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펌] 귤말랭이 괴담

2014.05.13 23:4605.13

이건 내가 몇 년전 대학 들어간 해 여름에 겪은 일인데


내 친구가 어느때부터 때깔이 나고 얼굴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음. 원래 편의점 김밥이나 컵라면만 하루 한끼씩 먹고 다녀서 광대뼈 다 드러나게 빼짝 마른 게 해골 같이 얼굴이 장난 아니었는데. 어째 된 거냐고 물어보니까 자기가 아는 빈 집에 가 보면 항상 광에 먹을 게 놓여있다는 거야. 그 친구가 자취에 막노동해서 집밥도 잘 못 먹고 그랬거든. 근데 거기 가면 맨날 밥이 있으니까 막 먹고 오고 그랬나봐. 생각해 보면 미친 놈이지;; 누가 차린 건지도 모르고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막 먹어;; 그리고 빈 집이든 폐가든 뭐든 주인이 있을텐데 허락도 안 받고 들어가서 먹고 나오면 도둑질이나 마찬가지잖아. 얘기 듣고 내가 하지 말래도 그 친구는 괜찮다고, 그 집 밥 맛있다고 너도 먹고 싶으면 오라는 거야. 진짜 개미친 놈;;;


그러다 여름 방학 중간에 그 친구를 만났는데 막노동 하는 꼬라지로 웬 유리병을 신주단지처럼 안고 나오더라고. 보니까 귤말랭이가 반쯤 차 있는데 또 그 집 광에서 가져온 거래. 만나서 얘기하는 내내 하나씩 꺼내서 우물거리고 있는데 귤 향기가 너무 좋아서 거기 있는 애들 너도나도 하나만 달라고 함. 그 새끼는 도둑질한 게 뭐 좋은 거라고 지꺼처럼 나눠주고. 시발 근데 진짜 맛있더라;;; 꿀에 재운 것도 아니고 별 손질 안 하고 그냥 얇게 썰어서 볕에 바짝 말린 것 같은데 겉은 적당히 마르고 속은 안 말라서 쫀득쫀득한 게 시발 존맛;;; 완전 쩔었음;;;; 지금 생각해도 침 나옴......내가 나중에 엄마 졸라서 해달라 하고 나도 배워서 몇번 해 먹어 봤는데 그 맛은 안 나옴. 레알 신의 솜씨였음......


근데 그 새끼는 귤말랭이 나눠주고 난 다음엔 몇 번 못 먹었음. 그 친구 화장실 간 동안 너도나도 가져가서 금방 바닥 났거든. 돌아온 그 친구 빈 병 보더니 울더라. 진짜 움. 내가 이걸 어떻게 얻은 건데 부터 시작해서 니들이 새로 사 낼 거냐 다시 만들 거냐 온갖 지랄을 다 떠는데 진짜 추해서 욕 나오더라. 야 너희들 먹는 거 가지고 싸우지 마라. 입에 들어가는 거 나중엔 다 똥으로 나오는데 뭘 그렇게 집착함?


어쨌든 그 친구가 진짜 한참 오만 욕을 다하면서 개진상을 떠니까 같이 모였던 애들 중 하나가 진정시키려고 말을 꺼낸 거야. "가서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하면 안 되냐? 쪽지 같은 거 써서 놔두지?" 난 당연히 미쳤냐고 했지. 이 새끼가 이제까지 몇끼를 훔쳐먹었는데 들키면 경찰에 신고당하는 거 아니냐고. 신고는 안 당해도 무슨 소릴 들으려고 훔쳐먹은 걸 티를 내? 근데 이 미친 새끼는 그거 아이디어 좋다면서 당장 해야겠다고 하대? 듣다가 제정신인가 싶어서 말리는데도 죽어도 한다면서 내일부터 당장 써 놔야겠다고 그러는 거야. 내가 어이가 없어서......그래 해 봐라 그러다 그 집 사람들한테 맞고 경찰서 가면 다 네 팔자지 싶어서 놔뒀음.


사실은 그때쯤 내가 의심하고 있던 게 이 새끼가 낮에 집 빈 곳에 몰래 들어가서 차려놓은 밥상 먹고 나오는 거 아닌가 싶었거든. 빈 집에 음식만 차려져 있는 게 어딨음? 그것도 안 쓰는 물건 채워놓는 광에. 게다가 '광' 있는 집이란 말 자체가 그 집이 옛날 집형태란 소린데, 요즘 아파트나 빌라 주택에 살지 누가 광을 써. 옛날 기와집 초가집이면 광이 있겠지만 시발 한 평도 금싸라기 땅인 서울에 누가 자리 많이 잡아먹는 그런 집을 빈 데로 놔둠? 한 마디로 그 새끼가 말하는 건 앞뒤가 하나도 안 맞았음.


그런데
그 친구가
일주일 후에
귤말랭이 병을 또 들고 왔음..............


네가 말한 대로 하니까 됐다고 처음 쪽지 얘기 꺼낸 놈 칭찬을 엄청 하더라. 게다가 먹고 싶은 반찬 얘기도 써 놓으니 다 줬다고 막 자랑을 하는 거야. 덕분에 방학 때 포식한다고. 이때쯤 같이 몰려다니던 새끼들 호기심이 머리 끝까지 차올라서 서로들 가보자고 막 그랬지. 걔는 좋다고 따라오라 하고. 나도 궁금해서 같이 갔음. 갔는데..............내가 미쳤었지 그때 정신 차리고 나 피곤해서 먼저 들어간다 하고 끊어야 됐음.


군중심리가 뭐라고 한꺼번에 우우 몰려가긴 했는데 생각 외로 시간이 진짜 많이 걸렸음. 지하철 타고 한참 외곽으로 가서 또 한참을 걸었는데 점심 때 출발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해가 질락말락 하더라. 여름이라서 땀은 삐질삐질 나고 벌레들은 귀아프게 우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게 아깝다고 아이스바 하나씩 사서 물고 쭉쭉 빨면서 끝까지 갔거든? 어 길에 아스팔트가 안 깔려있네? 흙길이다? 이상하게 조용하다? 싶더니 갑자기 집이 불쑥 나오는 거야. 그때 열 명 넘게 있던 사내자식들이 전부 할 말을 잊고 섰음. 딱 글씨로 써 놓은 것 같은 폐가였거든. 문간에 거미줄은 기본이고 외벽은 중간이 반 허물어졌는데 그 너머로 보이는 집 문풍지는 다 뚫려 있어. 늘어져 바람에 흔들흔들 거리는 게 꼭 귀신 옷자락 같지, 보기만 해도 등줄기가 오싹한 거야. "이번에도 또 뭐 차려져 있으려나."하며 희희낙락해서 들어가는 친구가 꼭 정신 나간 놈 같더라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밥상은 있었음. 오래 써서 이도 몇 개 나간 조막만한 반찬 그릇에 오목조목 갖가지 찬거리가 가득 담겨 있고 가운데는 막 지어 따끈따끈하게 김 오르는 고봉밥이 한 그릇. 그게 쟁반에 담겨서 사방에 먼지 쌓인 광 가운데에 얌전하게 놓여 있는 거야. 옛날에 많이 쓰던 놋쇠 젓가락이랑 수저도 딱 한짝 놓여 있고. 친구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광 바닥에 앉아서 퍼먹기 시작하다 우리도 한 입 먹어보라고 권하는데 정작 서 있던 우리는 진짜 기절할 것 같았음.


광이 진짜 버려진지 오래된 게 너무 티가 나는 게, 벽에 두서없이 온갖 다 낡은 세간살이가 쌓여 먼지가 허옇게 덮인데다 뚜껑이 반쯤 깨진 뒤주가 문가에 있었는데 당장 귀신이 비집고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음. 게다가 해는 다 져가지, 다 낡아 쓰러져가는 집은 바람이 불 때마다 끽끽 거리지, 실은 존나 겁났는데 그거 말했다간 가오도 안 살고 쫄았냐고 다들 놀릴 것 같아서(지들은 안 쫀 것처럼) 티 안 내려고 기를 쓰고 노력했거든? 근데 자릴 뜨자니 우릴 데리고 온 겁없는 새끼는 밥만 처먹고 있고, 들어가자니 왠지......는 무슨 존나 꺼림칙했음. 그러다 누가 말을 꺼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야, 그거 밥상 갖다준 사람 발자국 어딨냐?"하고 누가 말함.




광 들어가는 길에 쌓인 먼지야 밥 훔쳐먹던 놈이 이번 밥상도 처먹겠다고 들어가며 흩어놓은지 오래였는데 우리가 생각을 못 했어. 전부 다 한 명도. 그냥 완전히 혼이 빠져서 뭐라뭐라 소리를 지르면서 발자국을 찾고 있는데......그거 있잖아? 갑자기 쫙 조용해지는 거. 남자가 열이 넘게 있는데 다 동시에 입 딱 다물고 벌레 소리도 새 소리도 안 나게 조용해졌음. 한박자 늦게 광 안에 퍼질러 앉아서 흰 쌀밥에 부추전이며 온갖 나물이며 볼따구 터지게 집어넣던 친구놈이 무김치 어석어석 씹는 소리만 들리고. 그쯤 되니 걔도 좀 뻘했나 보더라. 씹던 것 꿀꺽 넘기고 입 벌려서 뭔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는 게, 그때 너무 조용해서 그 놈이 입 벌리고 숨 들이키는 소리까지 다 들렸거든. 그때


갑자기 광문이 쾅 닫혔음.


씨발 지금도 그때 생각하니 오금이 저리네. 지금도 그런데 그땐 어땠겠냐? 당연히 전부 다 혼비백산해서 비명 지르고 난리가 났지......발이 꼬여서 저 혼자 땅바닥에 엎어지고 허우적대다 서로들 밀치며 도망치고 그러다 담벽에 팔 갈리고 무릎 깨지고 완전 난장판에 엉망진창이었다니까. 다들 혼이 쑥 빠져서 눈 뒤집고 먼저 빠져나오려고 서로 밀어대고. 아 썅 지금 생각하니 또 열받네 서로 살려고 밀쳐대는 것들을 친구라고 진짜. 이때 이야기 어쩌다 한번 나오면 존나 뿜기면서도 미안해서 서로 눈을 못 마주침. 아무튼 거깄던 애들 전부 다 호러 영화에서 엑스트라 배우들이 비명 지르는 것처럼 끼야아아악! 끄아아아악!! 난리법석을 떨며 도망나왔는데 전부 광에 남아있는 그 자식은 까맣게 잊어버린 거야, 그만.


집은 산 속에 있었는데 거의 대로까지 다 나와서야 다들 헥헥거리면서 숨 돌리는데 한 놈이 말하더라고. "야, OO 없어?" "없어? 없네? 뒤에 있나?" "뒤쳐진 거 아냐?" "없는데?" 잠깐 침묵이 돌곤, "그 새끼 창고에서 아직 처먹고 있냐?" "그런가 보다. 시발......" "씨발, 못 먹고 죽은 귀신 붙었나." 다들 그 말에 동감이었지. 그러곤 다들 다음 말을 안 꺼내고 머뭇머뭇거리고 있다가, 한 명이 말했어.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다시 돌아가야지. 그 새끼만 버려두고 집으로 다 토낄 수는 없잖? 나중에 무슨 소리 들으려고. 지가 티끌만큼 손해를 봐도 지랄지랄 떠는 새끼였는데 거기서 도망갔으면 아주 뒤끝 작렬했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진짜 귀신 나올 것 같은 폐가에 해가 다 져가는데 혼자 남겨두고 오는 건 양심이 존나 찔리고......진짜 다들 목에 밧줄 걸려 사약 먹으려고 끌려 들어가는 기분으로 미적거리다 발 질질질 끌면서 갔음. 그동안 시간이 확 지나서 해는......해고 뭐고 땅거미가 다 져가지고 슬슬 어두컴컴해지는데 사방이 나무니까 불빛도 없음. 다들 주섬주섬 폰 키고 불빛 비추면서 걷는데 아까 하도 정신없이 뛰어내려와서 이 길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애들은 걷다 보니까 성질이 나서 시발 분위기 보고 얼른 튀어나오지 그 새끼 썩아빠진 집구석 다 허물어져도 처먹고 있을 거야 개새끼 소새끼 말새끼 하고 온갖 동물 자식들을 불러가며 씹고 있었음. 그때 저 멀리서 희끄무레한 것이 다가오는 거야.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사내놈들 수다가 딱 멈추고 전부 다 얼어붙어서 쳐다봄. 맨 앞에 있는 놈이 냅따 튀려고 자세 잡는 게 보임. 아니 진짜 누구 한명 오줌 지려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니까? 그때 조금 간 큰 놈 한명이 진짜 토해내듯 말 함. "야, 귀신 아니야! 할머니네 할머니!" 그 말에 정신차리고 보니 하얀 한복 입은 할머니였어......그렇다고 우리가 마음 놓은 건 아니었고 밤 산길에 웬 할머니냐, 진짜 귀신 아니냐 하고 또 사내 자식들끼리 얼싸안고 튀려다가 가지 말라고 붙들고 아 썅 이거 놔라 난 가야겠다 한바탕 또 난리법석을 떨었음. 지금 생각하면 시발 존나 쪽팔림;;;


흰 한복......소복? 같은 거 입은 할머니는 우리를 발견했는지 더 빨리 걸어왔거든? 풀 밟는 소리 나는 거 들으니 귀신은 아니어서 다들 안심했는데, 아직 안심할 타이밍이 아니었음. 할머니랑 젤 처음에 가고 있던 내 눈이 마주치자마자 할머니가 말했음. "어디 가요, 학생들? 이 밤 중에?" 빙그레 미소지으면서 상냥하게 물으시길래 그땐 아무것도 몰랐으니 순순히 말했지. "저 위요." "저 위? 저긴 다 숲인데 한밤중에 올라가다 큰일이라두 나면 어쩌려구. 어서 내려가요, 어서." 여기까지 들으면 참 곱게 늙으신 좋은 분 같지? 거기서 어느 눈치없는 놈이......아니 그 새끼가 안 말했으면 내가 말했을 것 같지만...아무튼 생각없이 말한 거야. "그게 아니구요, 저 위에 집이 있는데 제 친구가 거기 갇혀서......" 여기서 할머니 목소리가 휘뜩 뒤집어졌음. "집? 집에 왜 친구가 갖혀?" 완전 괴기스럽게 돼지 목 따는 소리처럼 꽥꽥 거려서 나랑 뒤에 애들이랑 순간 완전 초 경직. 얼음 됐음. 그 앞에서 흰자위를 희뜩거리면서 할머니가 다시 소리쳤음. "니들이 왜 그 집에 들어가는데!! 미친 눔들 망할 새끼들! 남의 집에 왜 드러븐 발을 들여놔!!" "...로 시작되는 욕이 진짜 지금도 말로 옮길 수가 없는 내용이었음. 대학을 삼수까지 하고 들어가다 보니 주변 친구들도 슬슬 군대 갔다오고 해서 각종 레퍼토리의 욕설을 다양하게 섭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할머니는 아주 특출나셨음. 대충 부모 안부를 이것저것 물어대다가(여기까진 PC방에서 게임 좀 했다 싶으면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음) 신체의 중요한 부분을 각종 다양한 방법으로 채를 썰어서 갖가지 가축에게 먹인 다음에(여기서부터 군대 갔다 온 애들까지 얼굴색이 노래지기 시작함) 인생 전체를 싸잡아서 하류 인생으로 깎아내리면서(여기선 졸업 후 생계 막막한 과 애들 표정이 당장 자살할 것 같아짐) 아주 듣도 보도 못한 창의적인 욕들을 해 대는데......우와, 장난 아니더라. 열 살만 어렸어도 우리 전부 다 울음을 터트리든지 냅따 도망갔을 듯.


그래도 어쩔 수 있나. 들어보니 그 할머니 집인 것 같은데 친구는 데려가야 겠고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우리가 잘못한 것도 맞고. 고개 푹 숙이고 한참을 듣고 있으니 그 할망구가 뭐라고 궁시렁거리며 먼저 내처 위로 올라감. 우리야 뭐 도망갈 수도 없고 꾸역꾸역 따라갔지. 쭉 올라가니 우리가 아는 폐가가 딱 나왔음. 할머니는 역시 휘적휘적 아무 주저도 없이 걸어들어가서 우리 모두는 생각을 수정했음. 아, 폐가가 아니라 사람 사는 곳이었구나! 저 마귀 같은 할망구가 사는 곳이니 저런 모양이구나! 할머니는 우리가 밀치고 빠져나오느라 문 경첩이 떨어져 덜렁덜렁 달려 있는 문짝을 보면서 입 안으로 꿍얼꿍얼 욕설을 웅얼거리다가 싸게 니들 친구란 것 빼가지고 가버리라고 소리지름. 할머니 뒤를 졸졸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따라온 우리는 그제서야 슬금슬금 나왔음.


할머니 눈치 보느라 친구 이름은 소리 높여서 부를 생각도 못했어. 비척비척 다들 광 가까이 모여들어서 내가 먼저 광 문 손잡이를 잡아서 쭉 당겼지. 그런데 이게 삐꺽거리기만 하고 열릴 생각을 않는 거야. 아까 문이 세게 닫히면서 비틀려서 닫힌 것 같았음. 뒤 할머니가 없으면 걷어차서 바로 잡겠는데......하고 생각하면서 끙끙 거리는데 뒤에서 정말 벼락이;;;;; 내리쳐졌음;;; 난 정말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꽂힌 줄 알았음. 허리도 굽은 할망구가 무슨 힘이 났는지 양철 그릇 같은 걸로 내 머리통을 뒤에서 쌔린 거야. 시발...... 그때 주위에 있던 친구들 말론 내가 기절하는 줄 알았다 함. 비명도 못 지르고 무릎을 턱 꿇으면서 스르륵 뒤로 늘어져서...... 완전히 정수리를 얻어맞았는데 거기서 진짜 기절 안 한 게 용하지.


예상은커녕 상상도 못한 돌발상황이라 우리 전부 스턴상태였는데 할망구가 아까의 욕은 준비상태에 불과했다 라는 수준으로 하늘을 찌르는 욕설을 폭포수부터 시작해 넓고 깊게 흐르는 한줄기 강물처럼 퍼부어대기 시작하는데 과연 연륜이 묻어나왔음. 그 전에도 이후에도 내가 그런 욕설은 들은 기억이 없음 진짜 짱짱인 할머니였음 지금 내가 할망구랑 할머니랑 섞어쓰는 건 의도한 게 아니라 이거 쓰다가 그 욕설을 떠올리며 존경심이 들 때는 할머니 열받고 억울함이 솟을 때는 할망구라고 쓰고 있음. 그 욕설 내용이 우리를 싸잡아서 호로새끼 같은 도둑놈으로 모는 거였거든......한마디로 없는 친구 만들어내서 자기 집 뒤질 생각 하지 말고 그냥 가라 였음. 귀한 물건 넣어두는 광에 왜 손을 대냐고, 광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거짓말 치지 말고 다 튀어나가라고. 보니까 좀 앞뒤가 안 맞지만 욕설이 뭐 뇌 거치고 튀어나오나? 그런 것 치곤 할머니 욕설이 워낙 창의적이고 레퍼토리가 방대해서 이때를 위해서 몇십 년을 살아왔다 수준이긴 했지만.


우린 전부 어버버하고 있었는데 도망칠 수는 없었음. 어쨌든 친구인 그 망할 놈의 개새끼가 아직 안에 있을텐데 우린 이미 바로 바깥에 서 있잖아. 튀려면 산에 다시 올라오기 전에 벌써 튀었지. 어쩔 수 없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서서 듣고 있기만 했음. 한두놈이 그게 아니구요 할머니...하고 말을 가로막으려다 욕을 됫박으로 더 뒤집어쓰고 더 말을 못 했지. 문고리를 잡아당겼던 나는 근처 친구놈이 잡아줘서 일어나다가 그 할망구한테 당장 썩 꺼지라고 가슴을 떠밀렸음. 애들이 당황하면서 할망구를 잡으려니 또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거야. 그 와중에 광 안쪽에 있던 자식은 아까까지 쥐죽은 것처럼 조용하더니 살아있었는지 바깥에 소리가 들리니까 나 여기 있다고 쾅쾅쾅쾅!! 광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음. 광문에 낀 먼지가 부스스 떨어지고 시꺼먼 쇠 문고리가 덜그덕거리는데 그거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생각이(아마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은데) '저 새끼 저렇게 문 두드리다가 부서지면 장난 아니게 욕먹을텐데. 저 자식만 아니라 우리까지 지금 얻어먹던 욕설의 몇 배로.' 욕설의 수위와 다양성으로 보아 불가능한 일 같기도 했지만 우리 앞의 할머니는 욕에 관해선 우리의 상식을 훅쩍 뛰어넘는 분이셨음. '도망칠까? 의리를 지켜? 의리는 개뿔! 시팔 근데 혼자 내려가긴 산길 존나 어두워......심장마비로 죽을거다 분명히. 분명 죽는다...죽는다......근데 도망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우리 생각이 도망과 의리 사이에서 널을 뛰든 뭘 하든 쾅쾅쾅쾅쾅쾅! 광문은 부서져라 진동하고 쏟아지던 욕설이 서서히 수그러들었음. 마치 폭풍 전의 고요 같았음. 우리는 긴장감에 벌벌 떨며 곧 쏟아질 폭풍 천둥 비바람에 대비해 고개를 푹 수그렸음.


잠시 후 "흐아아아아악!!"하고 비명 소리가 울리며 어느 하나가 부리나케 도망가기 시작했음. 의리 없는 놈아 친구를 두고 결국 내빼냐...! 시발 나도 가고 싶다!! 라는 마음으로 겨우 고개를 들어 봤는데 그래도 친구라고 하는 놈들끼리 눈을 하나하나 마주쳤더니 없어진 놈이 없는 거야. 이거 무슨 조화지 하고 둘러보니 내 친구놈들이 아니라 그 할망구가 벌써 대문을 넘어서 저멀리 멀어지고 있었음. 흰 한복 뒷모습이 유령 그림자처럼 어른거렸다가 금방 어두운 숲그림자에 먹혀서 사라졌음. 우와......그땐 그냥 뭐지? 뭐지? 멍하니 보고만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소름 끼침. 진짜.


할망구가 사라지고 나서 또 한바탕 쾅쾅쾅쾅! 광 문 안쪽에서 친구새끼가, 아니 이제 친구라고 부르기도 싫은 시발 놈의 새끼가 광문을 연타하기 시작했음. 문 가까이 있던 한 놈이 "아 좀 닥쳐라 꺼내줄테니까 가만히 있어, 새꺄!!"하고 문을 몇번 빵빵 차고 나서야 잠잠해졌음. 우리는 서로 문을 밀어보고 당겨보고, 차는 걸로도 안 돼서 나중에는 두명 세명이 합쳐서 몸통 박치기를 해서야 겨우 뚫었음. 문짝이 태권도 대회 합판처럼 박살이 나고 먼지투성이인 바닥으로 몸통 박치기 하던 놈들이 쿠당탕탕 넘어졌는데, 참, 내가 우리가 광문 당기고 밀며 옥신각신할 때부터 집이 흔들린단 얘기 했던가? 안 했나? 그 집 완전 폐가였잖아, 완전 다 낡아 쓰러져 가는. 그게 문이 부서지면서 동시에 거의 괴물이 기에에엑 괴성 지르는 것처럼 소리를 내더니(이때부터 불길했는데) 와그르르 무너지기 시작했음. 진짜로. 안쪽부터 어두운데도 일어나는 먼지가 보일 정도로 풀썩풀썩. 오래된 나무집 흙벽이라 상해 있었나 봄 쓰러지는 속도가 진짜 순식간이라 문 근처에 있던 애들이 반사적으로 달려들어서 문 안쪽으로 쓰러진 두 놈 옷 잡고 질질 끌어내고 나니 집이 다 폭싹 주저 앉았음. 이게 뭔 사태야 하고 다들 넋이 나가 있는데 그 폐허 안에서 "아야야야야......사람 살려.........거기 누구 없어요? 사람 살려어......" 하고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올라오는 듯한 신음소리가...... 물론 친구도 아닌 죽일 놈의 웬수 새끼 목소리였지.


그 다음은 진심 우리가 처음 도망칠 때보다 더 난장판이었음. 무너진 흙이며 나무 부스러기 다 헤치고 보니 그 새끼 재수없게 대들보에 다리가 깔렸는데 아주 죽겠다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다 울다가 난리법썩을 피움. 119 부르니까 산길이라 그런지 차는 못 올라오고 아저씨들이 들것 들고 왔는데 대들보가 썩었지만 그래도 대들보라고 남자 열이 넘게 모여도 들 수가 없어서 - 발디딤이 광에 널려 있던 온갖 쓰레기들로 불안정한 것도 있었지만 - 구급차로 가서 다시 장비를 가져와서 간신히 틈을 만들어 빼냈음. 그 동안 그 새낀 자기 부상자라고 아파 죽겠나 피 나는 것 같다 나 죽겠다 고래고래 소리 질러서 같이 있기 진짜 괴로웠는데 우린 뭐 친구 버려두고 토낀 죄인이니 참았지......참았어...... 이러다 구급대원들 중 한 분이 보호자한테 연락해야 된대서 그 새끼 폰을 꺼내서 딴 친구가 전화를 했는데 어머님이랑 통화 연결되어서 누구누구 다쳤다고 전하니 옆에서 듣던 나한테까지 들리게 "뭐라구요, 학생?"하고 확 바뀌는 목소리가 심상찮았음. 어쩌면 소복 입은 욕쟁이 할망구보다 더 개진상일 수도 있는 목소리라 그 통화 듣던 친구새끼들 전원이 아......하고 넋나간 표정이 됨.



여기까지 보면 그럭저럭 흔히 있는 난장판이네 싶지? 진짜 사건은 이 뒤임. 멀대 같은 대학생 열몇명이 집 쓰러진 데 모여있었다. 뭔 일 했냐? 무슨 일이 있었냐? 이렇게 이야기가 흐르면서 경찰이 나타남. 기분 나쁘긴 했는데 안 딴 사람들 보기엔 좀 수상쩍었겠구나 싶었겠지. 결국 아픈 애 빼곤 전원 다 경찰서로 끌려갔음. 그냥 한쪽에 다 몰아 앉아서 돌아가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했는데 뭐 같이 있었으니 이야기는 다들 비슷하지. 가는 도중에 서로 말을 맞춰서 빈 집에 들어가 밥 훔쳐먹은 바보 새끼 도둑질 얘기를 쏙 뺐더니 진술 내용이 훨씬 단순해지기도 했고. 그냥 공포 체험 같은 걸로 빈 집에 놀러 갔단 식으로. 경찰은 남의 집 무단 침입 이것도 주인이 신고하면 경범죄야 학생들, 하고 짜증 내면서 타닥타닥 컴퓨터에 받아적었음. 끝엔 전부 연락처랑 주소랑 주민번호 적고 집으로 돌아갔지. 사실 집을 무너뜨렸으니 그 할머니 돌아오면 보상을 해야 하잖아. 우리가 몸통 박치기 안 했어도 저절로 무너질 것처럼 낡아빠진 집이긴 했어도... 집안 형편 안 좋은 애는 얘기하다가 울기도 하고, 나 포함 다른 애들도 부모님한테 쪼일 거 생각하니 완전 속이 말이 아니었지......


그런데 한 주 지나고 나서 경찰서에 다시 가니 전혀 의외의 사태가 벌어져 있었다?



그 할머니가 죽었어. 산비탈에서 굴러서.
게다가 무너진 집 폐허에서는 죽은지 10년 된 시체가 발견됨.



경찰은 우리한테 할머니가 왜 도망쳤는지, 광 안에 우리가 들어갔을 때 뭔가 다른 걸 보지 않았는지, 문을 바깥에 있던 우리 중 다른 사람이 두들긴 게 아닌지 몇번이고 계속 물었음. 뭐, 다 증언이 비슷했고 별다른 게 없었는지 다 풀려나긴 했어.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경찰에서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아서 그 동네 근처 슈퍼에서 들은 얘긴데,


원래는 그 할머니가 3인 가족이었다 함. 그 할머니랑, 그 할머니 오빠랑 어머니. 이렇게 3인. 엄청 옛날 얘기니까 그때는 할머니도 꽃다운 처녀였겠지. 근데 할머니가 얼굴이 좀......말상이라 시집을 못 가서 어머니가 계속 구박을 했다나 봐. 게다가 옛날은 남녀차별 엄청 심했잖아. 아들만 둥기둥기 떠받들고 딸은 하녀처럼 부렸다대? 아들은 더했고. 물 떠오라고 발 끝으로 부리고 반찬이 마음에 안 들면 얼굴에 집어던졌다 함. 그 인간 여동생......그러니까 할머니는 맘이 어려서(도저히 상상이 안 가는데) 네, 네, 잘못했어요 오라버니, 하고 다시 만들어 간 다음 우물가에 주저앉아 울고 그랬대. 욕지거리 쏟아내던 할머니랑 같은 인물이라고 믿어지지가 않는데 이야기 들려주던 슈퍼 할머니랑 그 앞 평상에 바둑 두러 나온 할아버지들이 이구동성으로 맞다 옳다 했으니 틀림없겠지......그랬단다, 암튼.


근데 625가 터졌음. 서울 시민들 전부 대피갈 때 그 셋은 안 갔음. 어머니가 우리 집을 놔두고 어디 가냐고 주저앉았대. 그때 서울에 자기 집 한채 갖기도 어려웠을텐데 모녀가 돈을 잘 모았는지 없는 남편이 남긴 거였는지(아들은 집에서 놀고 먹었다 함) 그 집이 자기들 꺼였대. 딸도 엄마가 안 가니까 못 가고 같이 있고. 아들만 혹시 군대한테 끌려갈지 몰라서 남쪽으로 피신 보냈다 함. 그러고 나서 어머니는 몇 달 안 지나서 열병으로 사망. 죽을 때 아들 걱정을 엄청 했대. 군대에 끌려가면 안 되는데......안 되는데......육시랄 군인 놈들아 내 아들 내놔라! 하고 헛소리 막 하고. 알고 보니 남편이 군대 갔다가 죽었던 모양임. 그래서 더 아들한테 집착했구나 싶은데, 하기사 625 이후 사상 검증이다 뭐다 해서 누구는 북한군에 붙었었느니 빨갱이 앞잡이 노릇을 했느니 아니니 사상에 진짜 목숨 왔다갔다 했던 시기였다며? 처음에 서울 들어왔던 북한군들은 남자는 다 끌고 갔고. 딱 군대 갈 나이였던 아들 걱정 했을 만 하지. 지금 시대엔 실감도 안 나지만......이후론 딸 혼자 그 집에 쭉 살았다고 함. 쭉. 딸은 집집마다 이것저것 소일거리 다 해주고 식모 살이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는데 말씨가 곱고 손끝이 야물어서 다들 쓰고 싶어했단다. 그래도 이상한 소문 나지 않게 밤에는 꼭 자기 집으로 갔다고. 나이 들어서는 집이 낡으면서 마을 아래 내려와 양로원에서 살았다고 하던데 그래도 임의로 정한 오빠 기일이랑 생일에는 밥상을 광주리 가득 푸짐하게 차려서 머리에 이고 옛날 집에 올라갔대.


여기까지 들었을 때는 정신 나간 새끼...라는 말이 절로 나왔음. 내 친구란 놈은 남의 젯상을 훔쳐먹고 있었던 거임. 근데 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까 집 무너진 자리에서 발견됐다던 해골? 그게 할머니 오빠 것이었다 합니다.



경찰 추측에 의하면(건너건너건너서 들은 거지만) 두 모녀가 이웃들에게 아들만 남쪽으로 보냈다, 라 말하고 집 광에 숨긴 모양. 끼니 때마다 밥 한 사람 분량 더해서 몰래몰래 광에 들여보내고, 혹시 광을 수색당할 경우에 대비해서 광에서 집 바닥 아래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도 뚫어놨었다 함. 구들장 아래가 비는 온돌 구조니까 가능했겠지. 그렇게 오빠는 북한군에게 남한군에게 잡혀갈까 봐 숨죽여 광에 숨어살고 모녀는 오빠를 숨겨주고. 그러다 어머니가 죽은 후 여동생만 오빠를 돌봤겠지. 그러다 625가 끝났는데......그 다음은 이거 읽는 사람 다들 알겠지? 여동생이 전쟁이 끝났단 얘기를 안 한 거임.


오빠는 계속 광에 숨어 살고, 여동생은 계속 밥 몰래몰래 들여 보내며 오빠한테 전쟁이 안 끝나서 계속 숨어있어야 된다고 거짓말을 한 거야. 주변에는 '오빠가 아직 안 돌아왔다. 나는 오빠가 돌아올 때까지 이 집을 지켜야 한다'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며 그 집에서 계속 지냈고. 오빠는 잡혀갈까봐 바깥에 나오지도 못하고 여동생이 주는 밥만 받아먹으며 쭉, 그 컴컴한 광 안에서, 죽을 때까지 산 거. 시체는 죽은지 십여년 밖에 안 지난 것 같다고 함. 꽤 됐긴 하지만, 625가 1950년에 일어났지, 아마? 그때 20대라고 생각하면 죽었을 땐 70살이 넘었겠지......어우 완전 소름끼침;;; 존나;;;


뭐......우리가 실제로 본 게 아니니까 반대로 여동생이 전쟁이 끝났다고 말해도 오빠가 집 밖에 나오지 않고 편하게 꾸역꾸역 밥 주는 대로 받아먹으며 살았을 수도 있겠는데, 그런 식이면 몇십년 동안 한번도 집 밖에 안 나왔다는 게 설명이 안 되지. 실제로 숨기 전엔 술이랑 여자를 상당히 좋아했다는 것 같고. 잡혀가는 게 졸라 무섭긴 했나 보다. 그래도 어떻게 50년을 틀어박혀서 사냐 미친......



......할머니가 요 몇달간 많이 불안해하고, 왠지 넋이 나간 것 같고, 옛 집에 자꾸 밥을 해서 올라갔다는 주변 얘기로 경찰은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정신이 이상해져서 오빠가 살아있는 걸 착각하다가, 건장한 남자들이 집에 몰려와 있으니 오빠를 데려가려고 한다고 착각->자기 거짓말이 들통났다고 생각->도망치다 낙상사'라고 결론을 내렸다 함. 광문을 쾅쾅쾅 치는 소리가 착각을 더했겠고. 그래서 우리한테 그 할머니가 죽은 직접적 원인인 쾅쾅 소리를 누가 냈냐고 계속 물어본 거.

사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광에 갇힌 놈이 냈다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만......우리가 경찰서에서 진술하고 있고 아직 할머니가 죽은 게 밝혀지기 전 시점에, 병원에서 의사한테 그 놈은 '아무도 안 와서 잠들었다. 뭔가 시끄럽고 다리가 죽도록 아파서 깨니 나무에 깔려 있었다'라고 말했거든. 즉 아무도 그 문을 두들긴 사람이 없다는 거지.


굳이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집이 무너지기 전 나무에서 난 소린가? 싶기도 한데 그때 들었던 우리는 다 알거든. 분명히 그건 누가 치는 소리였음. 그것도 사람 키 높이에서 쾅쾅쾅. 주먹으로 문이 부서져라 세게. 게다가 천 오백보 양보해서 무너지기 전 소리라 쳐도 (친구라고 부르기도 싫은) 그 새끼가 맨날 밥 훔쳐먹다가 우리랑 찾아간 그 날 집이 무너지면서 그런 소리를 내다니 타이밍이 완전 최악이잖아. 하필이면 왜 그때 그런 소리가 났을까? 그 새끼가 바깥 분위기가 이상했으니 거짓말을 한 걸까? 아니, 깨어 있었다면 집이 무너질 때 비명을 지르며 난리법석을 피웠을 놈임. 그렇지만 진실을 말했다면 그때 문 두들기는 소리는 진짜 컸는데 깨지도 않고 어떻게 쳐자고 있었던 걸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이거 치면서 오만가지 가설을 다 떠올려 보는데 여전히 딱 들어맞는 답이 없음.


쨌든 결과적으로 우리는 의도적인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니었고 할머니의 이런저런 사연이 밝혀지자 오히려 운 없게 휘말려든 죄없는 대학생 취급을 받아서 몇번을 불려가던 취조 분위기도 점차 유해지고, 결국 전원 무사 귀가. 사건의 발단이 됐던 웬수 놈은 좀 반성을 해서 조용해졌다 싶더니 모 기업에 들어가 목에 힘주고 다니면서 우리랑은 연락이 끊겼음. 남은 우리는 가끔 연말 모임 같은 때 만나서 술잔 주고 받으며 요즘 근황이나 대학시절 얘기 하곤 함. 새내기 시절은 엄청 옛날처럼 아득한데 그때 쾅쾅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를 떠올리면 지금도 등골이 섬뜩함.


근데 바보 새끼가 가져온 귤말랭이는 존나 맛있었음......그건 공포체험 겪었어도 안 변했음. 맛있었는데 어쩔? 어제 연말 모임에서 안주로 나온 말린 것 먹다가 "야, 그때 귤말랭이 맛있었지." 하고 말 꺼내니까 한 놈이 "시발, 찝찝하게 그때 얘기 왜 하냐. 꺼내지 마. 나 그거 생각나면 3일 동안 악몽 꿔."라고 퉁박 주고 다른 놈은 "야, 사내자식이 간이 커야지. 난 대학 새내기들 들어오면 여름 MT 때마다 해 줬는데 반응 졸라 좋았어."라고 해서 여기 쓰게 됨. 나는 둘 다라고 보거든. 뭐, 여러모로 찝찝한 얘기긴 한데, 재밌지 않음? 스릴 있고. 아 어떻게 끝내야 될지 모르겠다 여기서 끊어야지 나 몇시간 동안 뭐 빠지게 고생하면서 길게 썼는데 이 정도면 톡 올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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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시면서 아셨겠지만, '[펌] 귤말랭이 괴담' 전체가 제목입니다. 펌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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