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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정상과 비정상

2005.05.05 18:2305.05

이 꿈은 내가 18살 때, 정확히 말하자면 ○○고등학교 2학년 7반의 일원으로 있었을 때에 꾼 꿈이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 애송이였다. 게다가 학교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감옥에 의해서 내 정신세계가 무한히 발전할 가능성이 계속해서 잘려나가고 있던 시절이었다. 잘려나간 양분들은 지금도 행방을 알 수 없다. 학교에 대한 나의 부정적 관념은 세월이 흐를수록 뚜렷해지는 것 같다.
그 때 우리 학교 학생들 대부분은 다른 학교 학생들 못지 않게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욕심으로, 또는 부모의 강압에 의해서, 아니면 단지 불타는 경쟁심리에 의해서. 다들 동기는 다르지만 목적은 동일하였다. 그것은 바로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도 그다지 아름답지 못하였다.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했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학교 분위기가 그다지 탐탁치 못했다. 게다가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 못하던, 그리고 잘하고 싶은 열망도 없던 나로서는 수업태도가 계속 산만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주위에는 친한 친구가 많았기 때문에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회포를 풀 수 있었다.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고 나면 학교에 대한 환멸과 학교에 의한 스트레스도 어느 정도 완화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고등학교 3년을 견뎌내었다. 지금은 그 고등학교 3년 중에서 특히 2학년 때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싶다. 2학년 때 겪은 추억은 나의 인생 29년이라는 세월에 의해 생성된 기억체계 속에서 아직도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다. 아주 귀중한 기억이라서 유실되거나 납치되지 않도록 A등급 방에서 정중히 모셔놓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한 무겁고 침울한, 소위 말해서 '공부하는'-그리고 선생들이 적극 강조하는-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은 반이 만약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7반일 것이다. 우리 32명의 유쾌한 친
구들은,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31명의 유쾌한 친구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웃음을 잃지 않았다. 선생님께 야단을 맞은 직후나 상대적인 의미에서 처참한 시험결과가 나온 날에도 누군가가 농담을 꺼내면 한 두 명이 웃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시작해서 이윽고 반 아이들
전체가 '유쾌함과 즐거움'속으로 빠져들었다. 우리 반에서는 단 한 번의 싸움조차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공급해주는 근원들로 가득 차 있는 고등학교 시절. 아니, 이제껏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그런 스트레스 공급원들의 존재가 하나 둘씩 눈에 띄게 되는 고등학교 시절에서 단 1년 간이라도 어떤 불화나 짜증스러움의 흔적이 묻어있지 않던 학급은 오직 우리 반이었을 뿐이라고 나는 성인이 다 된 지금에야 온전하게 확신을 한다. 사실, 진지하지 못하고 언제 어디서나 장난기를 잃지 않는 것이 유치하고 느슨해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그때 공통되게 가지고 있던 신조 하나는 바로 '무슨 일이 있건 항상 즐겁고 유쾌하게 생활하자'는 것이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무언의 동의를 서로에게 나타내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거기에 대해서 반감을 드러내거나 하지 않고 1년 동안 정말 참다운
평화가 지속될 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 반은 그런 반이었다. 마치 2학년 학생들 중 성격이 지나치게 쾌활하고 낙천적인 학생들은 모두 7반으로 모여들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쾌활하던 아이들이 끼리끼리 모이자 그 정도가 '비정상'이라고 칭해도 좋을 정도로 고조되었다. 선생들이나 타 반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비정상이라고 여긴 적은 결코 없었다. 우리의 본 성격이 그리하였던 것이다. 유전적 성향과 후천적 성향이 결합된 우리의 그러한 성격은 매우 본질적이고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본질적인 특성도 결국에는 꺾일 때가 있다. 아무리 쾌활해지려고 해도 살다 보면 더 이상 그렇게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더라면 더욱 더 쾌활해지려고 설쳤을 텐데 하는 후회를 요즘 들어 가끔 한다.
그러나 7반 교실에 대한 추억... 그것만큼은 지금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각색되고 또 각색되어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처럼 남아있다. 31명의 유쾌한 천성의 소유자들. 독자들은 이쯤
되면 나머지 1명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질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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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에는 X라는 이름의 한 학생이 있었다. 그는 만약 우리학교가 남녀공학이었다면 엄청난 호황을 누렸을법한 수려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크고 쌍꺼풀이 진 눈, 오뚝한 콧날,  마치 조각을 한 듯한 전체적인 얼굴의 선은 그 자신을 불필요하게 부각시키는 것 같았다. 또한 매우 하얀 피부를 지니고 있어서 멀리서 보면 휘황찬란한 광채를 빛내어 늘 눈에 띄었고 가까이서 보면 혹시 핏줄이 비치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였다. 그의 신체적 조건 역시 유리했다. 키가 크고 군살이 없는 호리호리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신은 불공평하다. 적어도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이왕 미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아예 몸매까지도 좋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외모에 대해서는 이 외의 언급을 되도록 피하겠다. 지면과 시간 관계상 그리고 필자가 거울을 쳐다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횟수 관계상(?) 더는 질질 끌만한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모만 가지고는 사람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 외모는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그의 외모가 그리 쉽사리 변화할 것 같지는 않다―하지만! 몹시 인정하기 힘들지만 말이다, 그는 다른 면에서도 탁월함을 빛냈다. 그는 고등학교 시험 4번 모두 반에서 1등을 하였고 전교에서는 10등 내로 든 엘리트였다. 그가 공부만 하는 암기머신이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는 실질적인 면에서 실력이 있었는데 특히 국어 작문실력이 뛰어났다. 또한 영어도 단어만 암기하는 '오직 학교에서만 잘하는'영어 실력파가 아니라 실제로 영어를 잘했다. 토익이 900점 대를 넘어섰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때 나는 마음 속 깊이 존재하는 당혹한 감정을 내리 누르고 대신 회의감을 들어올렸다. 토익 900점 좋아하네 하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교 길에 우연히 본 그와 한 외국인의 모습은 내 회의감을 소멸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비록 그가 뭐라고 열심히 떠들어대고 외국인이 만족해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까지는 내 기억 속에서 소멸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 날 이후로 그의 영어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에 대한 의구심은 일절 들지 않았다. 또한 그의 작문실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면, 그가 영어나 국어에 뛰어난 실력을 가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의 언어적 감각은 대단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다른 학교와는 다르게 글쓰기 이벤트를 많이 벌였다. 국가나 시에서 벌이는 글쓰기 대회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학교 게시판에 붙여져서 전교생이 모두 볼 수 있었다. 또한 학교 내에서 벌이는 자체적인 대회도 자주 열렸는데 상을 받은 학생의 글은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되어서 누구든지 읽어 볼 수 있었다. 그 중 그의 글이 2개 실려 있었다. 하나는 독서감상문이었고, 또 하나는 '환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쓴 에세이였는데, 두 개의 글 모두 아주 훌륭했다. 굉장한 어휘력과 논리적 구조. 그 글을 누가 썼는지 모르는 사람이 읽었더라면 필자가 겨우 고등학교 2학년생인 풋내기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매우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2개의 글 어느 곳에서도 그의 성격을 발견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가 2년 동안 선보인 '작품'이 겨우 두 개에 그쳤다는 것은 괄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가 학교가 요구하는 대로만 썼더라면 아마 2년 동안 20개는 넘게 수상을 했을 것이다. 글쓰기 실력도 없고 열의도 없고, 또 글을 쓰고자 할 때 뒷받침 해줄 지식도 없던 나도 학교에 요구에 의해 쓴 결과 1개의 글이 수상한 적이 있었는데, 그라면 그 정도는 쉽지 않았겠는가? 학교에서 보통 1년에 한 학생이 쓰는 글의 총 개수는 대략 30~40개가되는데, 학년에 따라 달랐고, 여러 가지 이벤트나 학교 사정으로 인해 변수가 적용되었다. 그러나 적어도 1년에 장문의 글 30개 이상은 쓰는 것이 보통이었다(물론 강제적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다른 글들은 어디에 묻혀있을까? 다른 작품들은 그의 개성이 듬뿍 들어간 글이거나, 어쩌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유로 인해 대충 쓰여진, 아주 형편없는 글일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학교가 보관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들추어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성인인 지금의 내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글이 몇 안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컴퓨터나 수학과 같은 이과 계열에서도 대회에 한번 나갔다하면 어김없이 상을 타오곤 하던 그였다. 학교 신문에 교내 수상자 기록을 보면 X군이 받은 상만 절반 이상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그가 단순한 학교쟁이는 아니었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하지만 이렇듯, 그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대개 공식적인 형태를 띠었다. 다시 말하면 사적인 경로, 예를 들어 대화나 수업 중 발표를 통한 방법으로는 그의 본성을 추리하기가 곤란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몇 번인가 그의 사적인 자료를 찾아내려고 노력한 적이 있으나 어김없이 실패했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곧 논하겠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의 작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과거 속에 철저히 묻혀진 묵은 사고일 뿐이다. 또한 재능에 있어서는 성공했지만 인생에 있어서는 실패했을지도 모를 한 남성―이제는 장년―이 감추고 싶어하는 어리석고 불완전한 과거의 흔적일 뿐이다. 현재 내가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면 오직 그의 진짜 행방뿐이다.
그렇다 해도 궁금해하고 있을 독자에게 그가 쓴 글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줄 수 없다는 사실에 나 역시 매우 난감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개성이 드러난 글 중에 기억에 남는 구절이 하나 있다. 물론 그가 원해서 알게 된 것은 아니었고 국어 시간에 선생님이 시켜서 발표한 것이었다. 그 역시 자신의 성격에 비하면 자주 학급에서 발표를 했지만―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선생의 눈에 늘 띄게 되 있는 법이다. '낭중지추'란 말이 있듯이― 기억에 남는 것은 어째서 그 순간의 글뿐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다른 대부분의 글에서 역시 그의 개성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날 읽은 글에 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그때 조금만 더 명민했더라면 분명히 상당한 분량의 문장을 지금까지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2학년 중반에 접어드는 시기, 갑작스레 폭우가 내리고 온 세상이 어두컴컴하던 그 날 저녁―우리가 늦게까지 공부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의 평범한 국어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지난 시간에 내준 숙제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는데, 2명 정도가 자진해서 발표를 하고 나자 더 이상 손을 드는 이가 없었다. 쾌활한 우리 반에서 그런 비참한 일이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숙제의 분량이 많았고 주제가 난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겨우 2명 정도로 지나가기에는 아쉬운 감이 있었던지 국어선생은 학생들을 겁주며 아무나 무작위로 골라서 발표하게 만들었다. 그 때 걸린 학생이 바로 X군이었다. 어둡고 폐쇄적인 성격을 가진 그로서는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으나 나는 내심 쾌재를 부렸다. 1학기가 막 끝나는 시기였기 때문에, 우리 반 학생들은 X군의 성격을 충분히 알아채고도 남았으며, 그 결과 X군은 아이들의 안중에도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다. 모두들 무관심했던 것이다. 무관심한 건지 아니면 관심을 가지기에는 X군이 그들의 능력을 필요 이상으로 초월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또래 아이들보다는 아주 약간 성숙했던 나는 그를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였다. 나는 그가 우리 반 학생들 중 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 대신 그 만의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개성적이고 사적인 글들은 내가 직접 선생님께 부탁을 드리지 않는 이상 읽어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시 그런 수상해 보이는 행동을 할 정도의 관심과 용기는 없었으므로 약간 속상해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참에 그가 일어선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4번 정도 발표하긴 했지만, 이번만큼 긴 글은 아니었다. 긴 글일수록 그의 개인적인 사상이 아주 약간이라도 묻어 나올 가능성이 컸다. 그러한 나의 예리한 직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실망하고 말았다. 약간 다른 방법으로 실망하긴 했지만 말이다. 자신을 시키지 않기를 바랬는지 구석에 쳐 박혀 엎드려 있던 그는 오히려 선생님의 눈에 띄게 되어 버렸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X군을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볼 수 있었다. 주름 하나 없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 이면에 잘 감춰진 긴장감을 말이다. 하지만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숙제는 '역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인류의 폭행'이라는 염세적인 에세이를 읽고 감상문을 써오는 것이었다. 적어도 5분 정도의 분량은 되어야 하였고, 그 정도가 되지 않으면 숙제로 쳐주지도 않았으므로 모두들 길게 써왔다. 한 아이는 심하게 길게 썼으므로 발표 권한을 뺏기기도 하였다. 그가 일단 읽기 시작하자 모두들 조용해졌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알 길이 없다만, 그가 공적인 자리에 드러나기만 하면 모두들 쥐 죽은 듯 조용해지기 일쑤였다. 이번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두컴컴한 교실, 비와 바람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 가끔씩 저 멀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천둥소리. 한 마디로 말해 매우 멜랑꼴리한 분위기였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교실에서 그런 침울한 분위기를 좋아할 만한 학생은 X군뿐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5분 이상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집중할 수 있었다. 온 신경을 기울여서 말이다. 그의 글은 중간까지는 어느 정도 원문에 입각했으므로 다른 학생들 못지 않은 정상적인 글이었다. 다시 말해, 그런 대로 들어줄 만했으나 그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어느 순간에서부터 글의 성격이 급변해서 극단적인 주관성이 개입된 글로 뒤바뀌어 버렸다. 그렇다. 우리 중 누구도―선생님을 포함해서―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다. 분명한 단어와 정확한 문법에 입각했으며 쓸데없는 미사여구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내 귀에 그의 글은 거의 외국어 수준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그가 발표한 대부분의 글을 나는 기억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건전한 청소년의 뇌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사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인 지금의 내가 들어도 그리 쉽게 이해할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아마 그때 그가 발표한 글은 정리되지 않은 극단적으로 추상적인 글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극단적인 추상적 관념이 검열을 거치지 않고 그의 비정상적인 뇌에서 불완전한 정보 전달 매체인 언어라는 가시적 도구를 통해 바로 쏟아져 나왔으니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어쨌든 내가 기억하는 구절은 그가 발표의 가장 끝에 언급한 문장이다. "그렇다. 결국 인간은 꿈속에서 태어나 꿈속에서 죽는 것이다. 단 한 번도 꿈에서 깨어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그나마 이것을 기억하는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깝다는 사실은 저 마지막 문장이 비교적 이성적이고 제대로 된 문장이었다는 것이었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그 5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쾌활한―하지만 순진한―우리 31명의 동료들은 끔찍한 적막 속에 파묻혀 있다가, 그가 자리에 앉는 소리를 신호로 잠시 졸다가 깨어난 사람처럼 한 순간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 누구도 한 마디 꺼내는 이가 없었다. 마침내 선생님은 헛기침을 몇 번하고 , '잘했다.' 라는 의도가 불분명한 말로서 발표시간을 종료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 30분 남짓 남은 시간동안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은 무관심과 무지가 결합이 되어서 이미 정신을 차린 뒤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 관심은 있었으므로, 그의 글이 남긴 여파에 휩싸여있었고 당연히 남은 30분 동안의 수업은 집중할 수가 없었다.
'꿈속에서 죽는다'라니, 도대체 어떤 내용이 있었기에 그와 같은 터무니없는 결론이 도출되었단 말인가? 나는 그러한 의문을 풀지 못한 채, 풀이 죽어 앉아 있다가 문득 그가 앉아 있던 자리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와는 정반대여서 거리가 상당히 있었으며 또한 다른 아이들 때문에 시야가 부분적으로 막혀 있었지만 별 문제는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태양 광선을 조금 더 많이 흡수하는 피부조직을 지니고 있었는지 얼굴 색이 까무잡잡했고, 또한 미적 감각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사람이 아무렇게나 갖다 붙인 듯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었으므로, 그의 희고 아름다운 얼굴을 찾기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칠판을 향해 고개를 들지 않고 눈을 아래로 내리 깔고 있었다. 그때 나는 보았다.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러낸 미소를 보았다. 비록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미소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는지 즉시 미소를 거두고 칠판으로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가 나를 쳐다볼까 염려하여 곧 고개를 돌렸으나, 그의 미소는 뇌리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 후에도 그의 탁월한 실력과 외모는 어딜 가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그런 관심이 가소롭다는 듯이 무시하기 일쑤였고, 곧 그의 나쁜 평판이 학생들 사이에서 일다가 이내 그것마저도 사라졌다. 나는 그 이후로 단 한번도 그가 웃는 것을 못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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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가 공부 잘하고, 외모가 출중한 선에서 멈추어 주었더라면 7반은 유쾌한 32명이 되었을 것이며, 우리들은 똑똑한 그를 매우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물론 몇몇 아이들은 시기심에 불타 그를 괴롭히려고 했을지 모르겠으나, 난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 본다. 결국 궁극적인 문제는 설명이 불가능한 그의 비정상적인 성격이었다. 지금의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는 아마도 정신이상자 내지는 반 또라이였을 것이다. 그는 중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의 집이 매우 가난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장학금으로 다니고 있다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아마도 중학교도 그런 이유에서 안 나올 것일 거다.(정말 가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집안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그리하여 그는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서 공을 차며 놀아야 할 시기에 혼자 집에서 공부만 판 것이 분명했다. 안 그래도 어두운 성격이 좁고 밀폐된 자기 방에서 공부만 하다가 더욱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 졌을 것이다. 게다가 3년이었다(그 전부터 이미 그런 식으로 살아왔을 것이라는 어이없지만 고려해 볼만한 가정은 배제하고 말이다). 사랑을 받지 못하는 그런 가정에서(이 점 역시 나의 추측이지만)3년 이상 아무 말 없이 공부만 했다면 정신이 충분히 망가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단 하루만이라도 주위의 접촉 없이 집에서 지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는 사춘기 시절에 수년간 그런 식으로 지내온 것이다. 비록 그것은 나의 가설이지만, 그런 가설이 아니고서는 그의 그로테스크한 행동은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말에 집안사정으로 인해 전학을 가기 전까지 내가 본 그 한 번의 미소를 제외하고서는 단 한번도 웃은 적이 없다. 1학년 때 그와 같은 반을 지낸 한 친구의 말을 빌자면, 1학년 때 역시 그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게 어디 인간으로서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아무리 우울한 사람도, 설사 중병에 걸려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간다 할지라도 한두 번은 무의식적인 쓴웃음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는 미남이고 공부를 잘하는 데다가 2학년 학급 중에서 가장 웃기고 유머러스한 반에 들어와서 단 한번도 웃지 않다니. 그건 기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지 않은가? 말했듯이, 집안사정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모르겠으나 전반적인 고등학교 2학년 학생한테 일어날 수 있는 슬픈 일은 별 것 없지 않은가. 물론 최악의 비극적인, 그리고 예외적인 사건을 제외하고선 말이다(설사 그렇다 해도 그의 정체성을 온전히 설명하기는 역부족이다). 그를 슬프게 만드는 일은 모든 고등학생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부담감뿐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특별하게 비극적이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끙끙 앓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을 말이다. 그는 우울증 또는 그와 비슷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1년 동안 우리 반에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온갖 우스운 해프닝과 농담이 있었다. 나는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고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창조해내던 온갖 우스운 언행에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다거나 반발심이 들 정도의 유치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것들이 자연스럽게 생성되었으며 그 중에는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하고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나 얼굴의 표정과 같은 것도 포함되어있다. 그런데 내가 우스운 상황이 연출될 때 종종 그를 살펴보면 그는 매번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거나 혼자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내가 그의 표정에서 아주 약간이라도 웃음을 참으려는 기색을 발견했더라면 그나마 위안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수업 내용 외에는 의도적으로 귀를 닫아 놓으려고 했다거나 아니면 우리 반 아이들을 극도로 혐오해서 그들의 일상적인 유머마저 배척하려고 했다던가 둘 중 하나의 경우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웃음을 참으려는 단 한 순간의 느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미세한 근육의 떨림조차도 없었다. 그것은 인간의 좁아터진 정신세계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 나로 하여금 그를 대상으로 한 과학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었다. 아마 무슨 이유에서인가 유머 감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우울증으로 인해 뇌의 일부가 마비되었거나 어렸을 때 웃음을 자극하는 뇌 조직을 잘라내는 수술을 하거나 해서 (부모가 실패한 돌팔이 의사인 데다가 반쯤 정신이 나간 로보토미의 신봉자가 아니었을까?) ―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도무지 사람들과의 시선 접촉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행히, 나는 그를 자주 살펴볼 수 있었다. 그 결과, 아주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눈. 그의 눈은 책을 읽듯 집중해서 주시하면, 보통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그 무엇인가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확히 정의 내릴 수 없는, 인간의 눈이라면 다 포함하고 있는 모종의 현실 참여성을 띤 역동적 광채. 그에겐 그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정신은 무한한 우주를 떠돌아다니거나 공간과 시간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다른 어떤 불가사의한 세계 속을 여행하고 있는 듯 했다. 한 마디로 말해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당시엔 학급의 그 누구하고도 이야기를 하지 않는 그를 그저 조금 별난 아이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그렇다. 정말 비극적인 일이다).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성숙했고 다른 아이들보다 그에 대한 관심은 훨씬 더 지대했던 내가 그렇게 생각을 했으니 다른 아이들이야 어떠했으랴. 만약 그런 아이를 내가 지금 볼 수 있다면 돈을 주고서라도 상담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불행히도 그런 아이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물론 요즘에 들어서 점점 더 우울증에 걸리는 학생들이 증가하는 추세지만, 그렇게 정도가 심한 아이는 나는 본 적이 없다. 정도가 심하다는 말로는 그를 완벽히 표현할 수 없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는 명백히 비정상이었다. 상황이 그러하였기 때문에 나도 결국은 그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학교와 선생과 부모와 그리고 나 자신이 뿜어내는 강한 압력에 의해 그에 대한 관심은 내 머리 속에서 저 뒤로 밀려나 버렸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밤이었다. 부가적이지만 불필요한 학원수업을 끝마친 뒤 엄청나게 무거워 져버린 내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으로 가던 중 멀리서 걸어오던 그가 시야에 들어왔다. 주위에 그와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머리 위로부터 빠르게 떨어져 내려오는 환한 램프 빛에 의지해서 나는 그가 X군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행히도 그는 걷는 것만큼은 정상적으로 걸었다. 그것마저 그의 다른 특성들처럼 비정상적이었다면 학교에 있는 선생들 중 한 명이 그를 정신병동에 쳐 넣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가 지나가면서 내게 인사를 했더라면 나 역시 그러했을 것이지만 그는 완벽히 나를 무시했다. 그래서 나 역시 인사를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지만 아예 나의 존재성이 사라져 버리기라도 한 듯한 그의 태도는 나의 자존심을 꺾어 놓았다. 지금에 와서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그에게 먼저 인사를 했더라면 그 역시 나에게 인사를 하였을까? 그가 누군가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하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허나, 나에게 미안해서라도 간단한 눈인사는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서로에 대한 아무 표면상의 관심 없이 그렇게 지나쳤다. 애정은 오직 서로 주고받을 때에만 형성된다. 하지만 나는 그 날 밤에 그가 완벽한 에고이스트라는 것을 온전히 확신하게 된다. 나는 그가 약간 싫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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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에 대한 관심과 환멸과 경외감이 조금씩 뒤엉킨 정신상태를 지닌 채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학원 수업으로 인해서 매우 피곤했고 또한 수면 시간도 부족했지만 나는 그 날 밤 꿈을 꾸었고 꿈을 매우 생생하게 기억했다. 보통의 경우, 인상적인 꿈을 꾸었다 해도 1주일에서 한 달이 지나면 대부분 망각해버리며 더 오랫동안 기억한다 해도 아주 단편적인 부분들만 기억한다. 뇌는 일단 잠에서 깨어나면 그것에게 필요 없는 정보인 꿈의 기억을 여러 부분들로 조각 낸 후 소각하기 시작한다. 그 여러 가지 파편들 중에 기억나는 것이라고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한 두 개의 장면이다. 그런 것들은 기억체계 속에서 잘 버틴다. 사라져야 할 기억치고는 뇌 속에서 깊이 뿌리 박히므로. 그래서 나는 15세 가량부터 꿈을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왔으며, 그러한 기록과정은 기억의 뿌리를 생성해주거나 사라진 기억을 소생시킨다. 비록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기록하는 빈도가 많이 줄어들긴 했으나 여전히 그 습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사실, 그러한 나의 바보 같은 습관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나는 그 날 꿈을 꾸고 일어난 후 초스피드로 꿈의 내용을 휘갈기기 시작했다. 다 쓰고 난 후 읽어보니, 부분적으로 기억할 수 없거나 또는 뇌 속에서 정확한 이미지가 재생되지 않는 몇몇 장면들이 있었다. 그 장면들은 기록됨과 동시에 나의 뇌에서 소멸된 것이다. 그만큼 뇌가 꿈을 삭제하는 과정은 일사불란하며 재빠르다.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으레 꿈 속 풍경이 그러하듯, 꿈에서 내가 본 사물과 인물들은 모두 묘한 공허감의 분위기를 지녔다. 또한 누군가 대충 그려놓은 듯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시청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꿈 속 인물들의 얼굴은 대부분 형태가 없거나 불완전했다. 꿈 내부에서의 세상은 몽환적인 신비로움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왠지 모를 듯한 오묘한 외로움과 아름다움이 있다. 외부와는 완벽하게 단절된 무자각의 편중성이 있다. 그래서 꿈은 이기적일 수밖에 없으며 타인의 사상과 세상은 전혀 개입될 수 없다. 완전히 자신만의 세상인 것이다. 우리는 꿈속에서 깨어나지 않는 이상 그것이 꿈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잠에서 깨어 그것이 한낱 부질없는 한 순간의 꿈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쓴웃음과 함께 깊은 한숨을 몰아쉬는 것이다. 만약 꿈을 꿈으로서 자각한다면 더 이상 그것은 꿈일 수 없다. 오히려 평소에 만들어내는 평범한 생각일 뿐이게 된다. 그것이 꿈이 아닌 생각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의지대로 조절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꿈의 의미는 사라지고 만다. 꿈의 매력이자 미스테리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이 그것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방금 내린 결론과 같이 꿈을 조절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과 이성을 바탕으로 한 생각 및 공상이 되어 버린다. 다행히 현실은 그렇지 않다. 사실상 꿈은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익명의 이방인이 보낸 한 장의 편지와도 같다. 우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꿈은 담담히 이방인으로부터의 소식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 지리멸렬된 형태의 내용 가운데서도 잠재의식의 한 측면을 엿보여준다. 꿈이 전해주는 소식과 그 방법에는 도무지 제한이라고는 없다. 그 어떤 소식이든지 간에 일단 알려주고 보는 것이 꿈이다. 감정을 넣기도 하고 안 넣기도 하면서. 살상을 저지르는 것과 같은 엄청난 범죄 행각을 저지르면서도 시종일관 무표정을 관철하는 그러한 꿈의 묘한 특성은 뭇 사람들을 매료시키기도, 공포에 젖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꿈이 소식을 전해주는 그 굉장하고 무제한적인 창의성 때문에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은 꿈의 도움을 받는다. 자기 자신에게서 도움을 받는다니 그것 참 우습고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닌가? 창조를 밥벌이로 하는 예술가라 해도 별 수 없는 것이다. 논리성과 이성, 어쩌면 언어라는 틀까지도 탈피한 자유로운 꿈의 독창성을 온갖 사슬과 쇠고리에 잔뜩 묶여있는 깨어있는 지성이 모방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꿈은 적어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멋진 레스토랑에서 멋진 음식을 즐기고 있다가도 어느 순간 말을 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꿈의 일부 잘 알려진 특성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는 것은 내가 지금부터 설명하려는 꿈에 대한 약간의 기대를 불어넣기 위함이다. X군이 등장한 부분은 전체 꿈의 극히 일부분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부분이 꿈의 가장 말단에 와서인지, 그것은 당시 나의 뇌에서 가장 강하게 뿌리 박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점에 대해서 매우 감사히 생각한다. 나는 학교 안에서 칼을 들고 있는 한 괴한에 의해서 쫓기고 있었다. 학교에서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쫓기는 듯한 나의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잘 반영해 준 것 같았다. 알고 보니 그 곳은 바로 내가 다니고 있던 고등학교였다. 나는 7반인 우리 반으로 들어가면 등에 칼침이 꽂히거나 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인지 서둘러 교실 안에 들어가서 나의 자리에 앉았다. 현실에서 내가 앉아있던 자리는 교실 가장 오른쪽에 위치해 있었다. X군의 위치는 가장 왼쪽 창가 쪽이었다. 허나 꿈에서, 내가 헐레벌떡 뛰어가 앉은 위치는 다름 아닌 X군이 앉던 곳이었다. 물론 이 사실은 꿈에 깨어나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내가 급하게 뛰어 들어왔는데도 누구 하나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하던 수업은 별 탈 없이 계속 진행되었다. 그렇게 수업을 하다가 내가 발표를 하게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날 나는 발표하는 것이 도무지 내키지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의 명령인지라 어쩔 수 없이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곧 굉장한 답답함을 느끼며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발표를 시작한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누구하나 쳐다보거나 반응을 나타내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31명 동지로부터 박수나 미소 또는 짧은 감상평 등이 날아와야 마땅했다. 하지만 내게 남겨진 반응은 오직 적막과 고요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느꼈다. 본 것이 아니었다. 꿈속에서는 물질적인 두 눈을 통해 관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느꼈다. 오른쪽으로부터 이동해오는 강력한 시선의 움직임을 말이다. 나는 단 번에 그 시선이 누구에게 종속되어 있는 것인지 알아챘다. 바로 X군이었다. 매우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그의 눈빛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게 되었을 때, 마침내 수업은 막이 내렸고 내가 고대하던 쉬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나는 막간을 이용해 순수하고 시끌벅적한 여담을 즐길 심산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여담을 위한 동지를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모두들 나의 반경을 벗어나 멀리 떨어져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나를 향한 관심이나 시선은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말을 걸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거기서 굉장히 신기한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X군이 다른 아이들과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나도 신기해 가까이 가서 관찰하고 그들의 여담을 경청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럴 수가!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외국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매우 유창하게. 나는 아주 기분이 상해 울적해져서 학교 곳곳을 쏘다니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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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황당하고 예기치 않은 꿈의 스토리를 나의 소중한 노트에 빠르게 갈겨썼다. 게다가 X군이 나와서 매우 흐뭇해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이 황당한 꿈은 얼마동안 내 기억체계 속에서 머물러 있다가 곧 자리를 떴고, 나 스스로도 그 존재를 망각했다. 마치 그 꿈을 한 번도 꾸지 않은 사람처럼 말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나는 몇 달 전, 지금까지 내가 정리하고 기록한 모든 노트를 훑어보는 것이 아닌, 정말 진지하고 느린 고찰을 담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 덧 그런 고찰의 강독은 수백 편에 달하는 꿈의 기록이 담긴 노트에 정착했다. 나는 수많은 꿈의 기록을 읽어 나가다가 이 X군에 관한 기록에 정신을 돌리게 된 것이다. 상당한 시간동안, 이 꿈은 내가 노트에 기록해오던 그 수많은 지리멸렬되고 기이한,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괴상한 꿈들 사이에서는 지독하게 평범한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나의 처음 예상과는 달리, 그 간단하고 짧은 기록은 쉽사리 나의 관심을 끊지 않았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이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는 만약 이 꿈이 나의 감정 및 심리 상태를 반영하지 못했다면 적어도 내게 무슨 교훈이라도 줄 수 있을지의 대해서 늘 염두에 두었다. 그러다가 해결책이 떠올랐다. 내 정신세계를 휩쓸고 갈만한 강한 그 무엇인가가 눈앞에서 아른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땐 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어쩌면 난 그런 식의 멍하게 주시하는 행동을 통해 언제 찾아올지 모를 방문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정말로 찰나의 순간에, 마치 의식의 표면 위로 잔잔히 떠오른 가벼운 직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곧 이어, 그 단순하고 일차적인 사고의 방아쇠가 당겨지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무한한 상념의 연쇄가 잇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미친 듯한 직관들 속에 숨어있는 뿌리를 뒤엎는 변수들은 나의 뇌를 교란시키기에 충분했고 뒤따라오는 결과적 사고의 형태를 매우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변형시켰으므로 나는 최종 종착점이 대체 어디가 될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완전히 엉뚱한 곳에 도착하거나 탈선할 가능성도 고려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얼른 책상 곁으로 가 직관들이 빠르게 내뱉는 일련의 신호들을 언어라는 틀에 짜 맞추기 시작했다.
꿈속에서의 X군은 바로 나였다. 단순한 자리뿐만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나와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모든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내가 교실 안에 들어갈 때 그 누구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정확히 현실에서의 X군의 위치에 앉았다. 또한 발표할 때 느껴지던 이상한 거부감, 발표 직후 오른쪽에서 강하게 느껴지던 왠지 모를 듯한 시선. 나의 전신으로 느껴지던 내게 꽂히는 회피적 분위기, 그 분위기를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한 아이들의 나를 피하는 태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X군과 그의 몇몇 친구들이 사용하던, 평생 들어보지 못한 외국어는 적어도 꿈속에서는 내가 철저한 이방인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나는 X군 그 자체였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잠시 여기서 X군이라는 인물명을 '비정상'이라는 상태를 의미하는 단어로 대치시켜 본다면... 그렇게 한다면 나는 확실히 비정상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듣고 이해하지 못하는 발표를 하는, 난해한 외국어를 듣고 이해를 하지 못하는 나는 그 학교에선 비정상일 수밖에 없었다. 꿈은 현실을 재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꿈은 분명히 현실을 재현하고 있었다. 그것도 얼마 전에 일어난, X군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인상이 깊었던 사건을 선별해 재생시킨 것이다. 그것은 정말이지, 완벽한 재현이었다. X군과 나의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는 점만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는 정상인으로써, 나는 비정상인으로써 출현하였다. 현실을 무시하는 꿈의 세계에서라도 잠시나마, X군은 정상인으로써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허나, 꿈은 현실은 무시할 수 있었지만 내가 어쩔 수 없이 소유하고 있던 본질적인 한계는 무시하지 못했다. 아무리 꿈이 정신적 제약을 벗어나는데 있어서 의식을 선회하고 있다고는 해도, 천재에게선 천재의 꿈이, 바보에게선 바보의 꿈이 나올 수밖엔 없는 것이다. 나의 정신적 한계를 통과하지 못한 것. 그것은 바로, 내가 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엄청난 몰이해였다. 나는 그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게 언제나, 알 수 없는 흐릿한 안개처럼 미지의 존재였다. 그래서 내가 X군에서 대해서 생각할 때면, 항상 나의 정신 한 구석에는 우주적인 공허함이 느껴졌다.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진정한 수용은 이해 다음에 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의 나는 순서를 무시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수용을 먼저 하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그를 관찰하면서도 X군에 대한 열등감과 그가 지니고 있던 선천적인 이상함과 교만을 늘 의식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은 물론 그의 능력에 대한 경외감과 그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욕구에 의해 의식 아랫부분에 깔리게 되었다. 가끔씩, 그에 대한 적대감과 이질감이 꾸역꾸역 몰려든 적도 여럿 있었지만 나는 당혹해하며 그러한 감정을 밑으로  밑으로 자꾸 내리 눌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에 대한 나의 무의식적인 몰이해는 커져만 갔다. 그리하여 나의 그러한 역류는 어떻게든 방사될 구멍을 찾게 되었다. 곧 나의 불완전한 마음은 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철저한 몰이해는 그가 너무나도 유려하게 쏟아내던 외국어,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황당한 설정에 의해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무의식과 의식. 그들 모두가 X군에 대한 몰이해라는 부분에서는 공통적인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부터 우리와 같은 인간인 X군을 몰이해를 가진 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를 향한 몰이해를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어쩌면 나는 애초부터 그를 비정상인으로써 간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를 아무 논리적 과정 없이 비정상인으로 만들어 버린 정신 내부의 어떤 학습된 사고작용이 있었던 것이라면 어떨까? 그리고 그 본능적 사고작용은 아마도 나와 31명의 친구들을 정상인으로써 인지하게 한 정신작용과 일치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무의식까지 잠식해 꿈에서조차 X군을 비정상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더 나아가, 그 작용은 '나'라는 개인적 범주를 벗어나 7반의 31명 동포들에도 비화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X군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한 모교의 다른 수백 명 학생들까지도 말이다. 그리하여 그런 종류의 학습된 본성은 대한민국 그리고 결국에는 이 세상, 아니 인류를 집어삼킨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곳에 들어간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집단적 형태의 무의식을 생성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정말로 무시 못할 정도의 파급을 몰고 올 것이다.
인류. 60억 명으로 이루어진 지성과 의식을 소유한 거대한 생명체군. 그 수많은 인구가 제각기 다른 환경과 성격 속에서 살아왔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매일, 서로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면서 어찌 되었든 공생해 나간다. 하지만 누구 하나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모두들 살아지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모른다. 왜 어느 날 갑자기 지구라는 곳에 던져져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삶을 살수밖에 없게 되었는지를. 그들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들 모두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죽는 그 순간까지 신비일 뿐이다.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렇다. 그것은 꿈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을, 이 현실을 진실이라고 굳게 믿는다. 마치 꿈속에선 그 꿈이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세상이고 현실인 것처럼. 하지만 그들은 밤에 또 다른 현실들을 경험한다. 바로 꿈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것들을 망각한다. 지구에 의해 작동되는 더 큰 현실에 의해 작은 현실들은 잊혀지고 만다. 나는 그것이 싫었다. 나 자신은 내가 꿈을 단순한 꿈으로써 지각하게 놔두지 않았다. 도리어 꿈의 이면을 보도록 부추겼다. 꿈들은 내게 있어서 소중한 존재였다. 언제나 그것들은 보이지 않는 커다란 보석을 자신만의 세상 속에 숨기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재산 덩어리들이 통째로 보란 듯 멀리 흘러가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꿈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각각 나름대로의 소중한 삶의 교훈을 내게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꿈들은 아직까지 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며 박동한다. 생명을 가지고 내게 좀 보아달라고 호소한다. 그것들은 거부할 수 없는 현실들이다. 그리고 수많은 꿈들 중 X군을 정상으로 만들어 버린 작은 꿈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에서 나는 철저한 비정상이 되고 만다. 나는 그 현실이 갑갑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다. 이제는 또 하나의 현실, 또 하나의 세계가 나를 휩쓴다. 학생들이 외국어를 하지 않는 세상, 내가 정상적으로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이다. 나는 안도했다.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감사해 했다- 내가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이 세계가 현실이라는 점에 대해서. 하지만 내가 최근에 그러한 오래 된 기억을 떠올렸을 때, 나의 무의식은 내게 결코 풀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제안했다. 그것은 처음엔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어느 세상의 현실이 진정한 현실인가?

나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런 식의 질문을 바란 것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황당함을 표출시키기도 전에 나는 수많은 다른 연쇄적 질문에 노출되고 말았다. 그 질문들은 인류의 의해 사용된 경험이 많이 없었던 것인지, 나의 존재를 눈치채자마자 내 곁에 내려 와 사악한 눈을 부라리며 나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의 비정상적인 공포심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진정한 현실은 무엇인가? 아니, 애초에 진정한 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나 했는가? 지구라고 불리는 이 곳은 어디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아무 거리낌없이 '나는 정상이다' 라면서 떳떳해질 수 있는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것을 허용해주는 지구는 무언가? 지구와 인류의 관용이 있다는 단지 그 이유로 인해 나는 정상이 된 것인가? 지구는 무엇을 근거로 그것을 허락해주는 건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무언가?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대 원칙이란 것이 있는가? 그러한 풀 수 없는 의문점들은 나의 뇌 속에 더럽고 끈적끈적한 정신 질환을 탄생시키고 말았다. 그러한 질환은 아직까지 내 머리 속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특정한 느낌이다. 매우 고통스럽고 불결한 느낌. 그리고 그것은 뇌의 어떤 기능을 가로막은 듯 했다. 왜냐하면 그 때부터 나는, 내가 하는 모든 행동과 말들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젠 인류가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 자체가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들의 인생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에 대해서. 만약 정상이라면 그리고 비정상이라면 어째서 그러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당연시되는 그러한 판별력을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 내가 꾼 그 작은 꿈은 나의 직관적 무의식과 합해져 내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고뇌에 차 자문하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내가 30년 동안 해오던 그 숱한 일들을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왔던 것일까? 어째서? 그것은 내가 결론 내렸듯이, 나는 인류가 매우 긴 시간동안 축적해온 특정한 집단적인 무의식의 자손일 뿐이기 때문일까? 만약 그렇다면 내가 정상이라고 간주하는 것들은 무한한 변수와 함께 오랫동안 변해온 단순한 하나의 우연적인 산물인 것인가? 그래서 나는 또 하나의 우연 속에 살게 되어 버린 것인가? 아니면 인류는 어느 방향으로 가든, 지금 내가 보는 이 상황 그대로의 모습만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인류의 머리 위에는 어떻게든 부술 수 없는 딱딱한 벽이 있기 때문에? 하지만 어떻게 해서 그리고 언제부터, 보이지 않는 어떤 곳에 숨어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어마어마한 괴리가 인류의 곁에 존재하게 된 것인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만약 그렇다면 그 정신적 씨앗은 누가 심어주었는가? 그러면 '그'는 과연 누구인가? 어떤 이면의 지성적 존재인 것인가?
아아-, 나는 이러한 의문점들을 풀기 위해서 수천 번은 넘게 생각해보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길을 잃고 말았다. 그 자체로서 커다란 미로가 되어버린 지구와, 그리고 소우주인 나의 뇌가 실행한 어처구니없는 일탈적 추리로 인해 나는 어떠한 단서도 없는 어두컴컴한 길에서 영겁의 걸음을 반복할 운명을 지니게 되었다.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인류는 그런 나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아무 문제없다면서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르고 있다. 그들 역시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빛도 희망도 없는 영원한 허무의 순간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그렇다. 그들은 꿈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정말 우리는 꿈속에서 태어나 꿈속에서 죽는 것일까, 단 한번도 꿈에서 깨어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모르겠다. 나는 모르겠다.
난 단지, 훨씬 오래 전 벌써 이 사실을 깨달은 X군이, 단지 그가 보고 싶을 뿐이다.
  


.........................

나름대로 환상 문학이라 생각하고 올린 겁니다.. 공포(?) 환상이요..ㅎㅎ..
왁슘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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