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신의 얼굴

2019.01.15 23:1201.15

 

 

어둠 속에서 한 무리의 횃불이 다가오는 걸 본 남자는

마을 어귀에 위치한 호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남자가 소년이었을 시절

남자는 마을 또래의 소년들에게서

호수를 헤엄쳐 건너기를 강요받았습니다.

 

 

남자는 수영을 잘 하지 못했지만

용기를 시험받는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면

겁쟁이로 몰려 괴롭힐 당할 것이라고 생각해

호수로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호수의 절반을 건넜을 때

남자의 기력이 바닥났습니다.

 

 

시체처럼 뻣뻣해진 두 다리는

도무지 움직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결국

남자는 차가운 호수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지상의 빛을 등지고 천천히 추락하던 남자는

깊고 어두운 호수의 바닥에서

은은히 빛나는 둥글고 허연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남자와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점점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시체처럼 창백한 그 얼굴은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남자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다시 지상으로 떠올랐습니다.

 

 

남자가 수면에서 모습을 감추자

마을의 아이들이 근처의 어부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었습니다.

 

 

남자는 점점 멀어지는 어둠 속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그것은 신의 얼굴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

남자는 시련이 닥칠 때마다

호수에 뛰어들어 신을 찾았습니다.

 

 

신은 굳게 다문 입으로

그를 빤히 쳐다볼 뿐이었지만

남자는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호수에 뛰어들어 신의 얼굴을 찾았습니다.

 

 

한참을 호수 밑으로 헤엄쳐 내려간 남자는

멀리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신의 얼굴이 보이자

절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다가갔습니다.

 

 

제발 지금 처한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지만

신은 침묵했습니다.

 

 

신에게서 아무 대답도 얻지 못한 남자는

더욱 절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신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신의 얼굴에

남자는 머리털이 쭈뼛 곤두섰습니다.

 

 

그것은 신의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지상으로 헤엄쳐 올라간 남자는

횃불을 들고 자신을 쫓아온 마을 사람들과 마주쳤습니다.

 

 

남자는 호수의 바닥에서 본 그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 얼굴은 살인자의 얼굴이 틀림없었습니다.

 

 

그것은 호수에 가라앉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었습니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914 단편 [공고] 2022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명단 mirror 2022.01.20 4
2913 단편 눈의 셀키 (출간계약으로 인한 내용 삭제)2 이아람 2022.07.22 3
2912 단편 흰 뼈와 베어링 scholasty 2023.07.12 3
2911 단편 가위바위보 세이브 어스(본문 삭제) 백곶감 2021.02.11 3
2910 단편 남쪽눈때기: 뭐가 보입네까?(본문삭제) 진정현 2021.06.25 3
2909 단편 프로토타입2 운칠 2022.01.26 3
2908 단편 나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해수 2020.02.02 3
2907 단편 떠오르는 얼굴 김오롯 2021.12.20 3
2906 단편 타차라와 늙은 개 양윤영 2020.04.18 3
2905 단편 불안은 잠들지 않는다 킥더드림 2021.06.03 3
2904 단편 추억교정소 희야아범 2022.01.20 3
2903 단편 너머 서여름 2019.12.31 3
2902 단편 거래 진정현 2019.05.31 3
2901 단편 수태고지 감동란 2023.08.30 2
2900 단편 구멍 홍대입구3번출구 2023.09.22 2
2899 단편 뱃속의 거지2 박낙타 2023.06.08 2
2898 단편 궤도 위에서 임희진 2022.12.27 2
2897 단편 초롱초롱 거미줄에 옥구슬2 Victoria 2022.11.17 2
2896 단편 어느 Z의 사랑4 사피엔스 2022.09.07 2
2895 단편 가슴 가득, 최고의 선물2 사피엔스 2022.07.31 2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