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갈색 줄무늬 꼬리가 사납게 좌우로 살랑거린다. 이마에 손을 짚으며 눈을 찡그린다. 어두운 밤사이에 들과 산 너머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캐시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서성대는 베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지들을 해치며 이나가 흘렸을 단서를 찾고 있었다.

 

캐시는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렸다. 괜한 말을 했어. 입술을 잘근 씹으며 홀로 중얼 거렸다. 베스가 코를 든다. 그녀의 고개가 다시 마을 쪽으로 향한다.

 

[못보고 지나친 게 있을까요?]

 

베스는 대답 대신 빠르게 다리를 놀렸다. 그녀의 뒤를 바짝 좇으며 캐시는 무거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애썼다. 무엇보다 지금은 그 아이를 찾는 게 중요하니까.

 

마을에서 얼마 벗어나지 않은 길목에서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저들끼리 수군대고 있었다.

 

[분명, 인간이야.]

 

[그래 그 배신자.]

 

[그 옆에 있는 친구가 누구였지?]

 

[마법사와 늑대.]

 

[맞아 그 늑대 이름이.]

 

베스가 불쑥 그들의 틈을 비집고 끼어들었다. 그녀가 등장하자 시끄럽게 떠들던 목소리들이 잠잠해 진다. 캐시가 베스를 따라 고개를 내밀었다. 붉은 자국. 검붉은 웅덩이가 고여 있다.

 

[안 돼!]

 

캐시는 피가 고여 있는 곳으로 달려 들어 무릎을 꿇었다. 쓰러진 시체는 그 아이가 아니었다. 원숭이 하나와 산양 하나. 시체를 내려다보는 마을 주민들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베스가 다시 코를 킁킁 대고 고개를 올린다. 뛸 준비를 한다.

 

[잠깐.]

 

검은 물소 인간이 베스를 가로 막는다. 주민들이 캐시를 밀쳐내며 베스를 둘러싼다. 캐시가 주민들의 등 뒤로 소리쳤다.

 

[베스!]

 

물소 인간이 베스의 얼굴 가까이 이를 간다. 두 눈이 부딪히고 긴장감이 흐른다. 물소의 낮은 음성이 발밑으로 깔린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인간이랑 친해져서 좋을 건 없는데 말이지.]

 

베스는 주변으로 시선을 굴리며 숫자를 세었다. 물소는 그런 그녀의 눈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

[마녀에게 팔려야 할 인간들이.]

[우리 동족들을 죽이고 있어.]

 

베스의 주위로 빼곡하게 수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회색 갈기의 소문난 전사에게 심판을 외치고 있다.

 

[특히 그 배신자하고 붙어먹는 네 놈이 수상하단 말이지.]

 

베스가 물소 인간의 목을 손으로 움켜잡아 들어 올린다. 물소가 켁켁 거리며 버둥거린다. 수인들이 그녀를 말리려 하지만 물소가 팔을 들어 그들을 막아 세웠다. 숨이 막혀와 기침을 콜록대며 끝까지 말을 한다.

 

[소문을 들었을 테지.]

[모두 그 소문을 들었을 테지.]

 

베스를 노려보는 번들거리는 눈. 물소는 힘에 굴복하지 않았다. 마을의 주민들은 그녀에게 들어야 할 것이 있었다. 그것이 고백이든, 심판 이든, 수인 전체에게 전해질 선포이든. 그녀에게 알아야 할 것들이 있었다.

 

[마법사 하나가 우리와 등을 지고.]

[마녀를 배신하고 있다고.]

 

베스의 손에서 풀려난 물소가 땅으로 나뒹굴었다.

 

[그런 자라면 한 명 있지!]

 

베스가 등을 돌린다. 빼곡히 그녀를 감싼 수인들의 무리 사이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인간들을 배신하고 마법사가 된 자!]

 

[인간이면서 인간들을 잡아오는 자!]

 

[인간인 주제에 마법을 쓰는 자!]

 

베스의 어깨가 잡힌다. 그녀가 저항을 하기 위해 팔을 휘둘렀다. 수인들이 그녀의 팔에 맞아 땅 위로 구른다. 물소의 쉰 목소리가 들려온다.

 

[인간 하나당 마을 하나.]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는 있겠지.]

 

날선 시선들이 베스에게로 꽂힌다. 모두 그녀에게 원망이 담긴 시선을 보내었다. 주민들의 도움으로 몸을 일으킨 물소는 간신히 일어나 목을 매만졌다.

 

[우리는 기회를 주는 거야.]

 

그가 손을 뻗는다. 수인들이 서로 손을 뻗고 맞잡는 건 맹세를 의미했고 약속을 의미했다. 베스는 머뭇거렸다. 캐시가 주민들과 베스 사이로 끼어든다.

 

[대체 그녀에게 뭘 원하시는 거예요!]

 

팔을 양쪽으로 죽 뻗으며 그녀를 감싼다. 물소는 거대한 뿔을 흔들며 캐시의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의 팔이 내려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는 없을 것이다.

 

[위대한 전사여.]

 

물소가 베스를 부른다.

 

[위대한 포프의 맹세여.]

 

그리운 이름. 베스가 제 손을 내려다본다. 뒤를 흘깃 바라보고 다시 주민들이 있는 곳을 본다. 인간이랑 수인이 서로 친해질 수는 없을까. 그런 소망. 그런 소원. 캐시는 기도하였다. 무사히 지나가기를. 아무도 다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말해주게.]

 

낮고 고요한 소리. 먹구름 아래로 천둥이 울고 있다. 공기가 차가워지고 바람이 분다.

 

[소문들이 사실인가.]

 

무너지지 않고 굳센 강단으로 물소는 버티어 섰다. 그는 베스의 눈만을 보고 있었다. 베스가 캐시를 지나쳐 앞으로 선다. 캐시가 허둥지둥 하며 베스를 말리려 하였다. 캐시의 손을 잡는 베스. 그녀는 캐시의 손바닥 위로 무언가를 끄적였다. 캐시가 고개를 끄덕인다.

 

[무엇을 원하는 거죠?]

 

물소가 허리를 핀다. 마을의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소리쳐 말한다.

 

[소문이 거짓인 걸 증명해주게.]

[우리의 앞으로.]

 

 

 

 

결국 그 하얀 늑대는 잡히지 않았다. 사람들이 구원자의 등껍질을 빠짐없이 훑었고 두드려대었다. 구멍이 있는 곳은 돌과 판자를 대어 모조리 막아둔다. 언더시티 전체가 불안하게 술렁이고 있었다. 타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식은땀을 흘렸다. 죄책감에 떠는 그녀가 안쓰럽게 보였다.

 

한나는 수인을 찾는 수색대 사이에 끼어들어 무기를 잡고 곳곳을 돌아다녔다. 내가 걱정스럽게 바라보자 타냐가 어색하게 웃었다.

 

[괜찮을 거야.]

 

어느 쪽이 괜찮다는 걸까. 하얀 늑대가 잡히지 않는 쪽, 아니면 무사히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쪽. 나도 그녀의 미소를 따라 입 꼬리를 올려 보았다. 볼이 딱딱해진다. 초조하게 뱅뱅 도는 타냐를 두고 고개를 돌렸다. 트라나는 어디 있는 거지.

 

구원자의 등껍질 위에 달려있는 거대한 수정들이 햇살을 뿜어낸다. 환하게 비추어지는 길들을 따라 마을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강물을 따라 갔다. 등껍질의 천장에서 받아진 빗물들이 벽을 타고 흘러 강이 되었다. 졸졸 흐르고 있는 강을 감탄해하며 걸었다.

 

트라나는 그런 강의 주변에서 조용히 앉아 물 위로 떠가는 잎들을 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갔다.

 

[날 찾은 거야?]

 

고개를 끄덕였다. 트라나도 알고 있었겠지. 어젯밤 타냐가 나가려던 걸 화를 내며 막은 것도 그 하얀 늑대 때문이겠지. 나는 그녀 옆에 앉았다.

 

[트라나, 너도 알고 있었어?]

 

[응.]

 

트라나가 다리를 오므리자 그녀의 작은 체구가 더 작아 보였다.

 

[처음 여기에 왔을 때.]

[신기한 게 있다며 보여줬어.]

 

트라나는 화를 내지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도 않다. 강으로 잎들이 떨어지고 물결이 친다.

 

[너도 놀랐지?]

 

나는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었다. 수인들이 우리를 마녀에게 판다는 걸 타냐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했던 걸까. 트라나는 그 대답을 알고 있다는 듯 말을 하였다.

 

[아마 친구로 생각했던 거겠지.]

 

트라나가 돌을 집어 너머로 홱 던진다. 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타냐는 좋은 아이야.]

[하지만 그 괴물들과는 친구가 될 수 없어!]

 

씩씩 거리며 그녀가 소리를 친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트라나, 그녀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헥서라는 작은 마을에 살았어.]

[춥고 혹독한 곳이었지.]

 

트라나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눈보라가 친다.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모닥불에 둘러 앉아 따뜻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작고 가난하였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소박하고 작은 오두막에서 혹독한 겨울을 나는 그녀는 산허리 아래의 추위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였다. 남동생의 키가 자신을 훌쩍 뛰어 넘을 때도 그의 팔에 매달리고 싸우며 즐겁게 보냈었다.

 

[해가 보이지 않아 낮인지, 밤인지도 모를 때였어.]

[우리 가족이 있는 곳으로 남자 하나가 찾아 왔지.]

 

그녀는 어금니를 물었다. 그녀의 눈으로 물들이 가득 채워진다. 그녀가 입을 연다. 울음을 내지 않으려 했는지 울먹이는 목소리는 나지 않았다.

 

[길을 잃었다던 그를 맞아 주었고.]

 

숨을 내쉰다. 한 마디, 한 마디. 숨을 고르며 트라나는 침착하게 있기 위해 애를 썼다.

 

[그가 내 가족들을 전부 죽였지.]

 

그녀는 고개를 들어 눈을 감고 있었다. 울음을 참기 위해 한 행동이었지만 방울 하나가 견디지 못하고 톡 떨어졌다. 뺨으로 그을린 눈물 자국에 나는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그 토끼가 왔어.]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나에게로 다가왔지.]

[그녀는 말했어.]

 

내가 저기 있는 사람들을 모두 살려줄게.

 

어떻게요?

 

나를 따라오렴.

마법을 부리면 뭐든 가능하단다.

 

[믿은 적은 없었어.]

 

트라나가 눈을 뜨고서 햇살의 아래로 빛나는 구원자의 들판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내 가슴께에 미치는 키와 발육이 되지 않은 몸. 얼굴도 어렸고 체구도 작았지만 그녀에게 아이 같은 순진함이 보이지 않았다. 트라나가 말을 잇는다. 눈물을 흘리지도, 이를 물지도 않는다.

 

[이 세계로 처음 온 날.]

[몰래 그 토끼 아가씨의 뒤를 밟았지.]

[그녀가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숨죽여 엿 들었어.]

 

트라나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엄해 보였다. 문제를 내는 선생님과 같은 표정. 그녀가 묻는다.

 

[그들이 뭐라고 했을 것 같아?]

 

고개를 도리질 쳤다.

 

꼬맹이 하나를 발견했어.

그런데 소원 하나 빌지를 않더군.

그래서 소원 빌 거리들을 만들어 주었지.

 

어때, 똑똑하지 않아?

 

소름끼치는 말투. 트라나는 목소리를 흉내 내며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미음이 혼란스러웠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가 말했다, 분명. 트라나의 입에서 저주를 담은 말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다 죽어버리라지.]

 

몸을 뒤로 빼었다. 등이 굳는 기분이었다. 트라나가 벌떡 몸을 일으킨다. 뚜벅뚜벅 걸어가며 나를 돌아보았다.

 

[이대로 두면 무슨 짓을 당할지 몰라.]

[수인들을 절대 믿어선 안 돼.]

 

그녀가 걸어가는 방향에는 구원자의 껍질 벽에 매달려 세워진 거대한 사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가 저곳으로 가서 어떤 말을 할지 두려웠다. 나는 타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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