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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어느덧 2018년 독자우수단편 최종 우수작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뛰어난 작품들이 경합을 벌였던 한 해였습니다. 호러와 SF를 중심으로 돋보이는 성취들이 있었고 장르와 무관하게 독창적인 시도들도 더러 눈에 띄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담론들을 녹여낸 작품들도, 인간의 보편적 딜레마를 다룬 작품들도 골고루 섞여 있어, 문학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좋은 소설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게 해주신 모든 참가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매력적인 우수작들 가운데에서 고민한 결과,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너울의 「감정을 감정하기」를 최우수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너울 님, 축하드립니다.

다음은 3분기 우수작이자 2018년 최우수작인 「감정을 감정하기」에 대한 평입니다.

A :후보작이었던 세 작품이 모두 너울 님의 작품이기도 했고 장단이 뚜렷하여 어떤 글을 3분기 우수작으로 선정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작품은 ‘한 터럭만이라도’였습니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배양육이라는 문제를 고민했다는 점에 더해서 인간이 인육 배양육을 먹기까지의 과정과 이후의 전개가 흥미롭게 서술되어 ‘감정을 감정하기’에 비해서 서사적으로는 오히려 더 재미가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감정하기’에서 주인공이 성찰하는 과정의 깊이와 결론을 도출하기까지의 갈등과 갈등 해결, 이후에 주인공이 선택한 결말까지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사고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감정을 감정하기’를 선택합니다. 석 달 간 보여주신 작가분의 흥미로운 작품에 감사합니다.

B :현재 지구상에 살아가는 인간 대부분은 이미 고전적인 의미의 ‘유기체’는 아닐 거예요. 안경을 끼고, 렌즈를 끼고, 라식수술을 하고, 팔다리가 사라지면 의수와 의족을 끼고. 제일 처음 인공심장을 이식한 남자의 아내는 의사에게 그렇게 물었다더라고요. “수술 이후에도 그가 저를 사랑할까요?”
감정이 ‘심장’에서 기원하는 게 아니라고 판명된 지금에야 우스운 말이 되었을 수 있지만, “인류가 끝내 뇌를 완전하게 정복해낸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까지 생각을 밀어붙이면 비단 우스운 말만도 아닙니다.
이 소설은 사이보그가 되어버린 인간이 어디까지 인간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무척 고전적인 SF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고전적인 주제와 사회적 이슈, 과학적 이슈를 잘 버무려낸 수작입니다.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에 생긴 교란을 한 방에 전자두뇌로 해결해 낼 수 있는 세상에서 감각과 사고, 이성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느냐는 질문까지 나아갑니다.
사이보그에 대해 말한다면 도나 해러웨이를 빼놓고 말하기 어렵겠지요. 그녀는 사이보그라는 개념을 사회정치적 연대체의 개념과 철학적으로 연결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은 전자두뇌라는 요소를 통해 매우 선명하게 이 ‘사회적 연대체’ 개념을 흥미롭게 드러내네요. 예슬과 소정이 이전 시대(말하자면 지금의 시대)에서는 ‘타자’로 여겨졌을 성소수자라는 점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심지어 주목받지 않게 그려진 것도요) 그 모든 요소들을 뚫고 타자에 대한 환대로 나아가는 ‘혼종’-예슬의 미시사가 흡인력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야기의 내부에서 아주 어색하게 돌출되어 있진 않지만, 이유엽과의 만남이 서사를 이끌어가기 위해서 강제로 삽입되었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어렵습니다.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려서 계속 가볍게 유지되는 톤에 변명을 좀 만들어주기는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살인과 두뇌를 뗴어내려는 결심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유쾌하고 가벼운 톤이 유지되는 것도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의 장점을 퇴색시키진 않네요. 고민의 깊이와 서사의 짜임새까지, 재미있고도 훌륭한 소설을 만나서 기쁘고 반갑습니다.

C :여러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공존은 곧 다가올 미래임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이 미래 속에서 인간과 안드로이드는 이분법적으로만 구분되지 않는다. 인간의 기능과 신체를 기계로 대체할 수 있다면 인간의 본질과 개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 글의 작가는 이 문제를 뇌경색으로 쓰러진 주인공 이예슬이 전자두뇌를 갖고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것과 원래 두뇌를 갖고 누워지내는 것 사이의 선택으로 풀어나간다. 전자를 선택한 경우에 등장하는 문제는 이예슬이 전자두뇌를 통해 느끼는 감정이 진짜인가, 나아가 그를 진짜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 질문을 타자의 시선으로 답한다. 인간과 기계의 기능이 한 신체에 공존하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인간의 관점과 신념이다. 글에서 사용된 소재들이 신선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대치, 안드로이드의 반란, 그것을 조종하는 인간은 같은 주제를 다루는 글에서 다른 형태로 반복되어 등장하는 단골 소재이다. 그러나 이 글은 그런 소재를 가지고 미래에 나타날 혐오의 다른 형태에 관한 고민과 성찰을 담아내었다. 로봇의 발달과 함께 이미 불쾌한 골짜기로 진입하고 있는 현재 사회가 곧 맞게될 근미래에 일어나게 될 사람 간의 갈등과 사회적 갈등을 평범한 사람의 경험과 시각으로 풀어내며 의미있는 시사점을 던진 것을 높게 평가한다.

D :너울 님의 ‘감정을 감정하기’는 전자이식 두뇌가 현실화 된 세계에서 안드로이드와 인간과의 관계 문제를 다룹니다. 인간은 어느 수준까지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전자의식 두뇌를 이식한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안드로이드와의 감정은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 많은 작품에서 다루어진 주제이지만 실제로 그 혼란을 겪어가는 주체를 주인공으로 다룬 점이 신선합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자아에 대해서 고민하고 새로운 자아개념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실감나게 다루고 있어, 작가분이 오랜 숙고를 거쳤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연인과의 관계가 마치 친구처럼 다루어진 것은 글의 중심이 그쪽으로 쏠리지 않게 하기 위해 의도하신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교류 부분에 조금 더 살이 붙었다면 이 이야기가 조금 더 다층적으로 구성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댓글 2
  • 너울 19.01.15 00:18 댓글

    감사합니다. 아주 즐거운 생일 선물이 되었습니다.

  • 노말시티 19.01.15 13:18 댓글

    너울님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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