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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우리는 아비는 같으나 어미가 서로 다른 남매로 오랫동안 불리웠다.





이야기란 숲과 같다고, 누군가 말했었다. 우리를 둘러싼 설림(說林)은, 동네의 수군거림을 먹고 쑥쑥 자라났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니, 정확히는 귀가 유독 밝은 나에게, 마을의 수군거림은 방구석의 쥐처럼 들락날락거렸다. 눈과 귀가 심히 어두워, 말조차 잘 하지 못하는 누이는, 언제나 그렇듯, 차분하고 밝으신 두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햇볕 젖은 마당 한 구석에 태평히 앉아 있었다. 늘 일 때문에 부재하신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두 어머니도 약속이나 한 듯, 설림의 그늘에서 끝없이 자라나는 풍문(風聞)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어머니가 비록 나이 차는 조금 많이 났지만, 그래도 역시 어젊은 나이에 똑같이 구천으로 떠나시던 날, 나는 어쩌면 두 어머니 중 밝은 어머니는 깔깔 웃고, 차분한 어머니는 말없이 미소지으며 미리 약속이나 한 듯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살 위의 누이 손목을 꼭 잡고, 말없이 말없이, 아버지가 올 때까지 그렇게 기다렸었다.







저녁 무렵 노을을 지고 돌아온 아버지가 날이 밝기를 기다려, 어깨에 내린 이슬을 털며 두 어머니를 어미뫼(母岳)에 모시자, 동네의 수군거림은 파도가 되어 우리 집을 덮쳤다. 두 어머니가 죽던 날에도 별 말없이 안온했던 아버지는, “가자.” 쉰 목소리 한 번으로, 가난한 살림살이를 정리했고, 우리를 앞세워 그 분들을 모신 어미뫼로 봇짐 진 발걸음을 옮겼다. “어이그, 다리도 성치 않은 양반이, 그 깊은 산 속에서 애들을 기른다구? 에미들 따라 애들꺼정 보내지나 말어!” 누군가 쏘아낸 말이 화살처럼 아버지의 좁고 가녀린 등골에 박히는 순간, 나는 눈빛이 칼날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때야 알았다. 내 옆에 멀뚱히 서 있던 누이의 그 어두운 눈망울에도, 아버지의 칼날 같던 눈빛은 확연히 들어왔던 모양이었다. 그 눈빛에 온 몸이 저려, 우리는 어미뫼에 들어온지 한참 만에야, 비로소 발길 뒤에 끌린 발자국들을 돌아보며, 점점이 눈물을 떨구었던 기억이 난다. 등 뒤로 어렴풋이 폭발하듯 터지는 아버지의 오열 때문에, 나는 깊어지는 슬픔의 무게에 고개조차 돌릴 수 없었다.










1.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이, 우리의 삶 또한 단조로워 별다를 게 없었다.





눈을 뜨고 일어나 움막의 삽짝문을 열면, 이른 잠을 깬 산새들이 바람을 가르며 태양을 향해 날아올랐다. 어미뫼는 멀리서 볼 때는 크고 산세가 장대하여 험산(險山)으로 오인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발 닿는 길마다 부드러운 흙이 가득 깔려 있어 걷다 보면, 제 걸음에 취해 모르는 새 정상까지 오르기가 예사였다. 비록 아들이었으나 누이에 비해 체력도 체격도 모자란 나조차, 어미뫼에서만큼은 편히 걸을 수 있었고, 저녁상의 아버지는 평소처럼 웃음을 꺼내보였다.



“네 어미들을 모셨으니 산도 그를 닮는가보다.”



그리고는 역시 듣지 못한 채 묵묵히 밥만 떠넣는 누이를 한참 건너다보다가 다시 말이 없었다.





눈이 어둡고, 냄새도 잘 못 맡고, 귀가 막혀 말조차 배우지 못한 누이지만, 손끝만은 희한하게 야무졌다. 흙 냄새 가득한 건넛방에서 누이의 머리맡을 가볍게 흔들어 깨우면, 누이는 번쩍 눈을 뜨고, 재빨리 아침밥을 지어, 단촐한 상이나마 소담스레 내놓았다. 거친 감자밥에 건더기 없는 국과 나물 두어 가지가 늘 올랐고, 가끔 아버지가 놓은 덫에 꿩이나 산토끼가 걸리는 경우도 있었으나, 흔치 않았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덫에 치여 평생을 이리저리 씹히며 사느니, 차리리 입과 배가 허전한 편이 백 번 나았다. 나도, 누이도, 아버지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기에, 마을에서 지냈을 때보다 더욱 허전한 밥상을 탓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나서, 가까운 밭으로 일을 하러 가기 전, 우리는 항상 두 어머니의 무덤에 들렀다. 한 가지 아쉬운 사실은, 아버지도, 그리고 두 어머니도, 누가 나의, 그리고 누이의 친어머니인지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우리는, 우리가 각자 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어느 한 어머니가 우리 둘을 몽땅 낳았는지, 이도저도 아니면 젊었을 적, 한 대륙을 오랫동안 떠돌았다는 아버지가 사실은 우리를 어디 먼 곳에서부터 데려왔는지 진실로 알지 못했고, 그래서 귀가 성한 나를 후비듯 들려오는 질문과 수군거림에도 속시원하게 대답해줄 수가 없었다. 물론 내가 정말로 그 답을 알고 있었다고 해서, 동네 아낙들의 심심파적 삼은 질문에 답변을 던질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다.





사실, 그렇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두 어머니께 간단히 아침 문안을 올리는 동안, 아버지는 늘 했던 말을 반복했다. 두 어머니가 살아 계시던 시절 그대로, 낮고 굵으며, 생기 있게 촉촉히 젖은 목소리였다. 하얗게 센 머리와 눈가와 이마에 금가듯 잡힌 주름에 비해, 이목구비는 전체적으로 맑았고, 목소리는 거의 늙지 않아 그 또한 마을을 둘러싼 설림을 키우는데 좋은 양분이 되었다.





“사람이 죽으면 그 넋이 혼(魂)과 백(魄)으로 나뉘어, 백은 땅으로 스며 꺼지고, 혼은 하늘로 올라 명부(冥府)로 가게 되느니라. 하지만, 이 어미뫼는 너희 어미들이 살아 생전 즐겨 찾던 곳이니, 아마도 그리 쉽게 다른 곳으로 갈 것 같지 않구나. 정성껏 안부를 여쭙거라.”



“예.”





나는 짧게 대답하여 두 어머니께 절을 올렸고, 멍청하게 섰던 누이도 그제서야 엉거주춤 따라하는 게 늘 습관이었다. 두 어머니의 자색을 닮은, 길쑴하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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