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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괴물의 꿈

2005.06.05 12:3606.05

조각조각 찢겨진 나의 몸.
뇌수는 애벌레처럼 바닥을 기고 끈적이는 붉은 액체는 애벌레의 몸을 뒤엎는다.
손가락은 각기 다른 곳으로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피의 서막은 올라간다.
이건 저주다.



부셔져도, 부셔져도 움직여야 하는 골렘과도 같은, 그런 진흙덩어리와 같은 육신, 붉은 액체와 위액과 살코기와 여타 잡것들이 섞여 있는 그런 것으로 만들어진 골렘이 된 것이라면 나는 무얼 해야 좋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내 무릎 언저리에 다다르는 신들의 완벽한 피조물이라 자칭하는 것들은 나를 보고 괴물이라 부른다. 조그마한 몸,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물질로 이루어진 자신들도 인형인데도 단지 내가 규격에 어긋난다 해서 괴물이라 부를 권리는 없다. 나도 신이 만들어 낸 몸. 하지만 실패작으로 여태껏 하늘에 메여 있었으니 저들은 그 것을 보고 나에게 괴물이라 부르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슬프다. 차라리 그렇다면 계속 하늘에 메어 있었다면 괴물이란 소리도 신에게 버림받았다는 것도 이렇게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을 텐데. 차라리 저 멀리에서 이곳을 바라보며 한없는 동경이나마 계속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나를 내리셨을까.

나의 물음은 소리도 없이 파동으로 깊게 물결쳐 나간다. 물음? 아니, 울음일지도. 나의 눈에서 고랑져 내리는 뜨거운 액체는 발밑의 그들을 적시고 그들은 내게 폭언을 내뱉는다. 주황빛으로 물드는 저 멀리의 지평선은 아득히 동경으로나마 간직했던 내 마음 한 구석을 울린다.

“이 괴물!”
“빨리, 용사인지 뭔지를 불러!”
“괴물자식, 우리한테 저주의 물을 떨어트리고 있어!”

걸을 수 있을 만큼의 공간도 남겨주지 않고 그들은 나를 에워싼다. 불꽃으로 나의 몸을 지지고 칼날로 나의 몸을 베어나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이 과도한 축복을 내린 이 몸은 계속 해서 재생되어 간다. 과도한 사랑은 괴물은 만드는 거라고. 신은 나를 만들 때 알고는 계셨을까?

“비키세요, 여러분!”

내 귀에도 선명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나를 공격하던 그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있다. 저 멀리에서 그 존재를 부각시키는 이질적인 존재 하나와 두 명의 그들과 같은 인간. 알맞게 축복받은 피조물과 이곳에 존재할리 없는 신들이 만들어낸 최초의 존재. 불꽃같은 기운으로 자신의 몸을 감싼 그 존재는 나보다도 이 지상의 규칙을 일그러트리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욕당하지 않는다.

“너.무.해!”

천둥 같은 음성이 내 목에서 터져 나왔다. 이제 눈물은 그쳤다. 과도한 억울함은 눈물조차 요구하지 않나보다. 내 앞의 세 존재는 나의 이런 외침은 뚱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뿐이다. 어차피 저들에겐 내 아픔 따위 전해지지 않을 테니까. 도망칠 일도 없다. 난 갈 곳을 잃었으니까.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하더라도 신은 나를 하늘 위로 다시 끌어올려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땅에 떨어져 조각나 버리는 것도 보았을 테지. 그 때의 붉은 액체는 아마 저들과 같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저들에겐 생명이지만 나에겐 단지 나를 구성하는 물질 중 하나 일뿐. 신에게도 같은 의미겠지 저들은 이 세계를 구성하는 혈액, 나는 제거해야 할 이물질. 나는 그저 조그만 장난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라.믿.었.다.나.는”

땅에 발을 구르자 거대한 진동이 퍼져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죽.고.싶.지.않.아”

그러나 나는 아마도 이 세상에 흩어져야 할 것이다. 신, 내게 있어 아버지는 지금 나를 처분할 요량으로-또한 자신이 아끼는 저들에게 시련을 줄 생각으로-나를 이곳에 던지셨다. 영리하신 분이시니까 내가 어찌 될 것인지는 잘 아셨겠지. 자조하는 나를 앞에 둔 저 세 존재들은 자신들의 논리로 나를 뭉갤 것이다. 조각도 남지 않을 때까지.

“야, 괴물. 아무도 못 알아듣는 혼잣말 그만하고 빨랑 붙자고! 이제 해가 다 진단 말이다!”

무식하게 큰 -자신의 몸만한- 검을 든 자의 외침. 그 뒤를 받는 불꽃의 존재.

“무슨 심경의 변화인가요, 벨? 평소라면 먼저 덤벼들면서? 밤에도 내가 있으니까 전투가 어렵지는 않아요.”
  
그리고 로브를 눌러쓴 자.

“졸린 거지. 빨랑 해치우고 밥 먹고 싶은 거야. 저 단순한 녀석은.”

나는 눈을 감았다. 눈가에 남아있는 물기를 떨구기 위해. 저런 녀석들에게 죽는다는 것 굴욕이지만 참아내겠다. 그러기 위해서 한없이 용맹한 적이 되어 저들과 싸우겠다. 아버지께 최초로 반항하겠다. 모래알만큼도 먹히지 않을 테지만. 아버지가 인정한 존재를 누르기 위해 싸우겠다고 생각했다.

“우.어.어어!”



나의 외침은 하늘을 꿰뚫지 못했다. 다만 가득히 울렸을 뿐.







신이 내린 마지막 고난을 이겨낸 용사 [벨 아게이트]와 마도사 [데이시 오데렛사]는 마지막 고난의 날 제이드 [다이안]을 잃었다. 오닉스의 존재로 이 세계에 불꽃으로 구현된 그녀가 끝없이 재생되는 괴물을 없애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던졌던 것이다. 그래서 그 전투가 있었던 그 평원에는 [다이안]을 기억하는 조각과 괴물을 봉인하기 위한 결계가 아직도 존재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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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야기를 쓰던 중에 생각이 나서 바로 쓴 글입니다.
쓰고보니 많이 보던 형식의 글이 되어버렸네요.
부족한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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