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실종

2018.12.05 17:3112.05

  1

 

  “이에 중화민국 총통 천궈웨이 본인을 비롯한 모든 국민은 우리의 독립 당위성을 세계의 최고 심판에 호소하는 바이며 중화민국의 선량한 국민의 이름과 권능으로써 엄숙히 발표하고 선언하는 바이다. 따라서 중화민국은 전쟁을 개시하고 평화를 체결하고 동맹 관계를 협정하며 통상 관계를 수립하는 독립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모든 행동과 사무를 할 수 있는 완전한 권리를 갖는다. ⋯⋯ 2030년 7월 1일, 우리 중화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일방적으로 체결한 일국양제를 부정하며 중화민국이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임을 선포한다.”

  2020년 7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즉, 중국은 중화민국 즉, 타이완을 무력으로 통일했다. 그러나 세계적인 지지를 얻지 못했고 타이완 국민들의 반발이 끊이지 않았다. 중국은 미봉책을 남발하며 수습을 시도했지만 결국 그들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그들은 단 10년 만에 자신들의 나라를 되찾았다.

 

  2

 

  전날까지 닷새 내내 내리던 비가 그치고 모처럼 화창한 화요일 낮이었다. 홍콩섬 동쪽에 있는 트램 종착역 샤우케이완역으로 낡은 연두색 트램이 들어오고 있었다. 간체자로 된 휴대폰 광고가 트램 전체를 뒤덮은 모습이었다. 한 중년 부부가 낯설다는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트램 기사는 아까부터 목이 말라 미칠 지경이었다. 다행히 반대 방향으로 출발하기 전에 잠깐 정차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는 트램을 정차시키자마자 문을 열었다. 몇 명밖에 안 되는 1층 손님들이 빠르게 하차해 제 갈 길을 갔다. 이내 트램 기사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2층 손님들은 아직 1층에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갔으나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노스 포인트쯤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대여섯 명의 승객 무리가 탔었다. 관광객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가족이나 친구 같지도 않은 독특한 분위기를 냈기에 트램 기사는 기억하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편의점에 들리지 못하고 다시 운행을 시작했다. 트램 기사는 홍콩섬의 서쪽으로 향하면서 계속 그 사람들에 관해 되뇌어 보다가 그들이 내린 기억이 왜 없는지 알아냈다. 아까 잔돈 때문에 소란 아닌 소란을 피운 관광객이 있었다. 혼자 내리면서 현금 50달러를 내고는 잔돈을 거슬러 달라니. 홍콩 사람뿐만 아니라 홍콩을 방문하는 전 세계 관광객 모두가 카드 사용이 현명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사람은 일단 내려서 기다리는 승객들을 보내고 다시 트램에 올라탔다. 그러더니 한 정거장을 더 가는 동안 요금함에 손을 쑤셔 넣어 50달러를 빼내고 10달러를 재차 냈다. 혼이 쏙 빠지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그때 내렸던 거라고 트램 기사는 스스로 결론 지었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계속 들기는 했으나 퇴근 후 친구와 만나 술 한잔할 생각에 그 느낌은 금방 사라졌다.

  밤에 센트럴에서 만난 그 친구도 똑같이 트램을 모는 기사였다. 트램 기사는 아까 겪었던 일을 까마득히 잊은 줄로만 알았는데 친구의 얼굴을 보니 그 상황이 영화처럼 선명한 영상으로 다시금 나타났다. 그래서 그는 그것에 관해 상세히 친구에게 말해 주었다.

  “어디? 무슨 역이라고?”

  “샤우케이완이라니까. 왜? 뭐 아는 거 있어?”

  “젠장, 소름 돋네 이거.”

  “왜? 뭐가?”

  “며칠 전에도 누가 나한테 똑같은 얘길 했어.”

 

  트램 기사는 오늘도 불안감을 느꼈다. 이상한 일을 경험하고 이틀이 지난 후부터 누군가가 계속 자신을 미행하는 것 같았다. 그 일은 확실한 사실이 아니었기에 경찰에는 신고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집으로 가기 위해 MTR 센트럴역으로 가려다가 정반대로 방향을 틀었다. 예전부터 누아르 영화를 워낙 많이 봐서인지 트램 기사는 익숙한 듯 미행을 따돌리기 시작했다. 미드 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중간에서 갑자기 빠져나왔다. 그때 그는 자신을 쫓는 검은 색 정장 차림의 두 남녀를 보았다.

  그는 곧 소호 거리로 진입했다. 금요일 저녁이라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트램 기사는 한 옷집에 들어가 모자와 셔츠를 사서 갈아입고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이미 그곳에서 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그저 어설프게 영화 주인공을 따라 했을 뿐이었다.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두 남녀는 강압적이지 않았다. 단지 협조를 부탁한다며 근처 카페로 트램 기사를 데리고 갔다. 그들은 자신들을 ‘홍콩 군중(香港群衆)’이라는 민간 정보 조직이라고만 밝혔다.

  “샤우케이완역에서의 일, 친구분한테 어디까지 말씀하셨습니까?”

  “네? 어떻게 그걸⋯⋯. 전부 다 말했는데⋯⋯.”

  “개인 SNS에도 올리셨죠?”

  “아니, 그냥⋯⋯. 계속 생각이 나서요. 원래 SNS 잘 안 해요. 근데 뭐 어떤 문제라도 생겼나요?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이미 그 내용은 검열로 삭제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만, 지금부터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듣고 그대로 이행하십시오. 그렇게만 하신다면 불이익은 없을 겁니다. 첫째, 이 시간 이후로 이 일에 관해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어떤 환경에서든 누구에게도 일절 발설하지 마십시오. 둘째, 우리는 홍콩 경찰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니 개인적으로 따로 신고하지 마십시오. 이 두 가지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이해가 잘 안 돼요⋯⋯. 실종 사건인가요? 그렇다면 왜 기밀로 다루는 거죠? 시민들한테 알려야⋯⋯.”

  그들은 단번에 트램 기사의 말을 끊으면서 한 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두 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협조 부탁합니다. 그럼.”

 

  3

 

  트램 기사는 하마터면 몽콕역을 지나칠 뻔했다. 자신이 무슨 일에 엮인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생각하다 보니 전철이 목적지에 도착한 지도 몰랐다. 겨우 내려서도 누군가가 쫓아오지는 않는지 계속 두리번거렸다.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역에서 나와 시장을 지나서 아파트 입구로 들어설 때였다. 어떤 낯선 여자가 다가오더니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혹시 류궈룽 님 아니, 라우-궉-윙 님 맞으신가요?

  그의 긴 하루는 여전히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는 아까와는 달리 왜소한 체격의 한 여자가 말하자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광동어를 구사하긴 했으나 자신의 이름은 어눌하게 발음하는 것으로 보아 본토 출신인 것도 같았다.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으로는 만에 하나 몸싸움이 일어난다고 해도 질 것 같지 않았다.

  “씨발. 당신은 또 뭐야? 도대체 뭐가 더 궁금한 건데? 내가 뭘 어쨌다고!”

  순간 여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잔뜩 겁을 먹은 것 같았다. 트램 기사는 그녀의 표정에서 어떤 악의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욕을 해버리고 말았다.

  “저는 켈리라고 합니다. 켈리 천. 경찰이고 CIB 소속입니다.”

  “CIB가 뭐요? 그리고 당신은 또 어떻게 내 이름을 아는 거요?”

  “아, 형사정보과입니다. 중앙정보기관인데 저는 뭐⋯⋯. 대단한 사람은 아니고요. 선생님 정보는 안면 인식으로 조회를 좀 했습니다. 안전 확보 차원이었고 저한테 조회 이력이나 내용은 저장되지 않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가 털털하게 웃음까지 지어 보이자 트램 기사는 자신이 한 짓을 후회했다. 난데없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그를 겁박한 탓에 그는 무척이나 예민해져 있었다. 홍콩 경찰은 믿을만했다. 켈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선생님이 방금 만나신 그 홍콩 군중이라는 조직을 수사 중입니다. 센트럴 부근에서 그들을 발견하고 쫓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선생님을 미행하더군요. 그들이 카페를 떠난 뒤부터는 다행히 누구도 따라붙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선생님,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그는 무례하게 굴었던 행동을 사과하면서 맞은편 편의점 의자에 앉아 상세히 알려주었다. 켈리는 1주일 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트램 기사는 자신이 봤던 사람들이 실종된 게 실제 상황 같다는 그녀의 말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는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켈리에게 물었다.

  “차오양 군중. 베이징시 차오양구의 민간 범죄 감시단으로 일반인 자격으로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을 받으며 수상한 사건 목격 시 경찰에게 신고하는 일을 하죠. 홍콩 군중도 동일한 활동을 해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방금 말씀드린 건과 이번 건처럼 그들은 이상한 방향으로 개입하고 있습니다. 샤우케이완 트램역이라는 장소의 노출을 막는 느낌이랄까요.”

  트램 기사는 혼란스러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아까는 미안했다고 다시 한번 사과할 뿐이었다. 켈리는 괜찮으니 무슨 일이 있거든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고, 곧 수사차 연락한다고 말하면서 명함을 건넸다. 그들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켈리가 지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집으로 들어가는 트램 기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면서 뭔가 큰 게 있는 것이 틀림없어, 라고 생각했다.

 

  4

 

  켈리는 늦지 않으려고 계속 뛰어갔다. 그녀는 새벽같이 샤틴 경찰서 소속 경찰대학 선배 궉치우와이로부터 정보를 받았다. 아이 엄마 두 명이 어젯밤에 함께 경찰서로 찾아와 각자의 아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당직 근무를 서던 선배는 날이 밝는 대로 수사에 나설 것이라 전하고 간략한 내용을 먼저 파악해 그들을 돌려보냈다고 했다.

  치우와이는 아침 일찍 팀 후배에게 일을 맡기고 좀 쉴 계획이었으나 이상할 정도로 아이 엄마들의 이야기가 계속 맴돌았다. 그러는 와중에 홍콩 군중과 샤우케이완 트램역 실종 사건에 관해 수사 중인 후배 켈리가 생각났다. 그는 그녀와 공조 수사에 나서기 위해 휴식도 포기한 채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선배, 오랜만이에요. 늦겠어요. 가면서 얘기하시죠.”

  “여전하구만. 켈리 경장님.”

  그들은 만나자마자 포탄에 있는 어느 아이 엄마의 집으로 향했다. 켈리는 선배를 봐서 반가웠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사건 생각뿐이라 대화는 거의 하지 못했다. 서둘러 도착한 그 집에는 두 명의 엄마가 모두 와 있었다. 매우 불안한 표정이었다.

  치우와이는 그들에게 어제의 일에 관해 한 번만 더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안경을 쓴 한 엄마가 머뭇거리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전 조이 류의 엄마고, 이쪽은 관옌팡의 엄마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조이 엄마의 말에 따르면, 조이와 옌팡은 단짝 친구로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항상 같이 전철을 타고 하교했다. 어제는 자신과 옌팡 엄마가 오후에 카페에서 만나 차를 마시면서 딸들을 기다렸다. 조금 늦어지길래 각자 딸에게 메시지를 보냈는데 조이에게서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두 딸은 평소처럼 함께 있으며 단지 어디에 잠깐 들르고 방금 헝홈역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옌팡 엄마는 다음 역은 몽콕동역입니다, 라는 열차 내 방송까지 분명히 들었다고 덧붙였다.

  목이 멘 듯 물을 들이켠 조이 엄마가 다시 말을 이었다. 포탄역 예상 도착 시각에 맞춰 옌팡 엄마와 역에서 기다리는데 한참이 지나도 딸들이 플랫폼에서 나오지 않았다. 전화도 계속 연결되지 않았다. 두 엄마는 무작정 역무원에게 찾아가 물었다. 역무원은 그들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도 걱정은커녕 자신의 넋두리만 늘어놓았다.

  ‘뭐, 그럼 경마장역에서 오고 있겠네요. 아니 무슨. 오늘 경마장 여는 날도 아닌데 아까 한 차가 거기로 진입해서 난리도 아니었어요. 여기도 사람 없어서 바빠 죽겠는데 직원들 죄다 거기 갔지 뭡니까. 초짜 기관사 한 놈 때문에 도대체 몇 명이 고생하는 거냐고요.’

  포탄역과 경마장역은 동일한 역이나 마찬가지다. 차이점이 있다면 평소에는 전철이 포탄역에 서지만 경마일에만 일부 열차가 포탄역이 아닌 경마장역을 경유한다. 두 아이 엄마가 느낀 이상한 점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두 역은 가까운 거리에 있다. 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딸들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조이와 옌팡의 엄마는 포탄역에서 경마장역까지 가면서 주위를 몇백 번 아니, 몇천 번도 더 돌아보았다. 경마장역에 이르러서는 정리 중인 직원에게 사정해 역 내부를 다 뒤졌다. 딸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말을 마친 두 엄마 눈빛의 초점이 흐트러져 있었다. 이내 적막감이 집을 가득 채웠다. 켈리와 치우와이는 조이의 방을 둘러본 뒤 옌팡의 집에 들러 그녀의 방도 살펴보았다. 특별할 것 없는 여자 중학생들의 방이었다.

 

  5

 

  그들은 근처 완탄면집에 들러 10분 만에 식사를 해결하고 곧장 포탄역으로 향했다. 치우와이는 연신 하품을 해대면서도 운전에 서툰 켈리를 대신해 계속 운전대를 잡았다. 조수석에 앉은 켈리가 말했다.

  “선배, 타이완 여행은 언제 풀린대요?”

  “기약 없지 뭐. 진짜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따로 살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자기 집 안으로 끌어들이니 맘 편히 살겠냐고. 당연히 다시 나가 살지. 나가서 잘 사는 거 좀 보려고 했더니 웬걸, 이제는 아예 만나지를 못하게 하네?”

  치우와이는 흥분한 채로 씩씩거리다가 뭐가 생각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잠깐. 그 책. 여행책.”

  “선배도 봤죠? 조이랑 옌팡 둘 다 타이완 여행책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제 못 가는 걸 모르나?”

  “설마. 그 난리를 쳤는데 모르겠어? 난 휴대폰 안내 메시지만 몇십 통 받은 것 같다.”

  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일단 포탄역과 경마장역 조사를 마치고 조이와 옌팡의 신상에 관해 알아보기로 했다.

  포탄역 그 직원은 바랐던 바와 다른 상황에 신경질이 날 정도였다. 어제는 난장판이 된 역을 정리하는 도중에 웬 아주머니들이 딸들이 없어졌다며 역 안을 살펴봐야 한다고 간청하는 턱에 밤이 되어서야 하루 일을 다 마쳤다. 사정은 딱해 보였지만 일반인에게 무턱대고 CCTV 자료를 보여줄 수도 없었다. 그는 별일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래야 애들도 무사하고 경찰이 수사 협조를 요청해 귀찮게 하는 일도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두 경찰을 데리고 경마장역에 와 있었다. 포탄역에서도 영상 자료는 다운로드해서 볼 수 있는데도 여자 경찰이 현장도 볼 겸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오진입 열차 내부 CCTV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켈리와 치우와이는 헝홈역을 출발해 몽콕동역, 카오룽통역, 타이와이역, 샤틴역을 지나가는 열차의 세 번째 칸에 그대로 타고 있는 조이와 옌팡의 모습을 확인했다. 유독 세 번째 칸 화면만 뿌예 보여 사진을 대조하면서 겨우 찾았다. 아이가 둘인 네 명의 가족과 한 노부부도 보였고 청년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수상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 열차는 곧 선로 분기점에서 포탄역이 아닌 경마장역 방향으로 향할 것이었다. 그때였다. 치우와이가 소리쳤다.

  “뭐야? 화면이 왜 이래?”

  세 번째 칸 영상만이 새하얀 백지처럼 변했다. 통신 문제나 인위적으로 가려서 생기는 화면이 아니었다. 화면 상단 중간에서 조그맣고 검은색에 가까운 빨간 점이 거의 일정한 리듬으로 깜빡거렸다.

  직원도 영문을 몰라 당황해했다. 곧이어 다른 칸 영상에서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켈리가 말했다.

  “잠시만요. 역 플랫폼 CCTV요. 그 영상 보여주세요.”

  세 번째 칸에서는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얼핏 보이는 전동차의 창문으로는 내부 상황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순간 켈리의 눈앞으로 샤우케이완 트램역과 트램 기사와 홍콩 군중의 형상이 스쳐 지나갔다. 치우와이의 눈은 아까보다 더 심하게 충혈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한참 동안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다음 역으로 향하는 열차 세 번째 칸 영상을 덮은 새하얀 백지 곳곳이 투명해지며 내부를 비추었고 그곳에는 모두가 사라지고 없었다.

 

  6

 

  흥분하는 직원을 진정시키느라 켈리와 치우와이는 진땀을 뺐다. 그들도 논리적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직원이 이성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진정한 듯하다가도 다시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켈리는 그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홍콩 군중이라는 조직이 곧 접근할 것이고 최대한 우호적으로 대해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그들이 언제 갑자기 강압적으로 변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치우와이는 켈리와 역에서 나와 피곤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그녀를 사무실까지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사실 그는 켈리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연이은 실종 사건의 연관성이며 홍콩 군중이라는 조직까지 모든 것이 궁금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치우와이는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그 무엇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켈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기의 말에 동의하는 치우와이를 보았다. 이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차에서 내리면서 말했다.

  “선배. 우리 이거 같이 해요. 선배가 필요해요.”

 

  이틀 뒤 치우와이는 상부 승인을 확인하자마자 완차이에 있는 CIB 본부로 향했다. 마침 켈리가 조이와 옌팡의 신상 정보 파악을 완료한 참이었다. 그는 본부 건물에 도착해 한참을 헤매고 나서야 켈리가 있는 곳을 찾았다. 빌딩은 너무 크고 간체자와 영어 안내밖에 없었다.

  “당분간은 매일 마중 나와 줘야겠는데. 여긴 홍콩이 아닌 것 같다.”

  “그건 시간 아까워서 힘들겠는데요. 아무튼 선배, 결과부터 보러 가시죠.”

  치우와이는 자료를 살펴보다가 한 부분에 이르러 곧바로 켈리를 쳐다보았다. 켈리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확인한 것은 조이와 옌팡 모두가 가입한 어느 폐쇄형 SNS 계정이었다.

  “‘Escape For Liberty’. 자유를 위한 탈출이라⋯⋯. 이거, 타이완 여행책과도 관련 있어 보이는데. 둘 다 그 책을 가지고 있었고, 역시 둘 다 이 계정에 가입했고.”

  “저도 똑같은 생각이에요. 이 사진도 보시면 가입자끼리 오프라인 모임도 하는 것 같아요. 중간에 서 있는 남자 손목을 확대하면 ‘EFL’이라는 문신이 보여요. 그리고 여기 구석에 조이랑 옌팡이 앉아 있죠.”

  “켈리. 이거 인신매매 조직 아닐까. 타이완으로 갈 수 있다고 속이고 불러 모아서 납치한 게 아니냐 말이지.”

  “음⋯⋯. 계정에 남아 있는 정보가 거의 없어서 추측하기 힘들지만 저는 조이와 옌팡이 모든 것을 알고 모임에 갔다는 느낌이 들어요. 무엇보다 전철을 탄 것도요. 그러니까, 납치는 아닐 거라는 얘기죠. 이 조직은 어떤 뜻을 같이하는 그룹인 것 같아요.”

  치우와이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EFL이 어떤 조직인지 알기 전에 자신이 켈리와 목격한 비현실적인 상황부터 파악해야 할 듯도 싶었다. 아직까지 그들은 그 현상의 물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한참 동안 둘은 말이 없었다. 치우와이가 정적을 깼다.

  “근데 애들 이름 말야. 영 입에 안 붙네. 조이와 옌팡이라니.”

  “한참 전부터 어린 애들 이름은 거의 다 중국식으로 짓기 시작했잖아요. 옌팡처럼요. 그게 싫으면 조이처럼 영어 이름을 쓰는 거고요. 저도 뭐, 선전 출신이라서 중국식 이름이 있는데 안 써요. 켈리가 좋아요.”

  켈리와 치우와이가 다시 대화를 시작하면서 집중하려는 찰나 치우와이의 휴대폰이 울렸다. 짧은 통화를 마친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 MTR 기관사. 경마장역에서 목 매달린 채 발견됐대.”

 

  7

 

  켈리는 옛날 생각이 났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선전이라는 도시를 떠올렸다. 그곳은 좋은 곳이었다. 홍콩과 가까워 경제적으로 빠르게 발전된 곳. 수많은 고층 빌딩들이 만들어내는 미래 도시의 풍경. 그래서 중국이면서도 중국 같지 않은 곳⋯⋯.

  그곳에서 그녀는 켈리 천이 아니라 천리잉이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켈리는 그녀를 제일 아끼는 할머니가 지어준 자신의 이름을 고향만큼이나 좋아했다.

  열세 살 생일날이었다. 그때 켈리는 엄마와 아빠와 할머니와 함께 차를 타고 해양 공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반대편 차선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한 대형 트럭이 있었다. 그것은 원래 켈리네와 마주칠 일 없는 그저 정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차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트럭은 갑자기 왼쪽으로 기울며 쓰러지면서 중앙선을 넘어와 켈리 가족을 덮쳤다. 오직 켈리만이 할머니 품속에서 살아남았다. 가족이 남긴 재산은 생전 처음 보는 삼촌이라는 사람이 모두 가로채 가버렸다.

  혼자 남겨진 켈리는 청소년 보호 시설에 맡겨졌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더 이상 어느 누구도 자신을 순수한 애정으로 돌봐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때부터 그녀는 어떤 과도한 관심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계속 옆에 서서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켈리는 정부 보호 대상자로서 생활 전면에서 관리를 받았다. 춥지 않게 입고, 굶지 않고, 편히 잘 수 있었지만 모든 것은 통제하에 시행되었다. 당시 중국 당국은 타이완 무력 통일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었고 그 움직임에 맞추어 본토의 각종 정책들도 강하게 다루었다.

  가족을 몰살한 잔인한 사건이 일어난 지 두 해가 지난날 켈리는 방 안에서 울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날만큼은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작년에 이어 보호 대상자 오프라인 인터뷰에 참석해야 했음에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시설 관리인은 평소처럼 굳은 표정으로 켈리를 재촉했다. 그녀는 오늘은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다고, 그냥 혼자 있고 싶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인터뷰 장소로 가는 버스 구석 자리에 앉아 진이 빠지도록 울었다.

  겨우 울음을 멈춘 켈리에게 그토록 심하게 울었던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할머니와 홍콩섬 스탠리에 놀러 갔다가 홀로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당시 홍콩 경찰이 나서서 켈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가족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을 것이었다. 그 기억은 그렇게 떠올라 한참을 그녀 곁에서 머물렀다. 그 이후로 켈리는 홍콩에 관한 거의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왠지 홍콩으로 가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는 10대의 마지막 즈음 선전을 떠나 홍콩으로 왔다.

 

  8

 

  샤틴 경찰서로 각 언론사 기자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지난 화요일에 있었던 MTR 경마장역 오진입 사건의 수사 결과 브리핑이 열릴 참이었다. 켈리와 치우와이는 참석하지 않으려 했으나 상부의 엄포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모든 순서가 끝나자마자 그들은 자리를 떴다. 켈리가 소리치며 말했다.

  “도대체 뭐라는 거야! 자살이라니. 서장 새끼, 뭘 처먹은 게 틀림없어.”

  “켈리. 진정해. 우리 다 알고 왔잖아. 그나저나 말이야.”

  “뭐가요?”

  “저번에 그 트램 기사는 어떻게 됐어?”

  켈리는 그와 몇 번의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최근 통화에서 그는 나중에 연락하자며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날 저녁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는 아예 받지 않았다. 켈리는 곧 샤우케이완 트램역 실종 사건의 담당자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그 담당자의 목소리는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그녀는 샤우케이완역에서 일어난 두 번의 사건 중 첫 번째 건에서 신고자가 실종 신고를 최종 철회했다고 전했다. 연인 간의 문제였고 이제는 연락이 닿았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건은 아직도 공식적으로 들어온 실종 신고가 없는 데다 트램 기사가 이번에는 먼저 연락해 아무래도 그것은 자신의 착각인 것 같다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고 필요하다면 재수사에 응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켈리는 홍콩 군중과 연달아 일어난 사건들 모두를 아우르지 못하고 있음을 자책했다. 그러나 지금은 스스로에게 실망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녀는 홍콩 군중이 마침내 전면에 나선 것이라고 확신했다.

 

  9

 

  치우와이와 켈리는 최근 홍콩 군중의 움직임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실종된 사람들의 행방도 묘연했지만 남아있는 사람들, 조이와 옌팡의 엄마와 역무원들 모두가 위험에 놓여있었다. 그럼에도 인원 충원이나 그 외 지원은 없었다. 켈리가 그들의 뒤를 밟기 시작한 때와 비교하면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돌아온 화요일 새벽. 둘은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고 그대로 나와 차에 올라탔다. 켈리와 치우와이는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홍콩 군중이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고 또 누군가가 갑자기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들은 곧 셩완에 도착했다. 이곳에 온 것은 이유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실종은 일반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인 트램과 전철에서 일어났다. 거기에다 켈리가 추적한 바에 의하면 홍콩 군중은 비공식 교신 방법 중 하나로 곳곳의 우체통을 사용했다. 손으로 직접 작성한 서류를 우체통을 매개체로 써서 교환하는 것이었다. 어제 발견한 서류에는 셩완과 센트럴 지역, 페리 부두가 언급되어 있었다. 켈리와 치우와이는 홍콩 마카오 페리 터미널에서부터 센트럴 스타 페리 터미널까지 살펴볼 계획이었다. 막연하게 넓은 범위지만 그렇다고 사무실에서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다.

  켈리는 누군가 창문을 마구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편의점에서 먹을거리를 사서 돌아온 치우와이였다. 그에 이어 켈리도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는 홍콩 군중을 발견했다. 이번에도 한 쌍의 남녀였다. 켈리와 치우와이는 곧장 그들의 뒤를 쫓았다.

  그들은 센트럴 2번 부두와 3번 부두를 지나 이제는 6번 부두까지 지나칠 참이었다. 치우와이와 켈리는 홍콩 군중의 목적지가 7번 부두 즉, 스타 페리 터미널임을 알았다. 그렇다면 센트럴에서 침사추이로 가는 페리 안 1층 또는 2층에서 사람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홍콩 군중이 두리번거리다가 갑자기 페리 1층 출입구를 향해 뛰었다. 켈리와 치우와이도 그들을 놓치지 않으려 전력으로 달렸다. 그들 모두는 막바지로 배에 올랐다. 켈리는 흥분해 홍콩 군중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러자 그들 중 남자는 켈리가 있는 방향으로, 여자는 다른 방향으로 총구를 고정했다. 그곳에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밖은 이내 어두워져 스콜이 내리기 시작했다.

 

  치우와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가 여자를 향해 총을 들어 힘의 균형을 맞추었다. 홍콩 군중의 남자가 켈리와 치우와이를 보면서 말했다.

  “저 사람들은 국가의 법을 어긴 범법자들입니다. 당신들에게는 범죄자를 검거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적이 아닙니다.”

  “무슨 개소리야! 너네들 정체가 뭐야. 뭔데 잡으라 마라야. 그 기관사 니가 죽였지? 너네 도대체 뭐하는 새끼들이야!”

  치우와이는 켈리가 그토록 흥분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침착해야 한다는 눈빛을 그녀에게 보냈지만 뜻이 잘 전달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때 사람들 무리에서 누군가 앞으로 한 발짝 나왔다. 켈리와 치우와이에게 그 사람은 낯설지 않았다. 손목에 ‘EFL’ 문신이 있는 바로 그였다. 그의 시선이 홍콩 군중으로 향했다.

  “우리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선택일 뿐입니다. 당신들은 무슨 자격으로 우리의 결정을 통제할 수 있습니까?”

  켈리가 말했다.

  “당신들 진짜⋯⋯. 도대체 어떻게⋯⋯.”

  “우리는 타이완으로 갈 겁니다. 왜 우리가 억압받고 감시를 당하면서 자유롭지 못하게 살아야 합니까?”

  스콜은 멈추지 않고 더 강하게 몰아쳤다. 아까는 거의 불지 않던 바람이 더해져 페리는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곧 페리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비상계단 통로 안에서부터 하얀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켈리와 치우와이는 그 불투명하고 새하얀 빛을 단숨에 알아보았다.

  페리 오른쪽 앞 너머에서 시계탑이 다가오고 있었다. 모두가 탄 배는 이제 수 분 안에 정박할 참이었다. 사람들은 그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빛을 향해 달려갔다. EFL 남자도 그 뒤를 따랐다. 홍콩 군중의 여자가 그들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치우와이가 여자에게 총을 발사했다. 여자는 우측 다리를 맞고 쓰러지면서 쏘았고 그것은 빗나갔다. 그사이 앞서간 사람들 중 첫 번째 사람이 계단 난간을 잡고 발을 딛자 흰 빛이 그녀를 에워쌌다. 그리고 그녀는 별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이 통로 안으로 사라졌다. 검붉은 잔상만이 남았다.

  동시에 벌어진 일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홍콩 군중의 남자가 이어서 다음 사람과 치우와이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그때 다음 사람은 이미 빛에 대부분 감싸져 마치 백연과도 같은 형태로 변해 피할 수 있었지만 치우와이는 복부를 맞고 쓰러졌다. 켈리는 곧장 남자를 향해 대응 사격하고 치우와이 곁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사라지는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켈리는 다시 일어서려고 꿈틀대는 홍콩 군중의 여자를 경계하면서 치우와이의 상태를 보다가 EFL 남자마저 놓칠 뻔했다.

  “멈춰! 멈춰요!”

  그녀가 그를 붙잡자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실종된 게 아닙니다. 조이와 옌팡 그리고 모두는 타이완 어느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저 또한 가야 합니다. 켈리 경장님도 여전히 자유로운 삶을 원하는 거 아닙니까?”

  켈리는 그 말을 듣고 선택권을 그에게 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어떤 강요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렇게 사라졌다.

 

  10

 

  3주가 지났다. 그간 실종 신고도, 더 이상의 탈출도 없었다.

  치우와이는 집중 치료를 받아 거의 회복했고 홍콩 군중의 남자와 여자는 응급 처치 후 죄수를 진료하는 폭푸람 퀸 메리 병원으로 옮겨져 관리를 받고 있었다. 남자는 위중한 상태였다.

  한편 홍콩 정부는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얼마 전 홍콩 군중을 허용하지 않은 범위의 감시 활동과 부여하지 않은 수사권 사용 및 남용을 사유로 공식 해체했지만 각종 언론 매체는 거듭 의혹을 제기했다. 홍콩 군중은 과연 누구의 뒤를 쫓은 것인지 가짜 뉴스를 포함해 여러 말들이 셀 수 없이 오갔다.

  자연스럽게 켈리와 치우와이에게도 공조 수사 종료 명령이 떨어졌다. 치우와이와 특히, 켈리는 상부의 의도를 알아채고 EFL이나 홍콩 군중 잔여 세력에 관해 수사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곧바로 제지당했다.

  “켈리. 숨을 좀 고를 필요가 있어. 난 언제든지 도와줄게.”

  “나 때문에 고생만 하고. 미안해요, 선배.”

  “이게 왜 너 때문이냐? 그런 말 하지 마. 근데⋯⋯. 마지막 그 사람 말이야.”

  “선배도 못 헤어나는 건 마찬가지네요. EFL 남자 말이에요?”

  “그래. 혹시 그 남자가 다른 얘기는 안 했어?”

  “안 했어요. 이름을 물어보고 싶었는데⋯⋯.”

 

  11

 

  화요일은 어김없이 매주 찾아왔다. 켈리와 치우와이는 각자의 현장에 있었지만 화요일이 돌아올 때마다 같은 감정을 느꼈다.

  거기에다가 치우와이는 오늘도 두통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저녁까지는 못 버틸 것 같았다. 그는 병가를 내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치우와이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행사 광고를 들었다.

  ‘지중해 바다가 당신을 기다립니다.’

  그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치우와이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타이오 어촌 마을까지는 가는 데만 한 시간 이상 걸리지만 그곳 바닷바람을 쐬면 두통은 씻겨 날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퉁충을 지나 청샤 해변 근처쯤에 왔을 때 치우와이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두통은 더 심해졌고 구토가 나오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이미 3분의 2 이상을 와버린 것이기도 했다. 그는 달려온 시간이 아까워 간이 버스 정류장 끝에 차를 세우고 잠시 쉬었다. 한 가족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따라오던 2층 버스가 경적을 크게 몇 번이나 울리고 멈춘 뒤 가족을 태우고 떠났다.

  치우와이도 목적지로 재차 출발했다. 잠깐이라도 들렀다 갈 계획이었다. 전방에 방금 앞서간 2층 버스가 보였다. 그것은 굉장히 느리게 가다가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이는 것을 반복했다. 그는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켈리는 전철을 타고 CIB 본부로 가는 중이었다. 그동안의 초과 근무로 곧장 퇴근해도 되지만 최근 맡은 허드렛일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치우와이의 전화였다.

  ‘켈리, 길게는 통화 못 해. 나 지금 타이오 마을가는 길이야. 청샤 해변 막 지났어.’

  ‘네?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내 앞에 버스가⋯⋯. 번호 불러 줄게. 지금 조회할 수 있겠어?’

  ‘선배, 알아듣게 설명 좀 해봐요.’

  켈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와 같이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말했다.

  ‘설마⋯⋯.’

  ‘맞을 거야. 아니, 확실해. 어디야? 지금 바로 올 수 있지?’

  ‘가야죠. 근데 한 시간 이상 걸려요. 어쩔 작정이에요?’

  ‘검은 놈들이 있다면 막아야지. 어쨌든 사람들은 다치면 안 되잖아. 빨리 와.’

  ‘⋯⋯.’

  ‘여보세요? 켈리?’

  ‘⋯⋯잠깐만요. 다시 전화할게요.’

  그녀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12

 

  켈리는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 그들이 떠나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녀는 그 이후로 자신이 했던 판단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 왔다. 그들은 자신과 똑같이 더 나은 세상을 갈망하는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실제 행동으로도 그렇게 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름조차 모르는 그 남자의 말만 듣고 그들의 안전을 확신한 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그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사라진다 할지라도 시민의 안위를 책임지는 경찰로서 사람들이 불확실한 안전망에 빠지는 모습을 방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켈리는 만약에 앞서 타이완으로 간 탈출자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다면 지금의 그들을 막을 명분은 없다고 되뇌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탈출자 정보는 조이와 옌팡의 예전 신상 정보와 EFL 남자의 얼굴과 목소리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그것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았고 무엇보다 시간이 없었다.

  MTR 케네디 타운역에서 출발한 전철은 이제 셩완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플랫폼 벽면에 크게 써진 셩완이라는 글자가 켈리의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녀는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깨닫고 전철에서 내렸다.

  켈리는 휴대폰을 꺼내 치우와이에게 끊었던 전화를 다시 걸면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빨리 그에게 가야 했다. 그리고 그녀는 마음속으로 그들은 나보다 더 행복하기를, 하고 빌었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931 단편 종막의 사사2 계수 2021.11.20 9
2930 단편 피는 물보다 진하다 미음 2020.10.31 7
2929 단편 샌드위치 맨1 아메리카흰꼬리사슴 2020.09.29 7
2928 중편 반짝임에 이르는 병 이멍 2022.02.18 7
2927 단편 사랑의 의미 진정현 2018.10.24 6
단편 실종 진정현 2018.12.05 6
2925 단편 아무도 읽지 않습니다2 소울샘플 2020.12.30 6
2924 중편 혼자서 고무보트를 타고 떠난다 해도 조성제 2020.01.03 5
2923 단편 소프라노 죽이기(내용 삭제)1 신조하 2022.03.23 5
2922 단편 [공고] 2023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명단 mirror 2023.01.24 4
2921 단편 천하에 소용없는 노력과 망한 인생 대혐수 2022.09.03 4
2920 단편 수취인, 불명 양윤영 2022.03.04 4
2919 단편 아웃백 아메리카흰꼬리사슴 2020.04.29 4
2918 단편 시아의 다정 양윤영 2020.03.29 4
2917 단편 당신은 나의 애정 캐릭터니까 두영 2019.12.31 4
2916 중편 코로나 세이브 어쓰 - 2020년생을 위한 스마트 혁명 가이드 소울샘플 2020.09.16 4
2915 단편 연희 진정현 2018.10.24 4
2914 단편 채유정 진정현 2019.02.20 4
2913 단편 문초 진정현 2019.08.26 4
2912 단편 슭곰발 운칠 2022.01.25 4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