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독수리

2005.05.12 00:5505.12




진심으로, 그는 더이상 생각하는 행위를 계속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까마득한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를 정도로 주변은 피폐화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여기에 매달리기 전까지는. 하루가 지날수록, 한달이 지날수록, 조금씩 파멸의 징조가 보였고, 결국 파멸은 크게 진전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진정으로 옆에 앉았을때 그의 놀라움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안녕."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는 맑은 목소리에 감격했고, 덕택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봐요. 정신차려요."

그녀의 말투는 다정했다. 마치 장난치는 듯한 어조다. 그는 금새 흥분을 가라앉혔다.

"말하는 것이 오랜만이라. 뭐라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래요? 내가 알기로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오랜만이라고 들었어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녀도 대답을 바라지는 않은 듯 말없이 붉은 흙만 놓여있는 대지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생각해요?"

"뭘?"

"알면서 반문하지 말아요. 예전에 당신은 다정하고 눈치빠른 사람 아니었나요?"

"그러는 너는 잔인하고 무모하며 지루한 반복을 연속하는 자가 아니었나?"

그의 반문에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가 주저앉았다.

"난 그런 말장난을 하러 온 것이 아니에요."

그는 잠자코 쇠사슬을 철컹 거렸다. 그것은 일종의 시위였고 그녀는 알아들었다.

"그래요. 당신과 나사이에, 더 이상 빙빙 돌지는 않겠어요. 본론만 이야기하죠. 당신은 저들을 어떻게 생각해요? 난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있어요. 그 오랜 시간동안 저들과 당신을 지켜봤죠. 당신은... 움직이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여요."

한참 침묵이 흘렀고, 그는 말문을 꺼내는데 힘이 들었다.

"그럴지도. 난 꼭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날 이렇게 만든 놈들도 산꼭대기에서 꿈쩍도 하지 않잖아."

"그것과는 다른 말이에요. 그들은 이런 상황을 바라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저것은. 대지에서 활보하는 것들은. 저런 장면들은 당신이 추구하고 행동했으며, 그 결과로 이렇게 된 결과물이 아닌가요?"

그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생각해? 난 그들에게 불을 건네주었던 것뿐이야. 계기를 주었던 것뿐이지. 그 이상은 아냐."

그녀는 더욱 사나운 어조로 말했다.

"그럼 당신은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는 것인가요?"

"글쎄."

"그런 당신의 말은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아요. 당신이 벌여놓은 일들을 부정할 셈인가요. 그런 계기를 만들지 않았다면 저렇게 되지도 않았을 거에요. 당신은 파멸을 부르고 있단 말이죠."

그는 잔잔히 미소지었다. 그의 얼굴에 잔잔히 주름이 져서 그늘을 만들었다.

"저걸 파멸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 파멸이 옳지 않다고 말할수도 있지. 그러나 이것만은 기억해두어야 하겠지. 이제 우리의 자리는 없어. 그가 나를 이렇게 쇠사슬에 매달은 것도. 네가 나의 간을 쪼아먹는 것도. 이제 저들에게는 의미가 없지. 그들은 자신들의 발로 굳건히 서 있으니까."

"그럼 저 파멸의 징조는..."

"그것도 마찬가지야. 파멸의 징조는 저들이 만들어냈지. 그리고 저들이 해결할꺼야. 인과응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어. 아니면 결자해지라고 할지도 모르잖나?"

그는 눈을 감았다.

"이제 날 가만히 두지 않겠어? 난 이제 헤라클레스를 기다려야 한다구."

"칫. 그러면서 먼 미래의 이야기를 해요?"

그녀는 투덜거리면서 날개짓해서 날아갔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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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적인 단편입니다... 뭐, 어디서 따온 이야기인지는 다 아실테고... 한번쯤은 저런 대화가 오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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