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Gryphonman # 1

2009.10.14 23:0710.14

누군가는 이 글을 볼 것이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나의 자손 중 하나가 이 글을 분명 찾아내고 읽을 것이다.
난 그 한순간을 위해 지금 새벽 2시에 아내 몰래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기대는 하지 않는다. 영영 잊혀버릴 수도 있고, 설사 누군가가 찾아냈다고는 해도 그 사람이 나의 후손이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예상 못한 천재지변으로 모든 것이 날아가거나 그렇게 똑똑하지 못한 후손이 정신 나간 조상을 비웃으며 휴지통에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쓸 것이다. 내가 겪었던 그 모든 기억, 그 찬란하게 불타오르던 열정의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또 일종의 자기만족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추억을 회상하는 것은 언제라도 즐거운 일이다.
나의 유년기는 꽤나 특이했다. 엄격한 어머니 탓에 게임과 TV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도 있지만 왜인지는 몰라도 우리 집에는 미국 만화책이 여기저기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을 보자면 거의 모두가 슈퍼 히어로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자면 아마 아버지가 좋아했던 것 같다.
몇몇은 우리 나라말로 되어 있었지만 대부분은 영어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화려한 그림만 보고 즐거워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취미를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지만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내가 미국 만화책을 읽는 것에는 호의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다른 녀석들보다 학교에서 더 빠르게 영어를 배우게 되었고 보다 유창한 영어 실력이 얻을 수 있었으니 어머니의 선견지명에 감사할 따름이다.
여기까지는 조금 특이하기는 해도 다른 아이들과 별 다를 바는 없었다.
만약 내가 8살에 삼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냥 미국 만화책을 좋아하는 평범한 어른으로의 성장 과정을 이어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삼촌을 만났고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분과의 만남은 내 인생에 있어서 큰 분기점이 되었다.
삼촌은 실로 TV나 영화에나 나올 법한 괴인 중의 괴인이었는데 가끔 친척들이 가문의 망나니 혹은 머리까지 근육이 되어버린 멍청이라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삼촌이 우리 집에 불쑥 찾아온 날은 분명 내가 8살 생일을 맞이한 지도 어느새 2주가 지난 어느 가을날이었다.
처음 봤을 때에는 정말 깜짝 놀랐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거의 태양을 가릴 정도의 덩치에 봉두난발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닌 장발, 그리고 거친 얼굴에는 상처의 흔적까지.
눈이 안 보일 정도로 앞머리가 긴 그 남자가 씩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을 때에는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지금 생각해보자면 오줌 안 싼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삼촌은 우리 집에 잠시 머무르게 되었다. 어머니는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푹푹 쉬면서 이번이 벌써 5번째 귀환이라고 말해주었다.
삼촌을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무예의 달인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몰라도 주류 태권도와는 그 궤적을 달리 하는 독특한 분파에서 무예를 배웠다고 한다.
수련 중의 쉬는 시간에 삼촌이 알려준 단편적 정보에 의하면 존재하는 국내외의 모든 무술을 합쳐 궁극의 태권도를 완성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 탓에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삼촌이 불규칙적인 주기로 세계를 떠돌며 각양각색의 무술과 대결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 탓에 주류 태권도 사회에서는 경멸의 시선과 함께 잡탕 쓰레기로 치부되었는데 삼촌은 코웃음을 치며 그런 그들을 나약한 멍청이들이라고 비웃었다.
지금 태권도도 아주 완전한 전통이 아니라 일본의 가라데를 주 골격에 택견의 일부 요소를 첨가해 개량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태권도라면 존재하는 모든 무술에서 배워오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 삼촌의 설명이었다.
하여간 삼촌은 우리 집에 지내면서 나에게 관심을 가졌다.

“누나, 얘 골격 아주 좋은데요? 자질이 눈에 확 보여요.”

나는 갑자기 삼촌이 나를 칭찬하자 혹시나 뭐라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히죽 웃고만 있었다.
그리고 삼촌은 나에게 무술을 개인적으로 가르쳐주겠다고 나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에게 제의했다.
아버지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어머니만을 쳐다보았다. 나에 대한 거의 모든 결정권-사실 지금 생각해보자면 우리 집의 거의 모든 실권이었지. 불쌍한 아버지-은 우리 어머니에게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삼촌의 말에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가 곧 환해졌다. 집에서도 내놓은 망나니 동생이, 오직 무술이라는 쓸데없는 싸움에만 능한 녀석이 공짜로 자기 아들에게 호신술을 가르쳐준다는 것이 어머니가 생각하기에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곧 있으면 나도 학교에 입학할 나이였고 그 시점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태권도나 합기도, 그리고 검도 같은 무술을 돈을 들여 가르치게 한다.
어차피 돈 써서 무술 가르칠 거라면 차라리 공짜가 낫지 않은가?
그걸로 어머니는 결정을 내렸다. 아버지는 그냥 어머니의 결정에 따라갈 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지옥은 시작되었다. 정말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아니 생각해보고 싶지도 않은 그 악몽 같은 수련의 나날들.
삼촌은 정말 영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머니가 살펴보러 오는 날은 어떻게 귀신 같이 알았는지 정말 아이들 수준에 맞는 수련을 했지만 어머니가 신경 쓰지 않을 때가 대부분인 나날에는 혹독한 수련으로 말 그대로 나를 굴렸다.
그 때에는 정말 삼촌이 너무나 미웠다. 막 울며 애원을 해보기도 했지만 삼촌은 그저 차갑게 그 모든 과정을 실시할 뿐이었다.
그리고 수련이 끝났을 때 꼭 실시하는 그 끔찍한 안마!
아마 몸을 좀 더 유연하고 강건하게 만들기 위해 해주었던 것 같았지만 그 뼈와 살을 뒤흔드는 끔찍한 고통은 정말 트라우마 수준으로 생생하게 내 뇌리에 남았다.
하지만 분명 나는 강해지고 있었다. 삼촌은 내가 점차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종종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곤 했는데 그 미소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지긋지긋했던 나날이 아주 잠깐 휴식기에 들어섰던 것은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맞이했을 때였다.
삼촌은 아주 간단한 인사와 함께 다시 세계로 떠나가 버린 것이다.
그 어떤 또래보다 월등한 체격에 체력 역시 보통을 넘는 수준이 되어버린 나는 삼촌이 떠나자마자 환호를 내질렀다.
이제야 평범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된 것이다라고 나는 희망에 부풀었으며 그 희망은 한때나마의 작은 휴식으로 증명되어졌다.
그 몇 년은 정말 달콤했던지라 중학교에 막 입학한지 겨우 3일이 지난 시점의 저녁에 삼촌이 불쑥 나타났을 때 나는 정말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절망에 빠졌다.
삼촌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미소와 함께 나에게 말해주었다.

“좋아, 지금까지 못한 시간을 최대한 빨리 벌충해야겠지?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얻은 수확도 얼른 알려주어야 하고! 하하하!”

그렇지만 처음에 절망하고 좌절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 다져진 뛰어난 체력과 아직도 몸과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예전에 배웠던 그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그럭저럭 참을만한 나날이 지나가고 중학교 3학년 졸업을 불과 13일 남겨둔 때에 삼촌은 미소와 함께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어느새 훌쩍 성장해 키가 족히 175는 되는 나를 내려다보던 삼촌은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야 너도 쓸 만한 녀석이 되었구나. 이제 더 이상 내가 가르칠 건 없다. 내가 가르쳐준 것들만 계속 주지하고 나태에 몸을 맡겨 꾸준한 운동만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야...너는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한 남자가 될 거야.
뭐, 이미 그렇게 된 것도 같지만. 하하하, 이번에 또 여행을 가는데 뭔가 새로운 걸 알아낸다면 혹독하게 가르쳐줄 것이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나를 기다리도록!”

그렇게 말한 삼촌을 나는 다시는 보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번에야 말로 정말 완전히 실종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쨌거나 삼촌의 유산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매우 값진 것이었다.
왠지 모르게 자화자찬이 될 수도 있지만 고등학교 입학할 당시의 나는 180은 가볍게 넘어가는 훤칠한 키에 부모님의 은혜 덕분에 꽤나 준수한 외모를 겸비한 남자였다.
거기다가 삼촌이 손수 전수해준 그 모든 무술 실력들.
공부도 그럭저럭 상하, 중상 수준에서 머무르는 수준이었으니 나는 모두에게 인기가 있었다.
아버지 때문에 성격도 모두에게 친절하기도 했고.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이 점이 어떤 녀석들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녀석들과의 충돌은 내가 슈퍼 히어로라는 어찌 보면 터무니없는 망상을 정말로 실행하려 하는 마음을 먹게 만든 작은 계기가 되었다.
지금 다시 깊게 생각해보니 그 충돌은 사실 내가 자초한 면도 있었다.
어느 학교에서 있는 불량한 패거리들 중 몇몇 녀석이 수업 중에 여선생님 말 하나하나에 트집을 잡고 음담패설을 하며 수업을 방해했을 때 소리를 버럭 질러 경고를 했었고 남녀 가리지 않고 트집을 잡아 싸움을 걸거나 희롱을 할 때도 여지없이 나섰던 것이다.
결국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친 어느 날 하교길에 충돌은 벌어졌다. 물론 나의 승리였다.
물론 그렇게 쉽게 끝나지는 않았다. 그 멍청한 놈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소위 형, 아저씨들까지 동원했던 것이다.
솔직히 험악한 어른 몇몇이 나타났을 때에는 나도 겁이 들긴 했었다. 하지만 막상 싸움이 시작되고 보니 이건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 수준으로 쉬웠다.
몇몇 충돌이 마무리된 후 그렇게 나의 학교생활은 평온을 되찾았다. 그 녀석들은 알아서 나를 피해 다녔고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졸업의 그 날까지 조용히 지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나에게 꽤나 위험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가 다른 녀석들보다 강하다는 점과 이 힘으로 규칙과 질서, 그리고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착각을 말이다.
그렇지만 이 시점에서 아직까지 나는 정말 진지하게 슈퍼 히어로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고 있었다.
물론 공부로 터져나갈 것 같은 머리를 식히기 위해 종종 아메리칸 슈퍼 히어로들의 화려한 활약으로 현실 도피하면서 정말 멋지다는 심정의 동경심을 가지는 것은 여전했다.
왜인지는 몰라도 나는 공부의 와중에 종종 망상에 빠지는 버릇도 있었다.
그 망상 속에서 나는 사람들과 도시의 안전, 모두의 정의를 지키는 수호자였고 하늘과 땅을 종횡 무진하는 멋진 코스튬의 초인이 되곤 했었다.
그 망상을 내가 현실화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학 입학을 얼마 안 남겨둔 어느 겨울밤의 으슥한 골목길에서였다.
한 눈에 봐도 불량해 보이는 양아치들 6명이 술에 취한 채로 어느 직장 여성을 에워싼 채 돈을 강탈하고 있었다.
낄낄 대며 겁에 질린 그 여성을 가리켜 음란한 제스처를 취하는 그 모습에 나는 직감적으로 단순히 돈을 뜯는 것보다 더한 짓을 저지를 것을 알아차렸다.
순식간에 두 명을 골로 보내버리자 몇몇은 뒷걸음질을, 그리고 나머지 놈들은 나이프를 꺼내 들며 달려들었지만 역시나 내 상대는 되지 못하는 삼류 중의 삼류 쓰레기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고마움과 선망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 여성을 집에 데려다주면서 깊은 고민과 생각에 잠겼다.
지금 이 밤하늘 아래에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이 나라, 아니 이 지역으로 국한한다고 해도 대체 얼마나 일어날 것인가?
이 사람은 운이 좋아 내가 구해줬다고는 했어도 구원 받지 못하고 범죄라는 악랄한 마수에 당해버린 사람들은 얼마나 될 것인가?
그 날 나는 아직도 가녀린 고양이처럼 떨며 안경 너머의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암흑의 밤을 똑바로 응시하며 맹세했다.
범죄에 맞서 싸우기로, 그리고 누구나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마스크와 코스튬을 걸친 슈퍼 히어로가 되겠다는 굳건한 결심을!
내 인생에 있어 개인적이지만 꽤나 역사적인 맹세 이후 나는 정말로 그 모든 일들을 현실화하고 구체화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천만다행으로 대학을 입학하면서 부모님과 떨어지게 되었고 자취집 원룸 생활을 하게 되어 계획을 은밀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엄선된 코믹 북 컬렉션과 슈퍼 히어로 영화, 그리고 인터넷에서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닥치는 대로 쓸어 담았다.
마구잡이로 그 모든 정보를 읽고 정리하면서 내가 하늘을 날거나 손에서 에너지장을 쏘거나 하는 슈퍼한 능력은 없다는 문제가 떠올랐지만 나는 곧 일반인보다 육체적으로, 그리고 싸움 기술에 있어 월등했기 때문에 억지를 쓰자면 슈퍼 히어로의 기준에 들 수 있다고 그 때에는 멋대로 납득해버렸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맞는 말이었다. 단순히 탁월한 육체 능력과 숙련된 무술 기술로 정말 초인적 힘을 지닌 슈퍼 히어로들 틈에서 같이 슈퍼 히어로로 활약하는 녀석들은 만화책에서도 의외로 많았었다.
하여간 나는 곧 또 다른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바로 돈 문제.
가장 기본적인 코스튬 제작에만 해도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 것 같았던 것이다.
결국 나는 최대한 용돈을 아끼는 한 편 아르바이트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물론 내 체력 유지 및 향상에 도움이 될 법한 육체적 일들을 주로 했었고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 시기는 정말 눈 돌아가게 바쁜 나날이었다. 공부하랴 돈 모으랴.
하지만 나는 짧은 기간에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기적에 가까웠는데 아마도 내가 지금 이런 준비를 하느라 시간을 소모하는 와중에도 누군가가 길거리에서 범죄의 칼날 앞에서 피해를 받는다는 죄책감이 나를 매섭게 채찍질했던 것 같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자 한동안 생각하지 않던 두 가지 핵심적 문제가 새롭게 내 머리를 아프게 했다.
나의 새로운 정체성을 대변해줄 멋진 이름과 그 이름에 걸맞으면서 초인적인 면모를 모든 이들에게 보여줄 코스튬!
나는 가장 먼저 명칭을 생각해내기로 했다. 의상 제작 및 디자인에 있어 이름과 연관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처음에는 조금 고생을 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틀렸다.
조금 고생이 아니라 엄청난 고생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세상에는 한 개인이 감히 측량할 수 없을 정도의 단어와 문장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문제는 적합한 것을 적절하게 찾아내는 것.
괜찮다 싶은 것들은 이미 만화나 소설, 영화 등에서 선점해 버린 지 오래였던 것이다.
물론 해외에만 알려지고 우리나라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우습게도 먼 훗날 국제적 슈퍼 히어로로의 경력까지 염두에 두고 있던 그 때의 나는 독창적인 것을 찾아내기로 고집을 피운 것이었다.
도서관과 인터넷을 전전하길 거의 3주였을 것이다. 나는 지친 나머지 너무 특이하고 생소한 이름이라면 아무도 못 알아들을 것이라는 듣기 좋은 변명과 함께 그리폰을 선택했다.
정의를 수호하는 그리폰맨!
지금 여기서 굳이 변명하자면 나는 그 때에 그 이름이 괜찮았다고 생각했었다. 결코 내 문학적 센스가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그리폰맨이라는 시크릿 아이덴티티를 가슴 속에 품은 채 집으로 돌아오는 그 날 나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경쾌했다.
이렇게 명칭이 결정됐지만 가장 어려운 문제가 곧바로 나를 괴롭혔다.
바로 의상 제작!
명칭이야 그냥 머리로 생각하기만 하면 되지만 코스튬은 정말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실적 결과물을 직접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람들이 보고 절대 크게 비웃지 않을 녀석을, 모든 이들이 경탄하고 환호를 해줄 멋진 코스튬을 제작해야만 했다.
일단 색조는 어둡게 하기로 했다. 밝은 색으로 만들었다가는 분명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는 하겠지만 자칫 40년대 사람들이나 좋아할 법만 유치찬란한 옷이 되어버릴 확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순히 멋이 아니라 실제로도 나를 도와주고 슈퍼 히어로로서의 활약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기능성도 필요했다.
멍청하게도 나는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 지금까지 본 슈퍼 히어로 영화에서 나온 슈트의 예를 따르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와 현실은 지극히 달랐다. 인터넷을 통해 알아본 결과 나는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분명 영화로 보기에는 완벽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디자인에 그 재질과 기능에 있어서도 뛰어난 조화를 이루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상에서는 도저히 사람이 오랫동안 입고 지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배우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흘러나오는 사우나 시설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결국 나는 싸구려 C급 영화에나 나오는 의상을 참조해보기도 했다. 아무리 엉망이라고는 해도 만드는데 어마어마한 돈이 들고 설사 만들어 입는 다해도 제대로 거동도 못할 녀석보다는 쓸모가 있으리라 봤기 때문이다.
코스튬의 디자인은 몇 번을 필사적으로 끄적인 끝에 기본에 해당하는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어쩌다보니 박쥐남의 옷과 많이 닮아 있었지만.
사실 지금 그 모든 스케치와 사진을 보고 다시 생각해보자니 아울맨과 나이트 아울 II의 의상과 더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색깔의 경우 기본적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어두운 암청색을 기본으로 군데군데 너무 밝지는 않은 적색과 회색을 가미했다.
몸통 부분은 털을 형상화한 미늘 모양으로 장식했으며 가슴 정중앙에는 그리폰의 부리와 날개를 단순화한 기호를 그려 넣었다.
디자인의 완성과 함께 나는 본격적인 코스튬 제작에 들어갔다.
최초에는 해외에서 주문한 할로윈 의상과 개인이 제작한 코스튬을 기본으로 개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 그 모든 것을 수정했다. 아무리 나라고는 해도 멍청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슈트를 제작함에 있어 나는 군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물론 우리나라 군대는 절대 아니었고.
소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시대적 전환기 이후 해외에서는 획기적이면서도 일상에서 사용하기에도 유용한 개인 장비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었고 나는 이들 중 내가 제작할 슈트에 필요한 것들을 신나게 골라낼 수 있었던 것이다.
몸통 부분이 스판덱스 소재로 되어 있는 컴뱃 셔츠는 나의 그리폰 코스튬 상체 부분의 유용한 기본 바탕이 되었다.
컴뱃 셔츠의 스판덱스 부분 안에 방검에도 탁월한 효능이 있는 방탄 패드를 집어넣고 겉 부분에는 미늘 장식을 일일이 새긴 가죽 흉갑을 덧대어 하나로 고정시켰던 것이다.
가슴 정중앙의 기호는 아쉽지만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시점에서 여전히 나는 아마존이나 이베이에서 주문한 할로윈용 코스튬 또는 개인이 제작한 슈퍼 히어로 옷들 역시 충분히 살펴보고는 있었다.
하의는 역시나 스판덱스 소재의 운동복이나 전신 수영복 중에서 그 재질이 질긴 섬유로 이루어진 녀석을 골라잡았다.
주먹을 감쌀 녀석이자 나의 의지와 힘을 대변할 물건으로는 철로 된 건틀렛과 택티컬 글러브 중에 꽤나 고민했다.
전자의 경우 너무 은빛으로 빛난다는 것과 움직이는데 불편하다는 것이 문제였고 후자의 경우 위력에 신뢰가 가지 않았었다.
결국 둘 다 주문해서 물건을 받아본 결과 나는 아무래도 후자가 좀 더 사용하기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손등 부분에 꽤나 단단해 보이는 프로텍터가 부착되어 있어 제대로 힘만 쓴다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것 같았던 것이다.
동시에 유틸리티 벨트 역할을 할 만한 장비 또한 군대의 벨트와 다용도 파우치들을 구매해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연결하여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신분을 감춰주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군용 고글 역시 그 기능성은 물론 히어로의 이미지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세련된 선글래스형 디자인에 착용감에 있어서도 신비로운 푸른 색채의 렌즈는 그 두께가 2mm는 되어 쉽사리 깨지지 않는, 위험한 파편에서 착용자를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뛰어난 방어 장비였다.
점차 슈트 제작의 준비물이 거의 다 모아질 무렵 나는 아무리 내가 육체적 힘을 바탕에 둔 히어로로 활약한다고는 해도 좀 더 부가적인 장비가 필요할 것 같다는 고민에 열중해있었다.
일반인들이 경외할 초인적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단순히 싸움질을 잘 하는 정도로는 조금 무리가 있으리라 판단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만일을 대비해 가스총과 3단봉, 연막탄, 그리고 LED라이트를 구매했다.
3단봉과 라이트는 국내에서 수월하게 구할 수 있었지만 단순히 색깔 있는 연기를 뿜어내는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연막탄은 구하기가 꽤나 힘들었던 탓에 결국 해외에서 살 수 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 가스총의 경우 나는 정말 실망을 금치 못했다. 등록과 면허의 까다로운 절차 등등의 모든 노력을 들였지만 너무 외양이 기존의 총처럼 생겼던 것이다.
권총에 의존하는 히어로 이미지가 절대적으로 싫었던 나는 쓴 돈과 노력이 아까워 일단 가지고 다니기로 결정은 했지만 되도록 사용하지 않기로 잠정적으로 결정했었다.
반면에 3단봉과 LED라이트는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특히 LED라이트는 손 안에 딱 들어가는 사이즈임에도 백색광과 적색광을 마치 레이저처럼 뿜어내는데 나는 범죄자들이 그 강렬한 색채에 순간적이나마 이지를 상실하고 공포에 질리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그 때 확신했었다.
라이트에 너무나 만족했던 나는 청색과 녹색 모델을 하나 더 주문했다.
그리고 망토.
인터넷과 패러디 물에서 지겹게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 망토 문제였지만 나는 그걸 쉽게 내다버릴 수는 없었다.
망토에 매료되어 있던 나는 그것을 어렵기는 하겠지만 몇 번 연습만 한다면 충분히 제어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던 것이다.
발과 다리를 보호할 물건으로는 독일 특수부대에서도 사용하는 택티컬 전술 부츠를 사용했다.
특히 발차기를 하는데 있어 위력 증대에 정말이지 제격인 물건이었다.
지금 만들려고 해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골치 아팠던 코스튬 제작 중 가장 어려웠던 녀석을 꼽자면 단연 마스크 제작이었다.
처음에는 체인메일을 기본으로 질긴 가죽을 재질로 만들어 보았지만 너무 불편했다.
결국 질긴 가죽만으로 머리 전체와 얼굴의 상반부만을 가리는 암청색 마스크를 손수 제작했다.
만들고 보니 너무 밋밋하다는 생각에 은빛으로 빛나는 금속제 장식을 추가로 부착했는데 턱 덮개 부분 양쪽에 독수리의 부리와 같은 구조물이, 그리고 머리 양쪽의 귀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하늘을 찌를 것 같은 뿔이 완벽한 대칭 구조를 이루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눈과 입 부분은 드러나 있는 마스크를 써봤을 때 처음 든 생각은 그럭저럭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는 못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여분의 방탄 패드는 위험을 대비해 몸 여기저기에 집어넣는 것과 상의 어깨 부분에 청색 망토를 연결하는 마무리 작업이 끝나면서 대망의 코스튬 제작이 일단락되자 나는 좀 더 심각하게 슈퍼 히어로의 존재 의의 및 향후 일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슈퍼 히어로의 활약 기간을 대강 예측해보았다.
초능력이 아니라 단순히 일반인들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의 육체 능력에 기반을 둔 시점에서 나이의 제약은 큰 문제일 것이다.
꾸준한 몸 관리를 한다면 40대 초반까지 어떡해서든 활동 가능하겠지만 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역시 30대 중후반까지가 한계선이 될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었다.
지금부터 대강 15년. 더군다나 언젠가 군대를 가야 됐기 때문에 2년 정도가 또 빠지게 되었다.
결국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3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았을 때의 나는 굉장히 조급해졌었다.
길면 길다고도 할 수 있었지만 역시나 너무 짧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동시에 나는 과연 세상이 슈퍼 히어로라는 존재를 현실로 받아들여줄 것인가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
사람들은 과연 그리폰맨이라는 코스튬을 차려입은 자경단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법을 무시하는 정체불명의 미치광이 사나이로 몰려 체포당해 정신병원으로 끌려가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사실 자신처럼 실제로 코스튬을 차려입고 만화에서처럼 슈퍼 히어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미국에서만도 수십여명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몇몇 소수의 폐쇄적 집단 안에서 자기만족의 일상을 보낼 뿐 아무도 그들을 주목하거나 열광해주지는 않았다.
나는 그리폰맨이 어떤 멍청이의 할 일 없는 짓거리로 매도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사실을 너무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나는 그 당시 감히 해서는 안 되는 사악한 계획까지 품고 말았다.
마스크와 코스튬을 걸친 슈퍼 히어로가 존재하고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그와 대척되는 마스크와 코스튬의 슈퍼 빌런이 필수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맥 빠질 정도로 간단한 이론이었다.
어차피 슈퍼 파워가 없는 육체적 힘을 기반으로 한 자신으로써는 범죄자를 때려잡는 것과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이미 경찰과 소방관과 같은 사람들이 이미 하고 있는 일들이었다.
사람들은 그리폰맨의 특별할 것 없는 활약에 약간 특이해하기는 하겠지만 무관심하게 그리폰맨을 대할 것이다.
아예 신경도 쓰지 않거나 비웃음거리로 입에 담을 수도 있었고.
결국 그리폰맨을 빛내주기 위해서는 세계를, 아니 세계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시를 위협하는 슈퍼 빌런이 필요했다.
하지만 누가 한다는 말인가?
나는 끔찍한 상상으로 물든 채 완벽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그리폰맨의 코스튬을 한 번, 그리고 해외에서 주문한 여러 의상들 중 개조하다가 실패한 코스튬 몇 벌을 노려보았다.
결코 악의는 없었지만 그 근본 자체는 사악하기 짝이 없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결심했다. 이 현실에 슈퍼 빌런이 없다면 결국 나 자신이 하는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다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키를 더욱더 높여주는 키 높이 신발로 체격을 감춰 전려 다른 의상으로 차려입은 채 도시를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슈퍼 빌런이 되어 그리폰맨의 영웅적 활약상의 발판을 만든다는 결심을 굳혔다.
물론 정말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일종의 짜고 치는 연극을 그 때의 나는 구상했던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 당시의 나는 실로 파멸로 향하는 타락의 유혹에 발을 디딘 것이다.
만약 이후에 꿈들을 꾸고 그에 따른 사건으로 내가 공들인 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 지 두렵기까지 하다.
나를 괴롭히던 고민을 대강이나마 해결했다고 믿었던 나는 그리폰맨의 코스튬을 아주 조심스럽게 집어 들어 하나하나 입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코스튬을 차려입은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전신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멋들어진 포즈(이 대목에 사진을 붙여 넣었는데 보고 너무 비웃지만은 않기를 바란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최근에도 늦은 밤에 남몰래 추억의 코스튬을 입어보곤 했다)를 취한 채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었다.

“정말 죽이는군.”

분명 그런 비슷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직감적으로 이제 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세상이 그리폰맨이라는 슈퍼 히어로의 존재와 대면할 순간이!
기쁨과 흥분, 희열로 불타오르던 심장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키기 위해 친구를 불러내 술을 마시려 대학가 주변을 돌아다니던 순간 나는 여기는 좀 곤란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늦은 밤이라고는 해도 화려한 술집의 네온사인과 조명으로 오히려 낮보다 더 번쩍이는 느낌이었고 술에 취한 대학생들이 여기저기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코스튬을 걸치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히어로 활동을 하기에는 너무나 적합하지 않은 장소임에는 분명했다.
술에 잔뜩 취해 자취방에 비틀거리며 돌아온 그 날 늦은 새벽 나는 이 모든 미친 짓거리를 시작하게 만든 운명적 사건이 있던 그 곳, 삼촌과 함께 무술을 단련한 내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고향에 잠시 돌아온 그 날, 나는 너무 시간이 늦은 터이라 일단 내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으며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기묘한 꿈의 시작은 분명 그 날이었다.
난 침대에 누웠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그리폰맨의 코스튬을 완벽하게 걸친 채 불투명한 은빛으로 흐릿하게 빛나는 괴상한 공간 한 가운데에 서있는 나 자신을 인식할 수 있었다.
여기가 대체 어딘가 싶은 심정으로 당황해하는 것도 잠시 공간 전체를 차갑게 울리는 소음과 함께 누군가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깔끔한 고급 정장을 걸친 남자였다.
모자에 지팡이까지 한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이상하게 19세기 신사적 이미지가 강하게 떠올랐다.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백색광을 내뿜는 창백한 피부와 함께 인간적 면모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흐릿한 이미지의 얼굴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기계가 조각한 얼굴에서는 인간적 면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금속성 질감과 느낌을 강하게 풍겼다.
나이를 알 수 없는 그 남자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나면서 입술 또한 천천히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들, 그리고 나는 당신이란 존재에게 집단적으로 제안할 것이 있다-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할지라도 그것보다 무감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저를 구분할 수 없는 소름 끼칠 정도로 기계적 감성 아래 삐걱대는 목소리와 그 남자의 입술 움직임은 전혀 맞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나와 우리들은 너에게 줄 수 있다
부정하려 해도 소용없다. 우리들은 느낄 수 있다. 그 모든 신호를. 세포에서 느껴지는 정보를.
너는 욕망하고 있다.
힘을 갈망하고 있다.
우리들과 나는 기꺼이 그 소망을 들어줄 수 있으며 그럴 능력 또한 충분하다.
하늘을 날고 싶은가? 저 달까지?
총알보다 빠르고 싶은가?
강철을 가볍게 주무르고 싶은가?
모두가 경외하며 환호를 선사할 존재가 되고 싶은가?
단지 알았다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아주 간단한 계약 절차와 함께-

정장의 사내는 계속 지껄였다. 처음보다는 상대적으로 인간적이면서 매끄러운 말투로.
그는 찬란하게 빛나는 도시의 풍경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를 쳐다보는 그 남자의 눈동자는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위대한 도시의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다-

실재하는 것이라고는 절대 믿어지지 않을 은빛 계약서를 내 눈앞에 내보이며 그는 계속 음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주 간단한 대답.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서명만 하면 된다. 힘은 너의 것이다-

어느새 내 손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펜이 하나 쥐어져 있었다. 나는 메마른 목마름을 느끼며 침을 삼켰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도시의 너머로 누군가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리폰을 상징으로 삼은 슈퍼 히어로가 망토를 펄럭이며 환한 미소와 함께 빌딩과 빌딩 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분명 나였다. 마스크를 걸친 나 자신의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 특유의 불유쾌한 감각과 함께 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상한 꿈이군.”

그리고 그 날 하루 내내 나는 그 꿈의 잔향, 아니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괴상한 꿈의 영향 아래 마치 흐릿한 자주빛 안개로 가득 찬 미로에 갇힌 것마냥 멍청하게 헤맸다.
그 꿈의 감각을 애써 벗어던진 것은 침대 밑에 감춰둔 그리폰맨의 코스튬을 몰래 꺼내 아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을 때였다.
밤 9시가 다 돼서야 나는 힘겹게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동일한 꿈을 꾸었다가 다시 깨어났을 때 나는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나중에 모든 일이 끝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마치 제정신이 아닌 사람 마냥 멍청하게 있었다고 했다.
만약 그들이 개입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꿈의 영향력 아래 이지를 상실하고는 그 알 수 없는 남자의 제의를 받아들여버렸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 지 감히 추측조차 할 수 없을 노릇이다.
천만다행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 누군가가 내 꿈의 한 가운데로 난입을 해주었다.
벌써 세 번째 꿈의 중심에서 나는 한참을 그 정장을 걸친 무뚝뚝한 남자의 제안을 멍청하게 듣고 있을 때였다.
그 남자는 이제는 숫제 자기가 보여주는 그 모든 영상이 원래 나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이야기해대고 있었다.
우주 저 편에서 꿈틀대고 있는 사악한 존재가 나의 모든 기억과 힘을 봉인하고는 이 조그만 행성에 유배해놓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그의 이야기가 한참 절정에 접어들어 막 우주의 수호자로 이룩한 그 모든 과업에 대해 다시 한 번 반복하려던 찰나 회색빛 옷을 입은 누군가가 나와 그 남자 사이로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핸섬하면서도 조금은 느끼하게 생긴 그는 아무리 봐도 군복 같은 회색빛 옷을 가볍게 손으로 털며 외쳤다.

“개새끼가 지랄한다.”

인상 깊은 욕설이 끝나고 그 다음으로 일어난 일은 지금 생각해도 어안이 벙벙할 정도이다.
그 정장의 남자는 기괴한 금속성 울부짖음과 함께 은빛으로 번쩍이는 인간을 닮은 무언가로 변모하더니 총을 꺼내들어 푸른빛의 빔을 난사해대는 그 회색빛 군복의 사나이에게 달려든 것이다.

“이런 제기랄, 너 잘 걸렸다! 이 망할 고철 덩어리야, 내가 널 박살을 내주마!”

걸걸하게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고 하루 내내 생각했지만 나는 설마하니 그 다음날에도 그 꿈이 동일하게 전개될 줄은 몰랐었다.
정장을 쫙 빼입은 남자는 언제나처럼 내 앞에서 그 모든 설명을 주절주절 내뱉고 있었다.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고 수긍하게 만드는 마력의 이야기들을.
내 안에 깊숙이 숨겨진 욕망과 갈망을 자극하는 달콤한 유혹의 말들.
점차 정신이 몽롱해지는 나를 다시 제정신으로 깨우게 만든 것은 역시나 거칠게 울부짖는 것 같은 고함이었다.

“젠장할 자식! 어제는 잘도 이 나를 이 꼴로 만들었겠다! 비겁한 놈! 이번에야말로 네 놈을 개 패듯 두들겨주마!”

어제의 그 남자였다. 얼굴이 상처투성이라는 점이 조금 다르기는 했지만 틀림없는 어제의 그 남자였다.
내 앞에서 한참 설명을 하던 정장의 남자의 두 눈이 은빛으로 빛나면서 순식간에 몸을 돌리는가 싶더니 역시나 전신이 매끈하기 그지없는 은빛 형상의 인간체로 변모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 꿈은 끝이 났다.
나는 멍청하게 한동안 침대에 앉아 있었다. 아직도 귓가로 들려오는 것 같은 그 선명한 울부짖음을 떠올리며.
그리고 그 날 나는 누군가와 조우할 수 있었다. 그 때는 분명 내가 홀로 고독을 씹으며 야외 벤치에 앉은 채 근처 편의점에서 사온 캔 커피를 조금씩 마시고 있을 때였다.
정확히는 한낮이 지난 오후 즈음이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염색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어두운 청색 빛 머리의 남자가 미소와 함께 유창한 우리말로 인사하며 다가왔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답인사를 했지만 꽤나 당황한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를 자세히 보자니 내가 인생을 살아오면서 본 그 어떤 배우보다 더 뛰어난 외모를 가진 남자였다.
왜 그 때 내가 그를 외국인이라고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잘생기기는 했지만 완전한 서구적 외모는 아니었고 그렇다고 완벽한 동양적 외모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얼굴이었다.
단지 묘하게 이질적 외모에게 풍겨오는 그 느낌과 머리카락 색 탓에 그냥 그 남자를 외국인이라고 판단했고 지금이나 그 때나 외국인에 별로 익숙하지 못했던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 순식간에 내 옆으로 다가왔다.
눈을 가릴 정도로 긴 앞머리 탓에 그의 두 눈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동자가 푸르게, 그리고 어둡게 빛나는 것 정도는 긴 머리카락들이 드리운 그림자 너머로 볼 수 있었다.

“요즘 꽤나 이상한 꿈을 꾸시고 있을 겁니다. 아니, 분명 그러시겠죠.”

내가 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으로 황당해할 동안 그는 마치 신이 직접 조각한 것 같은 완벽한 외모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입술로 부드럽게 웃음을 지었다.

“일단 지금까지 잘 버텨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을 꿈을 진정으로 실현시키려 노력하는 그 열정에도 탄복하는 바입니다. 개인적으로 부럽군요.”

나는 그 때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 당시 분명 직감적으로 그가 말한 꿈이 슈퍼 히어로로써의 비밀스러운 신원과 자경 활동임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그 때 내가 눈에 띄게 공포에 질렸던 모양인지 그 남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에게 사과했었다.

“놀라시게 해드렸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럼 전 이만 가봐야겠군요.”

그는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에게 말을 했었다. 찬란한 햇빛이 그를 비춰주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머지않은 순간에 곧 만나시게 될 겁니다. 저나 당신이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말이죠. 음, 제가 한 가지만 말해드리자면 당신의 신념을 어떤 존재가 악용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럼 안녕히....”

나는 눈만 껌뻑이며 그 남자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이 인간이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하는 깊고 깊은 의문과 함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사람이 대체 무슨 소리를 했던 것인지 하는 궁금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피곤한 몸을 푹신한 침대에 눕혀 긴장을 풀자 어느새 은빛으로 일렁이는 기기묘묘한 공간으로 또 다시 와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타난 너무나 익숙한 남자.
이어지는 열정적 설득.
아마 그 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만약 그 남자가 난입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수작에 넘어가 힘을 손에 쥐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을 지는 오직 신만이 알겠지.
계약서를 내밀었을 때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받아들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모습을 내려다보니 어느새 그리폰맨 코스튬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사내는 종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펜을 들어 천천히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만 힘을 주어 의식에 맡긴다면 그걸로 끝이었을 것이다.

“죄송하지만 이건 제가 맡아두어야겠군요.”

부드러우면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들기 전에 만났던 남자가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언제 자신의 손아귀에서 사라졌는지도 모를 은빛 펜이 잡혀 있었다.
어두운 청색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드러나는 푸른 눈동자의 반짝임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깊이를 알 수 없으며 친숙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바다와 같은 눈동자가.

“조금 아슬아슬했지만...그래도 때를 맞춘 것 같군요.”

은빛 펜이 순식간에 우그러지더니 흔적도 없이 박살이 나버렸다.
나는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저렇게 간단하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쳐다보다가 공간 전체를 뒤흔드는 괴성이 들려오자 곤란하다는 표정을 언뜻 지었다.

“이런,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제는 무섭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은빛 형체의 인간이 거칠게 울부짖으며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혈투.
보통은 이 시점에서 잠에서 깨어났지만 여전히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꿈 속에 있는 상황에 의아해 했겠지만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생사를 초월한 것만 같은 그 치열한 접전을 나는 단지 입만 딱 벌린 채 볼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아마 침도 조금 흘렸을 것이다.
그 때 나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름 일반인보다 우월한 범주에 속한다고 자부하던 나였지만 가소로운 치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저들이야 말로 진정한 초인들, 인간을 초월한 존재들임을!
최대한 눈에 힘을 주고 집중했지만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인간의 형체로 추정되는 흐릿한 잔상이 공기를 찢어발기는 괴성과 함께 나타나는 것을 간신히 인식할 뿐이었다.
그 형체들이 맞부딪치면서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른 섬광과 함께 폭발음이 들려왔다.
여기저기서 푸른 불꽃이 화려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최면이나 환각에라도 걸린 것처럼 제대로 굴러가지 않던 머리가 점차 맑아지면서 나는 적과 아군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었다.
거의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연속적인 꿈을 연이어 꾸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인간이 아님에 틀림없는 저 은빛 형체는 끈질기게 자신을 유혹했었다.
유치원생도 누가 나쁜 놈이고 착한 놈인지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제정신을 차린 그 때의 나는 회색빛 옷을 입은 남자를 어떻게든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승패가 쉽사리 나지 않는 팽팽한 전투의 현장 속에서 고민하던 나는 아주 미세한 틈이 결국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제대로 된 형체도 보이지 않는 그들의 싸움에 온 시선을 집중하며 벨트 한쪽에 있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았다.
다행히도 있었다!
인터넷에서 구입한 호주제 부메랑이자 그리폰랭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투척 무기가!
필사적으로 형체를 분간하려고 노력하던 나는 은빛으로 빛나는 무언가를 한순간 포착해내는데 성공하자마자 그리폰랭을 힘껏 내던졌다.
얼음이 깨지는 것 같은 차가운 파열음이 울려 퍼지더니 인간을 흉내 낸 은빛 형체가 아주 잠시 휘청이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나는 볼 수 있었다. 미소와 함께 두 눈을 붉게 빛내면서 마치 유령처럼 달려드는 남자를.
푸른빛으로 빛나는 칼이 아주 정확히 녀석의 가슴에 찔러 넣은 그는 순식간에 뒤로 이탈했다.
한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칼에 꿰뚫린 채 괴성을 질러대는 은빛 인간을 쳐다보았다.
어두운 청색 머리카락의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그 모습을 쳐다본 채 총을 겨누고 있었다.
칼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은 점차 선명해지더니 푸른 불꽃과 함께 폭발했다.

“맙소사!”

가슴이 흉물스럽게 박살이 난 그 녀석은 잠시 비틀거리더니 바닥에 떨어진 얼음 조각처럼 천천히 부서져 내렸다.
그리고 내 옆에는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그 남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끝이군요. 하하하.”

나는 겨우 이 말만을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세상에, 저건...그러니까 저건 대체?”

그는 미소와 함께 대답해주었다.

“아, 별 거 아닙니다. 그냥 맛이 간 기계죠. 고도로 발달한 존재이긴 해도.”

이야기 도중 나는 주변을 둘러싼 공간이 점차 무너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로 은빛으로 일렁이던 공간이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태평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저 녀석들은 당신을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당신은 일반인과는 다른 특이점 성향을 꽤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잘만 하면 시공간을 뒤흔들 수 있는 특이점을 말입니다.”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이리저리 쳐다보았다.

“녀석들은 당신을 자신들의 노예 비슷한 도구로 삼아 시공 연속체를 뒤흔들 생각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나저나 옷 멋지군요.”

그는 고개를 들어 빛 자체를 흡수해버리는 것 같은 칠흑으로 변해버리고 있는 은빛 공간을 쳐다보았다.
나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보는 이로 하여금 유쾌한 기분과 호감이 들게 만드는 미소로 말했다.

“이제 슬슬 헤어질 시간이군요. 제 이름은 제라드입니다.”

“아...저의 이름은...”

그 때 나는 본명을 말하려다가 한순간 머뭇거렸다. 그런 나를 그 제라드라는 이름의 남자는 미소와 함께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고.
결국 결심한 나는 굳게 닫힌 입을 열고 내가 목표로 했던 그 이름을 당당하게 외쳤다.

“저의 이름은 그리폰맨 입니다!”

그는 비웃지도, 놀라워하지도 않는 침착한 얼굴로 나에게 말해주었다.
제라드의 눈동자는 분명 어둡고, 그리고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멋진 이름이군요. 정말 멋집니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최상의 칭찬이었다. 내가 감사의 말을 하려던 순간 곧바로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 기이하기 그지없던 연속적 꿈은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제라드라는 남자와의 대면 이후 자취집으로 돌아온 나는 며칠을 방 안에 틀어박힌 채 음악을 들으며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비싼 돈과 모든 노력을 퍼부어 만든 코스튬을 벽장 한 곳에 쑤셔 박아 넣었다.
그렇게 내가 꿈꾸던 슈퍼 히어로의 삶과 인생은 끝이 나버렸다.
나는 그렇게 그냥 포기해버린 것이다.
자, 이제 이야기를 종결할 시점이 다 됐다.
지금 이 순간까지 나는 평범하게 남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신할 수 있다.
친구를 사귀고 직업을 구했으며, 또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불만족스러운 마음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내가 포기했어야만 했던 그 찬란한 꿈.
만약 누군가가, 의협심이 넘치고 정의로 충만한 나의 후손이 이 글을 발견한다면 한 번 고려해봤으면 한다.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는 슈퍼 히어로의 등장은 아직 현실이 요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먼 미래라면, 지금 이 시대보다 기술이 발달돼 초인적 능력을 인공적으로 발휘해줄 수 있거나 혹은 지금 이 시대가 퇴락해 야만과 무지, 그리고 악이 판을 치는 시대라면 손쉽게 슈퍼 히어로의 등장이 용인되지 않을까 나는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나는 소망한다.
나의 후손 중 하나가 나의 못다 한 꿈을, 우리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슈퍼 히어로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언젠가 이루었으면 하는 소망을.
물론 내가 살아있을 때에는 그걸 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아주 미약한 시작점 정도는 구축해놓고 떠나가려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을 덧붙이자면....
슈퍼 히어로가 되겠다는 꿈에 부푼 나머지, 그러니까 오직 결과를 추구하기 위해 무차별적 수단을 동원하지는 말라는 것.
그리고....만약 누군가가 꿈에서 친절하게 웃으며 그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주겠다고 유혹할 때에, 그 어떤 달콤한 환상을 보여주든지 간에 과감히 거절해야 된다.
이 두 가지 사실과 내가 쓴 이 모든 것들, 그리고 슈퍼 히어로가 되겠다는 굳건한 결심과 정의 실현을 위한 마음만 있는 다면, 이 글을 읽을 이름 모를 너는 분명 훌륭한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나는 가히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1379 단편 책도둑 냠냠 2009.09.06 0
1378 단편 기던 용4 호워프 2009.09.08 0
1377 단편 소녀시대에게10 우상희 2009.09.09 0
1376 단편 손은 낚아챈다 메이 2009.09.09 0
1375 단편 그림자 숲. 고담 2009.09.10 0
1374 단편 그녀의 이름은 라돈1 Mothman 2009.09.15 0
1373 단편 붉은 눈, 검은 혀4 박하 2009.09.17 0
1372 단편 새와 태양, 거인, 그리고 용 Mr.Jones 2009.09.26 0
1371 단편 Concept Black, Prologue LeftHander 2009.09.27 0
1370 단편 경계 (Border) 하로리 2009.09.28 0
1369 단편 우아한 생활인2 세이지 2009.10.02 0
1368 단편 소원 cena 2009.10.04 0
1367 단편 무림괴수 Mothman 2009.10.14 0
단편 Gryphonman # 1 Mothman 2009.10.14 0
1365 단편 내가너를무심히바라본다 yzombie 2009.10.15 0
1364 단편 Bon Voyage, Monsieur Lupin! Mothman 2009.10.15 0
1363 단편 나방과 유화등4 안단테 2009.10.16 0
1362 단편 엽편) 긴 밤 DOSKHARAAS 2009.10.21 0
1361 단편 승진과학 혁명14 김몽 2009.10.22 0
1360 단편 해와 달의 생사여탈권4 안단테 2009.10.25 0
Prev 1 ... 37 38 39 40 41 42 43 44 45 46 ... 11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