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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인류학자는 이 사건을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 평했다. 그러나 그 인류학자의 아내는 인류학자가 잠자리에서 보여주는 태도보다는 덜 비극적이라고 반박했다. 물론 학계에서는 그 아내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비록 이 사건이 인류학자의 잠자리 태도보다는 덜 비극적이더라도, 수많은 지식인과 종교가들을 자살로 몰아냈다는 점에서 역사의 전환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 엄청난 자살의 신드롬은 간단한 증명에 따라 이루어 졌다. '기적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으며, 그러므로 기적이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적만큼이나 그 증명 역시 새삼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과정이 전 지구적으로 이루어졌기에 자살 신드롬이 가능했다고 학계는 분석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인류학자, 사상운동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어 문화적 부흥을 일으켰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지식인과 종교가들의 자살은 문화적 부흥의 원천이었다.

 "기적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다만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라고 인류학자는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의 아내는 "물론 몰라도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 없다."고 덧붙였다. 학계는 여전히 학자보다 그의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


2.
 사건은 2013년 2월 15일 점심시간, 미국 캔사스주 A건설 본사빌딩 경비실에서 시작되었다. 그 날 A건설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애스톤 마틴(가명, 당시 57세)은 맥주를 마시며 갓 돌 된 손자를 경비실에서 돌보고 있었다. 그의 자식부부는 맞벌이로 바빠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었기에 그는 몰래 경비실에서 손자를 돌보곤 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배송된 우편물을 각 부서별로 분류하며 아이와 놀아주었다. 그러던 중 그는 잠시 다른 일을 보러 가야했고, 아이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후 방을 나갔다. 그리고 그의 손자는 할아버지가 마시던 맥주병에 입을 대고 꼴깍꼴깍 맥주를 마셔대기 시작했다.

 아이는 흠뻑 취했고, 아기의 위장은 술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머지 할아버지의 일거리 위에 토사물을 쏟아내었다. 수많은 우편물들이 아기의 알콜 섞인 토사물로 범벅이 되었고, 책상 위는 엉망이 되었다. 아기는 취한 상태로 책상 위를 기어 다니며 토사물과 우편물을 골고루 섞고 비벼대며 놀았다. 그러면서 경비실에 설치되어있는 안내방송의 스위치가 '우연히' 켜지고 '우연히' 피복이 벗겨져 있는 마이크의 선이 '우연히' 토사물 묻은 에어캡 포장에 닿았다. 그러자 스피커를 통해 건물에 낯선 음성이 울려 퍼졌다.

"아아, 아아. 안녕하십니까, 지구인 여러분?"

 그들의 첫인사는 유창한 영어발음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고 전해진다. 그것이 인류와 우편물 포장용 에어캡-일명 뽁뽁이- 안에 존재하는 외계문명과의 첫 만남이자 사건의 발단이었다.


 이 전대미문의 사건에 대한 A건설의 반응은 즉각 이루어졌다. A건설은 아이를 회사에 데려오고 우편물을 토사물 범벅이 되게 만든 애스톤 마틴을 당장 해고해버렸다. 그리고 상냥한 목소리로 자신이 살고 있는 우주 문명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는 스피커의 전원을 꺼버렸다. 그렇게 인류와 외계문명의 첫 만남이 덧없이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A건설에 인턴으로 들어와 있던 대니엘 올리버(가명, 당시 25세)에 의해 그 교류는 계속 될 수 있었다. 대니엘 올리버는 애스톤 마틴 대신 경비실에서 숙직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원 모두 퇴근한 야심한 시각, 그는 경비실을 청소하던 중 문제의 에어캡을 발견했다. 대니엘 올리버는 포장용 에어캡을 좋아했다. 그는 에어캡의 명칭을 알지 못했고, 다만 남들이 그것을 부르듯 뽁뽁이라고 불렀다. 대니엘 올리버는 할 일 없는 저녁때면 비닐 위 올기돌기 돋아난 혹들을 뽁뽁 터뜨리며 시간을 때우곤 했었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에어켑을 토사물이 묻지 않은 부분이라도 터뜨려볼까 하고 집어 들었고, 그러다 다시 '우연히' 피복이 벗겨진 마이크선이 에어캡에 닿았다. 외계문명에서의 전언이 다시 이어졌다.

 대니엘 올리버는 한참동안 당혹스러워 했다. 그러다 그는 뽁뽁이에게 말을 걸었고, 뽁뽁이는 대답을 했다. 그는 긴 대화 끝에 뽁뽁이 속에 우주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들과의 대화는 간단히 이루어졌다. 그냥 뽁뽁이에다 대고 말을 하기만 하면 됐다. 뽁뽁이들의 과학력은 인류보다 수십만배 뛰어났고, 그들에게는 자신의 우주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감지할 기술력이 있었다. 대니엘 올리버는 다음 날 저녁 흥분으로 얼굴이 빨개져서 토사물이 묻은 뽁뽁이를 집으로 들고 갔다. 그리고 스피커를 분해해 뽁뽁이에 연결했다. 대화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그가 뽁뽁이와의 대화에서 알아낸 사실은 다음과 같다.


하나. 아이가 술 먹고 구토한 토사물과 에어캡이 미묘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
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뽁뽁이의 한 알 한 알마다 우주가 담겨있다는 것.


 대니엘 올리버는 그 날 밤 자신이 파괴해 온 우주가 몇천만개에 이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엄청난 죄책감에 자살해버렸다. 그가 좋아했던 뽁하고 터지는 소리는 한 우주의 단말마였다. 그는 죽기 전 수많은 언론사에 진실이 담긴 편지를 보냈다. 또한 대니엘 올리버는 '나는 다른 사람에게 온 소포의 뽁뽁이를 훔치면서까지 우주를 터뜨렸고 쉬는 시간에 시간 때우기로 우주를 파괴한 잔인무도한 악마다'는 내용의, 자신의 죄상을 조목조목 고백한 유서만을 남기고 목을 매달아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가 언론사에 보낸 편지는 대부분 묵살되었다. '뉴욕 타임즈'는 그 날 받은 마흔 한통의 외계인과 접선했다는 내용의 편지와 함께 그의 편지를 소각로에 던졌다. '워싱턴 포스트'에서는 관리자가 그의 편지에 커피를 엎질러 아무도 읽지 못하였다. 다른 언론사의 기자들 역시 그의 편지를 3줄도 읽지 않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다만 <특종! 믿든 말든>의 편집장만이 작은 흥미를 보이고 수습기자에게 인터뷰를 맡겼다. 다음은 <특종! 믿든 말든>의 수습기자 케리 샐던(가명, 당시 22세)과 인류와 최초로 콘택트한 뽁뽁이 우주의 인터뷰 녹취록 전문이다.

케리-"안녕하세요. 저는 <특종! 믿든 말든>의 케리 셀던입니다."
뽁뽁이-"안녕하세요. 지금 이 음성은 저희 우주의 통합정부의 의지를 기계로 발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케리-"저, 당신들 우주의 역사는 어떻게 되지요?"
뽁뽁이-"지구 시간으로 3개월 정도 되었습니다만, 당신들이 거주하는 시간축과 우리들의 시간축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지구의 감각으로 계산해보자면 3개월에 10의 1,000,000제곱 정도를 곱하시면 됩니다. 통합정부는 몇 억년에 걸쳐 당신의 말을 분석하고, 몇 억년에 걸쳐 통합정부의 의사를 결정한 후 몇 억년에 걸쳐 당신에게 그 의사를 송신하고 있습니다."
케리-"맙소사...혹시 모든 에어캡에 우주가 들어있습니까?"
뽁뽁이-"그렇습니다. 공장에서 에어캡이 생산되는 순간부터 한 알 한 알마다 새로운 우주가 태어납니다. 우리 우주보다 훨씬 더 고도의 문명을 지닌 에어캡도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케리-"놀랍군요. 하지만 당신들보다 고도의 문명을 가진 에어캡이 있다면 어째서 그들은 인류와 접촉하지 않았지요?"
뽁뽁이-"우리는 이제까지 당신들 인류와 소통하고 싶었지만, 당신들에게 말을 전달할 수단이 없었습니다. 허나 우연히 특수한 성분이 포함된 용액과 피복이 벗겨진 스피커선이 매개체가 되어 당신들에게 우리의 음성을 전달할 기회가 온 것입니다."
케리-"당신들 우주 통합정부의 연혁은 어떻게 되지요?"
뽁뽁이-"말하는 순간에 이미 몇십억년이 더 지나갈 테니 발생시각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에어캡이 공장에서 만들어진 순간부터 대략 2초 뒤입니다. 대다수 에어캡 문명의 발전속도는 그 정도쯤입니다."

 이 놀라운 인터뷰에 <특종! 믿든 말든>의 편집장은 큰 흥미를 보였다. 그리고 이를 기사화하기로 결정했다. 기사의 표제는 이렇다. "당신들의 에어캡 속에 거대문명이 숨어있을지 누가 아는가?" 그러나 기사는 지면의 부족으로 표제밖에 실리지 못했고 이내 편집장의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그는 자기네 집 마당에서 주운 그릇조각이 6천년 전에 외계인이 인류에게 전해준 오파츠라고 확신해 집 앞마당의 발굴 작업에 들어갔고, 발굴 작업의 일정이 너무 빡빡해 잡지에 신경을 쓸 여건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건은 또다시 이렇게 묻히는 듯 했다. 하지만 A건설에 근무하는 폭스 멀린(가명, 당시 34세)의 작은 호기심으로 그 만남은 지속되었다. 그는 2월 15일 점심시간에 일어난 사건에 의구심을 가졌고, 사건이 일어났던 경비실을 조사했다. 그리고 그는 경비실에서 하루 숙직했던 대니엘 올리버의 이해할 수 없는 자살을 알게 되었다. 폭스 멀린은 그가 죽기 전날 점심시간에 방송된 외계문명에 대한 내용이 진실이라고 가족에게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니엘 올리버는 그의 죄를 속죄 받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죽기 전 마지막 유언으로 뽁뽁이를 터뜨리지 말라고 가족들을 타일렀던 것이다. 폭스 멀린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하여 자신의 옆집에 사는 이웃의 사촌의 처제의 동료의 어머니의 팔촌 친척의 CIA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CIA는 이 해프닝에 흥미를 가졌다. 그들은 2급비밀전담요원 톰 앤저리(가명, 당시 32세)를 파견하여 진상을 규명 하려 했다. 톰 앤저리는 사건의 발단인 뽁뽁이를 훔치러 케리 샐던의 집에 숨어 들어갔다. 그는 그녀의 방 보안장치를 건드리는 작은 실수를 저질렀고, 그날 밤을 유치장에서 보냈다. 각국의 정보부는 이 사건을 놓치지 않았다. 작은 실수는 커다란 파문을 가져왔다.
 냉전시대 이후 최대의 첩보전이 시작되었다.


 수천억년의 역사를 가진 뽁뽁이 우주 문명의 과학과 기술은 현 지구의 수준과 차원이 다를 것이 분명했다. 그들 문명의 아주 작은 일부라도 특정국가에만 유입된다면 그것은 국가 간 경쟁에서 완벽한 승리를 보장해 줄 것이 자명했다. 각국의 정보기관들은 구토 묻은 뽁뽁이를 얻기 위해 눈에 불을 밝힌 채 덤벼들었고, 자본기업의 총수들도 경쟁에 끼어들어 사조직을 투입했다. 냉전시대 이후 산업스파이로 전락했던 수많은 정보원들은 활력을 되찾았다. 그들은 다시 공무원이 되었고 안정적인 생활을 가지게 되었다. <007 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에나 나올 것 같은 비밀무기와 최신 자동차들이 각지에서 개발되었다. 인류 역사 이래 가장 격렬한 첩보전이었다. 단순히 아이의 토사물로 범벅이 된 뽁뽁이를 얻기 위한 전쟁으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이지 엄청난 수의 정보기관 요원들이 이 사건에 투입되었다. CIA, Mossad, 공안, KGB, etc, etc... 냉전 후 사라졌었던 수많은 정보기관들이 다시 부활되고 확장되었다. 모국에서는 국정원이라는 단체에서 이 사건에 적잖은 수를 파견했다고 한다. 최근에 알카에다 같은 테러집단들도 그 경쟁에 끼어들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하니, 그 첩보전의 규모는 아직 누구도 짐작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구토 묻은 뽁뽁이에 관련된 많은 존재들이 사라졌다. A건설은 음모에 의하여 부도가 났고 케리 샐던, 폭스 멀린, 톰 앤저리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하다. <특종! 믿든 말든>의 출판사는 다행히 첩보전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망해있었다. <특종! 믿든 말든>의 편집장은 자신의 앞마당에다 마치 그랜드캐년을 재현하려는 듯 막대한 발굴 작업을 벌였다. 그리고 그 발굴 작업에는 편집장이 빼돌린 회사의 공금이 들어갔었고, 그로 인하여 회사는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생애 첫 주정과 구토로 뽁뽁이와 인류 사이에 다리를 놓았던 애스톤 마틴의 손자는 그 격전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그에게 다시 알콜을 먹이고 구토를 유발시키려는 수많은 음모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구토 묻은 뽁뽁이와 구토의 원천존재였다. 아기는 수많은 첩보기관 내에서 구토를 해야 했다. 어째서인지 아이의 구토가 더 이상 뽁뽁이와 인류와의 연결점이 되지 못했고, 첩보기관은 아기를 일상생활에 돌려주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다른 첩보기관들이 아이를 다시 자신들의 세계에 데리고 왔기 때문이다. 그 끝은 상당히 오랜 기간이 지난 뒤에나 찾아왔다. 전 세계, 고금동서를 통틀어 그 아이보다 많이 정보기관 관리자들과 만나본 사람은 없었다. 아이는 각국의 정보기관에 적어도 두번 이상씩은 얼굴도장을 찍은 후 무사히 부모에게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다만 당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간과 위장이 많이 상해있었다고 한다.


 아이의 구토가 아무 효능이 없자, 결국 첩보원들의 표적은 구토 묻은 뽁뽁이 하나로 좁혀졌다. 그 뽁뽁이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요원들의 피가 흘렀고 각국의 도시가 파괴되었다. 요행히 인류와 문명의 미래, 그리고 노후연금을 위한 첩보원들의 피나는 희생 끝에 구토 묻은 뽁뽁이는 기적적으로 무사했다. 표면적으로는 각 국 간 어떤 분쟁도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허나 어두운 뒷 세계에서 그렇게 단기간 동안 거친 피바람이 불었던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온 지구가 피로 물들었던 넉 달이 지나고, 구토 묻은 뽁뽁이는 거침없이 작전을 수행한 중국의 손에 들어갔다. 미국의 한 도시에서 펼쳐졌던 마지막 작전에서는 수백명의 요원들이 죽었고 빌딩 하나가 완전히 부서졌으며 도시의 교통은 완전히 마비, 민간 사상자의 수 역시 어마어마했다. 그 격전의 마지막은 비 내리는 밤, 민간인들은 모두 대피하고 첩보요원들만이 도시에 남은 체 시작되었다. 무수한 미국의 첩보요원들과 단 한명의 중국 첩보요원, 안덕삼(가명, 당시 22세)간의 혈전, 그리고 안덕삼의 자폭 끝에 중국은 구토 묻은 뽁뽁이를 차지할 수 있었다. 처참한 현장을 뒤로 하고 중국의 첩보원들은 뽁뽁이를 자기네들의 과학연구소에 보냈다.


 그리고 그 뽁뽁이가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을 때 프랑스의 B운송회사의 경비 닉스 루터(가명, 당시 41세)는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늦둥이 자식을 경비실에서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닉스 루터가 장난삼아 자신의 두 살 먹은 아이에게 포도주를 먹이자 아이는 B운송회사에 배달되어 온 우편물 위에 토악질을 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우연히' 피복이 벗겨진 마이크 선이 그 우편물의 에어캡, 뽁뽁이 위에 닿았고 사내 스피커를 통해 B운송회사에 외계의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안녕하세요, 지구인 여러분."

 그들은 매우 유창한 불어로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다고 한다. B운송회사의 사원들은 그 사건을 매우 흥미진진하게 받아들였다. 그들 중 어느 사원이 <특종! 믿든 말든>에서 이와 유사한 기사를 본 것을 기억해내자 그들은 뽁뽁이와의 대화가 누군가의 장난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들은 다양한 뽁뽁이에 같은 과정을 시도 했고, 모두 성공했다. 그들은 인터넷 유머사이트에 "당신들의 에어캡 위에 발효된 주류와 아이의 구토를 섞어서 부은 후, 스피커를 연결하면 외계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라고 적어 올렸다. 이 인터넷 유머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고, 사실임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날부터 지구에서는 외계인과의 대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다. 중국이 수많은 유혈 끝에 얻은 외계인과의 통신 가능한 에어캡이 연구기관에 도달한지 하루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영국의 어떤 연구기관이 '발효주와 아이의 구토를 섞어야만 효과가 나온다.'라고 보고서를 정리하기 전에 그들의 홈페이지에 그 유머가 올라왔다. 그러나 그 연구기관의 소장은 유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관리자 권한으로 그 글을 삭제했다. 보고서가 상층부에 올라가기 2시간 전의 일이었다.


3.
 뽁뽁이와의 대화는 21세기에 나타난 사건 중 가장 선풍적 유행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인류가 한 발짝 더 나아갈 계기를 얻었다고 기뻐했다. 모두 희망에 부풀어 올라 자신의 아이에게 술을 먹이고 구토를 하게 해 그 액체를 뽁뽁이에 발랐다. (간혹 발효주가 아닌 술을 섞었다 낭패를 보는 부모도 있었다.) 아이들의 위장과 간은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고 소아과병원 의사들은 끝없이 몰려드는 손님들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사람들은 어딜 가든 뽁뽁이에 스피커 선을 연결하여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모든 뉴스에서 뽁뽁이와 대화한 내용을 다루었다. 정치적 스캔들로 정적을 처리하거나 결혼설 발표로 다른 연예인의 노출사진의 파장을 가리려던 시도들은 모두 무가치했다. 사람들은 모두 뽁뽁이만을 바라보고 지냈다.

 가장 먼저 정치적 행보를 보인 것은 시민단체였다. 그들은 고도의 지성과 문명을 갖춘 뽁뽁이를 터뜨리는 행위를 규탄하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그들을 포장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뽁뽁이를 위한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설립되었고 이 단체들은 모두 거리로 나가 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택배업체와 에어캡제조회사에서는 울상을 지었지만 누구도 그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 다음은 종교계에서 에어캡의 생산을 중단하라는 주장을 펼쳤다. 에어캡의 제조는 수 억개의 문명을 탄생시키는 일이며, 이러한 창조의 행위는 신에게만 주어진 권한이라는 논지에서였다. 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어차피 포장용도로 사용되지 않을 에어캡을 생산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쉽게 입법화 하였다.

 검찰은 사건현장에 있었던 뽁뽁이의 증언을 채택시켜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그들은 뽁뽁이는 외부의 소리를 감지할 수 있고, 사건현장에 뽁뽁이가 있었다면 증언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판사들은 에어캡 속의 우주인들의 증인채택을 거부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 사건 이후 각국 정부에선 국제법에 의거, 뽁뽁이 우주정부에게 법인자격을 부여하였고, 전 세계의 많은 미결 사건들이 해결되었다.

 어떤 과학자들은 에어캡이 아닌 다른 물건에도 미지의 문명이 존재하리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들은 아이의 구토물과 알콜을 섞어 온갖 물건에다 발라보고 스피커를 연결했다. 과학자들은 뽁뽁이 우주 문명과 인류의 만남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자신들에 의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그들은 다른 문명과 접촉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더군다나 예전부터 외계문명의 존재증거를 찾아다니던 일부 학자들에게 이 사건은 더욱 가혹한 절망이었다. 무엇보다도 UFO나 레이저광선, 제다이 기사들은 뽁뽁이 우주 문명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뽁뽁이 우주문명과의 교류가 시작되고 난 후 사람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심심풀이로 뽁뽁이를 터뜨리는 행위는 금기시 되었다. 뽁뽁이는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놓여졌다. 모두들 뽁뽁이 관리에 엄중을 기했다. 만에 하나 뽁뽁이를 한 알이라도 터뜨린다면 하나의 우주를 터뜨린 셈이니, 사람들은 뽁뽁이 관리에 철저해질 수밖에 없었다. 대니엘 올리버처럼 이제까지 수억의 우주를 파괴한 것에 죄책감을 느껴 자살하는 이들도 생겨났지만, 이런 케이스는 극히 적었다. 정부에서는 무지는 죄가 아니라는 내용의 공익광고를 제작했다.

 뽁뽁이를 이용한 산업 역시 크게 발전하였다. 그중 가장 번창했던 것은 <아기토주>를 생산했던 C주류업체였다. 이 주류회사에서는 뽁뽁이와 통신이 가능한 아이의 구토와 발효주의 성분비를 계산해 내어, 인공적으로 생산하고 그 액체를 <아기토주>라 이름 붙여 판매했다. 그 비율에 대한 특허로 얻은 수익은 C주류업체를 코카콜라 다음가는 음료판매회사로 만들기 충분했다. 아이들의 간과 위장은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고 소아과병원은 드디어 휴가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쁨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 다음가는 이득을 올린 회사는 D음향기기회사였다. D음향기기회사에서는 안전하고 편리하게 뽁뽁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A-pod 헤드셋을 개발해내어 큰 유행을 일으켰다. 이 A-pod은 후속기기에서 녹음기능, mp3 기능, 전화 기능 등 다양한 기능을 추가시켜 그 붐을 지속시켜나갔다. 그 외에도 다양한 부가산업시장이 끝없이 커져갔다.

 꼭 뽁뽁이를 이용한 산업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에어캡을 대체할 방충용 물품산업의 경쟁이 생겼다. 싸고, 편하고, 안전한 포장지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기업들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고안품이 표준모델로 채택되고 특허가 인정되었을 경우의 이득을 생각하면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에어캡은, 뽁뽁이는 전 지구에서 쓰이는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엄청난 음모와 비리, 암투가 벌어졌다. 특히나 기존에 에어캡을 생산하던 회사에선 다른 수익모델이 없었기에 더욱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뽁뽁이를 대체할만한 새 제품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뽁뽁이보다 싸고 안전한 물건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외에도 다양한 곳에서 뽁뽁이는 커다란 붐이었다. 사회 유명인사나 과학계 최고위 학자들, 명성 높은 철학자와 뽁뽁이의 대화가 라디오에서 방송되었다. PD들은 출연료를 주지 않아도 되는 게스트가 생긴 것에 기뻐했다. 과학계에서는 뽁뽁이와의 대화를 통하여 새로운 지식을 얻으려 노력했고 철학자들 역시 새로운 진리를 찾아 뽁뽁이 사이를 헤맸다. 그 시기 학자들의 학구열은 인류 역사에서 비할 바를 찾기 힘들 정도로 타올랐다. 그리고 그 수는 적으나 몇몇 예술가 역시 뽁뽁이에서 영감을 얻으려 고군분투했다. 그 중 가장 비참한 상태에서 연구를 한 것은 바로 종교가들이었다.

"저기요, 교회 다니세요?"
"저희는 무신론잔데요."

 그들의 편을 들어주는 뽁뽁이 우주는 전무했지만 시도는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수십억개의 우주에 선교를 했고 모조리 실패했다. 많은 수의 성직자가 자살했다.


 인류의 발전은 쉽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엄청난 희생과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첩보전을 벌였을 정도로 뽁뽁이 우주와의 교류에 기대가 컸다. 그리고 뽁뽁이 우주와의 교류가 손쉬워진 후 학계가, 아니 온 인류가 그에 건 희망은 어마무지했다. 그들은 뽁뽁이는 분명 지구 문명보다 한참 우위에 서있고, 우리가 그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물론 뽁뽁이 우주 문명수준은 지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들은 어디 하나 다를 곳 없이 고도의 문명을 자랑했다. 지구와는 전혀 다른 시간축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문명의 발전 속도 역시 지구에 비할 수 없었다. 그들은 엄청난 속도로 진화하고 있었다. 학계의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인류는 그것을 배울 수는 없었다. 인류와 뽁뽁이의 수준 차가 너무나 극심했기 때문이다.

 뽁뽁이 우주의 역사는 대부분 10진수로는 A4 한 장 내에 연혁을 적기 힘들만큼 길었다. 또 그만큼 높은 수준의 문화였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인류와 뽁뽁이간 대화의 가장 큰 장애물은 여기서 기인했다. 도무지 수준이 맞질 않는 것이다. 뽁뽁이 우주에서 그들의 가장 기초적인 이론을 설명하더라도 지구의 과학자들은 전혀 이해하질 못했다. 지구의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당면한 문제에 대하여 설명하더라도 뽁뽁이 우주에선 이미 완전히 잊혀진 문제였으므로 전혀 도움을 주질 못했다. 과학자들은 갓 제조한 뽁뽁이나 사이즈가 크고 작은 뽁뽁이의 시간축이 각기 다를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 추측은 맞았으나 아쉽게도 인류에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도화된 뽁뽁이들은 모두 인류와 수준차가 극심했다. 뽁뽁이 우주의 사람들이 진리에 다가가 있고 그것을 배울 수 있으리라는 철학자들의 기대 또한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들 역시 과학자들과 같은 벽에 부딪쳤다.

 과학자와 철학자들은 뽁뽁이들이 도대체 왜 42라는 숫자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을 하려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무지 42가 뭐 어쨌길래 뽁뽁이들이 그 숫자에 집착하는가?' 둘 이상의 과학자, 철학자들이 모이면 그에 관한 토론이 개진되었다. 연구가 끊이지 않았으나 성과는 없었다. 현재도 이 42라는 숫자가 뽁뽁이들의 문화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 학계 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사회학자와 윤리학자들의 경우에는 앞서와는 약간 다른 이유에서 문제에 부딪쳤다. 사회학자의 경우 뽁뽁이 우주의 사회와 지구의 사회 자체가 너무 달라 비교가 불가능했다. 문화적 인식의 차이가 너무 커 아무런 도움을 얻을 수 없었다. 윤리학자들 역시 큰 도움을 얻지 못했다. 사회학자들의 경우와는 정 반대의 이유였다. 뽁뽁이 우주의 윤리수준은 지구의 수준과 매우 흡사했던 것이다. 비슷한 만큼 도움 받을 것도 없었다. 그리고 윤리학자들에게 이것은 재앙처럼 느껴졌다.

"맙소사, 몇백년도 아닌 몇억조년이 지나도 사람들의 윤리의식이 성장을 못한단 말이야?"
 윤리학자들은 성직자 바로 다음으로 자살자 수가 늘어났다.


4.
 뽁뽁이 우주 문명이 인류에게 도움이 못된다는 것이 확실시 된 후, 유행은 시들어갔다. 뽁뽁이를 이용한 산업은 거의 사라졌고 유명인사와 뽁뽁이가 대화를 나누는 몇몇 방송만이 명맥을 유지하였다.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아직 뽁뽁이와의 대화에서 무언가를 얻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몇 개의 음모론-NASA에서 뽁뽁이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는 둥, 뽁뽁이들이 지구 침략을 준비하고 있어서 과학의 진보를 막고 있는 중이라는 둥의-이 유행하긴 했으나, 그 또한 금세 잊혀졌다. 뽁뽁이 우주 관련주식들은 차츰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사람들은 뽁뽁이들을 존중하기는 했지만 존경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뽁뽁이들을 예쁘게 포장해 서랍 속에 넣어두거나 실수로 터뜨려도 눈물을 흘리며 사죄하지 않게 되었다. 그저 아이들이 뽁뽁이를 터뜨리며 좋아하는 것을 보면 혼을 냈지만, 화를 내지는 않는 정도의 존중이었다. 붐은 일시적이었다. 뽁뽁이들은 연구소 밖에선 짐 덩어리 취급을 받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그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은 2014년 12월 15일에 방영된 미국의 TV프로그램 <상공 2만 피트>에서 시작되었다. <상공 2만 피트>는 유명 연예인들이 자신의 신변잡기를 읊어대는, 인기 없는 B급 생방송 토크쇼였다. 그 날 방송된 <상공 2만 피트>의 게스트는 대외적으로 인류와 최초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발표된 뽁뽁이 우주였다. 여느 토크쇼가 그러하듯 <상공 2만 피트>는 뽁뽁이 우주와 진행자의 쓸데없는 잡담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 쇼가 중반에 들어설 무렵, <상공 2만 피트>의 진행자 아니 베른(가명, 당시 44세)이 뽁뽁이 우주에게 건넨 하나의 질문으로 그 끔찍한 참상이 시작되었다.

"당신들은 지구의 문명을 어떻게 생각하지요?"
"조금 미개하고 야만스럽지만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합니다."

 대량학살의 효시가 쇼의 정적을 꿰뚫었다.


 방송 다음 날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각종 일간지의 일면에는 '세계 최초로 인류와 대화한 뽁뽁이 우주, 지구 문명 미개하고 야만스럽다 비난', '오만한 뽁뽁이 우주', '농락당한 인류' 등 뽁뽁이 우주의 발언에 대한 비난기사의 표제가 실렸다. 사람들은 분노했고 모욕감에 이를 갈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들은 자신이 농락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뽁뽁이 우주의 발언에 반박하고 그들을 모욕하는 글들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몇몇 시민단체에선 모든 뽁뽁이 우주가 그런 정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지 않고, 언론에서 확대포장해서 기사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시민단체의 주장은 언론을 자극하고, 더욱 과격한 기사를 쓰게 만들었다. 언론에서는 뽁뽁이 단독 인터뷰들을 기사화했다. 그 내용은 뽁뽁이 우주가 지구의 문명을 비하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인터뷰가 실제로 이루어졌는지는 불투명하다. 기자들이 수많은 뽁뽁이 중 누구와 인터뷰했는지 일일이 조사할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도 사건의 이슈를 부풀려 기사를 날로 써먹기 위해 기자들이 사실을 왜곡했으리라 조심스럽게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뽁뽁이를 비난하는 과격 시위를 펼쳤다. 잊혀졌던 음모론자들은 그제야 힘을 얻었다. 세간에는 온갖 카더라 통신을 통한 음모론이 유행했다. 그 음모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져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뽁뽁이는 이미 악의 무리였다.
 그리고 최악의 사건이 일어났다.


 뽁뽁이 규탄 시위대중 가장 과격했던 단체는 미국의 숀 코너(가명, 당시 25세)가 이끄는 '뽁뽁이추방위원회'였다. 그리고 그들은 12월 20일, 뉴욕 거리를 점거한 후 집회를 열었다. 수만명의 뉴욕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뽁뽁이들을 비난했다. 집회내용은 뽁뽁이의 발언을 정리한 발표문을 읽고 뽁뽁이의 주장을 비판하는 내용의 연설과 국가제창 등이었다. 그리고 그 집회의 마지막, 최악의 이벤트가 벌어졌다. 집회가 거의 끝나갈 무렵 '뽁뽁이추방위원회'의 대표 숀 코너는 자신을 비추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무언가를 흔들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한 장의 뽁뽁이였다.

 숀 코너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연단 위에 올라가 긴 시간 동안 침묵으로 관중들을 애태웠다. 깊은 한 숨이 몇 번 오가고 모두 지루해할 무렵, 시위의 절정이 다가왔다. 그는 카메라를 두 눈으로 직시한 체 한 알 한 알 잔혹하게 뽁뽁이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군중들은 그 끔찍한 학살현장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숀 코너는 입을 굳게 다물고 엄지와 검지에 최대한 힘을 주어 뽁뽁이를 터뜨렸다. 그 화면을 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그들은 수백개의 우주가 파괴되는 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뽁, 뽁, 뽁, 뽁... 숀 코너는 계속해서 뽁뽁이를 터뜨리다가 성난 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뽁뽁이를 땅바닥에 내던진 후, 발로 밟고 이빨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야만스럽고 미개한 학살이었다. 시위 현장은 비명으로 가득 찼고 누군가 울부짖는 사람도 있었다. 학살은 세계적인 유행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 전까지 조그만 비닐쪼가리가 자신들보다 똑똑하다는 것에 강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쌓아온 역사가 고작 비닐쪼가리 뽁뽁이 한 알에 든 우주보다 못하다는 것을 겨우겨우 참아내고 있었다. 이성이라는 끈이 그들을 묶어두고 있었지만, 숀 코너의 그 끔찍한 시위 후 고삐는 완전히 풀려버렸다. 온 지구의 사람들은 뽁뽁이들에게 분노했고 학살을 자행했다.

 학살 방법은 다양했다. 그 중 유행했던 것은 불로 태우기, 차도에 뽁뽁이를 던져놓기, 야구방망이에 에어캡을 싸놓고 타격연습하기, 의자 위에 뽁뽁이로 방석을 만들어 놓기 등이었다. 그 중 가장 잔혹한 학살은 바로 바늘로 뽁뽁이를 찌르는 것이었다. 얇은 바늘로 뽁뽁이를 살짝 찌르고, 그들의 우주를 천천히 손가락으로 눌러 바람을 빼어 뽁뽁이 우주인들을 서서히 멸망시키는 방법이었다. 보다 잔혹한 성격을 가진 이들은 그 상태의 뽁뽁이에 <아기토주>를 발라 스피커를 연결한 후 뽁뽁이들이 살려달라고 비명 지르는 것을 들으며 즐겼다.

 온 인류는 분노했다. 그리고 학살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분노하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과 동지가 된 듯 한 기분에 젖어 정의감에 도취되었다. 모든 국가가 뽁뽁이를 터뜨리는 것에 몰두했다. 에어캡 생산 공장은 다시 불을 밝히고 터지기 위한 뽁뽁이를 만들어 판매했다. 뽁뽀로뽁뽁북뽁뽁, 지구에서 뽁뽁이가 터지는 소리가 나지 않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자동차 안에서 심지어 비행기나 잠수함, 우주스테이션에서까지 뽁뽁이를 터뜨렸다. 우주의 단말마는 끊이질 않았다. 일부에선 뽁뽁이를 효율적으로 터뜨리는 방법을 설명하는 방송도 등장했다. 인류는 그들의 손을 수억의 우주가 흘린 피로 적셨다. 그들은 손이 부르트도록 우주를 터뜨렸다. 이성은 마비되고 분노만이 남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방대하고 잔인한 학살극이었다.


5.
 참살의 열기는 점차 시들어갔다. 뽁뽁이 우주는 인류에게 해를 끼치기엔 너무나 작았다. 일방적인 폭력은 곧 가라앉는 법, 사람들은 뽁뽁이를 터뜨리는 것에, 분노를 하는 것에 지쳐갔다. 그들은 언제 그런 학살이 있었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갔다. 뽁뽁이는 외계의 고차원 문명에서 할일 없는 사람들의 심심풀이로 돌아갔다. 존경의 감정은 분노로, 분노의 감정은 무시로 변했다.

 뽁뽁이를 대체해 소포를 포장할 상품은 학살의 열기가 식을 때까지 결정되지 못했다. 수많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신상품들이 발매되었으나, 그것들을 전 세계적으로 생산할 공장을 짓는데 사용될 자금은 너무나 막대했다. 사람들은 다시 뽁뽁이를 포장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인류가 뽁뽁이 대량 학살사건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한다 말했다. 인류가 뽁뽁이들에게 행한 악행은 결코 용서 받을 수 없으며, 그런 반윤리적이고 문명을 모독한 행위는 처벌 받아야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포장해줄 윤리학자는 몇 달 전 대부분 자살해버렸기 때문에 이 주장은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뽁뽁이만이 아닌 다른 물건들 속에도 우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던 과학자들은 학살의 기억이 흐릿해질 무렵 성과물을 내놓았다. 그들은 <아기토주>를 발라 땅콩에 오징어를 완벽하게 둘러쌓았을 때 뽁뽁이 우주보다 두 배 가량 뛰어난 문명이 탄생한다는 것과 사람들 귓속에 있는 귀지에는 현 우주의 평행우주가 존재한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들은 뽁뽁이 우주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유행을 일으키고 잊혀졌다.


6.
 어떤 인류학자는 '2014 뽁뽁이 대량학살사건'에 대한 세미나를 마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주는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주위의 기적을 하나하나 음미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인류발전의 지름길이다" 그의 아내는 그 주장에 이렇게 반박했다고 한다. "그딴 것 배울 시간에 심부름이나 열심히 하고 주말엔 자식이랑 놀아줘도 보고 마누라한테 선물이나 사주는 법이나 배워라."

 학계는 여전히 아내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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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니 이걸 쓴지도 벌써 몇년이나 지났군요. 퇴고만 몇번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걸 썼을 때 주변 반응이 너무 좋아서 제가 글을 써서 밥 먹고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헛된 망상을 품게 해준 녀석이거든요. 이제와서 보니 문장도 엉망이고 보고서형식도 못갖추고 그 때 읽은 소설들의 영향을 듬뿍 받았다는 티가 팍팍 나는 그냥 추억만 떠오르는 소설이 되었네요.

사실 이 소설을 거울에 가장 먼저 올리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촛불정국이랑 비교되는 우려가 있어서-시기적으로는 황우석 때 쓴 소설인데 OTL-좀 천천히 올렸습니다. 촛불은, 숀 코너와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요.

오래된 소설들을 올리느라 저번 올린 작품들에서 받은 지적들을 전혀 개선하지 못한 것이, 빨리 다 퇴고해서 올리고; 새로 제대로 써야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ㅠ_ㅠ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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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a 08.08.05 17:48 댓글 수정 삭제
    꺄하핫, 이 친구도 재미있네. - 하고 보니 이번에도 dcdc님이시네요. 이런...
    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그렇게도 뽁뽁이를 좋아했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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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c 08.08.05 18:02 댓글 수정 삭제
    처음에 이 소설을 다 쓰고나서 뽁뽁이 한장을 다 터드리고 어찌나 속이 시원했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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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 08.08.10 21:19 댓글 수정 삭제
    재미있네요, 저도 뽁뽁이 엄청 좋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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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c 08.08.12 00:47 댓글 수정 삭제
    이이이이바도 좋아하는 뽁뽁이! 인류와 로봇을 가리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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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티 08.08.16 10:05 댓글 수정 삭제
    제목을 보고 이 글을 얼마나 읽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열흘이 지나서야 겨우 읽네요.
    깔깔 웃다가 시무룩해졌다가 다시 깔깔 웃었어요.

    그거... 헛된 망상이 아닌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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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c 08.08.16 16:12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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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학핫...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dcdc 08.08.21 01:53 댓글 수정 삭제
    많은 분들이 웃어주시니 참 다행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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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태운 08.08.21 23:08 댓글 수정 삭제
    재치있는 글입니다. 마무리도 깔끔하고요. 뽁뽁이에서 이런 발상을 해 내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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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dc 08.08.23 00:11 댓글 수정 삭제
    발상 자체야 뭐 심슨이나 사우스파크 같은 에피소드형의 애니메이션에도 가끔 나오는 이야기라고는 생각합니다. 전뇌코일에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기도 했고. 학살이 나오는 점이 그나마 차별점이 아닐지 ^^ 칭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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