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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상어밥 해방기

2017.07.17 12:4607.17

해양 생물 모양의 과자엔 그 생물들의 혼이 서려 있다. 이는 오래 전 일어났던 지상인과 아틀란티스인 간에 일어났던 대전의 결과다. 치열한 격전 끝에 지상인은 아틀란티스인을 이겨내 학살하고, 끝내 그들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군대이기도 했던 해양 생물의 혼을 봉인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바다를 누비는 해양 생물은 위대한 옛 시대 해양 생물의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봉인된 옛 해양 생물의 혼은 과자로 변해 지상인들의 입에 들어가게 되었고, 누대에 걸쳐 각 국가마다 갖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렸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여기, 2017년 한국에서는 봉인된 해양 생물들이 통칭 상어밥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고, 여기, 나, 아틀란티스의 마지막 후예가 서 있다.

 

“48000원이세요, 손님.”

“네?”

“돼지갈비 1인분 12000원, 총 4인분 해서 48000원이십니다.”

48000원? 저 지상인은 미친 게 분명했다. 혹은 아주 영악하거나. 이건 분명 지상의 동물, 돼지에게 복수한 날 등쳐먹으려는 계략임에 틀림없다. 내가 넘어갈 줄 알고?

“저, 저기에는 1인분에 7000원이라고 쓰여 있는데요....”

“아 저거는요, 런치타임에 7000원으로 받는 거예요. 옆에 작게 써져 있죠? 런. 치. 라고.”

더럽다. 정말로 더럽다. 상어밥 살 돈이, 우리 친구들을 해방시켜야 할 자금이 지상인들의 모략으로 날아가는구나. 이 굴욕을 절대로 잊지 않겠다. XX 갈비집. 두고 보자.

“아... 런치... 알겠습니다. 여기 5만원이요....”

“거스름돈 2000원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가시고 또 오세요!”

또 오긴 뭘 온다는 것인가? 더러운 사기꾼 주제에. 나는 가게 점원에게 속으로 주먹감자를 먹이며 xx 갈비집 밖으로 나왔다. 아아, 2000원. 한 개에 무려 x만원이나 하는 상어밥을 사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그렇지만 아껴야 상어밥을 살 수 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지 않던가. 나는 거스름돈으로 받은 2000원을 소중히 품었다.

가게 밖으로 나오니, 어둑어둑한 하늘을 각양각색의 네온사인이 밝히고 있었다. 지상의 밤거리는 활기찼다. 수면을 잊은 수많은 지상인들이 밤거리를 활보하고 술독에 취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길 가에 놓인 펀치 기계를 쳐대며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나 안 취했어. 안 취했다고! 만 원 빵 고? 고?”

펀치 기계 앞의 지상인 무리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는 팔을 붕붕 휘두르며 과장된 자세로 뒷걸음질 치다 나와 부딪쳤다. 그가 짜증난다는 눈초리로 날 쳐다보았고, 입에서 술독 냄새를 풀풀 풍기며 말을 내뱉었다.

“아이, 씨.... 눈 안 깔아?”

황당했다. 먼저 부딪친 게 누구였더라.

“....”

내가 말없이 어깨를 쭉 펴고 그를 마주봤더니, 지상인 일행이 그를 말렸다.

“야, 야, 네가 먼저 부딪쳤잖아. 너무 취했다. 빨리 저거나 쳐봐. 죄송합니다.”

일행의 만류에 그는 내게 대충 고개를 꾸벅, 하더니 펀치 기계를 향해 달려가 주먹을 올려쳤다. 삐리리리릭, 하며 기계는 숫자를 토해냈다. 826.

고작 저 따위 힘으로 우리 아틀란티스인을 패배시켰단 말인가. 나 역시 펀치 기계를 쳐서 아틀란티스의 힘을 지상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돈을 아껴서 상어밥을 사야 했다. 아쉬웠다.

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열 몇 평 정도 되는 적당한 공간. 이곳이 아틀란티스의 마지막 후예인 내 집이다.

집 냉동실엔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가득했다. 육류 섭취야말로 지상인들에 대한 나의 복수이자 생존 행위이다. 물론 대부분 돼지고기지만.

오늘은 재수 옴 붙은 날이니 나 자신에게 보상으로 스테이크를 줄 것이다. 냉동실을 열어 꽝꽝 언 스테이크를 꺼내어 녹이고, 레어로 구웠다. 그리고는 맛있게 먹어치웠다. 보아라, 지상인들아. 이것이 너희를 능욕하는 나의 제의행위려니....

성심껏 고기를 먹어치운 뒤 의식을 올리고, 상어밥을 쌓아둔 방으로 갔다. 혼 해방 의식을 위해 필요한 상어밥의 수는 42개. 이를 다 구비하려면 무려 xxx만원이 필요하다. 지금 방에 쌓아 둔 상어밥의 수는 39개. 피땀흘려 번 돈으로 하나씩 하나씩 사 모았다. 이제 조금만, 조금만 더 모으면 의식을 행할 수 있다. 나는 감개무량한 눈빛으로 상어밥 무더기를 응시했다. 해양 생물들의 혼을 해방하면 위대한 옛 아틀란티스의 영광을 재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리라.

나 이전에 의식을 행하려 한 아틀란티스인은 없었냐고? 물론 있었다. 실패로 돌아가서 문제지. 나 이전의 몇 안 남은 아틀란티스인들은 예언의 때가 도래하지 않은 시기에 무리하게 의식을 시도했기에, 의식이 모두 다 수포로 돌아갔다.

 

지상의 사람들이 하늘과 바다마저 정복한 시대, 따라서 우리에게 탄식밖에 남지 않은 시대에, 대양의 마지막 후손이 봉인된 이들을 공기에 노출시키면 모두 해방되리라는

예언에서 지칭하는 마지막 후손이란 바로 나를 지칭하는 말일 게다. 공기란 바닷물일 테고. 과업을 내게 맡기고 아틀란티스를 재건하기 위하여 저 멀리 바다로 떠난 부모님께서 남기신 말이니 틀림없다. 우리 종족은 더 이상 후손을 이어갈 여력이 없으니 바로 지금이 의식을 치르기에 적합한 때라고 하셨다. 바다 또한 더 이상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여력이 없다고 하셨다. 한시바삐 혼을 해방시키고 종족을 결집하여 지상을 침공해 모두 수장시켜야 한다고 하셨다(인간이 자연을 오염시키는 기술을 더 개발하기 전에 수장시킨다면 자정능력으로 바다를 정화시킬 수 있다.). 부모님께서 오염된 바다 속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 계실진 모르겠지만....

 

오늘은 알바 휴무일이면서 월급이 들어오는 날이다. 월급으로 월세와 식비 기타등등을 제하고 나면 상어밥 3개를 살 돈이 얼추 남는다. 곧, 의식을 치를 수 있다. 나는 의식을 치르기에 앞서 수산 시장과 아쿠아리움에 가기로 했다. 옛 시대 해양 생물의 혼이 깃들지 않은, 지상인들에게 포획된 후손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수산 시장에서 상어밥 42개를 담아갈 박스도 사둬야 했다.

아침으로 돼지고기를 정성껏 삶아 씹어 먹은 뒤, 집을 나와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수산시장까지 가려면 한참을 타야 한다. 지상인들과 몸을 부대끼며 좁은 지하철 안에서 수모를 겪어야 한다. 하지만 이미 패스트 푸드점 알바를 하며 단련된 몸이니,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수산 시장에 들어서니 익숙한 고향의 냄새가 물씬 풍겨오며 코를 자극했다. 난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그 향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것이 우리의 냄새다.

수산시장의 초입부터 비명이 들렸다. 관에 갇혀 제발 살려달라고, 여기서 꺼내 고향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해양 생물들의 비명이. 가판대에 주욱 늘어선 채 팔리기만 기다리는 그들의 몸뚱아리들도 눈에 보였다. 생각 같아선 이 수산시장, 아니 전국의 수산시장에서 살아있는 해양 생물들을 싹 다 사들인 다음 바다에 풀어주고 싶지만, 돈도 시간도 없었다. 유일한 해답은 의식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의식을 진행하여 혼을 해방시키면 저들이 이 저주받은 땅에서 지상인의 입에 들어가더라도, 나고 자란 고향 바다에서 새롭고 강대한 혼을 가진 채 다시금 태어날 것이었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의식이다. 난 마음을 다잡으며 슬픈 눈초리로 수산시장과, 가게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지상인들과, 친구들이 갇혀있는 바닷물이 들이찬 관과, 매대에 진열된 그들의 시신들과, 모래를 뒤집어쓴 채 꼼지락거리는 꽃게들을 바라보았다. 문득 특별히 맛있어 보이는 쌍둥이 꽃게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아마도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겠지. 다시 서해안에서 태어나겠지. 그날이 오면 더 이상 지상인들에게 잡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리라. 내가 의식을 치른 후일 테니까.

이제 상어밥이 담길, 바다의 기운이 담뿍 담긴 박스를 구해야 한다. 나는 이것도 연이 아닌가 싶어 내게 쌍둥이 꽃게를 파는 가게의 지상인에게 혹시 남는 박스가 있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혹여 돈을 달라고 하면 값을 치를 생각이었는데, 가게 주인의 마음씨가 좋아 흔쾌히 박스를 공짜로 얻었다.

드디어 준비가 끝났다. 다시 집에 돌아가 박스를 넣어 두고, 아쿠아리움에 간 뒤 남은 상어밥 3개를 마저 사오기만 하면 된다.

 

집에 돌아오니 괜히 센치해졌다. 이 장소도 이제 곧 안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더러운 지상에 정 붙였던 곳이야 없다만 이 집만큼은 추억어린 장소이기에. 한 때 부모님과 이곳에서 지내기도 했고, 알바하느라 지친 심신을 방 한 구석에 쌓여있는 상어밥들을 보며 쉬게 한 곳이기에. 상어밥을 한 상자 한 상자 사며 인내의 기쁨을 깨달았던 곳이기에. 내일이면 난 이곳에 없을 것이다. 이 지상에서 발을 뗄 것이다.

그리고 낮의 꽃게들을 떠올렸다. 그들을 사서 풀어줬어야 했나. 처음으로 지상에서 조금이나마 혼을 가진 해양 생물을 보았으니 인연이 아니었을까. 난 어렵사리 만난 인연을 외면한 게 아닐까. 그렇지만 그들만 특별 대우할 순 없었다. 내가 하려는 일은 대양의 친구들 전체를 위한 일이니까.

나는 수산 시장에서 받아온 박스에 상어밥을 하나씩 담기 시작했다. 상어밥을 담으며 선조들의 고통을, 그들이 바다를 지키기 위해 지상인과 치렀던 대전을 상상했다. 지상을 정복할 생각조차 않던 그들과 해저를 정복할 생각만 하던 그들을 생각했다. 수산 시장에서 포획한 해양 생물들을 팔던 그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잡아서 먹지 않는다. 다른 의미의 생존을 위해 잡아서 판다. 꽃게가 문어에게 먹히는 것과 수산 시장에서 팔리는 것, 전자는 자연의 순리고 후자는... 모르겠다. 과연 자연의 순리라 할 수 있는가? 돈을 위해 포획된 채 팔리고, 팔려서 먹힌다는 보장도 없이 버려질지도 모르는데?

 

나는 상어밥을 사러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아쿠아리움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관에 갇힌 친구들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지상인들은 해양 생물의 혼을 봉인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을 좁디 좁은 관에 갇힌 채 한낱 구경거리로서 살아가게 만들었다. 이는 비단 해양 생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지상인의 친구로 여겨졌던 지상의 동물 또한 마찬가지 신세였으니. 지상의 동물 또한 동물원의 철창에 갇혀 구경거리로 전락했고, 어딘가에선 인간에게 잡아먹혀지기 위해 사육 당한다. 지상인들은 자신들 이외의 것들은 모두 집어 삼키고, 이들의 운명조차 자신들의 의지대로 좌지우지해야만 성에 차는 걸까?

관에 갇힌 친구들은 지상인들이 주는 먹이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먹고 싶을 때 먹지 못 한다. 자고 싶을 때 자지 못 한다. 놀고 싶을 때 놀지 못 한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나지 못 한다. 날마다 일정 시간 동안 지상인들이 관을 두드리는 소리와 그들이 터트리는 카메라 플래시에 고통 받는다. 혼을 해방한다 하더라도 이들만큼은 어찌할 수 없다. 바다에서 태어나는 다음 세대만이 영향을 받을 뿐이다. 지상인들이 이들이 건강할 때 방생해주기만을 바라면서, 나는 수많은 관들을 사이에 두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아쿠아리움의 끝에 다다르자 상어밥을 파는 가게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기, 상어밥 사러 왔는데요.”

“네 손님, 몇 개 드릴까요?”

점원은 부담스러울 정도의 몹시 상냥한 얼굴로 카운터에서 나를 맞이했다. 카운터 뒤로는 상어밥 몇 십 상자가 매대에 진열돼 있었다. 이제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지상인들의 의식을ㅡ비록 현 시대의 그들은 혼을 봉인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과자로 만들어 먹는 것이지만ㅡ내 손으로 끝맺을 차례였다. 난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3개 주세요.”

“와 한꺼번에 3개나요? xx만원 되시겠습니다.”

이 지상인은 상어밥 속에 감춰진 의미를 모를 것이다.

“여기.”

“안녕히 가세요, 손님!”

오늘 의식이 끝나면 지상을 떠나 안녕해지리라.

 

상어밥 3개를 알을 품은 새처럼 조심히 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상어밥 3개를 추가해, 총 42개의 상어밥 상자들을 보니 감개무량해졌다. 한참을 쳐다보다, 박스에 하나씩 하나씩 정성들여 담아 테이프로 봉했다. 이제 바다로 가기만 하면 된다.

 

나는 박스를 한아름 안은 채 바다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바다에 도착했다.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밤이 되었다. 나는 해변가에 서서, 박스의 봉인을 풀고, 상어밥을 한 상자씩 꺼내어 뜯고, 내부의 봉지마저 뜯은 후 바다에 상어밥을 쏟았다. 고래, 상어, 문어, 꽃게, 거북이, 오징어... 다양한 해양 생물 모양을 한 과자가 바닷물에 닿자마자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로 변하는 것만 같았다. 그들의 혼이 살아 움직여 바다 저편으로 멀리 멀리 사라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42개의 상어밥을 정성껏 바다에 쏟아 버린 후, 나는 지상인들의 옷을 벗었다. 글쎼, 오염된 바다에서 얼마나 살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의 혼을 해방한 지금 지상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난 바다로 돌아가서, 부모님을 비롯한 잔존한 아틀란티스인들을 찾아 제 2의 대전을 준비할 것이다. 지상인들이 그들 이외의 자들에게 행한 행위를, 그대로 돌려줄 것이다. 전쟁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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