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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우수단편 선정단입니다.
이달의 후보작을 선정합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연말에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이번 호 독자우수단편은 2018년 12월 1일부터 2018년 12월 31일 사이에 창작 게시판 단편 카테고리로 올라온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여 후보작을 추천하였으며, 독자우수단편 후보작으로는 노말시티의 「벨제붑」이 선정되었습니다.

심사대상에서 제외된 작품은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너울)입니다. 해당 작품은 분량(원고지 150매 이내) 초과로 인해 심사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최후의 다이브」(바보마녀)

타임 리프와 타임 패러독스를 소재로 하는 SF소설입니다. 다이브와 텔레파스라는 개념, 위원회와 이를 둘러싼 음모, 전쟁이 벌어지기까지의 역사 등, 세계 설정이 치밀하고도 방대하게 구축되어 있어 공이 많이 들어간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시간 여행으로 축적된 폭력 그 자체가 현재의 파국을 일으킨 원인이었다는 부분도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은 새로울 것이 없었고, 작가 고유의 세세한 SF적 설정들이나 캐릭터들의 심리적 상호작용 등등의 요소는 단편이라는 한정된 틀 안에서 흐릿하게 피상적으로 다루어지는 탓에 충분한 효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훨씬 더 긴 분량과 호흡으로 찬찬히 풀어내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종」(진정현)

미래의 홍콩을 배경으로 불가사의한 연쇄 실종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들의 이야기입니다. 밀실에서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행방불명되는 실종자들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정치적 음모를 암시하는 장치들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점차 그들을 추적해야 하는 이유 자체를 의문시하는 전개로 나아갑니다. 피해자들을 수렁으로 빠뜨리는 듯하던 공포스러운 흰 빛은 결말에서 자유를 향한 희망과 미지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빛으로 변합니다. 그러나 그런 자유의 가능성을 희구할 만큼 사람들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체제의 부당함은 일반론적인 수준에서만 제시되고 있고, 켈리가 실종자들에게 느끼는 유대감이라는 틀도 너무 헐겁습니다.

「시간 위에 붙박인 그대에게」(너울)

죽음은 삶과 맞닿아 있습니다.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일 때 곧 삶의 실존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래서인지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죽음의 운명을 피하려는 시도들, 또는 불멸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은 으레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그런데 「시간 위에 붙박인 그대에게」는 불멸을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과학이 빚어낸 축복으로 제시하고, 이 축복을 타고난 주인공이 가족들도 같은 축복을 받을 미래를 꿈꾸면서 희망적으로 이야기를 끝낸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쌍둥이 자매’ 예화의 전도된 판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불멸 시술이 부유층에게만 주어지는 특혜가 되었다는 점, 서민층의 불만과 이로 인한 테러 사건, 주인공이 느끼는 권태로움과 같은 부정적 측면들을 충분히 짚고 있으면서도 이야기의 줄기 자체는 희망적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기묘한 섬뜩함을 안겨줍니다. 자매간의 관계와 갈등, 감정의 결이 더 설득력 있게 구현되었더라면 이 결말이 단지 섬뜩함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벨제붑」(노말시티)

치명적인 세균을 전파하는 파리 떼에 의해 인류가 멸망 일보직전의 위기에 몰리고, 두 명의 주인공이 인류를 구출하기 위한 최후의 프로젝트를 수행합니다. 탄탄한 과학적 고증을 바탕으로 말끔하게 짜여진 스토리라인과 머릿속에 선명하게 펼쳐지는 시각적 요소들이 마치 웰메이드 디스토피아 영화를 보는 듯하네요. 장르적 문법의 측면에서 결말부의 반전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는 점에서 조금 뻔하다는 혐의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전개 과정에서 내내 던져졌던 철학적 의문이 맨 마지막에 스튜어트가 던지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으로 한 단계 더 높이 비약하는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더 나아가 신화 속 악마 벨제붑의 이미지가 인류와 악의 대결에 대한 오래된 문학적 전통을 상기시킴으로써 그 철학적 의문을 더더욱 증폭시키는 점도 탁월했습니다.


이번 달은 4분기 독자우수단편 우수작을 선정하는 달입니다. 우수작으로 2차례 이상 선정되시거나 최종 우수작으로 선정되신 분께는 거울 필진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10월 후보작이었던 온연두콩의 「삐그덕 낡은 의자」와 11월 후보작이었던 노말시티의 「살을 섞다」는 모두 흥미로운 단편이었고 각각 다른 강점과 매력과 단점을 가지고 있어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심사위원들이 논의 끝에 두 작품 모두를 4분기 우수작으로 선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노말시티 님과 온연두콩 님, 축하드립니다.

「삐그덕 낡은 의자」(온연두콩)

A :화자의 시선을 따라 사건을 이해하게 되는 독자들에게 미스테리에서의 화자는 다양한 기법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정체성에 혼란을 가진 화자는 그래서 무척 매력적인 소재지요. 메멘토, 살인자의 기억법 같은 유명한 작품들도 많고요. 그렇지만 제대로 다루지 못할 경우에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기만 하면서 사건 파악을 어렵게 해 기껏 작가가 마련한 장치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은 삐거덕거리는 낡은 의자라는 공포 미스테리 장르의 대표적 장치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키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동시에 마지막의 반전을 위한 중요한 소재로도 이용함으로서 글의 완결성을 만들어 냅니다.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한 글에 반전에도 무리가 없으며 자칫 지나친 묘사로 독자들에게 불쾌감을 유도하지 않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B :「삐그덕 낡은 의자」는 여러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훌륭하게 배치한 수작입니다. 주인공의 정체는 일견 뚜렷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면 갈 수록 독자와 주인공은 함께 미궁으로 떨어집니다. 짧고 단순한 단편임에도 충격적 결말까지 독자를 즐겁게 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숨어 있습니다. 분량이 짧아서 이 다양한 요소들이 좀 더 길게 소화되지 않은 것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주인공과 친구의 이름이 같다는 설정 같은 부분은 좀 더 긴 이야기였다면 더 긴장감 있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의자가 매달려 있는 마지막 장면은 섬뜩하면서 동시에 몹시 아름답네요.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는 매끄러운 소설이었습니다.

C :「삐그덕 낡은 의자」는 미스터리가 갖추어야 할 미덕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정체성의 혼란,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함, 악랄한 범죄 대상이 되면서 경험하는 해리 현상 등은 미스터리 장르에서 드문 장치는 아닙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 장치들을 능숙하게 다루면서 인상적인 반전을 만들어 냅니다.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는 단서로서 등장하는 의자의 존재는 독자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이야기의 기묘한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작용합니다. 시작에서부터 결말까지 이야기를 꼼꼼하고도 구체적으로 구성하여 독자를 충격에 빠뜨리는 것이야말로 이 글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입니다.

D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존재를 활용해 독자를 점점 서스펜스와 호기심에 빠뜨리는 잘 짜여진 미스터리였습니다. 탐정의 위치에 있었던 인물이 피해자로 바뀌면서 독자들의 인식의 틀 자체를 거꾸로 뒤집어놓는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삐그덕거리는 소리, 나무 의자, 창문에서 비쳐드는 빛이 만드는 사각형의 문 등의 이미지가 여러 번 겹쳐지면서 단서로 작용하는 한편 소설 전체에 미적인 리듬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서술은 독자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자칫하면 화자의 일관성에 대한 의심 때문에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가는 것 자체를 유보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삐그덕 낡은 의자>의 경우 그런 위험에 빠질 경계에 걸쳐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주인공의 배경이나 친구와의 관계 등을 흡인력 있게 다루어서 독자들의 감정과 주의력을 더욱 단단히 사로잡았다면 더 매혹적이고 강렬한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살을 섞다」 (노말시티)

A :권력에 의한 차별, 성차별 등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다루면서 ‘살을 나누어 먹는 행위’를 ‘살을 섞다’로 치환하여 현재의 상황을 보다 극적이고 불합리하게 만들어 냅니다. ‘가족적인 분위기’라는 이름 하에 사실상 절대적으로 권력에 복종하고 휘둘리는 계층의 심리를 불편할만큼 생생하게 그려내지요. 현재의 불합리를 보다 강조하여 독자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서술이 독자에 따라서 호오가 갈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에서 지극히 약자인 두 사람이 서로 연대하는 방식은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B :서로의 살을 베어내서(!) 먹이는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살을 베어내고 상처를 입히는 모습은 불결·혐오·병·죽음과 같은 불안한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고, 필연적으로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우리의 혐오감과 연결짓는다면 살을 베어먹는 이미지는 아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직장이란 공간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붙어있어야 하는 구조적 공간이죠. 이 상징적이고 풍부한 이미지를 활용해서 서사를 층층이 쌓아올리는 기술이 훌륭합니다. 숨이 내려앉는 장면들을 적재적소에 끼워 넣은 점도 멋지네요. 특히 묶여서 등장하면서도 환한 미소를 짓는 고기집 직원의 얼굴 같은 장면은 탁월한 이미지입니다. 이런 섬뜩한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소설이 ‘착하다’는 점도 큰 매력입니다. 주인공과 동기는 결코 무리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그렇듯, 순조롭게 흘러가는 데도 이야기가 엉망진창이 된다는 점에서 작가의 내공이 느껴집니다. 멋진 소설이었습니다.

C :「살을 섞다」는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을 직설적인 상징을 통해 호소합니다.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서 타자와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모순과 불편함을 동반합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무는 행위가 ‘친밀감’으로 강요됩니다. 이는 자신의 영역 일부를 내어주고 부조리한 집단과 사회의 한 부분으로 동화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 강요하는 폭력에 해당됩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폭력적인 행위를 서로 살을 저미어 나누어 먹는 행위로 나타내었습니다. 폭력적 행위를 거부하던 주인공이 동기와 은밀하게 살을 저미어 나누는 장면은 자신의 살을 저며 서로 나누는 행위가 자유 의지에서 나와야 함을 역설합니다. 생생하게 그려진 직장의 모습이나 사회적 관습은 ‘살을 저미어 나눈다’는 강렬한 상징과 함께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에 관한 큰 울림을 자아냅니다. 시의성이 잘 반영된 글이라고 하겠습니다.

D :‘살을 섞는다’는 친숙한 비유를 식인 행위에 대입하여 현대 사회의 폭력을 상징하는 장치로 활용한 방식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사람의 살을 베어 먹는다는 환상적 요소를 한국의 평범한 직장 사회의 권력 역학 속에 도입함으로써, 이 사회가 어떤 폭력으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새삼 낯설어 보이게끔 환기시켜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깁니다. 식인 행위의 메타포는 환상적이지만 이를 그려내는 화법은 지극히 사실적이고, 사건들을 치밀하게 전개시키는 과정에서 점차 다층적인 의미들이 생겨납니다. ‘살을 섞는’ 행위는 성적인 접촉과 불결한 전염을 의미하는 한편,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생리적인 쾌락을 상징하며, 또 한편에서는 동물적인 야만과 동시에 문화적인 언어로 기능합니다. 섹스와 섭식을 둘러싼 다양하고 역설적인 함의들이 이 소설에 더욱 깊고 문제적인 울림을 부여합니다. 환상소설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을 제시하는 수작이었습니다.

댓글 1
  • 노말시티 19.01.15 13:17 댓글

    감사합니다! 정성어린 심사평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네요. 앞으로 글을 쓰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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