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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필진 이서영 작가님의 단편 「언제나 마지막에는 한잔 더」가 수록된 SF앤솔러지 『지금, 다이브』가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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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서울은 자신 안에 다른 서울을 하나 더 가지고 있지.
사이버펑크 서울!
그것은 본래 자신보다 더 광대해.

20세기 말을 풍미한 사이버펑크 장르,
22세기 미래 도시 서울에서 리로딩되다

현재 우리 장르문학 신에서 맹활약 중인 여섯 작가가 이 공동선집에 참여했다. 다채롭고 화려한 이력에 걸맞게 개성적인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지금, 다이브: 사이버펑크 서울 2123』(이하 『지금, 다이브』)는 서울이라는 메가시티를 배경으로 삼는 만큼 각 단편 속 주인공이 겪는 혹은 해결해야 하는 사건은 그들이 거주하는 자치구의 특징과 연관되어 있다.

수상 경력과 데뷔 시기에서 가장 이른 김이환 작가의 「돈은 돈이고 인생은 인생이다」와 이서영 작가의 「언제나 마지막에는 한잔 더」는 사이버펑크 장르의 정석을 보여준다. 이 장르의 효시로 알려진 『뉴로맨서』(윌리엄 깁슨, 1984)의 독자라면 금세 알아차릴 요소들을 끌어와 세련되게 변용했다.

“기술이 어떤 인간을 배제하고 또 어떤 인간을 위해 일하는지, 혹은 기술을 통해 배제된 바로 그 인간이 거꾸로 기술을 쥐고 싸울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이서영 작가는 「언제나 마지막에는 한잔 더」에서 백전노장의 광휘를 발하는 칠십대 여성 해커를 내세운다. 흰돈 검은돈 가리지 않고 일을 받아 돈을 버는 다른 사이버 수주인과 달리 ‘여자’는 “정신에 직접 관여하는 일은 한 번도 맡아본 바가 없”다. 한마디로 벌이가 시원찮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수하던 원칙을 깨려고 한다. “국가가 적극적으로 만들고 유통시킨 전자마약의 유통 경로”를 차단해 달라는 의뢰이기 때문이다. 『뉴로맨서』의 사이버스페이스 카우보이 ‘케이스’가 그랬던 것처럼, 소싯적에 썩 솜씨 좋은 해커였을 ‘여자’가 어두운 종로 거리를 걸어 단골 술집에 들어서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돈은 돈이고 인생은 인생이다」는 성북구 월곡고가도로 주변이 실제 세계의 무대를 이루는데, 주인공 김성준이 고교 시절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실수로 인해 육체를 잃고 사이버 인격으로만 존재하기에 주요 사건은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펼쳐진다. 성준은 원래 인격을 안전한 사이버스페이스에 백업해 두고, 해킹 프로그램을 돌려 데이터를 훔쳐서 판 돈으로 저렴한 사족보행 로봇을 장만해 마약 운반 심부름도 하며 먹고산다. 그래서 ‘들개’라 불린다. 우연히 50억 상당의 품질 좋은 마약을 손에 넣게 되면서 그것을 팔아 몸과 신분을 사기로 결심한다.

『지금, 다이브』는 장르 문법을 잘 따르거나 전설적인 작품을 오마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1980년대의 산물인 사이버펑크가 그려낸 미래 기술의 이미지는, 전뇌와 의체 기술을 제외하면 다른 형태로 거의 실현되어 가는 중이다. 때문에 사이버펑크가 상정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는 절반의 가능성이며, 디스토피아는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존재하는 현재의 그늘일지도 모른다. 그러하다면 우리는 사실상 늘 함께 존재하는 디스토피아의 현재형을 가늠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지금 신예작가들이 활발히 생산하는 일명 소프트SF에는 설득력 있는 근미래 사이버펑크로 간주할 만한 단편들이 많아 보인다. 이 선집을 풍성하게 만드는 다른 네 편의 작품이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박애진 작가의 「소켓 꽂은 고양이」는 새로운 문화와예술의 산실인 마포 홍대 일대를 무대로 한다. 이동통신 서비스가 막 시작되었을 때 대기업 3사가 경쟁을 벌였듯, 미래에는 인식코드 시장을 두고 세 기업이 각축을 벌인다. 그런 와중에 한 기업이 벌이는 음모에 한 해커가 연루되고 그는 납치되어 고양이 뇌에 의식을 강제로 업로드당한다. 꿈, 희망, 선망, 기대, 젊음, 욕망, 설렘, 무심한 온기 등이 혼재된 홍대 일대의 분위기를 재기발랄하게 살렸다. “한 세기 전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게 유일한 취미”인 주인공 해커의 캐릭터를 통해 레트로-퓨처를 연출하는 카메오를 여럿 등장시켜 덕심을 가진 독자에게 소소한 반가움도 안겨준다.

탐정물로 색깔을 확실히 각인시키며 데뷔한 박하루 작가는 좌초된 서울시 최대 사업 용산 국제업무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을 실었다. 「부드럽고 향기로운 것」이 과연 무엇일지 작품을 읽어 가는 동안 궁금증이 커진다. 이야기의 초입에 나오는 탐정 파사이의 점심 메뉴를 가리키는 ‘부드럽고 향기로운 것’은 대단원에 이르러 추론을 불허하는 무엇으로 탈바꿈한다. 현실 정치를 소재로 사이버펑크 추리물을 읽을 기회는 당분간은 이 선집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역사적 소재와 추리기법을 결합한 소설로 좋은 성과를 거둔 정명섭 작가는 「마지막 변호사」라는 단편을 통해 ‘high tech, low life’의 굴레에서 벌어질 수 있는 아이러니컬한 사건을 다룬다. 국가 주도로 수출산업단지(구로공단)가 조성되었던 구로구는 주력 산업만 바뀌었을 뿐 현재도 10만 명이 넘는 노동자의 일터다. 100년 후 비정규 저임금 장시간 일자리만이 아니라, 이와는 판이한 사정으로 판사 변호사 같은 법률 서비스도 AI가 맡게 된다. 로봇혐오라는 신종 혐오범죄도 문제이지만 구시대의 범죄가 근절되지 않아 범죄의 양상은 더욱 복잡해진 가운데 약자가 피해자라는 사실만은 변함없이 되풀이된다.

사이버펑크물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해도 손색이 없는 『오류가 발생했습니다』의 작가 이산화는 “무슨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지 처음에는 좀 걱정했”다고 후기에 적고 있지만, 이번에도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송파구를 담당한 이산화 작가는 이 지역 랜드마크인 놀이공원과 초고층 마천루를 활용했다. 「마법의 성에서 나가고 싶어」는 마치 RPG 게임 유저의 가상체험을 문자로 즐기는 듯한 단편이다. 감각적인 시각 이미지가 범람하는 사이버펑크의 특징을 작가만의 방식으로 제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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