돌도 저렇게 매끄럽지 않았다.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만들었다고 단정 짓기도 석연치 않았다. 어떤 이도 저만큼 매끄럽고 거대한 암벽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정우는 아득히 높은 암벽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암벽 위에 선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정우는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것이 동물인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일단 하관은 턱이나, 뺨은 사람과 닮아 있었지만, 그 윗부분, 눈가부터 머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붉게 빛나는 눈을 부라리면서 눈 옆에 달린 기다란 거미 다리 같은 것을 까딱거렸다.

그것은 무언가 허연 덩어리를 입안에 꾸역꾸역 집어넣으면서 정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가 기묘한 소리를 내자, 절벽 위에선 몇몇 놈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들 중 누구도 같은 얼굴을 한 이는 없었다. 어떤 이는 거대한 외눈으로 정우를 바라보기도 했다. 어떤 이는 머리 뒤에 달린 수많은 붉은 눈들을 번뜩였고 어떤 이는 머리를 목에서 때어낸 뒤에 하늘로 날아 올리기도 했다. 정우는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는 화살을 활대에 걸어 괴물들에게 쏘았다. 하지만 화살은 놈들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어디선가 날아든 번개가 화살을 산산이 부숴 가루로 만든 탓이었다. 정우는 망연자실하게 그 모든 것을 바라보았다. 번개에 맞아 돌아가신 부모님. 번개에 맞아 부서진 화살. 이 두 가지 사실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연결되자, 그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대체……. 대체 뭐지? 그는 은빛 대지 위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검은 하늘 위로 큼지막한 문양이 절벽 위에 떠올랐다. 정우는 그 글귀를 빤히 쳐다보았다. 형언하기도 힘들만큼 복잡한 문양들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도 잔인할 만큼 빠르게 돌고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철호 아저씨도 이런 기괴한 상황에 대해 일러주신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말이다. 정우는 혼란스런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알 수 없는 문양도, 검은 하늘과 저 기괴한 인간들도 모두 낯설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만일 정우가 은하계 공용어를 알았다면 하늘에 걸린 글귀를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었으리라.

‘26세기에 기계화에 저항한 사람들. 러다이트 운동을 통해 인본주의 사상을 고취하려 했으나 초인본주의에 밀려난 인류입니다. 이와 같은 반 기계운동은 인종을 넘어 인류 전체에서 일어났었죠. 하지만 현재 이들은 모두 멸종하고 이제 남은 생체 인류는 본 동물원에서 마지막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재개장 준비 중임으로 다음에 관람해 주세요.’

하지만 정우가 아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사냥하는 법이나 음식을 만드는 법 따위였다.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았고 누구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기술들이었다. 그렇기에 정우는 답을 눈앞에 놓고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때였다. 혼란스러워 하는 정우의 얼굴위로 허연 무언가가 쏟아져 내렸다.

놀란 정우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허연 덩어리들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정우는 그 덩어리를 집어 들었다. 번들거리는 그 덩어리는 손끝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정우가 덩어리에 관심을 보이자 절벽 위 사람들은 덩어리를 먹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정우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천천히 그것을 입에 가져댔다.

그러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짭조름하고 기름진 맛이 입 안 가득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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