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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박제의 집

2013.02.04 22:1602.04

작고 낡은 빌딩은 하얀색이라기보다 회색에 가까웠다. 사내는 1층의 약국 주위를 몇 차례 왕복한 끝에 찾은, 빌딩 옆 골목가로 난 작은 입구로 들어갔다. 맨 위층으로 곧장 이어진 통로는 몸이 끼일 정도로 좁았다. 콘크리트로 된 울퉁불퉁한 계단은 높이가 제각각이라 사내는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한 것을 간신히 모면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바깥의 빛이 미처 파고들지 못하는 어두운 통로의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땀을 훔치며 다다른 계단 꼭대기에는 통로와 폭이 꼭 맞는 크기의 문이 나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단 듯한 철문이 낡은 건물의 내부와 대조되어 보였다. ‘장 욱 민간조사원이라고 인쇄된 플레이트가 붙어 있는 문은 여유 공간이 일절 없이 다른 층계와 똑같은 너비의 층계참에서 바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내는 노크를 하고는 도로 몇 단 아래로 내려가 기다려야 했다. 이윽고 문이 열리는 대신 안쪽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어오라고 말했다. 사내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1층에 있는 약국의 규모로 볼 때 비록 통로는 좁지만 안쪽은 넓을지도 모른다는 그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하듯, 내부는 비좁았다. 복도 모양으로 좁고 기다란 모양의 내부는 시내 쪽을 향한, 벽면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창과 철제 책상이 놓인 구석을 제외하곤 낡은 나무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책장에는 범죄, 종교, 과학 따위와 관련된 책들이 분류도, 정리도 안 된 채 마구 꽂혀 있었는데, 족히 수백 권은 될 성싶었다. 군데군데 책이 꽂혀 있지 않은 공간엔 새 것인지 먹다 만 것인지 모를 술병과 각종 잔 들이 역시 정리되지 않은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학구적 분위기와 퇴폐적 분위기, 그리고 모종의 방기(放棄)가 뒤섞인 그 좁아터진 공간 한가운데 접대용으로 보이는 탁자와 소파까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사내는 숨이 턱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커다란 창마저 블라인드가 쳐져 있어 내부는 더욱 갑갑해 보였으며, 어두웠다. 전에 쓰던 것을 떼어 와 그대로 쓰는 것인지 창보다 작은 블라인드의 테두리로 그나마 햇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창 바로 옆 조그맣고 키가 큰 간이탁자에 놓인 작은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방금 꺼졌는지 치익 소리를 내며 어두워지고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구석 책상 위에 곰처럼 몸을 웅크린 채, 얼빠진 사람처럼 안을 두리번거리는 사내를 지켜보던 남자가 일어나 다가왔다. 거구의 남자에게 압도당한 사내의 왜소한 몸이 더욱 움츠러들었다. 남자는 그것을 깨달았는지 한층 부드러워진 태도를 꾸미며 사내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그는 사내에게 소파에 앉기를 권하고 전기주전자의 스위치를 올린 다음, 책상 뒤편의 문 없이 연결된 다른 공간으로 들어갔다. 사내는 그가 사라진 곳을 유심히 보았다. 의외로 안쪽에 넓은 공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잠깐 생각했으나, 1인용으로 보이는 침대의 끄트머리가 밖으로 비어져 나와 있는 걸로 보아 거기도 그다지 넓지 않은 듯싶었다. 대형견용인 듯 커다란 개 밥그릇이 바닥에 놓여 있는 게 보였지만, 개는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남자가 각기 티스푼이 꽂힌 투박하고 아무런 무늬도 없는 머그컵 두 개를 들고 나왔다. 아마도 뒤쪽에 부엌을 비롯한 남자의 생활공간이 있는 것일 테다. 남자는 주전자에서 물을 몇 번 붓더니 의외로 세심하게 젓고는 탁자 위에다 컵을 내려놓았다. 인스턴트커피의 진하고 역한 냄새가 풍겨나 좁은 공간을 가득 메웠다.

저는 전에 경찰에 있었습니다.”

사내가 자신을 여전히 신뢰하고 있지 않다고 느낀 양 남자는 굳이, 느닷없이 그렇게 설명했다. 마치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 자주 있는 것처럼.

그렇습니까…….”

사내는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태도였으나, 남자의 배려가 효과가 있었는지 이곳에 처음 들어섰을 때 느꼈던 호기심도 이제는 사라지고, 그는 자신이 마땅히 지녀야 했던 불안감을 비로소 되찾은 듯했다. 그는 커피의 쓴맛을 미처 느끼지도 못하는 것처럼, 긴장한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괜찮으니 말씀해 보십시오. 이곳에 찾아오시는 분들 대부분이 그러시죠.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 생각하고 혹시 비웃지나 않을까 부끄러워들 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저희 같은 사람들한테 있어선 그저 업무일 뿐이죠. 일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걸 말씀드려도 될지…….”

사내는 고상한 꽃무늬가 있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곤란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혹시 부부관계 문제입니까?”

남자가 일견 조심스럽게 묻자 사내는 화들짝 놀랐다.

아뇨, 그게 아닙니다. 사실 저는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부동산이라…….” 남자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사내가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명함엔 백마 부동산 한치욱이라고 적혀 있었다. 명함을 들여다보던 남자는 그제야 생각난 것처럼 책상으로 가 서랍을 뒤져 명함 한 장을 찾아냈고, 뒤늦은 소개를 사과하면서 명함을 건넸다. 사내는 그것을 받아들고 거기에 장 욱 민간조사원 원장 장욱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저희와 거래한 적은 없는 곳이군요. 그런데 백마라니, 이 근처에 있는 뎁니까? 주소가 적혀 있지 않군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이 근처에 있지는 않습니다. , 실은, 여기에 대해 얘기를 들었거든요.”

흐음, 어떤 얘기를 들으셨습니까?”

장욱은 시치미를 떼고 자기도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치욱이 쭈뼛쭈뼛 대답했다.

그러니까, ‘믿기지 않는 일에 대한 것도 해결해 주신다고…….”

그 말에 아, 하고 장욱은 무릎을 쳤다.

그것에 대해선 조금 해명이 필요하겠군요. , 제가 그런 일을 몇 건 맡았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솔직히 말해 해결이라고 할 만한 결과를 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실망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어디 귀신 붙은 집이라도 있나 보죠? 그런 거라면 교회나 성당 같은 데 먼저 말씀해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글쎄요, 귀신이라고 해야 할지…….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매물로 나온 집이 있는데, 그게 좀 문제가 있어서요.”

어떤 문제죠?”

그게…… 거길 포함한 주변 건물 몇 채를 소유한 주인이 그걸 몽땅 재개발 업자에게 팔기를 원하는데, 세입자한테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집주인과 세입자의 문제라면 잘못 찾아오신 것 같군요. 저는 해결사 노릇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장욱의 단호한 태도에 치욱은 당황하여 황급히 설명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좀 이상한 상황이긴 합니다만, 건물주가 저한테 하소연을 하더군요.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뭔가 좀 이상하다고요. 저도 처음엔 원장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케이스가 아닌가 싶었는데, 얘길 듣다 무슨 얘긴지 알 수가 있어야죠. 건물주는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해결만 해 준다면 두둑이 보상하겠다고 하더군요. 다시 말해 세입자가 집을 나가게 해달라는 거였죠. 하지만 저희라고 어쩌겠습니까. 말씀하셨듯이 저희가 용역이나 해결사도 아니고요. 어쨌든 일단 직접 찾아가보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저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고요?”

예에, 전혀…….”

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세입자, 그러니까 세대주의 처를 만난 것까지는 분명 기억이 납니다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밖에 있더군요.”

호오…….”

흥미가 생기는지 장욱의 눈이 희미한, 그러나 예리한 어떤 빛을 띠어 갔다.

정신을 잃었다거나 뭐, 그런 겁니까?”

아닙니다. 들어가서 뭘 먹거나 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잘 모르겠군요. 어쩌면 정신을 잃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들어갈 땐 분명 낮이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녁놀이 막 지기 시작했을 무렵이더라고요. 하지만 의식을 잃었다거나 잠이 들었다거나 그런 기억은 없습니다. 뭐랄지, 그냥 어느 순간 밖에 서 있더군요. 집을 등진 채 말이죠. 마치 거기서 막 나온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거 참 신기한 일이로군요.”

치욱은 장욱이 자신의 얘기를 믿지 않는 건 아닐까 싶어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그 집에 다시 들어가 보지는 않으신 겁니까?”

, 그러진 않았습니다.”

어째서죠?”

그야 날도 저물고 있었고, 사실은 기분이 이상해서…….”

그러다 울컥했는지 그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기억이 안 나는 동안 제가 뭘 한 건지도 모르겠고…….”

그게 언제 일이죠?”

어젭니다. 여기 얘길 들은 건 오늘이이고요. 얘길 듣자마자 바로 찾아온 겁니다.”

제가 뭘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기억을 잃은 동안의 행적을 찾게 도와드릴까요, 아니면 그 집의 문제를 조사해볼까요? 어느 쪽을 의뢰하고 싶으신 겁니까?”

양쪽 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원장님이 가능하다 생각하시는 쪽으로 하시면…….”

제 생각엔 둘 다 불가능할 것 같군요.”

치욱의 얼굴에 순간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설마 저를 정신병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럼 안 맡아주셔도 괜찮으니까…… 저와 그 집에 한번 가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는 거의 포기한 태도로 애걸하듯 말했지만, 실은 아까 장욱이 보였던 관심에 필사적으로 기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장욱은 거뭇거뭇 수염이 자란 턱을 만지다가 말했다.

실례인줄은 압니다만, ‘저희라고는 하셨지만 개인적인 문제의 느낌이 드는군요. 혹시 업소 측에선 모르는 일인 겁니까?”

돌연 치욱은 허를 찔렸다는 듯 놀란 얼굴을 했다. 이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으나, 곧 과연, 하는 안도감으로 그것은 덧칠해졌다.

전 계약직 사원입니다. 일을 맡고 안 맡고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죠. 회사 쪽에선 애써 무시하더군요. 일은 제가 개인적으로 맡은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이 일은 꼭 비밀로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그 집이 어디에 있습니까?”

마침내 장욱이 물었다. 그 말에 치욱의 얼굴이 조금 밝아지는 것 같았다.

창인동이니까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그럼, 맡아주시는 겁니까?”

, 지금 맡은 일도 없으니 일단 한번 가보기나 하죠. 그렇지만 정확히 해 둘 게 있습니다. 아직 이 건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뭐라고 말씀드릴 순 없습니다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게 손님이 말씀하신 그런 일종류라면, 해결에 이를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걸 미리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 그렇다 해도 돈은 받았으면 좋겠군요.”

치욱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돈 때문에 맡은 일이기는 해도, 그만큼 돈 때문에 곤란한 상황인 모양이다. , 그러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꼼수를 부린 거겠지. 사실 장욱도 별 기대는 없었다. 아까의 빼는 듯한 태도도 성가신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이 일이 애초에 의뢰인의 착각과 넘치는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싱거운 일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하기는 그렇다면야 차라리 잘 된 일이겠지만, 굳이 그런 일에 발 벗고 나설 필요는 없다. 진상이 밝혀지고 나면 대개 처음의 절박함 따위는 어디에 갖다 버렸는지 의뢰비를 주기는커녕 자기를 사기꾼으로 몰기 일쑤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 대부분이 그런 식이었다. 그거야 그렇다 치고, 어쨌거나 호기심이 발동한 이상 무슨 일이기에 그러는지 장욱은 한번 보고나 올 생각이었다.

부끄럽지만 착수금은 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일만 해결되면 의뢰비는 꼭 내겠습니다. 약속합니다!”

금세 들떠서 큰소리를 치는 치욱을 보며, 장욱은 어쩐지 이 일이 절대 해결이 불가능한 일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문제의 집은 6가를 지나 창인동에서 재래시장을 따라 쭉 들어가서 있는 주택가에 있었다. 3가의 사무실에서는 걸어서 약 30분 정도의 거리로, 장욱의 폐차 직전인 88년식 감색 스텔라로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사실 10분이나 걸린 것도 좁은 시장 길을 느릿느릿 뚫고 지나느라 애먹은 탓이 컸다. 북적대는 시장을 지나 비교적 넓은 주택가가 나오자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주택가는 시장을 지나서부터 완만한 경사를 이룬, 차 두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 너비의 널따란 언덕길 양쪽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치욱이 말한 집은 언덕을 어느 정도 올라 경사가 막 급해지는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는 탓에 시장 바로 옆에 있는, 플래카드가 벽마다 빼곡히 걸린 주민센터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서 가기로 했다.

찜통 같은 날씨에 언덕을 오르느라 두 사람은 금세 녹초가 됐다. 주택가는 일견 넓고 깔끔해 보였으나, 실은 말끔한 주택 사이사이에 비좁은 방들로 가득한 낡은 고시원과 소위 쪽방이라 불리는 무허가 주거시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곳으로, 숨 막히는 부조화가 서로의 어깨를 치대며 억지로 응집해 있는 곳이었다. 다시 말해 그곳엔 지역의 유지라 할 만한 유복한 계층과 주민센터를 부지런히 드나들며 삶을 유지하는 치열한 계층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하지만 서로 완연히 분리된 채 공존하고 있었다. 장욱과 치욱이 올려다보는 집은 그중 명백히 전자에 속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과거에는 그랬으리라.

, 이거 멋지군요.”

장욱이 폴로셔츠의 깃 부분을 잡고 펄럭대며, ‘저택이라는 말이 어울릴 듯한 고풍스러운 서양식 가옥을 보며 말했다.

길에서 보이는, 자연석처럼 울퉁불퉁한 화강암이 박혀 있는 벽면은 집의 측면인 듯 폭이 좁고 위로 길쭉한 모양이었고, 비죽하게 솟은 녹색 지붕에서부터 시작된 덩굴장미의 줄기가 여자의 머리칼처럼 무성히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었다. 벽면의 대부분을 가린 가시 박힌 줄기 사이로, 덧문이 달린 서양식 유리창 하나가 박혀 있는 게 보였다. 장욱은 지극히 평범한 집들 사이에 끼어 위화감을 내풍기는 그 집의 어두운 창문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지만,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낌새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길가에서 분명히 보이는 집임에도 입구가 반대편으로 나 있는 까닭에 그들은 그대로 몇 집을 더 지나쳐 골목길을 두 번 돌아 문이 있는 곳까지 돌아와야 했다. 집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집만큼이나 예스러운 모양의 낮은 철문은 잠겨 있지 않았고, 현관까지 이어진 공간은 차마 정원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좁은 데다 온통 진녹색의 물감으로 칠한 듯한 장미덩굴 일색이었다. 무성한 식물이 차지한 공간 특유의 습하고 농밀한 내를 품은 공기가 풍겼다.

치욱은 낮은 계단 몇 단을 올라, 어두운 고동색의 나무문 옆에 달린 오래된 스위치를 눌렀다. , 하고 전기 신호가 벽을 관통해 집안 깊숙이 내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계십니까?”

치욱은 기다리지 못하고 주먹으로 문을 쾅쾅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창백한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검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리고 푸른빛이 도는 얇은 드레스를 걸친 여자는 열린 문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안쪽 어둠 속에 오랫동안 서서 굳은 얼굴로 남자의 얼굴을 응시했다. 치욱은 당황한 태도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뒤로 물러나 장욱에게 도움을 요청하듯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장욱은 아랑곳 않고 말없이 서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결국, 여자가 먼저 밖으로 몸을 살짝 내밀고서 말했다.

들어오세요.”

여자는 다시 뒤로 물러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장욱과 치욱은 서로의 얼굴을 멀뚱히 한번 쳐다보고는 집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 장욱은 주머니에서 작은 쪽지 한 장을 꺼냈다. 어릴 적에 종종 하던 식으로, 한 번도 선을 끊지 않고 이어 그려서 완성한 달팽이 같은 모양의 그림이었다. 그걸 본 치욱이 물었다.

그게 뭐죠?”

장욱은 슬쩍 현관문 아래 틈새에 쪽지를 껴 두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일종의 보험이랄까요.”

 

저택의 내부 또한 외부처럼 고풍스러웠다. 사방의 벽은 물론 천장까지 온통 나무로 뒤덮여 있어 내부의 분위기는 온기가 느껴져 차분하면서도 한편으론 갑갑했는데, 오래된 목재의 어두운 색깔 탓에 칙칙한 느낌마저 들었다. 도로를 면한 창을 뒤덮은 장미덩굴 때문인지, 골목 깊숙이 위치한 탓인지, 아니면 둘 모두 때문인지 햇빛은 화강암 벽의 내부로 전혀 파고들지 못하는 듯했고, 그나마 새어드는 것도 고동빛 나뭇결에 스며들곤 그대로 바래 자못 암울감을 자아내는 색채로 침착된 것 같았다.

지어질 당시에는 유럽풍이었을 가구와 내부 장식들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기는 했어도, 존재감은 세월과 함께 마모되어 이미 오래 전에 그 공백을 채우게끔, 옹색한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생활용품과 조잡한 장식품에 자리를 내어 준 채였다. 좁은 직사각형 거실을 위압적으로 내리누르는 듯한 샹들리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켜지기나 하는지 의문이었다. 천장으로부터 식물의 줄기처럼 곧게 뻗어 내린 봉 끝에 철제 갓이 씌워진 채 매달린, 몽롱한 황색 빛으로 죽은 나무 빛깔의 마룻바닥을 비추는 전구가 간신히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거실 가운데 놓인 작은 나무 탁자 앞, 작은 의자에 각기 앉은 장욱과 치욱은 여자가 내온 찻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 여자와 마주보고 앉은 장욱의 조금 뒤편에 앉은 치욱이 찝찝해하는 얼굴로 녹차가 담긴 찻잔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장욱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없이 차를 마시는 여자를 본 후에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다시 한 번 집 안을 둘러보았다. 들어오자마자 보았던, 벽에 걸린 박제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진짜 박제가 아니라 박제를 흉내 낸 철제의 모형이었다. 어두워서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고동색 일색인 이 집에서 거의 유일하게 차가운 은빛을 가진 까닭에 시선을 잡아끌었던 듯싶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그것의 모양을 식별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것이 사슴 모양인지 곰 모양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장욱은 다른 곳도 죽 훑어보았다. 전체적으로 어딘가 자신의 취향, 어쩌면 방치로 표현할 수 있을 자신의 일상적 성향과 상통하는 데가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으나, 단순히 나태나 실존적 교만에 불과한 자신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어떤 이물감 비슷한 불쾌감이 들어 그는 그 유사성이 마냥 반갑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그는 치욱을 돌아보았다. 치욱은 여전히 잔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가만히 그것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장욱은 다시 고개를 돌려 여자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여자는 장욱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그가 그 집을 상대로 그랬듯이.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을 지켜본 것처럼.

부동산에서 오셨다고요? 저는 아무 얘기도 못 들었는데요…….”

여자의 시선이 치욱에게로 옮겨갔다. 장욱은 다시 치욱을 돌아보았다. 치욱은 말도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어제 여기 와서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어제라고요?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그쪽을 본 기억이 없는데요.”

이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까?” 장욱이 물었다.

이 동네엔 이상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이라는 건 언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신도 부동산에서 오신 분인가요?”

여자가 장욱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장욱은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투명한 빛깔의 무언가가 그녀의 내부에서 은은히 발산되는, 혹은 그녀의 외부를 덮은 것 같은 신비로운 매력이 느껴지는 여인이었으나, 동시에 어딘가 무겁고 어두운 느낌 또한 들었다. 무어라 명확히 표현할 순 없어도 자칫 섬뜩한 느낌으로까지 받아들여질 만한 분위기를 가진 여인이었다.

치욱 씨, 설명을 해드리죠.”

하지만…….”

치욱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장욱의 기세에 압도됐는지 이내 여자에게 명함을 건네고는 자신이 온 이유를 설명했다.

알맞은 곳마다 설득의 기술이 절묘하게 섞인 긴 설명은 그 말투로 보아 어제 자기가 했던 것과 똑같은 것임이 분명했다.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사람을 대상으로. 어쩌면 자신이 그랬다고, 치욱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장욱은 혹 그가 과대망상증 환자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고, 그래서 걱정이 되었다. 평판 같은 걸 신경 쓸 입장은 아니었지만.

여기서 나가달라는 말이군요.”

여자가 슬픈 얼굴로 말했다. 치욱과 장욱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여자는 돌연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그럴 수 없어요.”

일방적으로 말씀하시는군요. 저는 여기 중재자로 온 겁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협상가라고 해도 되겠죠. 무조건 나갈 수 없다고만 하시지 마시고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 쪽엔 권리가 있어요. 강제로 쫓겨나고 싶진 않으시겠죠.”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요?” 여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라뇨…….”

여기서 나가지 못하는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장욱이 끼어들자 치욱은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는 듯이 제지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말씀해 보시지요. 저희가 그렇게 매정한 사람들은 아니니까요.”

당신도 중재인인가요?”

중재인의 중재인이죠. , 말씀해 보십시오. 무슨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깨가 몇 차례 가볍게 들썩였다. 흐느끼는 것 같았다. 갑작스런 상황에 남자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여자는 곧 얼굴을 들었다. 눈은 그새 빨갛게 충혈돼 있었고, 검고 기다란 속눈썹엔 작은 물방울 몇 개가 맺혀 있었다. 그녀는 거의 노려보는 듯한 시선으로 치욱을 보면서 말했다.

……남편이 있어요.”

두 남자는 여자가 말을 잇기를 기다리면 가만히 있었다. 여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기다리다 못한 장욱이 물었다.

남편이 몸이 아파요. 그래서 여기서 떠날 수가 없어요.”

딱히 건강에 좋을 법한 환경은 아닌 것 같은데요.” 치욱이 비아냥거렸다.

장욱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실내의 공기는 완전히 가라앉아 있어 인기척은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여기 있는 여자의 존재마저 의심스러웠을 정도로. 장욱은 여자에게 좀 더 자세히 말할 것을 요구했으나, 여자는 좀체 입을 열지 않았다. 장욱은 여자가 무언가 숨기고 있음을 감지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본사 쪽엔 그렇게 보고하도록 하죠.”

장욱의 말에 치욱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욱은 개의치 않고 말했다.

가기 전에 남편 분을 한번 뵐 수 있을까요? 이분도 보고서를 쓸 거리가 있어야 하니까요.”

슬픈 얼굴로 말없이 바닥만 내려다보던 여자가 마침내 결심이 선 듯 고개를 쳐들었다.

남편은 이층에 있어요. ……따라오세요.”

여자는 일어서서 어딘가로 향했지만, 그곳은 이층으로 가는 계단 쪽이 아니었다.

여긴 이층이 아니잖아요.” 치욱이 뒤에서 속삭였다.

일단 따라가 봅시다.”

여자가 다다른 곳은 안쪽 방이었다. 여자가 방문을 열자 먼지의 매캐한 내가 확 퍼졌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서재였다. 옛 유럽풍의 목재 책상이 덩굴로 뒤덮인 창을 등진 채 놓여 있었다. 두 남자는 책상 위에 누렇게 변색되고 바짝 말라 만지면 바스라질 것만 같은 종이 한 장이 뽀얗게 먼지가 앉은 만년필과 함께 유골처럼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여자는 책상 서랍을 열었다. 연 지가 오래인 듯 서랍은 몇 차례 거친 소리를 힘겹게 토하다가 열렸다. 덩굴 사이로 길게 꽂혀 드는 햇살 안에서 포자처럼 퍼져 나온 먼지가 갈 곳을 잃고 헤매는 양 춤을 추었다. 여자는 역시 변색되었으나 책상 위에 놓인 종이만큼 오래돼 보이지는 않는 종이 몇 장을 꺼내 소복이 쌓인 먼지의 켜 위에다 올려놓았다. 종이에 휘갈겨 쓴 듯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시 같았다.

이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듯이 여자가 말했다. “남편은 시를 썼어요.”

장욱은 그중 하나를 들어 읽어 보았다.

 

 

그 남자는 말을 달려 평원을 가로질렀다. 왜소한 그림자가 메마른 땅을 갈랐다. 남자는 그를 자신이라 생각지 못했다. 태양이 뒤집힐 무렵 소리와 침묵이 뒤바뀐 숲 속에 그는 있었다. 남자는 본래부터 어둠이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여인의 비명이 우거진 그곳에서 그는 길을 잃었다. 남자는 자신이 헤매고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다. 남자는 본래부터 길이 없었으리라 생각했다. 남자는 길도 없는 그곳에서 말을 달렸다. 그리고 그는 숲의 일부가 되었다.

훗날 그의 아들들이 숲을 찾을 것이다. 아들들은 아비와 같이 제 그림자를 보며 평원을 달릴 것이다. 아들들은 아비와 같이 식은 해를 등지고 그곳에 들어설 것이다. 아들들은 아비와 같이 차가운 별들을 올려다보며 그곳을 헤맬 것이다. 아들들은 슬픔의 둥지 안을 떠돌 것이다. 아들들은 두려움으로 길을 만들 것이다. 그들은 제 아비들을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숲을 태워 성을 지을 것이다. 훗날 그들의 아들들이 잃어버린 숲을 찾아 헤맬 것이다. 여인들의 비명으로 우거졌던 그곳을 찾아 부르짖을 것이다. 무너진 성과 탑을 떠나 말을 달릴 것이다. 평원을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들은 제 아비들을 생각지 못할 것이다. 저희들이 밟는 그림자가 본래부터 있었던 어둠이리라 생각할 것이다.

평원은 뒤덮이리라. 그들을 잃은 그들의 아들들로. 대지는 메마르리라. 그들을 잃은 그들의 흙으로. 모두 잠들어 꿈꿀 것이다. 타오르는 아비들의 숲과, 무너지는 아들들의 성을.

 

장욱은 종이를 내려놓았다. 그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여자는 종이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군가 종이를 들어 가져갔다가 도로 내려놓는 것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 것같이 그저 그것이 있었던, 그리고 다시 있게 된 자리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욱은 아무런 감상도 얘기할 수 없었다. 장욱의 뒤에 서 있던 치욱은 어깨너머로 흘긋 들여다보기만 할 뿐 자세히 읽어볼 생각은 없는 듯했다.

지금은 안 쓰시는 겁니까?” 장욱이 힘겹게 할 말을 찾은 양 물었다.

여자는 그대로 얼굴만 들어 그를 맞바라보았다. 차가운 눈빛이었다. 슬픔을 담았다고는 볼 수 없는, 동정도 아닌 혐오의 빛이 스민 눈빛.

남편 분은 어디 계시죠?”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얼어붙은 것같이 꼼짝 않았는데, 심지어 시선마저 일절의 미동도 없이 그대로 굳게 서 있었다. 흡사 인형 같았다. 그녀 안에 깃들어 있던 생명과 그것의 모든 흔적이 모조리 빨려 나가 순식간에 여자 모양을 한 차가운 조각상 같은 정물(靜物)로 변해 서 있는 것이었다. 마치 밖에 걸려 있던 금속의 박제처럼. 그런 그녀는 소름끼치도록 선뜩한 모습이었다.

난 그를 봐야겠어요.”

느닷없이, 이 낯설고 기묘한 분위기에서 전혀 놀라움을 느끼지 못하는 양 치욱이 말했다. 문득 장욱은 그에게서도 모종의 이질적인 불쾌감을 감지했다. 이 순간 치욱은, 장욱이 알 수 없는 어떤 집념이 추출되어 오로지 그것으로써만 똘똘 뭉쳐 인간의 모습으로 화하고 걸어 다니는 일종의 사념체처럼 느껴졌다. 치욱은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밖으로 나갔다. 장욱은 당황하여 여자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아까와 똑같은 모습으로 책상 위에 놓인 종이를 보고 있었다.

장욱은 밖으로 달려 나갔다. 쿵쿵 계단 오르는 소리가 났다. 어두운 그림자가 쏜살같이 위층으로 달음질쳐 올라가는 게 보였다.

안 돼요, 돌아와!”

장욱도 따라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는데, 위에서 벌컥벌컥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하나하나 열어 안을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치욱이 왜 그리도 이 집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단순히 일 때문이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이윽고 그가 위층에 다다랐을 때, 기다란 복도에 일렬로 벽에 붙은 네 개의 문이 활짝 열려 죽기 직전의 날갯짓처럼 맥없이 덜렁대고 있었다. 장욱은 열린 방문을 하나씩 확인하며 복도를 나아갔다. 세 개의 좁다란 방은 텅 비어 있었고, 문 안쪽은 하나같이, 구석에 쳐진 올가미 같은 거미줄과 벽에 어두운 그림자처럼 입혀진 곰팡이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 방문 앞에 이르러 그는 멈춰 섰다. 문지방 바로 너머에 치욱이 등을 돌리고 서 있었으나 장욱이 멈춰 선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냄새 때문이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다른 감각에 의해서만 치환되어 모호하게 표현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이하고 불쾌한 냄새가 훅 강하게 풍겨났다. 장욱은 그 냄새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죽음의 냄새였다. 그는 주저했다. 그러다가 기어이 고개를 들어 방 안으로 시선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숨을 삼켰다.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어두운 방에는 작은 침대와, 그 머리맡에 놓인 작은 탁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침대 위에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름 모를 식물이었다. 방금 누군가가 안에 있다가 허물같이 벗어놓고 빠져나온 듯 흐트러진 이불 위로, 죽어가는 이의 맥없는 손길 같은 뿌리가 길게 퍼져 침대 아래 바닥까지 늘어뜨려져 있고, 침대 위로는 공중으로 솟아오르려다 땅으로 쏟아지듯 굽은, 혹은 가까스로 벽을 타고 간신히 오르다 그쳐 반쯤 말라죽은 줄기들이 서로 엉키고 헝클어져 있는 식물. 마치 거대한 육식 곤충이 타액으로 만들고는 떠나 버려 세월의 삭풍에 삭아 폐허로 변해 가는 중인 기괴한 둥지가,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한 채 그곳에 불경스레 올라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슨 까닭에선지 장욱은 속이 역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떤 동물의, 본래의 형체를 알 수 없을 만치 부패하여 변형된 사체를 목격한 것같이.

장욱은 구토를 간신히 참으며 치욱에게 뭐라 말을 붙였으나, 그는 듣지 못했는지 꼼짝도 않고 멀거니 침대 위의 역겨운 덩굴만을 주시할 뿐이었다. 장욱은 그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간 다음 탁자 위에 놓인 갓등과 주전자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훑어보았다. 손가락이 죽 미끄러져나간 뒤쪽으로 나타난 기다란 선 안에 그것들의 본래의 색이 드러나며 장욱의 일그러진 얼굴이 드리워졌다. 아마도 오래전에 그렇게 놓인 채로 방치된 성싶었다.

남자는 어딨는 거지?” 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때 계단을 쾅쾅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달음박질쳐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치욱은 퍼뜩 정신이 든 양 방에서 뛰쳐나갔다.

무슨 일입니까?” 장욱이 물었다.

여기서 나가야 해요.”

치욱이 겁에 질려서 말했다. 그는 이제껏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뒤늦게 깨달은 것같이 보였다.

계단이 그다지 길지 않은 데도 무서운 기세로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흡사 끝없이 이어질 듯이. 바로 아래층이 아니라 저 깊숙한 밑바닥 어디선가 계단을 밟아 위로 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단단한 무언가가 바닥을 찧으며 다가오듯 쿵쿵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면서. 섬뜩함을 느낀 장욱은 치욱을 따라 복도로 나왔다. 그러자 거짓말같이 쿵쿵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뚝 끊겼다. 불쾌한 침묵이 먼지를 타고 내려앉았다.

별안간 뒤에서 쿵, 하고 무언가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둘은 뒤를 돌아보았다. 여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아까처럼 비스듬히 아래를 보는 굳은 모습으로. 마치 석상 같은 모습으로.

장욱은 혼비백산해 달렸다. 치욱도 따라 달렸다. 그들은 계단으로 갔다. 뒤에서 쿵쿵 소리를 내며 그들을 쫓는 존재가 있었다. 그들은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계단이 끝나지가 않았다. 빙글빙글 돌아 아래로 뻗는 계단은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뒤에서 계속해서 쿵쿵 소리가 잇달았다. 마침내 아래층에 도달했다. 빛이 네모난 테두리 모양으로 얇게 스며드는 현관문이 저 앞에 있었다. 쿵쿵 뒤를 쫓는 소리가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장욱이 현관문을 열었다. 저녁 무렵인데도 눈부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둘은 문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들은 또 다시 2층의 방 문 앞에 서 있었다. 두 남자는 이번엔 그들 뒤에 서 있을 존재에게로 시선을 주지 않고 다시 내달렸다. 또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현관문을 열었다. 하지만 장욱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문틈에 껴 있던 종이 한 장이 팔랑거리며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걸 본 그는 그것을 밟고 올라섰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의 앞에 높다란 벽이 양 옆으로 솟은 미로 같은 길이, 그러나 실은 외길인 미궁의 내로(內路)가 안으로 휘돌아 이어져 있었다. 장욱은 뒤를 돌아보았다. 치욱은 현관 문 밖으로 나오지 않고 멀거니 장욱을 쳐다볼 따름이었다.

뭐해요, 어서 나와요!”

그러나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의 뒤편에서 쿵쿵 위협적으로 땅을 찧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다만 어둠만이 치욱을 뒤에서 껴안은 것같이 그의 등 뒤에 무겁게, 거대한 몸을 도사리고 있었다.

난 갈 수 없어요…….”

그가 체념하여 말했다. 장욱이 움직이고 있지 않음에도, 문지방 위에 선 치욱은 열린 현관문과, 그것의 본채인 집의 외벽과 함께 차츰 멀어져 가고 있었다. 장욱은 앞쪽을 돌아보았다. 좁은 길이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지다 펴졌다 하기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는 몸을 돌려 미궁 안으로 들어섰다. 좁다란 길을 따라 빙빙 돌아서 달팽이 같은 모양을 한 미궁의 중앙까지 이른 뒤에, 다시 나선형을 이룬 길을 따라 밖으로 나와 그것을 완전히 벗어남으로써 그는 인위적인 죽음과 재생의 과정을 거쳤고, 또한 그것을 이루었다. 동종요법(同種療法).

문득 정신을 차린 장욱이 서 있는 곳은 그 집의 현관문 앞이었다. 그는 굳게 닫힌 현관문에 코를 박고 서 있었다. 현관문에 새겨진 문양을 낱낱이 읽어내려는 편집증적 취미를 가진 중년의 남성처럼. 날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그는 뒤로 물러나 집을 올려다보았다. 어디에서도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발밑에 그가 그린 미궁 도형의 그림이 때 늦은 낙엽 같은 쓸쓸한 모습으로 떨어져 있었다.

 

 

장욱은 백마 부동산이라는 상호를 가진 공인중개사무실을 수소문했지만, 근처에서 찾은 단 하나의 백마 부동산은 영세업자가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것으로, 그 주인으로부터 자신은 직원을 두고 있지 않다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었다.

장욱이 다시 그 장미덩굴로 뒤덮인 저택을 찾았을 때, 그는 집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주인은 예순 살 정도 돼 보이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그는 부동산 개발 건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가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장욱을 대화하는 내내 의심스런 눈초리로 보았기 때문에 장욱은 차마 집안을 보여 달라고 부탁할 수 없었다. 다만 주인이라는 남자의 말에 따르면, 집은 자신의 조부 때부터 있던 것으로 지금도 자신의 가족들이 살고 있으며, 전쟁 때 피난을 갔던 것 외에는 이제껏 한 번도 집을 장기간 비운 적이 없다고 했다.

발길을 돌린 장욱은 집 바로 옆에 골목길이 나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사람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몹시 좁은 탓에 건물과 건물 사이에 난 틈새로만 보였고, 때문에 그것이 길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 안으로 들어간 한가운데서 좌측으로, 좁을 골목을 사이에 두고 저택의 후벽과 마주보는 측벽에 작은 알루미늄 문이 하나 나 있었다. 문 위에는 이제는 불도 들어오지 않는 듯한 오래된 네온 간판이 걸려 있었는데, ‘백마 고시까지만 보이고 나머지 한 자는 부서져 뜯겨 나간 부위와 함께 사라져 없는 채였다.

장욱은 고시원 총무의 허락을 얻어, 이곳에서 살다가 최근 사라진 한치욱이란 이름의 남자가 지냈다는 방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는 그 방을 보고서 얼이 빠졌다. ‘저택에서 본 방과 완전히 같았기 때문이었다. 탁자 대신 구석에 책상 대용으로 쓴 듯싶은, 다리가 덜렁거리는 넓적한 문갑이 있다는 것만 빼면. 침대 위는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이불도 깔끔하게 개켜져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순사를 연상케 하는 동그란 모양의 뿔테 안경을 쓴, 고시생으로 보이는 총무의 말에 의하면 여기 살던 남자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몇 안 되는 소지품을 고스란히 놔둔 채로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 한 달 전이라고 했다.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자 주인과 총무는 그가 밀린 방세를 떼먹고 도망간 것이라 여겨 그가 남긴 물품을 처리업자에게 삼만 원을 받고 모두 넘겼다고 했다.

혹시 아는 분이신가요?”

총무는 장욱이 그 남자와 혹시 친분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밀린 돈을 행여나 조금이나마 받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는 눈치였다. 장욱은 자신도 그에게 빚을 받을 것이 있다고 둘러댔다. 따지고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뭘 하는 사람이었죠?”

장욱이 그럼 그렇지, 하는 기색이 역력한 총무에게 물었다.

여기 사는 사람들이 다 그렇죠, . 기초생활수급자거나 일자리 못 구하는 일용직 노동자거나……. 이 사람은 사람들하고 어울리지도 않고 밖에 나가지도 않았어요. 가끔 라면이나 술을 사러 나갈 때 빼고는요. 일기라도 쓰는 건지 방에서 맨날 종이에다 뭔가 끼적이는 것 같더라고요.”

그 사람이 기초생활수급자였습니까?”

그야 모르죠. 주민센터에서 이따금씩 찾는 전화가 오긴 하는데, 뭐 꼭 기초생활수급자라서 그러는 건 아니니까요. 직접 가서 물어보시죠.”

그는 그다지 흥미 없다는 투로 대꾸했다.

잠깐 안 좀 살펴봐도 될까요?”

그러시죠.”

장욱은 그곳에 있는 유일한 가구인 문갑의 서랍을 열어보았다. 누렇게 변색돼 마른 낙엽같이 바스락거리는 종이 몇 장이 나왔다. 그는 그것을 접어 주머니에 쑤셔 넣고 총무에게 협조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주민센터로 가 사회복지계 직원에게 한치욱이라는 사람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젊은 남자직원에게서 돌아온 것은 곤란하다는 답변이었다. 개인정보를 함부로 알려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돌아서려는 찰나, 장욱은 한 여직원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민원대 너머로 미소 지은 채 민원인을 응대하는 그녀는 낯이 익었다. 저택에서 본 그 여인이었다. 그러나 인상이 차갑지 않은 것은 차치하고 어딘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존재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어렴풋이만 느껴지는 그것은 상당이 기묘한 것으로, 어떤 종류의 갈망으로 인해 병들어버린 가치관으로써 그녀의 인상을 철저히 왜곡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저택에서 본 그 여인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장욱은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여직원은 다시 한 번, 차가운 박제처럼 훈련된 따뜻한 미소를 얼굴에 덧씌우며 장욱을 맞았다.

무슨 일로 오셨죠?”

장욱은 그녀 앞에 놓인 팻말을 보았다. ‘주민문화센터 담당’. 그 앞에 비뚤비뚤 쌓여 있는 팸플릿에는 주민문화센터 시 창작 교실에 대한 안내문구가 적혀 있었다.

, 저는 시 창작 교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인은 흑백 복사지 한 장을 내밀었다. 회원 가입 신청 서식지였다.

혹시 지금 하고 있습니까? 견학을 해도 괜찮을까요?”

그러세요. 위층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는 여자는 꽤 예뻤고, 친절했다.

장욱은 얼마 전에 칠했는지 페인트 냄새가 폴폴 나는 계단을 올랐다. ‘창인동예비군동대팻말이 걸린 방 너머의 문에서 갑자기 중년의 여인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왁자지껄 소란이 형상화된 듯한 무리를 지나 간신히 열린 문 안으로 들어간 장욱은 기다란 책상이 비뚤배뚤 흐트러진 채 갑작스런 정적이 가라앉는 중인 빈 방의 끄트머리에 홀로 앉아 가방을 싸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쉰을 갓 넘긴 듯싶은 마른 남자는 장욱이 문가에 서서 자신을 지켜보는 걸 발견하고는 무슨 일이십니까?” 하고 물었다. 조금 머쓱해진 장욱은 주머니에서 바스락거리는 종이를 꺼내 그가 앉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시를 쓰고 있는데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막 돋보기안경을 안경집에 넣는 참이던 남자의 얼굴 피부 너머에서 살짝 짜증이 솟다 그치는 게 보였다. 그는 안경집을 열어 다시 안경을 꺼내 쓰고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두꺼운 안경알 너머에서 눈알이 빠르게 아래로 내리닫더니 금세 종이를 내리고 안경알 위로 눈을 치켜뜨고서 그는 말했다.

직접 쓰신 겁니까?”

장욱은 조금 머뭇거리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떻습니까?”

남자는 귀찮은 걸 애써 감추려는 기색이 또렷했다. 그가 말했다.

잘 쓰셨군요.”

괜찮으니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남자는 장욱의 얼굴을 얼마간 멀거니 쳐다보다가, 이윽고 안경을 벗어 안경집에 넣고는 일어나 가방을 마저 싸면서 말했다.

……솔직히 이걸 시라고 할 순 없습니다.”

재능은 있다고 보십니까?”

누구에게나 재능은 있죠. 시라는 건 말입니다.”

그러고서 남자는 금방 나가려는 것처럼 가방을 손에 들고서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죠. 동에서 하는 이런 작은 창작 교실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선생님처럼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곤 합니다. 대부분은 제 의견을 듣고 화를 내며 돌아가기 일쑤지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지 몰라요. 선생님은 적어도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지는 않으시는 걸로 보이는군요. 수업을 들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거라면 말이죠.”

……고견 감사합니다.”

장욱은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등 뒤에서 남자가 말했다.

이거 안 가져가십니까?”

가지십시오. 저한테도 필요 없거든요. 이제는요.”

장욱은 주민센터를 나와 자신의 차로 가다가, 문득 돌아서서 센터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지역사회의 각종 행사와 공지사항을 알리는 플래카드들이 뒤죽박죽 걸려 마치 식물의 덩굴을 조잡하게 모사한 어떤 치졸한 구조물처럼 보였다. 건물 3층 창문 아래 가로로 길게 걸린 현수막엔 시 창작 교실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안내 글귀가 쓰여 있었고, 그 아래로 담당직원의 전화번호가 작게 박혀 있었다. 장욱은 몸을 되돌려 차에 타고 시동을 걸었다. 신음하듯 꺽꺽대는 차를 몰고 주차장을 나섰다. 거울에 장미덩굴이 얽은 집의 모습이 비쳐들어 점점 작아지더니 조밀한 풍경의 일부로 축소돼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며, 장욱은 한 남자의 시가 적힌 낡은 종이쪽지의 최후를 생각해 보았다. 스스로 박제라 믿었던 남자의 얽은 세계가, 타오르고 무너져 소멸되는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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