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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Tender - 1.향

2017.10.17 02:1810.17

글을 쓰기 전에 자기변명을 먼저 해두어야 내가 궁색한 말장난을 내세워 부끄러운줄 모르고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자기변명을 써두었다. 이 문단의 주제는 자기변명이다. 이 문단은 여기에서 끝난다. - 여기  
 



나는 많은 향들을 좋아한다. 냄새 맡는 일을 좋아한다. 고양이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고 부드러운 털 사이 켜켜이 채워진 고양이의 냄새를 맡고, 남의 귀 뒤나 목덜미 등에 대고 같은 일을 하기도 한다. 음식을 먹을 때도 입 안의 근육을 둥글려 향을 느끼려고 하고, 눈이나 공기의 냄새를 맡기도 좋아하며, 낡거나 새로 지은 건물의 냄새, 나무나 철으로 만든 가구의 냄새를 가만히 맡는 일도 좋아한다. 싫은 냄새를 맡는 것도 싫은 냄새가 싫은 것이지 냄새를 맡는 일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드럭 스토어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향수들의 향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향수들을 뿌린 사람의 냄새는 이따금 가는 이를 불러세워 머리칼이며 목덜미, 손목에 뿌렸을 향수와 섞인 그들의 체취를 맡고 싶어지게 하곤 한다. 몸에서 날 향을 설계하는데 깊이 머리쓰지 않고 무작위로, 그냥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향의 샴푸며 비누, 바디워시를 사서 쓰고, 주변에서 좋다고들 하기에 산 향수를 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신에게서 분비되는 물질들이 어떤 향에 어울리고 자기가 어떻게 꾸미고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까지 고려해 먹는 것도 조절해가며 향을 고른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냥 '나에게서 좋은 냄새가 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걸 행동으로 옮긴 것을 알아차릴 수 있기만 해도 그 사람의 향이 좋게 느껴지곤 한다. 

 



나는 신체(神體)를 모신 일이 있었는데, 나의 일은 그의 몸을 닦고 가꾸고 정결히 해서 그가 온전히 기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신전 중 한 곳에서 머무르며 그 일을 행했는데, 그곳은 대부분이 돌으로 이루어진 산이었지만 침엽수와 들꽃풀이 많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곳은 건조하지만 상쾌한 향이 나는 석재로 지어졌다. 크고 넓은 욕실이 열 세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인 야외에 있었고, 신전 건물에서 약간 떨어진 나무로 지어진 별채에도 하얀 목제 욕조가 있었다. 내가 주로 해야했던 일은, 욕실을 청소하고 관리하고, 밤이 되어 신체가 입욕을 할 시간이 되면 신체의 목욕을 돕는 것이었다.  
향이 나는 것들을 넣어 달여둔 물을 탕옥에 옮겨담고 주변에 향초를 켜 불을 밝힌 뒤, 신체를 모시러 갈 수 있도록 한 손엔 은향로를, 한 손엔 회중전등을 쥐고 향을 치며 느린 걸음으로 욕실으로 향한다. 신체의 거동을 거들어 탕 안에 누이고 나면 콤부차 버섯 같은 매끈한 물건으로 신체의 몸을 천천히 닦고, 신체가 편히 쉴 수 있도록 약간 떨어져서 현악기를 연주했다. 연주곡은 템포가 느긋하기만 하다면 특별히 어떤 곡을 골라도 상관 없어서, 나는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즉흥으로 연주했다. 신전이 위치한 지역은 대기가 무척 맑고 하늘이 개인 곳이어서, 밤이면 천체의 움직임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모든 구름과 빛나는 별들과 위성들은 탕옥에 담긴 물 위에서 일렁이며 머물렀다. 이따금 나는 그 아름다운 광경에 도취되어 눈에 잡히는 모든 천체가 내 정신을 지배하고 나는 그저 그를 온전히 느끼며 손끝으로 악기의 현만 가늠하고 있을 뿐이라고 느끼곤 했다. 

신체가 욕조에서 나와 바람에 몸을 말리고 목욕을 마치면 나는 다시 그를 모시고 화장실로 향한다. 일련의 화장 과정에 앞서 그의 몸을 데우기 위해 화로에 불을 피워야 했는데, 그것은 신체가 추위를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화장품들이 신체의 육신에서 더 이로운 작용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나는 그 날의 천체의 흐름이나 구름의 모양, 바람의 결 혹은 산짐승들의 움직임에 따라 화장품을 달리 골랐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에는 훈연향의 크림을 쓰고 습기를 보충하기 위해 화장수를 넓은 자기에 담아 방 안에 놓아두는 식이었다. 화로에 불을 지피고 나면 그 다음으론 향을 피웠다.

이 모든 신체의 의식을 마치고 나면 신체는 어디론가 사라져 없어져있고, 나는 그 순간부터 다시 신체가 나의 봉사를 허락할 때까지 나의 몸을 돌봤다. 열매나 꽃을 따 잠자리를 꾸리고 침식했고, 샘에서 물을 길고 향나무를 구하고 향이 나는 풀들을 거두어 가공하고, 화단의 꽃을 가꾸고 이다음 신체의 목욕 때 공양하기 위해 그 중 가장 좋은 것을 취하여 좋은 자리에 보관했다. 나는 독서를 할 때도 있었는데, 아주 가끔이었지만 신체가 때마침 나를 찾으면 나는 그를 자리에 모시고 곧은 목소리로 책을 낭독하곤 했다. 신체의 거동은 감히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체는 내가 읽는 책의 서사나 맥락을 들으려고 한다기보단 내가 정신을 집중하고 바른 소리를 내기 위해 몸의 구석구석을 긴장시키고 마음을 편히 하는지에 신경쓰는 것 같았지만 나는 알 길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내리쬐는 찬란한 햇빛 아래서 나른히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신전의 벽은 마치 나의 목소리를 현을 튕기는 연주자처럼  울려주었고 그것은 나의 마음을 경건히 했다.

나는 한때 신체를 열렬하고 깊은 마음으로 사랑한 일이 있다. 그것은 열정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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