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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단편] 가정(if)

2003.12.06 02:2112.06

04. 가정(if)

        “궁금한 것 이 있었는데 말이지. 왜 그런 거야?”

붉은 색 머리카락이 하늘하늘 늘어져 내리고 있었고, 녹색의 눈동자는 날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낮의 청초한 검은 색 머리카락과 눈동자 역시 잘 어울리지만, 밤의 그녀의 모습 역시 보기에 즐겁다. 난 도자기를 빚던 손을 잠시 멈추고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술김에- 라고 생각해요. 그 소쥬우 라는 것 때문이겠지요.”

멍하게 벌어지는 그녀의 눈동자는 이내 발끈 하고 화르륵 타올랐다. 그 덕분에 그녀의 손에 붙들려 있었던 푸른 머리카락의 주인이 “으윽” 하는 신음소리를 내었지만 말이다.

        “조심하세요. 홍룡왕에게 갈기털을 쥐어뜯긴 지 얼마 안 되었답니다.”

그리고 유니카의 마법으로 인해서 블랙홀에서 놀다 온 지도 얼마 안 되었고요-. 난 이 말을 덧붙이면서 미소를 지었다. 유이세스는 내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도 꿋꿋하게 청룡의 갈기털- 그러니까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땋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명비 언니. 아무리 술김이라지만-. 그러니까. 소쥬우라는 것 때문이라지만 사나운 청룡을 어떻게 페밀리어로 삼을 생각을 다 했냐고-.”

유이세스의 화사한 손 사이로 고운 푸른 빛의 머리가 땋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난 그것을 보면서 도자기를 다듬으면서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대답했다.

        “사실 눈에 뵈는 것 없을 정도로 취해 있었거든요.”

사랑에 - 배신에- 아픔에 말이지요. 이 말을 덧붙이려던 난 기운차게 메센저와의 대담을 마친 후에 뛰어 들어오는 유니카를 보면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말하려던 대답 대신 다른 단어를 꺼냈다.

        “만일-. 만일 말이에요? 유이세스? 유니카 저 아이가 아니었더라면-. 난 그녀의 일원이 되어도 진즉에 되었을 거여요.”

유이세스의 붉은 눈동자가 크게 떠지면서 날 돌아다본다. 경악이 어린 그 시선을 마주하면서 난 다시 한번 잔잔하게 미소했다.

        “만일 -. 만일 청룡이 나의 페밀리어가 되어 주지 않았더라면-. 난 그녀의 일원이 되어도 진즉에 되었을 거여요. 페밀리어란 그런 존재이거든요.”

만일-. 만일-. 유니카 저 아이는 노상 말버릇처럼 이리 말하고는 했다.

        “만일 이라는 단어처럼 슬픈 단어가 또 있을까요?”

슬픈 단어? 이리 되묻는 내게 유니카 저 아이는 그네 특유의 감수성이 어린 눈빛을 빛내면서 말했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바라는 전제 하에서 말하는 단어이잖아요.”

그랬던가-. 그 당시에는 그런가 보다 하면서 넘겼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만일 이라는 단어는 매우, 매우 안심이 되는 단어이다. 만일 청룡이 나의 페밀리어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 날 아마도 난 [정원]으로 쳐들어와서 민폐를 끼쳤을 것이며, 나의 //가족//들은 그것에 대해서 매우 슬퍼하거나 수치스러워 했을 것이다.
만일 유니카 저 아이를 만나지 못 했더라면-. 세상만사 모든 고민을 내가 짊어진 것처럼, 짊어지고 왔었던 것처럼-. 자학만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만일이라는 이 단어는 내게 있어서 매우, 매우 행복한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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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님 출연! 후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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