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최후의 다이브

2018.12.23 22:5412.23

- 최후의 다이브 -

 

수칙 1. 다이버는 결코 과거의 자신과 마주쳐서는 안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추락이 끝나고, 첫 번째 다이브가 시작되었다.

바닥에 착지한 뮈는 곧바로 주위를 살폈다. 좁은 길목 양 쪽으로 수조들이 늘어선 좁고 긴 수산시장이었다. 축축하고 비린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여기저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수조 위로 죽은 물고기들이 둥둥 떠올라 있었다.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래요?”

“저 짝에 원전이 터졌다 안하나. 해수욕장까지 전부 위험하다고 대피하라고 난리다.”

“아이고… 미쳤다 미쳤어! 우야면 좋노!”

“뭐하노, 언능 짐 안챙기고. 길 맥히기 전에 몬 빠져나가면 꼼짝없이 죽는다카이!”

그들의 대화를 들은 주위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그 모습을 본 뮈는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제대로 찾아온 모양이었다.

“도착 했어. 휘.”

뮈는 남들이게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그녀의 사념을 읽은 휘가 텔레파시로 되물었다.

<주변 지형은 어때?>

뮈는 멀리 떨어진 고층 호텔을 보았다. 30층 높이의 호텔이 주위를 압도하듯 홀로 오롯이 솟아 있었다. 그 아래로는 4~5층 정도의 낮은 빌딩들이 길게 벽처럼 늘어서 있었고, 수산시장은 거기서 이어진 길을 따라 100미터 쯤 남쪽에 위치했다.

“사전에 수집한 정보대로야. 배치가 거의 바뀌지 않았어.”

<좋아. 작전을 시작하자.>

뮈는 인파 사이에 자연스럽게 뒤섞여 앞으로 나아갔다. 시장 거리의 중간쯤, 북쪽으로 좁은 도로가 이어졌다. 아까 보았던 호텔 쪽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뮈는 방향을 꺾어 도로로 들어섰다.

여기서부터는 더욱 행동을 조심해야 해. 절대 뒤를 돌아봐선 안돼. 먼 곳은 더더욱. 불필요하게 가게 안쪽이나 사이사이의 골목, 지붕 위를 쳐다봐서도 안돼.

뮈는 그렇게 생각하며 빠르게 한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의 모든 것을 꼼꼼히 살피되, 불필요한 곳에 시선이 향하지 않도록 최대한 시야를 좁혀서. 그러곤 다시 시선을 발 끝으로 옮겨 바닥을 향한 채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도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바삐 이동하고 있었다. 아이를 찾는 여성의 비명, 아이의 울음, 서로 먼저 가겠다며 다투는 고함 소리. 가야 할 방향을 잃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양복차림의 남자가 그녀와 부딪칠 뻔 했지만 뮈는 능숙히 몸을 돌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충돌을 피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나아가자 차들이 꽉 막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대부분 운전자들이 이미 차를 버리고 떠난 상태여서 차들이 다시 움직이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뮈는 사람들을 따라 차량 옆의 인도로 이동해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몸을 비집어가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멀리 호텔 앞 광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서로 길게 뻗은 2차선 도로와, 수산시장으로부터 이어지는 좁은 도로가 만나는 삼거리의 작은 광장이었다. 몰려드는 인파 때문에 광장 근처의 도로도 이미 마비상태였다. 그래도 그녀가 있는 남쪽 도로보다는 통행이 원활한 편이었다. 적어도 보행자들이 빠르게 달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휘. 이제 광장에 거의 도착했어.”

<수신했어. 조심해 뮈.>

“괜찮아, 첫 번째 다이브니까.”

뮈는 주위를 확인한 다음, 멈춰선 자동차 위로 올라서서 차와 차를 뛰어넘으며 빠르게 이동했다. 동시에 그녀는 벨트의 주머니에서 소형 망원경을 꺼내 오른쪽 눈에 가져갔다. 망원경은 아주 작고 가늘어서 남들이 보기엔 주먹을 얼굴에 갖다댄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망원경에 내장된 안면인식 프로그램이 광장을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포착해 자동으로 패턴을 분석했다. 몇 분 후 한 사람의 얼굴이 포착되었고, 그 아래에 이름이 표시 되었다.

민현철.

뮈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에 힘을 주었다. 망원경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죽이면 안 돼. 뮈.>

그녀의 감정을 읽은 휘가 경고했다.

알고 있어.

뮈는 굳이 목소리를 내어 대답하지 않았다. 텔레파스인 휘에게 이미 모든 생각이 읽히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걸음을 서둘러 민현철의 곁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민현철이 나타났으니, 그 년도 분명 근처에 있을 거야.

뮈는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려 또 한 사람의 타깃을 탐색했다. 진수아. 훗날 텔레파스의 어머니라 불리우게 될 여자가 곧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원전 사고 직전 사소한 다툼으로 헤어졌던 민현철과 진수아는 이곳 광장에서 재회했고, 안전지대로의 탈출에 성공했다. 텔레파스 반란이 시작된 원점은 이곳에서의 만남이라는 것이 위원회의 분석가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 위원회는 뮈와 휘에게 임무를 내렸다. 두 사람이 재회하지 못하도록 방해 할 것. 단, 최소한의 개입으로.

위원회의 지시 따위 알게 뭐야. 수상하긴 그 노친네들도 마찬가지인데.

망원경이 진수아의 얼굴을 포착했다. 헝클어진 머리와 검게 때묻은 얼굴로 광장 동쪽에서 달려오고 있는 그녀는 이제 곧 서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민현철과 교차하게 될 예정이었다. 뮈는 진수아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점점 민현철 가까이로 다가섰다.

민현철은 통화량 폭증으로 먹통이 된 휴대폰에 시선이 못박힌 채 걷는 것도 달리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기회야. 뮈는 망설임 없이 그의 진로 앞으로 성큼 다가가 실수인 척 그의 팔에 부딪쳤다. 충격으로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뮈는 재빨리 방향을 틀어 현장에서 이탈했다. 민현철이 뒤늦게 고개를 돌렸지만 그는 뮈의 뒷모습조차 보지 못했다.

뮈는 호텔 옆 골목에 마련된 귀환포인트로 빠르게 이동하며 민현철의 행동을 살폈다. 그는 눈을 깜빡이며 빠르게 고개를 흔들더니, 떨어뜨린 휴대폰을 찾기 시작했다. 바닥에 부딪혀 액정이 쩍 갈라진 휴대폰은 정확히 진수아와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민현철은 휴대폰을 집어들기 위해 진수아로부터 등을 돌려 구부정하게 몸을 숙였다. 이대로 진수아가 지나쳐 준다면 그는 그녀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 순간, 누군가의 발에 휴대폰이 걷어차였다. 달려가던 행인의 발에 걸린 휴대폰은 불규칙하게 구르며 더 멀리 이동했다. 민현철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또 한번, 다른 사람의 발에 채이며 방향이 꺾였다. 더 멀리까지 밀려나간 휴대폰을 따라 민현철이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구르기를 멈춘 핸드폰은 누군가의 발 아래 멈춰섰다. 발 끝에 시선이 닿은 민현철이 굳은듯 멈춰섰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진수아가 그곳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긴장이 풀린 진수아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 그녀를 보호하듯, 민현철이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감싸안았다.

“민현철이 진수아를 발견했어.”

<뭐? 어떻게?>

“언제나처럼 지긋지긋한 우연의 일치로.”

뮈는 그렇게 말하며 벨트의 다이얼을 돌렸다. 미래쪽으로 끌어당겨지는 힘을 느끼며 그녀는 현재로 귀환했다.

 


 

귀환을 마친 뮈는 제단처럼 솟은 거대한 다이브 머신 위에 착지했다. 그녀는 몸에 익은 버릇대로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흙때가 묻어 누렇게 낡은 군용 임시 천막이 펼쳐져 있었고, 벽에 걸린 홀로그램 시계의 날짜와 시간도 정확했다. 올바른 시간대로 돌아온 것을 확인한 뮈는 계단을 따라 다이브 머신을 내려오면서 입고 있던 재킷을 벗었다. 휘가 그녀의 곁으로 삐걱이는 휠체어를 밀며 다가왔다.

“뮈. 왜 계획대로 하지 않았어? 첫 번째 다이브는 동선만 파악하기로 했었잖아.”

“기회가 너무 좋았어. 접근 경로도 완벽했고.” 뮈는 자신을 노려보는 휘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것 같았어. 확신이 있었단 말야.” 그녀의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점점 줄어들었다.

“방금 전 행동 때문에 진입 루트를 13개나 잃었어. 첫 번째 다이브를 앞질러 갈 수 있는 루트의 절반이야. 순서가 중요하다고 했잖아. 뮈가 성급하게 나선 덕분에 앞 단계에서 시도해 볼만한 시나리오가 전부 휴지가 됐어.”

뮈는 침묵했다. 휘도 지지 않고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침묵은 한참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결국 불편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뮈가 뒤늦게 사과했다.

“…미안해, 휘. 내가 너무 성급했어.”

뮈는 입고 있던 티셔츠와 청바지를 모두 벗었다. 휘는 묵묵히 그녀의 옷을 받아든 다음 그 아래에 겹쳐입고 있던 얇은 다이브 수트의 잔압을 확인하고, 호스를 연결해 보호거품을 충전하기 시작했다.

“현장 상태는?”

바닥에 설치된 홀로그램 지도를 바라보며 휘가 물었다.

“도로 폭이나 건물 배치는 현재와 거의 같아. 몇몇 빌딩이 약간의 높이 차이가 있는 정도.”

뮈는 그렇게 답하며 홀로그램 속 건물을 하나하나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높낮이를 조절했다. 이번엔 그녀가 손짓으로 지시하자 지도에 붉은 색 선과 면이 그려졌다. 방금 전 다이브에서 그녀가 이동했던 경로와 그녀의 시야가 닿았던 공간들에 대한 표시였다. 이제 그 구역들은 활용이 불가능했다. 패러독스 위험 때문이었다.

휘가 새로운 옷을 건넸다. 21세기에 유행했던 브랜드의 검정색 트레이닝복이었다. 다이버는 같은 장소에 같은 옷을 입고 두번 다이브해선 안된다. 뮈는 다이버들에게 강요되는 이런 편집증적인 규칙들에 넌덜머리가 났다.

“뮈.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절대 위험한 짓 하지 마. 알겠어? 한 번만 실수해도 패러독스가…”

뮈는 가벼운 입맞춤으로 소년의 입을 막았다.

“무슨 짓이야. 쪼, 쪽팔리게.”

휘가 새빨개진 얼굴을 감추려 고개를 푹 숙였다. 뭐야, 아직 애기구만. 그녀는 트레이닝복의 지퍼를 끌어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지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 작전 준비에 집중했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한데 묶은 다음 검은 야구모자까지 푹 눌러쓰자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다시 한 번 다이브할게. 이번엔 그 축구선수를 막아 보려고. 휴대폰 함부로 발로 차지 않게.”

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테이블 위에서 총 처럼 생긴 표적기를 집어들고 뮈를 겨누었다. 표적기가 달린 화물용 시간이동기. 위원회가 정부의 방치된 창고에서 발굴했다는, 낡았지만 튼튼하고 단순한 구조의 기계는 산업용 디자인으로 제작되어 누구나 손쉽게 운용이 가능하도록 되어있었다. 과거에는 시간이동이 빈번했었다는 뜻일까? 위원회는 또 어떤 사실을 숨기고 있는 걸까.

휘가 표적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발 아래 원통 모양 기구가 급속도로 회전했다. 뮈는 또 한번 아래로 아래로, 과거로 한없이 추락해갔다.

 


 

다이버가 시간을 거슬러 추락할 수 있는 것은 다이브 머신 주위를 둘러싼 보호거품 덕분이다. 보호거품은 4차원의 존재인 인간을 방울처럼 머금어 5차원의 막 위로 떠오르게 만들어 준다. 잠시나마 시공간의 바깥으로 밀려난 다이버와 오퍼레이터는 티플러 원통의 틀 끌림이 만들어내는 닫힌 시간 곡선을 따라…

관두자. 휘가 정확한 원리를 이해하고 있겠지.

뮈에겐 그런 설명은 아무래도 좋았다. 거품은 시간이동의 충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준다. 거품이 있기에 시간이동이 가능하다. 뮈에겐 그거면 충분했다. 복잡한 것은 질색이었다.

 

오히려 집중해야 할 것은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위원회 네트워크가 수집한 기록에 따르면 민현철과 진수아는 이날 무사히 원전 사고의 영향권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진수아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던 완두콩만한 생명은 그렇지 못했다. 사고 7개월 뒤, 형체를 알아 보기 힘들 정도로 사지가 뒤틀린 채 태어난 아이는 고작 일주일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

아이를 잃은 부부는 정부에 사과를 요구했다.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한 저항은 원전 사고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이 모여들며 범국민적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대중의 관심은 빠르게 식어간다. 그러는 사이, 정작 보호받아야 할 피해자인 피폭 1세대 아이들은 유전자가 뒤틀린 채, 과거 한센병 환자들이 그러했듯,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십수년간 방치되었다.

아이들의 감금은 민현철과 진수아가 무장투쟁을 결심하게 된 계기로 추정된다. 텔레파스 능력이 개화하기 시작한 아이들이 납치되기 시작하자, 부부는 강제 낙태와 불임 수술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최초의 테러를 가한다. 이 때 부부가 탈출시킨 1세대 능력자들은 이후 ‘텔레파스 혁명군’의 창설 멤버가 된다. 아이들과 정부의 대립으로 시작된 전쟁이 전세계를 뒤덮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즈음부터의 기록은 모호하다. 뮈가 태어났을 즈음엔 이미 전쟁은 만연해 있었고, 대부분의 기록매체가 파괴되거나 전쟁 물자로 분해된 이후였다. 어떤 과정을 거쳐 전쟁이 확대되었는지, 생명이 복원력을 잃고 절멸에 이르렀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 모든 사건들의 중심에 민현철과 진수아 부부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뮈와 휘는 그들을 막기 위해 몇 년간 이 임무를 계속해 왔다. 1세대 아이들의 탈출을 방해해 보기도 했고, 혁명의 사상을 가르치던 진수아의 학원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혁명군의 통신을 가로채 그들 사이에 균열을 일으키려고도 해 보았다. 하지만 과거는 아주 조금씩 흔들릴 뿐 결코 새로운 방향으로 꺾이지 않았다.

뮈가 어떤 시도를 하건 역사는 제 자리로 되돌아왔다. 임무가 실패로 끝날 때마다 뮈는 조금 더 과감한 개입이 필요하다고 위원회에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규칙에 얽매여 보수적으로 반응할 뿐이었고, 그러는 사이 텔레파스 반군의 주위로는 수백 건에 달하는 다이브가 복잡하게 뒤엉켜버렸다. 다시는 다이브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시간대를 제외하고 나면, 남은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20xx년의 해운대는 그나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어지는 마지막 지점이었다. 이번 임무에도 실패하게 된다면 아마 다음 기회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고, 더는 바로잡을 과거가 남아있지 않으니까.

 


 

수칙 2. 같은 장소에 두 번 다이브하는 다이버는 이전과 같은 옷을 입어서는 안된다.

수칙 3. 또한, 다이버는 이전의 도착시점 보다 30초 이상 떨어진 미래에 도착해야 한다.

 

뮈는 다시 과거에 착지했다.

다이버들에겐 교리와도 같은 안전 수칙에 따라, 두 번째 다이브가 시작된 시간은 첫 번째 뮈가 이 곳에 도착한지 30초가 흐른 후였다. 뮈는 천천히 길을 따라 서쪽으로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광장으로 향하는 도로가 나타났다. 첫 번째 뮈가 인파를 향해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뮈는 방향을 꺾지 않고 그대로 나아가 또 다른 골목으로 진입했다.

좁은 골목이 굽이굽이 이어졌다.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오자 광장에서 서쪽으로 한참 떨어진 지점이었다. 뮈는 노래방 입간판 뒤에 몸을 숨긴 채 사람들을 살폈다. 잠시 후 민현철이 그녀의 앞을 지나쳤고. 바로 그 뒤를 이어 후드 차림의 한 남자가 다가왔다. 아까 휴대폰을 찼던 남자였다.

뮈는 남자의 뒤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가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후드를 잡아당겼다. 그가 잠시 균형을 잃으며 걸음걸이가 살짝 헝클어졌다. 그는 느려진 걸음으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뮈는 능숙하게 그의 시선을 피해 귀환포인트로 향했다.

뮈는 귀환포인트 근처에 숨어 사건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첫 번째 뮈가 실수인 척 민현철의 팔에 부딪쳤다. 충격으로 휴대폰이 떨어지고 바닥에 부딪쳐 액정이 쩍 갈라졌다, 첫 번째 뮈가 민현철의 사각으로 방향을 틀어 이탈하는 것이 보였다. 민현철은 휴대폰을 집어들기 위해 진수아로부터 등을 돌렸다.

걸음걸이가 바뀐 행인의 발이 반 박자 늦게 휴대폰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덕분에 민현철은 무사히 휴대폰을 집어들 수 있었다. 그 사이 진수아가 그의 등 뒤로 지나쳐갔지만, 민현철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그 순간,

“아얏!”

달리던 진수아가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익숙한 목소리를 알아챈 민현철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진수아가 그곳에 주저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긴장이 풀린 진수아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 그녀를 보호하듯, 민현철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실패야. 진수아가 넘어졌어.”

뮈는 차분히 휘에게 결과를 알렸다. 그녀는 첫 번째 뮈가 귀환하는 모습을 확인한 다음, 귀환포인트로 이동해 벨트의 다이얼을 돌렸다.

 


 

“진수아가 넘어졌다고?”

휘가 물었다.

“그래, 민현철이 그 소리를 듣고 진수아를 알아챘어.”

“휴대폰은 상관없었던 거네.”

“응. 무의미한 행동이었어. 어차피 진수아는 넘어졌을테니까.”

휘는 한숨을 쉬며 홀로그램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진수아는 왜 넘어졌을까?”

“글쎄. 그냥 멍청해서 그랬겠지. 21세기 여자들은 쓸데 없이 높고 뾰족한 신발을 좋아하니까. 나라면 그거 신고 10미터도 못 걸을 거야.”

트레이닝 복을 벗은 뮈는 운동화를 군용 부츠로 갈아신으며 말했다.

“현장에 특이한 점은 없었어?”

“현장?”

뮈는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진수아가 넘어지던 순간 그녀는 민현철을 관찰하고 있었다. 넘어진 진수아의 주변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한번 확인해보고 올게.”

뮈는 텐트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텐트를 나서자 익숙한 풍경이 펼쳐졌다. 수산시장이었다. 다이브 머신은 오직 시간만을 가로지를 뿐, 장치가 설치된 그 위치로밖에 다이버를 전송하지 못했다. 그래서 뮈와 휘는 이곳 현장까지 직접 이동해 베이스캠프를 설치해야만 했다.

사람의 기척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거리는, 몇몇 건물이 붕괴되어 높낮이가 달라졌을 뿐 과거와 조금도 달라진 점이 없었다. 그저 빌딩 표면을 두텁게 감싼 채 말라죽은 덩쿨의 흔적만이 기나긴 세월을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방사능 오염물질의 제거가 진즉 끝났지만 누구도 이곳에서 다시 살기를 희망하지 않았다. 전쟁이 시작된 후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47만 밖에 남지 않은 인류가 넓은 지구를 두고 굳이 이런 땅에 와서 살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현장은 그 날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뮈는 익숙한 루트를 따라 삼거리의 광장으로 향했다.

뮈는 빼곡한 건물들을 바라보며,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았었던가를 새삼 실감했다. 도무지 믿기진 않지만, 노병들이 말하기를 인류의 숫자를 억 단위로 세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뮈가 손가락보다 많은 숫자를 셀 수 있게 된 무렵엔 인류는 100만을 조금 넘긴 수준 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그마저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모든 생명이 고갈되면 그때는 전쟁이 끝나지 않을까. 어쩌면 인공지능 기계들이 남아 전쟁을 계속하게 되는 걸까. 어린시절 뮈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전쟁의 끝을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전쟁이 끝을 맺을 줄은 몰랐다.

결국 생명보다도 먼저 물자가 고갈됐다. 전쟁을 하고싶어도 지속할 방법이 없게 되자, 위원회와 혁명군의 지도자들은 단 하루만에 휴전 협정에 동의했다. 뮈는 그렇게 쉽게 전쟁이 중단될 수 있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악수하고, 미소지으며 그녀에게 평화를 강요했다.

하지만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어차피 세상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고,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미움 뿐인데. 전쟁은 이미 일상과 동의어였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전쟁 외엔 아무것도 겪어보지 못한 인류가 지루한 몰락의 시간을 달리 무얼 하며 보낸단 말인가.

위원회가 이 모든 다툼의 기억을 지우는 데 실패한다면 인류는 멸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녀는 광장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현장은 과거와 똑같이 보존되어 있었다. 버려진 자동차들의 위치나 세워진 입간판 하나까지 그대로여서, 서로를 향해 달려오는 민현철과 진수아의 모습을 또렷이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뮈는 민현철과 부딪쳤던 지점을 지나쳐 진수아가 넘어졌던 지점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바닥에 박힌채 ㄱ자로 꺾인 못 하나를 발견했다.

 

“현장에 이게 있었어.”

텐트로 돌아오자 마자 뮈는 휘가 볼 수 있도록 테이블 위에 못을 내려놓았다. 휘는 못을 집어들고 눈 앞으로 가져갔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못을 등 뒤로 집어던졌다.

"진수아는 못에 걸려서 넘어졌을 거야. 빠르게 현장에 접근해서 못만 제거하면 돼.”

뮈는 그렇게 말하며 세 번째 다이브를 준비하기 위해 피복 보관함으로 걸음을 옮겼다. 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휠체어를 움직여 홀로그램 지도 근처로 이동했다.

“뮈, 알고 있지?”

뮈가 고개를 돌리자 휘가 손가락으로 광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에는 빨간 선과 면으로 영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이미 앞선 다이브로 지나쳤던 경로들, 그리고 시선이 닿았던 공간들. 절대 발을 들여선 안될 공간들의 표식이었다.

“뮈가 못을 뽑아야 하는 자리는 이미 두 번이나 다이브가 이루어진 곳이야. 여러번 시선이 집중되었던 곳이기도 하고. 못을 뽑는 타이밍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패러독스가 일어날 거야.”

“걱정 마. 생각보다 쉽게 뽑히더라고. 빠르게 앞질러 가서 못만 뽑고 돌아오면 돼. 또 다른 내가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끝날 거야.”

뮈는 이미 회색 작업복으로 환복을 마치고 다이브 머신 위로 올라서고 있었다. 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표적기를 겨누었다.

 


 

수칙 4. 다이브 루트는 교차하지 않도록 설계하라, 과거의 자신보다 앞서나가는 것 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뮈는 도착하자 마자 근처의 가스 배관을 타고 건물 위로 향했다. 그녀는 최대한 서쪽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서쪽 옥상의 루트는 다음 다이브 때 활용해야 할 수도 있었다.) 옥상과 옥상 사이를 뛰어넘어 빠르게 현장으로 향했다. 첫 번째 다이브보다 뒤쳐진 1분을 만회하기 위해선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정면에서 불어온 바람 때문에 애써 준비한 모자가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되찾아 올 시간은 없었다. 뮈는 무시한채 계속 달렸다.

광장 근처에 도착한 그녀는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건물 외벽의 우수관을 타고 미끄러지듯 1층에 착지했다. 못이 박힌 위치는 바로 열 걸음 앞이었다. 그녀는 상체를 숙이며 대피하는 인파 사이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이제 손쉽게 이 못을…

왜 안뽑히는 거야.

오랜 세월로 물컹해진 미래의 대지와는 달리, 새롭게 포장된 아스팔트는 단단했다. 게다가 안쪽에서 한번 꺾인 못은 쉽게 뽑히지 않았다. 뮈는 양 손으로 못을 움켜쥐고 온 힘을 다해 잡아당겼지만 손이 미끄러질 뿐이었다.

<뮈, 이제 15초 후면 첫 번째 뮈가 현장에 도착해. 서둘러!>

“서두르고 있어.”

뮈는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 손이 닫는 거리에 깨진 보도블럭이 보였다. 뮈는 보도블럭을 집어들고 못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이제 7초, 6, 5, 4…>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못이 땅 속으로 완전히 박혔다. 뮈는 귀환포인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뮈와 두 번째 뮈가 접근하기 전에 먼저 귀환을 완료해야 했다. 그녀가 벨트의 다이얼을 돌리려는 순간, 등 뒤에서 “아얏!” 소리가 들렸다. 진수아였다.

멍청한 년, 그냥 혼자 자빠진 거였잖아. 뮈는 한숨을 쉬며 다이얼을 돌렸다.

 


 

다이브를 마치고 귀환한 뮈는 손에 쥐고 있던 보도블럭 조각을 떨어뜨리고 그대로 계단에 주저앉아 얼굴을 감싸쥐었다. 3초. 3초 차이로 죽을 수도 있었다. 뒤늦은 실감이 그녀를 무너뜨렸다. 거칠어진 호흡이 도무지 안정되지 않았다. 휘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등을 매만져 주었다.

“괜찮아?”

“안 괜찮아. 지긋지긋해.”

휘의 손길을 뿌리치며 일어선 뮈는 작업복 단추를 풀어 헤치며 홀로그램 지도 쪽으로 이동했다. 잊어버리기 전에 방금 전 이동한 경로를 표시해 두어야 했다. 기록을 마친 그녀는 캠핑용 의자에 앉아 상체를 뒤로 젖혔다. 온몸이 등받이에 파묻혀 버릴 것만 같았다. 무거워진 두 팔이 자꾸만 아래로 툭 떨어졌다.

그녀는 힘겹게 손목을 들어올려 시계를 보았다. 주관시간 기준으로 열일곱 시간 째 임무가 계속되고 있었다. 허벅지에 붙여둔 불면 패치도 약효가 떨어져갈 즈음이었다. 그녀는 벨트에서 불면 주사를 하나 꺼내어 목에 대고 버튼을 눌렀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정신이 또렷해졌다.

“첫 번째 불면 주사야.”

휘가 말했다.

뮈는 주사기의 뒷면에 달린 마커펜의 뚜껑을 열고 왼팔에 커다랗게 1이라고 썼다. 다이버는 자신의 기억을 믿어서는 안된다. 시간 이동으로 같은 사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시간 감각은 무뎌지고, 선후관계에 대한 모든 기억이 어그러지게 마련이었다. 그녀는 불면주사를 놓은 횟수를 잊고 계속 투여했다가 뇌가 녹아버린 병사들을 자주 보았다.

불면 주사는 졸음에 빠지는 것만을 막아줄 뿐, 피로감까지 없애주는 것은 아니었다. 뮈는 무력감을 떨쳐내려 자신의 뺨을 세게 두드린 다음, 억지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휘가 홀로그램 지도와 외롭게 싸우고 있었다. 지도 위에는 휘가 손짓으로 그린 푸른 선들이 가득 겹쳐져 있었다. 선 하나하나가 새로운 침투 시나리오들이었다.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위치를 지나도록 설계된, 철도 시각표처럼 빼곡하고 치밀한 계획을 보자 뮈는 숨이 막혔다. 그녀는 휘의 손목을 붙잡아 작업을 멈추도록 했다.

“휘. 민현철을…”

“안돼.”

죽이자는 말이 입에서 나오기도 전에 휘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뮈는 이제 군인이 아니야. 누굴 죽이거나 할 필요까지는 없어.”

“지금 내 직업이 문제가 아니잖아.”

“절대 안돼.” 휘는 무의식적으로 허리춤을 양손으로 가렸다. 호신용으로 지급된 무소음 권총이 소년의 벨트에 메달려 있었다. “뮈에게 그런 짓을 시킬 바에는 차라리 세상이 망하는 게 나아.”

“말도 안되는 억지 부리지 마.”

“지금 억지를 부리는 건 내가 아니라 뮈야. 위원회도 민현철을 죽이는 건 안된다고 했어.”

“왜 안된다는 거야! 원전사고가 일어난 건 이미 70년도 더 지난 일이야. 시간선이 꺾이면 어차피 우리가 아는 모든 역사가 새로 쓰여질 텐데, 다이버 수칙 하나 쯤 어기는게 뭐 어떻다는 거야?”

“다이버 수칙 같은 건 상관 없어. 나는 뮈가 사람 죽이는 게 싫어.”

휘는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뮈도 지지 않으려 한참 동안이나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이번에도 먼저 포기한 것은 뮈였다.

“그래, 좋아. 대신 이번 다이브는 내 계획대로 해. 조금 더 과감하게 변화를 줄 거야.”

자잘한 계획 같은 건 필요 없어. 한 번에 끝내버리자. 뮈는 홀로그램 지도 위에 선을 그어가며 휘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정말 괜찮을까? 너무 아슬아슬해.”

“괜찮을 거야. 첫 번째 다이브 땐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으니까.”

뮈는 피복 보관함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내들었다.

“뮈, 그건 입었던 옷이야.”

휘가 지적했다. 젠장. 뮈는 들고 있던 청바지를 집어던지고 새로운 옷을 꺼내들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하늘빛 원피스였다. 그녀는 아래에서부터 빠르게 몸을 집어넣고 허리끈을 졸라맸다. 그런 다음 머리를 말아올리고 그 위로 갈색 곱슬머리 가발을 썼다.

준비가 완료되자 그녀는 다이브 머신 위로 올라섰다. 그녀는 방금 전 과거에서 가져온 보도블럭 조각을 집어들었다. 돌은 다시 과거로 돌려놓는 편이 안전했다. 줄어든 질량 만큼 과거 우주의 총 에너지가 줄어들었을 테니.

휘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뮈, 정말로 괜찮겠어?”

“괜찮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휘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조준기의 손잡이를 당겼다.

 


 

수칙 5. 어떤 식으로든 과거의 자신에게 영향을 미쳐선 안된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숨결이 닿는 것 조차도.

 

뮈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시장 구석에 보도블럭을 던져버린 다음, 첫 번째 뮈를 찾아 걸음을 서둘렀다.

멀리 시장 상인들 사이로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1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첫 번째 뮈의 뒤를 밟았다. 시장 거리의 중간 쯤에서 첫 번째 뮈가 방향을 꺾어 좁은 도로로 들어섰다. 뮈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술에 취한 남자가 또다시 돌진해왔다. 첫 번째 뮈가 몸을 돌려 남자를 피했고, 남자의 몸은 바로 뒤에서 걷고 있던 뮈와 충돌했다. 그녀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남자를 붙잡아 옆쪽으로 밀친 다음 다시 첫 번째 뮈의 뒤로 따라붙었다.

“휘, 이제 광장에 거의 도착했어.”

첫 번째 뮈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첫 번째 다이브니까.”

사실 뮈는 휘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첫 번째 다이브 때 뮈는 광장에 돌입하기 직전 딱 한번 뒤를 돌아본 적이 있었다. 오히려 뮈는 그 타이밍을 노릴 생각이었다. 바로 지금. 그녀는 계산된 타이밍에 맞춰 첫 번째 뮈의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첫 번째 뮈의 어깨가 먼저 움직이고, 뒤이어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몸은 첫 번째 뮈의 사각으로 들어가 그녀를 앞질러 나갔다. 첫 번째 뮈가 뒤를 한번 살핀 뒤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앞서서 걷는 갈색머리의 여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는 없었다. 뮈는 빠르게 인파 속으로 파고들었다.

첫 번째 뮈가 자동차 위로 올라서서 주먹을 눈가로 가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민현철을 탐색하는 사이, 뮈는 광장 근처로 다가가 진수아에게 접근할 준비를 마쳤다.

첫 번째 뮈도 두 번째 뮈도 휴대폰에 관심이 쏠려있었다. 그들이 휴대폰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진수아에게 시선을 옮기기까지 짧은 시간. 뮈는 그 틈새에 끼어들 생각이었다.

세 번째 뮈가 나타나 못을 내려친 다음 귀환포인트를 향해 달렸고, 뒤이어 첫 번째 뮈가 민현철을 향해 나아갔다. 그와 동시에 뮈는 진수아를 향해 출발했다. 첫 번째 뮈가 민현철과 부딪치고,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두 번째 뮈가 지켜보는 가운데 행인의 발이 휴대폰 위를 스쳐 지나갔다. 민현철이 휴대폰을 집어들기 위해 몸을 굽히는 순간, 뮈는 반대편에서 균형을 잃고 넘어지려는 진수아의 팔을 붙잡았다.

“조심하세요.”

진수아는 당황한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아, 고마워요.”

뮈는 귀환포인트를 향해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순간, 진수아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당황한 뮈가 고개를 돌리자 진수아가 표정 없는 얼굴로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아요?”

“아닌데요.”

“분명 어디서…”

그녀는 진수아의 팔을 뿌리쳤다. 진수아가 의외로 완강하게 붙잡고 있던 탓에 당황한 나머지 힘이 들어갔다. 진수아가 살짝 비틀거렸지만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었다. 첫 번째와 두번째 뮈가 언제 이쪽을 바라볼지 알 수 없었다. 이대로 귀환포인트로 이동하기엔 리스크가 너무 컸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버려진 승용차가 있었다. 주인이 차를 버리고 달아났다면 아마 문이 열려있을 거야. 뮈는 빠르게 차량쪽으로 이동했다. 제발 열려있어라. 제발. 제발. 뮈는 손을 뻗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철컥. 다행히도 문이 열렸다. 그녀는 재빨리 차에 탑승한 뒤 문을 닫고 몸을 낮게 낮추었다. 다행히 패러독스는 일어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랬다면 벌써 거품이 되어 사라졌을테니까.

그 순간, 멀리서 외침소리가 들렸다.

“수아야!”

민현철이 진수아를 부르고 있었다.

“수아야! 진수아, 어디있어!”

뮈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진수아가 민현철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민현철이 그녀를 알아보았다. 진수아가 그의 앞에 마주섰다. 이윽고 진수아가 울음을 터뜨렸고, 그런 그녀를 보호하듯 민현철이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이런 개 좆같은.

뮈는 속으로 욕을 삼키며 반대편 조수석으로 빠져나와 귀환포인트로 향했다.

 


 

현재로 돌아온 뮈는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렸다.

“뮈! 코피가…

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를 문질렀다. 손에 거뭇한 피가 묻어나왔다. 소매를 당겨 코를 닦으려던 그녀는 갑자기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뮈! 괜찮아?”

휘가 소리를 질렀다. 뮈는 기다시피 다이브 머신을 빠져나와 바닥에 몸을 뉘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난 괜찮아. 휘.”

그녀는 붉게 물든 소매로 다시 한번 얼굴의 피를 닦은 다음, 누운 채로 원피스의 허리끈을 풀어헤쳤다.

“첫 번째 나랑 교차할 때 옷이 살짝 스쳤어. 나풀거리를 치마를 입는 바람에…”

근처까지 다가온 휘가 휠체어의 벨트를 풀고 바닥에 떨어졌다.

“미안해, 내가 억지를 부려서… 뮈가…”

휘는 원피스의 단추를 풀려고 했지만 떨리는 손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당황한 소년은 어찌할 줄 모르는 조그만 손을 허공에 휘저어댔다. 뮈는 그의 손을 움켜쥐었다. 휘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어서 그를 안심시켜야 했다.

하여튼, 완전 애기라니까.

“정말 괜찮아, 휘. 정말이야.”

뮈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재빨리 몸을 일으켜 피에 젖은 원피스와 가발을 벗어 던졌다. 아무리 조심하고 또 조심하더라도 다이브 중에는 달팽이의 더듬이처럼 작은 실수들이 삐져나오게 마련이다. 뮈는 많은 다이버들이 사소한 패러독스로 인해 팔다리의 감각을 잃거나 치매에 걸리는 모습들을 보아왔다. 존재가 붕괴해 그가 실존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는 다이버도 많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 정도 피해는 오히려 양호한 편이었다.

뮈는 휘를 안아올려 휠체어에 태우고 다시 벨트를 채웠다. 그리고 다음 계획을 검토하기 위해 홀로그램 지도 쪽으로 다가갔다.

“뮈! 지금은 좀 쉬어야 해.”

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잊었니? 휴전중이긴 하지만 여긴 원론적으로 혁명… 반군의 실효 지배 지역이야. 적진이라고. 오래 머무를 수록 위험해.”

지도에는 여전히 휘가 검토한 무수한 시나리오들이 복잡하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뮈는 그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선택한 경로의 푸른 빛이 선명해지며 나머지 계획들은 흐릿해졌다.

“다시 다이브할게. 이번엔 조금 더 안전한 시나리오로 가자.”

 


 

곧바로 이어진 다섯 번째 다이브는 완전히 실패였다. 경찰 복장으로 갈아입은 뮈는 광장 동쪽으로 크게 돌아 달려오는 진수아의 앞을 막아 섰다. 그녀는 경광봉을 내밀어 진수아를 멈춰세우려 했다. 하지만 진수아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그녀의 옆을 지나쳐갔다. 억지로 붙잡을 수는 없었다. 진수아는 결국 광장에 도착했다.

여섯 번째도, 일곱 번째도, 몇 번을 반복해 보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뮈는 민현철과 진수아가 마주치기 전으로 돌아가 갖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막아보려 헀다. 때로는 군인이 되어 사람들을 위협해 보기도 하고, 민현철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 보기도 했다. 휘가 만들어낸 장치로 현장의 모든 휴대폰에 피난경보를 울려 피난을 유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현철과 진수아는 언제나 광장에 도달했다. 부부가 손을 잡고 광장을 떠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뮈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두 사람은 점점 더 과감하고 위험한 시나리오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번 다이브에서 뮈는 근처의 PC방에 폭탄을 설치했다. 폭발과 함께 민현철의 머리 바로 위로 잘개 쪼개진 유리조각이 쏟아졌다. 놀란 사람들은 저마다 비명을 지르며 빠르게 광장에서 도망쳤다. 하지만 민현철은 도망치지 않았다. 온몸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진수아를 향해 나아갔다.

오기가 생긴 그녀는 그다음 다이브에서 자동차를 폭파했다. 휴대폰을 주우려던 민현철은 몸이 몇 미터나 튕겨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럼에도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기어이 진수아를 데리고 광장을 탈출했다.

 

뮈는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다이브 머신에서 내려와 지도를 보았다. 이제 홀로그램 지도는 ‘실시간’ 모드로 바뀌어 있었다. 단순한 선이었던 뮈의 이동경로는 사람의 모습으로, 뮈의 시선을 나타내던 면은 고깔 모양의 입체 도형으로 바뀌어 손짓에 따라 초 단위의 변화를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지도 위에서 스무 명이 넘는 뮈가 동시에 달리고 있었다. 1초 단위로 동선을 쪼개어 정확한 경로를 계산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게 대체 몇 번째 다이브였지?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뮈는 벨트에서 불면 주사를 꺼내 들고 왼팔을 보았다. 팔에 써진 숫자가 12인지, 1과 2인지 헷갈렸다. 시간 감각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녀는 불면주사를 놓은 다음 숫자를 모두 지우고 3이라고 썼다.

뮈는 홀로그램 지도의 가운데, 광장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고민했다.

뮈는 이제 자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임무에 대한 간절함과 자포자기가 1초마다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다. 휘가 아니었다면 이 따위 임무는 당장이라도 포기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휘, 전부 너 때문이야. 스치듯 휘를 원망하는 감정이 지나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잠시나마 그런 생각에 빠진 자신이 견딜 수 없게 혐오스러웠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휘를 보았다. 테이블에 엎드린 채 잠이 든 소년은, 꿈속에서도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인지 얕게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이는 집속탄에 두 다리를 잃고서, 그 흔한 항생제 한 알을 배정받지 못해 상처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저희가 왜 텔레파스 따위에게 배급을 나눠야 하죠?’ 위원회의 사무관이 재수없게 빈정거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사무관은 배급을 받기 위해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 가치란 물론 민현철을 막고 역사를 바꾸는 일이었다.

그런데 정말 역사를 바꾸는 것이 가능하긴 한 걸까?

왜 계속해서 인과를 수정하려는 시도가 미끄러지는 걸까. 이미 스무 번이 넘는 임무를 거치며 수백 번의 다이브를 시도했다. 위원회가 바보가 아니라면 여러개의 다이브 팀을 운용했을 것이고, 그건 다시 말해 전쟁을 막기 위해 최소 천 번에 가까운 시도가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과거는 바뀌지 않았다. 마치 우주가 민현철과 진수아를 위한 길을 정해놓기라도 한 것처럼.

정말로 운명이라는 게 있다고? 세계는 설정된 대로 흘러갈 뿐이라고? 내게 이런 삶이 주어진 것도, 전쟁에서 죽어간 수많은 전우들도, 끝 모를 증오도, 아픔도, 슬픔도, 모두 정해진 시나리오라고?

휘가 죽어가는 것도 모두 신의 계획대로일 뿐이라고?

“좆까.”

뮈는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휘둘러 홀로그램 지도를 치워버렸다. 그리고 휘의 등 뒤로 다가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테이블에서 조준기를 집어든 뮈는 홀로 다이브머신에 올라 자신의 관자놀이를 겨누고 손잡이를 당겼다.

 


 

규칙 6. 다이버는 결코 과거의 누군가를 죽여서는 안된다.

 

과거에 도착한 뮈는 표정없는 얼굴로 무소음 권총의 슬라이드를 젖혀 약실과 탄알집을 확인했다. 아껴두었던 서쪽의 옥상 루트를 따라 이전의 어떤 뮈보다도 먼저 광장에 도착한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망원경을 꺼내어 다가오는 민현철을 관찰했다.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굳은 표정으로 달려오는 남자는 마치 결코 막을 수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휴대폰에서 피난 경보가 울리자 많은 수의 사람들이 발걸음을 돌려 되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옆에서 나타난 군인이 그에게 총구를 겨누고 돌아가라며 협박했을 때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누군가 그와 부딪쳐 휴대폰을 떨어뜨린 순간에도 그의 눈은 진수아를 쫓고 있었다.  다리가 걸려 넘어질 뻔한 순간에도, 머리 위에서 유리 파편이 쏟아졌을 때에도, 폭발로 몸이 몇 미터나 튕겨나갔을때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내가 휘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동안, 너는 그녀를 향해 몸을 던지고 있었구나.

그녀는 비로소 알게되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전쟁은 그저 형태를 바꾸어, 장소를 바꾸어, 시간을 바꾸어가며 계속되고 있었다. 위원회와 텔레파스가, 민현철과 그녀가, 서로의 생존을 걸고 서로를 찢고 부수고 망가뜨리기 위해 반복되는 시간 속에 생명을 쥐어짜고 있었던 거였다.

뮈는 권총을 들어 민현철을 겨누었다.

그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부부의 표정과 행동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민현철이 진수아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 스며있는 감정은 그녀가 누구보다도 잘 아는 감정이었다. 진수아가 흘린 눈물, 흐느끼는 어깨, 무너져내릴 듯한 안도감, 그런 그녀를 감싸는 어깨와, 가늘게 떨리는 손길. 그런 것들의 의미를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내가 짓고 있는 표정이라고 너희와 다를까.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혁명군의 지도자도, 텔레파스의 어머니도, 대절멸을 일으킬 악마는 더더욱. 그들은 그냥 부부였다. 21세기 어디에나 있는, 아무것도 아닌 부부.

하, 쪽팔리게 이제와서 이러기야?

차오른 눈물이 시야를 방해했다. 뮈는 눈가를 문질러 닦은 다음 다시 한번 민현철의 이마를 겨누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손가락에 힘을 주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총구가 아래로 떨어졌다. 결국,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옥상 모서리에 웅크리고 앉아 작게 흐느꼈다. 참을 수 없이 휘가 보고 싶었다.

“가자, 수아야.”

민현철과 진수아가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서, 오직 서로만을 의지한 채 낙하하는 석양을 향해 멀리 달아나는 연인들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총성이 민현철의 머리를 관통했다.

 

 

민현철의 몸은 마치 중력이 사라지기라도 한듯, 너무나도 느릿하게 무너내렸다. 흩뿌려진 붉은 피와 뇌수가 진수아의 얼굴을 뒤덮었다. 한박자 늦게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말도 안돼. 대체 누가?

뮈는 반사적으로 범인을 찾기 위해 바삐 고개를 움직였다. 민현철은 오른쪽에서 총을 맞았다. 그렇다면 저격이 가능한 위치는… 그녀는 호텔 옥상을 보았다.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뮈는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순간 다이브 한계시간을 알리는 경고음이 머릿속에 울렸다. 제기랄. 그녀는 귀환포인트를 향해 점프하며 벨트의 다이얼을 돌렸다.

 


 

다이브 머신이 굉음을 일으키며 뮈를 뱉어냈다. 계단을 따라 굴러떨어진 뮈는 옷을 찢은 다음 수트에 보호거품 호스를 연결했다.

“뮈! 무슨 일이야?”

놀란 휘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현장에 또 다른 다이버가 있었어. 그 자식이 민현철을 죽였어.”

“뭐?”

잠시 고민하던 휘는 뮈에게 말했다.

“뮈, 그 다이버를 잡아야 해.”

“어떻게? 그 자식이 어느 시간대에 있을줄 알고?”

“그 범인이 우리보다 과거에 다이브 했다면 애초에 우리가 다이브하는 일이 없었을 거야. 현재가 바뀌어버렸을테니까. 미래라면 그 반대겠지. 우리가 시간 이동을 감지하고 변화를 느꼈다는 건 우리가 거품을 펼치고 있던 동안 상대의 다이브도 이루어졌다는 거야.”

“그렇다면 그 다이버는…”

“지금도 근처에 있을 거야. 그리고 거품 속에서 꼼짝 않고 있겠지. 지금 거품 밖은 시공간 대치가 이루어지고 있을테니까.”

뮈는 권총을 꺼내들고 슬라이드를 당겼다.

“내가 가서 잡아올게.”

“뮈, 그건 또 언제!”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휘는 더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도 텔레파시로 기억을 읽고있을 거라고 뮈는 추측했다.

그 순간, 길고 가느다란 피리소리가 들렸다.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뮈는 휘를 감싸며 휠체어를 눕히고 바닥에 엎드렸다. 바로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나 대지를 파괴할 것 같은 진동이 그들을 뒤흔들었다.

“저쪽이다!”

어디선가 외침소리가 들리더니, 병사들이 텐트 주위를 지나 앞으로 달려나갔다. 반대편에서는 기관총 소리가 들렸다. 탄환이 신체를 관통하는 익숙한 소음이 들리고, 무언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더이상 병사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주위가 전장으로 변하고 있었다.

“괜찮아. 거품으로 보호받고 있는 동안엔 차원이 분리되어 있으니까. 저 사람들 눈엔 우리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을 거야.”

휘가 말했다.

뮈는 휘의 휠체어를 일으켜세운 다음, 그에게 지시했다.

“위원회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기록을 살펴봐 줘,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야겠어.”

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뮈는 곧바로 텐트를 열어젖히며 뛰쳐나갔다.

주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높이 솟은 건물들이 대부분 무너져 드문드문 형체만 남았고, 타오르는 불길 때문에 주위가 새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탄환이 그녀의 발 근처를 때렸다. 뮈는 재빨리 기둥 뒤로 몸을 엄폐했다. 그녀는 고개를 내밀어보았지만, 상대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녀는 옷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검회색 수트차림으로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뮈. 기록을 찾아냈어.>

“알려줘.”

뮈는 기둥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녀의 뒤를 따르듯 탄환이 벽을 때리며 쫓아왔다. 뮈는 건물 사이 익숙한 골목으로 몸을 꺾었다. 몇 번이나 다이브를 반복하며 몸으로 익힌 루트였다. 그녀는 좁은 골목을 따라 빠르게 광장 쪽으로 나아갔다.

<진수아는 지도자로써 훨씬 뛰어난 사람이었던 모양이야. 민현철이 이끌었을 때보다도 혁명군의 규모가 몇 배로 커졌어. 그리고 뱃속의 텔레파스가…>

“텔레파스?”

<진수아의 뱃속에 태아가, 최초의 텔레파스가 있었어. 그 아이가 진수아의 망가진 정신과 복잡하게 얽혀서, 주위 모든 사람에게 그녀의 증오를 주입시켰다는 기록이 있어. 혁명군은 노멀이라면 무조건 붙잡아 고문하는 극단주의자들로 변질됐어. 휴전 제의도 거절했고.>

“위원회의 지시는?”

<위원회는 1년 전에 이미 와해됐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건 끝없는 학살과 게릴라전 뿐이야.>

포화가 잠시 잦아들었다. 뮈는 신속하게 광장을 가로질러 호텔로 향했다. 로비를 지나 뒷 문으로 빠져나오자 그 곳에 텐트가 있었다. 그녀는 권총을 꺼내 무작위로 텐트를 향해 난사하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텐트 안에서 그녀가 마주한 것은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진 군인이었다. 옷깃에 새겨진 익숙한 녹색 휘장은 그가 텔레파스 혁명군의 장교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혁명군이 왜 그들의 리더를 죽였지?

뮈는 쓰러진 범인의 멱살을 잡아 끌어당겼다.

“왜! 왜 그랬어!”

범인은 그녀를 올려다보며, 만족감 가득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이 전쟁, 우리가 이겼어. 어차피 전부 망한 세상인데 이기기라도 해야 덜 억울하지, 안그래?”

한순간에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미소 뿐만 아니라 어떤 표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전혀 다른 어투로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어차피 뭔 상관이람. 다 죽었는데. 영후도, 수현이도, 서영이도, 재민이도, 지현이도, 세연이도, 어라? 세연이는 안죽었었나? 아닌가? 내가 죽였나?”

뮈가 전장에서 마주친 텔레파스들도 대부분 이랬다. 누구보다 민감한 그들의 정신은 주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광기와 스트레스를 청소기처럼 빨아들이다 금새 망가져버린다. 어차피 정상적으로 대화가 통할 상태가 아니었다.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익숙한 감각. 텔레파스가 그녀의 정신에 올라타 몸을 조종하고 있었다. 저항할 수 없는 힘이 그녀의 오른손을 움직여 관자놀이를 겨냥했다. 뮈는 재빨리 왼손으로 총을 빼앗아 텔레파스의 머리를 쏘았다.

텔레파스가 사망하자 곧바로 억압이 풀렸다. 뮈는 탄환이 떨어진 권총을 집어던지고 텐트 안을 살폈다. 다이브 머신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시체가 움켜쥐고 있던 자동소총을 집어들었다.

“휘, 듣고있지? 여기서 다이브할게. 돌아가서 이 자식을 막을 거야.”

<뮈, 안돼! 보호거품도 얼마 남지 않았…>

그가 말릴 틈도 없이, 뮈는 다이브 머신으로 뛰어들었다.

 


 

규칙 7. 떨어져 죽는 다이버는 없다. 다시 떠오르지 못한 자가 죽을 뿐. 거품의 잔압을 체크하고 또 체크하라.

 

잔압 부족. 잔압 부족. 경고음이 계속해서 뮈의 머릿속에 울렸다. 뮈는 착지하자마자 호텔을 향해 뛰어들었다. 로비 왼쪽의 엘레베이터 중 하나가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녀는 또 다른 엘레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향했다.

<뮈. 범인에 대해 좀 알아봤어.>

휘의 텔레파시가 들렸다. 뮈의 시선을 함께 지켜본 그는 기억 속 범인의 얼굴을 위원회 네트워크에 조회한 결과를 알려주었다.

<그는 TSS 소속 요원이야.>

“TSS? 처음 듣는 이름이야.”

<그럴 거야.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조직이니까.>

“무슨 뜻이야?”

<전쟁에서 패퇴가 반복되자 진수아는 한가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어. 위원회가 시간을 조작하고 있다는 의심. 위원회 네트워크에 따르면, 그녀는 자신이 과거에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텔레파스 다이버 부대를 만들었다고 해. 그게 TSS야.>

뮈는 자신을 바라보던 진수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때가 분명했다. 그녀에게 아이디어를 심어버리게 된 것은.

<뮈, 이 모든 상황은 우리가 만든 거야.>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그걸 바로잡으려고 지금 이러고 있는 거잖아.”

엘레베이터 문이 열렸다. 눈 앞에 정원으로 꾸며진 옥상이 펼쳐졌다. 곧바로 뛰쳐나온 그녀는 빠르게 눈으로 범인을 좇았다. 그가 옥상 한쪽에서 이제 막 소총을 겨누고 있었다. 뮈는 망설일 새도 없이 무릎을 꿇고 앉아 범인을 향해 총을 겨누었다.

<쏘면 안돼!>

뮈는 방아쇠를 당기려는 손가락이 마비되는 것을 느꼈다. 휘가 한 짓이었다.

“휘, 이 상황에 나더러 다이브 수칙을 지키라는 거야?”

<그게 아냐! 지금 거기엔 뮈가 너무 많아. 그 중 누군가가 분명 총성을 들을 거야. 시선이 스치기만 해도 패러독스야. 지금 수트 위에 아무 것도 안 입었잖아.>

제길. 뮈는 화단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그 순간 총성이 울렸다. 결국, 민현철이 또 한 번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범인이 유유히 현장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저 화단 뒤에 숨어 망연히 지켜볼 수밖에.

삐—

잔압 부족을 경고하는 경고음이 최종단계임을 알렸다. 보호거품이 고갈되기까지 1분도 남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미안해 휘. 이젠 이 방법 뿐이야.

모든 뮈들이 현장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뮈는 옥상 끝으로 달려가 진수아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조준경의 십자선 너머로, 죽은 남편을 끌어안은 채 절규하는 그녀의 입모양이 보였다. 죽여버릴 거야. 다 죽여버릴 거야! 뮈는 망설일 여유조차 없이 방아쇠를 당겨야 했다. 진수아의 이마 가운데 구멍이 뚫리며, 풀썩, 그녀의 얼굴이 남편의 가슴 위로 무너져 내렸다.

뮈는 터져나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옥상 너머의 귀환포인트로 뛰어내렸다.

 


 

폭풍.

온 세계를 집어삼킬 듯한 검회색의 폭풍.

 

다이브 머신에서 굴러떨어진 뮈는 흔들리는 대지를 움켜쥐며 바닥에 엎드렸다. 한참 떨어진 곳에서 휘가 휠체어와 함께 넘어져 있었다. 뮈는 그를 향해 기어가려 했다. 그가 무어라 소리치고 있었지만 굉음이 모든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텐트 바깥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폭풍이 모든 것을 휩쓸어 삼키고 있었다. 뮈는 얼굴을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귀를 가리켰다.

<끝이야. 이제, 모두, 끝이야.>

텔레파시를 통해 휘의 생각이 직접 전해졌다.

진수아의 죽음은 텔레파시로 얽혀있던 뱃속의 아이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전해졌다. 완두콩보다도 작은, 이제 겨우 의식을 형성했을 최초의 텔레파스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만을 격렬히 발산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세계에 대한 증오. 모든 불합리에 대한 격렬한 저항. 아이의 사념은 시공간을 넘어, 향후 수십년에 걸쳐 태어날 모든 텔레파스의 정신에 뿌리내렸다.

휘, 어떻게 이런 사실을 아는 거야?

<뮈. 위원회는 몰랐어. 폭력은 에너지를 수반한다는 걸. 우리가 과거로 보낸 에너지가 결국 시간을 따라 돌아와 우리를 때리게 될 거라는 걸. >

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목소리가 들렸어. 최초의 텔레파스의 목소리. 그가 다 말해줬어. 우리가 과거로 폭력을 보낼 때마다, 그 폭력은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우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었던 거야.>

폭력이… 되돌아온다고?

<위원회는 이미 수십 년 간 다이버들을 과거로 보냈어.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기기 위해서. 수많은 텔레파스가 죽었어. 그 폭력들이 모두 미래로 되돌아왔고, 결국 세계를 이렇게 만들었어. 우리가 해왔던 일들도 위원회와 다르지 않아. 위원회는… 우리는 크고 작은 폭력을 계속해서 과거에 축적해왔어.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야. 이제 더는 방법이 없어. 우리를 보호하는 이 거품이 사라지는 순간 모든 게 끝이야.>

거품의 크기가 조금 줄어들면서 텐트 가장자리가 폭풍에 닿았다. 티타늄 뼈대가 엉킨 실타래처럼 찌그러지며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공기의 유출을 따라 휘의 몸이 붕 떠올랐다. 뮈는 반사적으로 휘의 손을 붙잡았다. 폭풍이 거칠게 휘의 몸을 잡아당겼다. 땀으로 가득한 그녀의 손바닥이 조금씩 미끄러졌다.

<뮈! 정말 좋…>

그녀의 손아귀에서 휘의 손이 휙 빠져나갔다. 휘의 모습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텅빈 허공을 휘저으며 손을 쥐었다 펴기를 수차례 반복하던 뮈는, 손톱이 부러지도록 주먹을 쥐었다. 버블이 조금씩 쪼그라들며 그녀를 압박해왔다. 하지만 그녀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이대로 휘를 따라 뛰어들 셈이었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 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휘를 살릴 수 있어. 뮈는 허겁지겁 손을 뻗어 거품의 가장자리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조준기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이브머신 위에 올라 다시 한번 다이브했다. 한 시간 전으로.

 


 

“좆까.”

홀로그램 지도의 가운데 엉덩이를 깔고 앉아있던 뮈는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휘둘러 홀로그램 지도를 치워버렸다. 그리고 휘의 등 뒤로 다가가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테이블에서 조준기를 집어든 뮈는 홀로 다이브머신에 올라 자신의 관자놀이를 겨누고 손잡이를 당겼다.

30초 후, 다이브 머신 위로 뮈가 도착했다. 비틀거리는 기척에 깨어난 휘가 눈가를 비비며 웅얼거렸다.

“으응… 뮈? 뭐 하고 있어?”

그녀는 그를 꽈악 끌어안았다.

“뮈, 왜 울어?”

“그냥. 반가워서.”

그 순간 휘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그녀가 아님을. 그녀가 어떤 선택을 마쳤는지를.

“다이브… 할 거야?”

“응.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래…”

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뮈는 다시 일어나 보호거품 충전용 호스를 벨트에 연결한 다음, 보관함에서 검정색 드레스를 꺼내어 거울앞에 서서 몸에 대 보았다. 휘가 등 뒤로 다가와 그녀가 드레스 단추를 채우는 것을 도와주었다.

“괜찮아? 내가 하려는 짓 알고 있으면서. 텔레파스 능력으로 다 읽었잖아.”

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괜찮아. 너는 나의 뮈가 아닌걸.”

그래. 우리의 시간도 이미 끝나버렸구나. 뮈는 천천히 다이브 머신 위에 올라서서, 최선을 다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시 볼 수 있어서 반가웠어, 휘.”

휘가 표적기로 그녀를 겨누었다.

“고마웠어, 뮈.”

휘가 방아쇠를 당겼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추락이 끝나고, 최후의 다이브가 시작되었다. 다이버들의 규칙을 무시하기로 마음먹은 뮈는 앞선 모든 뮈들보다도 이른 시간까지 거슬러 내려가 가장 먼저 착지했다.

그녀는 모든 루트를 무시한 채 최단 거리를 달려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에 도착한 그녀는 곧장 눈 앞의 호텔로 뛰어들었다. 로비에서 손님들을 위해 비치된 검정색 장우산을 하나 집어든 그녀는, 비상계단을 뛰어 오르며 눈에 보이는대로 소화기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충분한 높이에 이르자 객실 창 밖으로 한번에 일곱 개의 소화기를 집어 던졌다. 동시에 소총을 겨누어 방아쇠를 당겼다. 일곱 번의 총성이 울리고, 소화기들은 저마다 새하얀 분말을 내뿜으며 아래로 떨어져갔다. 거리는 금새 새하얀 분말로 가득 채워졌다.

이걸로 시간을 벌 수 있겠지. 결국 인과의 영향은 피할 수 없겠지만.

뮈는 소총을 내려놓은 다음 비상용 완강기에 매달린 밧줄을 손목에 감아 쥐고 창 밖으로 뛰어내렸다. 분말이 시야를 차단한 덕분에 수십 명의 뮈들은 누구도 그녀를 보지 못했다. 그녀는 민현철을 향해 달려가 그의 앞에 섰다.

너희는 나를 원망하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휘를 살릴 수만 있다면. 세계 따위야 어떻게 되든. 나따위야 어떻게 되든.

그녀가 한걸음 그의 곁으로 다가가 우산을 펼쳤다. 폭발과 함께 파편이 우산 위로 가득 쏟아졌다. 우산을 내던진 그녀는 민현철의 손을 잡고 광장 가운데로 향했다. 등 뒤에서 자동차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광장 가운데 도착한 그녀는 민현철의 코앞까지 다가서서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진수아를 쫓아야 할 민현철의 시선은, 비록 잠시였지만, 이국적인 뮈의 눈동자에서 흐르는 선명한 눈물에 갖혀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그녀는 민현철의 뺨을 양 손으로 감싸쥐고 작게 속삭였다.

“사랑해 휘.”

그녀는 민현철의 입에 키스했다. 그녀의 등 뒤로 암살자의 빗나간 탄환이 바닥을 때렸다. 진수아가 그들의 곁을 지나쳐 넘어졌다가, 다시 절뚝거리며 일어나 새하얀 안개 속으로 사라져갔다. 모든 것이 끝난 것을 확인한 그녀는 입술을 떨어뜨렸다.

민현철은 이번에도 진수아를 만나게 될까?

연막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수많은 뮈들의 시선이 광장 가운데,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뮈는 자신의 존재가 검붉은 거품으로 변해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831 단편 위험한 가계, 2086 유원 2023.05.11 0
2830 단편 나오미 김성호 2023.04.29 0
2829 단편 육식동물들 박낙타 2023.04.27 0
2828 단편 우리 단톡방에 소비왕과 거지왕이 있다 지야 2023.04.27 0
2827 단편 감옥의 죄수들 바젤 2023.04.21 0
2826 단편 생명 조금 식마지언 2023.04.20 0
2825 단편 하얀색 리소나 2023.04.20 0
2824 단편 박쥐 페리도트 2023.04.18 0
2823 중편 공짜 커피를 조심해 -6 (完) scholasty 2023.04.12 0
2822 중편 공짜 커피를 조심해 -5 scholasty 2023.04.12 0
2821 단편 여 교사의 공중부양 김성호 2023.04.09 0
2820 중편 공짜 커피를 조심해 -4 scholasty 2023.04.08 0
2819 중편 공짜 커피를 조심해 -3 scholasty 2023.04.06 0
2818 단편 뱀파이어와 피 주머니 박낙타 2023.04.05 0
2817 중편 공짜 커피를 조심해 -2 scholasty 2023.04.05 0
2816 중편 공짜 커피를 조심해 - 1 scholasty 2023.04.05 0
2815 단편 필연적 작가 라미 2023.04.01 0
2814 단편 아주 조금 특별한, 나의 언니2 박낙타 2023.03.31 0
2813 단편 사탄실직 지야 2023.03.30 2
2812 단편 어느 영화감독의 매너리즘 탈출기 킥더드림 2023.03.27 0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