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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산타

2013.07.08 19:5307.08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 ‘나 홀로 집에’가 끝나자 엄마가 말했다.  

 “이제 그만 자야지.”  

 아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웠다. 침대 옆에 놓인 작은 협탁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우디 인형이 얼빠진 모습으로 앉아 있었고 협탁 옆면에 어른 장화만 한 양말이 하나 걸려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데 어제 학교에서 있었던 충격적인 일이 다시 떠올랐다. 

 

 급식 시간이었다.

 “너 산타한테 소원 뭐 빌 거야?”

 아이가 말했다.

 “바보, 산타가 어딨어?”

 여자지만 덩치가 더 큰 짝이 말했다.

 “있어.”

 짝이 한숨을 내 쉬었다.

 “없거든.”

 “작년에 산타한테 선물로 우디 인형 받았어.”

 짝이 피식 웃었다.

 “왜 웃어?”

 “그거 너희 아빠가 사온 거야. 아빠가 산타라고.”

 아이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빠가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산타에게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지 묻던 게 떠올랐다. 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거짓말.”

 아이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바보.”

 아이는 밉살스러운 짝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버렸다.


 엄마가 방에 들어와서 방 불을 끄고 우디 인형이 기대고 있는 지구본 스탠드에 불을 켰다. 따스한 노란 불빛이 아이의 얼굴을 비추었다. 엄마는 이불을 아이의 목까지 덮어 준 다음에 아이의 이마에 뽀뽀했다. 

 “엄마.”

 “왜?”

 “아, 아냐.”

 “뭔데?”

 “아무것도 아냐. 잘 자.”

 아이가 이불을 머리 위로 잡아당겼다.

 “제 아빠 닮아서 싱겁긴.”

 아이는 짝 말대로 만약 아빠가 이때까지 속여 온 거라면 엄마도 왠지 한 편일 것 같았다. 그렇다면 새벽까지 안 자고 기다려서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눈꺼풀이 무겁고 눈알이 따끔거리는데도 새벽 3시까지 버텼지만 결국 저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창밖에서 자동차 경적이 날카롭게 울리는 바람에 아이는 잠에서 깼다. 순간 자신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다시 눈을 감았지만, 잠시 후 놀라서 침대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밖은 아직 캄캄했다. 협탁에 걸린 양말을 더듬어 보니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4시 28분이었다. 아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 다시 누웠다. 

 그때였다. 

 방문 손잡이가 천천히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실 눈을 뜨고 열리는 문 사이로 거실 불빛이 새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방문 앞에 검은 실루엣이 나타났다. 다행히 거실 불빛이 협탁 까지만 비추었기 때문에 아이는 용기를 내서 눈을 조금 더 뜰 수 있었다. 실루엣은 손에 네모난 뭔가를 들고 있었다. 실루엣의 주인공이 산타든 그의 아빠든 간에 그것은 버즈라이트 이어가 분명했다. 

 실루엣은 발소리를 죽이고 침대 쪽으로 다가왔다. 아이는 재빨리 눈을 감았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잠시 후에 이마에 어루만지는 손길이 느껴졌고 동시에 익숙한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아빠가 쓰는 화장품 냄새였다. 동심으로 지어진 모래성에 쓰나미가 덮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문득 산타도 똑같은 화장품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학교 선생님도 아빠와 똑같은 화장품을 쓰는 것처럼. 

 선물 상자를 양말 주머니에 넣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는 게 겁이 났다. 하지만 지금 확인을 못 하면 일 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아이는 용기를 내서 눈을 반 쯤 떴다. 

 아빠가 커다란 먹잇감을 삼킨 뱀처럼 보이는 양말 주머니를 매만지고 있었다. 

 아빠가 방에서 나갔다. 아이는 동이 틀 때까지 서럽게 울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남자는 아들의 방에서 나와 거실로 갔다. 아내가 두꺼운 파카를 입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남자가 꼭대기 층 버튼을 눌렀다. 

 눈이 쌓인 아파트 옥상에는 코가 빨간 순록 두 마리가 커다란 썰매에 메여 있었다. 남자는 썰매에 벗어둔 빨갛고 두툼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아내가 하얀 털 방울이 달린 고깔모자를 남자의 씌워 주었다. 남자가 썰매에 앉아 고삐를 살짝 잡아당기자 순록 두 마리가 코에서 허연 김을 내 뿜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많이 남았어?”

 아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남자가 썰매에 실린 빨자 자루를 들어보았다. 

 “아니, 조금.”

 “조심해서 갔다 와.”

 남자가 고삐를 세게 두 번 당기자 순록 두 마리가 허공을 내 달리기 시작했다.

 

 

 

 minsy2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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