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
그녀가 돌아왔다.

2.
처음에 그녀는 내 손님들 중 하나였다. 나는 내 손님들의 기억을 먹는 일을 했는데, 그녀도 그런 부탁 때문에 날 찾아왔다.
"당신, 말을 못하나요?"
나는 그녀가 수화를 몰랐기에 글을 써서 내 의사를 전달했다.
-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전 대화를 하면 상대의 기억을 먹어버려요.
"아하, 그런 식이에요? 신기하네."
그녀와 나는 탁자 앞에서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헤어진 남자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었다. 상담 도중, 그녀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미안해요. 민폐 끼쳐서......."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에게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그걸로 눈물을 닦았다.
- 실연 기억은 안 지우는 게 좋아요.
"왜요?"
- 아픔이 있어야 더 클 수 있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또박또박 적었다. 글 쓰는 게 숙달되어서, 빠른 속도로도 내 글씨는 바른 모양을 잃지 않았다.
- 그리고 다시 그 남자분과 잘 될지도 모르잖아요.
"몰라요......."
그녀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는 실연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남자들과 사귀기만 하면 늘 안 좋게 끝나서 너무 힘들었다고, 이번은 정말 기억을 지우고 싶다고 했다.
- 기억 지우기는 저나 손님들께나 꽤 힘든 일이에요. 신중하게 생각하시는 게 좋아요.
"알겠어요."
그녀는 애써 웃고는 돌아가 버렸다.

3.
우리가 두 번째 만남을 가지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며칠 뒤 다시 내 외딴 오두막을 찾아왔다.
"아쥬, 있어요?"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인 것을 알지 못했다. 내 이름을 부른 걸로 봐서 내 손님들 중 하나인 것만 짐작했을 뿐이었다.
나는 문 두드리는 소리가 더 나기 전에 얼른 문을 열었다.
그녀였다.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비에 흠뻑 젖어있어서 나는 얼른 들어오라는 뜻으로 문 옆으로 비켜섰다.
그녀는 천천히 집 안으로 들어오며 얼굴을, 두 눈을 문질렀다. 빗물이 아니라 눈물 같았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그녀를 보았다.
"아쥬......."
그녀는 내 이름을 중얼거리다가, 내게 와락 매달렸다. 그리고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녀를 다독거리며 탁자 앞의 의자로 인도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한참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그 눈물이 멈출 때까지 그녀의 곁에 앉아 있었다.
"기억 좀 지워줘요......."
그녀는 눈물을 그친 뒤에 훌쩍이며 말했다.
"너무 힘들어요......."
- 우선 진정 좀 해요. 꿀차 좀 타올게요.
나는 탁자 위에 늘 놓아두는 종이에 연필로 그렇게 쓴 뒤 일어났다.
잠시 후 내가 수건과 따뜻한 꿀차를 가져다 주자, 그녀는 수건을 걸친 뒤, 차를 후후 불며 조금씩 마셨다. 나는 그녀가 차를 전부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
"고마워요."
그녀는 잔을 내려놓고 충혈된 눈으로 나를 보았다.
- 이제 좀 나아졌어요?
"네......."
그녀는 풀이 죽어 있다가, 천장에 달린 작은 전구를 가리켰다.
"여기 전기도 들어오네요?"
- 원래는 안 들어 왔죠. 전에 어떤 손님이 고맙다면서 답례로. 그분 부자였거든요.
"신기해라. 여기 혼자 살면 외롭지 않아요?"
- 괜찮아요. 도시로 가면 실수할까 봐.
"실수?"
나는 오른손에 연필을 쥔 채로 내 입을 가리켰다.
"아아. 기억을 먹는 거 때문에......."
- 그래도 도로가 언덕 밑에 있어서 그렇게 심심하진 않아요.
내 집은 도시에서 나와서 차를 타고 한참 한적한 길을 따라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주위에는 흙길, 들판과 나무와 바다밖에 없었다.
- 어떻게 왔어요? 이 밤에. 비도 오는데.
"아 맞다. 자전거."
그녀는 벌떡 일어나 급히 문쪽으로 가 문을 열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녀의 옷이 진흙투성이인 것을 알아차렸다.
"자전거를 타고 왔는데......."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자전거는 내 집 마당에 팽개쳐져 있었다. 나는 빗속으로 걸어나가 그 자전거를 잡고 일으켜 세웠다. 너덜너덜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자전거였다. 나는 그걸 끌고 와 처마 밑에 가져다가 벽에 기대 세워놓았다.
"고마워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와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수건으로 머리의 물을 닦았다.
"으, 옷이 다 젖었네."
- 옷을 드릴까요?
그녀는 픽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요....... 미안해요. 계속 본론 이야기 안 하고 질질 끌어서."
- 비 그친 뒤에 내일이나 오지 그랬어요.
"아까까진 안 왔는데. 오는 도중에....... 비 맞다 보니 서러워서요......."
나는 일어나 커다란 수건을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
"고마워요."
나는 고개를 한 번 젓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그 수건을 몸에 둘둘 감쌌다. 그리고 빈 잔을 만지작거리며 우물거렸다.
"기억....... 지워줘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종이에다 썼다.
- 지금부터 그 지우고 싶은 기억을 모조리 제게 이야기해 주세요. 그 기억 말고 다른 기억들은 절대 말하면 안 돼요.
"네."
나는 그녀에게 시작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녀는 헤어진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처음엔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사귀었는지, 그 남자의 이름이 진이라는 것과 생김새, 사소한 버릇들.
그녀는 이야기 도중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계속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내 목소리에 놀라 나를 보았다.
"어......."
"아마 이제까지 말했던 기억이 다 사라졌을 거예요. 하던 이야기가 뭐였는지 잘 생각 해 봐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죠?"
내 목소리는 그녀의 기억을 내게로 가져왔다. 이제까지 그녀가 한 이야기는 행복하고 소소한 감정들이었기에 그것들을 소화하는 것은 힘들지 않았다.
"어....... 기억이 안 나요."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
"잘 생각 해 봐요. 당신은 얼마 전에 헤어진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녀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녀는 눈물을 닦은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어? 그 사람 이름이 뭐더라......?"
"잊어버렸을 거예요. 제가 먹었거든요.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한 동안 잘 이야기를 해 나갔다. 그러다 또 울음을 터트렸다.
"괜찮아요?"
그녀의 기억이 내게로 밀려 들어왔다. 그녀의 아픈 기억을 받아들이는 순간, 너무 슬퍼졌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어....... 아쥬......."
나는 오른손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계속하라고 왼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헤어진 그 남자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솔직해지지 못한 것 같아요......."
그녀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여기서 돌아가고 난 그날, 그녀는 다시 시작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를 찾아갔고, 그가 다른 여자와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시시....... 하죠?"
"아뇨, 아니에요. 이제 다....... 한....... 거예요?"
기억을 먹을 때마다 매번 겪는 일인데도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았다. 나는 그녀의 기억과 감정에 휩쓸려서 울었다.
"아쥬......?"
나는 이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의아하게 나를 보았다. 나는 간신히 울음을 삼키고 오른손으로 종이에 썼다.
- 당신 기억을 제가 먹은 거예요. 제 목소리는 당신이 떠올린 기억들을 가져오는데, 감정도 같이 실려서 와서.
"아......."
- 자세히 다 설명하긴 힘들어요. 나도 잘 모르는 것도 있으니까.
그녀는 자신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다 지워진 건가요?"
- 최근에 헤어진 남자가 누구죠?
"어....... 최근? 최근은 아니고, 거의 이년 전인데요."
- 좋아요. 다 지워졌어요.
그녀는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다 지운 거 예요? 무슨 기억을?"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을 지웠는데도 슬프네요."
- 아직 감정이 남아 있어서 그래요.
"슬픈 기억이었나 보죠?"
그녀는 계속 눈물을 훔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 밖을 보았다. 비는 어느새 그쳤고 하늘은 어스름한 색으로 젖어있었다.
- 그래서 지난번에 기억을 지우는 게 힘들다고 한 거예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서로 힘들고.
"시간? 지금 몇 신데요?"
그녀는 시계를 찾아 내 집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시계는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
- 저 침대에서 눈 좀 붙여요. 피곤할 텐데.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침대로 걸어가 쓰러지듯 누웠다. 나는 침대로 가 그녀를 바로 눕히고 이불을 똑바로 덮어 주었다.
"침대 더럽혀서 미안해요......."
그녀가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눈을 감고 나서 나는 탁자 앞에 앉아 피곤한 눈을 문질렀다.
"아쥬......."
나는 그녀를 보았다.
"당신 목소리....... 좋네요....... 또 듣고 싶어......."
그리고 그녀는 잠에 빠졌다.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나는 접시 소리에 깨어, 엎드려 자던 탁자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피곤했다.
"아쥬?"
나는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하품을 했다. 만족할 만하게 바람 소리만 내며 하품을 한 뒤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일어났어요?"
그녀는 쟁반을 들고 탁자로 다가왔다. 쟁반 안에는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빵과 과일 같은 것들이 담긴 접시들이 있었다.
"집 안에 먹는 게 이런 것밖에 없더라고요. 재료가 있으면 맛있는 걸 해줬을 텐데."
나는 고개를 저은 뒤 글을 썼다.
- 고마워요.
"뭘요. 먹어요."
그녀와 나는 늦은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런데 아쥬."
그녀가 빵을 입 안에 넣으며 말했다.
"기억을 지우면 피부도 좋아지나요? 저기 걸린 거울 보니까 좀 그런 것 같아서."
나는 싱긋 웃었다.
- 기억이 제대로 지워졌나 보죠. 기억을 먹힌다는 건 그만큼의 시간을 먹힌다는 것과 같아요. 제 생각엔 말이죠. 그래서 늘 손님들이 젊어져서 이 집을 나가요.
"우와, 좋은데요. 기억을 잃을수록 젊어진다면."
- 글쎄요.
"그럼 모든 기억을 다 먹히면 아기가 되는 거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 모든 기억을 다 지울 순 없겠죠. 일생을 전부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없잖아요?
"아....... 그렇겠네요. 그럼 전 몇 년 젊어진 거죠?"
- 그렇게 많이는 아닐걸요. 어제 지운 기억만큼 지워졌겠죠. 당신이 떠올리고 말한 것들만큼.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어제 미처 못 지운 기억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빵을 씹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 하지만 쉽게 떠오르진 않을 거예요. 어제 지운 그 남자의 존재도 기억나지 않잖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된 거예요.
"신기하네요. 전 지난번에 여기 온 것도 기억이 나는데 무슨 일로 온 건지는 기억이 안 나요. 기억을 지워달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뭔진 하나도......."
- 가끔 문득 단편적으로 떠오를 때가 있을 거에요. 그럴 땐 제게 다시 와요. 마저 지워 줄 테니까.
"고마워요."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물었다.
"사례는 어떻게......?"
나는 미소 지었다.
- 요리나 한번 대접해 줘요.
"정말 그래도 돼요? 기억 지우면서 힘들어서 울었잖아요."
- 괜찮아요.
그녀는 방긋 웃었다.
"그럼 제가 종종 요리해 주러 여기 올게요. 괜찮죠?"
나는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4.
너덜너덜한 자전거를 끌고 돌아간 그녀는 며칠 뒤 요리재료를 잔뜩 싸들고 찾아왔다.
"우리 친구 먹죠."
그녀와 난 친해졌다. 퍽 반갑고 고마웠다. 한적한 들판에 혼자 사는지라 사람 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나가는 봄 동안 자주 나를 찾아왔다.
"수화 가르쳐줘요. 아쥬는 글씨보단 그게 편하죠?"
그때부터인 것 같았다. 내가 그녀에게 우정 이상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건.
그녀는 나에게 수화를, 나는 그녀에게 요리를 배웠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차츰차츰 많은 것을 알아나갔다.

5.
남녀 관계라는 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끌리는 건가 보다.

6.
그녀가 능숙하게 내 손놀림을 읽고, 내가 맛있는 요리를 그녀에게 대접해 줄 수 있게 되었을 즈음, 우리는 그저 친구가 아닌 각별한 관계로 발전했다.
우리는 그때부터 서로를 존중하는 선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도시에서 일하는 그녀는 왕복을 위해 돈을 모아 작은 스쿠터를 샀다. 그녀가 도시로 가고 나면 나는 손님을 맞이하거나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우리의 작은 집을 가꿨다.
그녀가 새하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와 식구가 늘었고, 집 뒤에 작은 텃밭을 마련해 채소들을 키웠다. 저녁 때쯤 그녀가 돌아올 시간이면 나와 릴파 - 강아지 이름이다. - 는 언덕 아래 길로 내려가 손전등을 들고 그녀를 맞이했다.
그녀가 일하러 가지 않는 휴일이면 그녀와 나, 릴파 셋이서 바다에 가 물놀이를 하거나 넓을 들로 소풍을 갔다. 종종 내가 그녀를 따라 도시에 장을 보러 가거나 구경을 하러 가는 일도 있었다.
우리는 그럭저럭 행복하게 두 해를 보냈다.

7.
그녀와 내가 헤어진 건 내가 어떤 손님을 받고 난 뒤였다.
그 손님은 전쟁에서 팔을 잃고 퇴역한 군인이었는데, 아침에 불쑥 찾아와 사례는 넉넉히 할 테니 기억만 좀 지워달라고 했다.
나는 며칠 전에 그녀와 함께 도시에 가 그녀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예쁜 머리핀을 보았는데, 그걸 사려면 돈이 많이 필요했기에 그 손님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손님은 전쟁에서 끔찍한 기억을 지우려고 했다.
...... 너무 끔찍했다.
지우다가 내가 몇 번 토하고, 그 손님도 울고, 그 뒤로 나도 계속 운 끝에 간신히 오후 늦게 끝이 났다.
그 손님이 약속대로 사례를 두둑이 하고 돌아간 뒤, 나는 내 토사물로 엉망이 된 탁자 주변 바닥을 간신히 치웠다. 조금 숨을 돌린 뒤 찬물에 깨끗이 얼굴을 씻었다. 그러고 나니 몸이 아파져 나는 침대에 엎어져 잠이 들었다.
온몸이 욱신거렸다.
이마에 서늘한 것이 닿아서 눈을 떴다. 그녀가 보였다.
"아쥬."
손 움직이는 게 너무 힘에 부쳐서 얼굴 위에 올리는 게 고작이었다. 눈물이 나왔다.
"괜찮아요? 왜 갑자기 아픈 거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 이마 위에 올려진 그녀의 손을 약하게 잡았다.
그날 밤, 그녀는 늦게까지 아픈 나를 간호했다.
다음 날 내가 일어나보니 그녀는 일하러 가고 없었다. 나는 종일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침대에 누워서 끙끙 앓았다.
괜히 또 혼자 외롭고 서러워져서 울었다.
릴파가 낑낑거리며 침대 밑으로 늘어진 내 손을 핥았다. 나는 녀석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가 돌아올 때쯤이 되니 한결 몸이 가벼워져 일어나 앉을 수 있었다.
"아쥬, 몸은 좀 어때요?"
그녀가 내 이마를 짚어보며 물었다. 나는 손을 움직였다.
'좀 괜찮아요.'
"힘들면 말해요."
'그냥 이번 손님이 좀 힘겨웠을 뿐이에요.'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말했다.
"아쥬. 힘들면 그만둬요. 손님 받는 거."
나는 힘없이 웃었다.
'이게 내 일인데요.'
그녀는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종이들을 꺼냈다.
"이거 봐요."
그녀가 내민 것은 작은 쪽지였다.
- 주술사 나시감.
나는 쪽지에 적힌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뭔데요?'
"당신 치료할 수 있는 사람."
'치료?'
그녀는 어쩐지 굳은 결심을 한 것 같았다.
"답답하지 않아요?"
나는 눈만 깜빡였다.
"목소리가 있는데, 말을 못 한다는 거."
'익숙해서 괜찮아요.'
그녀는 나를 안쓰럽게 보았다.
"안 불편하냐구요. 아니, 안 외로워요?"
나는 그저 손만 만지작거렸다.
"그 목소리 때문에 이렇게 외진 곳에서 계속 혼자서. 찾아오는 사람은 당신을 계속 괴롭고 아프게 만들잖아요."
나는 변명하듯 손짓했다.
'모두가 괴로운 기억을 가진 건 아니에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움찔했다.
"그 목소리가 원망스럽지도 않아요? 그 능력이?"
나는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손만 주물렀다.
"대답 좀 해 봐요. 원망스럽지 않냐고요."
원망스럽다.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냐고요."
평범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외롭지 않냐고요."
외로웠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 전 당신이 있으니까 외롭지 않아요. 평범하진 않아도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해요. 원망스러웠지만 이 능력이 없었다면, 제 목소리가 없었다면 당신과 만날 수 없었을 거예요.'
내가 그런 손짓을 하고 나서 미소 짓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쥐고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고 했다.
"놔요."
그녀는 나를 뿌리쳤다. 나는 무안하고 당황스러워 주먹을 꾹 쥐었다.
"아쥬."
그녀는 축축한 목소리를 냈다.
"제가 안 괜찮다고요."
나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았다.
"전 당신이랑 이야기하고 싶어요.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요."
나는 그녀의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아파도 저 때문에 소리 한 번 못 내고. 아프다고 말도 못 하고."
제발 흘러내리지 말아 줘.
"슬퍼도 울지도 못하고 기뻐도 웃지도 못하고."
제발.......
"사랑한다고 한마디 말도 못 해주고."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내 안의 뭔가가 금이 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니까........ 우리....... 그 목소리....... 치료해요. 응? 아쥬......."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내 능력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난 평범하게 살 수 있을 터였다.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해 주고, 그녀와 아이를 가지고, 아이에게 사랑한다 말해주고, 아이에게 노래도 가르쳐 주고.
정말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정기적으로 찾아오시는 할머니가 두 분 계신다. 그분들의 너무 괴로웠던 기억을 먹어 드리고 있었다. 또 가끔 내겐 아이들도 몇 명 보내져 온다. 그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험한 짓을 당한 아이들이다. 그 애들의 괴로운 기억은 그 애들이 온전히 자라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나는 그 기억들을 먹는다. 또 사별한 이들의 아픔과.......
나는 그런 이들의 슬픔을 먹는다.
지금보다 성숙하지 못했을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이 일을 시작했고 후회도 많이 했다. 많이 괴로워했고 많이 아파했다. 하자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약한 이들을 도와 줄 능력이 있었다. 모른 체하는 것은 내가 용서할 수 없었다.
이제 와서 그 능력을 없앤다는 것은 어쩐지 너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너무 이기적이고 염치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얼굴로 손을 뻗었다. 그녀는 내 손길에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녀의 눈은 내게 내 능력을 없애자고 말하고 있었다. 마음 놓고 말하고, 울고, 웃고.......
나는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녀와 눈을 맞추고, 입을 벙긋거렸다.
'미안해요.'
그리고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진한 눈물 맛이 났다.
밤새도록 그녀는 내 품에 안겨 훌쩍였다. 그녀를 가만히 다독이다 나도 눈물을 한줄기 흘려버렸다.
이번엔 남의 감정이 아닌 순전히 나 자신의 감정으로 슬퍼했다.

8.
그녀는 이틀 뒤 일을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약을 구해 올게요. 기다려.'
그녀가 남기고 간 쪽지였다.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울음은 멈췄다가도, 다시금 물이 밀려들어 오듯이 터져 나왔다.
슬프다.

9.
그녀가 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나의 언덕 위의 집에서 그녀가 떠나기 전처럼 행동했다.
아침마다 두 사람 몫의 식사를 준비하고, 저녁이 되어서 릴파와 함께 언덕 아래 길로 내려가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렸다.
그것도 그녀가 떠나고 일 년이 지나서 그만두었다. 어쩌면 그녀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삼 년 정도. 그리움이 묻어나오는 세월을 보냈다.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 한복판이 아리고 눈물이 나왔다.
그녀를 원망하려 했던 적도 있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줄 수는 없나요.'
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녀를 미워할 수는 없었다. 내 목소리의 힘은 다른 사람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것이니까.
그렇게 나는 체념해 갔다.

10.
하지만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놀랍고, 고맙고, 너무 기쁜 일이었다. 정말로.......

1.
그녀가 돌아왔다.

11.
비가 오고 있었다. 내 작은 언덕이 씻겨 내려 가 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들 정도로 세찬 비였다. 그리고 그녀가 그 비 사이에 서 있었다.
"아쥬......."
나를 힘겹게 부르는 그녀를, 나는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소리 없이 울었다.
그동안 마음을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알 수 없는 거였다.

12.
그녀가 돌아와서 마냥 기쁜 것만은 아니었다. 내가 가장 염려한 것은 그녀의 몸과 마음이었다.
그녀는 돌아온 뒤 사흘을 거의 잠으로 보냈는데, 그 사이에 그녀는 점점 어려져서, 나와 처음 만났을 당시의 나이로 돌아갔다.
"맞아요."
나의 우려를 그녀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수긍했다.
"저,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는 저주에 걸렸어요."
'저주?'
"그 주술사. 나시감의 꽃을 꺾어 버렸거든요."
나는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열다섯 이전의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경계하고 있을 땐 괜찮다고 들었는데, 여기 오고 나서 마음을 탁 놓아버렸나 봐요."
또, 그녀의 몸 상태도 별로 좋지 못했다.
"병에 걸리다니, 저답지 않죠?"
그녀가 기침할 때마다 묻어나오는 피를 보며 말했다.
"몰라요. 죽기 전에 당신을 봤으니까 별로 여한은 없어."
그녀가 그렇게 장난스레 말할 때마다 나는 울고 싶었다.
그녀가 돌아오고 휴식을 취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 그녀의 건강은 악화되기만 했다. 게다가 이제 그녀는 아직 어린 스무 살 정도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다.
"제가 병으로 죽는 게 먼저일까요, 기억을 다 잃어버리는 게 먼저일까요?"
나는 울컥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그녀는 내 화난 손짓을 보더니 웃었다.
"사실이 그렇잖아요. 기억을 잃어서 어려지면 병도 잃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병에 걸린 시간을 잃어야죠. 병에 걸렸다는 기억을요.'
"아 그랬지. 시간을 잃는 거였지, 참."
나는 그녀의 작은 두 손을 잡았다. 그녀는 잠시 내 손을 응시하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녀의 손을 어루만졌다.
"사실....... 너무 무서워요....... 죽기 싫어......."
나는 나를 부여잡는 그녀의 등에 손을 얹고 그녀를 감싸 안았다.
"아쥬....... 저....... 저......"
내 품 안의 그녀는 곧 부서질 존재같이 느껴졌다. 그녀가 미약하게 말했다.
"제 기억을 먹어줘...... 요. 저...... 살고 싶...... 거든요."
희미했다.
"모든 기억을...... 어차피 잊...... 을 바엔, 아쥬, 아쥬...... 당신이...... 제 기억을...... 간직해 줘......."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지.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녀의 기억을 내가 다 먹어서 병을 낫게 하는 방법. 하지만 그러면 그녀는 날 기억하지 못할 거다. 그게 너무 두려웠다. 너무 싫고, 두렵고, 그녀가 날, 사랑하지 않을까 봐, 너무, 그게, 싫었다. 무서웠고.
그녀가 죽어가는데, 그렇게, 망설였다는 사실이, 망설인 내, 자신을, 나는 용서할 수, 없었다.
진작에 그녀의 기억을 먹었다면 그녀가 이렇게 힘들어하진 않았을 텐데.
"아쥬......."
나는 눈을 돌려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13.
나는 그녀가 누운 침대 곁에 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그녀는 조금 더 어려진 것 같았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줘요.'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만났을 때, 두 번째. 신기한 것들. 나에 대한 감정. 친구가 된 일. 수화를 배우고 요리를 가르쳐 준 거. 우정 이상의 감정. 우리의 집. 릴파. 해변에서. 텃밭 가꾸기. 계획 세우기.......
나는 그녀가 떠난 시점에서 이야기를 끊게 하고 말했다.
"고마워요."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그녀의 기억은 내게로 쏟아졌다. 내 몸 구석구석으로 그녀의 감정이 전해졌고 우리의 추억들이 내 마음에 여운을 남겼다.
"이제 떠난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래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술사 나시감에게 가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참 이상했어요. 아쥬의 마음속에 내가 들어간 것 같았으니까......."
그녀는 내 아픔을 이해했다고 한다.
"물을 따라갔어요. 물은 계속 아래로 흐르니까. 언젠가는 저 나시감이 산다는 저승 근처에 도착할 것 같아서......."
그녀는 처음에 나시감의 정원에서 실수로 꽃을 꺾어버렸고, 나시감의 저주를 받았다.
"그 사람은 친절했어요. 처음에 그 나시감이라는 사람이 아쥬랑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나시감은 손님이 정말로 바라는 것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눈, 눈 색은 달라서, 아쥬가 아닌 줄 금방 알았지만......."
눈은 마음의 창이라서 절대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우린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나시감은 제게 차를 대접해 줬고요."
그녀가 나시감에게 나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달라고 하자, 나시감은 내가 병에 걸린 게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저더러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했어요."
그녀는 내게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다고 한다.
"이제야 알겠네요. 당신의 그 능력도 당신의 일부라는 거. 제 생각이 짧았어요. 좀 더 빨리 알았으면 당신에게 이렇게 힘든 일, 안 시켰을 텐데."
나는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이제부터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려고요."
"...... 미안해요."
나는 내게 흘러들어오는 기억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무서웠어요. 전 당신의 기억을 먹어서 당신을 낫게 해 준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무서워서......."
뭔가 북받쳐 오르는 게 있었다. 눈물이 금세 불어나 눈앞을 흐렸다.
"당신이 기억을 다 잃으면...... 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될까 봐...... 무서워서...... 윽......."
그녀는 눈물을 쓱쓱 닦는 내 손을 잡았다.
"걱정 마세요. 전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 사랑할 자신 있으니까. 그러니까 기억을 잃는 것쯤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지금 현재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마쳤다.
"제 가방...... 그 안에 봐요."
나는 벌떡 일어나 탁자 위에 올려진 그녀의 가방을 열었다.
"나시감의 꽃...... 제가 실수로 꺾어 버린 거......."
나는 그 꽃을 꺼냈다.
"이 밤이 지나면 전 아마 기억을 완전히 잃겠죠?"
나는 꽃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꽃은 아직도 싱싱했다.
"나시감의 꽃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대요."
나는 그녀에게 그 꽃을 건넸다.
"내일, 제가 제 이름마저도 기억 못 하게 되면 이 꽃...... 절 이 꽃 이름으로 불러줘요."
그녀는 한 손으로 꽃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내 손을 잡았다.
"안녕, 아쥬.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해 줘요."
나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이제까지 해 주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던, 그 말을 해 줬다.
"사랑해요. 미치도록...... 사랑해요."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말이었기에 나는 온 정성으로 그렇게 말했다.
"사랑한다구요......."

14.
침대에 어린 여자아이가 누워서 곤히 자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창을 통해 아이에게 쏟아졌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손길을 느꼈는지, 아니면 햇빛 때문인지 아이는 눈을 찡그리며 잠에서 깼다.
나는 무의식중에 수화를 하려다 아이가 기억할 것 같지 않아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백지상태일 그녀였다. 목소리를 낸다 해도 상관없겠지.
"안녕."
아이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안녕...... 응..... 누구야?"
나는 미소 지었다.
"아쥬라고 해요."
"아쥬."
아이는 눈을 깜빡거렸다.
"아쥬. 난 누구야?"
나는 그녀의 손에 들린 꽃을 보았다.
"민트. 꽃말은, 다시 한번 사랑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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