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7월 15일 오후 6시 무렵이었다.
흰색 줄무늬 긴 팔 셔츠를 입은 남자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여름인지라 6시가 되었어도 주위는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남자의 왼쪽 편에서는 차가 지나다니고 있었는데, 남자는 가끔씩 도로 쪽으로 시선을 주며 매연이 몸에 안 좋다는 말을 생각했다. 남자는 빨리 이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 땀이 안 날 정도로만 걷는 속도를 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문득 이제 건강을 챙길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떠올라 남자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남자는 바지 주머니 위에 손을 갖다대었다. 바지의 직물 아래 딱딱한 물체가 있는 게 느껴졌다.  
남자의 바지주머니 안에 있는 것은 금색 회중시계였다. 그 시계는 흰색 줄무늬 긴 팔 셔츠의 남자인 갑이 예전에 자기를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고 소개한 어떤 노인에게서 받은 것인데, 사용한 사람의 기억을 한 번에 최대 30일까지 과거로 보낼 수 있는 물건이었다. 현재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면 이것을 사용해 과거로 돌아가 현재를 바꿀 수도 있었다.
기억을 과거로 보낸다는 것은 만약 갑이 7월 15일에서 7월 12일로 기억을 보냈을 경우, 기억을 보내고 난 후의 12일의 갑은 15일에 시계의 기능이 작동하기 전까지의 갑이 지닌 기억을 가진 채 12일로 돌아가 다시 살아가게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게임에서 얼마간 진행하며 뒷내용을 알고 난 후 저장한 파일을 불러들여 앞으로 돌아가 다시 진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기억만 되돌아가기에, 12일에서 15일 사이에 몸에 상처가 났어도 시계를 사용하면 상처가 나기 전인 12일의 육체로 되돌아가게 되는 이점도 있다.
시계를 조작해 한 번에 최대로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은 30일이다. 시분초의 시로 계산하면 7200시간인데, 사실 이것이 큰 의미가 없는 것이 이것은 한 번에 되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7200시간이라는 것이지 7200시간을 되돌아간 후 그 시점에서 다시 7200시간을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즉 최대로 이동할 수 있는 시간은 시계를 가진 순간부터 30일 전까지였다. 갑이 반년 전에 시계를 받았을 때가  열아홉 살이니, 만약 여든세까지 산다고 하면 61년가량의 시간을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시계의 기능 중에서 유의할 것은, 기억을 가지고 30일 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30일 앞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미래를 알고 있는 것은 뭔가를 선택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단 한 번 살아가면 끝인데, 시계는 수없이 많은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도 실수를 할 수 있고, 그리고 그걸로 끝인데, 시계를 써서 과거로 되돌아가면 실수를 해도 고칠 수 있는 것이다. 고친 방법이 잘못되었다면 그 고친 방법을 다시 고치면 되는 일이다. 이런 것이 앞일을 아는 예지 보다 시계가 좋은 점이다.
그러나 반면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보다 미래를 알고 있는 게 더 좋을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가 있다.
시계를 가진 사람이 공사현장 주위를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모종의 이유로 인해 위쪽에 있던 벽돌이 시계를 가진 사람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린다. 그 사람은 벽돌이 자신의 머리를 깨부수는 순간까지 자기가 죽을 걸 몰랐다.
이럴 경우, 시계를 사용할 새도 없이 죽었으므로 그냥 죽는 것이다. 이것이 시계의 단점이었다. 쓰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미래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어렵지 않게 벽돌을 피했을 일이었다.
다만, 미래를 아는 사람이건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는 사람이건 운석이 지구로 떨어지는 것 같은 불가피한 상황이 일어나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갑은 벽돌을 맞지 않기 위해 공사현장 주위를 지날 때에는 거의 항상 머리 위쪽에 정신을 집중시킨 채 걸음을 옮겼다. 공사현장 주위에 갈 일도 잘 없고, 굳이 머리 위가 아니더라도 벽돌이 떨어지는 일 자체를 갑은 살아오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결국 그것은 반쯤은 기우가 아니게 되었다. 실제로 공사현장 주위를 지나던 중, 벽돌은 아니지만 철골이 떨어진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다.
철골이 갑의 머리에 떨어진 건 아니었다. 철골은 갑으로부터 몇 걸음 앞쪽에서 걷고 있던 여고생의 머리에 떨어졌다. 포니테일 머리를 하고 있던 여고생은 그것으로 즉사였다.
갑은 눈앞에서 사람이 죽은 걸 보고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그러다 위를 쳐다보며 철골이 또 떨어지지 않나 살폈다. 얼마간 살펴봐도 철골이 더 떨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더 위험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갑은 땅바닥에 옆으로 쓰러진 여고생 을에게 뛰어갔다.
갑은 예전에 차바퀴에 말려들어가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는 비명이라던가, 바닥에 퍼지는 핏물이라던가, 확실히 죽음이라는 게 느껴지는 요소가 있어서 다가설 엄두를 못 냈었다. 그러나 이번에 을에게는 그런 흔적이 거의 없었기에 갑은 공포심을 이기고 을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
을의 머리에서는 핏자국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철골이 머리를 부순 게 아니라 부딪칠 때의 순간적인 충격 때문에 뇌진탕으로 죽은 것이 때문이었다. 피를 거의 볼 수 없었기 때문인지 겉으로는 꽤 멀쩡해 보이기도 했다.
혹시나 그냥 기절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고 갑은 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느끼고 있었던 것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방금 전까지 느끼고 있던 과거는 상당히 분위기가 다른 감정이었다. 갑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갑은 을에게 한 눈에 반했다.
을의 뒤쪽에서 걸어가며, 갑은 앞서 걸어가는 을에게 시선을 준 적이 있었다.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는 했었다. 얼굴이 예쁠 수도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었다. 을이 아름다운 건 그렇게 뜻밖의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을의 미모는 꽤나 갑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여신이라고 할 정도로 예쁜 건 아니었다. 그러나 단순히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연상해낼 수 없는 그런 존재감은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어지간한 연예인보다 나은 외모였다.
갑은 사람의 생존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에 뭐가 있는지 생각했다. 몸을 흔드는 건 위험할 것 같아 손가락을 코 밑에 갖다대었다. 호흡은 느껴지지 않았다. 죽은 것이다. 그러나 갑은 아직 을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긴가민가했다.
갑은 휴대폰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신고를 하고 나자 조금 안심이 되어 주위에 신경 쓸 여유가 생겼다.
갑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꽤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사고현장에 집중되어 있었다. 공사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5분가량 지났을 때 앰뷸런스가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을을 살펴보더니 바닥에 선을 긋고 들것에 실어 차 안으로 옮겼다. 갑이 그 광경을 지켜보는데, 한 사람이 다가와 갑에게 다가와 정황을 물었다.
이것저것 대답하다가, 잠시 말이 멈춘 사이에 갑이 질문했다.
“죽었군요?”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갑은 생각했다.
‘살릴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갑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금색 시계를 만졌다.
시계를 가지게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갑은 시간을 되돌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었다. 결론이 내려지지 않는 생각을 하던 중, 갑은 시간을 되돌아가는 것에 대해 한 가지 원칙을 정하게 되었다. 시간을 되돌아가는 힘은 웬만해서는 자기만을 위해 쓰자는 것이었다. 남을 도운다고 시간을 되돌아가서 다른 행동을 취해도 그게 꼭 끝까지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던 것이다. 어차피 시간을 되돌아가는 것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니 자기만 쓰는 게 낫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인연을 놔두기가 갑은 너무 아쉬웠다.
이렇게 귀여운 여자애와 연관되는 일은 앞으로 평생 동안 일어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을 망설이게 했다.
‘이번만 할까.’
갑은 고민에 빠졌다.
가던 길을 다시 가며 갑은 생각에 잠겼다.
‘너무 이기적인데.’
팔짱을 낀 채 목을 상하좌우로 돌렸다. 한숨을 내쉬었다. 갑은 결정을 내렸다.
갑은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지금으로부터 25분전쯤에 사고가 일어났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갑은 금색 시계를 조정해 되돌아가는 때를 28분 전 과거로 설정했다. 그리고 시계를 작동시켰다.
잠시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시 밝아졌다. 갑은 기억에 남아 있는 거리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걸 보게 되었다. 100m 정도 앞쪽에 공사현장이 있었고, 좌우에 늘어선 건물들과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앞쪽을 보니 네다섯 명의 사람들과 을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갑은 기억나는 대로 과거에 했던 행동을 최대한 따라했다. 그냥 을과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이었다.
공사현장을 지나면서 갑은 위쪽을 주시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의식하며 걷다가, 이때쯤인가, 라고 생각할 때 철골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갑은 달려갔다. 그러나 갑이 생각했던 것보다 철골이 떨어지는 속도가 빨랐다. 그래서 갑이 을과의 거리를 반 정도 줄였을 땐 이미 시간을 되돌아가기 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후였다.  
갑은 걸음을 늦추었다.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아서, 갑은 머릿속을 정리하고 다시 금색 시계를 꺼냈다. 이번에는 30초 전으로 되돌아갔다.
앞쪽에 을이 보였다.
갑은 걸음을 옮겼다. 너무 일찍 뛰어간다며 의미가 없었다. 여기쯤이면……. 숫자를 셌다. 7, 6, 5, 4, 3.
갑은 준비한 말을 내뱉으며 뛰기 시작했다.
“위험해!”
갑은 달려가 뒤에서 을을 껴안으며 바닥을 향해 엎어졌다. 엎어질 때는 몸을 돌려 자기 등이 먼저 떨어지게 했다. 등의 충격이 온몸을 흔들었다. 그 와중에 꺅, 하는 을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뒤쪽에서는 콘크리트 바닥에 철골이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럭저럭 타이밍을 잘 맞춘 것 같다고 생각하며 갑은 눈앞에 보이는 것에 정신을 돌렸다.
을은 눈을 꼭 감은 채 움츠리고 있었다.  
갑은 정신을 추스르고 미리 준비한 말을 꺼냈다.
“저기요.”
그러면서 갑은 손가락으로 을의 볼을 건드렸다. 을이 더 움츠리며 눈을 떴다.
갑이 물었다.
“괜찮으세요?”
“아, 으…….”
을은 갑작스레 일어난 일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몇 초간 둘은 그렇게 쓰러져 있었다. 그러다가 을이 자기가 갑의 위에 쓰러져 있는 걸 알아채고 먼저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던 을은 곧 상황을 파악했다. 을은 갑을 향해 돌아섰다.
“저기, 감사합니다.”
“아뇨, 뭐, 괜찮습니다.”
둘은 잠시 침묵했다. 을은 아직 조금 얼떨떨한 상태였고, 갑은 어차피 일어날 걸 알고 있었던 일이므로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 저기.”
을이 뭔가 생각난 듯 말을 꺼냈다.
“저는 을이라고 해요.”
“네, 저는 갑입니다.”
둘은 그렇게 통성명을 했다.
갑이 먼저 그럼 이만, 하고 돌아서면서 둘은 헤어졌다.
열 걸음 걸었을 때 갑이 뒤를 돌아보았다. 마침 을도 뒤돌아보고 있었다. 그래서 순간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갑은 당황해서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갑은 을을 미행할 생각이었다. 어디에 사는지 라던가, 평소에 어디를 들리는지를 알아둬야 나중에 우연을 가장해서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안 봤다고 사라지는 건 아닐까 걱정하다가, 이내 시간을 되돌아가면 되니까 상관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순간 갑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러고 보니 나도 저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40분 가까이 다른 일에 신경을 쓰고 있다보니 잠시 잊어버린 것이었다. 갑은 뒤돌아섰다. 그러나 미행이 우선이었다. 을은 앞을 보면서 걷고 있었다. 갑은 혹시라도 을이 자기를 발견하고 왜 따라 오냐고 추궁해도 저도 같은 방향으로 가야 했었다고 말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갑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반드시 을과의 사랑을 이루고 말겠다는 의지가 갑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공사현장에서 일어났던 일을 계기로 갑과 을은 연인관계가 되었다.
공원이 눈에 들어오자 갑은 걸음을 늦추며 시계를 봤다. 11시 50분이되기 조금 전이었다. 을과는 12시 정각에 만나기로 했었기에, 을이 약속 시간보다 늦게 오는 성격이 아니니 그럭저럭 을보다 먼저 왔을 수도 있고 늦게 왔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12시 전에 도착했으니 을이 먼저 왔어도 늦는 건 아니지만, 갑은 웬만하면 자기가 먼저 도착한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원을 둘러보던 갑은 금방 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을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갑은 을에게 다가가며 을의 모습을 살폈다. 그러다 갑은 곧 의아함을 느꼈다. 어째서인지 을은 무척 피곤한 듯이 쳐져 있었던 것이다.
갑이 다가가니, 을이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갑을 보고, 을은 신기한 걸 봤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왜 이제 오는 거야?”
“어?”
갑은 을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아니, 원래 10분 정도 일찍 나와 있는 게 좋지 않아?”
갑은 말을 하는 도중에 뭔가가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의심쩍은 듯 말을 덧붙였다.
“우리 12시에 만나기로 한 거 아니었나?”
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을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뭐. 그건 그렇지.”
을이 몸을 일으켰다.
순간,
“왁.”
을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뒷걸음치다 벤치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갑은 당황해 하며 얼른 쓰러진 을을 부축했다.
갑이 걱정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을이 아픈 듯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별 대수로운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기립성저혈압인 것 같아. 너무 오래 앉아 있었나.”
을이 몸을 일으키려 땅에 손을 짚다가 불에 대인 듯 손을 떼며 다시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아……. 아프다.”
을이 인상을 펴며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왜? 삐었어.”
을이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입을 열었다.
“왜 하필 오른손을 다친 거지? 오른손을 못 쓰면 숟가락질도 젓가락질도 왼손으로 써야 하잖아. 아니, 오른손잡이니까 반사적으로 오른손이 먼저 뻗어나가서 땅을 짚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서도. 근데 이거 진짜 아프네.”
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을의 손목은 눈에 띄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어이없이 다친 것 치곤 무참하게도 그리 가벼운 상처가 아니는 듯 보였다. 왠지 갑은 자기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면 을이 벤치에 오래 앉아 잇다가 일어서서 기립성저혈압으로 인해 넘어질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 쓸까 말까.’
을을 다시 벤치에 앉히고 나자, 을이 아픔을 참고 있는 모습 때문에 갑의 마음은 금색 시계를 쓰는 쪽으로 기울었다.
휴대폰 시계를 보니 56분이었다. 11시 30분쯤에 집을 나와 공원으로 향했으니, 11시 20분으로 되돌아가서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갑이 잠시만, 이라고 말하며 을에게서 떨어진 후, 시간을 되돌아갔다.
눈을 뜨고 곧장 공원으로 향해서, 전보다 15분 정도 일찍 공원에 도착했다. 11시 34분이었다. 을이 앉아 있었던 벤치를 보니, 을이 있었다.
을에게 다가가려다, 갑이 멈칫 걸음을 멈춰 섰다. 약속시간보다 20분씩이나 먼저 오다니, 그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 갑은 미안해졌다.
갑은 11시로 되돌아가서 곧장 공원으로 향했다.
갑은 휴대폰 시계로 11시 20분에 공원에 도착해서, 벤치 쪽을 봤다. 을이 앉아 있었다.
갑의 머리에 귀찮음과 오기가 충돌했다. 시간을 되돌아간다는 일은 상당히 따분한 일이었다. 일단 집에서 공원으로 가는 같은 길을 1, 2분 정도의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걷는 것부터가 지겨운 일이었다. 그러나 을은 대체 왜 약속시간보다 40분이나 먼저 와 있는 것인지, 그리고 과연 몇 시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갑에게는 있었다.
갑은 10시 30분으로 되돌아갔다.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해 벤치를 살펴보다, 앉아 있는 을을 발견했다.
갑은 9시 40분으로 갔다. 공원까지 걸어가는 데에 대략 20분이 걸리니, 10시에 도착해서 그때도 을이 있는 게 보이면 을은 2시간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되었다.
갑은 공원에 도착했다. 멀찍이서 을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음, 7시 40분.”
갑은 7시 40분으로 되돌아갔다. 이때는 원래는 자고 있을 때지만, 시간을 되돌아가면서 순간 잠에서 깼다. 잠에서 갑자기 깨니 머리가 아팠지만 갑은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아침은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한 시간은 8시 25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7시 10분쯤으로 되돌아갈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벤치를 보니 을이 앉아 있었다.
“어, 그러니까 3시간 35분이나 일찍 와 있는 건가.”
갑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4시로 되돌아갔다.
여름이라 해도 새벽 4시는 쌀쌀했다. 정오가 되면 더워질 걸 알고 있었지만, 너무 추워서 코트를 입고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해 벤치를 보니, 다행히 을은 없었다. 혹시라도 너무 일찍 나와서 추위에 떨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기에, 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을이 갑의 옆을 스쳐가 갑의 정면에 섰다.
갑의 얼굴을 확인하고, 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오빠, 왜 벌써 온 거야?”    
그렇게 말하는 을의 입에서 하얀 숨이 내뿜어졌다.
갑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아니, 그냥. 뭐, 너도 나도 막 도착했으니 상관없잖아.”
을은 전에 본 것과 같이 얇은 옷차림이었다.
“안 추워?”
“아니, 좀 춥긴 해. 근데 낮 되면 더워지니까.”
갑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후 코트를 벗어 을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을이 물었다.
“몇 시야?”
“4시 30분 쯤.”
“시간이 많이 남네.”
그 말에 갑은 피식 웃었다.
둘은 12시에 만나 점심을 먹고 영화를 보기로 했었다.
“일단 좀 돌아다닐까?”
둘은 약속했던 시간보다 8시간 가까이 일찍 만나서 놀게 되었다. 공원 근처 가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나니 졸음이 밀려와 갑은 벤치에서 을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잠을 충분히 못 잔 건 을도 마차가지여서 그녀도 꾸벅꾸벅 졸았다.
갑은 잊어버린 일들이었다.


7월 15일. 갑은 을에게로 가고 있었다. 을과 사귀게 되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갑은 몰랐다. 표면적인 시간으로는 3주 가량이나, 그 3주를 여러 번 되풀이했기에 이미 갑은 자기가 을과 알고 지내게 되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갑은 을과 오래 사귀었지만, 되풀이 했던 그 3주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일 새벽에 인류의 99%이상이 죽기 때문이었다. 99%에는 갑과 을도 포함되어 있었다.
원인은 운석이었다.
운석이 떨어지는 때는 7월 16일 오전 4시였다. 보통 사람들은 자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갑은 시간 이동을 하면서 잠시 생활리듬이 바뀌어 있었기 때문에 그 때는 잠에서 깨어 있었다. 그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갑이 받아들이기 나름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갑은 모르고 죽는 것보다는 알고 고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다.  
4시 무렵. 창밖에 시선을 주던 갑은, 먼 곳에서 붉은 선이 허공에서 지면을 향해 그려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갑은 대체로 시계를 손닿는 거리에 놔두고 살았기에 반사적으로 과거로 이동할 수 있었다. 잠시 망설였다면 죽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갑은 기본적으로 금색 시계를 12시간 전에서 1시간 전 사이에 맞춰놓고 있었다. 1시간 전으로 맞춰두고, 11시간이 흘러서 맞춰둔 시간이 12시간 전이 되면 다시 1시간 전으로 맞춰놓는 식이었다.  
갑은 눈을 떴다. 갑은 거리 중간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멈춰서있는 갑을 지나쳐갔다. 갑은 위를 쳐다보았다. 하늘을 보고 저녁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시간을 되돌아가기 전이 대충 몇 시였는지를 떠올려보았다.
갑이 불기둥을 본 건 그가 잠에서 깨어나고 몇 분 안 지났을 때였다. 깨어나면서 시간을 확인했기 때문에, 오차가 5분 이내인 근사치를 구할 수 있었다.
기다리는 일만 남아 있었다.
갑은 적당한 시간에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 지평선 쪽에서 새벽 어스름이 걷혀가고 있었다. 갑은 금색시계를 쥔 채 언제든지 시간을 되돌아갈 준비를 했다.
대체 뭘까 하는 의문이 갑의 머리에 맴돌았다.
시계를 사용하기 전, 갑은 대기가 뒤흔들리는 듯한 거대한 충격을 느끼고 뒤로 나자빠졌었다. 고개를 든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평선 너머에서 폭발하듯 덮쳐오는 검은 파도였다. 그 파도는 운석이 충돌할 때의 충격으로 지각과 맨틀이 튀어 오른 면서 생긴 것이었는데, 갑은 그 정체를 생각해낼 수 없었다.
기다리자, 과연 다시 운석이 떨어졌다. 허공에 내려 그어지는 붉은 선을 바라보며, 갑은 시간을 확인했다. 4시 15분. 갑은 지평선 너머에 시선을 집중했다.
이윽고 대기가 흔들리고,
갑은 덮쳐오는 충격을 버텼다. 시계의 버튼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에 힘을 줄 준비를 했다.
그리고 다시 파도가…….
갑은 정신을 차렸다. 파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갑은 3시 30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갑은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방금 본 그 광경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어제 오전 7시로 되돌아가서 인터넷으로 자기가 본 것에 대해 검색했다.
아무래도 운석이 가장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갑이 한 번에 최대로 되돌려본 시간은 대략 한달 하고 이틀이었다. 시계의 성능을 시험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
시간을 되돌아가본 후, 다시 시간을 보내면서 갑은 되도록 긴 시간을 이동하지 않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주위 사람들도, 갑 자신도 너무 많은 기억을 잃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갑은 자신처럼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주위사람들이 어색했고, 갑 자신도 되돌아간 당시의 기억이 많이 없어서 괴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한 달 전 정도는 현재와 별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꽤나 버티기가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7월 16일에 인류가 거의 멸망한다. 전멸은 아니지만, 갑으로서는 살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었다. 5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학 지식을 기억한 채 과거로 가서, 운석이 떨어질 때쯤이면 운석을 요격해서 박살 낼 수 있는 미사일이 발명될 정도의 문명을 형성하도록 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을 이루려면 금색 시계를 수십 차례 정도는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성공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갑이 되돌아갈 수 있는 기간은 반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갑은 일단 과거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시간을 맞추다가 갑은 잠시 고민했다. 과연 을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생각하다가, 꼭 그렇게 멀리 돌아갈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하며 2주 전으로 돌아갔다. 2주 전에서도 안 되면 더 돌아가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은 처음에는 과거로 되돌아가 운석이 떨어진다는 걸 사람들에게 믿게 하려고 노력했다. 문명을 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정도의 지식이란 건, 2주란 기간에 중대한 과학적인 뭔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갑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반년을 되돌아갔어도 알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갑이 알고 있는 건 그저 스마트 폰이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것 정도일 뿐이었고, 그마저도 어떤 이유로 업그레이드되었는지 알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갑은 생각했다.
‘아무것도 안 되고 있어.’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생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인류멸망을 저지하는 것보다 그냥 사는 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문제는 사는 게 즐거우면 그대로 살면 되는데, 시간을 되돌아가면 갑으로서는 혼자만 다른 시간대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점이었다. 게다가 성격적인 문제로, 한 번 끝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는 건 갑에게는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갑이 행동하기에 따라 시간을 되돌아가기 전과는 다른 사건들이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대에는 어느 정도의 공통점들이 있었고, 종종 갑은 그런 공통점들과 마주칠 때마다 그 공통점들에게 자신의 평상심을 갉아 먹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래도 죽음이 두려워 수없이 회피하다, 몇 번째 되풀이했는지 모를 때에 갑은 마음속에서 흰 깃발을 올렸다.
갑은 이불 위에 누워서, 잠기운을 떨치지 못한 상태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7월 15일이었다.
누워있는 갑의 머릿속에, 어차피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며 붙잡고 있을 만큼 즐거운 인생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은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자고 생각하다가, 배고파져서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니 미각이 자극되고, 몸에 포도당도 늘어나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자 갑이 을을 생각하게 되었다. 분명 을은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좋은 연인이라고 생각했다. 죽는 건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운석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예전에도 을이 죽는 것에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역시 운석은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갑은 어영부영 15일까지 오게 되었다. 세상이 멸망하기 전에 을에게 뭘 해주는 게 좋을까 생각했다. 지금 와서 장신구를 사준다거나 옷을 사준다거나 그런 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있는 돈을 다 써도 되니 어지간한 건 다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일단. 일단은.”
갑은 자신이 을의 상황에 처해 있다면 무엇을 바랄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지내다가 죽고 싶다거나, 최대한 고통 없이 죽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갑은 둘 다 부정했다.
이윽고 갑은 한 가지 생각에 이르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죽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면 보람찬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내용의 글도 읽은 적이 있었다. 갑은 을에게 내일 4시에 우리가 죽는다는 걸 말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갑은 걷고 있었다. 갑은 을의 집으로 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현관문 너머에서 누구세요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나야.”
잠시 후 을이 문을 열었다.
을이 물었다.
“웬일이야?”
“그냥 일이 있어서. 너 시간 있어? 아니, 지금 너희 부모님 계시지?”
“응.”
“그럼 오늘 내 집에서 자고 갈래?”
갑은 혼자 자취하고 있었다.
“뭐, 할 수야 있겠지만. 왜?”
“보여줄 게 있어서.”
을은 얼마간 멀뚱히 갑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고 말씀드리고 올게.”
20분 정도 기다리자 을이 옷을 갈아입은 모습으로 가방 하나를 맨 채 나타났다.
“갈까.”
둘은 갑의 집으로 향했다. 그제야 갑은 이럴 거면 그냥 휴대폰으로 전화해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왕 이렇게 걸어 온 거, 즐겁게 걷자고 생각하며 의식적으로 활기차게 걸어보았다.
“뭐 하는 거야?”
을이 핀잔을 주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 갑은 이때쯤이면 말해도 좋겠지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사실 밝힌 게 있는데, 나 시간 여행자야.”
옆에 붙어서있던 을이 옆으로 고개를 돌려 갑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갑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시간 여행에 대한 개념을 설명해줄게.”
갑은 금색 시계의 기능에 대해 설명했다. 을은 묵묵히 들었다. 갑은 보통 사람들 반응이 이런 건가, 하며 준비해둔 말을 다 말했다.
“내가 미래에서 본 바론 16일 새벽 4시 15분에 지구에 운석이 떨어져. 굉장히 큰 운석이야. 어쨌든 지각이랑 맨틀이 지평선 너머에서 떨어진 운석 때문에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튀어 오르는 걸 보면 굉장한 거겠지. 막을 방법이 없어. 생각해보면 나사 같은 데서 운석이 떨어질 걸 몰랐을 리가 없는데, 그래도 운석이 떨어진 걸 보면 방법이 없는 거겠지. 나는 수없이 시간을 되돌아가서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해봤지만 아무 소용없었어. 결국. 이렇게 너한테 진실을 말하려는 거야. 아무것도 모른 채로, 죽는 다는 것조차 모른 채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니까.”
갑은 을의 반응을 살폈다.
“흠.”
을이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알겠어.”
을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시시한 반응인지라 갑은 실망했다. 그러나 공황상태에 빠져도 안 좋다는 것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을이 물었다.
“근데 왜 네 집에 오자고 한 거야?”
“응, 그냥 같이 운석 떨어지는 거나 보자고.”


“아, 조금 있으면 멸망이구나. 두근거리는데.”·
갑과 을은 갑의 집에서 가져온 담요로 자리를 깔고, 마찬가지로 갑의 집에서 가져온 이불로 몸을 감싼 채 옥상에 앉아 있었다.
을이 뭐라 말하려다가 하품을 했다.
“아우. 피곤해. 4시 15분이라고?”
“어, 지금 4시다.”
“15분밖에 안 남은 거네.”
을은 무릎을 세우고 거기에 턱을 괴었다. 옆에 놔둔 오디오에서 작게 틀어놓은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갑과 을은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며 지평선을 노려보았다.
이윽고 때가 왔다.
“우와앗!”
대기가 흔들렸다.
처음이라 당황한 을이 소리를 질렀다.
갑은 시계를 사용하지 않았다.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고자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갑은 스쳐지나가듯 금색 시계를 보게 되었다.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잠깐 동안 시야에 머물렀던 것이었다. 금색 시계는 갑의 것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슷했지만, 갑의 것은 아니었다. 갑의 시계는 갑의 주머니에 들어 있었고, 갑이 스치듯 본 시계는 을이 손에 쥐고 있었다.  
뭔가가 영원히 계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갑의 뇌리에 스쳤다.


을은 눈을 떴다. 익숙한 느낌이었다. 을은 갑과 함께 이불을 덮어쓰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을은 시간을 확인했다. 1시였다. 16일 1시.
을은 갑을 돌아보며 말했다.
“운석 진짜네.”
갑은 뜬금없이 내뱉은 말에 어색한 말투로 대답했다.
“어? 어, 그렇지.”
“너 금색 시계 받은 게 반 년 쯤 전이라고 했던가?”
“어, 내가 그랬나?”
을은 별 대꾸 하지 않았다.
“운석이라. 나 잠시만.”
일어나 갑에게서 등을 돌리며, 을은 금색 시계를 꺼냈다.
을 역시 약 반년 전에 금색 시계를 가지게 되었다. 기능은 갑의 것과 같았다. 시간을 되돌아갈 수 있고, 되돌아간 시간만큼 주위 사람들은 기억을 잃는다.
을은 일단 하루 전으로 돌아갔다. 그와 함께, 금색 시계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던 갑의 결심이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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